‘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 바르르 떤다(중략) /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중략) / 3월(三月)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중에서
시인은 관념을 벗어나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감각적인 언어를 시상에 담아 영혼에 불을 지핀다.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이며, 봄의 맑고 순수한 생명력을 환상적인 분위기에 담아 따뜻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봄을 기다리는 사나이의 관자놀이는 희망으로 생명을 잉태한다. 고통과 상처가 깊어도 겨울열매들은 올리브빛 옷을 입고 여인들은 그해의 찬란한 불을 지핀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으면 희망은 작은 풀잎에도 여린 꽃봉우리를 맺는다. 꽃샘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찔레꽃이 바람에 흩날려도 사랑은 맹세를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한평생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인지 모른다.
윤흥길의 중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인간의 존엄성를 상실해가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셋방살이하다 집을 장만한 오씨 집에 세든 권씨는 자신이 대학까지 나온 안동권씨라며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권씨는 아내의 수술비를 오씨에게 빌리려다 거절당하자 (오씨가 수술비를 대준 걸 모르고) 칼을 들고 서툰 강도짓을 하다가 탄로가 나고, 그는 행방불명이 된다. 다음날 오씨는 권씨의 방에 그가 애지중지하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不條理)극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는 ‘기다림’이다.
주
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난 술이 싫다고 동문서답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지만 실은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지 모른다.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두서 없고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힘겨운 에스트라공은 ‘우리 당장 목이나 매자’며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마치 힘겨운 삶을 도피하려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과 같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상처에 베이고 긁히며 세월에 떠밀려 살아왔는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무너지는 자존심에 절망해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생’이란 글자에 목숨을 걸며 살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 베케트의 명대사다. 무의미한 생을 의미있는 축제로 끝맺기 위해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겨울이 모질어도 봄을 이기지 못한다. 고도가 영영 오지 않는다 해도 기다림의 끈을 놓치 않는 사람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