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만 들이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적당히 살겠다며 모든 일에 뜸만 들이다 보면 적당하게 살다 간다. 인생이 한번 왔다가는 소풍놀이라는 건 빈말이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은 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렸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장터에 내다 팔 달걀 중에 제일 큰 놈 두개를 골라 병아리 꽁지처럼 노란 지단 부쳐 돌돌 말아 김밥을 싸 주셨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 떫은 맛 도는 땡감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슬프게도 봄소풍은 일년에 단 한 차례뿐이였다.
감나무 가지 타고 올라가 나무들의 초록빛 치마에 마음을 빼앗긴 아지랑이 보며 봄을 기다렸다. 소풍가는 날을 학수고대 하는 사람에겐 봄은 꼭 온다.
뜸을 잘 들이는 것은 요리의 기본 학습이다. 옥수수는 뚜껑을 닫고 약 30분 삶아주면 탱글탱글하고 쫀득한 식감을 주는데 너무 오래 삶으면 물컹해진다.
밥을 지은 뒤 뜸을 들이는 것은 밥솥 내부의 잔열이 쌀알 속까지 고르게 침투해 밥알의 찰기를 높이고 맛있는 밥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추가로 열을 가하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맛난 밥을 짓게 한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더 빨라 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간다고, 더 늦는 게 아니라, 숨 고르며 느긋하게 가다 보면,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구수한 삶의 냄새가 넘쳐 난다’ - 정웅구 시 ‘뜸 3’ 전문
달리기와 뜀박질에 익숙한 사람은 속도를 줄이고 달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꺼질 줄 모르는 불꽃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고 불태우면 재가 되어 흩어진다.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고, 재물을 쌓고, 빨리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쉽게 무너진다.
인생에도 뜸 들이는 시간, 기다림의 인내, 숙성의 날들이 필요하다.
내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였다. 전국여고생 백일장에서 청상과부로 소복 입은 어머니 모습 담은 ‘백목련’이 당선됐다. 김춘수 시인 칭찬 듣고 내 꿈은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것, 양키시장에서 구입한 바바리 코트 입고 동성로를 배회했다.
소풍이 끝나고 발을 헛디디며 산을 내려올 때처럼, 운명은 꿈꾸던 인생의 달콤한 소풍날을 알려주지 않았다. 시인의 꿈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에서 침몰됐다.
20년이 넘게 매주 빠짐없이 미주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며 자음과 모음을 기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방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눈물과 상처를 담은 장편소설 두권을 쓰고 싶었다.
20년간 뜸 드리며 몸살 앓던 숨고르기를 시작한다. 죽을 각오로 자신이 원하는 길 따라 행군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이든 밥이 되든 되돌아 갈 수 없어 지금 시작한다. 나이는 시간을 잡아 삼킨다. 집필을 시작했다. 장편 1권 ‘바람의 연가’, 2권 ‘바람벽에 기대’로 가제를 정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처럼, 시작과 끝은 있을 것이고 불꽃은 마지막까지 타오른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언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높이 뜀박질한다고 하늘에 닿지 않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고 어제가 지워지지 않는다. 물구나무서기 해도 멀리 바라보고, 뜸 들이지 말고 숨고르기 하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것인지 고심한다.
마음의 창을 열고, 남은 시간들을 사랑하고, 올인하는 사람들의 꽃밭에는 청춘이 퍼드덕 봄의 날개를 펼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