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미사리 카페촌, 부활의 노래

이광진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
서울에서 한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올림픽대로가 끝나고 하남시 방면으로 접어들면 강변의 금빛 모래, 은빛 모래가 아름답다 하여 ‘미사리’로 이름 붙여진 강변 마을이다. 이곳에 88올림픽을 앞두고 미사리 조정 경기장이 세워지고 한강변에 야영하기 좋은 캠핑장이 생기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해진 추억의 장소가 되었지만, 전성기 시절 매일 밤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인파들이 몰려들었고 카페들은 불야성을 이루며 라이브를 들었던 7080 문화특구였다.
그 당시 미주 공연에 초청할 가수 섭외를 위해 서울 방문이 잦았던 나는 기획사 사무실이 아닌 미사리 카페에서 출연하는 가수들을 만나곤 하였는데 실력파 뮤지션들의 언플러그드 무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또한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LA 지인들과의 시간도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때 인연을 맺고 LA에서 공연을 가졌던 가수들은 이태원, 하남석, 장계현, 이동원, 이광조, 유익종, 이주호, 강인원, 박강성, 최성수, 변진섭, 임지훈, 채은옥, 김세화 등이였다. 특히 유익종은 그 당시 미사리에서 최고의 가수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또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쳤던 박강성은 이곳에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사리 스타’에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는 1990년대 중반, 전원 카페 형태의 ‘전인권클럽’과 ‘록시’로 시작됐다. 이후 전성기인 2000년대 초중반에는 70~80개가 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업소 간에 스타 가수 유치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30일 출연료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에 달하는 업소도 생겼고 피크 타임 때는 커피값이 3만~4만원까지 치솟았다.
천정부지로 높아진 출연료는 결국 미사리의 문제점으로 현실화됐고 가격에 부담을 느낀 고객들은 하나 둘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업소 간의 과대경쟁은 쇠퇴의 원인이 되어 중년들의 추억의 장소로 빛나던 미사리의 영광은 아쉽게도 15년을 지키지 못하였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미사리가 최근 새로운 변신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남시 문화재단은 미사리 카페촌 부활을 위해 7080을 대표하는 포크 가수들과 대담회를 여는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한다. 포크 가수들의 꿈인 통기타 전용 공연장 건립 이야기도 나왔다고 하는데 반가운 일이다.
모두가 떠난 미사리 강변에서 ‘DOME 676’, ‘윤시내의 열애’, ‘카페 쉘부르’는 아직도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과연, 미사리는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중년들의 청춘과 낭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