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노장의 연륜, 그 깊이와 향기

장소현 시인, 극작가
연륜의 깊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음악에서는 소리에 나잇값이 어떻게 담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되도록 널리 알려진 곡, 단순한 곡을 찾아서 들었다. 그래야 내 나름대로 비교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나 같은 초보자가 감히 거장들의 연주를 분석하고 비교하려 들다니 어불성설이지만, 자꾸 들어보면 어디가 다른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고른 곡이 쇼팽의 녹턴 20번이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명곡이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우선, 백전노장인 노인네 피아니스트가 교과서 읽듯 또박또박 치는 정직하고 엄격한 연주를 들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젊은 스타 피아니스트가 현란하게 연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와 비교하면서 다시 들어본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깊이나 느낌, 울림, 향기가 다르다. 삶의 연륜이 소리 하나하나에 진하게 묻어나는 느낌이다. 음악을 대하는 경건한 자세가 주는 감동도 있다.
말년의 루빈스타인이 한 인터뷰에서 했다는 고백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도 무대에 나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너무나 떨린다.”
이분들은 이 곡을 평생 몇 번이나 쳤을까. 정식 연주가 아니고 연습까지 합하면… 매번 연주 때마다 최선을 다했을 텐데…. 몸의 한 부분처럼 익숙한 음악일 텐데, 아직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너무나 떨린다니 아직도 더 표현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는 말씀인가.
종교를 대하는 것처럼 경건한 손놀림과 진지한 얼굴 표정은 손끝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온 영혼으로 하는 연주다. 말년의 호로비츠가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면서 눈물 흘리는 영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이런 것이 연륜의 향기인가.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노년의 농익은 작품이 반드시 더 좋은 작품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많은 작가의 경우 대표작은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의 작품이다. 추사 말년의 속기(俗氣) 뺀 붓글씨 같은 깊은 경지는 흔하지 않다.
이에 비해, 연주자나 영화배우, 연극배우, 판소리 명창, 춤꾼, 장인 등의 숙련이 요구되는 예술에서는 완숙미, 연륜의 아름다움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젊은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 단순히 숙련된 기교가 아닌 영혼의 떨림 같은 것….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자꾸 이어졌다. 답답해서, 평생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오신 위진록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명쾌하게 답을 주셨다.
“아, 내 생각에는, 그건… 비교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아요. 젊은이의 패기와 싱싱함은 그것대로 좋고, 노장의 원숙한 향기는 또 그것대로 좋은 거지요. 우리네 인생이나 마찬가지예요. 청춘의 매력과 노년의 매력의 다른 것처럼 음악도 그런 거지요. 나는 젊은이의 패기 넘치는 연주를 좋아해요.”
아, 그렇다! 자꾸 비교해서 높낮이를 따지려 드는 평론가적(?) 고약한 심사가 문제였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버리고, 같은 피아니스트가 같은 곡을 젊었을 때 연주한 것과 노년에 연주한 것을 들으니, 당연히 둘 다 좋다.
마음을 여는 훈련이 턱없이 모자란다. 알량한 얼치기 지식인의 슬픔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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