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문화산책] 비우고 가벼워지는 새해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모든 날들이 부디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 기쁨, 보람, 자랑스러움,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해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한문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싶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지 등등… 야무지게 결심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작심삼일! 그래도, 또 새해 아침이면 올해는 무슨 일에 집중할까를 궁리하게 되네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올해 나의 새해결심은 ‘뺄셈 공부’로 정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는 날짐승이잖아. 그런데 무거운 새는 못 날아요. 그때는 날개가 덮개가 되죠(웃음). 인간도 몸이 불으면 못 날아. 늙고 병들면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빠지고 어깨에 힘이 빠져요. 비극이지. 그런데 마이너스 셈법으로 몸이 가벼워지면 날아요. 고통을 통과해서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위로 떠요.   덩컨 맥두걸이라는 학자가 실험했어요. 죽은 후 위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게를 쟀더니 21g이었죠. 그러니 죽어갈수록 더 보태지 말고 불순물은 빼야 해요. 21g의 무게로 훨훨 날아야지요.”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 말씀대로 훨훨 날기 위해서는 빼고, 버리고, 비우고, 정리해서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 그런 눈으로 주위를 보니 웬 쓸데없는 물건이 이리도 많은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하는 일에 대한 집착도 줄이고, 몸무게도 줄이고, 똥배도 줄이고…. 온통 버릴 것, 없앨 것, 줄일 것, 뺄 것투성이네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 가장 급하네요. 욕심, 집착, 헛꿈, 지나친 기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찾아보니, 명상, 종교적 묵상, 좌선, 기도 등등 마음을 비우고 챙기고 다스리기 등 수련방법이 참 많네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최근에 알게 된,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입니다. 하와이 말로 ‘호오’는 원인 또는 목표, ‘포노포노’는 완벽함을 의미하므로, 합쳐서 ‘호오포노포노’는 ‘잘못을 바로잡는다’라는 의미를 담는 단어가 된다네요.   고대 하와이의 전통적 기법은 종교 지도자가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현재의 수행방식은 혼자서 하는 방법으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억을 해방시키는 전통적 문제 해결법이 현대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신체적 혹은 정서적, 정신적 고민과 고통을 알아채고, 정화를 시작하면 되는데, 정화는 4개 문장을 되뇌는 것이 전부라네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마법의 네 단어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정화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도 때도 없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지 말고 나의 내면을 향해 되뇌면 마음 편하겠지요.   올해는 버리고 비워,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부디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새해 새해 결심 전통적 문제 고대 하와이인들

2026.01.01. 17:00

썸네일

[문화산책] 그리스도의 사랑 담은 미술

40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페테르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지난 11월 30일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약 300만유로(약 352만 달러)에 낙찰됐다는 기사가 성탄절을 앞둔 시기라서 눈길을 끌었다.   루벤스뿐 아니라 서양미술의 거장들은 거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광경을 그린 명작을 남겼다. 현대미술에서도 루오, 샤갈, 고갱, 달리 등이 그린 유명한 작품이 많다.   우리 한국미술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 미술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조각가 최종태의 한국적 성상(聖像), 한국화가 김병종의 ‘바보예수’, 서양화가 권순철의 ‘예수님 얼굴’ 등 우리 시대 한국의 종교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종교관과 예술관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가 서양의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말해준다.   성탄절을 맞아 이런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이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이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박해, 공생애, 수난과 부활, 승천 등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의 전통 풍속화로 재해석하여 파노라마처럼 화폭에 담아낸 역작으로, 한국 종교미술 토착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예수님의 삶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하여,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선녀의 모습으로 표현된 천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모 마리아, 조선시대 복색을 한 인물들과 초가집 기와집 등 전통 가옥과 자연 등이 마치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이야기를 그린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과감한 시각, 기독교의 한국화라는 관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미술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전쟁 중에 탄생한 성화(聖畵)로 전쟁과 종교그림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상징성이 큰 울림을 준다. 운보는 한국전쟁 중인 1952∼53년 아내 박내현의 친정이 있는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미국 선교사의 권유로 예수의 생애를 그리기 시작하여, 1년여 만에 29점을 완성했다.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그 3년 뒤, 부활 그림을 추가해 30점으로 완성했다.     “온 국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예수의 행적을 그려보는 것도 계기가 될 것 같아 성화를 그리는 것으로 암울한 시기를 이겨 나갔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전쟁 속 우리 민족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 한국적인 성화를 제작했다는 설명이다. 피난시절의 가난과 엄혹한 환경, 화구도 구하기 힘든 여건에서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성화를 그리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이 연작을 그리던 시기에는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대낮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성화 작업에 몰입했다고 고백했다.   이와 같은 아픈 사연이나 시대배경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새삼 숙연해지고, 왜 한국적 풍속화로 재해석해서 그렸는지도 공감하게 된다.   참고로, 운보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감리교회에 다녔고, 스승의 권유로 장로교회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막내딸이 ‘수녀회’에 입회한 것을 계기로 일흔 살에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꾸준히 김 추기경과 교유하였으며, 장례미사도 추기경이 집전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그리스도 사랑 예수 그리스도 한국 종교미술 우리 한국미술

2025.12.25. 18:00

썸네일

[문화산책] 올해, 시대를 떠난 이름들

해마다 연말이면 신문에 단골로 실리는 것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기사다. 우리와 친숙했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던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국제적인 인물로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이태리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01~2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모든 활동과 지향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4년 한국 방문 때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장애인들도 만났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올해 별세했다. 현대 건축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게리는 “건축은 인간 삶의 혼란과 감정, 민주적 정신을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예인으로는 지난 11월2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미녀배우 김지미, 원로배우 윤일봉, 코믹 감초연기로 유명한 배우 남포동,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 ‘쨍하고 해뜰 날’의 가수 송대관, 개그계의 맏형 전유성, ‘우정의 무대’ 사회자로 군인들의 큰 형님으로 알려진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 연극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한 배우 이주실, 배우 김새론, ‘명랑운동회’ 사회자로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국회의원을 지낸 변웅전 등이 올해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이순재는 69년 연기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간 ‘평생 현역’ 배우로, 노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철학, 확고한 직업의식을 통해 후배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정부는 고인에게 문화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미국의 인기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쳐’ 등의 영화에서 개성적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진 해크먼, 영화 ‘대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고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다이앤 키튼, ‘킬링 미 소프틀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로버타 플랙 등이 올해 타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드는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던 ‘할리우드의 위대한 별’이었다.   한편, 한국 문화예술계의 인사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 시인’ 이생진, ‘엉겅퀴꽃’, ‘철원 평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 민영 시인, 소설가이며 시인, 화가로 활동한 윤후명 작가, 재일동포 소설가로 1972년 외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얼과 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한, 특히 예술가 초상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육명심, 한국화가 홍석창 등도 올해 타계했다.   또한, 제3세계 최고 권위의 로터스 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박경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케냐의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 응구기 와 시옹오, 소설 ‘천상의 푸른 빛’ 수필집 ‘노인이 되지 않는 법’ 등의 저자인 일본작가 소노 아야코 등이 올해 별세했다.   미주 문인으로는 시인 겸 소설가 곽상희 작가, 김신웅 시인, 조만연 수필가, 김태영 동화작가, 손명세 시인, 영어 교재 저술가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한 조화유 작가 등의 원로 문인들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원로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젊은 문인들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한인사회의 따스한 관심도 절실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름 국민배우 이순재 미녀배우 김지미 프란치스코 교황

2025.12.18. 20:25

썸네일

[문화산책] 한인타운글판을 꿈꾸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꼭 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이 참 많다. 그런 꿈 중의 하나가 우리 코리아타운에도 ‘광화문글판’ 같은 것을 만들자는 시도였다.   한인타운의 잘 보이는 곳에 미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 구절을 예술적으로 멋지게 써서 걸어놓아, 보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미주 한인 화가의 그림을 곁들이면 더 좋겠다는 야무진 꿈이었다.   그렇게 시를 생활 속으로 가져와 삶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키면, 시인들도 좋고 한인타운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실천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분들을 여럿 만나 브리핑 비슷한 것도 했다. 그런데, 다 될 듯 될 듯하다가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돈이 꽤 드는 번거로운 일인데다가, 글판을 내걸 마땅한 장소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서울의 광화문글판처럼 걸어다니며 읽을 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었다.     글판의 시 읽느라고 머뭇거리다가 자동차 사고라도 나면 그런 낭패가 없을 터다.     더욱 서글픈 것은 먹고 살기도 바쁜 판에 누가 시 나부랭이를 읽을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현실이었다. 아무튼, 야무진 꿈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충분하고 남았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시작돼 올해로 35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문화의 창이자 시민들의 벗으로 자리 잡았다. 시가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35주년을 기념하여 교보생명은 〈시민이 뽑은 최고의 광화문글판〉을 선정, 발표했다. 시민 2만2500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베스트 광화문글판’으로 선정되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구가 담긴 광화문글판은 2009년 가을에 내걸려 시민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견디며 익어가는 인내와 회복의 메시지’가 시민의 일상에 다정한 위로로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나태주의 〈풀꽃〉, 문정희의 〈겨울 사랑〉, 정현종의 〈방문객〉 등이 큰 사랑을 받았고, 김규동의 〈해는 기울고〉, 유희경의 〈대화〉, 허형만의 〈겨울 들판을 거닐며〉, 이생진의 〈벌레 먹은 나뭇잎〉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혔다고 한다.   참고로, 광화문글판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 사옥 외부에 내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글판이다. 이곳은 하루 평균 통행객이 100만 명에 달하는 곳이다. 매년 계절마다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 한 글귀를 인용해 새롭게 꾸민다. 그동안 윤동주, 고은, 강은교, 정호승, 도종환, 김용택, 안도현, 공자, 헤르만 헤세 등 동서양의 현인과 시인의 작품이 인용됐다.   길에서 잠깐 읽고 지나가는 30자 남짓의 짧은 글이지만,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면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구를 고르기 위해 시인, 소설가, 광고인, 언론인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가 따로 운영되고, 대중의 감성도 고려하기 위해 교보생명 직원 투표를 거친다고 한다. 많은 품과 정성이 드는 일이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 이같은 사업을 펼치기는 여러모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한인타운을 지나노라면 “아, 저기쯤에 멋진 시가 피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멋진 시가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은 ‘꿈꾸러기’의 이룰 수 없는 헛꿈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서울 광화문 미주 시인 장석주 시인

2025.12.11. 18:27

썸네일

[문화산책] 대배우 이순재가 남긴 가르침

‘영원한 현역 배우’ 이순재 선생은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가르침들은 배우로서는 물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인생 지표가 된다. 힘들고 외로운 타향살이에 시달리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도 큰 격려와 자극이 되는 교훈들이다. 특히,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 된다.   고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기사나 추모글과 영상이 이미 나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인의 삶에서 닮고 싶은 덕목,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 몇 가지를 되새기고 싶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 이순재 선생은 많은 면에서 모범을 보여준 좋은 어른이요, 스승이었다. 한국정부가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면서 밝힌 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후학 양성과 의정 활동 등을 통해 예술계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문화예술인”이었다.   고인이 남긴 많은 덕목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어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과감한 도전정신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자세는 많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귀감이 되었다.   어떤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용기는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순재 선생은 연극, 드라마, 예능, 시트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평생 4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창조해낸 인간상도 근엄한 임금부터 완고한 아버지, 치매 걸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사극 〈허준〉의 따뜻한 스승 유의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유럽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의 직진순재 등의 다양한 변신은 도전정신과 노력의 산물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젊은 정신’은 연극무대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1956년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1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노년에도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리어왕〉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줬다.   2023년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의 주연을 맡아 명연기를 펼쳤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의 공연시간은 200분에 달했고, 리어왕 역의 대사 분량은 살인적이었다. 78세의 노배우 이순재는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었다. 존경스럽다.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 때는 공연 중 몸이 아팠지만,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공연을 마치자마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리고, 담당의사의 강력한 휴식 권고를 받고 하차했다. 세상이 말하는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서 힘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어서 닮고 싶은 것은 철저한 직업정신이다. 그는 늘 “무대에서 죽는 것이 꿈”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또 배우고 싶은 것은,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자세다. 철학도 출신답게 끊임없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반성과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 정말 닮고 싶다.   그는 말했다.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대배우 이순재 노배우 이순재 이순재 선생 최고령 리어왕

2025.12.04. 19:06

썸네일

[문화산책] 명연주와 눈물이 만나는 순간들

요새는 음악감상도 유튜브로 하게 된다. 집에 제대로 된 음향기기도 없고, 가지고 있는 음반도 빈약하고, 음악감상을 할 공간도 마땅하게 없는 형편이니, 만만하고 편리한 유튜브에 기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음악에게 미안할 때가 참 많다. 음악의 본질인 소리를 충실하게 듣지 못하는 미안함이다. 고전 문학작품을 다이제스트로 읽거나, 그림을 작게 축소된 도판으로 보는 그런 아쉬움과 미안함….   하지만, 뜻밖의 선물도 있다. 지휘자나 연주자, 청중의 생생한 표정을 보면서 입체적인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령 눈물을 흘리면서 연주하는 모습, 울음을 참지 못하는 청중의 얼굴 말이다.   노장 호로비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이런 것은 음반으로 감상할 때는 얻을 수 없고, 연주회장에서도 먼 뒷자리에 앉아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이다.   음악을 들으며 울어본 경험이 있으신지? 음악과 눈물의 영상 몇 가지를 소개한다. 유튜브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장면 1. 거장 호로비츠의 눈물   20세기 피아노의 전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비엔나 골든홀에서 열린 마지막 리사이틀. 그의 손끝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 제13곡 선율이 흐른다. 연주가 끝난 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객석을 바라본다.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눈에 담는 듯한 그 시선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축축하게 흐른다.   또 하나의 감동적 영상은 호로비츠가 1985년에 모스크바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 혁명을 피해 탈출한 뒤 미국에서 활동하던 호로비츠는 조국을 떠난 지 무려 61년 만에 82세 노인이 되어 모스크바에서 콘서트를 가졌고, 앙코르곡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카메라가 조용히 건반 위 호로비츠 손을 떠나 객석에 앉아 있는 한 러시아 청중 얼굴로 옮겨갔다. 중년 남자의 뺨에는 한 줄기 더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국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던 노년의 피아니스트는 어떤 마음으로 연주했을까? 그 음악을 듣는 모스크바의 청중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장면 2. 마음의 눈으로 흘린 눈물   선천적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츠지이 노부유키는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비가’를 연주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으로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츠지이 자신이 작곡한 이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통감한 조국의 아픔이 눈물로 흘러내린 것이다.   #장면 3. 빗방울 전주곡과 눈물   올해 제19회 쇼팽 콩쿠르에 출전한 나카가와 유메카(24)의 연주는 오래 기억에 남을 한 장면으로 꼽힌다.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 나카가와는 2차 예선에서 쇼팽의 24개 전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전주곡 15번, 이른바 ‘빗방울 전주곡’을 칠 때 나카가와의 안경 너머로 눈물이 비쳤다. 감정이 북받친 표정이었다. 곡에 담긴 감정을 체험하며 쳤던 것일까?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마요르카섬에서 지내던 때, 어느 날 상드가 아들과 함께 외출했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 폭우로 변하자, 연인을 걱정하는 쇼팽의 사랑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곡이다.   나카가와는 3라운드에 오르지 못했지만, 현장과 인터넷으로 지켜본 청중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했다. 눈물 흘리며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간 피아니스트의 모습….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그 순간 그녀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가 만든 결과였을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눈물 음악과 눈물 연주자 청중 빗방울 전주곡

2025.11.27. 18:00

썸네일

[문화산책] 멋진 노익장에게 박수를!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낱말은 참 든든하다. 자주 듣고 싶은 말이다. 나이가 많음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기차고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어르신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가을 산의 빛나는 단풍처럼 아름답고, 태양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로 잠기는 장면처럼 장엄하기도 하다. 사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주위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도 대단하다.   최근에 나는 멋진 노익장 몇 분을 연달아 만나 젊은 기운을 듬뿍 받는 복을 누렸다. 큰 행운이다.   지난 11월1일에는 원로 방송인 위진록 선생님(97)과 한국의 정순진 교수가 나눈 손편지를 모아 엮은 책 ‘세월의 흔적’ 출판기념 잔치를 거들었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종기 시인(86)의 새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를 반갑게 읽었다. 그리고 며칠 뒤엔 원로 아동문학가 홍영순 선생이 새로 낸 책 ‘노인을 위한 동화’를 받았다.   ‘세월의 흔적’ 위진록 선생과 한국의 수필가 겸 문학평론가 정순진 교수가 8년 동안 나눈 손편지 200여 통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속표지에는 ‘손편지: 아름다운 사연,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적혀있다. ‘태평양 세기 연구소(PCI)’ 스펜서 김 대표의 후원으로 발행되었다.   두 분이 나눈 편지에 무슨 거창한 철학이나 거대 담론을 담은 것이 아니고, 사람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 진솔한 사연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준다. 두 사람 사이의 30년이라는 나이 차,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 LA와 한국의 대전이라는 거리를 훌쩍 넘어서는 인연의 힘, 손편지라는 아날로그 정서가 어우러진 사람냄새가 감동으로 스며든다. 뭐든지 편리한 것만 찾는 디지털시대에 대한 경종으로 들리기도 한다.   마종기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에는 80대에 들어선 이후에 쓴 시 43편과 산문 ‘영웅이 없는 섬’이 실려 있다. 마종기 시 세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은, 조국에서 쫓겨나 해외에서 디아스포라 시인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긴 세월의 고통, 그 고통 속에도 결코 허물어질 수 없었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홍영순 선생의 ‘노인을 위한 동화’에는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11편의 동화와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어 이채롭다. 책 제목이 아예 ‘노인을 위한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나 ‘성인동화’는 이미 좋은 작품이 많지만, ‘노인을 위한 동화’란 용어는 금시초문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를 썼는데, 인생의 가을을 살면서 저절로 노인을 위한 동화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노인들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선 인간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글에 철학적 신학적 깊이가 생기게 된다. 아무튼, 이참에 ‘노인 동화’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한편, 미술 쪽에서도 현혜명, 신정연 같은 원로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에서 보여준 과감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젊은 작가들보다 더 새롭고 신선하다.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대로 우리 미주 한인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노령화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으로 이민사회는 더욱 위축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노익장의 존재가 한층 고마운 것이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더 좋아지는 상태를 키워야 우리 사회도 젊고 건강해질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노익장이라는 낱말을 ‘젊근이’ 즉 젊은 늙은이 또는 ‘농익은 청춘’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내 멋 대로의 생각이지만….   멋진 노익장들에게 힘찬 박수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노익장 박수 노인 동화 노인들 이야기 마종기 시인

2025.11.20. 18:48

썸네일

[문화산책] 미술관의 스파이와 현대미술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비앙카 보스커(Bianca Bosker)가 쓴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원서 제목은 ‘Get the Picture’다.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도대체 뭘 그린 거야? 이것도 예술이야? 왜 요즘 예술은 대중을 따돌리는가?” 같은 현대 예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시니컬한 문장으로 통쾌하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으며, 유명 아트페어에서 그림 판매에 열을 올려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전시회 큐레이터와 신진 예술가 작업실 조수로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미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일반대중의 관계를 관찰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침묵 속에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어야 하는 경비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한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도 한다.   이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관람자, 작품을 전시하고 파는 갤러리, 그림 시장인 아트페어, 수집가, 비평가, 그리고 미술 권력의 최정점인 미술관에 걸친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탐험기는 독자에게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되풀이하며, 지금 미술계의 현실을 비판한다.   가령 “예술을 본다는 건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실제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한 작품에 할당하는 평균 시간은 (벽의 표찰을 읽는 시간을 포함해) 17초이며, 이 또한 작품 앞에 멈춰 선 경우만을 계산한 결과이므로 실제 평균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표찰을 읽는 시간은 8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은 겨우 2초로 전자가 후자의 4배다.)”   과연 17초 동안에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미술관에 갔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왔다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오래전에 현대미술의 민낯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명작은 단연 톰 울프(Tom Wolfe)의 ‘현대미술의 상실’이다. 50년 전인 1975년, 미국 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되어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문제작이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현대 추상미술은 소수의 ‘문화적’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한 것이며, 현대 미술가는 한발은 예술가 동네에, 한발은 후원가들의 동네에 각각 걸쳐 놓고 있는 고도의 처세가라고 비판한다.   톰 울프가 50년 전에 비판한 미술계의 권력구조와 실상은 지금까지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완고해지고 있다. 돈이 개입되면서 ‘예술산업’이라는 낱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수많은 길과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이제 나는 그것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고? 와, 대단하다! 나는 아직도 현대미술의 실체를 잘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서글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현대미술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 현대미술 최전성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25.11.13. 19:12

썸네일

[문화산책] 오늘날 더욱 귀한 도산 정신

매년 11월 9일은 ‘도산 안창호의 날’이다. 도산 선생의 탄생일(1878년 11월 9일)을 기념하는 날로, 지난 2018년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공식 선포했다. 이는 미국 내 외국인 업적을 기리는 최초의 기념일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처럼 뜻깊은 기념일인데, 정작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흥사단’이나 ‘도산기념사업회’ 등의 유관 단체가 기념식을 거행하는 것 외에는 보통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산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하루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1년 365일을 ‘도산의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면 세상이 한층 밝고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거라는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산 선생은 결코 과거의 인물이 아니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도산은 동상으로 굳어 있지도 않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갇혀 있지도 않고, 책 속에 박제되어 있지도 않다. 오늘 더욱 귀하고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내일도 모레 글피에도 날마다 살아 말씀하신다.   도산의 나라사랑과 꿈은 장대하고 우렁차지만, 가르침은 아주 작고 구체적이다. 도산 선생은 높고 깊은 생각을 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린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실제로 힘주어 가르치신 것은 아주 작은 것들, 그래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나와 이웃을 사랑하라, 스스로 주인이 되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일단 한 약속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라, 청소를 잘하라, 항상 웃으라, 우스개도 정성껏 하라, 풀 나무 한 포기도 소중하게 여겨라, 물건을 아껴 써라….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고,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들이다. 땅이 몸부림치며 뒤흔들리고, 회오리바람이 땅 위를 모조리 휩쓸어가는 아슬아슬한 세상에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도산 선생 같은 참 스승의 가르침이요, 참 어른의 마음이다.   그리고 도산 선생께서는 이런 가르침을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다. 직접 청소를 하고 오렌지를 따셨고, 한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큰소리만 치며 군림하려 드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계신 것이다.   도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부터 고치는 일을 큰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요, 또 우리 스스로가 속는 사람일 것이외다.”   그러므로, 도산 선생을 위대한 인물로 올려세우는 작업보다 더 필요한 것은 ‘인간 안창호’의 진면목을 오늘 우리의 삶에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 그 어른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 생생하게 되살려 실천하고, 도산의 푸근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도산을 우리의 할아버지나 큰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을 위해서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도산의 생각과 삶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형식의 문학작품, 시, 연극, TV 드라마, 영화, 음악, 뮤지컬 등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개조시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산기념관 건립을 위해 힘쓰는 ‘도산기념사업회’나 ‘뮤지컬 도산’ 공연에 땀 흘리는 예술가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적극 지원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도산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과거에 살 자가 아니라, 미래에 살 자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오늘날 도산 도산기념관 건립 도산 선생 도산 정신

2025.11.06. 20:19

썸네일

[문화산책] ‘신이어<新year>’들의 신바람

한국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신이어마켓’이라는 소셜 브랜드 이야기다. 폐지 수거 노인을 넘어서 일하고 싶은 시니어까지 즐겁고 따뜻한 일자리로,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며, 다양한 세대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같이 살아가는 브랜드라고 한다.   “‘신이어마켓’은 연장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니어’를 어르신들 나름대로 발음한 ‘신이어’와 다양한 물건을 파는 ‘마켓’을 합친 말이다.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어르신을 ‘신이어’, 함께 일하는 청년 구성원을 ‘준이어’라고 부른다. 준이어들이 관련 그림과 글을 예시로 보여주고 신이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시니어를 ‘신이어’라고 부르니, 어감도 신선하고 별안간 확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新) 해(year)들이니까 나도 ‘신이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준이어’라는 낱말도 그렇고, ‘신이어마켓’이라는 곳이 하는 일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신이어들의 삶은 어쩐지 신바람 나고 활기찰 것만 같다.   ‘신이어마켓’은 2030세대가 기획하고, 시니어가 직접 그리고 포장해 탄생한 제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그동안 다이소, 스킨푸드, 우아한형제들, 한국후지필름, 리얼스마켓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협업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심현보 대표는 “어르신들의 문화와 문체, 경험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저의 최종 꿈은 저희 부모님께도 지속가능한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에요. 젊은 세대의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과 같이 어른 세대의 하루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거든요.”   노인들에게 날씨에 상관없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새로운 일거리를 마주하고 세대 간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 청년과 노년이 어우러져 함께 일하는 곳….   바야흐로 온 세상이 고령자 문제로 골치 아픈 판이라서, 이처럼 신선한 발상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청년과 노년이 함께’라는 정신이 반갑고 고맙다.   최근 한국에서는 20대 젊은이 인구가 70대 노년 인구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노년층은 계속 늘어가는 고령화사회, 다른 말로 하면 늙은 나라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여 죽을 사람을 살려내고,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고 있지만, 노년의 삶을 품위 있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대책 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잘 사는 일인데…. 하긴, 그건 의학의 영역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숙제다.   지난 10월1일 91세의 나이로 자연으로 돌아간 제인 구달 박사의 장수비결은 여러모로 새겨들을만하다. 먼저 활동적인 삶이다. “일하는 한 늙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자연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숲은 최고의 약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목적의식도 중요하다. 구달 박사는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낙관주의다. “희망은 최고의 항노화제다”라는 경험도 나눴다.   백세 시대의 기준으로 치면 91세는 장수 축에도 못 낄지 모르겠지만, 구달 박사는 90세를 넘어서까지 연간 약 300일 이상 여행과 강연을 계속했고, 은퇴하지 않은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희망을 전하는 과학자’라는 분명한 사명감을 평생 유지하고, 절망 속에서도 행동을 통한 희망을 강조하는 낙관주의자의 긍정적인 삶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동안 많이 들어온 지혜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실천해야만 한다, 신이어들의 신바람을 위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year 신바람 일자리로 청년 노년 인구 청년 구성원

2025.10.30. 18:43

썸네일

[문화산책] ‘케데헌’, 우리가 미처 못 본 가치

지난해 이맘때에는 뭐니 뭐니 해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큰 경사였다. 올해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열풍이 단연 으뜸 화제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K-컬쳐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 연이은 통쾌한 홈런인 셈이다.   초기에는, K-컬쳐라고는 하지만 제작자는 한국인이 아니고, 돈은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간다는 식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케데헌은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한국에 안겨주었다. 나라의 격이 높아진 것은 물론, 밀려드는 관광객, 각종 한국 상품의 인기로 인한 수출 증대 등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객이 500만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았는데, 그 배경에는 케데헌의 영향이 컸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문화의 힘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미국에 살면서, 세계무대를 꿈꾸며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신바람나는 자극제일 뿐 아니라, 많은 점을 일깨워준다. 미주 한인, 특히 2세들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케데헌을 탄생시킨 제작자, 작곡가 등 주요 작가들은 해외동포 1.5세, 2세들인데, 이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해석에서부터 한국에서 자라고 배운 기성세대나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부터 그렇다. 케데헌의 작가들은 그동안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하찮게 여기던 사물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가령 도깨비, 무당, 저승사자, 갓, 까치호랑이, 김밥 등등…. 그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 아예 다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케데헌에 참여한 작가들은 밖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못 본 것을 본 것이다. 핏줄로 전해진 한국적인 정서를 알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감각을 익힌 해외동포 예술가들의 눈에는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른바 ‘국뽕’이나 고리타분하고 완고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에 통할 우리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엄청난 자산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것은 내 개인적인 소견인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케데헌의 감독, 작곡가 등 주요 예술가는 여성, 비교적 젊은 여성이다.   물론, 그동안 한류를 주도한 것은 ‘오징어 게임’,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싸이, 방탄소년단 등의 남성이었지만, 예술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펼칠 가능성은 대단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인 2세 중 예술 분야를 전공하는 인재는 아무래도 여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미주 한인 미술계도 여성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감히 내 소견을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본디 예술 창조는 여성에게 맞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 일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은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인류의 삶이 남성 중심의 세상이었고, 여자들이 예술을 창조에 나서는 것을 억지로 막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계도 여성 중심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견을 피력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가령 김지하 시인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모처럼 일어난 K-컬쳐 열풍을 확고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 지원의 원칙은 문화 한류를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으로 파악하지 말고, 예술성이 우선인 작품으로 대접해야 하며, 후원은 하되 참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야 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치 해외동포 예술가들 한국 문화 주요 예술가

2025.10.23. 19:26

썸네일

[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의 웃음과 시 사랑

날이 갈수록 세상이 각박하고 살벌해지니 개그맨 전유성 같은 이가 한층 더 그리워진다. 후배 희극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별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애도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건강한 웃음이 주는 따스한 위로가 간절한 법이다.   전유성은 웃음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평생 노력한, 유머와 지혜와 따스한 마음씨의 장인이었다. 웃음에는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건강과 행복을 키워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힘이 있다는 걸 믿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그의 시(詩)사랑은 주목할만하다. 개그맨 전유성은 책을 많이 읽고, 직접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를 좋아해서, 후배들에게도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고 전한다.   한 후배가 지금 외우고 있는 문장이나 시가 있느냐고 짓궂게 묻자, 전유성은 복효근 시인의 시 〈무덤〉을 소개한다.   ‘더 이상/ 덤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 세상은 덤이라는 뜻’   짧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시다. 이어서 안도현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매미 우는 소리가 달라졌다. 짝이 생겼나 보다.”   또, “나는 시골에 살아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시골이란 ‘시의 골짜기’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했다.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로 읽은 것이다. 참 재치있고 뜻깊은 말이다. 시에서 웃음을 찾는 날카로운 눈길….   시와 웃음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시각은 참 신선하다. 전유성은 시인들이 세상을 보는 개성적 시각과 관점을 소중하게 여기며, 배우고 싶어서 시를 많이 읽는다고 말한다. “생각을 바꾸자”는 그의 철학과 시 정신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거기서 웃음도 나오고, 시도 나온다. 가령,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럼 아프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해서 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어루만져주는 건강한 웃음은 그저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건강한 웃음은 인문학적 소양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 제대로 웃길 수 있다. 그래야 재미와 의미를 아우를 수 있다. 이것이 그저 우스갯소리와 예술을 구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희극의 천재 찰리 채플린이 아주 훌륭한 예다.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위대한 독재자〉 〈골드러쉬〉 같은 작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웃음과 함께 깊고 묵직한 사회풍자가 번뜩인다.     정신없이 웃다 보면 눈물이 나는 장면도 많고, 시처럼 아름다운 표현도 많다. 과연 ‘웃음의 시인’답다. 아마도 전유성이 닮고 싶어 한 것도 이런 경지였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가 한 몸인 작품….   채플린은 말했다. “웃음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라고.   사실, 개그맨 전유성은 무대나 화면에서 빛을 발한 희극인은 아니다. 그 흔한 유행어 하나 없이, 변두리의 어눌한 단역으로만 50여 년을 활동했다. 그럼에도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몸소 솔선수범하고, 후배나 제자를 길러낸 인물로 기억된다.   전유성이 남긴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정관념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시인처럼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라는 권유다.     “고정관념을 깨는 건 별거 아니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은데 못 한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게 고정관념을 깨는 거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묘비에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전유성의 대답은….   “웃지 마, 너도 곧 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 개그맨 전유성 사실 개그맨 후배 희극인들

2025.10.16. 18:49

썸네일

[문화산책]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한글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높아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K-팝, K-컬쳐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외워서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제2 외국어로도 우리 한글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글날 무렵이라서 이런 소식이 한결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세종대왕님께서 기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에도 한국어들이 등재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사전이다.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인쇄 제본형 표준판은 1928년 총 12권 분량의 책에 41만 여개의 어휘, 180만 여개의 인용문이 실린 초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온라인 사전 초판이 처음 나왔으며, 3개월마다 어휘를 새롭게 등재하고 있다.   한국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것은 1976년, 등재된 한국어는 ‘김치(kimchi)’, ‘한글(Hangul)’ 등이었다. 이후 꾸준히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었고, K-컬처의 세계적 인기에 따라 2021년에는 총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되었고, 2024년 12월에는 7개의 한국어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올해는 어떤 낱말이 새롭게 등재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참고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를 살펴보면 분야별로 다양하다. 음식 관계는 갈비, 김밥, 김치, 달고나, 떡볶이, 동치미, 먹방, 반찬, 불고기, 삼겹살, 잡채, 찌개, 치맥 등이 있다. 또 호칭은 누나, 막내, 언니, 오빠, 형도 올라있다. 한류 관계는 K-복합명사, K-드라마, K-팝, 한글, 한류, 한복이다. 한국식 영어도 등재되어 있다. 스킨십, 콩글리시, 파이팅, 피시방 등이다. 생활문화 단어로는 노래방, 당수도, 대박, 만화, 애교, 온돌, 태권도, 트로트, 판소리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세계적인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이 올라가는 일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우리말이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잠깐! 덮어놓고 기뻐하며 우쭐대기 전에 살펴볼 일이 있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한국어는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관한 낱말들, 그러니까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감각적 향락적 낱말들이다. 한국의 얼과 넋이 담긴 곱고 아름다운 한글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무리 세계적 권위의 사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이 그렇게 감격할 일인가도 싶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의 삶은 영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주 당연한 듯 영어를 쓰며 살고 있다. 정치인, 방송인, 지식인, 언론인, 문인 등 가릴 것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영어를 쓴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한다.   국제도시 서울의 번화가 거리에 서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영어 간판투성이다. 아파트 이름도, 상품 이름도 요상한 외래어 범벅이다. 그래야 품위가 있고,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영어가 한국의 공영어가 될 판이라는 염려가 나올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니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에 흥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집안 정리와 청소가 먼저 급하다.   세종대왕님께서 밖을 보고 웃으시다가, 안을 보고는 피눈물을 흘리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옥스퍼드 한국어 옥스퍼드 영어사전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식 영어

2025.10.09. 19:39

썸네일

[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에 비는 소원

올해는 10월6일이 추석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가을(秋) 저녁(夕)이다. 밝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가을 저녁…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와 감사의 계절,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둘러앉아 맛난 음식을 즐기는 행복한 계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추석의 최고 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고향에도 뜨고, 타향땅 이민살이 골목길도 밝게 비춰준다. 타향살이 나그네 젖은 눈에는 보름달이 더 크고 아득해 보인다. 보름달은 바로 고향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태양이 아버지라면, 달님은 어머니다. 그런 마음을 담은 시나 노래가 아프게 가슴을 친다.   “현해탄(태평양) 파도 위에 비친 저 달아, 찢어진 문틈으로 어머님 얼굴에도 비추어 다오” -남일해 노래 〈이국땅〉의 한 구절   예로부터 달님은 신화와 문학예술의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달에 관한 문학작품은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하게 많다. 그만큼 달님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뜻이다.   달님 관련 문학의 예를 들자면, 한국의 고전문학를 비롯해 시조나 동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 등등 세계 문학까지 실로 다양하다.   우리 고전에도 달님을 주제로 한 훌륭한 문학작품이 많다. 바로 떠오르는 것이 〈정읍사〉 〈월인천강지곡〉 같은 작품이다.   〈정읍사(井邑詞)〉는 삼국 시대의 고대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며,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다. 백제 멸망 이후에도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 불려서, 조선 성종 대에 〈악학궤범〉에 기록되었으며, 우리 음악 최고의 경지로 일컬어지는 〈수제천〉의 바탕이 된 가요이기도 하다.   “달님이시여, 높이금 돋으사/ 아아, 멀리금 비치시라/ 어기야 어강도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래다.     정읍에 한 장사하는 사람이 행상을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달(빛)에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기다리는 아내는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한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으신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월인천강’이라는 말은 마치 달님이 천(千)개의 강에 비친 것과 같이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푼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상업적인 달 여행을 눈앞에 둔 과학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은 것이 1969년 7월이었다. 그 후로도 과학은 눈부시게 발달하여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행성 탐사 우주선은 태양계 맨 끝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를 노래하고,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빈다. 우리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동심과 꿈, 희망, 그리움의 달님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이렇게 기도한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이해인 〈달빛 기도〉 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만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달님 관련 유인우주선 아폴로

2025.10.02. 18:49

썸네일

[문화산책] 자꾸만 멀어지는 통일 꿈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며 평화통일을 포기하는 대남 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23년 말 ‘남북이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낸 바 있는데, 이번에 이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외교 공세를 강화한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두 국가”라며,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성을 인정하는 게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론’을 강조했다.   ‘두 국가’라니? 통일의 꿈은 이렇게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건가?   ‘삼팔따라지’의 후손인 나는 통일이라는 낱말을 대하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나라가 반 동강 난지 어느새 75주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로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종전선언도 없는 현실이니 계속 전쟁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새 정부 들어서서, 다각적으로 대화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에 일단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면 맥이 빠진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너무 빠르게,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35%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민 3명 중 1명이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특히, 2030세대는 절반 가까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대 응답자 47.4%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22.4%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통일 불가론도 20대 45.1%, 30대 43.1%로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다. “6.25를 모른척하며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 △남북 간 정치체제 차이 등이었다.   이런 통계수치를 보고 있노라면 울컥 서글퍼진다. 통일이 이렇게 타산적으로 따질 일인가?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 아닌가?   되돌아보면 그동안 우리는 통일을 위해 참으로 많은 시도를 되풀이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문 발표도 여러 차례 있었고,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를 울렸고, 그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과 북의 공연단 상호방문 공연은 상당히 많았고, 올림픽 남북단일팀 참가까지…. 해볼 만한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제부터 새로운 기발한 일을 꾸미려 애쓰기보다 지난날 했던 일들 중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지금 현실에 맞게 다듬어서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너무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일부터 소박하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령,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한 ‘아리랑 변주곡’, 윤이상 선생이 제안했던 남북 합동교향악단의 판문점 공연 같은 것.   나는 개인적으로 신영복 교수의 통일론에 공감한다. 선생께서는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겨레의 뜻과 마음이 하나로 통(通)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나 죽기 전에 통일의 감격을 맛볼 수 있으려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통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정동영 통일부 통일 이후

2025.09.25. 18:26

썸네일

[문화산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임종 과정 20분 동안 평소 가장 좋아하셨던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으며 떠나셨습니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오인동 박사의 유가족이 보내온 글의 한 구절이다.   오 박사는 평소 음악을 좋아해서, LA 필하모닉 이사로 오래 활동했고, 헐리웃보울 가족 지정석을 40년간 가지고 있었다.   ‘신세계’라니 참 의미심장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는 시작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신세계는 그가 생전에 꿈꾸던 통일된 조국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떤 음악을 들을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 아니면 김민기의 〈아침이슬〉…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스코트 니어링(1883~1983)이다. 스코트는 100세 생일에 즈음하여,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스코트의 의연한 자세와 그 과정을 완성으로 승화시킨 헬렌의 사랑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헬렌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며 반쯤 소리 내어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고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 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식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다. 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마감방식이다.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이 몸에 밴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스코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죽음을 아내 헬렌은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음을 느꼈다.”   스코트는 장례식이나 추모식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원해서 죽은 지 2주일째 되는 날,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스코트의 백 번째 생일날 이웃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깃발을 들고 찾아왔는데, 그 깃발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서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준비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노인 인구가 늘면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든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작별하고 싶지만, 집에서 죽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통계에 따르면, 재택 임종은 14%에 불과하고, 노인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미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의료화’를 내세우며, 자연사를 인정하지 않는 의료계 현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나답게 죽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마무리 스코트 니어링 신세계 교향곡 미완성 교향곡

2025.09.18. 18:26

썸네일

[문화산책] 여자도 고도를 기다린다…

꼭 보고 싶은 연극이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 원로배우 신구(87)와 박근형(83) 두 분이 열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 작품이다. 연기경력 60년이 넘는 원로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도 벅찬 감동인데, 게다가 그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현대의 고전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을 무대언어로 살려낸 이 작품은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처음 공연되었을 때에는 일반 대중은 물론 연극 평론가들에게까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혹평에 시달렸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공감대가 넓어졌고, 베케트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는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이 연극은 한국에 유달리 사랑받으며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임영웅 연출 버전은 1969년 초연된 이래 거의 매해 장기공연을 가지면서, 수많은 배우들이 무대를 빛냈다. 이번 공연은 한국판 중 최고령 원로배우들의 열연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꼭 보고 싶었지만, 연극 하나 보겠다고 한국까지 갈 팔자는 못 되는지라, 그저 토막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꾹 참아야 했다.   이 공연을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원로 여배우 박정자(82) 씨가 한국 공연 역사상 첫 여배우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소년 역을 여배우가 맡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무대가 될지 상상만 해도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금녀(禁女)의 작품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극작가 베케트는 이 작품에 여배우가 등장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하고 자주 널리 공연되는 작품인지라, 연출가나 배우들은 자기 나름의 개성을 살리고 다양한 해석을 하고 싶어 하는데, 완고하게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금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막았다.   예를 들어, 베케트는 1988년 네덜란드의 한 극단이 여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공연을 준비하자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베케트가 말한 반대 이유는 “여성은 전립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극중 인물이 종종 소변을 보기 위해 무대를 떠나는 설정에 대해 전립선 문제가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베케트 사후에도 여배우 출연과 관련한 소송이 제기됐다. 물론, 베케트 측이 모든 경우 승소한 것은 아니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극작가 베케트는 생전에 자신의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릴 것을 요구했다.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베케트 에스테이트’는 세계 각국에서 대본 수정, 음악 사용 등 희곡에 없는 시도를 할 때마다 소송 등 제동을 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신구,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앙코르 공연에는 박정자와 소년 역의 여배우는 참가하지 못했다. 저작권 가진 ‘베케트 에스테이트’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요점은 ‘여배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이 작품의 주제가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인데 성별의 차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여자 햄릿이 버젓이 무대에 오르는 세상이다. 박정자는 이렇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베케트 에스테이트가 〈고도를 기다리며〉 앙코르 공연에 여배우 출연을 안 된다고 한 결정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데, 너무 시대착오적 아닌가. 만약 베케트가 지금 살아있더라도 여배우 출연에 대한 과거의 태도를 고수할지 모르겠다.”   나도 베케트 선생님께 묻고 싶다. 고도는 신(神)인가? 전립선이 인간의 실존과 무슨 관계인가? 대답이 참 궁금하다. 특히 전립선의 부조리에 대해서…. 장소현 / 극작가·시인문화산책 여자 고도 여배우 출연 베케트 에스테이트 극작가 베케트

2025.09.11. 18:56

썸네일

[문화산책] 일인칭 대명사에 대한 명상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전에 읽었을 때와 달리 울림이 새롭고 크다. 그런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나이 탓인지 옛날 팔팔하던 시절과는 아주 다른 묵직하고 진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많은 책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내용이 많다. 문득문득 생각나곤 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일인칭 대명사, 즉 ‘나’에 대한 것이다.   헬렌이 버몬트주에 살 때, 어느 날 여러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끊임없이 나오는 일인칭 대명사가 거슬려서, 이런 제안을 한다.   “하루 종일, 아니면 한 시간, 아니 지금 같은 식사 시간만이라도 ‘나’라는 말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요?”   모인 사람들은 재미있는 실험이 될 거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헬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나날의 대화에서 얼마나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지,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은 ‘나’가 있는지 배우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여러분 스스로도 대화 속에서 일인칭을 빼고 말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실험해볼 것을 권한다. 여러분은 벙어리처럼 될 것이다.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내세우고, 나만 옳다고 우겨대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기 짝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이 제안의 울림은 매우 크다. 돌아보면,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저마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닌가? 겸손, 경청, 배려, 양보, 숙이기, 져주기, 양심, 부끄러움… 그런 지극히 당연한 낱말들이 사라져버린 세상.   나는 어떨까? ‘나’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대화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상대방의 주장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나를 꺾을 수 있을까? 그럴 자신 없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대화를 잘하는 방법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고, 토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나를 포기할 수 없다.   영어에서는 주어가 중요하다. 주어가 없는 문장은 없을 정도다. 특히, ‘나’라는 낱말 ‘I’는 언제나 대문자로 쓰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에 비해 우리말은 주어가 없거나 있어도 희미하다. ‘나’라는 주어는 더욱 그렇다. 없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주어를 또박또박 명확하게 쓴 글은 번역투 문장이 되기 쉽다.   우리 말은 참 재미있다. ‘나’라는 글자에서 밖으로 나와있는 점을 슬쩍 안으로 밀어넣으면 ‘너’가 된다. 그러니까, 너와 나의 차이는 점의 방향이라는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죽을 듯이 싸우는 것이 현실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 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이야기….   헬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로서의 자의식이다. 우리는 과연 자기중심(self-centered)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세계에서 어떻게 이 자기 중심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달리 말하면, 내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것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참으로 존중할 줄 알아야 낮출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인칭 대명사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인칭 대명사 일인칭 대명사 헬렌 니어링 양심 부끄러움

2025.09.04. 18:31

썸네일

[문화산책] 한국 젊은 세대들의 일본관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마주 앉아 회담을 하고, ‘공동 언론 발표문’을 내놓았다. 기대했던 공동선언문이 아닌 언론 발표문이다. 한일정상회담 후 합의된 문서 형태로 결과가 발표된 것은 17년 만이라고 한다. 발표문의 골자는 이렇다.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은 일단 반갑고 기대도 되지만, 늘 하던 이야기의 되풀이라는 느낌이다. 반면에 조심스러운 시각도 여전한 것 같다. 과거사 문제나 일본 수산물 수입 완화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아예 빠져 있다. 답답하다.   이에 비해 젊은이들은 많이 다르다. 새 세대가 생각하는 한일관계는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다.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두 나라의 젊은 세대들의 몫이다. 미래지향적 새 질서를 위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실제로,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한일관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는 각종 여론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2030세대 3명 중 2명은 일본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과거사를 비판하는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때로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때로는 원칙주의자로 변신한다. 실용과 원칙을 오가는 두 얼굴, 2030세대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한국의 MZ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일본을 훨씬 더 좋아하는 현상은 통계로 확실하게 나타난다. 반일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일본 언론은 ‘예스 재팬 세대’라고 부른다. 일부 일본 전문가는 한국 MZ세대의 일본 사랑에 기성세대의 낡은 반감이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형편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요즘 일본 젊은 세대는 ‘한국이 일본보다 멋진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혐한(嫌韓) 행위를 ‘뭔가 이상한 아저씨들’의 가치가 없는 짓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한류(韓流)가 20년 넘게 세대를 거쳐 이어지면서 혐한 분위기가 젊은 층에선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 믿는 젊은 세대도 있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멋있는 나라인데 왜 이런 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나?”라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변화다.   현실이 이러하니 한일관계도 과거에만 머물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요하게 주목되는 것은 ‘한국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일본을 좋아해도 역사문제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즐길 건 마음껏 즐기되, 따질 건 또 깐깐하게 따진다. 때로는 기성세대보다 더 엄하다. 위안부나 강제징용으로 고통당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물은 청년세대 특유의 인권 감수성을 자극한다. 역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세대의 건강한 인식이다. 믿음직스럽다.   “기성세대의 일본관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과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이 공존하는 자기분열적 성격을 띠었다면, 2030세대의 일본관에선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본은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다.”-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이런 식이라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고, 광복 100주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한국 한국 mz세대 과거사 문제 공동 언론

2025.08.28. 19:44

썸네일

[문화산책] 건너뛴 근대, 그 빈 자리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함석헌 선생의 이 말씀은 매우 복합적이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방둥이의 나이가 올해 80세다. 달리 말하면, 많은 국민이 일제강점기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 시대의 아픔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나간 한 시대의 기억을 학교에서 배우거나, 글이나 말로 얻은 간접경험이 있을 뿐이다. 젊은 세대는 더 실감이 없다. 교과서로 배운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나 대중문화와 관광여행을 통한 인식이 거의 전부다.   지난 80년간 한일관계는 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출렁거리며 갈등을 겪어왔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세월이 약이다. 하지만,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숙제가 많다. 민족적 정체성과 정신적 자존감에 관한 많은 문제들은 슬그머니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될 문제들이다.   그런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우리 역사에는 자주적 근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근대’라는 낱말의 뜻을 사전은 ‘현대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가까운 과거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하는데, 우리는 여기에다 전통적 왕조별 시대구분을 조합하여 고대(고조선-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일제강점기), 현대(8.15광복 이후)로 구분한다.   근대는 왕조시대와 현대 사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한 나라, 한 사회의 방향과 성격, 철학 등 기본골격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다. 건물로 치면 기초공사요, 한 개인으로 말하면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인격을 형성하는 사춘기 같은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는 근대가 바로 일제 식민지 시대였다. 나라 잃은 서글픈 시절, 아무것도 우리 힘으로 자주적으로 할 수 없는 아픈 세상이었다. 한국 사회 전반의 기초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일본에 의해서 닦여졌고, 현대화의 바탕이 될 서양 문물도 모두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였다. 우리의 뜻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랬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 되고, 내 전공인 미술을 예로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생들이 배워온 서양미술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는 이미 인상파, 후기인상파 미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유학생들도 당연히 그런 미술을 배워서 돌아와 그대로 그렸다. 그러니까, 서양미술의 가장 오래된 철학적 바탕이자 전통인 리얼리즘, 사실주의를 건너뛴 것이다.   학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서양미술을 받아들이면서 리얼리즘을 건너뛴 것은 문화적으로 결함(?)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이란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 미술과 사회현실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현대미술에는 치열한 리얼리즘 전통이 자리 잡을 공간이 거의 없었다. 80년대 초 민중미술이 등장하기까지는 그랬다. ‘구상화’라는 개념이 전부였다.   “문제 제기 차원에서 굳이 말한다면, 한국의 근대미술은 ‘지나치게 예쁘기만 하다’는 것이다. (…)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서경식 교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하고 경영하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근대 시기에 우리가 좀 더 당당하고 의젓하게 주인 노릇을 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근대 자주적 근대 리얼리즘 전통 한국 사회

2025.08.21. 18:28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