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보니,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AI)의 시대로 변해 버렸다. 우리 삶의 각 분야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거부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고 한다. 잔혹한 전쟁의 배후에도 인공지능이 도사리고 있고, 인공지능 예수 아바타나 로봇 부처 등 종교계에도 AI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한다. ‘2달러 내면 예수님과 대화’ 같은 어처구니없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도 걱정되는 모양인데, 마땅한 대책은 아직 없다니 두렵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물론 저마다 다르다. 충실한 조수가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반기는 사람도 있고, 근심 걱정 어린 눈길로 경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찌 되었거나 ‘에이아이’라는 낱말이 ‘옆집 아이’ 이름처럼 일반화되었고, 에이아이를 모르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날카롭다. 가장 현실적 위협은 인간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는 일이다. 이미 많은 일자리가 에이아이에 넘어갔고,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문제로 떠오르는 판이다. 구체적 예를 들면,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로봇 막으면 공장이 사라진다”고 경고하며 맞서고 있다. 앞으로 생산 현장에서 로봇 투입이 본격화하면 노조와 갈등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예술 쪽에서도 갈등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미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되었다. 하나하나 예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인공지능은 예술 각 분야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기사나 보고서, 논문 같은 실용적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순수 문학 작품처럼 창조성과 예술성이 중심인 분야는 에이아이가 대신할 수 없으므로, 걱정 없을 것이라는 말도 다 헛말인 모양이다. 지적재산권 같은 현실적 문제부터 작가의 양심이나 윤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사안이 자꾸 쌓여만 간다. 글로벌 대형 출판사 아셰트가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샤이걸’을 서점에서 거둬들였는데, 이유는 작가가 인공지능으로 소설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대형 출판사가 AI 사용을 이유로 소설 판매를 중단한 최초 사례로 평가된다. 권위 있는 문학 전문지의 신인 작품 공모에서도 ‘AI 사용 또는 표절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하며, 의혹 발생 시 수상을 취소한다’는 규정이 등장했다. 문학 작품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딸깍 도서’ 논란도 뜨겁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한해에 수백, 수천종씩 책을 펴내는 출판 행위를 말하는데, 실제로 한국의 한 출판사는 1년간 9000여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런 ‘딸깍 도서’에 맞서, 국내 한 출판사는 ‘인간 저술 출판물’ 보증제를 도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결국은 작가의 양심과 자존심에 달린 일일 수밖에 없다. 문인들에게 당장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있을 수도 없다. 미술가가 조수를 쓰는 일과는 전혀 다른 쟁점이다. 인공지능을 얼마나 활용했는지를 검사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할 판이다. AI 분야의 석학 므리난크 샤르마라의 선택은 매우 상징적이다. 요즘 미국의 최대 화제 기업 중 하나인 앤트로픽의 AI 안전 책임자였던 그는 최근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영국으로 시를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보낸 샤르마의 퇴사 편지 한 구절은 참 의미심장하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지만, 시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문학작품과 인공지능 인공지능 예수 문학 작품 대형 출판사
2026.04.30. 18:56
책을 읽다가 ‘느낌 공동체’라는 낱말에 밑줄을 그었다. 느낌 공동체! 참 따스하다. 세상의 어떤 사물이나 일이나 생각에 대해서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들의 공동체…. 예술가들이 꿈꾸는 일이다. 나도 젊은 시절 한때 ‘예술 공동체’를 꿈꾼 적이 있었다. 한국의 산골도 좋고, 미국의 한구석도 좋으니 좀 넓은 땅을 마련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자유롭게 창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꿈…. 현실적 능력이 모자라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 꿈속을 헤매는 동안은 행복했다. 고흐도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여러 차례 나온다. 아주 구체적인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고흐가 생각한 예술가 공동체는 내가 꿈꾼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구상이었다. “화가들이 연합해서 자기 그림을 공동체 소유로 하고, 그림 판 돈을 나누어 가지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 공동체가 회원들의 생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인상파 화가들의 공동체 결성은 꼭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물론 이런 공동체가 무작정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공동체가 존속하는 동안은 화가들이 용기를 갖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고흐의 마지막 편지라고 알려진 편지에도 ‘화가 공동체’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매우 간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갱이 함께하기로 하고 아를로 와서 같이 살며 작업하는 동안 잠깐 꿈에 부풀었지만, 곧 갈등이 생기고 다툼 끝에 자기 귀를 자르는 비극적인 소동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혹시 고흐가 생각했던 공동체가 성사되어 성공적으로 굴러갔다면,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예술은 결국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뜻맞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큰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 격려하고 자극하고 위로하면서 마음을 모으면…. 실제로 20세기 초 파리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이나 철학 운동의 배경에는 이런 ‘생각 공동체’들의 결정적 역할이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예술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문학이나 미술의 동인(同人) 모임이 큰 몫을 했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초창기에 꾸려진 예술단체나 동인들에 의해 문화의 기초가 다져졌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장르의 구분 없이 어울리며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단골 술집의 역할도 컸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가 끝나면 당연히 술집으로 몰려가,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일이 하나 만들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공동체의 힘이다. ‘공동체’라는 말부터 정겹다. 생각의 공동체는 어떤가? 꿈의 공동체는? 그런 모임은 꼭 규모가 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크기보다 실속이 중요하니까…. 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도 다양한 ‘느낌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삶이 한결 풍성하고 즐거워지고, 건강한 공동체가 많아지면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취미가 같은 동호인 모임, 수다 모임, 교회 친구 모임 등등 참 많은 동아리가 있다. 생각이나 성향이 비슷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미술전시회도 보고, 음악회나 연극 공연 등을 함께 감상하고,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이야기하고, 가끔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런 모임들이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함께 가는 방향의 화살표를 선명하게 하면 한결 재미있고, 의미도 깊어질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공동체 건강 예술가 공동체 예술 공동체 생각 공동체
2026.04.23. 18:36
미술동네에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라는 것이 있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과 관련 자료를 분류 정리하여 목록화한 자료로, ‘전작 도록’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작품 도판만 모아놓은 화집이 아니라 작품 이름, 제작 연도, 재료, 크기, 소장 및 전시 이력, 참고자료, 작가의 개인사 등을 망라한 책이다. 작가 연구에는 물론, 작품 감정에도 중요하게 활용되는 자료다. 그래서, 미술작품의 위작 시비가 있을 때마다 정확한 감정을 위한 카탈로그 레조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카탈로그 레조네를 가진 한국 작가는 아직 많지 않다. 김기창, 장욱진, 박수근, 이중섭 같은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가 알려진 정도다. 미주 한인 작가의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아트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온라인을 활용한 카탈로그 레조네 활성화 방안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모든 미술사 연구는 자료와 기록에서 출발한다. 남가주 한인 미술계도 이제 제법 역사가 쌓이고 연륜도 깊어졌다. 대표적 단체인 남가주한인미술가협회가 창립된 지도 50년이 훨씬 지났다. 그동안 많은 작가가 수없이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하면서, 미술 자료도 엄청나게 쌓였다. 하지만, 그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는 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후원해 주는 기관이나 단체도 없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 자료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기록해서, 한국미술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후세들에게 전달할지에 대한 고심도 없다. 예를 들어, 남가주 한인 미술의 역사를 정리한 책 한 권도 없고, 제대로 된 논문도 없는 안타까운 형편이다. 미주 한인 예술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작가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역사로 쌓이지 못하고 잊히고 만다. 특히, 미술의 경우 그렇다. 문학 작품은 책으로 남거나 컴퓨터에 보관되고, 음악도 악보로 갈무리될 수 있지만, 미술의 경우는 작품의 크기나 재료와 질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본 실물을 보관해야 한다. 미술 작품의 보존은 작가에게도 남은 가족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이 필요하고 돈도 드는 골치 아픈 일이다. 그래서, 작가가 죽고 나면 작품이나 자료들도 흐지부지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오늘의 미술 자료가 내일의 역사자료(史料)”라는 말이 있는데, 정반대의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현실이 이처럼 안타까우면 작가들이라도 나서서, 현실을 극복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미주 한인 미술가들은 기록, 정리, 보존의 중요성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제대로 된 카탈로그 레조네까지는 엄두를 못 내더라도, 그동안 했던 자기 작품의 명단, 내역, 작가 노트, 작품 사진 등을 꼼꼼하게 잘 보관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일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미술가는 드물다. 대부분의 작가가 이런 일에 대범하고 무관심하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스스로 하기 어려우면, 가족이나 친지 등 주위 사람의 도움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작가는 그림 그리기도 바쁜데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투덜거리지만, 엄격한 자기 관리도 작가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자기 작품을 정성껏 갈무리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고, 자신과 작품이 우리 미술사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 예술세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중요성 작품 미술 작품 작품 감정 문학 작품
2026.04.16. 18:59
‘나는 영화였다’. 한국 영화계의 전설 신상옥 감독이 남긴 회고록의 제목이다. 책 제목대로 신상옥은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였다. 그 전설이 하늘의 별이 된지 어느새 20년이 지났다. 4월11일이 20주기 기일이다. 일생 오로지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할리우드, 또 한국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자체가 영화였다. 올해는 신상옥 감독과 그의 영원한 동지요, 운명적 동반자인 최은희 여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 영화계에서 두 거목의 큰 업적과 지극한 영화 사랑의 발자취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상옥, 최은희 두 분은 미주 한인 사회와도 인연이 깊다.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1986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할리우드에 정착하여, 영화 ‘마유미’ ‘닌자 키드’ 등을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가주 한인 연극인들은 연극 공연을 통해 맺은 두 분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최은희 여사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연극 ‘오, 마미!’가 그 작품이다. ‘극단 서울’이 장소현 극본, 이효영 연출로 윌셔 이벨극장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최은희 여사를 위한 작품으로 주상현, 양진웅, 김영일, 고계영, 김철화, 크리스틴 리, 원수연, 전경숙 등의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1997년 2월 말에 공연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이 작품에서 최은희 여사는 전쟁 통에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며,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할머니를 열연하여 진한 감동을 주었다. 두 분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주인공 최은희 여사는 당시 70세를 넘은 나이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원로 연기자였지만,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로 연습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었다. 신상옥 감독도 줄곧 연습장을 지키며, 격려했다. 두 분의 그런 성숙한 인간미는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고, 관객들을 울렸다. 사람들은 신상옥 감독을 그저 영화에 미쳐 많은 작품을 만들고 감독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의 존재는 매우 크다. 한국 영화산업을 몇 단계 끌어올린 것은 물론,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일찍부터 앞장선 인물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빨간 마후라’ 같은 영화는 대만과 동남아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 최초로 ‘세계 100대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칸영화제 심사위원,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신상옥 감독의 발자취를 다 거론할 수는 없고, 내 개인적 기억에 남아있는 인간적 면모를 되살려본다. 나는 신 감독의 회고록 집필을 거들었고,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했지만 몇 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면서, 비교적 자주 만나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설적 어른의 일을 거들면서, 스스로 시야가 넓어지고 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가 본 신상옥 감독은 우선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집중력도 대단했다. 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상옥, 최은희 두 분은 냉면을 좋아해서 냉면집에 자주 가곤 했다. 식당에서 신 감독은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책을 읽었고, 냉면이 나오면 후루룩 순식간에 마셔버리고는 또 책을 읽었다. 최 여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천천히 씹어 가며 드시라고 말하면, 신 감독은 씹는 시간이 아깝다는 투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냉면에 씹을 게 뭐 있누?” 제발 하늘나라에서는 최 여사 말대로 꼭꼭 씹어 드시기를! 꼭 만들고 싶어 하셨던 영화 ‘칭기즈칸’도 완성하시기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상옥 영화 신상옥 감독 신상옥 최은희 한국 영화계
2026.04.09. 18:31
세계로 무섭게 뻗어가는 K-컬처의 위력,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 개막공연에서 수상곡 ‘골든’과 함께 공연된 한국무용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많이 반성하고 깨우쳤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참 골치 아픈 숙제다. 창작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고전적 주장부터 “한국적인 것은 없다”는 과격한 선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견이 있고, 어느 것이 옳은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 많은 주장 중 나는 개인적으로 문화평론가 정덕현씨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간추리면 이렇다. “K-컬처는 이미 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글로벌 컬처가 되었다. 동서양이 결합하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콘텐트의 퓨전이다.” 그러니 더 이상 국위선양을 내세우거나, 한국적 전통의 원형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 전통 보존과 현대화는 별개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전통의 원형 지키기를 고집하는 ‘꼴통보수’였는데, 생각을 바꾸어 글로벌 컬처라는 시각으로 보니, 그동안 고민하던 많은 문제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깨우침은 번개처럼 불쑥 오는 모양이다. 여기에다, 문화 예술은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生物)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수많은 도전과 시도 중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것들만 살아남아 대표작이자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러니, 세월이 오래된 것일수록 원형에 가깝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예술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것 중에도 생년월일이 분명한 작품이 꽤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대표적 한국민요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에 개봉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었고, 한국 전통무용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부채춤은 춤꾼 김백봉이 1954년 처음 발표한 창작품이고, 한국의 대표적 전통 무대 음악인 사물(四物)놀이는 1978년 2월 22일, 서울의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을 위해, 김덕수와 꽹과리 연주자 김용배가 제안하고 민속학자 겸 민속극 전승자인 심우성과 공연기획자 강준혁이 이름 지어 부른 것이 시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작품이 태어날 것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70년대 초 한국에서 극작가로 활동할 때 주로 한 일은 탈춤이나 판소리 같은 전통연희의 틀과 정서를 빌려와 오늘의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었다. 이른바 전통의 현대화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낑낑대던 가장 큰 어려움은 전통의 예술적 원형과 정신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계승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어떻게 전통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조화롭게 현대화할 것인가라는 숙제였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런 숙제에서 벗어나 변화의 물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영화인 나운규는 한류와 K-컬처를 일찌감치 내다본 선각자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아리랑’의 가사는 나운규가 지은 것이다. 그는 10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 사람이 다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성을 잘 붙잡아, 조선의 산하와 정조를 기조로 만들어낸다면 세계 시장 진출에 어렵지 않을 줄 알아요.”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컬처 글로벌 글로벌 컬처 대표적 전통문화예술 한국 전통무용
2026.04.02. 20:20
한국에서는 요 몇 년 사이 트로트가 대단한 인기인 모양이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붙인 불씨가 뜻밖의 큰 인기를 끌며 들불처럼 번져나가 대세가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옛날 노래가 벌떡 일어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부활했고, 송가인, 임영웅 같은 젊은 수퍼스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 양국에서 방영되고, 일본말 노래가 버젓이 전파를 타는 모습을 대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가수들이 복고풍의 흘러간 옛 노래를 청승맞고 간드러지게 불러제끼는 모습이 영 낯설기도 하고, 달리 보면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다. 옛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왜 지금 느닷없이 트로트 열풍일까?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다양한 설명을 내놓는다. 한국인의 정서 밑바탕에는 늘 울고 싶은 마음이 진하게 깔려 있는데, 요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답답하다 보니, 한(恨)과 정(情)이 듬뿍한 트로트 가락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음악에다 우리 정서를 덧입힌 K-팝이나 요란한 댄스 음악 일변도에 대한 반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트로트는 가장 뿌리 깊은 우리의 대중가요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뽕짝이니 왜색(倭色)가요니 신파조니 하는 푸대접을 받아왔다. 한국 대중가요 대표곡 중의 하나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왜색가요라는 이유로 약 20년간이나 방송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그런 박해(?)에도 잡초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트로트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한때는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演歌)를 비교하며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대체적인 결론은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를 흉내 낸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것이 왜색가요를 금지곡으로 묶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일본 ‘엔카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유소년기에 한국에서 살았고, 그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나는 조선인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 이후 작곡을 하게 되었을 때 조선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나의 작곡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가 마사오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편곡하여, 당시 조선 최고의 가수 채규엽과 일본 최고 여가수 아와야 노리꼬에게 듀엣으로 부르게 하여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국적 정서가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했다. 아무튼, 트로트와 엔카 중 누가 원류냐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인터넷 사전의 설명이 정확한 것 같다. “트로트와 엔카는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장르로,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원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 두 장르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복잡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어, 단순한 원조 논쟁보다는 역사적 교류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트로트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난날의 아픈 경험, 서글픈 정서를 왜 되살려야 하는 건지? 내가 보기에는, 젊은 가수들이 철삿줄로 꽁꽁 묶인 채로 맨발로 절며 절며 울고 넘던 그 고개, 눈보라가 흩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같은 옛 노래 가사에 담긴 아픔을 느끼며 노래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트로트’가 아닐까? 새로 작곡된 오늘의 이야기와 정서, 희망찬 미래의 설계를 담은 흥겨운 트로트 명곡….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트로트 뽕짝 트로트 뽕짝 트로트 명곡 트로트 가락
2026.03.26. 19:16
예술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상식이다. 미술치료나 음악치료처럼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을 생활과 별개의 특수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이란 그저 고상한 취미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예술 감상이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면서, 예술과 건강의 결합은 감성적 주장을 넘어, 사회 제도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처방’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실제로,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역할을 전시를 넘어 치료, 예방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술관 나들이가 병원 처방이 되기도 한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에서는 환자에게 전시회 관람이나 예술활동을 ‘약 대신’ 권하고 있다. 2024년 영국 정부 보고서는 문화활동 참여로 우울증 환자가 약 12만7000명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과학이 밝혀낸 최근의 자료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미술작품 감상과 건강 효과 미술관에서 마네, 반 고흐, 폴 고갱 등과 같은 거장들의 원본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스트레스 완화는 물론 면역체계를 강화에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 이러한 효과는 예술작품이 진품일 경우에 컸다. 예술 감상이 신체의 회복력과 면역 균형을 돕는 생리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몰입감이 자율신경과 면역계를 동시에 자극해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염증 반응을 줄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18~40세 참가자 5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1그룹은 런던 코톨드미술관에서 원본 작품을, 2그룹은 복제품을 각각 20분간 보게 하면서 심박수와 피부 온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원본 작품을 관람한 그룹에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2% 감소했는데 이는 복제품을 본 그룹(8% 감소)의 거의 3배에 육박했다. 만성질환과 더불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도 원본 그룹에선 28~30% 감소했지만 복제품 그룹에선 변화가 없었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지표는 심장병, 당뇨병부터 불안, 우울증에 이르는 광범위한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음악 매일 들으면 치매 위험 감소 호주 모나시대학교가 치매 진단 이력이 없는 70세 이상 노인 1만 800명을 대상으로 음악 감상이나 연주가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결과,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전혀 듣지 않거나, 거의 듣지 않거나, 가끔 듣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3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기 연주도 35%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예술작품 감상이 건강에 좋은 이유 예술작품이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장 건강을 지키며, 심지어 뇌 속 ‘행복 호르몬’까지 자극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완화,사회성과 회복탄력성 강화, 면역력 강화와 혈압 안정,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출 등이다. 운동하면 성인병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기분을 밝게 해주는 세로토닌 수치가 향상되듯, 20분간의 낙서나 노래만으로도 정신신체 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미술관 방문이나 음악회 참석은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얻는 가장 아름다운 투자일 수 있다. 그러니 “예술이 밥 먹여주냐?”는 식의 말씀은 제발 좀 그만하시고, 출발합시다!! 좋은 그림 만나러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출발!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 감상 예술과 건강 원본 예술작품 예술 감상
2026.03.19. 19:40
한국의 가수 김수철과 배우 박신양의 미술작품 개인전 기사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든다. 우선은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이 기존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과 긍정적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실제 작품과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영상이나 기사 이미지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두 사람의 작품세계나 미술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만만치 않다. 그저 ‘아트테이너’라고 넘기기엔 여러모로 살펴볼 점이 많다. ‘아트테이너’란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그림 그리는 연예인을 말한다. 조영남, 하정우, 솔비, 최백호, 임하룡… 밥 딜란, 폴 매카트니, 앤소니 홉킨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예다. 김수철과 박신양은 기존의 아트테이너들에 비해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음악 천재로 알려진 가수 겸 작곡가 김수철의 첫 개인전 ‘소리그림’은 소리를 붓 터치와 색채로 시각화한 대작 및 소품 100여 점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넓은 전시실에 펼쳐 놓았는데, 그 자유분방하고 힘찬 표현이 상당한 수준이다. 30년 넘게 남들 모르게 작업해 온 1000점 이상의 그림 중 엄선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30년, 1000점 이상의 작품! 미술가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 같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얼마 전에는 국악기와 서양악기 합동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스스로 지휘하며 노래도 부르는 파격적 음악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더니, 이번엔 그림이다. 그러니까, 서양음악과 우리 음악을 하나로 아우르는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그림과도 하나로 융합하는 노력인 셈이다. 그동안 그가 발표했던 많은 음악 작업의 바탕에 그림이 깔렸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음악과 그림, 시는 본디 하나다.” 한편, 박신양의 개인전 ‘제4의 벽’은 한층 대담하고 실험적인 도전이다. ‘전시쑈’ ‘한국 최초 연극적 전시’라는 설명으로 알 수 있듯, 오랜 세월 배우로서 축적해온 ‘표현’의 경험을 회화로 확장하고, 전시와 연극의 경계를 지혜롭게 허무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된다. 박신양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 2 전관 전시장을 화가의 가상 작업실로 구성하고, 작업실의 사물들이 ‘정령’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 아래, 15명의 배우가 등장해 회화와 연극이 교차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관람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초대된 존재로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대형 작품 200점 규모의 대형 전시,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 화가 자신이 무대감독, 미술감독, 연출자가 되어, 박신양 작가만의 정서와 방식으로 풀어낸 특별한 공간에서 작가와 관람객들의 예술적 소통이 펼쳐진다!”는 설명만으로도 기대가 커진다. 멋있다. 배우 박신양이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촬영 중 허리를 여러 차례 다쳐 수술을 받았고, 이후 갑상선 이상까지 겹치면서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시간이 10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긴 투병생활 중 ‘그리움’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주었다. 러시아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몹시 그리웠고, 그 감정을 붙잡기 위해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붓을 잡아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첫 그림을 완성한 뒤 그림 작업은 곧 삶의 중심이 됐다. 결국, 박신양은 그림을 통해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림은 그리움이다. 박신양은 얘기를 찾고 싶고, 찾은 얘기를 조금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림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도 고수하고 있다. 음악인 김수철, 연기자 박신양 같은 ‘아트테이너’ 작가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모든 예술은 장르의 장벽을 넘어 하나로 통할 수 있다는 것, 기존의 틀에 갇혀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것….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김수철 박신양 배우 박신양 박신양 작가 가수 김수철
2026.03.12. 20:22
매해 3월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이다. 1975년 UN이 국제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한국에서도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매년 성평등 사회를 위한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인터넷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이날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성취를 기리고 성평등, 여성 인권, 노동권 향상을 촉구하는 날로, 전 세계적으로 기념식, 행진, 토론회 등이 열리며, 여성의 성취를 축하하고, 성평등 사회를 향한 목소리와 함께,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직장 내 차별 없는 노동 환경 조성,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등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세계 남성의 날도 있는가? 있다! 11월 19일이다. 남성과 남자아이들의 건강에 집중하고, 여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며,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주목하는 날로, 영국을 포함해 약 60개국에서 이날을 기념한다고 한다. 참 별 날이 다 있네! 유엔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라고 한다. 아, 이건 명백한 남녀차별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여성의 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참으로 부끄럽게도, 긴 세월 여성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유교,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가부장제도가 지독하게 완고했다. 그 바람에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하층 인간으로 취급하는 야만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야만성에 반대하는 깨어있는 지성인도 있었다.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가까운 예를 들면, 장일순 선생 같은 분이다. “이 땅의 여자들은 이제까지 주고만 갔네, 그러나 그것은 온 세계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난초 그림에 쓰인 글귀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기만 하고 간 여성들 덕에 세상이 자유로워지리라는 깊은 뜻의 말씀이다. “어머니는 끝이 없네”라는 붓글씨도 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母心是海(모심시해)’, 즉 ‘어머니 마음은 바다’라는 붓글씨도 깊고 정겹다. 이런 여성 존중은 동학에서 배운 것으로 김지하 시인에게 이어졌다. 장일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부인 이인숙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장일순 선생이 아이들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여느 집과는 다른 바가 있었다고 한다. 가령 부인에게 늘 존댓말을 썼다. 부인이 바깥나들이를 다녀오면 “그래 바깥에서 하신 일은 잘되었어요?”하며 깍듯이 공대하는 말씨로 물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리 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저 양반이야. 나는 건달이고 하숙생이지. 나는 원래 허튼 구멍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내가 일침을 가하듯 딱딱 일러준다네. 뭐냐 하면 그런 점에서 아내는 선생님이시지.” 장일순 선생은 거의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 많은 일을 해내고 이루었지만, 돈벌이는 하지 않았다. 정부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요시찰인물이었기 때문에 취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세운 대성학교 교장과 이사장을 잠시 맡은 것 이외에는 어떤 직함도 가져본 적이 없다. 부인 이인숙 여사는 경기여고와 서울대학 사범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남편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며, 평생 든든한 울타리 노릇을 묵묵히 감당했다. 그 덕에 장일순이 큰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말은 쉽지만 참 눈물 나는 이야기다. 각설하고, 여성의 날이 따로 필요 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실제로 지금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을 넘어서는 ‘여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성 상위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문득 엉뚱한 걱정이 든다. 혹시, 인공지능의 본질은 여성이 아닐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세계여성 성평등 여성 세월 여성 장일순 선생
2026.03.05. 20:13
“꼰대는 입이 열려있고, 어른은 귀가 열려있다”는 명언이 있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꼰대 냄새’다. 걸핏하면 ‘라떼’ 운운하면서 가르치려 들고, 쓰잘데없는 설교 늘어놓고, 횡설수설 동어반복 중언부언 중얼중얼…. 그런 몹쓸 버릇이 생기지 않도록, 나이 먹을수록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간단명료하고 쉽게 쓰고 싶다. 소설가 김훈 씨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의 하나로 ‘수다를 떨지 말자’를 꼽는데, 백번 공감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실은 글보다 말이 더 심각하다. 온 세상이 말로 시끄럽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이다. 흉기가 되기 쉽다. 그래서 동서고금 말에 대한 말이 넘쳐흐른다. 말에 대한 주옥같은 명언도 많고, 속담도 많다. 그런 말씀들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 애쓰는 가르침 몇 가지를 적어본다. 여러분들도 각자 가슴에 있는 명언을 되새겨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실지?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탈무드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장자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한 연후에 말하라. ▶말하는 걸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는 60년이 걸렸다.-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베를린 시청의 문구 ▶내뱉는 말은 상대방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있다.-롱펠로우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이다.-미드라쉬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이다.-소포클레스 ▶남에게, 또 남의 일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필딩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엄 있는 말로도 설득하지 못한다.-안톤 체호프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거슬린 말이 자기에게 돌아온다.-대학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 많아졌는데, 실은 그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요즘처럼 온갖 말 같지 않은 말, 독살스러운 말, 시뻘건 거짓말로 더러워진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자니 차라리 베토벤의 불행이 부러울 지경이다. 묵언 수행이라도 하고 싶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공부 많이 하고 높으신 분들의 유식하고 현란한 미사여구보다 시골 장바닥 보통사람들의 투박한 한 마디가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치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월간 〈전라도 닷컴〉에 실린 시골 할매의 말씀 한마디, 명언이다! 내 친구는 이 말씀을 크게 써서 유명 대학교 정문 앞에 붙여 놓자고 말한다.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하지 마라.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 헌다, 사람 공부를 해야 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놈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놈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상대방 가슴속 아가 공부 말씀 한마디
2026.02.26. 19:59
사노라면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속으로 흥얼거린다. 그러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편안해진다. 들끓던 마음도 잔잔해지고, 혈압도 내려간다. 그러니까, 내게는 동요 흥얼거리기가 마음 다스리기의 한 방법인 셈이다. 어렸을 때 익힌 노래는 그렇게 평생을 간다. 동요 ‘고향의 봄’도 내가 자주 웅얼거리는 노래 중의 하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삼팔따라지의 자식으로, 마땅한 고향이 없는 내게 이 노래의 장면은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유달리 강하게 각인된 모양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노래에 묘사된 집이 내 대학시절 스승님의 생가(生家)라고 한다. 그래서 내게는 한층 더 특별한 노래가 되었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이 좀 먹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국민동요쯤으로 인정받던 명곡이다. 일제강점기, 만주나 연해주 등을 떠돌던 동포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타향살이에서 부르면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해져 온다. 이원수(1911~19881) 작사, 홍난파(1897~1941) 작곡의 이 노래는 1926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100주년이 되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이 노래의 무대인 경남 창원시가 ‘고향의 봄 창작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축제처럼 다양한 문화행사를 계획한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국민동요의 무대이니 자랑할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애국적(?)인 시민단체들이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유는? 작사가, 작곡가가 친일파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원수와 홍난파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친일행적이 있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창원시는 “작가의 친일 행적을 기리려는 것이 아니다. 서정동요 ‘고향의 봄’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자원으로 확산시키고, 문화도시 창원의 정체성을 세계로 알릴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기념사업 반대 시민대책위’를 결성해 활동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친일파의 작품과 관련해 행사를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며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마음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며 답답해진다. 아니,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친일파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려왔단 말인가? 그런데, 도대체 이 노래의 어디에서 친일 냄새가 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롭고 나쁜 노래라면 애당초 금지했어야지, 왜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 평생 가슴에 박히게 했는가? 대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 논쟁은 고약한 구석이 참 많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인가를 판단할 기준도 애매하고, 한때의 잘못을 이유로 한 예술가가 이룬 평생의 업적을 단죄하고 지워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단죄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마땅치 않다. 애당초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친일파, 공산주의자, 미투 가해자는 치명적인 죄인이다. 일단 걸리면 끝장이다. 그 무자비한 칼날에 참 많은 문화예술계의 인재들이 날아갔다. 광복 80주년이 지났지만, 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결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부터는 무슨 노래로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동요 친일파 논쟁 친일파 공산주의자 동요 흥얼거리기
2026.02.19. 20:12
‘방탄소년단’ 덕분에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새 출발의 상징으로 〈아리랑〉을 앞세워 정체성을 강조한 것은 참 고맙고 현명한 선택이다. 이제 세계 젊은이들이 뜨거운 열기로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면 벌써 설레고 두근거린다. 한편, 올해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영화 초창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걸작으로 평가되는 〈아리랑〉은 1926년 10월1일 단성사에서 개봉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제강점기 억압받던 백성들의 민족정기를 불러일으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나운규는 이 영화의 감독, 주연배우, 제작, 각본을 담당했고, 주제가 〈아리랑〉의 가사도 지었다. 본조(本調)아리랑 또는 경기 아리랑으로 알려진 전통민요에다 나운규 감독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새로 창작한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이 노래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대표 아리랑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정서와 한과 기쁨, 그리움 등을 강하게 담은 민요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민족의 영혼이다. 아리랑에 미쳐서 평생 아리랑을 연구한 김연갑씨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리랑은 통곡이다. 피다, 분노다. 아리랑은 깃발이다, 이정표다. 아리랑은 한없는 그리움이다. 아리랑은 이 땅에 있는 것 중 거의 유일하게 국산이다. 아리랑은 이 땅의 소리다, 아리랑은 참말이다. 아리랑은 바로 민족의 힘이다.”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약 60여 종, 3600여 수의 아리랑이 전해지고 있으며, 소련이나 일본, 만주 등 우리 겨레가 사는 곳 어디에나 아리랑이 있어, 재외동포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아리랑이 전해오고 있는데, 정작 ‘아리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20여 가지의 다양한 학설이 있을 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으로 지역마다 특색 있는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리랑은 단순히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되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현재진행형’ 문화유산이다. 조용필의 〈강원도 아리랑〉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클래식에서도 지난 2008년 2월,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가 역사적인 평양 공연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아리랑 환상곡〉은 지금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난다. 아리랑이야말로 남과 북을 묶을 수 있는 우리 노래라는 이야기다. 북한의 최성환이 편곡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더러 공연된다. 아리랑은 노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민족 정서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김산의 〈아리랑〉,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LA 한인사회에서 공연된 4·29 폭동을 주제로 한 연극 〈민들레 아리랑〉 등등…. 아리랑은 우리 겨레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민들레처럼 피어난다. 그렇다면, 이 미국 땅에서도 나성 아리랑, 뉴욕 아리랑, 재미교포 아리랑 같은 아리랑이 나올 법하지 않은가….그런데, 아쉽게도 전해지는 것은 〈상항 아리랑〉 한가지뿐이다. 상항(桑港)은 샌프란시스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뽕 따러 가려거든 산으로나 갈 것이지/ 수만 리 갯가로 와 봉변을 당하나’ 아리랑 이야기를 하는 김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리랑을 소개하고 싶다. 〈삼팔선 아리랑〉이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 세 쪽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 한 덩어리 된다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아리랑 세계 강원도 정선아리랑 민들레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2026.02.12. 18:34
맑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훌륭한 사람이 참 많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언제든지 고개를 숙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고개 숙일 사람이 너무 많다. 물론 신문이나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지만, 이런 멋진 사람들 덕에 세상이 그나마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고맙다. 최근에 내가 감탄한 사람은 예술가 김창훈이다. 그룹 '산울림' 삼형제의 둘째인 그는 지극한 시 사랑을 실천하여 관심을 모은다. 1000편의 시에 1000개의 곡을 붙인 ‘시노래’ 창작자로 다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작곡에 대한 꿈틀거림을 토해내야 하는데 글감이 필요하잖아요. 그때 만난 게 ‘시’였어요. 아름다운 시에 내가 만든 곡을 붙여보자. 곡이 완성되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연습한 다음 촬영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렸어요. 그렇게 1000곡의 시노래가 쌓였어요.” ‘내 정체성’을 찾으려는 절박함이 시를 찾게 했다는 이야기다. 5년 전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읽고 난 뒤 매일 한글 시 하나에 음악을 붙여 만든 ‘시노래’ 작업의 마지막 1000번째 시는 2022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의 〈정말 그럴 때가〉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생애 첫 단독 공연을 열고, 에세이집도 내고, 직접 그린 추상화로 전시회도 열어…. 그야말로 ‘종합 예술인’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전국에 있는 문학관을 찾아 공연하는 ‘노마드 시노래 투어’를 통해 시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시와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예술 세계를 만들어왔다. 시를 가사로 사용하거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 작품은 대중음악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음악들은 시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음악의 선율이 결합하여 독특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데 김창훈의 시노래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시인 한 사람 당 시 한 편만 골라서 노래로 만든 것. 더 많은 시인의 시를 만나는 게 목표였고, 세상에 시를 선물한 시인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둘째는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시 그대로 작곡한 것. 시인이 그렇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그는 한국 현대시의 태동기로부터 일제강점기 민족시인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등과 이상, 백석 같은 천재 시인을 비롯해 기형도, 나태주, 도종환, 신달자, 장석주, 정호승, 허수경 등의 시에 곡을 붙였다. 요새 인기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도 노래했다. 그러니까, 시인 1000명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는 이야기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실은 김창훈 자신이 '산울림'의 명곡 ‘나 어떡해’ ‘회상’ ‘산할아버지’ ‘독백’ 등의 가사를 지은 시인이다. 그러니 얼마나 세심하게 읽고 골랐을까? “시는 온전히 암송할 수 있어야 진짜 내 것이 돼요. 그냥 시를 한 번 읽는 것은 진열장에 있는 보석을 쓱 보고 지나치는 것과 같아요. 시를 외워서 소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는 말한다. 시는 글로 된 보석, 마음을 아름답고 부유하게 만드는 진짜 보석임을 알게 되었고, 세상에 진짜 보석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제 마음들을 솔직히 담은 ‘시노래’가 한줄기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그대가 겪는 슬픔과 아픔은 누구나 가진 것이라고.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말이죠.”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보석 보석 마음 노마드 시노래 진짜 보석
2026.02.05. 18:33
K-컬처의 기세가 무섭다. ‘케데헌’이 기대했던 대로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그래미상과 아카데미상도 기대할 만하다는 전망이다. 방탄소년단의 활동 재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리랑’을 대표곡으로 내세운 것이 뜻깊다. 이처럼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K-아트의 인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선구자, 개척자의 땀과 눈물 덕에 지금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그 선구자, 개척자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단연 백남준(1932-2006)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20세기를 대표한 세계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평가받는 백남준…. 그 백남준이 올해 20주기를 맞았다. 1월29일이 20주기 기일이었다. 한국에서는 2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26년 한 해, “그의 평화와 실험의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며 온 세계와 공유하고 더 많은 대화와 연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우선, 1960년대 중반 나왔던 백남준의 로봇 조형물 ‘K-456’을 복원해 과거처럼 구동시켜, 로봇 오페라를 공연하는 기념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이어서,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 작가들의 기획전, 백남준 미술사 심포지엄, 관련 퍼포먼스, 작업을 망라한 백남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고인의 행성 우주 작업을 결산하는 기념 전시 등의 행사가 일 년 내내 열릴 예정이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국사회에 제대로 소개하고 조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어령 교수였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고, 벽을 허물고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평생에 걸쳐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이어령은 백남준 예술의 바탕에 깔린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읽어냈고, 천재가 창조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한국의 문화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령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한국의 혼’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등 한국적 미학과 철학을 담아낸 그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주력해,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답하듯 백남준은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등의 혁신적 작품을 내놓았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설치하여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한국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지금 백남준을 다시 소환하는 까닭은 K-컬처의 바람직한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그가 겪어온 길을 살펴보면 앞날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사유는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기술, 삶의 윤리 속에서 공명하는 ‘진행형’입니다. 전쟁과 분열, 기후위기와 불신이 겹쳐지는 오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의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백남준은 연결을 통해 적대의 언어를 넘어서는 길을 보여주었고, 기술을 단절이 아니라 공존의 회로로 상상했습니다.”-〈백남준아트센터〉의 새해 인사 한 구절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철학을 깊이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그의 육성을 새겨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그는 참 많은 명언을 남겼다. “한마디로 전위예술은 신화를 파는 예술이다.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 목적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다.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世紀)적인 예술가입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선구자 백남준 백남준 미디어아트 백남준 예술 기획전 백남준
2026.01.29. 18:40
쇠귀(牛耳) 신영복(1941-2016) 선생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직접 모시고 배운 것은 아니고 책을 통해 얻은 가르침들이지만,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즐겁게 공부했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넘나드는 그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가르침들은 은근하게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향기롭게 농익은 삶의 지혜들….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맞으며 선생의 책들을 찾아 다시 읽었다. 첫 책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린 〈담론〉까지. 전에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스승’ ‘평화와 공존의 참 의미 전달한 지식인’ 등의 칭송을 새삼 실감했다. 선생의 책들은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참 선비의 글이다. 선생께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들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가슴에서 발까지 가는 여행”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신영복 사상의 핵심은 쇠귀체, 민중체 등으로 불리는 붓글씨 작품에 잘 요약되어 있다. 처음처럼, 손잡고 더불어,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누구나 꽃, 더불어 숲,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등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가진 말씀들…. 신영복 선생의 많은 가르침 중 내가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새긴 것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 아름다움(美)에 대한 해석, 변방에 대한 애정 등이다. 선생께서는 통일(統一)보다 먼저 통일(通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자의 화동(和同) 담론을 한반도 통일론에 적용한 말씀이다.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 억지로 하나가 되기보다 통일(通一)에서 통일(統一)로 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술 이론을 공부하는 나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신영복 선생의 해석은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었다. 美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양(羊)이 크다(大)는 말이 된다. 양을 중요한 양식으로 삼는 유목민들에게 양이 큰 것은 곧 아름다움이라는 설명이다. 삶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아주 적확하게 일러주는 말씀이며, 삶과 동떨어져 혼자 우쭐대는 예술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변방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의 변방을 찾아다니고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문명은 늘 버려진 땅 변방에서 일어나 꽃 피웠다는 성찰이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이지만, 변방은 늘 새롭게 열릴 가능성으로 가득한 역동의 땅이라는 가르침이다. 디아스포라의 가능성과 저력에 주목하는 가르침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모든 것이 K자를 달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신영복 선생의 변방 사랑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이 말씀은 제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 한 귀퉁이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해외동포인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준다. 미국의 한인사회는 그동안 변두리 변방으로 푸대접받아 왔지만, 실은 세계무대를 향한 가장 앞자리에 있는 ‘전진기지’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자각과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때다. 그 큰 책무를 제대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지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르침 스승 한반도 통일론 신영복 선생 정치적 통일
2026.01.22. 19:19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호일까?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에 걸친 짧은 기간에 여러 명의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갔다. 이순재, 김지미, 안성기, 윤석화…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중문화의 주역들이다. 여기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윤일봉, 남포동, 한명숙, 송대관, 이상용, 전유성, 변웅전, 송도순 등의 유명 연예인을 더하면 정말 한 시대가 저문다는 실감이 강해진다. 세계적으로도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성격배우 진 해크먼, 개고기 식용 반대에 앞장선 프랑스 배우 브리지드 바르도, 철학적 예술영화를 만든 마지막 거장 헝가리의 영화감독 벨라 타르 등 큰 별이 졌다. 대중문화의 주인공들이 중요하게 평가되며 대접받는 것은 그들이 한 시대를 기록했고, 대중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가령 누가 주연으로 나오는 무슨 영화를 언제 어디서 누구랑 같이 봤는데, 그 당시 사회상은 이러저러했다는 식이다. 연애 시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을 때 본 영화나 연극, 음악 등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나간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것이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가신 이들의 빈 자리가 한층 더 커보이는 것이다. 가신 이들의 빈 자리를 누가 어떤 식으로 채울까? 세월이 흐르면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순재의 빈자리를 신구, 박근형 등이 채울 수 있고, 무섭게 떠오르는 젊은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의 혁신적 변화를 보면, 단순히 사람이 바뀌는 것으로 그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양상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람과 기계의 싸움에서 인간이 기계에 밀려 점점 왜소하고 초라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큰 인물이 나오기가 어려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문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공감을 통한 감동, 즉 진한 사람 이야기, 사람 냄새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스크린을 보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느낌을 갖는 일체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경험의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계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동이 점점 사라져간다. 지금의 추세로는 머지않은 앞날에 영화도 기계가 만들어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열정과 땀으로 빚어내는 영혼의 작업이 아니라, 차가운 기계가 명령대로 찍어내는 영화의 시대… 실제로 할리우드에는 이미 인공지능 배우가 등장했고, 여러 분야에서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게다가 대중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고, 안방에 편안하게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기로 영화를 감상한다. 그리고, 오늘의 대중은 끈적이는 인간적 감동보다 산뜻한 재미와 자극적 쾌락을 추구한다. 집단적 일체감이나 공동체 의식 따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라지고 ‘나들’의 세상로 변해가고 있다. ‘나들’이란 나의 복수다. ‘우리’와는 달리 각 개인의 자아가 살아있는 집단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관계보다 독립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개념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뭉클한 감동이 생기기 어렵고, 대중문화도 그런 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삭막하다. 아무리 편리한 것이 좋다지만, 사람냄새 물씬한 감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가신 이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철학적 예술영화 영화감독 벨라 레드포드 성격배우
2026.01.15. 19:24
나이가 좀 든 이들은 월간잡지 '샘터'를 기억할 것이다. 작고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뜻밖에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알차게 실려 있던 잡지, 맑고 시원한 물 찰랑거리는 샘터 같은 책…. 개인적인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그 월간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창간 56년 만이다. 무기한 휴간에 대해 김성구 발행인은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고, 힘을 길러서 맑은 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독서 인구의 감소, 인쇄 매체의 전반적 쇠퇴로 영상 콘텐츠가 활자 미디어를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못 이겨 일단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가 저물고, 종이책의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위기를 실감하며 마음이 짠하다. 출판 잡지계 전체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월간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1970년 4월 창간된 한국 최장수 교양지다. 창간발행인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스타 필자’들의 맛깔나는 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쓴 진솔한 글들이 어우러져 공감대를 이루며 큰 사랑을 받아, 디지털 시대 전인 1990년대 초까지는 월 50만 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 교수,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 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이 지면을 빛냈다. 소설가 한강, 정호승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샘터의 맑은 물을 마시며 성장했다. 최인호는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을 34년간, 법정 스님은 수행 중의 사색을 기록한 〈산방한담〉을 16년간 연재했다. 장욱진, 천경자, 이종상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표지 그림과 삽화로도 유명하다. 샘터가 월간지로 사랑받아 온 비결의 핵심은 독자들의 사람 냄새 물씬한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만1000여 개에 이르는 독자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서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고 한다.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깊은 공감과 감동, 웃음을 자아내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을 위로했다. 휴간호인 2026년 1월호의 표지는 창간호와 같은 반 고흐의 그림 ‘장미와 해바라기’로 꾸며졌고, 특집도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젊음을 아끼자’를 주제로, 창간호에 기고했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오랜 단골 필자였던 이해인 수녀,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던 정호승 시인 등의 글이 실렸다. 창간호와 같은 표지그림과 특집을 실은 의미를 더듬어 보게 된다. 월간 샘터는 지난 2019년에도 그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 방침을 발표했으나, 당시 기업 후원과 애독자들의 구독 참여 등 각계에서 뜨거운 성원이 잇따르면서 재발간되어 발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지?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오는 현장에 서 있는 심정은 참 복잡미묘하고 서글프다. 나 같은 아날로그 글쟁이의 마음은 한층 심하게 일렁인다. 세상이 변해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걸 지켜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저력이다. 그래서 김성구 발행인의 말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월간 샘터는 잠시 쉬어 가지만… 물질보다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샘터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갈 방법을 모색해나가겠습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샘터 휴간 샘터가 월간지 월간잡지 샘터 월간 샘터가
2026.01.08. 19:53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모든 날들이 부디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 기쁨, 보람, 자랑스러움,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해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한문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싶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지 등등… 야무지게 결심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작심삼일! 그래도, 또 새해 아침이면 올해는 무슨 일에 집중할까를 궁리하게 되네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올해 나의 새해결심은 ‘뺄셈 공부’로 정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는 날짐승이잖아. 그런데 무거운 새는 못 날아요. 그때는 날개가 덮개가 되죠(웃음). 인간도 몸이 불으면 못 날아. 늙고 병들면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빠지고 어깨에 힘이 빠져요. 비극이지. 그런데 마이너스 셈법으로 몸이 가벼워지면 날아요. 고통을 통과해서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위로 떠요. 덩컨 맥두걸이라는 학자가 실험했어요. 죽은 후 위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게를 쟀더니 21g이었죠. 그러니 죽어갈수록 더 보태지 말고 불순물은 빼야 해요. 21g의 무게로 훨훨 날아야지요.”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 말씀대로 훨훨 날기 위해서는 빼고, 버리고, 비우고, 정리해서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 그런 눈으로 주위를 보니 웬 쓸데없는 물건이 이리도 많은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하는 일에 대한 집착도 줄이고, 몸무게도 줄이고, 똥배도 줄이고…. 온통 버릴 것, 없앨 것, 줄일 것, 뺄 것투성이네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 가장 급하네요. 욕심, 집착, 헛꿈, 지나친 기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찾아보니, 명상, 종교적 묵상, 좌선, 기도 등등 마음을 비우고 챙기고 다스리기 등 수련방법이 참 많네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최근에 알게 된,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입니다. 하와이 말로 ‘호오’는 원인 또는 목표, ‘포노포노’는 완벽함을 의미하므로, 합쳐서 ‘호오포노포노’는 ‘잘못을 바로잡는다’라는 의미를 담는 단어가 된다네요. 고대 하와이의 전통적 기법은 종교 지도자가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현재의 수행방식은 혼자서 하는 방법으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억을 해방시키는 전통적 문제 해결법이 현대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신체적 혹은 정서적, 정신적 고민과 고통을 알아채고, 정화를 시작하면 되는데, 정화는 4개 문장을 되뇌는 것이 전부라네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마법의 네 단어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정화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도 때도 없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지 말고 나의 내면을 향해 되뇌면 마음 편하겠지요. 올해는 버리고 비워,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부디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새해 새해 결심 전통적 문제 고대 하와이인들
2026.01.01. 17:00
40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페테르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지난 11월 30일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약 300만유로(약 352만 달러)에 낙찰됐다는 기사가 성탄절을 앞둔 시기라서 눈길을 끌었다. 루벤스뿐 아니라 서양미술의 거장들은 거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광경을 그린 명작을 남겼다. 현대미술에서도 루오, 샤갈, 고갱, 달리 등이 그린 유명한 작품이 많다. 우리 한국미술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 미술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조각가 최종태의 한국적 성상(聖像), 한국화가 김병종의 ‘바보예수’, 서양화가 권순철의 ‘예수님 얼굴’ 등 우리 시대 한국의 종교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종교관과 예술관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가 서양의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말해준다. 성탄절을 맞아 이런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이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이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박해, 공생애, 수난과 부활, 승천 등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의 전통 풍속화로 재해석하여 파노라마처럼 화폭에 담아낸 역작으로, 한국 종교미술 토착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예수님의 삶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하여,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선녀의 모습으로 표현된 천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모 마리아, 조선시대 복색을 한 인물들과 초가집 기와집 등 전통 가옥과 자연 등이 마치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이야기를 그린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과감한 시각, 기독교의 한국화라는 관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미술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전쟁 중에 탄생한 성화(聖畵)로 전쟁과 종교그림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상징성이 큰 울림을 준다. 운보는 한국전쟁 중인 1952∼53년 아내 박내현의 친정이 있는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미국 선교사의 권유로 예수의 생애를 그리기 시작하여, 1년여 만에 29점을 완성했다.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그 3년 뒤, 부활 그림을 추가해 30점으로 완성했다. “온 국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예수의 행적을 그려보는 것도 계기가 될 것 같아 성화를 그리는 것으로 암울한 시기를 이겨 나갔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전쟁 속 우리 민족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 한국적인 성화를 제작했다는 설명이다. 피난시절의 가난과 엄혹한 환경, 화구도 구하기 힘든 여건에서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성화를 그리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이 연작을 그리던 시기에는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대낮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성화 작업에 몰입했다고 고백했다. 이와 같은 아픈 사연이나 시대배경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새삼 숙연해지고, 왜 한국적 풍속화로 재해석해서 그렸는지도 공감하게 된다. 참고로, 운보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감리교회에 다녔고, 스승의 권유로 장로교회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막내딸이 ‘수녀회’에 입회한 것을 계기로 일흔 살에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꾸준히 김 추기경과 교유하였으며, 장례미사도 추기경이 집전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그리스도 사랑 예수 그리스도 한국 종교미술 우리 한국미술
2025.12.25. 18:00
해마다 연말이면 신문에 단골로 실리는 것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기사다. 우리와 친숙했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던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국제적인 인물로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이태리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01~2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모든 활동과 지향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4년 한국 방문 때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장애인들도 만났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올해 별세했다. 현대 건축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게리는 “건축은 인간 삶의 혼란과 감정, 민주적 정신을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예인으로는 지난 11월2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미녀배우 김지미, 원로배우 윤일봉, 코믹 감초연기로 유명한 배우 남포동,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 ‘쨍하고 해뜰 날’의 가수 송대관, 개그계의 맏형 전유성, ‘우정의 무대’ 사회자로 군인들의 큰 형님으로 알려진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 연극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한 배우 이주실, 배우 김새론, ‘명랑운동회’ 사회자로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국회의원을 지낸 변웅전 등이 올해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이순재는 69년 연기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간 ‘평생 현역’ 배우로, 노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철학, 확고한 직업의식을 통해 후배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정부는 고인에게 문화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미국의 인기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쳐’ 등의 영화에서 개성적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진 해크먼, 영화 ‘대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고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다이앤 키튼, ‘킬링 미 소프틀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로버타 플랙 등이 올해 타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드는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던 ‘할리우드의 위대한 별’이었다. 한편, 한국 문화예술계의 인사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 시인’ 이생진, ‘엉겅퀴꽃’, ‘철원 평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 민영 시인, 소설가이며 시인, 화가로 활동한 윤후명 작가, 재일동포 소설가로 1972년 외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얼과 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한, 특히 예술가 초상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육명심, 한국화가 홍석창 등도 올해 타계했다. 또한, 제3세계 최고 권위의 로터스 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박경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케냐의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 응구기 와 시옹오, 소설 ‘천상의 푸른 빛’ 수필집 ‘노인이 되지 않는 법’ 등의 저자인 일본작가 소노 아야코 등이 올해 별세했다. 미주 문인으로는 시인 겸 소설가 곽상희 작가, 김신웅 시인, 조만연 수필가, 김태영 동화작가, 손명세 시인, 영어 교재 저술가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한 조화유 작가 등의 원로 문인들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원로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젊은 문인들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한인사회의 따스한 관심도 절실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름 국민배우 이순재 미녀배우 김지미 프란치스코 교황
2025.12.18.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