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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신이어<新year>’들의 신바람

한국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신이어마켓’이라는 소셜 브랜드 이야기다. 폐지 수거 노인을 넘어서 일하고 싶은 시니어까지 즐겁고 따뜻한 일자리로,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며, 다양한 세대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같이 살아가는 브랜드라고 한다.   “‘신이어마켓’은 연장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니어’를 어르신들 나름대로 발음한 ‘신이어’와 다양한 물건을 파는 ‘마켓’을 합친 말이다.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어르신을 ‘신이어’, 함께 일하는 청년 구성원을 ‘준이어’라고 부른다. 준이어들이 관련 그림과 글을 예시로 보여주고 신이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시니어를 ‘신이어’라고 부르니, 어감도 신선하고 별안간 확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新) 해(year)들이니까 나도 ‘신이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준이어’라는 낱말도 그렇고, ‘신이어마켓’이라는 곳이 하는 일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신이어들의 삶은 어쩐지 신바람 나고 활기찰 것만 같다.   ‘신이어마켓’은 2030세대가 기획하고, 시니어가 직접 그리고 포장해 탄생한 제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그동안 다이소, 스킨푸드, 우아한형제들, 한국후지필름, 리얼스마켓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협업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심현보 대표는 “어르신들의 문화와 문체, 경험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저의 최종 꿈은 저희 부모님께도 지속가능한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에요. 젊은 세대의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과 같이 어른 세대의 하루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거든요.”   노인들에게 날씨에 상관없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새로운 일거리를 마주하고 세대 간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 청년과 노년이 어우러져 함께 일하는 곳….   바야흐로 온 세상이 고령자 문제로 골치 아픈 판이라서, 이처럼 신선한 발상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청년과 노년이 함께’라는 정신이 반갑고 고맙다.   최근 한국에서는 20대 젊은이 인구가 70대 노년 인구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노년층은 계속 늘어가는 고령화사회, 다른 말로 하면 늙은 나라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여 죽을 사람을 살려내고,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고 있지만, 노년의 삶을 품위 있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대책 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잘 사는 일인데…. 하긴, 그건 의학의 영역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숙제다.   지난 10월1일 91세의 나이로 자연으로 돌아간 제인 구달 박사의 장수비결은 여러모로 새겨들을만하다. 먼저 활동적인 삶이다. “일하는 한 늙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자연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숲은 최고의 약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목적의식도 중요하다. 구달 박사는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낙관주의다. “희망은 최고의 항노화제다”라는 경험도 나눴다.   백세 시대의 기준으로 치면 91세는 장수 축에도 못 낄지 모르겠지만, 구달 박사는 90세를 넘어서까지 연간 약 300일 이상 여행과 강연을 계속했고, 은퇴하지 않은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희망을 전하는 과학자’라는 분명한 사명감을 평생 유지하고, 절망 속에서도 행동을 통한 희망을 강조하는 낙관주의자의 긍정적인 삶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동안 많이 들어온 지혜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실천해야만 한다, 신이어들의 신바람을 위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year 신바람 일자리로 청년 노년 인구 청년 구성원

2025.10.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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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케데헌’, 우리가 미처 못 본 가치

지난해 이맘때에는 뭐니 뭐니 해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큰 경사였다. 올해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열풍이 단연 으뜸 화제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K-컬쳐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 연이은 통쾌한 홈런인 셈이다.   초기에는, K-컬쳐라고는 하지만 제작자는 한국인이 아니고, 돈은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간다는 식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케데헌은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한국에 안겨주었다. 나라의 격이 높아진 것은 물론, 밀려드는 관광객, 각종 한국 상품의 인기로 인한 수출 증대 등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객이 500만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았는데, 그 배경에는 케데헌의 영향이 컸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문화의 힘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미국에 살면서, 세계무대를 꿈꾸며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신바람나는 자극제일 뿐 아니라, 많은 점을 일깨워준다. 미주 한인, 특히 2세들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케데헌을 탄생시킨 제작자, 작곡가 등 주요 작가들은 해외동포 1.5세, 2세들인데, 이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해석에서부터 한국에서 자라고 배운 기성세대나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부터 그렇다. 케데헌의 작가들은 그동안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하찮게 여기던 사물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가령 도깨비, 무당, 저승사자, 갓, 까치호랑이, 김밥 등등…. 그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 아예 다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케데헌에 참여한 작가들은 밖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못 본 것을 본 것이다. 핏줄로 전해진 한국적인 정서를 알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감각을 익힌 해외동포 예술가들의 눈에는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른바 ‘국뽕’이나 고리타분하고 완고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에 통할 우리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엄청난 자산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것은 내 개인적인 소견인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케데헌의 감독, 작곡가 등 주요 예술가는 여성, 비교적 젊은 여성이다.   물론, 그동안 한류를 주도한 것은 ‘오징어 게임’,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싸이, 방탄소년단 등의 남성이었지만, 예술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펼칠 가능성은 대단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인 2세 중 예술 분야를 전공하는 인재는 아무래도 여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미주 한인 미술계도 여성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감히 내 소견을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본디 예술 창조는 여성에게 맞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 일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은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인류의 삶이 남성 중심의 세상이었고, 여자들이 예술을 창조에 나서는 것을 억지로 막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계도 여성 중심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견을 피력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가령 김지하 시인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모처럼 일어난 K-컬쳐 열풍을 확고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 지원의 원칙은 문화 한류를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으로 파악하지 말고, 예술성이 우선인 작품으로 대접해야 하며, 후원은 하되 참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야 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치 해외동포 예술가들 한국 문화 주요 예술가

2025.10.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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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의 웃음과 시 사랑

날이 갈수록 세상이 각박하고 살벌해지니 개그맨 전유성 같은 이가 한층 더 그리워진다. 후배 희극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별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애도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건강한 웃음이 주는 따스한 위로가 간절한 법이다.   전유성은 웃음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평생 노력한, 유머와 지혜와 따스한 마음씨의 장인이었다. 웃음에는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건강과 행복을 키워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힘이 있다는 걸 믿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그의 시(詩)사랑은 주목할만하다. 개그맨 전유성은 책을 많이 읽고, 직접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를 좋아해서, 후배들에게도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고 전한다.   한 후배가 지금 외우고 있는 문장이나 시가 있느냐고 짓궂게 묻자, 전유성은 복효근 시인의 시 〈무덤〉을 소개한다.   ‘더 이상/ 덤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 세상은 덤이라는 뜻’   짧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시다. 이어서 안도현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매미 우는 소리가 달라졌다. 짝이 생겼나 보다.”   또, “나는 시골에 살아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시골이란 ‘시의 골짜기’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했다.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로 읽은 것이다. 참 재치있고 뜻깊은 말이다. 시에서 웃음을 찾는 날카로운 눈길….   시와 웃음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시각은 참 신선하다. 전유성은 시인들이 세상을 보는 개성적 시각과 관점을 소중하게 여기며, 배우고 싶어서 시를 많이 읽는다고 말한다. “생각을 바꾸자”는 그의 철학과 시 정신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거기서 웃음도 나오고, 시도 나온다. 가령,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럼 아프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해서 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어루만져주는 건강한 웃음은 그저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건강한 웃음은 인문학적 소양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 제대로 웃길 수 있다. 그래야 재미와 의미를 아우를 수 있다. 이것이 그저 우스갯소리와 예술을 구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희극의 천재 찰리 채플린이 아주 훌륭한 예다.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위대한 독재자〉 〈골드러쉬〉 같은 작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웃음과 함께 깊고 묵직한 사회풍자가 번뜩인다.     정신없이 웃다 보면 눈물이 나는 장면도 많고, 시처럼 아름다운 표현도 많다. 과연 ‘웃음의 시인’답다. 아마도 전유성이 닮고 싶어 한 것도 이런 경지였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가 한 몸인 작품….   채플린은 말했다. “웃음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라고.   사실, 개그맨 전유성은 무대나 화면에서 빛을 발한 희극인은 아니다. 그 흔한 유행어 하나 없이, 변두리의 어눌한 단역으로만 50여 년을 활동했다. 그럼에도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몸소 솔선수범하고, 후배나 제자를 길러낸 인물로 기억된다.   전유성이 남긴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정관념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시인처럼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라는 권유다.     “고정관념을 깨는 건 별거 아니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은데 못 한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게 고정관념을 깨는 거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묘비에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전유성의 대답은….   “웃지 마, 너도 곧 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 개그맨 전유성 사실 개그맨 후배 희극인들

2025.10.1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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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한글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높아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K-팝, K-컬쳐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외워서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제2 외국어로도 우리 한글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글날 무렵이라서 이런 소식이 한결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세종대왕님께서 기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에도 한국어들이 등재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사전이다.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인쇄 제본형 표준판은 1928년 총 12권 분량의 책에 41만 여개의 어휘, 180만 여개의 인용문이 실린 초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온라인 사전 초판이 처음 나왔으며, 3개월마다 어휘를 새롭게 등재하고 있다.   한국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것은 1976년, 등재된 한국어는 ‘김치(kimchi)’, ‘한글(Hangul)’ 등이었다. 이후 꾸준히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었고, K-컬처의 세계적 인기에 따라 2021년에는 총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되었고, 2024년 12월에는 7개의 한국어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올해는 어떤 낱말이 새롭게 등재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참고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를 살펴보면 분야별로 다양하다. 음식 관계는 갈비, 김밥, 김치, 달고나, 떡볶이, 동치미, 먹방, 반찬, 불고기, 삼겹살, 잡채, 찌개, 치맥 등이 있다. 또 호칭은 누나, 막내, 언니, 오빠, 형도 올라있다. 한류 관계는 K-복합명사, K-드라마, K-팝, 한글, 한류, 한복이다. 한국식 영어도 등재되어 있다. 스킨십, 콩글리시, 파이팅, 피시방 등이다. 생활문화 단어로는 노래방, 당수도, 대박, 만화, 애교, 온돌, 태권도, 트로트, 판소리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세계적인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이 올라가는 일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우리말이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잠깐! 덮어놓고 기뻐하며 우쭐대기 전에 살펴볼 일이 있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한국어는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관한 낱말들, 그러니까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감각적 향락적 낱말들이다. 한국의 얼과 넋이 담긴 곱고 아름다운 한글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무리 세계적 권위의 사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이 그렇게 감격할 일인가도 싶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의 삶은 영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주 당연한 듯 영어를 쓰며 살고 있다. 정치인, 방송인, 지식인, 언론인, 문인 등 가릴 것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영어를 쓴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한다.   국제도시 서울의 번화가 거리에 서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영어 간판투성이다. 아파트 이름도, 상품 이름도 요상한 외래어 범벅이다. 그래야 품위가 있고,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영어가 한국의 공영어가 될 판이라는 염려가 나올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니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에 흥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집안 정리와 청소가 먼저 급하다.   세종대왕님께서 밖을 보고 웃으시다가, 안을 보고는 피눈물을 흘리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옥스퍼드 한국어 옥스퍼드 영어사전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식 영어

2025.10.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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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에 비는 소원

올해는 10월6일이 추석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가을(秋) 저녁(夕)이다. 밝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가을 저녁…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와 감사의 계절,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둘러앉아 맛난 음식을 즐기는 행복한 계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추석의 최고 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고향에도 뜨고, 타향땅 이민살이 골목길도 밝게 비춰준다. 타향살이 나그네 젖은 눈에는 보름달이 더 크고 아득해 보인다. 보름달은 바로 고향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태양이 아버지라면, 달님은 어머니다. 그런 마음을 담은 시나 노래가 아프게 가슴을 친다.   “현해탄(태평양) 파도 위에 비친 저 달아, 찢어진 문틈으로 어머님 얼굴에도 비추어 다오” -남일해 노래 〈이국땅〉의 한 구절   예로부터 달님은 신화와 문학예술의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달에 관한 문학작품은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하게 많다. 그만큼 달님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뜻이다.   달님 관련 문학의 예를 들자면, 한국의 고전문학를 비롯해 시조나 동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 등등 세계 문학까지 실로 다양하다.   우리 고전에도 달님을 주제로 한 훌륭한 문학작품이 많다. 바로 떠오르는 것이 〈정읍사〉 〈월인천강지곡〉 같은 작품이다.   〈정읍사(井邑詞)〉는 삼국 시대의 고대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며,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다. 백제 멸망 이후에도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 불려서, 조선 성종 대에 〈악학궤범〉에 기록되었으며, 우리 음악 최고의 경지로 일컬어지는 〈수제천〉의 바탕이 된 가요이기도 하다.   “달님이시여, 높이금 돋으사/ 아아, 멀리금 비치시라/ 어기야 어강도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래다.     정읍에 한 장사하는 사람이 행상을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달(빛)에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기다리는 아내는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한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으신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월인천강’이라는 말은 마치 달님이 천(千)개의 강에 비친 것과 같이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푼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상업적인 달 여행을 눈앞에 둔 과학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은 것이 1969년 7월이었다. 그 후로도 과학은 눈부시게 발달하여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행성 탐사 우주선은 태양계 맨 끝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를 노래하고,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빈다. 우리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동심과 꿈, 희망, 그리움의 달님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이렇게 기도한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이해인 〈달빛 기도〉 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만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달님 관련 유인우주선 아폴로

2025.10.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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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자꾸만 멀어지는 통일 꿈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며 평화통일을 포기하는 대남 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23년 말 ‘남북이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낸 바 있는데, 이번에 이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외교 공세를 강화한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두 국가”라며,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성을 인정하는 게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론’을 강조했다.   ‘두 국가’라니? 통일의 꿈은 이렇게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건가?   ‘삼팔따라지’의 후손인 나는 통일이라는 낱말을 대하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나라가 반 동강 난지 어느새 75주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로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종전선언도 없는 현실이니 계속 전쟁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새 정부 들어서서, 다각적으로 대화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에 일단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면 맥이 빠진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너무 빠르게,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35%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민 3명 중 1명이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특히, 2030세대는 절반 가까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대 응답자 47.4%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22.4%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통일 불가론도 20대 45.1%, 30대 43.1%로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다. “6.25를 모른척하며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 △남북 간 정치체제 차이 등이었다.   이런 통계수치를 보고 있노라면 울컥 서글퍼진다. 통일이 이렇게 타산적으로 따질 일인가?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 아닌가?   되돌아보면 그동안 우리는 통일을 위해 참으로 많은 시도를 되풀이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문 발표도 여러 차례 있었고,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를 울렸고, 그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과 북의 공연단 상호방문 공연은 상당히 많았고, 올림픽 남북단일팀 참가까지…. 해볼 만한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제부터 새로운 기발한 일을 꾸미려 애쓰기보다 지난날 했던 일들 중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지금 현실에 맞게 다듬어서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너무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일부터 소박하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령,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한 ‘아리랑 변주곡’, 윤이상 선생이 제안했던 남북 합동교향악단의 판문점 공연 같은 것.   나는 개인적으로 신영복 교수의 통일론에 공감한다. 선생께서는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겨레의 뜻과 마음이 하나로 통(通)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나 죽기 전에 통일의 감격을 맛볼 수 있으려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통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정동영 통일부 통일 이후

2025.09.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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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임종 과정 20분 동안 평소 가장 좋아하셨던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으며 떠나셨습니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오인동 박사의 유가족이 보내온 글의 한 구절이다.   오 박사는 평소 음악을 좋아해서, LA 필하모닉 이사로 오래 활동했고, 헐리웃보울 가족 지정석을 40년간 가지고 있었다.   ‘신세계’라니 참 의미심장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는 시작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신세계는 그가 생전에 꿈꾸던 통일된 조국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떤 음악을 들을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 아니면 김민기의 〈아침이슬〉…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스코트 니어링(1883~1983)이다. 스코트는 100세 생일에 즈음하여,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스코트의 의연한 자세와 그 과정을 완성으로 승화시킨 헬렌의 사랑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헬렌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며 반쯤 소리 내어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고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 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식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다. 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마감방식이다.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이 몸에 밴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스코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죽음을 아내 헬렌은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음을 느꼈다.”   스코트는 장례식이나 추모식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원해서 죽은 지 2주일째 되는 날,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스코트의 백 번째 생일날 이웃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깃발을 들고 찾아왔는데, 그 깃발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서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준비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노인 인구가 늘면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든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작별하고 싶지만, 집에서 죽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통계에 따르면, 재택 임종은 14%에 불과하고, 노인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미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의료화’를 내세우며, 자연사를 인정하지 않는 의료계 현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나답게 죽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마무리 스코트 니어링 신세계 교향곡 미완성 교향곡

2025.09.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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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여자도 고도를 기다린다…

꼭 보고 싶은 연극이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 원로배우 신구(87)와 박근형(83) 두 분이 열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 작품이다. 연기경력 60년이 넘는 원로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도 벅찬 감동인데, 게다가 그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현대의 고전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을 무대언어로 살려낸 이 작품은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처음 공연되었을 때에는 일반 대중은 물론 연극 평론가들에게까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혹평에 시달렸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공감대가 넓어졌고, 베케트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는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이 연극은 한국에 유달리 사랑받으며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임영웅 연출 버전은 1969년 초연된 이래 거의 매해 장기공연을 가지면서, 수많은 배우들이 무대를 빛냈다. 이번 공연은 한국판 중 최고령 원로배우들의 열연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꼭 보고 싶었지만, 연극 하나 보겠다고 한국까지 갈 팔자는 못 되는지라, 그저 토막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꾹 참아야 했다.   이 공연을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원로 여배우 박정자(82) 씨가 한국 공연 역사상 첫 여배우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소년 역을 여배우가 맡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무대가 될지 상상만 해도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금녀(禁女)의 작품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극작가 베케트는 이 작품에 여배우가 등장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하고 자주 널리 공연되는 작품인지라, 연출가나 배우들은 자기 나름의 개성을 살리고 다양한 해석을 하고 싶어 하는데, 완고하게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금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막았다.   예를 들어, 베케트는 1988년 네덜란드의 한 극단이 여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공연을 준비하자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베케트가 말한 반대 이유는 “여성은 전립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극중 인물이 종종 소변을 보기 위해 무대를 떠나는 설정에 대해 전립선 문제가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베케트 사후에도 여배우 출연과 관련한 소송이 제기됐다. 물론, 베케트 측이 모든 경우 승소한 것은 아니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극작가 베케트는 생전에 자신의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릴 것을 요구했다.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베케트 에스테이트’는 세계 각국에서 대본 수정, 음악 사용 등 희곡에 없는 시도를 할 때마다 소송 등 제동을 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신구,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앙코르 공연에는 박정자와 소년 역의 여배우는 참가하지 못했다. 저작권 가진 ‘베케트 에스테이트’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요점은 ‘여배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이 작품의 주제가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인데 성별의 차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여자 햄릿이 버젓이 무대에 오르는 세상이다. 박정자는 이렇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베케트 에스테이트가 〈고도를 기다리며〉 앙코르 공연에 여배우 출연을 안 된다고 한 결정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데, 너무 시대착오적 아닌가. 만약 베케트가 지금 살아있더라도 여배우 출연에 대한 과거의 태도를 고수할지 모르겠다.”   나도 베케트 선생님께 묻고 싶다. 고도는 신(神)인가? 전립선이 인간의 실존과 무슨 관계인가? 대답이 참 궁금하다. 특히 전립선의 부조리에 대해서…. 장소현 / 극작가·시인문화산책 여자 고도 여배우 출연 베케트 에스테이트 극작가 베케트

2025.09.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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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일인칭 대명사에 대한 명상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전에 읽었을 때와 달리 울림이 새롭고 크다. 그런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나이 탓인지 옛날 팔팔하던 시절과는 아주 다른 묵직하고 진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많은 책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내용이 많다. 문득문득 생각나곤 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일인칭 대명사, 즉 ‘나’에 대한 것이다.   헬렌이 버몬트주에 살 때, 어느 날 여러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끊임없이 나오는 일인칭 대명사가 거슬려서, 이런 제안을 한다.   “하루 종일, 아니면 한 시간, 아니 지금 같은 식사 시간만이라도 ‘나’라는 말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요?”   모인 사람들은 재미있는 실험이 될 거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헬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나날의 대화에서 얼마나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지,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은 ‘나’가 있는지 배우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여러분 스스로도 대화 속에서 일인칭을 빼고 말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실험해볼 것을 권한다. 여러분은 벙어리처럼 될 것이다.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내세우고, 나만 옳다고 우겨대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기 짝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이 제안의 울림은 매우 크다. 돌아보면,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저마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닌가? 겸손, 경청, 배려, 양보, 숙이기, 져주기, 양심, 부끄러움… 그런 지극히 당연한 낱말들이 사라져버린 세상.   나는 어떨까? ‘나’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대화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상대방의 주장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나를 꺾을 수 있을까? 그럴 자신 없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대화를 잘하는 방법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고, 토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나를 포기할 수 없다.   영어에서는 주어가 중요하다. 주어가 없는 문장은 없을 정도다. 특히, ‘나’라는 낱말 ‘I’는 언제나 대문자로 쓰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에 비해 우리말은 주어가 없거나 있어도 희미하다. ‘나’라는 주어는 더욱 그렇다. 없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주어를 또박또박 명확하게 쓴 글은 번역투 문장이 되기 쉽다.   우리 말은 참 재미있다. ‘나’라는 글자에서 밖으로 나와있는 점을 슬쩍 안으로 밀어넣으면 ‘너’가 된다. 그러니까, 너와 나의 차이는 점의 방향이라는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죽을 듯이 싸우는 것이 현실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 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이야기….   헬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로서의 자의식이다. 우리는 과연 자기중심(self-centered)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세계에서 어떻게 이 자기 중심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달리 말하면, 내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것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참으로 존중할 줄 알아야 낮출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인칭 대명사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인칭 대명사 일인칭 대명사 헬렌 니어링 양심 부끄러움

2025.09.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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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국 젊은 세대들의 일본관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마주 앉아 회담을 하고, ‘공동 언론 발표문’을 내놓았다. 기대했던 공동선언문이 아닌 언론 발표문이다. 한일정상회담 후 합의된 문서 형태로 결과가 발표된 것은 17년 만이라고 한다. 발표문의 골자는 이렇다.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은 일단 반갑고 기대도 되지만, 늘 하던 이야기의 되풀이라는 느낌이다. 반면에 조심스러운 시각도 여전한 것 같다. 과거사 문제나 일본 수산물 수입 완화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아예 빠져 있다. 답답하다.   이에 비해 젊은이들은 많이 다르다. 새 세대가 생각하는 한일관계는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다.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두 나라의 젊은 세대들의 몫이다. 미래지향적 새 질서를 위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실제로,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한일관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는 각종 여론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2030세대 3명 중 2명은 일본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과거사를 비판하는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때로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때로는 원칙주의자로 변신한다. 실용과 원칙을 오가는 두 얼굴, 2030세대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한국의 MZ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일본을 훨씬 더 좋아하는 현상은 통계로 확실하게 나타난다. 반일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일본 언론은 ‘예스 재팬 세대’라고 부른다. 일부 일본 전문가는 한국 MZ세대의 일본 사랑에 기성세대의 낡은 반감이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형편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요즘 일본 젊은 세대는 ‘한국이 일본보다 멋진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혐한(嫌韓) 행위를 ‘뭔가 이상한 아저씨들’의 가치가 없는 짓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한류(韓流)가 20년 넘게 세대를 거쳐 이어지면서 혐한 분위기가 젊은 층에선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 믿는 젊은 세대도 있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멋있는 나라인데 왜 이런 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나?”라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변화다.   현실이 이러하니 한일관계도 과거에만 머물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요하게 주목되는 것은 ‘한국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일본을 좋아해도 역사문제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즐길 건 마음껏 즐기되, 따질 건 또 깐깐하게 따진다. 때로는 기성세대보다 더 엄하다. 위안부나 강제징용으로 고통당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물은 청년세대 특유의 인권 감수성을 자극한다. 역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세대의 건강한 인식이다. 믿음직스럽다.   “기성세대의 일본관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과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이 공존하는 자기분열적 성격을 띠었다면, 2030세대의 일본관에선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본은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다.”-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이런 식이라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고, 광복 100주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한국 한국 mz세대 과거사 문제 공동 언론

2025.08.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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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건너뛴 근대, 그 빈 자리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함석헌 선생의 이 말씀은 매우 복합적이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방둥이의 나이가 올해 80세다. 달리 말하면, 많은 국민이 일제강점기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 시대의 아픔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나간 한 시대의 기억을 학교에서 배우거나, 글이나 말로 얻은 간접경험이 있을 뿐이다. 젊은 세대는 더 실감이 없다. 교과서로 배운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나 대중문화와 관광여행을 통한 인식이 거의 전부다.   지난 80년간 한일관계는 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출렁거리며 갈등을 겪어왔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세월이 약이다. 하지만,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숙제가 많다. 민족적 정체성과 정신적 자존감에 관한 많은 문제들은 슬그머니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될 문제들이다.   그런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우리 역사에는 자주적 근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근대’라는 낱말의 뜻을 사전은 ‘현대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가까운 과거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하는데, 우리는 여기에다 전통적 왕조별 시대구분을 조합하여 고대(고조선-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일제강점기), 현대(8.15광복 이후)로 구분한다.   근대는 왕조시대와 현대 사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한 나라, 한 사회의 방향과 성격, 철학 등 기본골격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다. 건물로 치면 기초공사요, 한 개인으로 말하면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인격을 형성하는 사춘기 같은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는 근대가 바로 일제 식민지 시대였다. 나라 잃은 서글픈 시절, 아무것도 우리 힘으로 자주적으로 할 수 없는 아픈 세상이었다. 한국 사회 전반의 기초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일본에 의해서 닦여졌고, 현대화의 바탕이 될 서양 문물도 모두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였다. 우리의 뜻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랬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 되고, 내 전공인 미술을 예로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생들이 배워온 서양미술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는 이미 인상파, 후기인상파 미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유학생들도 당연히 그런 미술을 배워서 돌아와 그대로 그렸다. 그러니까, 서양미술의 가장 오래된 철학적 바탕이자 전통인 리얼리즘, 사실주의를 건너뛴 것이다.   학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서양미술을 받아들이면서 리얼리즘을 건너뛴 것은 문화적으로 결함(?)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이란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 미술과 사회현실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현대미술에는 치열한 리얼리즘 전통이 자리 잡을 공간이 거의 없었다. 80년대 초 민중미술이 등장하기까지는 그랬다. ‘구상화’라는 개념이 전부였다.   “문제 제기 차원에서 굳이 말한다면, 한국의 근대미술은 ‘지나치게 예쁘기만 하다’는 것이다. (…)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서경식 교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하고 경영하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근대 시기에 우리가 좀 더 당당하고 의젓하게 주인 노릇을 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근대 자주적 근대 리얼리즘 전통 한국 사회

2025.08.2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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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다양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일본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일본을 넘어섰다고 우쭐대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친일파 논쟁, 문화재 반환처럼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 외에도 정신적 문화적 문제들이 대단히 많다. 광복 80년 사이에 일제가 남긴 쓰레기를 열심히 치웠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결정적인 갈등이 잔뜩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말 제대로 광복이 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지경이다.   정치나 사회, 외교적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능력은 없지만, 우리 정신에 깔려있는 문화적 정신적 앙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 말과 글의 현실만 살펴봐도 일제 잔재가 아프게 드러난다. 자세히 볼수록 참담해진다.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의 77%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숨을 내쉰다. 본디 우리말인 줄로 알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문화재(文化財)’를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문화재청장이 국가유산청장으로 바뀌었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일본에서 들여와 공식적으로 쓴 지 62년 만이라고 한다. 이유는 재화적 성격보다 국가적 정체성을 앞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말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우리말로 채우는 노력이 끈질기게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쓰레기가 산더미다.   현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명도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외래어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 민주주의, 대통령, 개혁, 법률, 정의… 철학, 예술, 문학, 낭만 등… 모두 그렇다.   거기에다 아직도 버젓이 쓰이고 있는 일본말도 무척 많다. 각 분야의 전문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흔하게 쓰이고 있다. 일본말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세대들은 멋부리기로 일본말을 쓰기도 한다. ‘간지’ ‘야마’ 등등…. 이런 잘못을 지적하면 “영어는 괜찮은데 일본말은 왜 안 된다는 거냐?”라고 항변한다. 어처구니없다.   낱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나 말법, 문법에도 일본 잔재가 잔뜩 남아있다. 그 덕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말을 쉽게 배운다. 사고방식이나 문법의 구조가 같고, 한자어의 77%가 같으니 배우기 쉬울 수밖에 없다.   “아무려면 어떠냐? 지금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라는 거냐? 까짓 일본놈들 뛰어넘어버리면 되지!” 이렇게 큰소리치며 인스턴트 라면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일본인이 처음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 라면이 일본 것을 깔아뭉개고 세계인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글쎄, 그럴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아무튼,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갈등과 매듭이 가로놓여있다. 반드시 통찰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지나친 민족주의, 피해자 관점의 일방적 반일감정, 친일파 논쟁에서 드러난 이분법 등등….   광복 8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우리말 논쟁 문화재 정신적 문화적 문화적 정신적

2025.08.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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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코리아니즘 시대의 개막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그것도, 영화감독과 배우, 소설가 등 영화 관련 예술인 500여 명의 투표 결과와 20만 명 넘는 독자가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 두 부문에서 모두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소식을 몇 년 전에 들었다면 감격에 벅차서 축배라도 들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뻐근한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이미 한국문화가 더 올라가야 할 정상이 없을 정도로 세계 정상에 확실하게 올라섰기 때문이다.   근래 한국 문화예술은 각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찬사를 받고 있다. 칸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 수상작 기생충,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작 ‘오징어 게임’,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 등 6개 부문 수상작 ‘어쩌면 해피엔딩’, 최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K팝 그룹 BTS와 블랙핑크는 물론 조성진과 임윤찬 등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도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김혜순 시인의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독일 국제문학상, 김주혜의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등 고전적인 문화예술과 대중문화 모두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미술 쪽에서도 영국의 테이트 모던에서 내년 여름 개인전을 갖는 서도호 작가,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은 김수자 등 여러 작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감격스런 소식은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이었는데, 느닷없고 어이없는 계엄령 소동에 가려져 무척 섭섭했었다.   ‘코리아니즘’이라는 낱말이 나올 정도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계속 정상을 지키며 세계문화를 이끌어가는 일일 것이다. 변방에서 조명받는 중심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철학과 이론적 바탕이 필요하고, K-문화의 본질을 자세하게 살펴서, 그 저력의 뿌리를 밝혀내 발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중요한 것은 당당한 자신감이다. 최근에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은 거의 다 60년대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들이다. 그 이전 세대는 배우 윤여정(1947), 정명훈(1953), 김혜순 시인(1955) 정도다. 달리 말하면, 일제 강점기, 전쟁, 분단, 지독한 가난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어느 정도 가신 시대에 성장한 세대들이다. 전 세대들이 빠져있던 열등감이나 패배의식, 자기 비하 같은 부정적 정신문화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키운 세대였다. 외국문화를 비판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우리 것을 알려고 다양하게 노력하고 싸웠다.   결국, 우리 사회가 현대화,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온갖 갈등과 좌절, 절망 등을 이겨내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온 힘이 지금 K-문화의 저력인 셈이다. 월드컵 응원의 뜨거운 물결, 촛불 혁명…. 그러므로 앞으로도 우리 정신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정체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노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어령 선생 같은 눈 밝은 선구자가 그리워진다. 글로컬리즘, 즉 세계에 통하는 로컬리즘 같은 정확한 방향 제시, 인류 문화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련한 근원 정서를 찾아내 세계인이 공감할 언어로 재창조하는 일에서 그이는 정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 디지로그, 글로컬리즘, 생명자본론, 보자기론 등이다.   그런 한국 특유의 정서를 현대화한 성공사례가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딱지치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줄넘기, 줄다리기, 달고나 등 한국의 놀이문화다. 같은 맥락에서, 외국어로 바로 번역하기 어려운 우리말, 예를 들어 멋, 정, 한(恨), 신바람 같은 낱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어령 같은 창조적인 걸물이 우리 젊은 세대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코리아 개막 세계 정상급 부문 수상작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

2025.08.0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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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뒷것 김민기와 장일순 선생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지난 7월21일이 1주기였다. 세월 참 덧없이 빠르다.   고인의 뜻이 워낙 완강했던 탓인지, 요란한 1주기 추모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김민기가 20살 때인 1971년에 발매되었다가 판금 조치를 당해, 희귀본이 되었던 첫 음반을 54년 만에 복각하여 LP판으로 다시 냈다. 또 김민기를 존경하는 후배 음악인과 과거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 입주해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이 공동 개최하는 ‘김민기 뒤풀이’ 공연이 열리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김민기의 예술정신과 인간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조용하지만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연계의 모판이었던 학전(學田) 소극장은 어린이 연극에 힘을 쏟았던 고인의 뜻을 살려 아동극 전용 ‘아르코 꿈밭극장’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학전김민기재단’을 올해 안에 설립하여 고인이 일생에 걸쳐 남긴 음악과 뮤지컬 작품과 작업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뒷것’ 김민기답다. 하지만, 어쩐지 허전하고 아쉽다. 인간 김민기를 널리 알리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민기처럼 결 곱고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세상도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뒷것’ 정신에 대해서….   “‘뒷것’ 김민기 뒤에 장일순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장일순(張壹淳, 1928년-1994년) 선생은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원주 민주화운둥의 대부로 알려진 큰 어른이다. 사회운동가, 교육자이며 생명운동가, 민중 속의 철학자로 김지하 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김지하 철학의 바탕인 생명사상은 장일순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오랜 감옥살이로 생긴 정신의 상처를 먹그림 그리기로 치유하는 지혜를 가르친 분이기도 하다.   김민기는 김지하를 통해 장일순을 만난 이후에 선생의 집을 드나들며,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며 모셨다고 한다.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51년 유복자로 태어난 김민기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늘 사무치게 그리운 자리였다.   장일순 선생 또한 민기를 지극히 아꼈고, 민기가 지은 노래의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가사와 우리 정서를 담은 선율을 좋아했다. “그의 음악의 독창성이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땅을 딛고 있는 두 발에서 나오며, 공동체의 어울림을 가능하게 해준다”면서 흐뭇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늘 부르던 노래가 ‘아침 이슬’이었고, 술 한잔 걸치고 원주천 뚝방길을 걸어 집으로 갈 때도 아침 이슬을 부르면서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김민기가 군사정권의 엄혹한 감시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시골에서 농사를 지은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때 생산자인 농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구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1989년 장일순, 박재일, 김지하, 최혜성 등이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한살림모임’을 창립할 때 김민기는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장일순 선생은 여러 가지 호를 썼는데, 대표적인 것이 ‘무위당(无爲堂)’과 ‘좁쌀 한 알’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뒷전에서 할 일 다 하는 자세를 뜻한다. 그분의 주된 가르침은 “밑으로 기어라”였다. 앞에 나서서 떠들지 말고,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 김민기의 ‘뒷것’ 정신과 바로 이어진다.   장일순과 김민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뒷것’으로 머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장일순 선생의 말씀 한마디….   “사람이 보이는 것만 너무하면 재미가 없어. 안 보이는 가운데 생활하는 그런 사람이 좋은 거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김민기 장일순 장일순 선생 김민기 뒤풀이 인간 김민기

2025.07.2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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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

제법 긴 세월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풍부하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르고 깊이 있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되도록 다양한 관점, 많은 정보를 모아서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세상 참 복잡하고 편해졌다. 예전처럼 자료수집을 위해 발품 팔고 땀 흘리며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컴퓨터에 부탁하면 너무 많은 관련 지식과 정보가 넘쳐흘러서 오히려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똑같은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 독창성을 발휘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그래서 글이나 논문들이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교묘한 짜깁기 재주 경쟁만 남을 위험성이 크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씀을 꺼내기도 쑥스럽다. 글 내용의 질이나 수준 평가 이전에, 표절 여부를 가리기만도 바쁘니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진위, 엉터리 자료를 가려내는 판단 능력이다. 수집한 정보가 얼마나 믿음직한가라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건 결코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처럼 가짜 뉴스, 불확실한 지식,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진위와 옥석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걸러내고, 덫에 걸리지 않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정치적 꼼수가 숨겨져 있는 주장, 이념 갈라치기에서 비롯된 진영논리, 돈이 걸려있는 사안들에서는 혼란이 한층 날카롭다.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수결이 진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인공지능이 더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대중화되면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언론의 기사나 보고서, 논문 등 실용적 글쓰기의 많은 부분에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일을 더 잘하고 있어, 인간들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화두를 제시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언론과 기자들의 역할에서는 문제가 한층 심각해진다. 인공지능은 이미 언론계 글쓰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급기야 ‘기자들의 노벨상’ 퓰리처상도 인공지능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성형 AI를 취재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보도 과정에 이를 활용했을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발품을 판 직접 취재를 으뜸으로 여기는 기존의 기자정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천하의 퓰리처상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최종 후보에 오른 45개 기사 가운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사가 5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기계의 종이 되는 현상이다. 원론적으로는,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자나 언론인 개인이 인공지능을 이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가려낼 재간조차 없다.   상상력이나 창조력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이 쓴 문학작품, 특히 공상과학소설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어서, 인간 작가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예수, AI 붓다까지 이미 나와 있다고 하니 감히 종교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이 살상무기가 될 날도 머지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끔찍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매우 구체적이다. AI 도구가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남용하다 보면, 사고 능력이 급속히 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똑똑해지는데, 인간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인공지능 글쓰기 인공지능 예수 인공지능 시대 언론계 글쓰기

2025.07.21. 23:07

[문화산책]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

제법 긴 세월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풍부하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르고 깊이 있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되도록 다양한 관점, 많은 정보를 모아서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세상 참 복잡하고 편해졌다. 예전처럼 자료수집을 위해 발품 팔고 땀 흘리며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컴퓨터에 부탁하면 너무 많은 관련 지식과 정보가 넘쳐흘러서 오히려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똑같은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 독창성을 발휘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그래서 글이나 논문들이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교묘한 짜깁기 재주 경쟁만 남을 위험성이 크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씀을 꺼내기도 쑥스럽다. 글 내용의 질이나 수준 평가 이전에, 표절 여부를 가리기만도 바쁘니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진위, 엉터리 자료를 가려내는 판단 능력이다. 수집한 정보가 얼마나 믿음직한가라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건 결코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처럼 가짜 뉴스, 불확실한 지식,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진위와 옥석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걸러내고, 덫에 걸리지 않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정치적 꼼수가 숨겨져 있는 주장, 이념 갈라치기에서 비롯된 진영논리, 돈이 걸려있는 사안들에서는 혼란이 한층 날카롭다.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수결이 진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인공지능이 더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대중화되면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언론의 기사나 보고서, 논문 등 실용적 글쓰기의 많은 부분에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일을 더 잘하고 있어, 인간들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화두를 제시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언론과 기자들의 역할에서는 문제가 한층 심각해진다. 인공지능은 이미 언론계 글쓰기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급기야 ‘기자들의 노벨상’ 퓰리처상도 인공지능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성형 AI를 취재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보도 과정에 이를 활용했을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발품을 판 직접 취재를 으뜸으로 여기는 기존의 기자정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천하의 퓰리처상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최종 후보에 오른 45개 기사 가운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사가 5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기계의 종이 되는 현상이다. 원론적으로는,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자나 언론인 개인이 인공지능을 이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가려낼 재간조차 없다.   상상력이나 창조력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이 쓴 문학작품, 특히 공상과학소설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어서, 인간 작가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예수, AI 붓다까지 이미 나와 있다고 하니 감히 종교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이 살상무기가 될 날도 머지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끔찍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매우 구체적이다. AI 도구가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남용하다 보면, 사고 능력이 급속히 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똑똑해지는데, 인간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인공지능 글쓰기 인공지능 예수 인공지능 시대 언론계 글쓰기

2025.07.1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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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먼저 인간이 되라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컸다. 만고의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인간’이란 물론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 빼어난 인간, 성공한 사람, 완벽한 인간, 아름다운 사람을 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술가가 꼭 윤리적인 성인군자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예술가와 세상의 윤리 도덕의 관계는 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창조적인 예술가는 일반적 모범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인, 괴짜, 별종,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예술가니까 그러려니 너그럽게 용서하며 지내왔다. 실제로 반듯한 모범생이 뛰어난 작가로 성공하는 예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예술가에게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도덕군자이기를 요구한다. 그런 기대에서 빗나가면 가차없이 비판하고 냉엄하게 단죄한다. 그 단죄의 칼날이 무자비하게 준엄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친일파, 미투, 공산주의자, 블랙 리스트 등 칼날은 정말 무섭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한번 찍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깝다던 고은 시인 같은 이도 한 방에 가는 걸 보면….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거물도 한 방 맞고 재기하지 못하는 걸 보면 미국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예술세계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비정한 단죄의 칼춤으로 날아가 버린 예술적 성취가 생각보다 많아 당황스럽다. 여기서 하나하나 예를 들 필요는 없겠지만,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 제대로 거론하고 평가조차 하지 못하는 예들이 많은 것이다. 이건 정말 문제다.   단죄의 빌미가 되는 죄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느 한 시기의 잘못이거나, 한 인간의 극히 한 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재수 없게(?) 들켰기 때문에 칼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부분의 허물로 한 인간 전체를 단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친일파 낙인이 찍힌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에서 일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운보 김기창의 바보 산수나 예수의 생애 그림에서 왜색을 느끼지 못한다. ‘한번 친일파는 영원한 친일파’라는 논리는 우습다.   친일파가 그린 영정이나 친일파가 만든 동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작품을 철거하고 새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새로 만든 것이 철거한 친일파의 작품만 못할 때의 허망함이란….   그런데, 그 준엄한 단죄는 도대체 누가 하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미투의 경우는 피해자가 있으니까 그나마 납득할 만한 성토와 고발이 가능하겠지만, 친일파 단죄는?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하는가?   문득 떠오르는 성경 말씀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국 현대의학계의 거목 장기려 선생이 창씨개명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창씨개명을 한 장 선생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한, 장기려는 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사라면 장기려는 나의 친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함석헌은 장기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줄임)… 잠깐 욕됨을 참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을 택하세요.”   -손흥규 ‘청년 의사 장기려’에서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용서와 관용에 대해서 생각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단죄 친일파 낙인 거목 장기려

2025.07.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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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자유의 여신님께 아뢰옵나이다

어이쿠! 자유의 여신 마마, 그동안 기체후일양만강하옵신지요? 불초소생 엎드려 문안드리옵나이다.   이처럼 직접 만나 뵈옵다니 가문의 큰 영광이올시다. 소생, 이 나라에 산 지 그럭저럭 50년이 넘었는데도 문안 여쭙지 못하고 이제야 이렇게…. 황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요, 워낙 멀리 떨어져 계신지라….   아이고, 실물을 뵈니 사진보다 훨씬 미인이시네요. 그런데, 많이 피곤해보이시네요. 그 팔 좀 내리고 쉬시면 안 되나요? 그렇게 줄곧 무거운 횃불을 들고 계시니 팔이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벌 서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안 보는 한밤중에는 좀 내리고 쉬세요. 포도주라도 한잔 하시면서 푹 쉬세요.   그나저나, 무척 바쁘시죠? 독립기념일 무렵이라 정신이 한 개도 없으시겠어요. 네? 그런 것보다 세상이 워낙 어지럽고 요란하게 돌아가는 통에 많이 피곤하시다고요? 정말 그러시겠어요.   그건 그렇고, 소생이 좀 조사를 해봤더니, 자유의 여신 마마께서는 1876년 미국 독립기념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바다 건너오셨더군요. 그렇죠?   아니 뭐 대단한 뒷조사는 아니고요, 그냥 인공지능에 물어본 거예요. 요즘은 컴퓨터 몇 번 두드리거나 AI 시키면 좌르르 다 나옵니다. 그러니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반상식입죠. 정보랄 것도 없어요.   에, 그러니까, 키가 93.5m, 무게는 204톤이고, 머리에는 7개의 대륙을 나타내는 뿔 달린 왕관을 쓰고 있고, 오른손은 횃불을 치켜들고, 왼손으로는 독립선언서를 안고 있고, 발로는 끊어진 사슬과 족쇄를 밟고 있으시죠?   그러니까, 우파는 횃불을 휘두르고, 좌파는 책을 들고 공부하고 뭐 그런 겁니까? 에이, 설마 그런 건 아니겠죠?   알겠습니다. 바쁘실 테니, 간단하게 3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딱 3가지만!   먼저 여신 마마께서는 프랑스에서 바다 건너오셨으니, 이민인 셈이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이민자들을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법이민자 잡겠다고 총 든 군대를 동원하는 이 현실을? 이민의 나라가 이민을 내치다니, 이것이야말로 백인우월주의요 인종차별이라는 항변의 목소리가 높은데, 여신 마마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또, 이 나라는 신(神)의 나라지요? 그래서 지폐을 비롯해 사방에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선명하고 크게 써놓았지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우리는 돈을 믿는다(In Money We Trust)’로 바뀌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500만 달러짜리 영주권 골드카드 신청한 사람이 7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게 말하자면 돈 받고 방 빌려주는 여인숙 주인과 뭐가 다릅니까? 안 그래요? 돈이면 단가요, 뭐! 어찌 생각하시는지? 말 좀 해보세요.   끝으로, 여신 마마께서는 왕조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어떤 고견을 가지고 계신지요? 자기 생일날에 군대 동원해서 열병식 벌이고, 국민들이 아무리 항의해도 들은 척도 않고….   아, 물론 압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잘 알아요. 부를 미덕으로 여기고, 쇼를 진실로 아는 세상이 문제라는 거…. 그러니, 이런 세상을 바로잡을 지혜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빌며 사정하는 거 아닙니까!   아, 말씀 좀 해주세요! 뭐라고요? 좀 크게 말하세요, 크게!   뭐요? 저 강물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니, 잠시만 견디라? 에이, 여보시오! 그런 소리 누가 못해! 알고 보니 이 양반 순 엉터리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제발 손 좀 써주세요, 이렇게 빌겠습니다. 여신 마마는 신이니까 왕보다 높으시잖아요. 그러니 한 말씀만 해주세요, 한 말씀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자유 여신 여신 마마 독립기념일 무렵 독립기념 100주년

2025.07.0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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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훌륭한 의사, 통일운동가의 꿈

세계적인 인공관절 전문의이자 통일운동가 오인동 박사가 지난 6월19일 오후 9시 40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집에서 아들, 딸과 함께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평안한 표정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침 6.25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통일에 관한 글을 쓰던 중이어서 한층 상실감이 컸다. 고인께서는 지난 몇 년간 되풀이되어온 남북 간의 극한 대립을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을 부담스러운 단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3명 중 1명이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2030세대는 절반 가까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젊은 세대일수록 세월이 갈수록 통일과 멀어져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고인께서 생전에 강조하던 말씀이 아프게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분단의 멍에를 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감이 있다. 이 멍에를 내려놓지 않고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 부정하려 해도 달아날 길 없는 우리의 숙제다. …남과 북이 한발씩 굳게 딛고 균형을 이루어 서면 모국의 앞날이 창창하리라 믿는다.”   오인동 박사의 삶은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의사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실천적 통일운동가의 삶이다.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의사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고쳐보려 애쓰는 통일운동가의 삶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다. 그 바탕은 진한 사랑과 평화다. 그이는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오인동 박사는 1939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와서,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며, 하버드대학 조교수, MIT 강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인공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으며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한편,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방문단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열악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의료기술 교류와 통일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헌신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자신이 고안한 값비싼 인공고관절 기구들을 건네주었고, 현지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등의 실천적 활동을 이어왔다.   오인동 박사의 통일운동은 감정이나 이념논쟁에 치우치지 않고, 깊은 연구를 통해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남북한과 해외동포 8000만이 힘을 모으면 세계 5위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시하는 식이다. 그가 제안한 ‘통일대박론’이나 ‘남북연합방 Corea’ 등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표적인 일들로 평가된다.   오 박사는 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간단명료한 슬로건으로 주목받았고, 실천을 공유했다. 그런 공로로 ‘한겨레통일문화상’ ‘윤동주 민족상’ ‘늘푸른청년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특히 통일운동에 있어서 해외동포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남과 북, 해외동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큰 자산을 잃었다.   오인동 박사의 마무리도 ‘좋은 의사’다웠다. 장례식을 따로 거행하지 않고, 시신을 로마린다대학병원에 기증했다. 연구 실습이 끝나면 화장하여, 유해는 고인이 생전 즐겨 다니던 산에 뿌릴 예정이라고 한다. 아름답다.   사랑받는 훌륭한 의사이자 실천적 통일운동가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인다. “조국 통일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던 소원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통일운동가 의사 통일운동가 오인동 실천적 통일운동가 재미한인의사회 방문단

2025.06.2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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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술가들이 꿈꾸는 LA강 사랑

LA강의 중요성과 생태적 복원 가능성과 미래 등을 미술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기획전 〈우리의 강: 물길의 회복과 미래(OUR RIVER: Floodplain and Future)〉는 매우 반갑고 고마운 전시회다.   지난 2023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이 전시회에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작가 16명이 참여하여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의 개성적인 작품을 통해 로스앤젤레스 강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속에서 강의 지속적인 복원과 보전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인류의 문명은 강가에서 시작되었다. 흐르는 강은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노래와 이야기와 색깔이 있었고, 삶과 죽음이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세계의 많은 대도시들이 강을 끼고 발전했다. 서울의 한강을 비롯해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LA에도 강이 있나? 있기는 있다. 샌퍼낸도밸리 지역에서 시작하여 LA 다운타운 등 17개의 도시를 거치며 롱비치 하류로 흘러 태평양 바다에 이르는 51마일의 물길을 우리는 LA강이라고 부른다. 이 중 32마일이 LA의 도심구간을 흐른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 강의 현재 모습은 콘크리트로 쌓은 벽채 같은 물길(水路)이다. 이 거대한 콘크리트 수로는 미군 공병대가 동원되어, 홍수 방지용으로 만든 것이다. 1938년에 시작해 1960년에 완성한 대공사였다.   LA강은 일 년에 8개월은 말라 있는 건천(乾川)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콘크리트 수로는 삭막하다.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물고기와 물새도 다 떠나고, 사람 발길도 끊겨버렸다. 과거에는 송어가 헤엄치던 강이 이렇게 변해 버렸다. 기록에 따르면, 강에서 송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1948년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LA카운티는 나름대로 강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 청계천을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도 나왔고, 일부 지역에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제거되기도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친수성 식물과 나무가 자랐고, 콘크리트 틈 사이로 풀이 뿌리를 내렸다.   LA카운티가 지난 2022년 발표한 LA강 복원을 위한 최종 계획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도 참여하여 관심을 모은다.   환경운동가들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인이자 기자였던 맥애덤스(MacAdams)로 1985년 환경단체 'LA강의 친구들'을 설립하여, 강을 살리는 일에 앞장섰다. 직접 과격한 행동도 감행했다. 이에 주민이 호응하고 정치인이 움직였다. 맥애덤스는 2020년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가들이 뜻을 모아 LA강을 살리자는 취지의 전시회를 연 것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 세상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작가들의 꿈은 LA강을 자연 상태로 살리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물길을 고치려들지 말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길 바란다.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고, 물고기들이 뛰놀고 새들 노래하는 그런 생명의 강으로 만드는 일…. 강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다.   아무튼, 미술가들과 갤러리의 합심으로 뜻깊은 전시회가 꾸려졌다. 아무쪼록 많은 이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LA강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강한 공론의 마당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예술과 함께 아파하고 꿈꾸는 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맑은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삭막한 사막 도시이기에 더욱 시원한 강이 필요하다.   전시회는 오는 6월28일까지 ‘샤토 갤러리’에서 열린다. 장소현 / 미술 평론가·시인문화산책 미술가 la강 la강의 중요성 콘크리트 수로 콘크리트 구조물

2025.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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