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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동요 ‘고향의 봄’과 친일파 논쟁

사노라면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속으로 흥얼거린다. 그러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편안해진다. 들끓던 마음도 잔잔해지고, 혈압도 내려간다. 그러니까, 내게는 동요 흥얼거리기가 마음 다스리기의 한 방법인 셈이다. 어렸을 때 익힌 노래는 그렇게 평생을 간다.     동요 ‘고향의 봄’도 내가 자주 웅얼거리는 노래 중의 하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삼팔따라지의 자식으로, 마땅한 고향이 없는 내게 이 노래의 장면은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유달리 강하게 각인된 모양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노래에 묘사된 집이 내 대학시절 스승님의 생가(生家)라고 한다. 그래서 내게는 한층 더 특별한 노래가 되었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이 좀 먹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국민동요쯤으로 인정받던 명곡이다. 일제강점기, 만주나 연해주 등을 떠돌던 동포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타향살이에서 부르면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해져 온다.   이원수(1911~19881) 작사, 홍난파(1897~1941) 작곡의 이 노래는 1926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100주년이 되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이 노래의 무대인 경남 창원시가 ‘고향의 봄 창작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축제처럼 다양한 문화행사를 계획한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국민동요의 무대이니 자랑할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애국적(?)인 시민단체들이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유는? 작사가, 작곡가가 친일파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원수와 홍난파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친일행적이 있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창원시는 “작가의 친일 행적을 기리려는 것이 아니다. 서정동요 ‘고향의 봄’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자원으로 확산시키고, 문화도시 창원의 정체성을 세계로 알릴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기념사업 반대 시민대책위’를 결성해 활동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친일파의 작품과 관련해 행사를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며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마음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며 답답해진다. 아니,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친일파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려왔단 말인가? 그런데, 도대체 이 노래의 어디에서 친일 냄새가 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롭고 나쁜 노래라면 애당초 금지했어야지, 왜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 평생 가슴에 박히게 했는가? 대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 논쟁은 고약한 구석이 참 많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인가를 판단할 기준도 애매하고, 한때의 잘못을 이유로 한 예술가가 이룬 평생의 업적을 단죄하고 지워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단죄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마땅치 않다. 애당초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친일파, 공산주의자, 미투 가해자는 치명적인 죄인이다. 일단 걸리면 끝장이다. 그 무자비한 칼날에 참 많은 문화예술계의 인재들이 날아갔다.   광복 80주년이 지났지만, 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결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부터는 무슨 노래로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동요 친일파 논쟁 친일파 공산주의자 동요 흥얼거리기

2026.02.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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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전 세계가 함께 부를 아리랑

‘방탄소년단’ 덕분에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새 출발의 상징으로 〈아리랑〉을 앞세워 정체성을 강조한 것은 참 고맙고 현명한 선택이다. 이제 세계 젊은이들이 뜨거운 열기로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면 벌써 설레고 두근거린다.   한편, 올해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영화 초창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걸작으로 평가되는 〈아리랑〉은 1926년 10월1일 단성사에서 개봉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제강점기 억압받던 백성들의 민족정기를 불러일으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나운규는 이 영화의 감독, 주연배우, 제작, 각본을 담당했고, 주제가 〈아리랑〉의 가사도 지었다. 본조(本調)아리랑 또는 경기 아리랑으로 알려진 전통민요에다 나운규 감독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새로 창작한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이 노래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대표 아리랑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정서와 한과 기쁨, 그리움 등을 강하게 담은 민요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민족의 영혼이다.   아리랑에 미쳐서 평생 아리랑을 연구한 김연갑씨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리랑은 통곡이다. 피다, 분노다. 아리랑은 깃발이다, 이정표다. 아리랑은 한없는 그리움이다. 아리랑은 이 땅에 있는 것 중 거의 유일하게 국산이다. 아리랑은 이 땅의 소리다, 아리랑은 참말이다. 아리랑은 바로 민족의 힘이다.”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약 60여 종, 3600여 수의 아리랑이 전해지고 있으며, 소련이나 일본, 만주 등 우리 겨레가 사는 곳 어디에나 아리랑이 있어, 재외동포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아리랑이 전해오고 있는데, 정작 ‘아리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20여 가지의 다양한 학설이 있을 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으로 지역마다 특색 있는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리랑은 단순히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되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현재진행형’ 문화유산이다. 조용필의 〈강원도 아리랑〉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클래식에서도 지난 2008년 2월,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가 역사적인 평양 공연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아리랑 환상곡〉은 지금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난다. 아리랑이야말로 남과 북을 묶을 수 있는 우리 노래라는 이야기다. 북한의 최성환이 편곡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더러 공연된다.   아리랑은 노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민족 정서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김산의 〈아리랑〉,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LA 한인사회에서 공연된 4·29 폭동을 주제로 한 연극 〈민들레 아리랑〉 등등….   아리랑은 우리 겨레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민들레처럼 피어난다. 그렇다면, 이 미국 땅에서도 나성 아리랑, 뉴욕 아리랑, 재미교포 아리랑 같은 아리랑이 나올 법하지 않은가….그런데, 아쉽게도 전해지는 것은 〈상항 아리랑〉 한가지뿐이다. 상항(桑港)은 샌프란시스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뽕 따러 가려거든 산으로나 갈 것이지/ 수만 리 갯가로 와 봉변을 당하나’   아리랑 이야기를 하는 김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리랑을 소개하고 싶다. 〈삼팔선 아리랑〉이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 세 쪽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 한 덩어리 된다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아리랑 세계 강원도 정선아리랑 민들레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2026.02.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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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는 글로 된 보석

맑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훌륭한 사람이 참 많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언제든지 고개를 숙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고개 숙일 사람이 너무 많다. 물론 신문이나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지만, 이런 멋진 사람들 덕에 세상이 그나마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고맙다.   최근에 내가 감탄한 사람은 예술가 김창훈이다. 그룹 '산울림' 삼형제의 둘째인 그는 지극한 시 사랑을 실천하여 관심을 모은다. 1000편의 시에 1000개의 곡을 붙인 ‘시노래’ 창작자로 다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작곡에 대한 꿈틀거림을 토해내야 하는데 글감이 필요하잖아요. 그때 만난 게 ‘시’였어요. 아름다운 시에 내가 만든 곡을 붙여보자. 곡이 완성되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연습한 다음 촬영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렸어요. 그렇게 1000곡의 시노래가 쌓였어요.”   ‘내 정체성’을 찾으려는 절박함이 시를 찾게 했다는 이야기다.   5년 전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읽고 난 뒤 매일 한글 시 하나에 음악을 붙여 만든 ‘시노래’ 작업의 마지막 1000번째 시는 2022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의 〈정말 그럴 때가〉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생애 첫 단독 공연을 열고, 에세이집도 내고, 직접 그린 추상화로 전시회도 열어…. 그야말로 ‘종합 예술인’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전국에 있는 문학관을 찾아 공연하는 ‘노마드 시노래 투어’를 통해 시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시와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예술 세계를 만들어왔다. 시를 가사로 사용하거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 작품은 대중음악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음악들은 시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음악의 선율이 결합하여 독특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데 김창훈의 시노래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시인 한 사람 당 시 한 편만 골라서 노래로 만든 것. 더 많은 시인의 시를 만나는 게 목표였고, 세상에 시를 선물한 시인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둘째는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시 그대로 작곡한 것. 시인이 그렇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그는 한국 현대시의 태동기로부터 일제강점기 민족시인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등과 이상, 백석 같은 천재 시인을 비롯해 기형도, 나태주, 도종환, 신달자, 장석주, 정호승, 허수경 등의 시에 곡을 붙였다. 요새 인기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도 노래했다.   그러니까, 시인 1000명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는 이야기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실은 김창훈 자신이 '산울림'의 명곡 ‘나 어떡해’ ‘회상’ ‘산할아버지’ ‘독백’ 등의 가사를 지은 시인이다. 그러니 얼마나 세심하게 읽고 골랐을까?   “시는 온전히 암송할 수 있어야 진짜 내 것이 돼요. 그냥 시를 한 번 읽는 것은 진열장에 있는 보석을 쓱 보고 지나치는 것과 같아요. 시를 외워서 소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는 말한다. 시는 글로 된 보석, 마음을 아름답고 부유하게 만드는 진짜 보석임을 알게 되었고, 세상에 진짜 보석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제 마음들을 솔직히 담은 ‘시노래’가 한줄기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그대가 겪는 슬픔과 아픔은 누구나 가진 것이라고.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말이죠.”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보석 보석 마음 노마드 시노래 진짜 보석

2026.02.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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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K-컬처의 선구자 백남준

K-컬처의 기세가 무섭다. ‘케데헌’이 기대했던 대로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그래미상과 아카데미상도 기대할 만하다는 전망이다. 방탄소년단의 활동 재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리랑’을 대표곡으로 내세운 것이 뜻깊다.   이처럼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K-아트의 인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선구자, 개척자의 땀과 눈물 덕에 지금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그 선구자, 개척자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단연 백남준(1932-2006)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20세기를 대표한 세계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평가받는 백남준…. 그 백남준이 올해 20주기를 맞았다. 1월29일이 20주기 기일이었다.   한국에서는 2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26년 한 해, “그의 평화와 실험의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며 온 세계와 공유하고 더 많은 대화와 연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우선, 1960년대 중반 나왔던 백남준의 로봇 조형물 ‘K-456’을 복원해 과거처럼 구동시켜, 로봇 오페라를 공연하는 기념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이어서,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 작가들의 기획전, 백남준 미술사 심포지엄, 관련 퍼포먼스, 작업을 망라한 백남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고인의 행성 우주 작업을 결산하는 기념 전시 등의 행사가 일 년 내내 열릴 예정이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국사회에 제대로 소개하고 조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어령 교수였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고, 벽을 허물고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평생에 걸쳐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이어령은 백남준 예술의 바탕에 깔린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읽어냈고, 천재가 창조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한국의 문화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령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한국의 혼’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등 한국적 미학과 철학을 담아낸 그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주력해,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답하듯 백남준은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등의 혁신적 작품을 내놓았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설치하여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한국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지금 백남준을 다시 소환하는 까닭은 K-컬처의 바람직한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그가 겪어온 길을 살펴보면 앞날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사유는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기술, 삶의 윤리 속에서 공명하는 ‘진행형’입니다. 전쟁과 분열, 기후위기와 불신이 겹쳐지는 오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의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백남준은 연결을 통해 적대의 언어를 넘어서는 길을 보여주었고, 기술을 단절이 아니라 공존의 회로로 상상했습니다.”-〈백남준아트센터〉의 새해 인사 한 구절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철학을 깊이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그의 육성을 새겨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그는 참 많은 명언을 남겼다.   “한마디로 전위예술은 신화를 파는 예술이다.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 목적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다.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世紀)적인 예술가입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선구자 백남준 백남준 미디어아트 백남준 예술 기획전 백남준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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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 시대 스승의 귀한 가르침

쇠귀(牛耳) 신영복(1941-2016) 선생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직접 모시고 배운 것은 아니고 책을 통해 얻은 가르침들이지만,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즐겁게 공부했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넘나드는 그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가르침들은 은근하게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향기롭게 농익은 삶의 지혜들….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맞으며 선생의 책들을 찾아 다시 읽었다. 첫 책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린 〈담론〉까지. 전에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스승’ ‘평화와 공존의 참 의미 전달한 지식인’ 등의 칭송을 새삼 실감했다. 선생의 책들은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참 선비의 글이다.   선생께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들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가슴에서 발까지 가는 여행”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신영복 사상의 핵심은 쇠귀체, 민중체 등으로 불리는 붓글씨 작품에 잘 요약되어 있다. 처음처럼, 손잡고 더불어,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누구나 꽃, 더불어 숲,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등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가진 말씀들….   신영복 선생의 많은 가르침 중 내가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새긴 것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 아름다움(美)에 대한 해석, 변방에 대한 애정 등이다.   선생께서는 통일(統一)보다 먼저 통일(通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자의 화동(和同) 담론을 한반도 통일론에 적용한 말씀이다.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 억지로 하나가 되기보다 통일(通一)에서 통일(統一)로 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술 이론을 공부하는 나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신영복 선생의 해석은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었다. 美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양(羊)이 크다(大)는 말이 된다. 양을 중요한 양식으로 삼는 유목민들에게 양이 큰 것은 곧 아름다움이라는 설명이다. 삶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아주 적확하게 일러주는 말씀이며, 삶과 동떨어져 혼자 우쭐대는 예술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변방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의 변방을 찾아다니고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문명은 늘 버려진 땅 변방에서 일어나 꽃 피웠다는 성찰이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이지만, 변방은 늘 새롭게 열릴 가능성으로 가득한 역동의 땅이라는 가르침이다. 디아스포라의 가능성과 저력에 주목하는 가르침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모든 것이 K자를 달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신영복 선생의 변방 사랑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이 말씀은 제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 한 귀퉁이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해외동포인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준다.   미국의 한인사회는 그동안 변두리 변방으로 푸대접받아 왔지만, 실은 세계무대를 향한 가장 앞자리에 있는 ‘전진기지’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자각과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때다. 그 큰 책무를 제대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지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르침 스승 한반도 통일론 신영복 선생 정치적 통일

2026.01.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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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별들의 빈 자리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호일까?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에 걸친 짧은 기간에 여러 명의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갔다.   이순재, 김지미, 안성기, 윤석화…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중문화의 주역들이다. 여기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윤일봉, 남포동, 한명숙, 송대관, 이상용, 전유성, 변웅전, 송도순 등의 유명 연예인을 더하면 정말 한 시대가 저문다는 실감이 강해진다.   세계적으로도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성격배우 진 해크먼, 개고기 식용 반대에 앞장선 프랑스 배우 브리지드 바르도, 철학적 예술영화를 만든 마지막 거장 헝가리의 영화감독 벨라 타르 등 큰 별이 졌다.   대중문화의 주인공들이 중요하게 평가되며 대접받는 것은 그들이 한 시대를 기록했고, 대중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가령 누가 주연으로 나오는 무슨 영화를 언제 어디서 누구랑 같이 봤는데, 그 당시 사회상은 이러저러했다는 식이다. 연애 시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을 때 본 영화나 연극, 음악 등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나간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것이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가신 이들의 빈 자리가 한층 더 커보이는 것이다.   가신 이들의 빈 자리를 누가 어떤 식으로 채울까? 세월이 흐르면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순재의 빈자리를 신구, 박근형 등이 채울 수 있고, 무섭게 떠오르는 젊은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의 혁신적 변화를 보면, 단순히 사람이 바뀌는 것으로 그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양상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람과 기계의 싸움에서 인간이 기계에 밀려 점점 왜소하고 초라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큰 인물이 나오기가 어려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문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공감을 통한 감동, 즉 진한 사람 이야기, 사람 냄새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스크린을 보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느낌을 갖는 일체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경험의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계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동이 점점 사라져간다.   지금의 추세로는 머지않은 앞날에 영화도 기계가 만들어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열정과 땀으로 빚어내는 영혼의 작업이 아니라, 차가운 기계가 명령대로 찍어내는 영화의 시대… 실제로 할리우드에는 이미 인공지능 배우가 등장했고, 여러 분야에서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게다가 대중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고, 안방에 편안하게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기로 영화를 감상한다. 그리고, 오늘의 대중은 끈적이는 인간적 감동보다 산뜻한 재미와 자극적 쾌락을 추구한다. 집단적 일체감이나 공동체 의식 따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라지고 ‘나들’의 세상로 변해가고 있다. ‘나들’이란 나의 복수다. ‘우리’와는 달리 각 개인의 자아가 살아있는 집단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관계보다 독립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개념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뭉클한 감동이 생기기 어렵고, 대중문화도 그런 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삭막하다.   아무리 편리한 것이 좋다지만, 사람냄새 물씬한 감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가신 이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철학적 예술영화 영화감독 벨라 레드포드 성격배우

2026.01.1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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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샘터'의 휴간을 보는 마음

나이가 좀 든 이들은 월간잡지 '샘터'를 기억할 것이다. 작고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뜻밖에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알차게 실려 있던 잡지, 맑고 시원한 물 찰랑거리는 샘터 같은 책…. 개인적인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그 월간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창간 56년 만이다. 무기한 휴간에 대해 김성구 발행인은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고, 힘을 길러서 맑은 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독서 인구의 감소, 인쇄 매체의 전반적 쇠퇴로 영상 콘텐츠가 활자 미디어를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못 이겨 일단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가 저물고, 종이책의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위기를 실감하며 마음이 짠하다. 출판 잡지계 전체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월간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1970년 4월 창간된 한국 최장수 교양지다. 창간발행인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스타 필자’들의 맛깔나는 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쓴 진솔한 글들이 어우러져 공감대를 이루며 큰 사랑을 받아, 디지털 시대 전인 1990년대 초까지는 월 50만 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 교수,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 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이 지면을 빛냈다. 소설가 한강, 정호승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샘터의 맑은 물을 마시며 성장했다. 최인호는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을 34년간, 법정 스님은 수행 중의 사색을 기록한 〈산방한담〉을 16년간 연재했다. 장욱진, 천경자, 이종상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표지 그림과 삽화로도 유명하다.   샘터가 월간지로 사랑받아 온 비결의 핵심은 독자들의 사람 냄새 물씬한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만1000여 개에 이르는 독자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서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고 한다.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깊은 공감과 감동, 웃음을 자아내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을 위로했다.   휴간호인 2026년 1월호의 표지는 창간호와 같은 반 고흐의 그림 ‘장미와 해바라기’로 꾸며졌고, 특집도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젊음을 아끼자’를 주제로, 창간호에 기고했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오랜 단골 필자였던 이해인 수녀,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던 정호승 시인 등의 글이 실렸다. 창간호와 같은 표지그림과 특집을 실은 의미를 더듬어 보게 된다.   월간 샘터는 지난 2019년에도 그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 방침을 발표했으나, 당시 기업 후원과 애독자들의 구독 참여 등 각계에서 뜨거운 성원이 잇따르면서 재발간되어 발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지?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오는 현장에 서 있는 심정은 참 복잡미묘하고 서글프다. 나 같은 아날로그 글쟁이의 마음은 한층 심하게 일렁인다. 세상이 변해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걸 지켜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저력이다. 그래서 김성구 발행인의 말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월간 샘터는 잠시 쉬어 가지만… 물질보다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샘터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갈 방법을 모색해나가겠습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샘터 휴간 샘터가 월간지 월간잡지 샘터 월간 샘터가

2026.01.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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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비우고 가벼워지는 새해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모든 날들이 부디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 기쁨, 보람, 자랑스러움,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해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한문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싶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지 등등… 야무지게 결심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작심삼일! 그래도, 또 새해 아침이면 올해는 무슨 일에 집중할까를 궁리하게 되네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올해 나의 새해결심은 ‘뺄셈 공부’로 정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는 날짐승이잖아. 그런데 무거운 새는 못 날아요. 그때는 날개가 덮개가 되죠(웃음). 인간도 몸이 불으면 못 날아. 늙고 병들면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빠지고 어깨에 힘이 빠져요. 비극이지. 그런데 마이너스 셈법으로 몸이 가벼워지면 날아요. 고통을 통과해서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위로 떠요.   덩컨 맥두걸이라는 학자가 실험했어요. 죽은 후 위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게를 쟀더니 21g이었죠. 그러니 죽어갈수록 더 보태지 말고 불순물은 빼야 해요. 21g의 무게로 훨훨 날아야지요.”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 말씀대로 훨훨 날기 위해서는 빼고, 버리고, 비우고, 정리해서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 그런 눈으로 주위를 보니 웬 쓸데없는 물건이 이리도 많은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하는 일에 대한 집착도 줄이고, 몸무게도 줄이고, 똥배도 줄이고…. 온통 버릴 것, 없앨 것, 줄일 것, 뺄 것투성이네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 가장 급하네요. 욕심, 집착, 헛꿈, 지나친 기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찾아보니, 명상, 종교적 묵상, 좌선, 기도 등등 마음을 비우고 챙기고 다스리기 등 수련방법이 참 많네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최근에 알게 된,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입니다. 하와이 말로 ‘호오’는 원인 또는 목표, ‘포노포노’는 완벽함을 의미하므로, 합쳐서 ‘호오포노포노’는 ‘잘못을 바로잡는다’라는 의미를 담는 단어가 된다네요.   고대 하와이의 전통적 기법은 종교 지도자가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현재의 수행방식은 혼자서 하는 방법으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억을 해방시키는 전통적 문제 해결법이 현대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신체적 혹은 정서적, 정신적 고민과 고통을 알아채고, 정화를 시작하면 되는데, 정화는 4개 문장을 되뇌는 것이 전부라네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마법의 네 단어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정화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도 때도 없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지 말고 나의 내면을 향해 되뇌면 마음 편하겠지요.   올해는 버리고 비워,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부디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새해 새해 결심 전통적 문제 고대 하와이인들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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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그리스도의 사랑 담은 미술

40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페테르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지난 11월 30일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약 300만유로(약 352만 달러)에 낙찰됐다는 기사가 성탄절을 앞둔 시기라서 눈길을 끌었다.   루벤스뿐 아니라 서양미술의 거장들은 거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광경을 그린 명작을 남겼다. 현대미술에서도 루오, 샤갈, 고갱, 달리 등이 그린 유명한 작품이 많다.   우리 한국미술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 미술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조각가 최종태의 한국적 성상(聖像), 한국화가 김병종의 ‘바보예수’, 서양화가 권순철의 ‘예수님 얼굴’ 등 우리 시대 한국의 종교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종교관과 예술관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가 서양의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말해준다.   성탄절을 맞아 이런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이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이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박해, 공생애, 수난과 부활, 승천 등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의 전통 풍속화로 재해석하여 파노라마처럼 화폭에 담아낸 역작으로, 한국 종교미술 토착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예수님의 삶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하여,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선녀의 모습으로 표현된 천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모 마리아, 조선시대 복색을 한 인물들과 초가집 기와집 등 전통 가옥과 자연 등이 마치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이야기를 그린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과감한 시각, 기독교의 한국화라는 관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미술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전쟁 중에 탄생한 성화(聖畵)로 전쟁과 종교그림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상징성이 큰 울림을 준다. 운보는 한국전쟁 중인 1952∼53년 아내 박내현의 친정이 있는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미국 선교사의 권유로 예수의 생애를 그리기 시작하여, 1년여 만에 29점을 완성했다.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그 3년 뒤, 부활 그림을 추가해 30점으로 완성했다.     “온 국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예수의 행적을 그려보는 것도 계기가 될 것 같아 성화를 그리는 것으로 암울한 시기를 이겨 나갔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전쟁 속 우리 민족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 한국적인 성화를 제작했다는 설명이다. 피난시절의 가난과 엄혹한 환경, 화구도 구하기 힘든 여건에서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성화를 그리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 이 연작을 그리던 시기에는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대낮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성화 작업에 몰입했다고 고백했다.   이와 같은 아픈 사연이나 시대배경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새삼 숙연해지고, 왜 한국적 풍속화로 재해석해서 그렸는지도 공감하게 된다.   참고로, 운보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감리교회에 다녔고, 스승의 권유로 장로교회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막내딸이 ‘수녀회’에 입회한 것을 계기로 일흔 살에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꾸준히 김 추기경과 교유하였으며, 장례미사도 추기경이 집전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그리스도 사랑 예수 그리스도 한국 종교미술 우리 한국미술

2025.1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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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올해, 시대를 떠난 이름들

해마다 연말이면 신문에 단골로 실리는 것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기사다. 우리와 친숙했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던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국제적인 인물로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이태리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01~2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모든 활동과 지향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4년 한국 방문 때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장애인들도 만났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올해 별세했다. 현대 건축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게리는 “건축은 인간 삶의 혼란과 감정, 민주적 정신을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예인으로는 지난 11월2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미녀배우 김지미, 원로배우 윤일봉, 코믹 감초연기로 유명한 배우 남포동,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 ‘쨍하고 해뜰 날’의 가수 송대관, 개그계의 맏형 전유성, ‘우정의 무대’ 사회자로 군인들의 큰 형님으로 알려진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 연극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한 배우 이주실, 배우 김새론, ‘명랑운동회’ 사회자로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국회의원을 지낸 변웅전 등이 올해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이순재는 69년 연기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간 ‘평생 현역’ 배우로, 노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철학, 확고한 직업의식을 통해 후배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정부는 고인에게 문화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미국의 인기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쳐’ 등의 영화에서 개성적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진 해크먼, 영화 ‘대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고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다이앤 키튼, ‘킬링 미 소프틀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로버타 플랙 등이 올해 타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드는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던 ‘할리우드의 위대한 별’이었다.   한편, 한국 문화예술계의 인사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 시인’ 이생진, ‘엉겅퀴꽃’, ‘철원 평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 민영 시인, 소설가이며 시인, 화가로 활동한 윤후명 작가, 재일동포 소설가로 1972년 외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얼과 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한, 특히 예술가 초상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육명심, 한국화가 홍석창 등도 올해 타계했다.   또한, 제3세계 최고 권위의 로터스 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박경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케냐의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 응구기 와 시옹오, 소설 ‘천상의 푸른 빛’ 수필집 ‘노인이 되지 않는 법’ 등의 저자인 일본작가 소노 아야코 등이 올해 별세했다.   미주 문인으로는 시인 겸 소설가 곽상희 작가, 김신웅 시인, 조만연 수필가, 김태영 동화작가, 손명세 시인, 영어 교재 저술가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한 조화유 작가 등의 원로 문인들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원로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젊은 문인들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한인사회의 따스한 관심도 절실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름 국민배우 이순재 미녀배우 김지미 프란치스코 교황

2025.12.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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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인타운글판을 꿈꾸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꼭 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이 참 많다. 그런 꿈 중의 하나가 우리 코리아타운에도 ‘광화문글판’ 같은 것을 만들자는 시도였다.   한인타운의 잘 보이는 곳에 미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 구절을 예술적으로 멋지게 써서 걸어놓아, 보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미주 한인 화가의 그림을 곁들이면 더 좋겠다는 야무진 꿈이었다.   그렇게 시를 생활 속으로 가져와 삶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키면, 시인들도 좋고 한인타운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실천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분들을 여럿 만나 브리핑 비슷한 것도 했다. 그런데, 다 될 듯 될 듯하다가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돈이 꽤 드는 번거로운 일인데다가, 글판을 내걸 마땅한 장소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서울의 광화문글판처럼 걸어다니며 읽을 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었다.     글판의 시 읽느라고 머뭇거리다가 자동차 사고라도 나면 그런 낭패가 없을 터다.     더욱 서글픈 것은 먹고 살기도 바쁜 판에 누가 시 나부랭이를 읽을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현실이었다. 아무튼, 야무진 꿈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충분하고 남았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시작돼 올해로 35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문화의 창이자 시민들의 벗으로 자리 잡았다. 시가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35주년을 기념하여 교보생명은 〈시민이 뽑은 최고의 광화문글판〉을 선정, 발표했다. 시민 2만2500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베스트 광화문글판’으로 선정되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구가 담긴 광화문글판은 2009년 가을에 내걸려 시민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견디며 익어가는 인내와 회복의 메시지’가 시민의 일상에 다정한 위로로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나태주의 〈풀꽃〉, 문정희의 〈겨울 사랑〉, 정현종의 〈방문객〉 등이 큰 사랑을 받았고, 김규동의 〈해는 기울고〉, 유희경의 〈대화〉, 허형만의 〈겨울 들판을 거닐며〉, 이생진의 〈벌레 먹은 나뭇잎〉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혔다고 한다.   참고로, 광화문글판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 사옥 외부에 내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글판이다. 이곳은 하루 평균 통행객이 100만 명에 달하는 곳이다. 매년 계절마다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 한 글귀를 인용해 새롭게 꾸민다. 그동안 윤동주, 고은, 강은교, 정호승, 도종환, 김용택, 안도현, 공자, 헤르만 헤세 등 동서양의 현인과 시인의 작품이 인용됐다.   길에서 잠깐 읽고 지나가는 30자 남짓의 짧은 글이지만,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면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구를 고르기 위해 시인, 소설가, 광고인, 언론인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가 따로 운영되고, 대중의 감성도 고려하기 위해 교보생명 직원 투표를 거친다고 한다. 많은 품과 정성이 드는 일이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 이같은 사업을 펼치기는 여러모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한인타운을 지나노라면 “아, 저기쯤에 멋진 시가 피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멋진 시가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은 ‘꿈꾸러기’의 이룰 수 없는 헛꿈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서울 광화문 미주 시인 장석주 시인

2025.12.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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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배우 이순재가 남긴 가르침

‘영원한 현역 배우’ 이순재 선생은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가르침들은 배우로서는 물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인생 지표가 된다. 힘들고 외로운 타향살이에 시달리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도 큰 격려와 자극이 되는 교훈들이다. 특히,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 된다.   고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기사나 추모글과 영상이 이미 나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인의 삶에서 닮고 싶은 덕목,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 몇 가지를 되새기고 싶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 이순재 선생은 많은 면에서 모범을 보여준 좋은 어른이요, 스승이었다. 한국정부가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면서 밝힌 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후학 양성과 의정 활동 등을 통해 예술계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문화예술인”이었다.   고인이 남긴 많은 덕목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어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과감한 도전정신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자세는 많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귀감이 되었다.   어떤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용기는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순재 선생은 연극, 드라마, 예능, 시트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평생 4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창조해낸 인간상도 근엄한 임금부터 완고한 아버지, 치매 걸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사극 〈허준〉의 따뜻한 스승 유의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유럽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의 직진순재 등의 다양한 변신은 도전정신과 노력의 산물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젊은 정신’은 연극무대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1956년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1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노년에도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리어왕〉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줬다.   2023년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의 주연을 맡아 명연기를 펼쳤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의 공연시간은 200분에 달했고, 리어왕 역의 대사 분량은 살인적이었다. 78세의 노배우 이순재는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었다. 존경스럽다.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 때는 공연 중 몸이 아팠지만,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공연을 마치자마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리고, 담당의사의 강력한 휴식 권고를 받고 하차했다. 세상이 말하는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서 힘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어서 닮고 싶은 것은 철저한 직업정신이다. 그는 늘 “무대에서 죽는 것이 꿈”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또 배우고 싶은 것은,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자세다. 철학도 출신답게 끊임없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반성과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 정말 닮고 싶다.   그는 말했다.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대배우 이순재 노배우 이순재 이순재 선생 최고령 리어왕

2025.12.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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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명연주와 눈물이 만나는 순간들

요새는 음악감상도 유튜브로 하게 된다. 집에 제대로 된 음향기기도 없고, 가지고 있는 음반도 빈약하고, 음악감상을 할 공간도 마땅하게 없는 형편이니, 만만하고 편리한 유튜브에 기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음악에게 미안할 때가 참 많다. 음악의 본질인 소리를 충실하게 듣지 못하는 미안함이다. 고전 문학작품을 다이제스트로 읽거나, 그림을 작게 축소된 도판으로 보는 그런 아쉬움과 미안함….   하지만, 뜻밖의 선물도 있다. 지휘자나 연주자, 청중의 생생한 표정을 보면서 입체적인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령 눈물을 흘리면서 연주하는 모습, 울음을 참지 못하는 청중의 얼굴 말이다.   노장 호로비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이런 것은 음반으로 감상할 때는 얻을 수 없고, 연주회장에서도 먼 뒷자리에 앉아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이다.   음악을 들으며 울어본 경험이 있으신지? 음악과 눈물의 영상 몇 가지를 소개한다. 유튜브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장면 1. 거장 호로비츠의 눈물   20세기 피아노의 전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비엔나 골든홀에서 열린 마지막 리사이틀. 그의 손끝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 제13곡 선율이 흐른다. 연주가 끝난 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객석을 바라본다.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눈에 담는 듯한 그 시선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축축하게 흐른다.   또 하나의 감동적 영상은 호로비츠가 1985년에 모스크바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 혁명을 피해 탈출한 뒤 미국에서 활동하던 호로비츠는 조국을 떠난 지 무려 61년 만에 82세 노인이 되어 모스크바에서 콘서트를 가졌고, 앙코르곡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카메라가 조용히 건반 위 호로비츠 손을 떠나 객석에 앉아 있는 한 러시아 청중 얼굴로 옮겨갔다. 중년 남자의 뺨에는 한 줄기 더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국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던 노년의 피아니스트는 어떤 마음으로 연주했을까? 그 음악을 듣는 모스크바의 청중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장면 2. 마음의 눈으로 흘린 눈물   선천적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츠지이 노부유키는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비가’를 연주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으로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츠지이 자신이 작곡한 이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통감한 조국의 아픔이 눈물로 흘러내린 것이다.   #장면 3. 빗방울 전주곡과 눈물   올해 제19회 쇼팽 콩쿠르에 출전한 나카가와 유메카(24)의 연주는 오래 기억에 남을 한 장면으로 꼽힌다.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 나카가와는 2차 예선에서 쇼팽의 24개 전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전주곡 15번, 이른바 ‘빗방울 전주곡’을 칠 때 나카가와의 안경 너머로 눈물이 비쳤다. 감정이 북받친 표정이었다. 곡에 담긴 감정을 체험하며 쳤던 것일까?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마요르카섬에서 지내던 때, 어느 날 상드가 아들과 함께 외출했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 폭우로 변하자, 연인을 걱정하는 쇼팽의 사랑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곡이다.   나카가와는 3라운드에 오르지 못했지만, 현장과 인터넷으로 지켜본 청중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했다. 눈물 흘리며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간 피아니스트의 모습….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그 순간 그녀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가 만든 결과였을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눈물 음악과 눈물 연주자 청중 빗방울 전주곡

2025.11.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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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멋진 노익장에게 박수를!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낱말은 참 든든하다. 자주 듣고 싶은 말이다. 나이가 많음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기차고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어르신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가을 산의 빛나는 단풍처럼 아름답고, 태양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로 잠기는 장면처럼 장엄하기도 하다. 사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주위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도 대단하다.   최근에 나는 멋진 노익장 몇 분을 연달아 만나 젊은 기운을 듬뿍 받는 복을 누렸다. 큰 행운이다.   지난 11월1일에는 원로 방송인 위진록 선생님(97)과 한국의 정순진 교수가 나눈 손편지를 모아 엮은 책 ‘세월의 흔적’ 출판기념 잔치를 거들었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종기 시인(86)의 새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를 반갑게 읽었다. 그리고 며칠 뒤엔 원로 아동문학가 홍영순 선생이 새로 낸 책 ‘노인을 위한 동화’를 받았다.   ‘세월의 흔적’ 위진록 선생과 한국의 수필가 겸 문학평론가 정순진 교수가 8년 동안 나눈 손편지 200여 통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속표지에는 ‘손편지: 아름다운 사연,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적혀있다. ‘태평양 세기 연구소(PCI)’ 스펜서 김 대표의 후원으로 발행되었다.   두 분이 나눈 편지에 무슨 거창한 철학이나 거대 담론을 담은 것이 아니고, 사람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 진솔한 사연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준다. 두 사람 사이의 30년이라는 나이 차,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 LA와 한국의 대전이라는 거리를 훌쩍 넘어서는 인연의 힘, 손편지라는 아날로그 정서가 어우러진 사람냄새가 감동으로 스며든다. 뭐든지 편리한 것만 찾는 디지털시대에 대한 경종으로 들리기도 한다.   마종기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에는 80대에 들어선 이후에 쓴 시 43편과 산문 ‘영웅이 없는 섬’이 실려 있다. 마종기 시 세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은, 조국에서 쫓겨나 해외에서 디아스포라 시인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긴 세월의 고통, 그 고통 속에도 결코 허물어질 수 없었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홍영순 선생의 ‘노인을 위한 동화’에는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11편의 동화와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어 이채롭다. 책 제목이 아예 ‘노인을 위한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나 ‘성인동화’는 이미 좋은 작품이 많지만, ‘노인을 위한 동화’란 용어는 금시초문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를 썼는데, 인생의 가을을 살면서 저절로 노인을 위한 동화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노인들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선 인간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글에 철학적 신학적 깊이가 생기게 된다. 아무튼, 이참에 ‘노인 동화’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한편, 미술 쪽에서도 현혜명, 신정연 같은 원로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에서 보여준 과감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젊은 작가들보다 더 새롭고 신선하다.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대로 우리 미주 한인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노령화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으로 이민사회는 더욱 위축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노익장의 존재가 한층 고마운 것이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더 좋아지는 상태를 키워야 우리 사회도 젊고 건강해질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노익장이라는 낱말을 ‘젊근이’ 즉 젊은 늙은이 또는 ‘농익은 청춘’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내 멋 대로의 생각이지만….   멋진 노익장들에게 힘찬 박수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노익장 박수 노인 동화 노인들 이야기 마종기 시인

2025.11.2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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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술관의 스파이와 현대미술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비앙카 보스커(Bianca Bosker)가 쓴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원서 제목은 ‘Get the Picture’다.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도대체 뭘 그린 거야? 이것도 예술이야? 왜 요즘 예술은 대중을 따돌리는가?” 같은 현대 예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시니컬한 문장으로 통쾌하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으며, 유명 아트페어에서 그림 판매에 열을 올려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전시회 큐레이터와 신진 예술가 작업실 조수로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미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일반대중의 관계를 관찰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침묵 속에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어야 하는 경비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한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도 한다.   이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관람자, 작품을 전시하고 파는 갤러리, 그림 시장인 아트페어, 수집가, 비평가, 그리고 미술 권력의 최정점인 미술관에 걸친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탐험기는 독자에게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되풀이하며, 지금 미술계의 현실을 비판한다.   가령 “예술을 본다는 건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실제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한 작품에 할당하는 평균 시간은 (벽의 표찰을 읽는 시간을 포함해) 17초이며, 이 또한 작품 앞에 멈춰 선 경우만을 계산한 결과이므로 실제 평균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표찰을 읽는 시간은 8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은 겨우 2초로 전자가 후자의 4배다.)”   과연 17초 동안에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미술관에 갔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왔다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오래전에 현대미술의 민낯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명작은 단연 톰 울프(Tom Wolfe)의 ‘현대미술의 상실’이다. 50년 전인 1975년, 미국 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되어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문제작이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현대 추상미술은 소수의 ‘문화적’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한 것이며, 현대 미술가는 한발은 예술가 동네에, 한발은 후원가들의 동네에 각각 걸쳐 놓고 있는 고도의 처세가라고 비판한다.   톰 울프가 50년 전에 비판한 미술계의 권력구조와 실상은 지금까지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완고해지고 있다. 돈이 개입되면서 ‘예술산업’이라는 낱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수많은 길과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이제 나는 그것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고? 와, 대단하다! 나는 아직도 현대미술의 실체를 잘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서글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현대미술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 현대미술 최전성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25.11.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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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오늘날 더욱 귀한 도산 정신

매년 11월 9일은 ‘도산 안창호의 날’이다. 도산 선생의 탄생일(1878년 11월 9일)을 기념하는 날로, 지난 2018년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공식 선포했다. 이는 미국 내 외국인 업적을 기리는 최초의 기념일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처럼 뜻깊은 기념일인데, 정작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흥사단’이나 ‘도산기념사업회’ 등의 유관 단체가 기념식을 거행하는 것 외에는 보통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산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하루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1년 365일을 ‘도산의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면 세상이 한층 밝고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거라는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산 선생은 결코 과거의 인물이 아니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도산은 동상으로 굳어 있지도 않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갇혀 있지도 않고, 책 속에 박제되어 있지도 않다. 오늘 더욱 귀하고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내일도 모레 글피에도 날마다 살아 말씀하신다.   도산의 나라사랑과 꿈은 장대하고 우렁차지만, 가르침은 아주 작고 구체적이다. 도산 선생은 높고 깊은 생각을 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린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실제로 힘주어 가르치신 것은 아주 작은 것들, 그래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나와 이웃을 사랑하라, 스스로 주인이 되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일단 한 약속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라, 청소를 잘하라, 항상 웃으라, 우스개도 정성껏 하라, 풀 나무 한 포기도 소중하게 여겨라, 물건을 아껴 써라….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고,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들이다. 땅이 몸부림치며 뒤흔들리고, 회오리바람이 땅 위를 모조리 휩쓸어가는 아슬아슬한 세상에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도산 선생 같은 참 스승의 가르침이요, 참 어른의 마음이다.   그리고 도산 선생께서는 이런 가르침을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다. 직접 청소를 하고 오렌지를 따셨고, 한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큰소리만 치며 군림하려 드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계신 것이다.   도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부터 고치는 일을 큰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요, 또 우리 스스로가 속는 사람일 것이외다.”   그러므로, 도산 선생을 위대한 인물로 올려세우는 작업보다 더 필요한 것은 ‘인간 안창호’의 진면목을 오늘 우리의 삶에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 그 어른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 생생하게 되살려 실천하고, 도산의 푸근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도산을 우리의 할아버지나 큰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을 위해서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도산의 생각과 삶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형식의 문학작품, 시, 연극, TV 드라마, 영화, 음악, 뮤지컬 등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개조시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산기념관 건립을 위해 힘쓰는 ‘도산기념사업회’나 ‘뮤지컬 도산’ 공연에 땀 흘리는 예술가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적극 지원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도산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과거에 살 자가 아니라, 미래에 살 자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오늘날 도산 도산기념관 건립 도산 선생 도산 정신

2025.11.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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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신이어<新year>’들의 신바람

한국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신이어마켓’이라는 소셜 브랜드 이야기다. 폐지 수거 노인을 넘어서 일하고 싶은 시니어까지 즐겁고 따뜻한 일자리로,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며, 다양한 세대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같이 살아가는 브랜드라고 한다.   “‘신이어마켓’은 연장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니어’를 어르신들 나름대로 발음한 ‘신이어’와 다양한 물건을 파는 ‘마켓’을 합친 말이다.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어르신을 ‘신이어’, 함께 일하는 청년 구성원을 ‘준이어’라고 부른다. 준이어들이 관련 그림과 글을 예시로 보여주고 신이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시니어를 ‘신이어’라고 부르니, 어감도 신선하고 별안간 확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新) 해(year)들이니까 나도 ‘신이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준이어’라는 낱말도 그렇고, ‘신이어마켓’이라는 곳이 하는 일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신이어들의 삶은 어쩐지 신바람 나고 활기찰 것만 같다.   ‘신이어마켓’은 2030세대가 기획하고, 시니어가 직접 그리고 포장해 탄생한 제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그동안 다이소, 스킨푸드, 우아한형제들, 한국후지필름, 리얼스마켓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협업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심현보 대표는 “어르신들의 문화와 문체, 경험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저의 최종 꿈은 저희 부모님께도 지속가능한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에요. 젊은 세대의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과 같이 어른 세대의 하루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거든요.”   노인들에게 날씨에 상관없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새로운 일거리를 마주하고 세대 간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 청년과 노년이 어우러져 함께 일하는 곳….   바야흐로 온 세상이 고령자 문제로 골치 아픈 판이라서, 이처럼 신선한 발상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청년과 노년이 함께’라는 정신이 반갑고 고맙다.   최근 한국에서는 20대 젊은이 인구가 70대 노년 인구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노년층은 계속 늘어가는 고령화사회, 다른 말로 하면 늙은 나라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여 죽을 사람을 살려내고,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고 있지만, 노년의 삶을 품위 있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대책 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잘 사는 일인데…. 하긴, 그건 의학의 영역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숙제다.   지난 10월1일 91세의 나이로 자연으로 돌아간 제인 구달 박사의 장수비결은 여러모로 새겨들을만하다. 먼저 활동적인 삶이다. “일하는 한 늙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자연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숲은 최고의 약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목적의식도 중요하다. 구달 박사는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낙관주의다. “희망은 최고의 항노화제다”라는 경험도 나눴다.   백세 시대의 기준으로 치면 91세는 장수 축에도 못 낄지 모르겠지만, 구달 박사는 90세를 넘어서까지 연간 약 300일 이상 여행과 강연을 계속했고, 은퇴하지 않은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희망을 전하는 과학자’라는 분명한 사명감을 평생 유지하고, 절망 속에서도 행동을 통한 희망을 강조하는 낙관주의자의 긍정적인 삶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동안 많이 들어온 지혜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실천해야만 한다, 신이어들의 신바람을 위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year 신바람 일자리로 청년 노년 인구 청년 구성원

2025.10.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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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케데헌’, 우리가 미처 못 본 가치

지난해 이맘때에는 뭐니 뭐니 해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큰 경사였다. 올해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열풍이 단연 으뜸 화제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K-컬쳐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 연이은 통쾌한 홈런인 셈이다.   초기에는, K-컬쳐라고는 하지만 제작자는 한국인이 아니고, 돈은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간다는 식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케데헌은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한국에 안겨주었다. 나라의 격이 높아진 것은 물론, 밀려드는 관광객, 각종 한국 상품의 인기로 인한 수출 증대 등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객이 500만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았는데, 그 배경에는 케데헌의 영향이 컸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문화의 힘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미국에 살면서, 세계무대를 꿈꾸며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신바람나는 자극제일 뿐 아니라, 많은 점을 일깨워준다. 미주 한인, 특히 2세들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케데헌을 탄생시킨 제작자, 작곡가 등 주요 작가들은 해외동포 1.5세, 2세들인데, 이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해석에서부터 한국에서 자라고 배운 기성세대나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부터 그렇다. 케데헌의 작가들은 그동안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하찮게 여기던 사물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가령 도깨비, 무당, 저승사자, 갓, 까치호랑이, 김밥 등등…. 그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 아예 다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케데헌에 참여한 작가들은 밖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못 본 것을 본 것이다. 핏줄로 전해진 한국적인 정서를 알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감각을 익힌 해외동포 예술가들의 눈에는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른바 ‘국뽕’이나 고리타분하고 완고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에 통할 우리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엄청난 자산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것은 내 개인적인 소견인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케데헌의 감독, 작곡가 등 주요 예술가는 여성, 비교적 젊은 여성이다.   물론, 그동안 한류를 주도한 것은 ‘오징어 게임’,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싸이, 방탄소년단 등의 남성이었지만, 예술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펼칠 가능성은 대단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인 2세 중 예술 분야를 전공하는 인재는 아무래도 여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미주 한인 미술계도 여성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감히 내 소견을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본디 예술 창조는 여성에게 맞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 일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은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인류의 삶이 남성 중심의 세상이었고, 여자들이 예술을 창조에 나서는 것을 억지로 막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계도 여성 중심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견을 피력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가령 김지하 시인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모처럼 일어난 K-컬쳐 열풍을 확고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 지원의 원칙은 문화 한류를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으로 파악하지 말고, 예술성이 우선인 작품으로 대접해야 하며, 후원은 하되 참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야 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치 해외동포 예술가들 한국 문화 주요 예술가

2025.10.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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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의 웃음과 시 사랑

날이 갈수록 세상이 각박하고 살벌해지니 개그맨 전유성 같은 이가 한층 더 그리워진다. 후배 희극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별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애도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건강한 웃음이 주는 따스한 위로가 간절한 법이다.   전유성은 웃음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평생 노력한, 유머와 지혜와 따스한 마음씨의 장인이었다. 웃음에는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건강과 행복을 키워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힘이 있다는 걸 믿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그의 시(詩)사랑은 주목할만하다. 개그맨 전유성은 책을 많이 읽고, 직접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를 좋아해서, 후배들에게도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고 전한다.   한 후배가 지금 외우고 있는 문장이나 시가 있느냐고 짓궂게 묻자, 전유성은 복효근 시인의 시 〈무덤〉을 소개한다.   ‘더 이상/ 덤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 세상은 덤이라는 뜻’   짧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시다. 이어서 안도현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매미 우는 소리가 달라졌다. 짝이 생겼나 보다.”   또, “나는 시골에 살아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시골이란 ‘시의 골짜기’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했다.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로 읽은 것이다. 참 재치있고 뜻깊은 말이다. 시에서 웃음을 찾는 날카로운 눈길….   시와 웃음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시각은 참 신선하다. 전유성은 시인들이 세상을 보는 개성적 시각과 관점을 소중하게 여기며, 배우고 싶어서 시를 많이 읽는다고 말한다. “생각을 바꾸자”는 그의 철학과 시 정신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거기서 웃음도 나오고, 시도 나온다. 가령,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럼 아프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해서 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어루만져주는 건강한 웃음은 그저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건강한 웃음은 인문학적 소양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 제대로 웃길 수 있다. 그래야 재미와 의미를 아우를 수 있다. 이것이 그저 우스갯소리와 예술을 구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희극의 천재 찰리 채플린이 아주 훌륭한 예다.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위대한 독재자〉 〈골드러쉬〉 같은 작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웃음과 함께 깊고 묵직한 사회풍자가 번뜩인다.     정신없이 웃다 보면 눈물이 나는 장면도 많고, 시처럼 아름다운 표현도 많다. 과연 ‘웃음의 시인’답다. 아마도 전유성이 닮고 싶어 한 것도 이런 경지였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가 한 몸인 작품….   채플린은 말했다. “웃음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라고.   사실, 개그맨 전유성은 무대나 화면에서 빛을 발한 희극인은 아니다. 그 흔한 유행어 하나 없이, 변두리의 어눌한 단역으로만 50여 년을 활동했다. 그럼에도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몸소 솔선수범하고, 후배나 제자를 길러낸 인물로 기억된다.   전유성이 남긴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정관념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시인처럼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라는 권유다.     “고정관념을 깨는 건 별거 아니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은데 못 한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게 고정관념을 깨는 거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묘비에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전유성의 대답은….   “웃지 마, 너도 곧 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개그맨 전유성 개그맨 전유성 사실 개그맨 후배 희극인들

2025.10.1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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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한글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높아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K-팝, K-컬쳐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외워서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제2 외국어로도 우리 한글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글날 무렵이라서 이런 소식이 한결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세종대왕님께서 기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에도 한국어들이 등재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사전이다.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인쇄 제본형 표준판은 1928년 총 12권 분량의 책에 41만 여개의 어휘, 180만 여개의 인용문이 실린 초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온라인 사전 초판이 처음 나왔으며, 3개월마다 어휘를 새롭게 등재하고 있다.   한국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것은 1976년, 등재된 한국어는 ‘김치(kimchi)’, ‘한글(Hangul)’ 등이었다. 이후 꾸준히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었고, K-컬처의 세계적 인기에 따라 2021년에는 총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되었고, 2024년 12월에는 7개의 한국어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올해는 어떤 낱말이 새롭게 등재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참고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를 살펴보면 분야별로 다양하다. 음식 관계는 갈비, 김밥, 김치, 달고나, 떡볶이, 동치미, 먹방, 반찬, 불고기, 삼겹살, 잡채, 찌개, 치맥 등이 있다. 또 호칭은 누나, 막내, 언니, 오빠, 형도 올라있다. 한류 관계는 K-복합명사, K-드라마, K-팝, 한글, 한류, 한복이다. 한국식 영어도 등재되어 있다. 스킨십, 콩글리시, 파이팅, 피시방 등이다. 생활문화 단어로는 노래방, 당수도, 대박, 만화, 애교, 온돌, 태권도, 트로트, 판소리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세계적인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이 올라가는 일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우리말이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잠깐! 덮어놓고 기뻐하며 우쭐대기 전에 살펴볼 일이 있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한국어는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관한 낱말들, 그러니까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감각적 향락적 낱말들이다. 한국의 얼과 넋이 담긴 곱고 아름다운 한글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무리 세계적 권위의 사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이 그렇게 감격할 일인가도 싶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의 삶은 영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주 당연한 듯 영어를 쓰며 살고 있다. 정치인, 방송인, 지식인, 언론인, 문인 등 가릴 것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영어를 쓴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한다.   국제도시 서울의 번화가 거리에 서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영어 간판투성이다. 아파트 이름도, 상품 이름도 요상한 외래어 범벅이다. 그래야 품위가 있고,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영어가 한국의 공영어가 될 판이라는 염려가 나올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니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몇 개 실린 것에 흥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집안 정리와 청소가 먼저 급하다.   세종대왕님께서 밖을 보고 웃으시다가, 안을 보고는 피눈물을 흘리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옥스퍼드 한국어 옥스퍼드 영어사전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식 영어

2025.10.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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