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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악성 베토벤과 문호 괴테의 만남

Los Angeles

2026.05.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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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역사 공부는 결국 사람 공부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부딪치고 사랑하고 싸우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 역사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멋진 사람들의 멋들어진 어우러짐을 만나게 된다. 연극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문화 예술의 역사에서는 상호 영향 관계가 중요하고, 동시대 사람이라는 동질감도 소중하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공부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괴테는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동시대 사람이다. 서로 간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많이 전해 온다.
 
영원한 문호 괴테와 불멸의 악성 베토벤은 19세기 초 독일 예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동시대를 살았다. 괴테는 자신보다 21살이나 어린 베토벤을 고향 바이마르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을 정도로 인정했고, 베토벤 또한 괴테의 비극시로 서곡 〈에그몬트〉를 만들 정도로 괴테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예술을 존경하고 경외했지만, 예술관과 성격 차이로 인해 깊은 교류를 나누지는 못했다. 1812년 테플리츠에서 단 한 번 만나 서로의 예술에 대해 논한 것이 전부였다.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베토벤과 절제와 균형을 중시한 괴테,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괴테는 세상을 혐오하는 듯한 베토벤의 사고와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부담스러워했고, 베토벤은 괴테를 문학적 거장으로 흠모하면서도 매사에 지나치게 지적이고 궁정 중심적인 태도를 못마땅해했다고 전한다. 괴테는 예의와 형식을 중시하며 세련된 귀족풍 인격체였던 반면,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혁명가 성향이었다.
 
두 사람의 차이를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 한 토막. 괴테와 베토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마침 황후가 귀족들과 함께 저편에서 오고 있었다. 괴테는 정중하게 길옆으로 비켜나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며 황후 일행이 지나가기를 공손히 기다렸다. 그러나, 베토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표정한 얼굴로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황후와 귀족들은 그를 위해 길을 내주며 베토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살아가자면, 때로는 괴테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베토벤처럼 사고하는 유연성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 우리 인생살이이니 말이다.
 
아무튼, 역사 속 한 시대의 시대정신과 동시대인을 살피는 일은 흥미롭다. 괴테와 베토벤과 같은 시대 조선에는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큰 인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화가 세잔느와 반 고흐는 14살 차이지만, 동시대 같은 공기를 마시며 활동했다. 화가 뭉크와 철학자 니체도 같은 시대 사람이다.
 
러시아 예술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도 비슷한 시기에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활동했다. 화가 피카소와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영화인 찰리 채플린이 동시대 사람이라는 사실은 많은 점을 말해준다. 한국의 고희동도 같은 시대 사람이다. 사르트르와 김소월이 동시대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한편, 역사 공부에서는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전후 맥락, 상호 영향 관계, 시대정신 등을 시간순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나의 전공은 미술사다. 역사의 한 분야다. 그런데, 연대 외우기에 아주 서툴다. 이리저리 애를 써봐도 잘 안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학자의 꿈을 접고, 생계형 글쟁이가 되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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