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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1824년, ‘합창교향곡’을 발표한 후 베토벤은 더 이상 교향곡과 같은 대편성의 곡을 쓰지 않았다. 대신 보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양식인 현악 4중주에 귀의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해 자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베토벤은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현악 4중주에 매달렸다. 만약 베토벤이 오래 살았다면 이후의 작품은 모두 현악 4중주였을 지도 모른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 4중주를 썼는데,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6곡의 현악 4중주를 ‘후기 현악 4중주’라고 부른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와 다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에서는 네 개의 악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만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는 그렇지 않다. 때로는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중 14번은 특이하게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데, 각 성부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악장에 이르면 전반부의 느슨한 평화가 깨진다. 중간중간 네 악기가 한목소리를 내는 유니슨이 나오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투쟁 모드로 들어가곤 한다. 유니슨조차 지극히 전투적이다. 그렇게 심오한 성찰에서 느슨한 평화를 거쳐 격렬한 투쟁으로 끝난다.   예술가의 말년의 작품은 내밀한 자기 고백인 경우가 많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도 그렇다. 여기에는 베토벤 자신의 성찰은 물론 세상을 향한 격렬한 분노, 인간적인 흐느낌, 신성에 대한 갈망, 초월적인 체념, 억눌린 욕망의 분출, 자유분방한 인습 파괴의 욕구 같은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렇게 베토벤은 후기 현악 4중주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음악을 인간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취급했던 고전주의 시대와도 결별을 고했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 중주 현악 4중주 베토벤 자신 마지막 4중주

2024.09.23. 18:25

[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베토벤은 노년에 눈이 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라 노년에도 창작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전해 들은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다른 천재 음악가들과는 달리 어릴 때는 음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베토벤을 창고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창고 안에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55세 되던 해였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LA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였다. 당시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아 낮에도 학교에 가곤 했었다.   어느 토요일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구석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한 강의실에서 나는 기타 소리였다. 강의실을 들여다보니 젊은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고 있었고 기타 선생님에게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타 배우기가 시작됐다.   지금 내 나이가 86세이니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어언 31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기타 연주곡은 베사메무초다. 최근엔 ‘인생은 네 박자’라는 한국 대중가요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도 부른다. 매일 이 두 곡은 빠짐없이 연주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음악을  최소한 3곡 정도 더 연주하면서 노래한다. 하루에 최소 5곡 이상은 연주를 하고 노래도 하는 셈이다.   나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완전한 귀와 눈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들 베토벤 흉내 음악 소리

2024.09.10. 19:13

임윤찬, 두다멜과 ‘베토벤’ 협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년 만에 다시 LA무대로 돌아온다.     임윤찬은 오는 29일 오후 8시 할리우드 보울에서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자가 이끄는 LA필하모닉과 연주한다.     올해는 베토벤의 웅장한 ‘황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으로 심오한 음악 세계로 이끌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8월 할리우드 보울에서 성시연 지휘자가 이끄는 LA필하모닉과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노 3번 협연으로 LA청중의 찬사를 받았다.     올해 19세인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후 국제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신작 최고 연주상, 청중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준결선에서 선보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과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연주 영상은 1000만 뷰를 훌쩍 넘었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 최고의 클래식 음악 공연 10선 중 하나로 꼽았다.     클라이번에서 우승한 후 링컨 센터에서 뉴욕 필하모닉, 할리우드 보울에서 LA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루체른 심포니 등과 함께 성공적인 오케스트라 데뷔를 했다.     한국 시흥에서 출생한 임윤찬은 7세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이듬해 예술의전당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음악공부에 몰두했다. 13세 국립예술영재교육원 오디션에 합격했고 12세부터 지도해온 스승이며 멘토인 손민수 한예종 교수를 만났다.     1년 후인 2018년 첫 콩쿠르인 클리블랜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와 쇼팽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 음악 무대에 진출했다.     현재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스승인 손민수와 공부하고 있다.     티켓은 17~119달러로 할리우드 보울 웹사이트(hollywoodbowl.com)에서 살 수 있다. 이은영 기자 [email protected]베토벤 황제 라흐마니노프 연주 국제 피아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2024.08.11. 19:00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바쿠스’ 된 베토벤

베토벤은 모두 아홉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교향곡 제7번은 다른 교향곡과 성격이 좀 다르다. 너무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다. 마치 베토벤이 넥타이를 풀어놓고 쓴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인류애와 평화라는 숭고한 메시지를 담은 '합창교향곡'의 탄생을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였을까. '합창교향곡'과 같은 걸작의 작곡에 돌입하기 전에 그렇게 엄청나게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의 방출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청중들은 베토벤이 술에 취해서 이 곡을 작곡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특히 이 곡의 4악장을 들어보면 이런 반응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악장은 첫 소절부터 너무나 산만하게 비틀거린다. 교향곡이라기보다 악기들이 제멋대로 연주하는 난장판과 같은 인상이 강하다.   사람들은 이 곡을 가리켜 베토벤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베토벤이 자기는 인류를 위해 향기로운 술을 빚는 바쿠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교향곡은 취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의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이런 식의 해방구는 있었다. 아무리 규율이 엄격한 사회에도 인간의 삶에 숨통을 트여주는 욕망분출의 창구는 늘 있었다. 멀리 그리스에서도 아폴로 신이 멀리 다른 나라를 시찰하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디오니소스 신을 불러다 한바탕 흐드러진 축제를 벌이곤 했다. 이 축제가 연극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감정을 마음껏 방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예술을 낳았고, 이 예술이 인류를 살맛 나게 만들었으니 자유니 욕망이니 향락이니 하는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만은 아니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 교향곡 제7번 디오니소스적인 측면 비운 사이

2023.11.20. 19:01

[음악으로 읽는 세상] 톨스토이와 베토벤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첫 악장의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으! 이 소나타는 정말 너무 무시무시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오는 주인공 포즈드니세프의 대사다. 그는 아내가 투르하체프스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던 장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크로이처 소나타’는 무시무시한 음악이다.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상처받은 영혼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더블 스토핑으로 느릿하게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이 음악은 섬뜩한 광기를 드러내고 있다. 듣는 사람의 감성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리며 질주하고 탄식한다.   포즈드니세프는 투르하체프스키가 음악을 통해 자기 아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증오와 질투를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음악의 최면적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두 사람의 이중주를 지켜보면서 마치 불륜 현장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은 신성한 결혼의 법칙을 무시하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처럼 폐부를 찌르는 바이올린 소리는 비명을 지르며 주인공의 복수심을 부추겼다. 질투심에 눈먼 주인공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베토벤의 음악이 문제였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와 같은 자극적인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음악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우려가 있다면서 베토벤의 음악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며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베토벤 음악의 최면적인 힘에 섬뜩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톨스토이 베토벤 베토벤 음악 크로이처 소나타 바이올린 소리

2023.11.06. 18:17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의 머리카락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살아있을 때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했다. 청력 상실과 더불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 우울증에 시달렸다. 툭하면 화를 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절망에 빠진 베토벤은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그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 앞으로 쓴 유서에는 이런 절망감이 잘 나타나 있다.   “오! 너희들은 내가 적대적이고 고집이 세고 차갑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고 다니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느냐? 너희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게 된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절망적인 병에 시달려 왔다. 이제는 병이 낫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 정열과 활기에 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을 피해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베토벤을 절망에 빠뜨렸던 병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선천적으로 이상한 성격을 타고 난 것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1999년, 미국 시카고의 한 연구소가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정상인의 100배에 해당하는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베토벤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음악가로서 필수적인 감각인 청력까지 잃은 것이 어쩌면 납 중독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자기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평생 고통에 시달렸을 베토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유서를 썼을까. 그게 납 중독 때문이었다니 그의 일대기를 읽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다 나오는 시대이니 가능한 일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머리카락 베토벤 작곡가 베토벤 소화불량 우울증 감각인 청력

2023.10.23. 18:24

[이 아침에]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속으로

몸의 면역이 떨어지면 기웃거리던 오만 병균의 공격이 시작된다. 백혈구가 싸워 이겨야 하는데 나도 힘없이 쓰러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병원 한번 안 가고 잘 지냈는데, 7년 만에 감기에 걸렸다. 한 달 이상 지독한 기침으로 고생했다. 전업주부가 된 이후 아파 누우면 정말 서글퍼진다. 입맛에 맞는 식당도 찾기가 어렵다.  입이 쓰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으니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한국으로 역이민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살다 가고 싶다.   세상의 어떤 영웅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나도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 몸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별 잔병치레 없이 살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주신 자연 음식이 몸의 면역력을 키워준 덕분인 것 같다.     다행히 기침은 잡았으나 목이 붓고 열이 나 조금 고생했다. 아파서 누워있다 보니 얼마 전 딸과 함께 갔던 베토벤 음악회가 떠오른다. 음악회가 열린 곳은 샌디에이고만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공원에 세워진 조개 모양의  ‘래디 셸(Rady Shell)’ 음악당이었다. 2021년 여름에 첫 연주를 했지만, 드디어 간 것이다. 샌디에이고 심포니의 스페셜 섬머 나이트 행사 특별무대가 열린 곳이다.     고국으로 역유학을 갔던 딸이 돌아와 정착하면서 다시 우리 집의 문화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제대로 여행 한 번 못 가고 집안일에 묻혀 삭막한 미국생활을 하는 엄마를 측은해 하던 딸이 베토벤의 밤으로 초대해준 선물이었다.     오버튜, 서주가 끝나고 중국 청년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교향곡 4번에 이어 교향곡 3번인 에로이카, ‘영웅’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나도 귓병으로 몇 년째 고생하고 있어서인지 베토벤의 음악이 왜 그리 슬퍼질까.     ‘에로이카’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베토벤은 1804년 프랑스 혁명 당시 나폴레옹을 흠모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12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나폴레옹도 독재자에 불과했다며 실망한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영웅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며 작곡 동기를 바꿨다고 한다.   베토벤 초창기의 곡들은 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후 교향곡, 영웅부터는 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었고 10여 년 동안 명작들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는 난청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한 것을 보면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신의 가호도 있었나 보다.     그의 위대한 음악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나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투병 중인 모든 이들에게 베토벤의 음악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베토벤처럼 스스로 의지와 용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화로나마 친한 친구에게 눈물 흘리며 신세타령을 했더니, 그녀의 따듯한 위로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 죽을 끓여 먹게 만들었다.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베토벤 교향곡 베토벤 음악회 베토벤 초창기 이후 교향곡

2023.09.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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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토벤과 리히노브스키 후작

“후작님!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은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반면) 내가 무엇이든, 나는 나 스스로 이루었습니다. (당신 같은) 후작은 천명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터이지만, 베토벤은(나는)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1806년 10월 말, 격분한 베토벤이 리히노브스키(1761~1814) 후작 면전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바흐를 연구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리히노브스키 후작과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헌정할 만큼 그에게 의지했던 베토벤의 관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날 이후 리히노브스키 후작은 베토벤에 대한 후원을 멈췄고 베토벤의 삶은 더더욱 궁핍해졌다.   베토벤의 귀족 콤플렉스가 여과 없이 드러난 이 거친 표현에서 그의 부족한 사회성이나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 심지어 오만의 극치가 읽힌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지원해온 이에게 한 말치고는 너무 심하다 싶어 다시  한번 읽다가 두 단어에 눈길이 멈춘다. ‘우연히’(durch Zufall)와 ‘스스로’(durch mich). 공작 가문의 장남으로 ‘우연히’ 태어나 ‘절로 주어진’ 리히노브스키의 부(富)와 후작이라는 신분. 평민의 차남으로 태어나 ‘스스로 이룬’ 베토벤의 예술적 성취와 명성.   이렇게 베토벤은 노력 없이 주어진 것과 노력해 이룬 것을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평민으로서의 상실감과 스스로 이룬 것에 대한 자긍심이 뒤섞인 이 말을 되뇌니 그의 말이 오만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들린다.   언제부터인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분노와 좌절을 내포한 표현을 흔하게 접한다. 이 자조적 표현을 ‘수저계급론’이라고 한다나? 어릴 적 기억 깊숙이 각인된 금도끼·은도끼와는 달리 금수저·흙수저라는 단어는 사실 좀 낯설다. 금도끼와 은도끼가 정직한 삶에 대한 ‘보상’인 반면, 금수저와 흙수저는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우연히 주어진 것’, 즉 불평등을 상징한다.   비록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을지언정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헛된 희망만은 아니었던 세대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앞에 선 세대의 금수저를 향한 시선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족을 위해 자기 삶을 송두리째 희생한 산업화 세대도, 민주화를 향해 온몸을 던진 민주화 세대도, 오늘의 MZ세대 다수가 느끼는 좌절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찼기 때문이라고, 보금자리를 마련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불공정한 제도와 부도덕한 상류층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겠지만 해결책은 묘연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MZ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을 굳건히 헤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금도끼와 은도끼는 온데간데없고 아들딸에게는 흙수저를 물렸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해 그 아픔과 좌절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캥거루족?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아이 없는 맞벌이)? 나름 합리적인 젊은 세대의 선택을 보며 그것이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불가피하게 택한 자구책은 아닌가 싶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중요한 것은 입에 물린 수저가 아니라 금도끼와 은도끼라는 충고는 너무 ‘꼰대’스러울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연히 주어진 것’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이룬 것’으로 당당히 어깨를 펴라는 말 역시 고리타분하게 들리려나? 다섯 달란트를 맡은 이와 두 달란트를 맡은 이가 이를 불려 똑같이 ‘착하고 충성되다’고 칭찬받았듯이 자신의 가치는 우연히 주어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스스로 이룬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너무 종교적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렇게 현실적 요구와 거리가 먼 ‘사고의 전환’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베토벤이 리히노브스키 후작에게 쏘아붙인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베토벤처럼 격분하지는 말고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덧붙여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덤으로 받기를….   “금수저님!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은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반면, 내가 무엇이든, 나는 나 스스로 이루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천 명이나 있지만, 이것을 스스로 성취한 이는 나밖에 없습니다.” 전상직 / 서울대 음대 교수기고 베토벤 후작 후작 면전 반면 금수저 적극적 선택

2022.07.22. 18:53

"천재? 저는 노력형…노력할 용기 있어 다행"

  “천재는 절대 아니고요, 전 그냥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18) 피아니스트를 만난 첫 느낌은 ‘순수함’이었다. 앳된 얼굴과 목소리 탓도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콩쿠르 우승 후 당황스럽고 심란했다는 그는, 일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절대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임 피아니스트는 지난 24일 맨해튼 스타인웨이 홀에서 진행된 뉴욕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토벤 같은 분이 천재”라며 “저는 그냥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 노력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게 다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승 무대에서 ‘악마의 곡’으로 불리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해 이목을 끌었다. 그의 대담함은 결국 작은 연습실에서 보낸 고독한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임 피아니스트는 “제가 좋아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고독한 연습 시간이 가장 힘들다”며 “길을 헤맬 때도 있지만, 결국은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해법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피아니스트와의 일문일답.     -수상 소감은, 이번에 배운 점이 있다면. “입상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상을 받아서 처음에 당황을 했다. 약간 심란하기도 했다. 걱정도 되고.”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 직전까지 재검토가 수차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제 허점도 좀 찾았다.”   -피아노를 ‘평생’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사실 아직까지도 ‘평생’ 이란 확신은 안 든다. 내일 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 그렇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의 레코딩을 들었을 때 ‘나도 그분들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하고 있다.”   -전공자가 아닌 부모님이지만 음악적 환경 조성을 잘 해주셨다. “금전적 지원 외엔 부모님이 항상 뒤에 빠져계셨고 강압적인 것은 아예 없었다. 사실 음악가들에겐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거의 내버려 두셨는데, 그게 가장 도움되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천재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는데 “천재는 절대 아니고,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력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게 다행인 것 같다.”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생각은 왜 했나. “어릴 때 아무것도 몰라서 ‘피아노만 치며 기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가, 시간이 흐르며 결국 음악은 상업적인 것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결론에 확신이 생겼다. 그런 것을 알게 됐을 때 굉장히 실망했던 순간이 있었고 충격이었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은 그런 걸 다 버리고 음악만 하고 싶다는 의미로 얘기한 것이다.”   -가장 큰 시련은. “피아니스트들이 항상 연습은 고독한 순간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시인 릴케 역시 외로움 속에서 예술 꽃이 핀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가장 힘들다. 엄청 작은 연습실, 인테리어도 없고 같은 색만 있는 곳에서 하루에 7시간은 연습하다보니 ‘이게 뭐하는 건지’라며 길을 헤맬 때도 있다. 해법은 결국 레코딩을 듣는 것. 들으면서 아, 그래도 저렇게 연주할 수 있다면 이건 별 것 아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인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한국인이라서기보다는, 그 분들 자체가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분들인데 한국인이다. 그런 것 같다.”   -모든 장르를 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는데.   “천재 예술가들의 시대인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에 가장 관심이 많고, 현대음악도 굉장히 좋아해서 상반된 두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물론 있는데, 거의 매일 바뀐다. 오늘같은 경우 러시아의 전설적인 소프로니츠키 피아니스트가 좋았다. 많은 사람이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좋을 때도 있고, 모두가 아시는 호로비츠도 좋아한다. 생존한 인물 중엔 예브게니 키신, 그리고 저희 선생님(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을 제가 가장 좋아한다."   -이제 해외투어까지 하려면 체력이 중요할텐데 "예전엔 수영·축구·야구 등 별 걸 다 했고 관심사도 많았는데 중학교 입학 후 신기하게도 피아노만 치게 됐다. 연습할 게 많으면 정말 시간이 없어서 운동은 못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쇼팽 콩쿠르에도 도전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아직 너무 많이 남았고, 어떻게 될 지.”   -한인들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고, 뉴욕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해외공연 스케줄은 7월 중 공개될 예정)    글·사진=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  김은별 기자뉴욕 맨해튼 반클라이번 콩쿠르 콩쿨 피아니스트 임윤찬 임윤찬피아니스트 피아노 한예종 리스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2022.06.2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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