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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K-컬처는 이미 글로벌 컬처다

Los Angeles

2026.04.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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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시인·극작가

장소현 시인·극작가

세계로 무섭게 뻗어가는 K-컬처의 위력,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 개막공연에서 수상곡 ‘골든’과 함께 공연된 한국무용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많이 반성하고 깨우쳤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참 골치 아픈 숙제다. 창작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고전적 주장부터 “한국적인 것은 없다”는 과격한 선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견이 있고, 어느 것이 옳은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 많은 주장 중 나는 개인적으로 문화평론가 정덕현씨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간추리면 이렇다. “K-컬처는 이미 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글로벌 컬처가 되었다. 동서양이 결합하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콘텐트의 퓨전이다.” 그러니 더 이상 국위선양을 내세우거나, 한국적 전통의 원형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 전통 보존과 현대화는 별개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전통의 원형 지키기를 고집하는 ‘꼴통보수’였는데, 생각을 바꾸어 글로벌 컬처라는 시각으로 보니, 그동안 고민하던 많은 문제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깨우침은 번개처럼 불쑥 오는 모양이다. 여기에다, 문화 예술은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生物)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수많은 도전과 시도 중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것들만 살아남아 대표작이자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러니, 세월이 오래된 것일수록 원형에 가깝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예술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것 중에도 생년월일이 분명한 작품이 꽤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대표적 한국민요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에 개봉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었고, 한국 전통무용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부채춤은 춤꾼 김백봉이 1954년 처음 발표한 창작품이고, 한국의 대표적 전통 무대 음악인 사물(四物)놀이는 1978년 2월 22일, 서울의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을 위해, 김덕수와 꽹과리 연주자 김용배가 제안하고 민속학자 겸 민속극 전승자인 심우성과 공연기획자 강준혁이 이름 지어 부른 것이 시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작품이 태어날 것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70년대 초 한국에서 극작가로 활동할 때 주로 한 일은 탈춤이나 판소리 같은 전통연희의 틀과 정서를 빌려와 오늘의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었다. 이른바 전통의 현대화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낑낑대던 가장 큰 어려움은 전통의 예술적 원형과 정신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계승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어떻게 전통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조화롭게 현대화할 것인가라는 숙제였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런 숙제에서 벗어나 변화의 물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영화인 나운규는 한류와 K-컬처를 일찌감치 내다본 선각자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아리랑’의 가사는 나운규가 지은 것이다. 그는 10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 사람이 다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성을 잘 붙잡아, 조선의 산하와 정조를 기조로 만들어낸다면 세계 시장 진출에 어렵지 않을 줄 알아요.”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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