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문화산책] 트로트, 뽕짝, 엔카

Los Angeles

2026.03.26 19:1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장소현 시인·극작가

장소현 시인·극작가

한국에서는 요 몇 년 사이 트로트가 대단한 인기인 모양이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붙인 불씨가 뜻밖의 큰 인기를 끌며 들불처럼 번져나가 대세가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옛날 노래가 벌떡 일어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부활했고, 송가인, 임영웅 같은 젊은 수퍼스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 양국에서 방영되고, 일본말 노래가 버젓이 전파를 타는 모습을 대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가수들이 복고풍의 흘러간 옛 노래를 청승맞고 간드러지게 불러제끼는 모습이 영 낯설기도 하고, 달리 보면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다. 옛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왜 지금 느닷없이 트로트 열풍일까?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다양한 설명을 내놓는다. 한국인의 정서 밑바탕에는 늘 울고 싶은 마음이 진하게 깔려 있는데, 요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답답하다 보니, 한(恨)과 정(情)이 듬뿍한 트로트 가락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음악에다 우리 정서를 덧입힌 K-팝이나 요란한 댄스 음악 일변도에 대한 반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트로트는 가장 뿌리 깊은 우리의 대중가요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뽕짝이니 왜색(倭色)가요니 신파조니 하는 푸대접을 받아왔다. 한국 대중가요 대표곡 중의 하나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왜색가요라는 이유로 약 20년간이나 방송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그런 박해(?)에도 잡초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트로트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한때는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演歌)를 비교하며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대체적인 결론은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를 흉내 낸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것이 왜색가요를 금지곡으로 묶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일본 ‘엔카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유소년기에 한국에서 살았고, 그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나는 조선인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 이후 작곡을 하게 되었을 때 조선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나의 작곡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가 마사오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편곡하여, 당시 조선 최고의 가수 채규엽과 일본 최고 여가수 아와야 노리꼬에게 듀엣으로 부르게 하여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국적 정서가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했다. 아무튼, 트로트와 엔카 중 누가 원류냐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인터넷 사전의 설명이 정확한 것 같다.  
 
“트로트와 엔카는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장르로,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원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 두 장르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복잡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어, 단순한 원조 논쟁보다는 역사적 교류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트로트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난날의 아픈 경험, 서글픈 정서를 왜 되살려야 하는 건지? 내가 보기에는, 젊은 가수들이 철삿줄로 꽁꽁 묶인 채로 맨발로 절며 절며 울고 넘던 그 고개, 눈보라가 흩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같은 옛 노래 가사에 담긴 아픔을 느끼며 노래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트로트’가 아닐까? 새로 작곡된 오늘의 이야기와 정서, 희망찬 미래의 설계를 담은 흥겨운 트로트 명곡….

장소현 / 시인·극작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