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타운 맛따라기] 1997년 소주방 시대 열리다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LA 최초의 실내 포장마차인 단성사의 등장은 단순한 술집 하나가 생긴 것을 넘어, 한국의 정취와 위안을 선사하는 문화적 구심점이 탄생했음을 의미했다.
단성사의 실내 포장마차 콘셉트는 웨스트할리우드의 회전초밥집 ‘모모야마’에서 영감을 얻었다. 웨스트할리우드 회전초밥집 ‘모모야마’에서 일하던 스시 셰프의 한마디, “실내에 진짜 포장마차를 지어보는 건 어때?” 이 무모해 보이는 아이디어는 LA 한인타운 밤 문화의 지형도를 바꿀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됐다.
운명처럼, 비슷한 시기 소주가 하드리커에서 비어앤와인 카테고리로 법적 분류가 변경되는 ‘사건’이 터졌다. 이는 LA 최초로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당당히 올려놓고 마실 수 있는 ‘소주방’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단성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매일 저녁이면 다양한 인종의 손님들이 20~30명씩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들에게 단성사는 K-컬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타운의 소주방은 단순한 술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고된 이민 생활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해방구이자 주머니 가벼운 유학생들에겐 넉넉한 인심의 안주와 함께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지트였다. 단성사의 성공은 이러한 한인들의 잠재된 갈증을 정확히 꿰뚫었기에 가능했다.
단성사의 유전자는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첫 매니저는 독립해 ‘뒷골목’을, 두 번째와 세 번째 매니저는 버몬트 길의 ‘고래섬’을 인수해 ‘고포차’를 열었다. 이들은 단성사에서 체득한 운영 노하우와 포장마차의 정서를 자신들만의 색깔로 재해석하며 소주방 열풍을 확산시켰다.
단성사 이전, LA에서 소주는 ‘귀한 몸’이었다. 하드리커 라이선스가 없는 대부분의 식당에선 판매 자체가 불법이었고, 구할 수 있다 해도 주전자에 몰래 담아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 8가 길 ‘R Bar’ 자리에 있던 ‘8가 식당’은 빨간 두꺼비 소주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지만, 사장은 소주보다 양주 판매에 더 치중했다. 단성사 성공 후 부랴부랴 실내 포장마차 콘셉트로 변신을 꾀했지만, 당시 8가의 험한 동네 이미지는 발목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6가 ‘채프맨 플라자’에는 젊음의 거리다운 소주방 ‘토방’이 문을 열었다. 토속적인 인테리어와 폐쇄형 파티오는 아늑한 포장마차 분위기를 자아냈다. 클럽 매니저 출신 부부의 감각적인 운영 덕에 초반부터 문전성시를 이뤘고, 이들은 이후 ‘월매’, ‘초막’ 등을 거쳐 현재 발렌시아에서 새로운 한식당을 준비 중이다.
소주방 열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 4가와 웨스턴에는 삼형제가 의기투합한 ‘종로포차’가 등장했다. 여러 부침 끝에 지금은 페르시안 식당 ‘테헤란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삼형제 중 막내는 12가와 웨스턴 ‘옛골’ 쇼핑센터에서 ‘치맥’을 운영하며 외식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히카리’는 채프맨 플라자의 일식집이지만 소주방 느낌이 강한 이자카야였다. 주로 사케를 소주처럼 즐기던 곳으로, 현재는 일본 스시 프랜차이즈 ‘스시 잔마이’에 인수되어 7월 오픈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8가 길의 ‘짠’은 웨이터 경험이 있던 젊은 친구들이 모여 시작한 소주방이다. 젊은 감성으로 또래 손님들에게 어필해 성공했고, 초기 파트너 중 한 명은 이후 다양한 식당 브랜드를 런칭하다가 최근엔 ‘에그턱’이라는 에그샌드위치 브랜드로 대박을 터뜨렸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도 등장했던 ‘꿀밤 허니나이트’ 같은 이름의 소주방도 있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 부부가 감각적인 공간을 운영하며 주목받았던 곳이다.
야외 포장마차 콘셉트로 성공한 ‘똥꼬포차’는 식당 ‘무대포’를 성공시킨 사장님의 또 다른 작품이다. 현재는 텍사스로 이전해 ‘무대포 KBBQ’를 성공시키고 있으며, 최근엔 ‘어원’ 사장님에게 인수되어 계속 성업 중이다. 백종원 브랜드의 ‘한신포차’는 시티센터 3층에서 닭발과 주먹밥을 필두로 프랜차이즈의 안정된 맛과 야외 파티오의 매력을 앞세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외에도 젊은 감각의 8가 ‘마징가’, 윌셔로 이전한 ‘불이야’, 야간업소 종사자들의 새벽 해장국집 같았던 ‘봉숭아학당’,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막걸리와 동동주로 특유의 분위기를 자랑했던 3가의 ‘색동저고리’까지, LA의 소주방들은 타운의 밤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채웠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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