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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삶의 터전을 만든 이들

흔히 이민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들 했다.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부동산 브로커다. 특히 LA한인타운 요식업 업주 입장에서는 ‘위치’가 중요한 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타운의 맛을 내는 ‘자리’의 전문가들인 부동산 브로커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려 한다. 필자와 동종 업계에 있는 선배, 후배들이기도 하다.   LA 한인타운 형성 초기, 부동산 분야에서 큰 손으로 꼽히던 인물로는 훗날 한미은행 초대 이사장을 지낸 ‘국제부동산’의 조지 최 사장과, 한인 사회에서 ‘여걸’로 불리던 ‘소니아 석 부동산’의 소니아 석 사장을 들 수 있다. 특히 석 사장은 한인 최초로 부동산 중개업자(브로커)와 감정평가사 자격을 동시에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올림픽길 한인타운에 한글 간판을 달자는 운동을 주도해 초기 한인타운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갤러리아 마켓 투자그룹을 이끄는 ‘팩코 인베스트먼트’의 현재 사장 역시 국제부동산 출신이다. 그는 다수의 대형 부동산 거래와 상업용 부동산 관리에 관여하며 한인타운 상업 부동산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한인타운 올드타이머들이 기억하는 ‘럭키부동산’은 한때 대형 호텔과 골프장 등 굵직한 상업용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키며 명성을 떨친 회사다. 현재의 사장은 필자가 직접 모셨던 몇 안 되는 보스 중 한 분이기도 하다.   한인타운을 좌지우지하던 상업용 부동산·관리 회사들 가운데에는 윌셔 일대 다수의 오피스 빌딩을 관리하던 ‘토탈 매니지먼트’가 있었고, 각종 부동산 관련 소송 끝에 아쉽게 사라진 ‘칼베스트 부동산’도 기억에 남는다.   ‘아주부동산’은 한인타운 아파트 매매와 관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회사다. 같은 세대의 상업용 부동산 회사로는 ‘원부동산’과 ‘샘 해리 부동산’이 있었고, 지금은 부동산 관리 사업을 접은 ‘하나 인베스트먼트’도 한때 활발히 활동했다.   스몰 비즈니스가 중심이었던 한인 커뮤니티 특성을 반영하듯, 한때 100여 명의 에이전트를 거느린 비즈니스 전문 대형 회사 ‘비지컴 부동산’도 존재했다. 필자 역시 몸담았던 이 회사는,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2대 진행자로 발탁된 박원홍 씨가 LA에서 운영하던 부동산 학교를 인수해 수많은 부동산 에이전트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 한인타운 내 최대 비즈니스 전문 부동산 회사로 자리 잡은 ‘비부동산’의 사장 역시 비지컴 부동산에서 리커 마켓 총괄 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처럼 한인 부동산 업계는 인적 계보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성장해왔다.   요즘이야 온라인 강의로 공부하고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 일반화됐지만, 초기에는 한인 소유 부동산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오렌지카운티와 LA에서 운영되던 ‘데니스 부동산 학교’ 역시 수많은 에이전트를 배출하며 그 역할을 했다.   OC에서 1987년 ‘리얼티 월드(Realty World)’ 프랜차이즈로 출발한 ‘뉴스타 부동산’이 사세를 키워 LA에 자체 사옥을 마련하고, 전국적인 지점·프랜차이즈 네트워크로 확장한 일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주택 거래뿐 아니라 다수의 에이전트들이 비즈니스 거래를 병행하면서 한때는 거래량 면에서 비부동산과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뉴스타 부동산은 현재도 부동산 학교를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OC에서는 부동산 호황을 타고 샌디에이고까지 사업을 확장한 ‘팀스피리트 부동산’이 있었고, OC에서 성장해 LA까지 진출한 ‘레드포인트 부동산’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탑 에이전트 출신으로 ‘초이스100’을 이끄는 사장은 회사 운영보다는 개인 투자 성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외에도 소속 회사의 규모와 무관하게 압도적인 거래량을 기록하는 ‘수퍼 에이전트’들이 존재하지만, 이 글은 회사 중심의 기록이기에 포함하지 못했음을 미리 밝힌다.   한인타운 주택 전문 부동산 회사로는 전통의 ‘아이비 부동산’ 외에도 뉴스타 부동산 출신 사장이 독립해 설립한 ‘드림 부동산’이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에이전트 수로만 보면 현재 타운 내 최대 규모일지도 모른다.     한때 한인타운에 콘도 분양 열풍이 불었을 당시, ‘CB 레지덴셜’은 분양센터를 포함해 에이전트 수가 100명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기억 속의 이름이 됐다.   상업용 부동산 분야에서는 ‘CBRE’ 출신 브로커가 운영하는 ‘코러스(Korus) 부동산’, 그리고 ‘CB 커머셜 부동산’ 등이 한인타운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동산 관리 회사로는 ‘팩코 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HK Properties’, ‘Korus’, ‘리얼티랜드’, ‘바인프로퍼티’, ‘킴앤드케이시’ 등이 이름을 올린다.   한인타운을 넘어 남가주 전체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보유 기업인 ‘제이미슨 프로퍼티’는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부동산 회사이자 관리 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한인들이 그 거대한 자산 운영의 그늘 아래서 긍정적인 낙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이미슨을 비롯해 초기 한인타운의 초석을 다져온 모든 한인 부동산인들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먼저 걸어간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의 발자취 위에 오늘의 한인타운이 서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터전 초기 한인타운 la한인타운 요식업 상업용 부동산

2025.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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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고깃집 열전

치열한 이민사 속에서 LA의 고깃집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맛으로 한인들의 곁을 지켜왔다.   전설의 시작은 단연 8가길의 ‘숯불집’이다. 캘리포니아 대기정화국(AQMD)의 엄격한 규제로 인해 LA에서는 상업용 숯불 조리가 사실상 불법이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예외다. 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영업을 해온 덕분에 ‘그랜드파더 클로즈(Grandfather clause·기득권 인정)’가 적용되어 유일하게 숯불구이가 허용됐다. 자욱한 연기 속, 깊은 숯향이 밴 양념갈비와 얼큰한 고추장찌개는 이곳을 대체 불가능한 명소로 만들었다.   ‘길목’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착한 가격에 푸짐한 주물럭을 먹을 수 있어 자주 찾던 집이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그 시절의 맛있는 기억 덕분에 여전히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동치미 국수는 ‘전설’로 불릴 만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습관처럼 찾게 되는 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때 쇠퇴하던 브랜드였지만, 미국 진출로 대박을 터뜨린 고깃집이 있다. 바로 ‘백정’이다. LA 한인타운 채프먼 플라자에 있던 백정은 본사와의 계약 해지 이후에도 ‘오리진(Origin)’이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성업 중이다.     이 예상치 못 한 성공을 계기로 백정 본사는 미국 전역으로 직영점과 가맹점을 공격적으로 확대했지만, 결국 현지 한인 파트너에게 지분을 넘기고 철수했다. 이후 계약이 종료된 매장들은 각자 다른 이름으로 재운영에 들어갔고, 뉴욕에서는 ‘정육점’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해 마당몰에 지점을 열며 또 한 번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미국 내 백정 브랜드를 인수한 한인 사업가는 부에나파크, 토런스, 알함브라, 어바인 등지에서 백정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8가 ‘만수등심’ 자리에도 새 매장을 오픈했다. 그는 또 6가의 곱창집 ‘아가씨곱창’을 함께 운영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백정의 원조 격인 오리진 K-BBQ의 사장은 이후 ‘쿼터스(Quarters)’라는 새로운 고깃집 브랜드를 론칭했다. 보다 현지화된 콘셉트로 자리 잡은 이곳은 현재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K-BBQ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원래는 고기를 쿼터 파운드 단위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쿼터파운드’라는 상호를 고려했지만, 맥도날드 메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쿼터스’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풀러턴에도 새 지점을 준비 중이다.   쿼터스 운영진은 이외에도 월셔길의 ‘무한바비큐’, 올림픽길의 ‘라성돈까스’와 ‘라성순두부’, 그리고 라성순두부 내 코너 카페 브랜드 ‘ROK 커피바’까지 연이어 성공시키며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때 LA에도 진출했던 한국 브랜드 ‘마포갈매기’는 최근 가디나의 유명 식당 ‘황소마을’ 사장 딸이 인수해 새로운 콘셉트의 K-BBQ로 리뉴얼 중이다. 부에나파크 소스몰에 있던 마포갈매기 매장도 몇 년 전 다른 고깃집으로 바뀌었다. 백정의 성공에 자극받아 미주 진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철수한 셈이다. 현재 같은 소스몰에서는 오히려 ‘강남하우스’가 안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부에나파크에서 운영되던 백종원 대표의 브랜드 ‘새마을식당’은 지난 8월 말로 아쉽게 문을 닫았다. 같은 자리에는 지난달 윈(WYN) 코리안 바비큐(대표 제드 양)가 새로 영업을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 문을 닫았던 8가의 솥뚜껑 고깃집 ‘꿀돼지’ 자리에는, 일식·K-BBQ·샤부샤부 등 다양한 식당을 운영해온 베테랑 사장님이 새롭게 ‘솥뚜껑 돼지고기 전문점’을 열어 성업 중이다. 역시 오랜 내공을 가진 외식업인의 감각은 달랐다.   LA 한인사회에서 고깃집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가족 모임, 동창회, 비즈니스 미팅, 각종 후원 모임까지 한인사회의 중요한 장면들 대부분은 늘 고깃집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타운 고깃집은 지금도 한인 사회가 걸어온 시간 그 자체를 굽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고깃집 고깃집 브랜드 la 한인타운 백정 브랜드

2025.12.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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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노래방, 타운 재기의 상징이 되다

가라오케는 ‘비어 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로, 연주자 없이 반주만으로 노래를 부르는 오락문화를 뜻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가라오케는 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 ‘가라오케 나이트’라는 이름의 클럽 문화로 자리 잡았었다. 가라오케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류 사회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부활하는 추세다. 한인타운 윌셔가의 백인 운영 바 ‘브라스 몽키’에서도 정기적으로 가라오케 나이트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식 가라오케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무대형 공개 공간이 아닌, 개별 룸 단위의 사적인 공간에서 가족·친구·동료끼리 노래를 즐기는 ‘노래방’이라는 독특한 문화로 변모했다.     이 한국식 노래방 문화는 ‘나성’이라 불리는 LA 한인타운에도 그대로 전파되어, 이제는 한인 사회의 일상적 여흥이자 세대와 계층을 잇는 공동체 문화로 깊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 8가와 킹슬리의 현재 케네디 하이스쿨 부지에 있던 ‘대호 나이트클럽’은 LA한인타운 노래방 역사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당시 나이트클럽은 밴드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최신 가라오케 기계를 도입해 곡당 5달러씩 받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다. 노래 솜씨를 경쟁하듯 뽐내는 무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필자는 인테리어업을 하던 친구와 함께 방음이 완비된 소형 룸 두 개를 설치해 동시에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것이 사실상 LA 최초의 ‘룸형 노래방’의 시작이었다.   정식 상호를 걸고 문을 연 LA 최초의 노래방은 윌셔와 그래머시, 현재는 고깃집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LA 노래방’이다. 각 방에 69장의 레이저디스크를 장착한 파이오니어 기계가 설치됐고, 신청 가능한 곡 수는 적었지만 ‘최초’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님들은 번호표를 뽑아 두 시간씩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 후 불과 2년 사이에 자동 반주기, DJ가 LP를 직접 돌리는 방식 등 다양한 시스템이 실험됐고, 태진과 금영 반주기가 본격 도입되면서 노래방은 비로소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 노래방들은 주방도, 술 라이선스도 없는 순수한 ‘노래 연습장’ 개념이 강했다.   버몬트길 현 이태리 안경점 자리에 들어섰던 ‘신촌노래방’을 시작으로, 올림픽길 호돌이식당 2층 ‘딩동댕’, 3가의 ‘벌몬트 노래방’, 6가의 ‘데뷔’·‘영동’·‘럭키’, 윌셔의 ‘노래하나방’, 8가의 ‘꾀꼬리’, 웨스턴의 ‘DJ’·‘코러스’, 올림픽의 ‘스마일 노래방’ 등이 속속 등장했다. 이후 윌셔와 윌튼 코너에는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사용한 대형 ‘리사이틀 노래방’까지 들어서며 노래방은 한인타운 밤 문화의 핵심 업종으로 급부상했다.   LA 폭동 이후 타운 내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불탄 한인 업소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풀리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자금들이 노래방 업계로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이 시기 노래방은 단순한 유흥업소를 넘어, 타운 복구와 재기의 상징적 산업 중 하나로 기능했다.   3가 ‘숲속의 빈터’ 사장이 시작한 ‘숲속 노래방’은 LA 최초로 양주 라이선스를 취득해 술을 판매한 노래방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부터 노래방 업주들은 인테리어와 콘셉트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올림픽길 ‘MGM 노래방’은 같은 이름의 카지노로부터 상호 사용 문제를 제기받아 ‘MGeeM’으로 이름을 바꾸는 해프닝을 겪었고, 이후 ‘와와 노래방’으로 간판을 바꿨다.   노래방의 흥망은 그대로 한인타운 개발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한때 잘나가던 6가 채프먼 플라자의 ‘블리스’, 길 건너 ‘화이트’, 윌셔의 ‘별밤’, 대형 ‘팜트리 노래방’, ‘고성방가’, 뉴햄프셔의 ‘이가주 노래방’ 등은 재개발로 문을 닫은 곳이다.   현재 한인타운의 노래방들은 대부분 주류 판매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다. 6가의 필·영동·On&Off·리사이틀·전 감 K-Pop·슈라인, 3가의 숲속, 윌셔의 ‘베뉴’·‘파라호’, 8가의 ‘펑크’·‘로젠’·‘글로우’·‘인피니티’·‘갤럭시’, 후버의 전 ‘오디션’, 웨스턴의 ‘파블릭’·‘아코’·‘보’·‘콘서트’ 등이 성업 중이다. 8가의 ‘Epic’, 웨스턴의 ‘Jade’ 노래방도 조만간 새롭게 문을 연다.   한인타운에서 노래방은 40년 가까이 세대가 뒤섞여 노래로 소통하는 ‘정서적 광장’이자 작은 쉼터 역할을 해왔다. 1세대에게는 향수와 위로의 공간이었고, 2·3세에게는 한국 문화를 몸으로 익히는 체험장으로 한인타운의 밤을 밝혀왔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노래방 타운 la한인타운 노래방 한국식 노래방 룸형 노래방

2025.12.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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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올림픽길, 맛으로 부활하다

LA한인타운의 올림픽길은 지리적으로 동서 LA를 잇는 핵심 동맥이자, 이민 1세대들이 삶의 터전을 일군 ‘원조 한인타운’의 맥을 고스란히 품은 길이다. 6가나 웨스턴 중심부가 새로운 상권으로 각광받는 동안, 올림픽길은 오랫동안 ‘옛 한인타운’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올림픽길은 다시 활력을 되찾으며 한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식당가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는 가장 역동적인 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중심에는 ‘라성 브랜드’의 약진이 있다. 전 ‘오야붕’ 자리에 문을 연 ‘라성 순두부’는 오픈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업소의 젊은 사장은 ‘쿼터스’, ‘강호동백정’, ‘무한’, ‘라성돈까스’ 등을 운영하며 한인타운에서 무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근처에 문을 연 라성 돈까스도 골목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탰다. 라성이 불러일으킨 돈까스 열풍에 기존 강자였던 ‘와코(Wako)’에까지 손님이 다시 몰리며 ‘돈까스 역주행’ 성공에 한몫했다. 라성 순두부와 같은 건물에 들어선 카페 ‘Rok’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차라떼 한 잔을 맛보기 위해 하루 40~50명씩 줄을 세우고 있다.     올림픽길에는 감각적 카페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삼호관광 사옥의 ‘M&Co Cafe’, M Plaza 2층의 ‘M Cafe’, 전 대성옥 건물 코너에 들어선 ‘Memory Look Cafe’ 등은 모두 건물주 직영으로 넉넉한 공간과 넓은 주차장을 무기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베이커리 전선도 치열하다. 한국 대형 프랜차이즈가 잇달아 진출하는 가운데, LA 토종 브랜드 ‘아만다인(Amandine)’이 올림픽 함흥냉면 쇼핑센터에서 당당히 버티며 존재감을 지키고 있다. 인근에는 뚜레쥬르(한남마켓 센터), 빠리바게트(라성순두부와 같은 건물)가 들어서며 베이커리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아만다인 쇼핑센터에는 명인만두, 하이트 광장, 그리고 한국에서 미쉐린 추천을 받았다는 ‘게방’까지 새롭게 합류하며 상권이 한층 풍성해졌다.   올림픽길의 중식당 전통도 여전하다. 한인타운 중식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만한 ‘신북경’과 ‘연경’이 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연경 옆에 새로 문을 연 ‘서울분식’은 모든 단품 메뉴를 5달러로 고정하는 파격 전략으로 손님몰이에 나섰다.   새 아파트 개발도 상권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한국 반도건설이 지은 ‘보라 아파트’ 1층에는 일본식 그랩앤고 콘셉트로 인기를 끄는 ‘야마스시(Yamasushi & Marketplace)’가 들어섰고, 같은 건물에는 하나은행, Van Dyke 커피, 그리고 공사 중인 진솔국밥 순두부집까지 들어오며 거리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올림픽길 특유의 ‘넓은 스펙트럼’은 고기집에서도 드러난다. 무제한 랍스터를 즐길 수 있는 ‘TGI K-BBQ’, 웨스턴으로 이전한 양마니 자리에 들어선 ‘꼰대돼지’도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올림픽길은 오랜 시간 한인 식문화의 뿌리를 지켜온 곳이다. 대표적인 올드타이머 식당인 ‘강남회관’, ‘청기와’, ‘조선갈비’, ‘서울회관’, ‘소반’ 등이 여전히 건재한다. 또 ‘샤부야’, ‘죽향’, ‘선하장(오리구이)’, ‘풍무 양꼬치’, ‘감자골 감자탕’, ‘올림픽 칼국수’, ‘올림픽 청국장’, ‘장안된장’ 등 전문 맛집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한때 ‘옛 타운’으로 불리던 올림픽길은 이제 과거의 향수와 새로운 트렌드가 공존하는 한인타운의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거리가 되었다. 이민 1세대가 남긴 기억 위에 새로운 세대의 맛과 문화가 더해지면서, 올림픽길은 다시 한 번 LA 한인타운의 중심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올림픽길 부활 사이 올림픽길 동안 올림픽길 한인타운 중식

2025.11.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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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롯데리아, 한인타운에 와야할 이유

1970년대 LA한인타운 올림픽길과 버몬트길의 현재 '엘 뽀요 로코(El Pollo Loco)' 자리에는 '아메리칸 버거(American Burger)'라는 식당이 있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당시 한인 청소년들의 집합소였다. 그곳에 모인 소위 불량 청소년들은 업소명의 이니셜을 써서 'AB파'라 칭하곤 했다. 한인 최초의 청소년 갱이었다. 그 뒤를 이어 다소 험악한 이름의 'KK(Korean Killers)', 'LGKK(Last Generation KK)' 등이 등장했는데, 공식적으로 LA경찰국(LAPD)은 이 한인 갱들을 '깡패(Gang-pae)'라고 불렀다. 일본계 야쿠자, 중국계 와칭과 대비되는 고유명사였다.   길 건너 호돌이 식당 건물에는 '올림픽 버거'가 유명했다. 버거도 훌륭했지만,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멕시칸 스타일 부리토가 일품이었다. 착한 가격과 푸짐한 양의 인심 좋은 식당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도 타운내 햄버거 경쟁은 치열하다. 전체 시장에서는 인앤아웃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타운에서만큼은 '칼스 주니어(Carl's Jr.)'가 선전 중이다. 5가와 웨스턴, 6가와 웨스트모어랜드 2개 지점에서 1파운드에 달하는 두꺼운 앵거스 패티의 6달러 버거, 과카몰리 베이컨 버거 등 프리미엄 메뉴를 앞세워 입지를 다진다.   모두가 건강식을 외칠 때 "나는 내 길을 간다"는 뚝심의 '타미스 오리지널 버거(Tommy's Original Burger)'는 베벌리 길에서 내년이면 80년째 성업 중이다. 1600칼로리에 달하는 더블 칠리 치즈버거 콤보가 나의 최애 메뉴다. 칠리 버거 한 입에 노란 칠리 페퍼를 곁들이는 맛이 일품이다. 이름부터 건강식을 포기한 '팻버거(Fat Burger)' 역시 윌셔와 하일랜드 코너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도 꿈틀댄다. 5가와 웨스턴에는 비건 버거계의 인앤아웃이라 불리는 '몬티스 버거(Monty's Good Burger)'가 힙한 명소로 떠올랐다. 또 다른 최신 유행은 '스매시 버거'다. 정형하지 않은 패티를 그릴에 던지듯 눌러 굽는 방식이다. 웨스턴과 워싱턴 인근에 'LA 스매시 버거'가 있다. 제퍼슨과 후버 인근에 한인이 운영하는 '소프티스(Softies)'가 인기다.     최근 오렌지카운티(OC)에 '롯데리아'가 문을 열어 대박이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업 초기의 '오픈 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그 열기가 다소 식었다고 들었다. 햄버거 하나를 위해 OC까지 가는 수고는 하지 않아 아직 맛을 보지는 못했으나, 한국에서 경험했던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롯데리아가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업체가 있다.뼈아픈 실패 사례다. 5~6년 전 우리 회사 에이전트가 한국의 유명 체인 '맘스터치' 미국 1호점을 가디나에 리스를 주선해줬다. 시티 오브 인더스트리에 2호점까지 냈다고 들었으나, 최근 두 곳 모두 폐업했다. 문을 닫기 전 메뉴를 살펴보니 치킨버거 위주로 현지화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국 본연의 메뉴와는 사뭇 달랐는데, 과연 본사가 동의한 전략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 대기업 CJ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비빔밥 브랜드 '비비고'의 미주 시장 철수도 아쉽다. 그들은 진출 초기 주류 시장만을 타깃으로 삼아 한인타운을 배제했다.     로컬 한인 업소와의 경쟁을 피하겠다는 취지였으나, 1호점을 웨스트우드(UCLA), 2호점을 베벌리힐스, 3호점을 센추리시티 푸드코트에 낸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한인타운에 1호점, 라치몬트에 2호점을 내고 서서히 대학가나 파워센터로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필리핀의 맥도날드'라 불리는 '졸리비(Jollibee)'는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필리핀 현지와 동일한 메뉴를 고수한다. 현지화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 필리핀 교포들에게 익숙한 '고향의 맛'을 변질시키지 않겠다는 경영 철학을 천명했다. 현재 졸리비는 미국 내 80여 개 지점과 40여 개의 '레드 리본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며, 미국 커피빈과 한국의 컴포즈 커피까지 인수한 거대 기업이 되었다.   롯데리아는 새로운 한인타운인 OC에 첫 둥지를 틀었다. 이 선택도 좋지만 한인들의 저력이 응집된 LA 한인타운을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곳을 발판으로 미국 전역에 진출해 한국 외식 업계 1위의 저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롯데 한인타운 la한인타운 올림픽길 햄버거 경쟁 칠리 버거

2025.1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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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복을 감싸안은 맛, 보쌈

보쌈은 ‘복(福)을 싼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김치나 배춧잎에 싸 먹던 풍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김장이 끝난 뒤 돼지를 삶아 갓 담근 김치와 함께 이웃과 나누던 풍습, 그 넉넉한 나눔의 음식이 오늘날 보쌈의 원형이다.   이처럼 보쌈은 본래 나눔과 풍요의 상징이다. LA 한인타운에서 보쌈이라는 음식이 갖는 의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고된 이민 생활의 시름을 달래고, 지인들과 정을 나누는 자리 중심에는 으레 푸짐한 보쌈 한 접시가 있었다.   타운 보쌈의 역사를 논할 때 ‘고바우’를 빼놓을 수 없다. 버몬트 길로 이전하기 전, 베벌리 길 시절의 고바우는 소문난 막걸릿집이었다. 입구 오픈 키친에서 아주머니들이 직접 구워주던 해물파전과 보쌈, 그리고 동동주는 많은 이에게 타운의 정서를 상징하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고바우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타운의 저녁’을 함께 나누던 공간이었다.   ‘이모네’의 보쌈은 술꾼들 사이에서 ‘소주 한 잔 생각나는 집’으로 통한다. 특히 굴보쌈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저녁 무렵이면 거의 모든 테이블에 보쌈 한 접시와 소주잔이 빠지지 않는다. 음식이 술을 부르고, 술이 다시 대화를 부르는 곳이다.   ‘장터보쌈’은 보쌈·족발·순대를 기본으로, 불고기·비빔밥·김치찌개·곱창볶음·감자탕까지 아우른다. 메뉴는 다양하지만, 보쌈과 족발, 순대의 맛은 여전히 수준급이다. 한식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집이지만, 그중에서도 보쌈은 이 식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메뉴다.   ‘육대장’의 런치 보쌈은 간결한 구성이 매력이다. 점심시간에 육개장과 함께 보쌈 한 접시를 나누어 먹으면, 적당한 양에 깔끔한 맛이 더해져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한편, 보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족발 전문점들의 흥망성쇠는 타운 요식업계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한때 웨스턴길의 ‘미스터 보쌈’은 신세대 보쌈집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십수 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불불이 족발’이 들어섰다가, 다시 ‘더원족발’로 상호를 바꿔 재오픈했다. 사실상 같은 주인이다. 불불이 족발은 한때 동양선교교회 길 건너편, ‘와싸다’ 옆에 있던 맛집으로 유명했지만 팬데믹 이후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지금은 ‘핑크피그’가 새로 문을 열었다. 족발 전문점이지만, 특히 처음 맛본 ‘족발튀김’이 특별히 인상적이다. 족발의 부드러움에 바삭한 식감이 더해져 이색적인 별미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족발의 대명사로 불리던 ‘장충족발’도 빼놓을 수 없다. 웨스턴과 5가에 있던 본점은 사라졌지만, 올림픽 길의 지점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름답게 ‘전통 족발’의 정석을 고수하고 있다.   8가 길 옛 진흥각 자리에 들어선 ‘청춘족발’도 요즘 인기다. 족발뿐 아니라 순대볶음, 해물파전, 돼지국밥 등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다소 소박한 분위기의 소주방이지만, 그만큼 편안하게 한잔하기 좋은 곳이다.   3가 길의 ‘LA왕발’은 가성비가 돋보인다. 9.99달러 순대국 덕분에 찾았다가, 윤기 흐르는 족발의 부드러움에 반해 단골이 되는 이들이 많다. 순대 접시도 수준급이고, 전체적으로 정성스러운 손맛이 느껴진다.   감자탕으로 유명한 ‘감자골’의 보쌈도 기대 이상이다. 육수불고기로 잘 알려진 ‘황해도식당’의 보쌈·족발무침, ‘선농단’과 ‘항아리칼국수’의 보쌈 메뉴까지 보쌈은 이제 한인타운 거의 모든 한식당의 ‘기본 안주’이자 ‘소주와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보쌈은 21세기에도 한인타운에서 저녁 문화를 상징한다. 돼지고기 한 점을 상추에 싸 먹으며 쌓이는 정,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어지는 대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리움과 위로. 복을 싸서 나누던 풍습은, 타운의 밤을 위로하는 따뜻한 안주로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보쌈 보쌈과 족발 타운 보쌈 보쌈 메뉴

2025.1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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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커틀릿, 돈카츠 그리고 돈까스

‘돈까스’의 뿌리는 유럽의 ‘포크 커틀릿(pork cutlet)’에 있다. 19세기 말, 서양 요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이 영국식 커틀릿을 일본식으로 변형하면서 ‘돈카츠(とんかつ)’가 탄생했다.     이후 한국전쟁 직후 미군문화와 일본식 경양식이 섞이며 ‘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스터소스에 사과맛을 더한 달콤한 소스를 부어먹거나 찍어먹는 부먹·찍먹 논쟁은 그때부터 이어졌다. 여기에 카레를 곁들이면 카레돈까스, 새우나 소고기를 넣으면 새우까스, 비프까스로 변주된다.   한국에서 돈까스는 한때 ‘경양식집의 상징’이었다. 샹들리에가 달린 고급 식당에서 크림스프와 함께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던 음식, 말하자면 서구식 근대화의 상징이자 청춘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절반쯤 먹다 보면 느끼함이 몰려와 김치가 생각나는 것도 어김없었다.   LA 한인타운에서도 이 향수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올림픽과 크렌셔의 ‘두발로’, 윌셔길 ‘안전지대’, ‘카페 모네’ 등은 80~90년대 한국식 경양식집을 모방한 카페들이었다. 90년대 3가와 버몬트길의 일본인 경양식집 ‘알프스’는 그 계보의 원조격이다. 이후 상호를 ‘아이팝(Eyepop·Popeye의 철자를 거꾸로 한)’으로 바꾸며 명맥을 이었다.   이 시기 한인 카페문화의 기본 메뉴는 단연 돈까스였다. 옥스포드 카페, 난다랑, 나무하나, 인터크루 등 젊은층이 모이던 모든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돈까스가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주방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돈까스 소스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느냐”였다. 주방장은 소스 비법을 감추고, 헬퍼들은 배워보겠다고 들이대던 시절이었다.   돈까스는 대체로 돼지고기 등심을 손질해 힘줄을 제거하고 연육망치로 두드려 얇게 편 뒤, 빵가루를 입혀 얼렸다가 튀겨내는 방식이었다. 접시를 가득 덮는 크기, 성인 남자 얼굴보다 큰 돈까스가 당시 유행의 상징이었다.   이후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의 ‘왕돈까스’의 등장은 게임체인저였다. 케첩 베이스의 붉은 브라운 소스에 시큼달콤한 맛을 더해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접시를 가득 메운 왕돈까스는 보는 재미와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줬다.   한인타운 돈까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인물은 ‘꿀돼지’의 단 김 사장이다. 그는 윌셔와 알렉산드리아, 현재 ‘담솥’ 자리에 정통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 ‘와코’를 열었다. 얼리지 않은 프리미엄 등심을 두껍게 썰고, 최소한의 망치질 후 바로 튀겨내는 ‘겉바속촉’의 기술은 한인타운 돈까스의 새 장을 열었다. 손님이 직접 미니 절구에 통깨를 갈면 서버가 소스를 부어주는 퍼포먼스까지 더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 영향으로 옆집 카레 전문점은 문을 닫을 정도였다. 이후 와코는 아로마센터 푸드코트 입점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올림픽길 3호점 오픈으로 다시 부활했다.   벌몬트와 7가 ‘고바우 쇼핑센터’ 내에는 ‘명동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친척이 운영하는 분점이 생겼다가 몇 년 후 샤부미로 전업했다. 일본 하우스푸드가 운영하던 ‘카레하우스’가 마당몰에 문을 열었고, 이후 코코이치반이 6가 시티몰 코너에 들어서 타운 유일의 카레돈까스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카레가 주 메뉴지만, 손님 대부분은 카레돈까스를 찾는다.   가주마켓 3층 푸드코트의 ‘브라운돈까스’는 라면과 돈까스 세트로 인기를 끌었지만, 푸드코트 폐점과 함께 사라졌다. 이후 시티센터로 옮겼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엔 올림픽과 하버드 코너에 문을 연 ‘라성 돈까스’가 매운 돈까스로 인기를 모았다. 일본식 정통 튀김 기술에 한국식 케첩소스를 입혀 두 세계의 장점을 절묘하게 섞어낸 맛이었다.   현재 한인타운의 돈까스 지형도를 그려보면, 일본식 정통 와코, 한국식 왕돈까스, 한·일 퓨전형 라성돈까스, 그리고 카레돈까스의 코코이치반 등 네 갈래로 나뉜다.   돈까스 역시 타운의 다이내믹한 맛을 상징한다. 한국인의 근대적 미식 경험, 일본식 경양식 문화의 변용, 그리고 LA 한인사회의 추억이 한데 녹아 있다. 고급 경양식에서 출발해 지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식으로 자리 잡은 돈까스 한 접시는, 이민 1세대에겐 향수이자 2세대에게는 세대를 잇는 문화의 맛이라 할 수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커틀릿 돈카츠 카레돈까스 새우 한인타운 돈까스 돈까스 소스

2025.11.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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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타운을 휩쓴 간장게장 르네상스

간장게장은 신선한 게를 간장 양념에 담가 숙성시킨 한국의 전통적인 젓갈 요리이다. 그 유래는 고려 시대 문헌인 14세기의 농서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과 양반가에서 즐겨 먹던 고급 음식이었다. 특히 서해안 지역에서 발달해 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한 저장 음식의 역할도 했다.     이 전통의 ‘밥도둑’이 몇 년 전부터 한인타운에서 ‘K-푸드의 품격’을 상징하는 메뉴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인 손님이 저녁을 쏘겠다며 한인타운 간장게장 집으로 오란다. 웨스턴길의 ‘하선생’이다. 원래 설렁탕 맛집으로 알려진 곳인데, 웬걸? 이제는 옆 가게까지 터 두 배로 넓어진 매장에서 늦은 시간에도 영업한다. 손님들 대부분이 간장게장을 먹고 있다. 간장 새우도 인기 메뉴다. 손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라더니, 실제로 금가루까지 뿌려져 반짝이는 간장게장이 상에 오른다. 경이적인 현상이다.   중국인들이 한인타운으로 간장게장을 먹으러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필자가 자주 가던 버몬트 길의 ‘K Town Crab House’에 블랙핑크 리사가 다녀간 후, SNS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유명해지면서다. 리사가 다녀간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중국 관광객 성지로 떠올랐다. 예전엔 여유롭게 들렀던 가게가 이젠 바쁜 시간엔 피해야 할 정도로 북적인다. 특히 대형 성게 위에 각종 알을 듬뿍 올린 ‘성게 알밥’은 단연 내 최애 메뉴다.   최근 LA의 간장게장 집은 파인 다이닝 수준까지 고급화되고 있다. 올림픽과 하버드길의 하이트 광장 옆 ‘게방식당’은 한국 미쉐린 가이드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곳이다. 예약은 필수다. 메인 코스, 디저트까지의 코스가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가부키’ 사장님 아드님이 경영을 맡고 있다. 가부키 사장님이 운영하는 다른 한식당 ‘가빈’에서도 같은 간장게장 맛을 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상을 받은 날 뒤풀이를 ‘소반 식당’에서 했다. 이 식당의 가장 유명한 메뉴가 간장게장이라는 일화는 간장게장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타운에는 간장게장의 깊이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문점들이 곳곳에서 꾸준히 성업 중이다. 3가와 호바트의 ‘짜몽’ 옆에 위치한 ‘알찬 꽃게’는 간장게장 전문 식당으로, 많은 손님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8가길 ‘온달’은 꽃게탕과 게찜으로 유명하지만 간장게장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온달은 한인타운 간장게장 업체 중 최장수를 자랑한다.   전문점은 아니지만, ‘올림픽 칼국수’의 매운 양념 게장 맛은 거의 독보적이다. 매장에서는 칼국수를 시켜 먹느라 바빠, 대부분 투고해서 양념 게장을 집에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북창동 순두부’의 양념 게장도 완전 수준급이다. 여러 지점이 있어 LA는 물론 뉴욕, 텍사스 등 어디서든 급하게 양념 게장이 먹고 싶을 때 모든 지점에서 동일한 맛을 볼 수 있다.   비록 정식 메뉴는 아니지만, ‘남원골 추어탕집’에서는 전라도식 맛깔스런 밑반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장님 덕분에 가끔 양념 게장이 밑반찬으로 나오곤 한다. 넉넉한 인심 덕에 반찬 양이 푸짐하다.   투고를 하겠다면 맛과 양, 가격까지 착한 ‘보릿고개’의 간장게장도 훌륭한 선택이다. 보통 보릿고개 매장에서는 비빔밥을 비벼 먹느라 바빠 간장게장은 주로 포장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버몬트 길의 ‘튀는 활어’에서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당 39.99달러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비싼 간장게장으로 하루 날 잡고 배를 불리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한국의 맛’을 대표하는 간장게장은 이제 한인타운에서 한국의 정(情)과 손맛을 전하는 문화의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간장게장 르네상스 한인타운 간장게장 간장게장 전문 양념 게장도

2025.11.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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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타운 새벽을 지킨 소울푸드, Pho

월남국수 혹은 쌀국수라고 불리는 ‘Pho(포)’의 기원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의 쇠고기 스튜 ‘포토푀(Pot-au-feu)’가 베트남식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쌀국수 면 위에 소뼈와 향신료로 우려낸 맑은 국물, 그리고 숙주, 실란트로(고수), 라임이 어우러진 이 한 그릇은 식민의 흔적을 품은 음식이면서도, 전쟁 이후 세계로 흩어진 베트남 디아스포라가 각국에 남긴 ‘기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그 소울 푸드는 한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LA 한인타운 최초의 월남국수집은 6가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세븐일레븐 쇼핑몰 내 90년대 후반 문을 연 전설적인 ‘Pho LA’였다.   24시간 영업으로, 새벽 2시 술집들이 문을 닫는 시간 손님들이 해장을 위해 몰려들던 곳이었다. 쓰린 속을 달래던 그 한 그릇의 국물은 타운의 또 다른 밤 문화를 만들었다.   고수(실란트로)의 강한 향과 라임의 신맛은 처음 접하는 한인들에게 낯설었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끊을 수 없는 중독성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가정의 필수품이 된 스리라차 소스를 타운에 본격적으로 알린 곳도 바로 포 LA였다. 이때 월남국수의 매력에 빠진 수많은 유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는데, LA의 저렴하고 서민적인 스타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월남쌈을 곁들인 고급 요리로 변형된 점은 흥미롭다.   이후 4가와 웨스턴에 ‘Pho Western’이 문을 열며 타운 1등 자리를 꿰찼다. 지금의 ‘Cali Pho nia’ 자리다. 영업을 마친 웨이터들과 단골들이 모여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곳으로, 타운 사람들에게는 ‘새벽 국물집’으로 각인됐다.   1999년에는 드디어 진짜 베트남인 주인이 운영하는 ‘Pho 2000’이 1가와 웨스턴, HK마켓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대표 메뉴는 진한 옥스테일(소꼬리) 포. 한국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정통 베트남식 국물맛으로 타운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버몬트, 올림픽,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 등으로 확장하며 월남국수의 대중화를 완성했다. 지금도 웨스턴점과 코타플 지점은 같은 상호로, 같은 레시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한때 그보다 더 진한 국물의 ‘Pho 4000’도 등장했다. 4가 웨스턴 코너의 작은 식당이었지만, 깊은 국물 맛에 타인종 손님들까지 줄을 섰다. 타운이 지금처럼 다인종화되기 전, 이 음식은 LA의 새벽 공기를 타고 주류의 입맛도 매혹시켰다.   시간이 흘러도 ‘새벽의 월남국수’는 여전히 타운의 문화적 상징이다. 8가 옥스포드의 ‘Thank U Pho’, 6가의 ‘Pho 24’, 버몬트의 ‘Good Pho U’, 그리고 3가의 ‘Pho Legend’까지 이제 한인타운 곳곳에서 국적을 넘나드는 향신료와 국물이 섞인다.   특히 Pho Legend의 ‘분차(Bun Cha)’는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중 먹으며 화제가 된 메뉴로, 불향 입은 돼지고기와 국물 없는 쌀국수를 느억맘 소스에 버무려 먹는 별미다.   9가와 웨스턴의 ‘K-Town Pho’에서는 월남 샌드위치인 ‘반미’를 투고할 수 있어, 점심 한 끼의 일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타운의 월남국수 지도를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웨스턴 길을 따라 2가에는 Pho 2000, 4가의 Cali Pho nia, 7가의 Pho Gyu, 9가의 K Town Pho가 있다. 또 버몬트길을 따라 3가의 Pho Legend, 7가의 Good Pho U가 유명하다. 8가와 옥스포드 Thank U Pho, 6가와 켄모어의 Pho 24, 코타플 푸드코트내 Pho 2000 역시 강자다.   이 월남국수집들은 이국적이지만 한인의 식탁에서 서로의 문화를 포용한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이민자들만의 향기가 배어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소울푸드 타운 한인타운 곳곳 la 한인타운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

2025.10.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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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LA한인타운 ‘닭큐멘터리’

한국인에게 ‘통닭’은 아련한 추억이다. 아버지의 퇴근길, 월급날 손에 들려 있던 노란 종이봉투의 온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소한 전기구이 통닭.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위로이자 가족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의 통닭은 이제 ‘K-치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 그 중심에는 LA한인타운에서 주춧돌 역할을 한 터줏대감 치킨집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3가와 웨스턴 근처 DJ노래방 옆에 ‘페리카나 치킨’이 문을 열었다. 한국 브랜드로서는 미국 첫 진출이었다. 하지만 매장이 있던 쇼핑센터가 찰스 킴 초등학교 부지로 편입되면서 아쉽게 문을 닫아야 했다. 페리카나는 수년 전 오렌지카운티 소스몰과 LA 마당몰에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미주 시장 도전은 성공적이다.   한국식 치킨집이 드물던 시절, 한국 본사의 조리법과 인력을 직접 공수해 라크레센타와 한인타운 3가에 문을 연 ‘치킨데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원조다. 비록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두 지점 모두 여전히 성업하며 LA 한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4가와 웨스턴 코너에는 영화감독 출신 사장이 주방부터 서빙, 청소까지 ‘1인 경영’을 고집하는 ‘꼴통치킨’이 10여 년째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6가와 다운타운 올림픽에 지점을 둔 ‘꼬끼오’는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과도 같다. 과거 웨스턴 길에 있던 매장이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은 뒤 북쪽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6가로 돌아오는 등 역경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7년, 진출 당시 한국 업계 1위였던 ‘교촌치킨’은 6가에 본사 직영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미주 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최근 이 매장은 옆 월남국수집을 인수하고 7개월간의 확장 공사를 거쳐 지난 9월 재오픈했다. 하지만 18년이라는 진출기간에 비해 LA 3곳, 하와이 1곳 등 더딘 확장세를 보이며 미주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오히려 교촌의 ‘카피캣’ 브랜드로 알려졌던 ‘본촌치킨’의 행보는 흥미롭다. 한국에는 매장이 없지만 미국 시장을 집중 공략해 현재 미 전역에 130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했다.   교촌과 비슷한 시기 7가와 버몬트 고바우 식당 쇼핑센터에 1호점을 냈던 ‘BBQ치킨’은 초반에는 확장세가 미미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 현재 미주에만 200여 개의 매장을 확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K-치킨 프랜차이즈로 우뚝 섰다.   BBQ의 성공에 자극받은 한국 시장의 새로운 강자 ‘BHC치킨’도 미주 진출을 선언했다. 3가와 페어팩스 파머스 마켓에 1호점을, 채프먼 플라자에 플래그십 개념의 2호점을 직영으로 오픈하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에 시동을 걸었다.   BBQ 1호점 자리에 새로 들어선 ‘77켄터키 치킨’은 라크레센터에 2호점까지 오픈했지만,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8가 옥스포드 쇼핑센터와 가주마켓 내에서 ‘투존치킨’도 꾸준히 선전 중이며, ‘할머니 가래떡 떡볶이’라는 서브 브랜드로 젊은층 입맛도 잡고 있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치맥’ 전문점의 명맥도 이어지고 있다. 웨스턴 길의 ‘타운호프 땡스치킨’, 올림픽 길의 터줏대감 ‘하이트광장’과 ‘황태자’ 등은 여전히 저녁 시간 많은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한국마켓내 치킨 코너의 닭다리도 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테디셀러다.   LA 한인타운의 치킨집들은 아버지의 노란 봉투가 품었던 따뜻한 추억을 자양분 삼아, 이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K-푸드의 위상을 높이는 역사를 써가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la한인타운 한국식 치킨집 터줏대감 치킨집들이 페리카나 치킨

2025.10.1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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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스벅 퇴장, 한인 커피의 전성기

한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로 주저 없이 맥도날드 커피를 꼽던 시절이 있었다. 혀가 데일듯한 뜨거움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마치 뚝배기에 담겨 펄펄 끓는 국밥처럼, 뜨거워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태동하기 전, 데니스(Denny’s)나 아이홉(IHOP) 같은 식당들조차 파머스 브라더스에서 납품받은 원두를 드립 머신으로 내려 제공하던 때였다.   한인타운 초창기 ‘커피숍’이라 하면, 사실상 경양식 카페에 가까웠다. ‘두발로’, ‘안전지대’ 같은 곳이 대표적이었다. 젊은이들이  선도 보고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였다. 메뉴는 돈가스, 오므라이스, 그리고 다방식 커피가 전부였다.   1980~90년대에 들어서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옥스포드 카페, 난다랑, 인터크루, 나무하나 같은 카페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젊은 오렌지족들의 아지트가 됐다.     그무렵 주류 사회에 스타벅스가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를 유행시키면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커피 한 잔이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원두의 원산지와 플레이버가 중요해졌다. 그로서리 마켓 전면에는 소비자가 직접 원두를 갈아갈 수 있는 그라인더가 비치됐다.   한인타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만 달러가 넘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갖춘 전문점들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웨스턴 5가에 문을 연 ‘미스터 커피’는 그 신호탄이었다. 쌉쌀하면서도 크리미한 카푸치노 한 잔에 타운은 매료됐다. 곧이어 6가와 켄모어의 ‘몬테칼로’, 윌셔와 알렉산드리아의 ‘카페 홈’이 가세하며 한인타운에도 본격적인 에스프레소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 웨스턴 길의 미국 식당 ‘파이퍼스(Piper’s)’를 한인 사업가가 인수해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자정 넘어 커피와 함께 라면, 김치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는 ‘한국식 커피숍’의 등장은 한인들에게 새로운 해방구이자 행복을 선사했다.   이후 한인타운의 커피문화는 다양성과 감성으로 확장됐다. ‘발코니’, ‘맥’, ‘감’, ‘로프트’, ‘헤이리’, ‘노블’, ‘카페 센트’, ‘지베르니’, ‘노란집’ 등은 넓은 공간과 독창적 인테리어, 테라스 문화를 앞세워 새로운 카페 트렌드를 이끌었다.   한편 미국 주류시장에서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넘어 피츠, 인텔리젠시아, 블루보틀 등 ‘스페셜티 커피’의 거인들이 경쟁에 나섰다. 한국 브랜드인 할리스커피, 탐앤탐스, 카페베네도 한때 미주 진출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레드오션의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잔상은 윌셔길의 ‘어바웃타임’, 윌셔와 윌턴의 ‘목우’ 등에 남았다.반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같은 베이커리 브랜드와 대만계 ‘85°C’는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커피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LA 토종 브랜드인 ‘아만딘’의 선전도 괄목할 만했다.   최근의 흐름은 ‘기계’에서 ‘사람’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커피머신보다 ‘바리스타’가 주목받는다. 알케미스트, 도큐먼트, RnY 커피 스튜디오, 샤프 스페셜티 커피 등은 커피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매니아층의 성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며 넓은 공간과 주차 편의성을 확보한 새로운 모델도 등장했다. 삼호관광 사옥의 ‘엠코 카페(MCO Cafe)’, M플라자의 ‘M Cafe’, 구 대성옥 자리에 들어선 ‘메모리 룩 카페(Memory Look Cafe)’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스타벅스가 미 전역에서 900여 개 매장의 폐쇄를 예고하며 한인타운 내 주요 매장들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빈자리를 한인 바리스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강자들이 채우고 있다.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 ‘마루 커피(Maru Coffee)’ 등은 이미 주류 시장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타운 내에서도 ‘다모(Damo)’, ‘록(Rok)’, ‘스태거(Stagger)’ 등은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커피 한 잔은 시대의 온도이며, 공동체의 풍경이다. 다방커피에서 시작된 LA 한인타운의 커피숍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바리스타들이 이끄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로 이어지며, 한인 사회의 새로운 연대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전성기 퇴장 한국식 커피숍 한인타운 초창기 스페셜티 커피

2025.10.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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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쌍화차에서 마차까지, 성공의 DNA

차(茶) 한 잔에 담소를 나누고 정을 쌓아온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면에서 1980년대 초반 문을 연 8가 옥스포드 센터의 ‘여왕봉 다방’은 한국의 다방 문화를 그리워하던 한인들에게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존재였다.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와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위로와 향수 그 자체였다. 전복죽으로 유명했던 ‘산’ 식당과 숯불집을 성공시킨 박부생 사장의 손에서 탄생한 이 공간은 한인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윌셔길의 한방 찻집 ‘화선지’는 다방과는 결이 다른 멋을 선사했다. 한국 전통 인테리어 속에서 진하게 달인 쌍화차에 꿀을 타고 잣과 대추를 띄워 마시는 여유, 여름날 곶감호두말이와 곁들이는 시원한 수정과는 이민 생활의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올림픽길의 ‘다루’, 가주마켓 3층의 ‘카페 예’ 등도 떡볶이와 팥빙수, 붕어빵 같은 추억의 메뉴를 한방차와 함께 선보이며 한인들의 발길을 붙들었지만, 이제는 모두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전통 찻집의 시대가 저물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대만에서 건너온 ‘보바티(Boba Tea)’였다. 1990년대 초 ‘난다랑’ 쇼핑센터에 문을 연 ‘롤리컵’을 필두로, 물담배(후카)를 곁들인 ‘보바베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인타운 음료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는 한인 2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도전 정신은 빛을 발했다. ‘I Love Boba’는 한인타운 곳곳에 지점을 내며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시험했고, 7가와 버몬트의 ‘보바로카(Boba Loca)’는 보바티 사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 프로즌 요거트 브랜드 ‘요거트랜드(Yogurtland)’를 탄생시키는 신화를 썼다. 필립 장 대표의 작품이었다. 전 세계 350개 지점을 거느린 요거트랜드 성공의 단초가 바로 보바티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보바로카’가 떠난 자리에 들어선 ‘잇츠 보바타임(It’s Boba Time)’ 역시 100여 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며, 이 자리가 ‘성공의 명당’임을 입증했다.   최근 한인타운에는 프룻티와 흑당 버블티를 앞세운 중국계 보바숍들의 2차 공습이 거세다. ‘이팡(Yi Fang)’, ‘선라이트 티(Sunright Tea)’, ‘타이거 슈가(Tiger Sugar)’등이 연이어 문을 열었고, 특히 ‘3 Catea’는 타운 내 1등 보바숍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Matcha)’의 시대가 도래했다. 8가에 문을 연 ‘다모’와 ‘스테거’, 버몬트의 ‘온이스케이프 카페’ 등 타운의 최신 핫플레이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차를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올림픽길 라성순부두 코너에 자리한 ‘Rok’에는 매일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곧 샌게이브리얼밸리와 풀러턴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다방의 쌍화차에서 보바티를 거쳐 오늘의 마차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인기 음료는 시대의 흐름과 세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하지만 그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고국의 맛을 그리워하던 1세대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고 소비하는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차 음료 열풍은 유행을 넘어, 이민 사회의 변화하는 정체성과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무엇이든 성공 신화로 만들어내는 한인 특유의 ‘DNA’가 담겨있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한인타운은 여전히 ‘차’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쌍화차 마차 한인타운 음료 요거트랜드 성공 한인타운 곳곳

2025.10.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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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지역별 ‘고깃집 강자’를 찾아서

LA 한인타운을 넘어 외곽 도시에도 각 동네를 대표하는 로컬 K-BBQ 맛집이 반드시 존재한다. 필자의 소셜미디어 팔로워들에게 대표적인 K-BBQ 지역 강자들을 소개해달라 부탁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이번 칼럼에서는 충성 고객들이 선정한 지역별 인기 고깃집들을 소개한다.   베벌리힐스에는 ‘겐와’가 꼽혔다. 야키니쿠를 연상시키는 이름과 달리 정통 한식으로 입소문을 탔다. 미라클마일 1호점의 성공에 이어 라시에나가 길에 2호점을 열며 영역을 확장했다.     버뱅크에서는 중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한스 K-BBQ’가 타운센터 몰 내에서 성업 중인데, 한식당 사장의 컨설팅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밸리 지역에서는 1996년부터 2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본셔길의 ‘식도락’이 독보적인 강자로 꼽힌다. 밸리 주민들의 특성상 ‘동네 2등’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굳건히 명성을 지키고 있다.   LA 북쪽 옥스나드의 ‘젠 바비큐’는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샌호세는 ‘10부쳐스’가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정갈한 밑반찬과 최고급 와규를 내세워 ‘인생 고기집’이라는 극찬까지 얻어냈다.   알함브라에서는 ‘젠 바비큐’가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켰으나, 길 건너편 ‘추풍령’이 새로운 주인을 맞으며 판도를 뒤집었다. 샌게이브리얼 밸리 길에서는 ‘박대감’이 인수한 ‘TK92’가, 로즈미드 길에서는 ‘우국’이, 아케디아에서는 ‘백정’이 사이좋게 시장을 나눠 가진 모양새다. 특히 샌게이브리얼 밸리 중국인 타운은 LA 한인타운에 비해 규모가 훨씬 커 여러 식당이 공존하며 성장하고 있다.   시티오브인더스트리의 ‘떨스티 카우(Thirsty Cow)’는 가든그로브에도 지점을 내며 최상급 고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지역 주민들은 마치 ‘인앤아웃’에 대한 충성도와 맞먹을 정도로 ‘떨스티 카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롤랜드하이츠에서는 ‘쳐비 캐틀(Chubby Cattle)’이라는 중국인 소유의 K-BBQ 식당이 ‘쳐비 그룹’의 노하우를 살려 찰진 운영을 선보이고 있다.   토런스에서는 ‘92 K-BBQ’가 대박을 터트렸다. 특히 ‘예술적인’ 뷔페 라인 덕분에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할 정도다.   부에나파크의 ‘강남 스테이션’은 LA에서 성공을 거둔 뒤 부에나파크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며, 밤 12시 이후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바인에서는 ‘백정’이 규모 면에서 1위를 차지하지만, 돼지고기는 ‘솥뚜껑구이 꿀돼지’가 강자다. 가든그로브에서는 전통의 ‘모란각’이 건재하며, 최근 부에나파크에 2호점을 냈는데 고기보다 냉면이 더 유명하다.   코스타메사의 ‘안진’은 일본식 야키니쿠로 인기가 높다. 개인적으로는 파운틴밸리의 ‘츄루하시’가 호르몬 구이와 돌솥밥으로 기억에 남는다. 야키니쿠를 한식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일본 서적에도 ‘한국 요리’라 표기하고 야키니쿠라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미국 최대의 K-BBQ 식당은 64개의 지점을 갖춘 ‘규카쿠’라고 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는 ‘356 K-BBQ’가,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들에게 ‘김치 바비큐’가, 현지인들에게는 ‘호박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와이는 전통의 강자 ‘서라벌’이 문을 닫은 후 ‘온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와이 알라모아나 쇼핑몰 내 ‘젠 바비큐’도 성업 중이다. 하와이 섬 특유의 ‘텃세’ 때문에 외지인 식당이 자리 잡기 어렵지만, 쇼핑몰 안은 예외인 듯하다.   이처럼 각 지역의 K-BBQ 강자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고유한 식문화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고깃집은 이제 미국에서 한식당이 아니라 ‘로컬 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지역별 고깃집 지역별 인기 지역 강자들 한식당 사장

2025.09.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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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부모 닮은 한인 손맛, 미슐랭의 별로

미국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K-BBQ가 한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최고급 미식의 상징인 '파인 다이닝' 영역에서 한식의 위상이 급부상했다. 세계적인 미식 가이드 미슐랭의 별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성장은 미식의 수도 뉴욕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뉴욕에서만 3스타 '정식(Jungsik)'을 필두로, 2스타에 '아토믹스(Atomix)'와 '고테(COTE)', 1스타에 '꼬치(Kochi)', '녹수(Noksu)', '마리(Mari)','메주(Meju)', '봄(Bom)', '오이지 미(Oiji Mi)', '주아(Jua)', '주옥(Joo Ok)'등 총 11곳이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다.     특히 '고테'는 마이애미에서도 1스타를 받아, 두 개 도시에서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유일한 한식 레스토랑 그룹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흐름은 서부로도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쌀(Ssal)'과 '산호원(San Ho Won)'이 각각 1스타를 받았고, 한국 3스타 '모수'의 안성재 셰프를 배출한 코리 리 셰프의 '베누(Benu)' 역시 3스타의 영예를 안았다.     LA에서는 피코 길에 위치한 '키(Ki)'가 유일한 미슐랭 스타 한식당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기용 셰프는 이전 수년간 6가 길에서 한식 오마카세 전문점 '킨(Kinn)'의 파트너 셰프로 활약한 바 있다.   미슐랭 스타 외에도 주목할 곳은 많다. LA 다운타운의 '바루(Baroo)'는 '2024 LA 타임스 올해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며 독창적인 테이스팅 메뉴와 막걸리, 사케 페어링으로 현지 미식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 주류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는 뉴욕 '모모푸쿠(Momofuku)' 식당 그룹의 오너 셰프 데이비드 장이 다운타운에 문 연 퓨전한식 '메이저도모(Majordomo)'도 꼭 한번 시식해볼만한 식당이다.   또한, 세계적인 셰프 아키라 백은 라스베이거스 일식당 옐로테일에 이어 베벌리센터에 한식 바비큐 파인 다이닝 'AB 스테이크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대를 이어 미국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 2세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한국에서 미슐랭 식당으로 유명한 간장게장 전문점 '게방식당'이 지난 3월 한인타운 올림픽길에 문을 열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유명 일식 레스토랑 체인 가부키를 운영하는 카이젠 다이닝 그룹의 데이비드 이 회장 아들이자 모던 일식 퓨전 레스토랑 히비 창업자인 솔로몬 이 대표가 경영하고 있다.   또 '박대감' 사장의 딸인 엘리자베스 홍 셰프는 미슐랭 스타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모짜(Osteria Mozza)'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컬리너리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고바우' 사장의 아들인 브라이언 백 셰프도 뉴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멜로즈 힐스에 새로운 레스토랑 'Bar 109'를 열었다. 이는 본격적인 파인 다이닝 'Corridor 109'의 전초전으로, 한식과 일식에 기반한 해산물 요리와 칵테일 페어링을 선보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 미슐랭의 별을 받진 못했지만 미슐랭 가이드가 그 맛을 인정하고 추천한 한식당들도 많다. 용수산, 박대감, 단비, 쿼터스, 정육점, 조선갈비, 다래옥, Liu's Cafe 등이 '스타'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한식의 파인 다이닝 진출은 단순히 메뉴의 고급화를 넘어, 한식 고유의 철학과 섬세한 맛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미식 문화로 당당히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1세대가 땀으로 닦아놓은 길 위에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2세 셰프들의 창의적인 도전은 한식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이들의 활약이 계속될 때, 한식의 세계화는 더 깊고 풍성한 차원으로 나아갈 것이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미슐랭 부모 미슐랭 스타 가이드 미슐랭 한식 레스토랑

2025.09.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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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펄떡이는 활어, 야생의 미식

일식집 가서 초고추장을 찾으면 스시맨들한테 회 먹을 줄 모른다며 핀잔을 듣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난 한국식 횟집에서 팔팔 뛰는 활어 건져 회를 떠주면 초고추장 찍어 생마늘과 상추에 얹어 쌈 싸먹는 것을 선호한다. 회뿐인가. 접시에서 꿈틀거리는 산낙지며 싱싱한 해삼, 멍게, 개불에 한치를 얇게 썰어 국수처럼 시원하게 말아먹는 물회도 입맛을 자극한다.   여기서 끝이라면 한국식 횟집이 아니다. 샐러드, 콘치즈, 계란찜, 튀김, 구이 등 이른바 ‘찌끼다시’로 통하는 곁가지 음식이다. 찌끼다시는 일본어로 곁들이찬을 뜻하는 ‘쓰키다시(突き出し)’를 말한다. 회를 먹고 난 뒤 마지막에는 매운탕과 누룽지로 마무리하는 한국식 횟집은 한국인들의 입맛에 특화된 독특한 식문화다.   일본식 스시와 사시미가 사후경직을 지나 조직이 부드러워지는 숙성 과정을 거쳐 깊은 맛을 추구하는 ‘정적인 미식’이라면, 한국식 활어회는 펄떡이는 활어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기는 ‘야생적인 미식’이라고 할 수 있다.   LA한인타운 횟집은 1987년 올림픽길에 문을 연 ‘인천횟집’과 2년 뒤 웨스턴 길에 개업한 ‘송도횟집’이 양분하며 활어 문화의 본격 서막을 열었다.   이후 올림픽 길에 ‘마산 아구찜’이 식당을 확장해 대형 수족관까지 들여놓으면서 활어집 붐이 일어났다. 필자도 2005년 대형 횟집을 개업하기도 했다. 한국 방문중 봤던 마포의 한 건물 지하 대형 회센터를 본떠 만든 ‘노량진 회센터’다.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윌셔와 버몬트 인근 부지 전 신라부페 자리에 파트너들과 함께 운영했다. 자랑거리는 초대형 수족관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설치해준 업체에 의하면 남가주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다.   이후 횟집의 계보는 웨스턴 길의 ‘자갈치시장’, 6가 길 현재 바다이야기 자리의 ‘청해진’, 그리고 4가와 웨스턴에 오픈했던 ‘T=활어’로 이어졌다. 올림픽길에 있던 독도스시도 한때 성업했는데 개발업자에게 건물이 넘어가며 문을 닫았다.   거의 비슷한 시기, 웨스턴길에 ‘와싸다’와 ‘활어광장’이, 피코길에 ‘제주활어’가 문을 열었고 8가와 후버길에 테이크아웃 위주의 ‘LA활어’가 생겨나 간편하게 활어회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국식 횟집이 활어의 신선함과 푸짐한 쓰키다시로 차별화했다면, 한인타운의 ‘고급 일식집’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랑받았다.   한인타운 초기의 고급 일식점들은 한식당 한쪽 구석에 일식 코너를 꾸미는 식으로 시작됐다. 동일장이 그 원조였고 동일장 셰프가 독립해서 차린 강남회관이 그랬다.   벌몬트길의 ‘쇼군’도 동일장 출신 또 다른 셰프가 개업했다. 쇼군과 윌셔와 그래머시의 ‘붕호’는 다다미방이 있는 대표적인 고급 일식집이었다.   부동산을 업으로 하다 보니 큰 계약을 마무리하면 셀러와 바이어를 모시고 종종 이런 곳을 찾는다. 다다미 방에 들어가 등받이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큰상을 받는다. 메뉴는 1인당 100여달러하는 사시미 스페셜을 시키고, 술은 오니고로시나 쿠보타 등 준마이 다이긴조급 사케를 큰 병으로 시켜야 제대로 접대받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유행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횟집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일식집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 ‘송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어원’과 1995년 윌셔와 윌튼 인근에 개업한 ‘아라도’가 있다. 3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이 업소들은 한국식 일식점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펄떡거리는 광어회 한점에 초고추장 찍어 마늘까지 올린 쌈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어떤 횟집을 가볼까나.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활어 야생 한국식 활어회 한국식 횟집 la한인타운 횟집

2025.09.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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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스시 격전지로

LA 한인타운 베벌리길의 ‘노시 스시(Noshi Sushi)’는 한인 스시 애호가들에게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인 할아버지 노시 셰프가 쥐여주던 스시는 두툼하고 정이 넘쳤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였던, 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푸짐하게 올려주던 우니(성게알)는 맛의 정점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하려다 “현금만 받는다”는 말에 당황했던 기억마저 이제는 그리운 풍경이다. 노시 할아버지가 은퇴하며 직원들에게 가게를 넘긴 후, 그 장인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노시 스시와 함께 한 시대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던 곳은 베벌리와 버질 인근의 ‘시부초(Shibucho)’였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던 이곳은 메뉴판조차 없던, LA 최초의 오마카세 전문점 중 하나였다. 스시 바에 앉으면 그날 가장 좋은 생선으로 셰프가 내어주는 니기리를 묵묵히 받아먹어야 했다.     메뉴에 불평이라도 하면 쫓겨난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뚝심과 자부심은, 역설적으로 LA타임스가 수차례 최고의 일식당으로 선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인들에게 ‘정통 스시’의 기준을 제시했던 이 전설의 식당 역시 팬데믹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노시 스시와 시부초로 대표되는 초창기 일본인 장인들의 일식집은 한인 커뮤니티에 단순한 ‘맛집’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일본 장인의 깐깐한 고집과 정성스레 다룬 생선 한 점은,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작은 사치였다. 이들 가게의 존재는 한인타운이 타문화를 존중하고 수준 높은 미식을 향유할 줄 아는 커뮤니티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두 거장의 퇴장과 함께 한인타운의 일식 지형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솔에어 건물에 야심 차게 문을 열었던 회전초밥집 ‘카시라(Kashira)’는 ‘쿠라 스시(Kura Sushi)’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뒤, 한인이 운영하는 무제한 스시 식당으로 변모했다. 이는 푸짐함과 가성비를 선호하는 한인 시장의 특성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이후 한인타운 일식은 세분화, 전문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올림픽길의 ‘야마스시 마켓플레이스(Yama Sushi Marketplace)’는 바쁜 현대인을 겨냥한 ‘그랩앤고(Grab-and-Go)’ 스타일의 롤과 스시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6가 채프먼 플라자의 ‘카주노리(KazuNori)’는 유명 셰프 노자와의 명성을 등에 업고 ‘핸드롤’이라는 단일 메뉴에 집중, 미니멀한 공간에서 최고의 맛을 경험하게 하는 전략으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최근 6가와 웨스턴 코너에 문을 연 ‘노리카야(Norikaya)’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셰프 없이 획일화된 맛을 내던 기존 핸드롤 바의 한계를 넘어, 속을 풍성하게 채운 ‘오픈 핸드롤’과 다채로운 타파스 스타일의 이자카야 메뉴를 결합했다. 이는 스시를 가볍게 즐기면서도 제대로 된 요리와 주류를 곁들이고 싶은 새로운 소비층의 욕구를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최근 한인타운 일식 트렌드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단연 ‘고급화’다. “한인타운에서는 무조건 싸야 한다”는 오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그 선두주자는 웨스턴 길의 ‘하토 스시(Hato Sushi)’다. 유명 일식집 출신 셰프가 제대로 숙성시킨 고급 생선으로 선보이는 니기리 스시는, 저녁에는 예약 없이는 맛보기 힘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며 한인타운에도 프리미엄 스시 시장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이러한 흐름에 방점을 찍은 것은 외부 유명 브랜드들의 한인타운 입성이다. 윌셔길에는 노부(Nobu) 출신 셰프가 가이세키 스타일의 정통 오마카세 전문점 ‘우마야(Umaya)’를 열었고, 베벌리힐스의 터줏대감이던 오마카세 명가 ‘마스모토(Masumoto)’가 7가와 웨스턴으로 이전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는 한인타운이 LA의 핵심 미식 상권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일본 최대 스시 체인 중 하나인 ‘스시 잔마이(Sushi Zanmai)’가 미국 1호점의 위치로 채프먼 플라자를 선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LA 한인타운 일식점의 연대기는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진화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 일본 장인의 솜씨에 의존하며 ‘정통의 맛’을 소비하던 단계를 지나, 이제는 한인 자본과 기획력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캐주얼 롤집부터 무제한 스시, 전문화된 핸드롤 바, 그리고 최고급 오마카세에 이르기까지, 이제 한인타운은 스시라는 장르 안에서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갖춘 역동적인 ‘격전지’가 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격전지 이후 한인타운 la 한인타운 한인 스시

2025.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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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나무하나’를 기억하시나요

LA한인타운내 카페의 역사를 떠올리면 마치 턴테이블 위 LP판에서 흘러나오던 ‘지직’하는 추억의 소음이 들리는 듯하다.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그 시절, 어두운 조명 아래 흘러나오던 음악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밤은 젊었고, 우리는 불안했지만 자유로웠다.   1980년대 말 타운 카페의 대표 주자는 전설의 ‘옥스포드 카페’다. 현재 솔에어 콘도 뒤편 메트로 버스 정류장이된 건물에서 성업하며 X세대들의 아지트로 불렸다.   비슷한 시기 한인타운의 카페들은 커뮤니티의 필요에 응답하며 저마다 색깔을 찾아갔다. 6가와 세라노 쇼핑센터의 ‘난다랑’이나 웨스턴 길의 ‘제임스딘’은 당시 서울의 유행을 그대로 옮겨온 공간들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선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무단으로 이름을 빌린 짝퉁 카페였지만 그땐 그랬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업소 이름을 가져다 쓰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한국의 최신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만족감은 이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카페는 한인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며 그 용도를 확장했다. 크렌셔 길의 ‘두발로’는 넓은 주차장을 갖춘 단독 건물에서 커피와 경양식을 팔던 소박한 공간으로 시작했다. 풋풋한 소개팅과 첫 데이트의 명소였던 이곳은 주류 라이선스를 얻은 뒤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으로 바뀌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현재는 ‘EK 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두발로와 유사하게 경양식집으로 출발했던 윌셔 길의 ‘안전지대’는 주부들의 계모임 장소로 인기를 끌다가 야외 활어집으로, 현재는 ‘명동교자’로 완전히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90년대 한인타운의 경제적, 문화적 성장은 카페의 질적 도약으로 이어졌다. 올림픽 길의 ‘강서회관’ 사장이 개업했던 ‘카페 모네’는 한국 호텔 주방장을 초빙해 선보인 정통 경양식으로 격조 높은 미식 공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켰다.     비슷한 시기 필자도 카페를 운영했다. 윌셔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할리우드의 전설이 깃든 ‘오리지널 브라운 더비’ 자리에 ‘카페 나무하나’를 개업했다. 클라크 게이블 등 전설적인 무비스타들이 찾았던 곳이다. 또 이 자리에서는 전 필리핀 대통령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가 필리핀 레스토랑 ‘비아 마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둥근 돔 형태의 건물은 마치 중절모를 연상케 했고, 내부 한가운데 진짜 나무 한 그루를 세워 ‘나무하나’라는 이름에 걸맞은 공간을 연출했다. 한쪽에서 속삭인 말이 반대편 테이블에서 들릴 정도로 신기한 구조였다.   얼마 후 길 건너 채프먼 플라자에 있던 필리핀 식당을 유학생 출신 지인이 인수해, 일본에서 유명한 ‘인터크루’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당시엔 교포들이 ‘나무하나’를, 유학생들이 ‘인터크루’를 찾으며 손님층이 자연스레 나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6가 세븐일레븐 건물(현 카페 블루)에는 서정적인 이름의 ‘마로니에’가, 멜로즈 길 언덕에는 ‘몽마르뜨’가 문을 열었다. 윌셔 라마다 호텔 자리에는 ‘모아모아’, 라브리아 길에는 중장년층을 위한 ‘카페 라브리아’, 베벌리와 버질에는 프라이빗한 다이닝룸을 갖춘 ‘카페 코코’ 등이 속속 등장하며 한인타운에 카페 전성시대를 열었다.   옥스포드길의 ‘카페 콘체르토’는 일식 체인 ‘옌’ 사장이 시작했으며, 이후 6가 재개발로 ‘카페 하우스’를 정리한 사장이 인수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 옆 ‘카페 메트로’로 시작했던 공간은 한국 톱모델 출신 재일교포 사장이 ‘앙주’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뒤, 현재의 ‘치킨수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 주택을 개조한 ‘카페 더반’이나 ‘카페 지베르니’의 등장은 또 다른 변화를 시사했다. 화려함보다는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이 공간들은, 이제 한인 커뮤니티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넘어 자신들의 진정한 ‘쉼터’를 필요로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나무 기억 옥스포드 카페 타운 카페 카페 모네

2025.08.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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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LA 일식 뷔페 성공 신화의 비밀

LA 한인들에게 ‘에도코(Edoko)’,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토다이(Todai)’, ‘마키노(Makino)’는 단순한 일식당 이름 그 이상이다. ‘비싼 음식’의 대명사였던 일식을 저렴하고 푸짐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 추억의 공간이자, 한인 이민 사회의 외식 트렌드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모두 일본인 형제가 시작해 한인의 자본과 만나 거대하게 성장한 뒤, 창업주는 거액을 손에 쥐고 떠났다는 공통점이다. 일식 뷔페의 40년 흥망성쇠는 LA 한인 사회의 경제적 성장과 외식 문화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기념비적인 시작은 1981년, 토루 마키노가 버뱅크에 문을 연 에도코였다. ‘일식=고급 요리’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식 뷔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에도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토루 마키노는 여러 지점을 열며 사세를 확장하다 대부분을 중국계 및 한인 사업가에게 매각했다.   그리고 1985년, 그는 샌타모니카에 한 단계 진화한 ‘라이트하우스’를 열어 또 한 번의 성공 신화를 썼다. 그후 일본어로 ‘등대’라는 같은 의미의 ‘토다이’를 설립해 본격적인 체인 사업에 뛰어든다.   토다이의 확장기부터 한인 자본이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주로 한인 투자자들이 공사비 등 초기 자본을 대부분 부담하고, 마키노 형제(동생 가쿠 마키노 합류)는 융자를 통해 51%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몇 년 후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면, 이들은 나머지 지분을 파트너에게 넘겨 막대한 차익을 실현했다.   이 성공 방정식은 1998년, 한인 투자 그룹이 토다이를 전격 인수하며 정점을 찍는다. 토다이는 샌호세, 하와이는 물론 홍콩과 서울에까지 진출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났고, 라이트하우스 역시 결국 한인의 손에 인수되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후 형제 중 가쿠 마키노가 독립하여 ‘마키노’라는 브랜드로 샌디에이고, 라스베이거스 등지에 새로운 뷔페를 열었지만, 현재는 라스베이거스 지점의 일부 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영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현재 라스베이거스 마키노의 경영 파트너 역시 LA 출신 한인이다.   영원할 것 같던 대형 일식 뷔페의 시대는 외식 트렌드의 변화와 과당 경쟁의 벽에 부딪혔다. 토다이를 인수한 일부 한인 투자자들은 ‘오나미(Onami)’로 상호를 변경해 쇼핑몰 중심으로 활로를 모색했고, 한인타운 내에서는 ‘신라’, ‘비원’처럼 한식을 접목한 뷔페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상권 중복과 비효율, 소비자 취향 변화로 대부분의 업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는 글렌데일의 ‘베가스 시푸드 뷔페’처럼 중국계 자본에 의해 더욱 대형화된 일부 뷔페와 웨스턴 길의 ‘킹 뷔페’, 롱비치의 ‘홋카이도 시푸드 뷔페’ 등 소수의 저가형 뷔페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뷔페의 빈자리는 ‘무제한 스시(All You Can Eat Sushi)’가 빠르게 파고들었다. 한인타운 최초의 무제한 스시집은 윌셔길 머큐리 콘도 1층의 ‘이포 스시(Ippo Sushi)’였으나, 극심한 경쟁 속에 문을 닫았다. 초창기 무제한 스시집들이 손님의 배를 빨리 채우기 위해 밥 양을 늘린 ‘주먹밥 스시’를 내놓았던 반면, 최근에는 새로운 강자들이 판도를 바꾸고 있다.   4가와 웨스턴의 ‘히어피시(Here Fishy)’와 여기서 독립한 파트너가 윌셔 솔레어 콘도 1층에 문을 연 ‘히어피시피시(Here Fishy Fishy)’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파인 다이닝 수준의 스시 퀄리티를 선보이며 ‘양보다 질’을 추구,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며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무제한 스시를 즐기는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오마카세’가 유행하는 가운데, 현명한 소비자들은 무제한 스시집에서 ‘가성비 오마카세’를 즐기는 신공을 발휘한다. 주문 횟수 제한이 있는 고급 생선 메뉴를 먼저 집중적으로 시켜 오마카세처럼 즐긴 뒤, 롤, 튀김, 우동 등으로 허기를 채우는 방식이다.   나아가 ‘무제한 바비큐’와 ‘무제한 스시’를 결합한 ‘AYCE 스시 & 바비큐’ 콘셉트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사케 투 미 스시(Sake 2 Me Sushi)’가 무제한 스시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부에나파크와 브레아에서 돌풍을 일으킨 ‘엑스피시 이자카야(X-Fish Izakaya)’는 ‘강남스테이션’ 사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4개의 ‘야마 스시(Yama Sushi)’를 성공시킨 이는 ‘김치 바비큐’ 사장이다. 이처럼 일식 뷔페에서 시작된 한인들의 ‘스시 드림’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자들에 의해 그 명맥과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푸짐함으로 상징되던 1세대 일식 뷔페는 ‘가성비’의 무제한 스시로, 이제는 ‘가심비’와 스마트한 소비가 결합된 3세대 트렌드로 진화하고 있다. 이 또한 LA 한인 외식 문화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일식 뷔페 일식 뷔페 성공 신화 일식당 이름

2025.08.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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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살랑살랑 만나는 행복한 맛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너머로 정담을 나누고, 각자의 취향대로 익힌 고기와 채소를 건져 먹는 풍경. ‘샤부샤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식 경험을 상징한다.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는 일본어다. 의태어로 살짝살짝, 찰랑찰랑을 의미한다. 얇게 썬 고기를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어 먹는 소리가 음식의 이름이 됐다. 이 일본 요리는 LA 한인 사회에서도 외식 문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리틀도쿄의 터줏대감, ‘샤부샤부 하우스’가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인 노주인이 지키던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예약은 사치였고,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픈런’과 기나긴 기다림은 최고의 고기를 맛보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고기 한 점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은 고객들의 자존심을 기꺼이 내려놓게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연로한 주인이 가게 문을 닫았을 때, 많은 이들이 그 맛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1년여의 공백 끝에, 옆집에서 한국식 핫도그로 명성을 떨친 ‘투핸즈’의 한인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인타운에서 ‘이씨화로’를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전설적인 공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성업 중이다.   샤부샤부 하우스의 기다림에 지친 이들의 대안이었던 곳은 혼다 플라자의 ‘카가야(Kagaya)’, 현재의 ‘텐쇼(Tensho) 샤부샤부’다. 이곳 역시 긴 줄을 감수해야 하는 명소지만, 프리미엄급 고기를 질 좋은 사케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친절한 서비스와 식사 후 제공되는 일품 아이스크림은 이곳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다.   한인타운 샤부샤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웨스턴 길의 ‘웨스턴 샤부샤부’를 빼놓을 수 없다. 한인타운 1호점 격인 이곳은 훗날 ‘복가’, ‘무봉리’로 주인이 바뀌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 ‘샤부샤부 하우스’를 벤치마킹해 야심 차게 문을 열었던 ‘칸 샤부샤부’ 역시 원조의 폐업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으며 그 운명을 같이했다.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명동돈까스 사장이 버몬트와 7가에 잠시 선보였던 ‘샤부미’, 한국 브랜드로 윌셔와 웨스턴에 문을 열었으나 건물 재개발로 사라진 ‘샤부향’ 등은 한인타운 샤부샤부 시장의 부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입맛에 맞춰 독창적인 메뉴를 탄생시킨 사례도 있다. ‘서울회관’ 1대 사장이 개발한 ‘칭기즈칸’이 바로 그것이다. 맹물이나 단순한 다시 국물을 쓰는 일본식과 달리, 깊은 맛의 육수를 사용하고 프리미엄 등심을 육각으로 정형해 얇게 썰어내는 방식은 샤부샤부의 한국적 재해석이라 할 만했다. 80년대 한국에서 초빙된 주방장이었던 1대 사장의 손맛은 이제 건물을 인수한 2대 사장에게로 이어져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Hot Pot)’의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사천식 매운 육수를 비롯한 다채로운 육수를 선택할 수 있는 ‘하이디라오(Haidilao)’는 이제 딘타이펑과 함께 미국 주류사회에 가장 널리 알려진 중식 브랜드가 되었다. 수타면 장인이 춤을 추듯 면을 뽑아내는 퍼포먼스는 식사의 즐거움을 더한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 한인타운의 샤부샤부 지형도를 완전히 바꾼 게임체인저, ‘샤부야(Shabuya)’가 등장했다. 윌셔와 윌튼의 옛 노래방 자리에 1호점을 연 ‘샤부야’는 ‘무제한 샤부샤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건물 재개발로 올림픽 길로 이전한 후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며, 라미라다, 파운틴밸리, 라스베이거스,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샤부야’의 성공은 옛 별대포 자리에 문을 열었다가 윌셔 길로 이전한 ‘본샤부(Bon Shabu)’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두 식당은 한인타운 무제한 샤부샤부의 ‘2강 체제’를 구축했다. 이 열기는 부에나파크, 세리토스 등지로 확산하며 각 지역 상권의 강자들을 탄생시켰다.   리틀도쿄 장인의 뚝심에서 시작해 한국식 칭기즈칸의 탄생, 중국식 훠궈의 가세, 그리고 무제한 샤부샤부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LA의 샤부샤부 지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해왔다.     이 역사는 단순히 ‘음식 트렌드’라고만 한정하기 어렵다. 일본 장인의 가게를 한인 청년 사업가가 계승하고,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메뉴가 수십 년간 사랑받으며, 한인 브랜드가 주류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이 모든 과정은 한인 커뮤니티의 역동성과 적응력, 그리고 성공의 연대기를 담고 있다.   오늘 저녁, 가족 혹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 보글거리는 육수 앞에 둘러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얇은 고기 한 점을 살랑살랑 흔들어 입에 넣는 순간, 깨닫는다.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진리를.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행복 한인타운 샤부샤부 웨스턴 샤부샤부 샤부샤부 하우스

2025.08.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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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한인 마켓 50년사, 그 위대한 여정

한인 마켓의 발전사는 LA 한인 사회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민 1세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찾을 수 있는 위안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이민자들에게는 정착에 필요한 정보와 일자리를 얻는 교류의 장이었다.   초기 한인타운의 상권은 올림픽 길을 따라 형성됐다. 현재 서독안경점 자리에 1969년 문을 연 ‘올림픽 식품점’이 그 중심이었으며, 그 주위로 한식당, 중식당, 떡집, 선물센터 등이 속속 들어서며 한인타운의 태동을 알렸다.   올림픽 마켓을 중심으로 한인 업소들이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룬 것이 상권 형성의 1세대였다면, 8가와 아이롤로 길(현재 99센트 스토어 및 히스패닉 쇼핑센터 위치)에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2세대 상권이 조성됐다. 1980년대 초반 이곳에 프리미엄을 표방한 ‘동서마켓’과 2층 규모의 동서 쇼핑센터가 들어서며 한인타운 상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시간이 흘러 한인타운의 중심 상권이 8가를 넘어 웨스턴 길로 이동하면서, 동서마켓의 주축들은 1988년 3월 웨스턴 길에 신축된 코리아타운 플라자로 이전했다. 이들이 건물주 직영체제로 운영한 마켓이 바로 ‘플라자마켓’의 전신이다.   당시 버몬트 길과 6가 인근에 자리했던 ‘칼스마켓’은 올림픽 마켓, 동서마켓과 함께 ‘빅3’ 구도를 형성했다. 훗날 칼스마켓 경영진은 홀세일 비즈니스를 거쳐 7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린 히스패닉계 유통 강자 ‘수피리어 마켓’의 오너로 성장했다.   그 무렵 ‘웨스턴 마켓’이 웨스턴 본점과 함께 올림픽 마켓 건너편에 올림픽 분점을 개점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오렌지카운티의 ‘도레미 마켓’ 역시 3가와 웨스턴 길에 진출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이후 웨스턴 마켓의 고 김 회장과 오 회장이 웨스턴 길의 폐업한 본스(Vons) 마켓 건물을 인수해 ‘HK한국수퍼마켓’을 열면서, 한인 마켓의 ‘수퍼마켓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코리아타운 플라자몰이 문을 연 1988년, 하기환 회장과 김진수 회장은 올림픽 길의 알파베타(Alpha Beta) 마켓 리스권을 확보해 ‘한남체인’을 열었고, 고 이만성 사장은 웨스턴 길의 메이페어(Mayfair) 마켓 건물을 인수해 ‘가주마켓’을 개점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올림픽 마켓은 HK한국마켓 건너편에 2호점을 열었으나, 경쟁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폐업했다.     가주마켓은 베벌리 길, 가든그로브, 세리토스 등으로 지점을 확장했으나, 이만성 사장 사후 웨스턴 본점만을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반면 한남체인은 토런스, 부에나파크, 다이아몬드바를 넘어 동부 뉴저지까지 진출하며 사업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HK한국마켓은 투자그룹과 합작하여 갤러리아 올림픽점, 버몬트점, 밸리점을 잇달아 개점하며 멀티 지점 체제를 구축했다. HK한국마켓의 파트너 중 한 명은 독립하여 ‘그린랜드마켓’을 설립, 현재 밸리와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된 ‘시온마켓’은 2009년 시티센터에서 개점한 뒤 버몬트 길로, 다시 8가 아씨마켓 자리에 신축된 건물로 두 차례 이전하며 입지를 다졌다. 시온마켓은 하와이안가든점을 폐점하는 대신, 부에나파크, 어바인, 조지아, 텍사스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후발주자였던 ‘프레시아’는 가든그로브와 토런스에 매장을 열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업했고, 토런스 지점은 한남체인이 인수하여 운영 중이다. 리틀도쿄 갤러리아몰에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동명의 ‘리틀도쿄 갤러리아 한국마켓’이 성업 중이다.   동부의 대형 식품회사 리브라더스의 ‘아씨마켓’이 1998년 8가에 진출, 저렴한 자사 제품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으나 건물 재개발 후 매장 확보에 실패하며 2015년 서부 소매 시장에서 철수했다.   반면, 동부의 또 다른 강자 ‘H마트’는 서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후 텍사스 등 미 전역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현재 미주 94개, 캐나다와 영국까지 총 112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54개 매장을 보유한 중국계 ‘99랜치마켓’을 규모 면에서 크게 앞질러 세계적인 아시안 마켓으로 성장했다.     한인 마켓은 LA 한인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온 역사적 공간이다. 작은 식품점에서 시작해 미 전역과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형 유통 체인으로 성장한 그 발자취는, 낯선 땅에 뿌리내려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한인 이민 사회의 위대한 여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한인 마켓 한인 마켓 웨스턴 마켓 올림픽 마켓

2025.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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