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사케(酒)’는 본래 술 전체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였다. 맥주든 와인이든 모두 사케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케, 정확히는 ‘니혼슈(日本酒)’라는 개념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술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일본 고유의 쌀술을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일본에서 사케는 오랫동안 단순한 음주용 술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신사에 쌓인 사케 통이나, 결혼식·개업식 때 행해지는 ‘카가미비라키(鏡開き·술통을 여는 의식)’는 사케가 ‘신성한 술’이라는 인식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케를 조금 아는 척하려면 복잡한 설명 대신 ‘준마이 다이긴조’라는 말 하나만 기억해도 절반은 통과다. 이 한 단어 안에 사케의 등급과 철학이 거의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준마이(純米)는 쌀과 물, 누룩만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는다. 다이긴조(大吟?)는 쌀을 50% 이상 깎아 사용했다는 의미다. 쌀의 바깥층을 과감히 제거할수록 잡미는 줄고 향은 섬세해진다. 일반적으로 40%대 정미율은 긴조, 30%대는 다이긴조로 분류된다.
사케를 등급으로 정리하면 대략 준마이 다이긴조, 다이긴조, 준마이 긴조, 긴조, 준마이, 혼죠조 순이다. 이 가운데 준마이 다이긴조는 최상급 쌀을 고도로 정미해, 쌀·물·누룩 외에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빚은 최고급 사케를 뜻한다.
다이긴조급 이상의 고급 사케는 향이 생명이다. 가급적 차게 마시는 것이 좋고, 향을 풍부하게 느끼려면 와인잔을 사용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일본 전통 방식으로는 ‘마스’라 불리는 편백나무 상자 안에 유리잔을 넣고 사케를 넘치도록 따르는 모키리 문화도 있다. 술이 넘칠수록 인심과 복이 따른다는 상징이다.
아사히 맥주 계열의 대표적인 사케 브랜드 ‘닷사이(獺祭)’의 최고급 준마이 다이긴조는 ‘닷사이 23’으로 출시된다. 최고급 야마다니시키 쌀을 23%까지 정미했다는 뜻으로, 가격도 그만큼 높다. 선물용이나 특별한 날에 마시는 사케로 알려져 있다. 같은 준마이 다이긴조 라인업으로 닷사이 39, 45가 있는데, 뒤의 숫자는 모두 정미율을 의미한다.
한인들이 선호하는 고급 브랜드인 ‘쿠보타 만쥬(久保田 萬壽)’는 대표적인 준마이 다이긴조급이다. ‘남산(男山)’이라는 한문 이름이 인상적인 ‘오토코야마’ 역시 프리미엄급 사케로 꼽힌다. ‘하카이산(八海山)’ 또한 한인 마켓에서 자주 보이는 준마이 다이긴조급 사케다.
흔히 ‘귀신술’로 불리는 ‘오니고로시(鬼殺し)’는 같은 급의 사케 가운데 마케팅이 가장 잘된 브랜드다.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어서 접근성이 좋다. 감히 준마이 다이긴조급 사케의 보급형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다. 이 급의 사케 가운데 드물게 데워 마셔도 맛이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식집에서 큰병을 시키려는데 잘 모르겠다면 “오니고로시 주세요”라고 하면 중간은 간다. 와인을 잘 모를 때 ‘케이머스(Caymus)’를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마켓에서 흔히 접하는 ‘기케이칸(月桂冠)’, ‘소치쿠바이(松竹梅)’, ‘오제키(大?)’ 같은 브랜드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미국산이며,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은 준마이급 사케다. 흔한 일식집에서 도쿠리로 데워 나오는 사케보다는 한 단계 위라고 보면 된다.
한국 마켓에서 쿠보타 만쥬보다 저렴한 사케는 대개 센쥬로, 준마이 긴조급이다. 일반 준마이보다는 한 단계 위다. 닷사이나 하카이산도 비슷한 포지션의 라인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오니고로시를 예외로 하고, 보통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사케, 특히 기계로 데워 나오는 사케는 대개 혼죠조다. 혼죠조는 소량의 양조 알코올이 첨가된 사케다. 소주처럼 완전 희석주는 아니지만, 풍미를 조정하기 위한 부분적 첨가라고 이해하면 된다.
최근 사케 시장의 흐름을 보면, 등급이 낮아질수록 브랜드 진입이 쉬워지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젊은 층을 겨냥한 스파클링 사케, 과일 향을 더한 사케 등도 늘고 있다. 무겁게 느껴졌던 사케를 일상적인 술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다. 전통에서 출발한 사케가 지금도 계속 변주되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