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작은 단연 8가길의 ‘숯불집’이다. 캘리포니아 대기정화국(AQMD)의 엄격한 규제로 인해 LA에서는 상업용 숯불 조리가 사실상 불법이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예외다. 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영업을 해온 덕분에 ‘그랜드파더 클로즈(Grandfather clause·기득권 인정)’가 적용되어 유일하게 숯불구이가 허용됐다. 자욱한 연기 속, 깊은 숯향이 밴 양념갈비와 얼큰한 고추장찌개는 이곳을 대체 불가능한 명소로 만들었다.
‘길목’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착한 가격에 푸짐한 주물럭을 먹을 수 있어 자주 찾던 집이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그 시절의 맛있는 기억 덕분에 여전히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동치미 국수는 ‘전설’로 불릴 만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습관처럼 찾게 되는 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때 쇠퇴하던 브랜드였지만, 미국 진출로 대박을 터뜨린 고깃집이 있다. 바로 ‘백정’이다. LA 한인타운 채프먼 플라자에 있던 백정은 본사와의 계약 해지 이후에도 ‘오리진(Origin)’이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성업 중이다.
이 예상치 못 한 성공을 계기로 백정 본사는 미국 전역으로 직영점과 가맹점을 공격적으로 확대했지만, 결국 현지 한인 파트너에게 지분을 넘기고 철수했다. 이후 계약이 종료된 매장들은 각자 다른 이름으로 재운영에 들어갔고, 뉴욕에서는 ‘정육점’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해 마당몰에 지점을 열며 또 한 번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미국 내 백정 브랜드를 인수한 한인 사업가는 부에나파크, 토런스, 알함브라, 어바인 등지에서 백정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8가 ‘만수등심’ 자리에도 새 매장을 오픈했다. 그는 또 6가의 곱창집 ‘아가씨곱창’을 함께 운영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백정의 원조 격인 오리진 K-BBQ의 사장은 이후 ‘쿼터스(Quarters)’라는 새로운 고깃집 브랜드를 론칭했다. 보다 현지화된 콘셉트로 자리 잡은 이곳은 현재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K-BBQ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원래는 고기를 쿼터 파운드 단위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쿼터파운드’라는 상호를 고려했지만, 맥도날드 메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쿼터스’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풀러턴에도 새 지점을 준비 중이다.
쿼터스 운영진은 이외에도 월셔길의 ‘무한바비큐’, 올림픽길의 ‘라성돈까스’와 ‘라성순두부’, 그리고 라성순두부 내 코너 카페 브랜드 ‘ROK 커피바’까지 연이어 성공시키며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때 LA에도 진출했던 한국 브랜드 ‘마포갈매기’는 최근 가디나의 유명 식당 ‘황소마을’ 사장 딸이 인수해 새로운 콘셉트의 K-BBQ로 리뉴얼 중이다. 부에나파크 소스몰에 있던 마포갈매기 매장도 몇 년 전 다른 고깃집으로 바뀌었다. 백정의 성공에 자극받아 미주 진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철수한 셈이다. 현재 같은 소스몰에서는 오히려 ‘강남하우스’가 안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부에나파크에서 운영되던 백종원 대표의 브랜드 ‘새마을식당’은 지난 8월 말로 아쉽게 문을 닫았다. 같은 자리에는 지난달 윈(WYN) 코리안 바비큐(대표 제드 양)가 새로 영업을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 문을 닫았던 8가의 솥뚜껑 고깃집 ‘꿀돼지’ 자리에는, 일식·K-BBQ·샤부샤부 등 다양한 식당을 운영해온 베테랑 사장님이 새롭게 ‘솥뚜껑 돼지고기 전문점’을 열어 성업 중이다. 역시 오랜 내공을 가진 외식업인의 감각은 달랐다.
LA 한인사회에서 고깃집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가족 모임, 동창회, 비즈니스 미팅, 각종 후원 모임까지 한인사회의 중요한 장면들 대부분은 늘 고깃집에서 시작되고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