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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스벅 퇴장, 한인 커피의 전성기

Los Angeles

2025.10.12 19:10 2025.10.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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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한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로 주저 없이 맥도날드 커피를 꼽던 시절이 있었다. 혀가 데일듯한 뜨거움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마치 뚝배기에 담겨 펄펄 끓는 국밥처럼, 뜨거워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태동하기 전, 데니스(Denny’s)나 아이홉(IHOP) 같은 식당들조차 파머스 브라더스에서 납품받은 원두를 드립 머신으로 내려 제공하던 때였다.
 
한인타운 초창기 ‘커피숍’이라 하면, 사실상 경양식 카페에 가까웠다. ‘두발로’, ‘안전지대’ 같은 곳이 대표적이었다. 젊은이들이  선도 보고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였다. 메뉴는 돈가스, 오므라이스, 그리고 다방식 커피가 전부였다.
 
1980~90년대에 들어서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옥스포드 카페, 난다랑, 인터크루, 나무하나 같은 카페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젊은 오렌지족들의 아지트가 됐다.  
 
그무렵 주류 사회에 스타벅스가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를 유행시키면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커피 한 잔이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원두의 원산지와 플레이버가 중요해졌다. 그로서리 마켓 전면에는 소비자가 직접 원두를 갈아갈 수 있는 그라인더가 비치됐다.
 
한인타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만 달러가 넘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갖춘 전문점들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웨스턴 5가에 문을 연 ‘미스터 커피’는 그 신호탄이었다. 쌉쌀하면서도 크리미한 카푸치노 한 잔에 타운은 매료됐다. 곧이어 6가와 켄모어의 ‘몬테칼로’, 윌셔와 알렉산드리아의 ‘카페 홈’이 가세하며 한인타운에도 본격적인 에스프레소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 웨스턴 길의 미국 식당 ‘파이퍼스(Piper’s)’를 한인 사업가가 인수해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자정 넘어 커피와 함께 라면, 김치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는 ‘한국식 커피숍’의 등장은 한인들에게 새로운 해방구이자 행복을 선사했다.
 
이후 한인타운의 커피문화는 다양성과 감성으로 확장됐다. ‘발코니’, ‘맥’, ‘감’, ‘로프트’, ‘헤이리’, ‘노블’, ‘카페 센트’, ‘지베르니’, ‘노란집’ 등은 넓은 공간과 독창적 인테리어, 테라스 문화를 앞세워 새로운 카페 트렌드를 이끌었다.
 
한편 미국 주류시장에서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넘어 피츠, 인텔리젠시아, 블루보틀 등 ‘스페셜티 커피’의 거인들이 경쟁에 나섰다. 한국 브랜드인 할리스커피, 탐앤탐스, 카페베네도 한때 미주 진출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레드오션의 높은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잔상은 윌셔길의 ‘어바웃타임’, 윌셔와 윌턴의 ‘목우’ 등에 남았다.반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같은 베이커리 브랜드와 대만계 ‘85°C’는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커피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LA 토종 브랜드인 ‘아만딘’의 선전도 괄목할 만했다.
 
최근의 흐름은 ‘기계’에서 ‘사람’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커피머신보다 ‘바리스타’가 주목받는다. 알케미스트, 도큐먼트, RnY 커피 스튜디오, 샤프 스페셜티 커피 등은 커피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매니아층의 성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며 넓은 공간과 주차 편의성을 확보한 새로운 모델도 등장했다. 삼호관광 사옥의 ‘엠코 카페(MCO Cafe)’, M플라자의 ‘M Cafe’, 구 대성옥 자리에 들어선 ‘메모리 룩 카페(Memory Look Cafe)’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스타벅스가 미 전역에서 900여 개 매장의 폐쇄를 예고하며 한인타운 내 주요 매장들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빈자리를 한인 바리스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강자들이 채우고 있다.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 ‘마루 커피(Maru Coffee)’ 등은 이미 주류 시장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타운 내에서도 ‘다모(Damo)’, ‘록(Rok)’, ‘스태거(Stagger)’ 등은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커피 한 잔은 시대의 온도이며, 공동체의 풍경이다. 다방커피에서 시작된 LA 한인타운의 커피숍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바리스타들이 이끄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로 이어지며, 한인 사회의 새로운 연대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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