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통닭’은 아련한 추억이다. 아버지의 퇴근길, 월급날 손에 들려 있던 노란 종이봉투의 온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소한 전기구이 통닭.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위로이자 가족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의 통닭은 이제 ‘K-치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 그 중심에는 LA한인타운에서 주춧돌 역할을 한 터줏대감 치킨집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3가와 웨스턴 근처 DJ노래방 옆에 ‘페리카나 치킨’이 문을 열었다. 한국 브랜드로서는 미국 첫 진출이었다. 하지만 매장이 있던 쇼핑센터가 찰스 킴 초등학교 부지로 편입되면서 아쉽게 문을 닫아야 했다. 페리카나는 수년 전 오렌지카운티 소스몰과 LA 마당몰에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미주 시장 도전은 성공적이다.
한국식 치킨집이 드물던 시절, 한국 본사의 조리법과 인력을 직접 공수해 라크레센타와 한인타운 3가에 문을 연 ‘치킨데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원조다. 비록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두 지점 모두 여전히 성업하며 LA 한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4가와 웨스턴 코너에는 영화감독 출신 사장이 주방부터 서빙, 청소까지 ‘1인 경영’을 고집하는 ‘꼴통치킨’이 10여 년째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6가와 다운타운 올림픽에 지점을 둔 ‘꼬끼오’는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과도 같다. 과거 웨스턴 길에 있던 매장이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은 뒤 북쪽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6가로 돌아오는 등 역경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7년, 진출 당시 한국 업계 1위였던 ‘교촌치킨’은 6가에 본사 직영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미주 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최근 이 매장은 옆 월남국수집을 인수하고 7개월간의 확장 공사를 거쳐 지난 9월 재오픈했다. 하지만 18년이라는 진출기간에 비해 LA 3곳, 하와이 1곳 등 더딘 확장세를 보이며 미주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오히려 교촌의 ‘카피캣’ 브랜드로 알려졌던 ‘본촌치킨’의 행보는 흥미롭다. 한국에는 매장이 없지만 미국 시장을 집중 공략해 현재 미 전역에 130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했다.
교촌과 비슷한 시기 7가와 버몬트 고바우 식당 쇼핑센터에 1호점을 냈던 ‘BBQ치킨’은 초반에는 확장세가 미미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 현재 미주에만 200여 개의 매장을 확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K-치킨 프랜차이즈로 우뚝 섰다.
BBQ의 성공에 자극받은 한국 시장의 새로운 강자 ‘BHC치킨’도 미주 진출을 선언했다. 3가와 페어팩스 파머스 마켓에 1호점을, 채프먼 플라자에 플래그십 개념의 2호점을 직영으로 오픈하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에 시동을 걸었다.
BBQ 1호점 자리에 새로 들어선 ‘77켄터키 치킨’은 라크레센터에 2호점까지 오픈했지만,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8가 옥스포드 쇼핑센터와 가주마켓 내에서 ‘투존치킨’도 꾸준히 선전 중이며, ‘할머니 가래떡 떡볶이’라는 서브 브랜드로 젊은층 입맛도 잡고 있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치맥’ 전문점의 명맥도 이어지고 있다. 웨스턴 길의 ‘타운호프 땡스치킨’, 올림픽 길의 터줏대감 ‘하이트광장’과 ‘황태자’ 등은 여전히 저녁 시간 많은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한국마켓내 치킨 코너의 닭다리도 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테디셀러다.
LA 한인타운의 치킨집들은 아버지의 노란 봉투가 품었던 따뜻한 추억을 자양분 삼아, 이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K-푸드의 위상을 높이는 역사를 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