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는 ‘비어 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로, 연주자 없이 반주만으로 노래를 부르는 오락문화를 뜻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가라오케는 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 ‘가라오케 나이트’라는 이름의 클럽 문화로 자리 잡았었다. 가라오케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류 사회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부활하는 추세다. 한인타운 윌셔가의 백인 운영 바 ‘브라스 몽키’에서도 정기적으로 가라오케 나이트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식 가라오케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무대형 공개 공간이 아닌, 개별 룸 단위의 사적인 공간에서 가족·친구·동료끼리 노래를 즐기는 ‘노래방’이라는 독특한 문화로 변모했다.
이 한국식 노래방 문화는 ‘나성’이라 불리는 LA 한인타운에도 그대로 전파되어, 이제는 한인 사회의 일상적 여흥이자 세대와 계층을 잇는 공동체 문화로 깊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 8가와 킹슬리의 현재 케네디 하이스쿨 부지에 있던 ‘대호 나이트클럽’은 LA한인타운 노래방 역사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당시 나이트클럽은 밴드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최신 가라오케 기계를 도입해 곡당 5달러씩 받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다. 노래 솜씨를 경쟁하듯 뽐내는 무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필자는 인테리어업을 하던 친구와 함께 방음이 완비된 소형 룸 두 개를 설치해 동시에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것이 사실상 LA 최초의 ‘룸형 노래방’의 시작이었다.
정식 상호를 걸고 문을 연 LA 최초의 노래방은 윌셔와 그래머시, 현재는 고깃집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LA 노래방’이다. 각 방에 69장의 레이저디스크를 장착한 파이오니어 기계가 설치됐고, 신청 가능한 곡 수는 적었지만 ‘최초’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님들은 번호표를 뽑아 두 시간씩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 후 불과 2년 사이에 자동 반주기, DJ가 LP를 직접 돌리는 방식 등 다양한 시스템이 실험됐고, 태진과 금영 반주기가 본격 도입되면서 노래방은 비로소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 노래방들은 주방도, 술 라이선스도 없는 순수한 ‘노래 연습장’ 개념이 강했다.
버몬트길 현 이태리 안경점 자리에 들어섰던 ‘신촌노래방’을 시작으로, 올림픽길 호돌이식당 2층 ‘딩동댕’, 3가의 ‘벌몬트 노래방’, 6가의 ‘데뷔’·‘영동’·‘럭키’, 윌셔의 ‘노래하나방’, 8가의 ‘꾀꼬리’, 웨스턴의 ‘DJ’·‘코러스’, 올림픽의 ‘스마일 노래방’ 등이 속속 등장했다. 이후 윌셔와 윌튼 코너에는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사용한 대형 ‘리사이틀 노래방’까지 들어서며 노래방은 한인타운 밤 문화의 핵심 업종으로 급부상했다.
LA 폭동 이후 타운 내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불탄 한인 업소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풀리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자금들이 노래방 업계로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이 시기 노래방은 단순한 유흥업소를 넘어, 타운 복구와 재기의 상징적 산업 중 하나로 기능했다.
3가 ‘숲속의 빈터’ 사장이 시작한 ‘숲속 노래방’은 LA 최초로 양주 라이선스를 취득해 술을 판매한 노래방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부터 노래방 업주들은 인테리어와 콘셉트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올림픽길 ‘MGM 노래방’은 같은 이름의 카지노로부터 상호 사용 문제를 제기받아 ‘MGeeM’으로 이름을 바꾸는 해프닝을 겪었고, 이후 ‘와와 노래방’으로 간판을 바꿨다.
노래방의 흥망은 그대로 한인타운 개발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한때 잘나가던 6가 채프먼 플라자의 ‘블리스’, 길 건너 ‘화이트’, 윌셔의 ‘별밤’, 대형 ‘팜트리 노래방’, ‘고성방가’, 뉴햄프셔의 ‘이가주 노래방’ 등은 재개발로 문을 닫은 곳이다.
현재 한인타운의 노래방들은 대부분 주류 판매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다. 6가의 필·영동·On&Off·리사이틀·전 감 K-Pop·슈라인, 3가의 숲속, 윌셔의 ‘베뉴’·‘파라호’, 8가의 ‘펑크’·‘로젠’·‘글로우’·‘인피니티’·‘갤럭시’, 후버의 전 ‘오디션’, 웨스턴의 ‘파블릭’·‘아코’·‘보’·‘콘서트’ 등이 성업 중이다. 8가의 ‘Epic’, 웨스턴의 ‘Jade’ 노래방도 조만간 새롭게 문을 연다.
한인타운에서 노래방은 40년 가까이 세대가 뒤섞여 노래로 소통하는 ‘정서적 광장’이자 작은 쉼터 역할을 해왔다. 1세대에게는 향수와 위로의 공간이었고, 2·3세에게는 한국 문화를 몸으로 익히는 체험장으로 한인타운의 밤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