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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다가설수록 필요한 ‘멈춤’

이선경 수필가

이선경 수필가

우리는 모두 나름의 ‘선’을 두르고 살아간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선. 그 선은 때로 ‘예의’라는 이름을 하고, 때로는 ‘배려’라는 가면을 쓰며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가깝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에 사람들은 그 선 앞에서 망설이고, 조심하며, 침묵을 선택한다. 그래서인지 선을 넘기 전의 관계는 참 평화롭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안부를 묻고, 적당히 거리를 둔다.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고,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오히려 오래도록 ‘무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기 시작하면, 그 ‘적당함’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열리고, 정이 쌓이고, 기대가 자라고, 그 기대 위에 욕심이 얹힌다. “내가 널 잘 아니까”라는 익숙한 핑계와 “이 정도는 괜찮잖아”라는 착각이 그 선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상대의 삶에 의견을 보태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며, 관심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경계 안으로 스며든다.  
 
선을 넘는다는 건, 어쩌면 인간관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니까, 아끼니까, 더 알고 싶고, 더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런 마음이 쌓이면 결국 우리는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그 선 너머에는 ‘또 하나의 우주’처럼 고유한 타인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우주에는 나와는 다른 리듬이 있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처와, 자신만의 기준, 그리고 성장의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알 수는 없고, 안다고 믿는 순간 가장 소중한 신뢰가 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건 ‘멈춤’이다. 선을 넘기 전, 단 한 번이라도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발걸음이, 혹시 누군가의 마음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관계는 다가서는 만큼 조심스러워야 하고, 가깝고 싶을수록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진짜 가까운 사이란, 서로의 선을 존중하며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언제든 마음속의 문을 열 수 있지만, 상대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 지혜를, 삶의 시행착오 속에서, 조금은 늦게라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더 깊고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비로소, 내 선도 지키고, 타인의 선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선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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