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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최초의 지지자

오늘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을 올리고 제일 먼저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내 게시물의 첫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나다. 혹시 까먹고 안 누른 하트가 있으면 돌아가 하트가 빨간색으로 꽉 차도록 ‘좋아요’를 누른다. 이런 모습에 여동생은 언니는 진짜 특이하다고 놀렸는데 내겐 당연한 것이 여동생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그럼 사람들은 자기 게시물에 하트를 안 눌러?” “보통은 그럴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은 “언니는 진짜 자기애의 끝판왕”이라며 혀를 찼다.   애써 쓴 자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내겐 의아한 지점이었다. 나는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열 번이고 백번이고 누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반장 선거에 출마하곤 했다. 그때마다 꼭 나에게 투표를 했는데 함께 출마한 친구가 0표가 나오면 이상해 보였다. ‘저 친구는 자기를 뽑아 달라고 친구들에게 연설해 놓고 정작 자신은 왜 자신을 뽑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본인이 투표할 만큼 좋은 후보자가 있다면 그 친구가 당선되도록 본인은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찍은 한 표가 전부인 적도 있었지만 부끄럽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할 자신감이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펴졌다. 굳이 친구들에게 저 한 표가 내가 던진 표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아빠는 웃었지만 정말 잘했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높이기보다 낮추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만든 결과물은 본인이 가장 인정해 주고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아닐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가장 많이 사랑하고 지지하고 보듬어주고 싶다. 거친 세상에 나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날이 올 때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온기가 역경을 헤쳐 나갈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 역시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모지만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돌봄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항상 엄마가 뒤에 있다는 것을.     오늘도 SNS의 바다에는 ‘좋아요’를 갈구하는 게시물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온다. 어떤 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하트 수가 쑥쑥 올라가고, 또 어떤 글은 첫 ‘좋아요’를 누를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SNS 바다 위를 외로이 떠다닌다.   오늘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써 고이 접은 작은 돛단배를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기 전에 연료부터 꽉 채워준다는 심정으로 ‘좋아요’를 힘차게 눌러준다. 그렇게 나는 또 내 글의 최초 지지자가 된다. 이 글도 꼭 안아 데워 세상에 띄워 보낸다. 이보람 / 수필가이아침에 지지자 최초 지지자 자기 게시물 엄마 아빠

2026.03.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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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돈타령

며칠 전 시니어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창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주차장에 노인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설마 반전시위라도 하는가 싶어 물어보니 식료품을 나누어 주는 날이라고 한다.     67세에 은퇴를 하기 전, 수차례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매달 필요한 생활비에 약간의 예비비까지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막상 은퇴하고 나니 돈 쓸 일이 생기면 한 번 더 잔고를 확인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지출을 주저한다. 아내의 전화기는 바꿔 주었지만, 3년이 지난 내 것은 그냥 쓰고 있다. 2~3년은 더 쓸 생각이다. 손주들 생일에 사주는 선물의 가격도 전에 비해 다소 줄었다.     적립해 둔 돈을 다 찾아 쓰면 끝이 나는 개인은퇴계좌(IRA)와 달리 연금은 평생 보장된다. 매달 들어오는 돈을 다 써도 다음 달이 되면 같은 금액이 은행 계좌로 입금된다. 그런데도 매달 다만 얼마라도 돈이 남아야 마음이 놓인다. 이유인즉슨, 연금 인상률이 직장인의 봉급이나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소셜 연금의 평균 인상 폭은 2.7% 였는데, 동기간 임금은 연평균 3.67%, 물가는 2.5~3% 올랐다. 최근 10년 간 임금은 더 크게 올라 연평균 4.17%였다.     시니어들의 걱정은 죽기 전에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는 일이다. 어찌 보면 안 해도 될 걱정일 수도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 살아갈 길은 있기 마련이다. 저소득층 시니어를 위한 아파트, 각종 의료 및 복지 프로그램 등의 안전망이 있지 않나.     젊어서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돈을 쓰지 못했는데, 어느 정도 책임을 마친 노년에도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한다면 이 또한 억울하고 슬픈 일이 아닌가 싶다. 남은 가족에게 큰 빚을 남기고 가지는 말아야겠지만, 형편에 맞게 돈을 쓰며 사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집이 있다면 리버스 모기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에쿼티의 일부를 빼서 쓰고, 나머지는 상속이 가능하다. 머리로는 계산이 되고 이해도 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은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외모는 노인이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감성은 개인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자그마한 체구에 곱슬머리, 미소가 귀여운 A는 80 중반의 백인 여성이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다. 자신을 눈여겨보는 영감이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여성을 통해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A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이 이루어졌고, 몇 차례 각자의 집을 방문해 가족도 만났다. A는 딸네 집에 살고, 그 영감은 손주, 손녀를 포함 대가족과 함께 산다. 그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와 우린 안 맞는 것 같다며 이별을 통보해 그 일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내로남불’이라고 하지만, 독신 시니어라면 로맨스도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로맨스에도 돈은 필요하다. 낭비와 허세는 피해야겠지만 필요할 때 지갑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멋진 시니어가 아닐까.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이아침에 돈타령 저소득층 시니어 포함 대가족 마음 한구석

2026.03.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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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로봇이 어떻게 연애까지?

“가장 좋은 노동자 로봇은 가장 값싼 로봇, 일하는 데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제거한 노동 로봇이 최고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프가 쓴 희곡 R.U.R. (Rossom Universal Robots)에 등장하는 로봇 생산 공장 공장장이 한 말이다. 희로애락, 이런 감정은 노동자 로봇 그리고 군인 로봇에게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로봇은 즐거움이나 두려움이 없이 주어진 일을 시키는 대로 한다. 인간 사용자들에게는 가장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노동자가 로썸 로봇이다.     겉보기에는 사람과 똑같은 로봇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난다. 헬레나라는 여인이 로썸 로봇 회사에 온다. 그녀는 로봇에게 ‘영혼’을 주자는 요구를 한다. 로봇 디자인 담당자가 그녀의 말을 조금 들어준다. 로봇에게 고통을 느끼는 신경(pain nerve)를 만들어 준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로봇이 사람처럼 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좋고 나쁜 감정이 생기고, 좋은 일에는 애착을 갖고 나쁜 일은 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사랑도 미움도 다 아픔에서 시작된 감정이다.     로봇마다 호불호의 감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모여 로봇 사이에서 ‘나’와 ‘남’의 구분이 생긴다. 비슷한 감정을 가진 로봇끼리 ‘우리’를 만든다.  남자 로봇, 여자 로봇 간에 애정도 일어난다. 로봇(robot) 프리머스와 로봇테스(robotess) 헬레나, 그들은 상대방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마음도 갖게 된다. 이 상황은 로봇이 죽음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고 이미 감정적으로 내재화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 존재의 끝이고 존재가 끝나면 사랑하는 상대와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기 로썸 로봇은 죽음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자신을 해부하면 그들의 생명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로봇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면서,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삶이라는 반대 개념도 따라오고, 탄생이라는 개념도 생기게 된다.     한 로봇의 수명이 다하면 새 로봇으로 채워지는 끊김 없는 흐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죽음의 순간과 삶의 세월로 나누어 진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그 애착이 죽음 뒤에 새로운 탄생을 바라는 마음이 된다.     이러한 마음이 로봇으로 하여금 “번성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라고 간청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로봇 프리머스와 로봇테스 헬레나는 아담과 이브가 된다. 새로운 아담과 이브는 지상에서 새로운 발생과 소멸의 굴레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탄생의 기대를 안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희곡을 쓴 차페프는 1920년대에 이미 100년 후 인류가 맞게 될 운명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밀어내고 지구의 주인이 되는 상황이 상상 속의 허구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인간 멸종, 인류에게는 대재앙이겠지만 그렇다고 지구나 우주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존재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때가 오고 있다. 김지영 / 변호사이아침에 로봇 연애 순간 죽음 universal robots 헬레나 그들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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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선택적 통증

어릴 적 꿈이 택시운전사였던 남편은 운전을 좋아한다. 그 좋아하던 운전을 요즘엔 잘 못 한다. 허리에서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저릿하고 통증이 있다고 한다.   병명은 척추관 협착증. 치료차 맞는 주사는 마취해야 해서 보호자가 함께 와야 한단다. 허구한 날 내 간병인 역할을 했던 남편의 보호자로 따라갔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격이다. 주사 맞은 후의 운전은 보호자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보호자로 입장이 바뀌니 책임감에 잔소리도 하게 되고 보양식도 먹여야겠다는 의무감도 불끈 생겼다. 나는 싫어서 안 먹는 염소탕을 진상하고 홍삼, 공진단도 억지로 먹게 했다.   처음 맞은 통증 주사가 별 효과가 없어 2주 후에 한 번 더 맞았다. 주사 맞고 대기실에서 15분 쉰 후 나오는데 환자가 약간 어지럽다고 한다. 평소 무쇠 같은 남편으로 내 의지처였던 사람이 아프다니 가슴이 덜컹한다. 나보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사람이다.   내게 신장하나를 떼어주고도 건강했던 사람인데 나이 드니 건강도 장담을 못 하는가 보다. 통증은 심했다가 덜했다가 간헐적이고 속 시원히 낫질 않는다. 아프다면서 회사 일도 하고 교회도 가고 늘 하던 수영도 꾸준히 했다. 남편이 아픈 것이 내 탓인듯해 미안했다.   지난 토요일엔 협착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선배님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아침에 나가서 함흥차사. 비행기 타러 나간 날은 온종일 불안하다. 특히 86세 선배님을 모시고 갔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세스나는 장난감처럼 부실해 보여 나는 잘 안 탄다. 선배님들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 타고 싶다 하셨다며, 경비행기 운행 중엔 다리 통증이 없었다고 한다.   거참 신기하기도 하다. 놀 때는 안 아프다니 말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맘모스 스키장에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안 아팠단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통증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통증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런 통증이 있다. AI(인공지능)와 위키백과에 의하면 ‘선택적 통증’이란다. ‘선택적 통증(Selective Pain)은 특정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신체형 통증 장애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자극, 자세, 혹은 부위에서만 선택적으로 발생하는 통증을 의미한다. 이는 통증이 주관적으로 특정 상황에서만 나타나거나 심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심인성 통증과도 관련이 있다는데 그건 나도 겪어보아 안다. 집에서 부엌일 할 땐 한 시간도 못 견디는데 좋은 사람들과 밥 먹고 놀 땐 반나절 앉아있어도 피곤하지 않다.   꾀병처럼 보이는 이걸 전문용어로 ‘선택적 통증’이라고 하나보다. 남편의 병이 차라리 꾀병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선택 통증 선택적 통증 통증 주사 심인성 통증

2026.03.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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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프리지아의 강한 생명력

얼마전 뉴욕이 폭설로 난리가 났을 때, 샌디에이고에는 비가 흠뻑 내렸다.     그런데 그 무렵 나는 온 천지가 빙빙 돌며 침대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급히 깊은 새벽잠을 자고 있던 딸을 깨워 응급실로 향했다. 유난히도 짙은 안개가 산마루를 휘감은 탓에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워 느린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그 시간은 아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십년 만에 또 높은 혈압으로 가족을 놀라게 했다. CT 스캔 후 여의사와 친절한 남자 간호사가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마그네슘과 포타슘 치료도 차츰 혈압을 내려가게 했다. 날이 밝자 주치의는 이석증인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처음 듣는 병이라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니 나이 들면 생기는 병이란다. 늘 약물 부작용이 즉각 반응하는 나는 물리치료사도 만나 운동하는 법도 배웠다.   집 안팎 살림뿐만이 아니라 오만 가지에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하는 내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는 힘든 일이다. 주어진 업보라며 위안을 하지만, 가끔은 사경을 헤매면서 참으로 허무한 삶을 체험한다. 고맙게도 다시 살아난 나는 집 마당에 만든 법당을 찾아 그곳에 모셔둔 가족을 바라보며 합장하며 안부 인사를 나눈다.     달포쯤, 프리지아가 꽃망울을 조랑조랑 맺고 키 자랑을 하더니 지금은 노란 봉오리들이 우아하게 터지면서 달콤한 향기로 내게 희망을 주며 나를 일으켜 세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딸을 불러 시멘트를 뚫고 나오는 꽃들의 저력을 보라 했더니, 그 생명력에 놀라 사진을 찍는다.     프리지아의 빨간빛은 정열, 흰 꽃은 순결, 보라색은 동경, 분홍은 여성스러움이 꽃말이다. 나의 뜰에 핀 노란색은 ‘새 출발을 응원한다’ 는 말이 있다. 그것도 우정으로. 사실 한국에  있는 내과 의사 친구가 나의 회복에 한몫했다. 카톡으로 내 병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변하지 않는 우정으로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줬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프리지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듯 나도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다. 세월과 함께 부서져 가는 내 몸은 연약한 프리지아 줄기 같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버티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게다가 프리지아 꽃처럼 신비스런 향기까지 멀리멀리 날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미자 수필가이아침에 프리지아 생명력 프리지아 줄기 달포쯤 프리지아 포타슘 치료

2026.03.15.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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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비누 향기로 남은 사랑

인연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날, 나는 그녀를 ‘삼월 언니’라 불렀다. 칠월에 태어난 친구는 ‘칠월 언니’, 시월생인 나는 자연스레 ‘시월이’가 되었다. 달 이름으로 부르는 호칭은 금세 우리 사이의 거리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첫인상은 참 따뜻했다. 언니는 내 어깨에 빨간 숄을 조심스레 둘러주었다. 직접 뜬 것이라 했다. 한 코 한 코에 담긴 온기가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우리는 칠십 중반의 나이를 잠시 잊고, 열일곱 소녀로 돌아가 첫사랑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고, 그 웃음은 유난히 맑았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언니의 삶은 오랜 인내의 연속이었다. 언니의 남편은 스무 해가 넘도록 뇌졸중을 앓았다. 언니는 그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뎠다. 휠체어를 밀어 공원과 바닷가를 거닐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사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니는 늘 호박꽃을 닮고 싶다고 했다. 넓은 잎 아래 수수하게 피어나 아픔을 견딘 끝에 기어이 열매를 맺는 꽃. 하지만 세월은 그 열매마저 서서히 약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기력은 급격히 쇠했다. 요양원으로 하루 두 번 발걸음을 옮기며 식사를 거부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언니의 마음은 말라갔다.   얼마 뒤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이제는 남편의 거친 숨소리에도 겁나지 않아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 77세 희수의 센티멘털인가 봐요.”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다가온 시간은 예고 없이 시렸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늙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니는 남편의 가장 빛나던 시절부터 가장 초라해진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을 끝까지 동행했다.   운명은 묘하게도 정교했다. 동부에서 달려온 두 아들이 가족들과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남편은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위독하다는 연락 앞에서 언니는 직감했다. 아들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두 아들의 손을 남겨주려는 남편의 배려였음을.   그렇게 남편은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 속에 조용히 떠났다. 고통은 끝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리움이 남았다.    장례를 마친 뒤, 서울에서 온 딸이 욕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비누에서 아빠 냄새가 나요….”   사람은 떠나도 향기는 남는다는 말을 그날 처음 실감했다. 비누 한장에 스민 체취가 큰 파도가 되어 마음을 흔들었다.    언니는 말했다.   “내 몫의 사랑은 다 했으니, 남은 시간은 잘 살아야지요.”   그 말에는 상실을 견뎌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담담함이 있었다. 이제는 서로의 빈자리를 보듬으며 남은 길을 같이 걷고 있다. 우리의 노년이 너무 쓸쓸해지지 않도록.   삼월 언니는 여전히 호박꽃 같은 사람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제 몫을 다하고, 끝내 열매를 남긴 사람. 그 사랑은 이제 조용한 향기로 남아 언니의 뒷모습을 따라온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비누 향기 비누 향기 첫사랑 이야기 남아 언니

2026.03.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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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이제는 ‘못’을 뺄 때

교회 예배당 뒷벽에 예배 인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커다란 TV를 달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화면이 작았던 모양이다. “화면이 너무 작다.” “글씨는 보이는데 악보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아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인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건설 현장에서나 쓸 법한 비계를 세우고, 사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는 큰 수고를 해서 단 TV였지만, ‘잘못 달았다’라는 판정을 받았으니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TV를 떼어내면서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지 구두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잘 보이는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돕는 이들의 눈에는 작게 보인다니 말이다. 결국 다른 곳에 달려있던 조금 더 큰 TV를 떼어다가 다시 달았다.     주일 아침, 찬양팀이 예배 준비를 위해 예배당에 들어섰다. ‘새로 단 TV를 보면서 이번에는 잘 보인다고 할까? 아니면 여전히 안 보인다고 할까?’ 긴장된 마음으로 반응을 지켜보는데, 이번에는 모두가 다 잘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숨이 나왔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잘 달았구나.”     그때 권숙월 시인의 시구절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잘못 한다에서 못을 빼니 잘 한다가 되었다’라는 구절이었다. 시인은 이어서 ‘잘못 먹었다에서 못을 빼면 잘 먹었다 잘못 살았다에서 못을 빼면 잘 살았다’가 된다면서, ‘못’을 빼면 뜻이 뒤바뀐다고 했다. 문장에서 ‘못’을 빼면 꾸중은 칭찬이 되고, 부정은 긍정이 되는 것처럼, 삶에 박힌 ‘못’을 빼면 인생이 달리 해석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TV도 ‘잘못 달았다’에서 ‘못’ 하나만 빼면 ‘잘 달았다’라는 말이 되는데, 우리는 그 ‘못’ 하나 빼는 데 무척 인색하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잘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운동도 잘하고, 음식도 잘 먹고, 인간관계도 잘 맺고, 일도 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겨우 두 달쯤 지났을 뿐인데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이 더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두 달 사이에도 이토록 잘못한 일이 많은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했다고 여겨온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삶이 어려울 때마다 이민을 잘못 왔다고 생각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사람을 잘못 만났고, 때를 잘못 탔다고 투덜거리다 보니 그 ‘못’들은 후회와 상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인생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녹슬고 구부러져 이제는 쉽게 빠지지도 않는 ‘못’들이 자책과 비교의 잣대가 되어 우리의 인생을 ‘잘못 살았다’라고 단정 짓게 했다.     그렇다고 그 ‘못’들을 우리가 일부러 박은 것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치 보며 버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흔적들이다. 잘살아 보겠다고 선택한 이민자의 삶이 ‘못’ 하나 때문에 잘못 살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이제는 그 ‘못’을 뺄 때다. ‘잘못 선택했다’가 아니라 ‘그때는 잘한 선택이었다’로, ‘잘못 살아왔다’가 아니라,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로. 아직도 우리 삶에는 ‘못’을 빼고 나면 남게 될 ‘잘’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교회 예배당 예배 인도자들 예배 준비

2026.02.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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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그리움이 익어가는 시간

비가 며칠째 내린다. 빗소리에 섞여 공기가 한결 차가워졌다. 저녁을 조금 일찍 마친 탓인지 허기라기보다는 마음이 출출했다.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알아챈 나는 자연스럽게 에어프라이어를 꺼내 고구마를 구웠다. 기계가 낮은 숨결로 윙윙거리다 멈추고 잠시 후 ‘땡’ 하는 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울렸다.   에어프라이어 문을 여는 순간 잘 익은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콤한 향이 김과 함께 퍼지며 집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데웠다. 뜨거운 고구마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가며 껍질을 벗기는데 노란 속살을 품은 그 작은 고구마 하나에 오래된 얼굴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맛은 혀에서 시작되었지만 기억은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깨어났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길모퉁이에 서서 사 먹던 군고구마가 생각났다. 얼굴에 연탄 가루를 묻힌 채 말없이 고구마를 건네던 아저씨의 손길에는 하루를 견뎌낸 노동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따뜻한 종이봉투 너머로 전해지던 온기 속에는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삶의 사연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던 것 같다. 87세의 남편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의 표정에는 어느새 칠십 년 전의 시간이 천천히 다가와 있었다.   고구마 하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나는 얼굴은 할머니다. 겨울밤, 화롯불 앞에 둘러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재 속에 묻어 두었던 고구마를 툭툭 털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던 그 따끈함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엌 아궁이 장작불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부엌 쪽문을 열고 뭉근하게 구워야 맛있다면서 “고구마 꺼내서 잔불로 구워라” 하셨다. 부엌일을 돕던 언니가 다 구워진 고구마를 방으로 들고 들어올 때 퍼지던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는 어린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때 먹던 고구마는 왜 그렇게 달았을까. 아마도 불의 온기만이 아니라 기다림과 정성, 그리고 함께 나누던 마음이 곁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참 편해졌다. 버튼 하나면 군고구마가 완성되는 시대다. 불을 지피며 재를 헤치던 수고는 사라졌고 시간은 한결 단축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한다. 고구마는 역시 삶는 것보다 굽는 게 제일이라고. 그을린 껍질에서 배어 나오는 향, 그 속에 스며든 지난 시간의 기억까지 함께 씹으니 오늘 밤의 고구마는 유난히 더 달다.   에어프라이어 너머로 흐르는 이 맛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을 건너온 손길과 얼굴들,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우리의 시간이 포개진 따뜻함이다. 비 내리는 밤, 고구마 하나로 데워진 마음은 조용히 말한다. 어떤 그리움은 이렇게, 천천히 익어야 제맛이 난다고.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그리움 시간 고구마 하나 부엌 아궁이 부엌 쪽문

2026.02.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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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나중이라는 시간

“나중에 기운 차리면 만나자.”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자매처럼 지낸 명순 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언니의 문자를 받은 지 사흘 만이었다. 70세 생일을 불과 석 달 앞둔 때였다.   서울 서초동의 같은 아파트단지 옆 동에 살며 우리는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겨울이면 과천 서울랜드 눈썰매장에서 양 볼이 빨개지도록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꾸벅꾸벅 졸곤 했다. 광화문 화랑에서 닥종이 작가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사람’ 전시를 보며 한국의 전통 풍속을 언니와 경쟁하듯 아이들에게 설명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하고 분주한 일상이 훗날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줄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날에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조카를 맡아 다섯 아이를 돌보느라 기진맥진하여 백화점 폐장 세일에 가지 못했는데, 그 일이 우리를 살렸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보자는 말로 만남을 미루지 않았던가.   한국을 방문하면, 당시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던 나를 위해 언니는 기꺼이 남대문 시장을 안내해 주었다. 미국의 가게에서 판매할 반짝이는 머리 액세서리를 사고 시장통의 좁은 골목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음식의 맛보다 더 진하게 남은 것은 마주 앉아 웃던 언니의 얼굴이다.   90년대 말, 우리는 손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언니 시누이를 통해 신청한 영주권이 나와서 내가 사는 도시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에 뛸 뜻이 기뻤다. 낯선 타국에서 다시 이어진 인연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삶의 고비마다 솔직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던 사람인 언니를 나는 많이 따랐다. 함께 바닷가와 공원, 트레일을 걸으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는데,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사라졌지만, 함께한 시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최근 이집트 여행 후 시차로 고생하다가 언니에게 연락했지만 위암 투병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기운 차리면 보자”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는 ‘나중’을 당연한 미래로 믿지만,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온화한 미소와 수줍은 듯 양 볼에 패인 볼우물이 어여쁘던 언니의 모습과 추모식에서 마주한 언니의 야윈 모습이 겹친다. ‘기억이 지워질 때까지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어느 인디언 부족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와 함께한 시간이 또렷이 남아 있는 한, 언니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보고 싶다는 표현을 더는 미루지 않겠다고, 나중이라는 시간 대신 오늘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일 것이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시간 시간 대신 언니 시누이 명순 언니

2026.02.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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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윤동주 서시를 다시 읽는다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의 제삿날이다. 그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이날, 스물여덟 푸른 나이에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다시 읽는다. 이 시는 시인이 연희전문대학 4학년인 1941년 11월 20일, 그의 나이 스물네 살 때 쓴 시이다.   1941년은 어떤 해였을까. 한 해 전인 1940년 2월, 일제는 조선인에게 한국 고유의 성과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 성(氏)과 이름으로 바꾸도록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하지만 조선사람이 따르지 않자, 총독부는 이광수 등 유명인을 동원하여 1940년 8월까지 80%로 끌어 올렸다. 다음은 이광수(카야마 미츠로)가 1940년 2월 20일 자 매일신보에 게재한 글이다.   ‘내선일체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허하였다. 이에 내선일체운동을 할 자는 기실 조선인이다. 조선인이 내지인과 차별 없이 될 것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따라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성명 3자를 고치는 것도 그 노력 중의 하나라면 아낄 것이 무엇인가. 기쁘게 할 것 아닌가. 나는 이러한 신념으로 향산(香山)이라는 씨를 창설하였다.’   그래도 일부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따르지 않자 1941년 11월, 총독부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제재를 내렸다.    ▶자녀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의 입학과 전학을 거부한다. ▶아동들을 이유 없이 질책 구타하여 아동들의 애원으로 부모들의 창씨를 강제한다. ▶공·사 기관에 채용하지 않으며 현직자도 점차 해고 조치를 취한다. ▶행정기관에서 다루는 모든 민원사무를 취급하지 않는다. ▶창씨하지 않은 사람은 비국민,불량선인으로 단정하여 경찰 수첩에 기재해서 사찰을 철저히 한다. ▶우선적인 노무 징용 대상자로 지명한다. ▶철도수송 화물의 명패에 조선인 이름이 쓰인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 시절이었다. 일제가 막바지로 발악하던 그 암울하고 어둡고 무서웠던 시절에 서시가 발표됐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쓴 서문에서 정지용 시인은 “동지섣달 꽃과 같은, 얼음 아래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일제가 실시한 생체실험의 아바타가 되어 매일 정체 모를 주사를 맞았고, 결국 뜻 모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이역 땅 감옥에서 숨졌다. 윤동주와 동갑이자 평생 동지였던 외사촌 형 송몽규도 같은 해 3월 7일 같은 감옥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2월, 서시의 마지막 행을 가만히 읊조려본다.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이 남긴 시는 119편이다. 그는 갔지만 그의 시들은 어둠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정찬열 / 시인이아침에 윤동주 서시 윤동주 서시 윤동주 시인 윤동주 시집

2026.02.1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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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아디아포라(Adiaphora)’

남편이 매주 한 번씩 치러 가는 교회 탁구실이 문을 닫았다. 10년 이상 운영되던 탁구 교실이다. 탁구를 안 치는 내가 더 서운하다. 남편이 없는 그 시간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으로 독서나 사색하기 좋았는데 말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났더니 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후배의 남편인 집사님도 같은 탁구부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탁구를 좋아서 치는 당사자들에겐 운동으로 힐링이 되고, 그 배우자에겐 또 다른 휴식의 일석이조의 기회였는데 참 아쉽다.   생각이 짧은 누군가가 “금요예배도 안 나오면서 수요일엔 탁구를 치다니!” 하고 마치 신앙적으로 큰 죄를 짓는 듯 말을 하니 그야말로 김이 새서(?) 탁구실을 잠정적으로 닫기로 했다는 거다.   중세의 수도사도 아니고 현대교회의 평신도에게 그런 구닥다리 잣대로 신앙을 평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교회의 건물은 커뮤니티에 되도록 많이 개방하여 신앙인이 아닌 이에게도 유용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미국교회들을 보면 커뮤니티의 시니어 교육, 요리교실, 댄스교실 등으로 개방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오래전 유학생 배우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을 때 남침례교단의 부인회에서 많은 걸 배워 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탁구부원이었던 원로목사님도, 다른 교회에서 오시던 탁구애호가도, 전도 대상으로 점찍었던 이웃 주민도 탁구실을 닫았다니 실망이 크시다.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다. 헬라어 ‘아디아포로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독교의 성경이나 교리가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은 중립적인 영역을 뜻한다. 음식, 복장, 취미, 예배 형식 등 행동의 여부가 신앙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대수롭지 않은 것”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을 뜻하며 간단히 말해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엔 굳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참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다.   그 일을 계기로 요즘 교회가 “신앙의 고백과 교리는 있으나 사랑의 실천이 없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기애’적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가 비록 교회에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을망정. 사랑 없는 특권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희생을 무효화시키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혹시 이런 일들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나 걱정스럽다.   복음은 ‘관계의 화해’이며 ‘제한성의 극복’이고 ‘시선의 확장’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교회 탁구실 요즘 교회 오래전 유학생

2026.02.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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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세 번째 반지, 서퍼링(Suffering)

결혼 생활에는 세 개의 링이 있다고 한다. 약혼반지(Engage ring), 결혼반지(Wedding ring), 그리고 고난(Suffering). TV에서 한 목사님이 주례를 서며 이 이야기를 전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링인 ‘서퍼링(Suffering)’이야말로 결혼 생활의 무게와 깊이를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느 날 구멍 난 양말을 들고 와 내게 보여주었다.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됐네.”   그 말에 나는 자연스레 되물었다. “꿰매줄까요?” “그럼 좋지, 아직 멀쩡한데 버리긴 아깝잖아.”   그 양말은 남편이 특별히 아끼는 것이다. 색감이 멋스럽고 도톰해서 발바닥은 편안하고 종아리에도 부드럽게 감겼다. 양말 한 켤레에 대한 그의 애착은 어쩌면 그 양말이 전하는 따뜻함이 고단한 삶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 나는 돋보기를 먼저 꺼낸다.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마련해 준 반짇고리는 반백 년 세월 동안 열고 닫히며 빛바랜 채로 나와 함께 늙어왔다. 그 안에서 찾은 매끄러운 전구를 양말 속에 밀어 넣고, 환하게 드러난 구멍 난 부분을 조심스레 꿰매기 시작한다. 남편은 내가 양말을 꿰맬 때면 어릴 적 어머니가 촛불 아래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말하곤 한다.   내게 양말을 꿰매는 일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하나의 예술이자 삶의 의례다. 또한 이 시간은 내가 주님과 깊이 동행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구멍 난 자리를 메우며 나는 우리의 관계를 떠올린다. ‘우리의 우정과 사랑에도 이런 구멍이 나 있지는 않을까?’ 자문해 본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 때면 작은 아픔을 견디며 인내를 배우고, 꿰맨 자국이 투박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다음번엔 더 정성스럽게 하리라 다짐한다.   오늘 손을 본 양말은 청색과 회색이 차분하게 섞인 빛깔이다. 구멍 난 부분에 회색 천을 덧대었지만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남편이 이 양말을 신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사실 이 소소한 바느질이 단순히 나의 알뜰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친할머니의 가르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할머니는 “헌 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낡은 것을 결코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 겉에는 늘 깨끗한 새 옷을 입으셔도, 속에는 몇 번이나 꿰맨 속옷을 소중히 입으시던 분이었다.   요즘은 눈이 많이 나빠져 바늘귀를 끼우는 일조차 힘들다. 하지만 새 양말을 사주는 편함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양말을 정성껏 기워주는 것, 나는 이것 또한 ‘사랑의 서퍼링(Suffering)’이라 믿는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작은 불편과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구멍 난 양말 한 켤레를 꿰매며 결혼 생활의 또 다른 의미를 배운다. 삶의 작은 틈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위해 수고로움을 견디며, 그 과정에서 온기를 발견하는 것. 기운 양말은 남편의 발에서 사랑의 기억을 안고 다시 힘찬 걸음을 내딛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양말처럼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오늘도 감사히 여긴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suffering 서퍼링 반지 서퍼링 기운 양말 결혼 생활

2026.02.0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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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책임

멕시코 칸쿤에 다녀왔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지 툴룸(Tulum)에서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다가 특이한 광경을 만났다. 일꾼들이 잡초를 제거하는데, 길고 날렵한 칼 같은 도구를 수평으로 눕혀 흙을 얇게 썰었다. 뿌리 잘린 풀 포기들이 땅 위로 흩어졌다.     잡초 제거의 기본은 발본색원, 뿌리제거 아닌가. 뜨거운 햇볕 아래 납작 엎드려 메마른 땅을 써는 모습이 비효율적이어서 답답했다. 호미를 사용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싶었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마야문명의 유적지여서 작업 방식도 원시성을 고수하는 걸까? 아니면 이 고대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연의 일부분으로 귀속시켜 관광객에게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려는 의도일까? 하지만 정밀한 과학으로 피라미드를 세운 마야인들 아닌가.     잠시 후에 진의를 알게 되었다. 툴룸이 위치한 유카탄 반도는 땅을 조금만 파도 단단한 석회암 지반이 드러난다고 한다. 호미나 곡괭이를 쓰면 도구의 날이 쉽게 손상되고, 사람의 손목과 허리도 다치기 쉬워서 베는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했다.   강풍을 동반한 스콜도 잦아 토양 유실이 빠르단다. 뿌리가 없는 땅은 침식이 더 심한데 땅속 깊이 잡초 뿌리가 남아 있는 곳은 뿌리가 토양을 붙잡아 주어 그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작업 방식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된 토양 관리였다.     이 도구가 마체테다. 넓은 면적을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있고, 뱀이나 전갈 같은 독충을 만났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사람의 안전도 지켜준다고 했다. 바나나를 먹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든 이구아나 두 마리에게 둘러싸여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떠올라, 즉각 이해되었다.     수년 전, 잉카 문명이 꽃피운 땅, 페루에서 만났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공원 일꾼들이 지표면 바로 아래에 마체테와 비슷한 도구를 눕혀서 풀을 베고 있었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더불어 알게 되었다.     안데스 고원이 가로지르는 페루의 토양도 흙이 얕고 돌이 많다. 곡괭이나 호미는 쉽게 망가질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을 먼저 해친다. 페루의 풀은 뿌리가 깊어 잘릴수록 밀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토양을 더 단단히 잡아준다니, 뿌리를 남기는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툴룸처럼, 토양유지와 재생을 고려한 지혜였다.     마체테가 계속 생각났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 석회암 지반이 무너지며 드러난 깊은 지하수 캐노테, 스노클링을 즐겼던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신비로운 바다 물빛까지, 일주일 동안 마야문명이 숨 쉬고 있는 칸쿤의 서정을 맘껏 누렸는데도 마음이 조용했다. 툴룸과 소급된 기억 속의 페루에서 만난 마체테가 주는 의미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을까?     환경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하마터면 마야와 잉카 문명을 무지와 미개로 평가절하  할 뻔했다. 내게 익숙한 방식과 다른 장면 앞에서,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 오래 생각했다.     인생 공부는 끝이 없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속도 책임 발본색원 뿌리제거 잡초 뿌리 동안 마야문명

2026.02.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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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어바인에 오다

지휘자 금난새가 그의 이름 새처럼, UC어바인(UCI)의 버클레이 극장으로 또 날아왔다. 올해가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딸애가 대학원 동문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지인들의 초청을 받았기에 거리는 멀지만 참석했다.     ‘금난새’ 라는 독특한 이름은 1948년에 발표된 가곡 ‘그네’ 작곡가로 유명한 그의 부친 금수현이 지어준 순우리말이다. '그네'의 노래 가사는 시인이던 금난새의 외할머니 김말봉의 작품이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날아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가더라…'   자녀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던 애국심이 가득한 부친 금수현과 바이올린 연주자인 어머니, 금난새는 3대가 음악가 집안이다. 금 지휘자는 병역을 마치고 이십 대 후반에 독일로 들어가 어렵게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로벤스타인 교수의 배려로 6년 동안 사사했고, 그렇게 받은 은혜를 고국에서 베풀고 싶다며 실행하고 있다.     KBS 교향악단 최연소 지휘자가 됐고 임기를 마친지 14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어렵다는 클래식 음악을 쉽게 대중에게 해설하면서 국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또 대한민국의 곳곳을 다니며 젊은 음악도를 발굴하고 실력을 펼 기회도 마련해 주고 있다.   어바인 대학교에서의 연주는 금난새의 리듬감 넘치는 해설도 시작되었다. 그는 시종 온화한 미소와 도란도란 일상에서 대화하듯 해설을 이어갔다. 큰 행사를 열게 해준 동문 후원자와 봉사자 중에 몇 사람을 호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박수를 쳐준 후, 신청곡을 받아 즉흥으로 연주하던 첫 번째 해의 연주회 모습도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덕분에 우린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인 ‘Some where my love’를 특별출연한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합주로 들었다. 또 대학생 시절을 추억하는 ‘러브 스토리’ 도.     금 지휘자는 섬세하면서도 유머 있는 말들로 청중을 계속 웃게 하였다. 해마다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하모니카 등 특별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아코디언처럼 생긴, 나도 처음으로 보는 악기, 밴도니언(Bandoneon) 연주가 등장했다.   금 지휘자는 백발의 나이에도 먼 길 달려와 이곳의 젊은 음악가들을 연결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2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지만 훈훈한 봄기운을 가득 불어 넣어주었다. 한국의 총동문회장과 미국 동문회가 합세해 대한민국인의 긍지를 높여주니 정말 고마운 행사이다.     이민 올 때 나는 우리 가곡전집인 LP판을 가방 속에 담고 왔지만, 여전히 미국생활은 삭막하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지휘자 금난새 어머니 금난새 어바인 대학교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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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마침표를 먼저 찍다

‘마침표’는 한 문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문장 부호다. 작고 둥근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점이 없으면 아무리 긴 문장도 끝나지 않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완성되지 못한다. 마침표는 글을 멈추게 하지만, 그 멈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멈춤이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이야기가 마침표를 기준 삼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면서 삶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황규관 시인은 ‘마침표 하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를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시인에게 마침표는 종결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한 문장이 끝났다는 사실은, 곧 다음 문장이 시작될 자리가 마련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그는 말한다.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우리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은 뒤 과거라고 부르고, 부딪치는 일들에 마침표를 찍고는 경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인생은 끝과 시작 사이에 놓인 그 작은 점 하나를 두고 연이어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마침표를 찍으며 인생이라는 소설을 메꾸며 산다.   인생의 끝자락에 찍히는 마침표를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마침표 하나를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반드시 덮여야 할 책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문장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애쓴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일은 우리를 위축시키기보다 우리의 삶을 정갈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마침표를 마지막에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를 먼저 찍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삶의 방향을 정하고, 언젠가 닫힐 것을 알기에 오늘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에 새겨진 흔적이다.   2026년이라는 새 노트를 펼치며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다짐을 써 내려 간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설렘 속에서 한 해를 맞이한다. 그러나 삶은 계획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삶의 마침표는 단순히 시간을 끝내는 표시가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하루와 한 해, 더 나아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마음에 품고 출발하는 지혜다.   그 지혜를 품은 이들에게 마침표는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오늘을 의미 있게 살겠다는 다짐이며, 내일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옹골찬 결단이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끝과 시작, 과거와 미래,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끌어안는 일이다.   올 한 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침표를 먼저 찍고 시작하는 인생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2026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고, 그 마침표가 모여 언제가 ‘죽음’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점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삶의 종점에서 찍게 될 마침표는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붙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무게 중심이 될 것이다. 마침표를 먼저 찍고 오늘을 살 때, 우리의 삶이라는 문장은 흔들림 없이 아름답게 완성될 것이다.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마침표 마침표 하나 시작 사이 시작 과거

2026.01.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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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은빛으로 나를 세우다

가슴이 서늘했다. 골밀도가 심하게 낮아졌다는 의사의 진단은 내 몸의 뼈가 성글어가고 있다는 경고였다. 자칫하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무엇을 먹으면 좋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의사는 웃으며 ‘멸치 많이’라고 답했다. 익히 알고 있던 정답이었음에도 나는 의사의 처방을 듣고 돌아오며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텅 빈 내 안을 채울 것이 이토록 작고 반짝이는 존재들이라니 왠지 모를 위안이 느껴졌다.   고추장에 찍어 먹을 생각으로 멸치를 볶았다. 열기에 몸을 달구며 내뿜는 고소한 향이 마늘과 청양고추의 알싸함과 어우러져 금세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갓 지은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멸치의 눈과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워 울먹이던 어린 날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죽은 생명이 불쌍하여 젓가락을 내려놓던 그 여린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 나는 나의 뼈를 세우기 위해 그들의 뼈를 빌리는 생의 엄숙한 순환 앞에 서 있다.   한 줌의 멸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작은 몸 하나에도 세월의 무늬가 스며 있다. 먼 바다에서 길어 올린 눈부신 햇살과 거친 파도,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던 일꾼들의 투박한 손마디가 이 은빛 비늘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멸치는 비록 작고 여리지만, 제 몸을 부수어 타인의 생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넉넉한 삶의 철학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간 외가는 바다 냄새가 갯바람에 실려 오는 곳이었다. 장을 봐 오신 할머니와 찬모의 발걸음이 부엌과 광을 분주하게 드나들면, 소쿠리 속에는 시래기가, 양은 바가지 속에는 은빛 멸치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물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파닥거리며 물비늘을 흩날리던 그것들은 바다의 윤슬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눈부셨다.   할머니는 풋배추를 말려 만든 시래기를 냄비 바닥에 넉넉히 깔고, 그 위에 멸치를 층층이 쌓으셨다.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만든 비법 양념장이 자박하게 끓어오를 때쯤이면, 집안 구석구석은 구수한 향기로 가득해졌다. 뚜껑을 여는 순간 피어오르던 그 따스한 김 속에는 남해의 파도 소리와 할머니의 정성이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때로는 귀한 죽방멸치가 선물로 들어오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리면 매끄러운 은빛 광택이 흐르던 그 작은 존재들은, 바다를 고스란히 응축해 놓은 결정체 같았다. 갓 지은 밥에 다시마나 배추를 손바닥에 올리고 멸치조림 한 점을 얹어 드시던 어른들의 웃음소리. 그 쌈 한 입에 깃든 바다의 기운은 어린 내 눈에도 신기하고 즐거운 삶의 풍경으로 남았다.   짜고 단 것을 즐겼던 지난 습관을 떠올리면 이만하기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멸치를 통해 내 몸을 다시 세우려 한다. 멸치여, 너희들은 이제 내 안에서 부서져 나의 뼈가 되고 나의 별이 된다. 바다의 눈물 같은 그 은빛 몸뚱이가 내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이길 바란다. 설령 바다의 생명이 다하는 날이 올지라도, 내가 사랑했던 그 푸른 기억만큼은 은빛 비늘에 새겨져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길 바란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은빛 은빛 멸치들 은빛 비늘 은빛 몸뚱이

2026.01.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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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55년된 장갑과의 화해

나는 선을 본 지 이틀 만에 약혼을 했다. 나흘 뒤에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은사님께 갑작스레 청첩장을 드리러 가던 날, 외투를 입고 가죽장갑을 꼈지만 한국의 2월 한파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앞서 걷던 약혼자가 문득 돌아보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만난 지 사흘. 우리는 아직 어색한 사이였다. 난생처음 남자의 손을 잡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괜스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서로의 체온이 장갑 너머로 전해졌고, 그 기억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속에 선명하다.     결혼 초기에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자주 상했다. 그러면 나는 서랍 속에 나란히 둔 우리 둘의 장갑을 꺼내 다른 서랍에 따로 넣었다. 그러다 마음이 풀리면 장갑을 다시 포개어 넣곤 했다. 장갑은 내 마음이었다.     몇 해를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웃음이 났다. 장갑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벌을 주고 있는 걸까.   지금은 그 시절보다 마음이 상할 일도 줄었고, 설령 그런 일이 있어도 장갑을 따로따로 넣어두는 일도 없다. 처음 내 손을 잡아주던 남편의 따뜻한 손길과 오랜 세월 함께해 준 그의 삶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랍 속에 나란히 놓인 장갑을 볼 때마다 처음으로 손을 잡던 그날의 떨림과 부끄러움이 다시금 마음 가득 번진다. 이제 손은 주름지고 거칠어졌지만, 온기는 젊은 날보다 더 깊다. 세월의 추위를 함께 견뎌온,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온도다.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이 장갑들이 필요 없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추운 날에는 장갑을 꺼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걸을 것이다. 장갑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단순한 체온이 아니라, 한평생 함께 걸어온 세월이 빚어낸 사랑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이면 55년 전 한국의 2월이 떠오른다. 그때는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남편의 손을 먼저 잡는다. 세월과 함께 쌓인 연민과 감사가 마음 깊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열 살이나 어린 나를 가르쳐주고 이해해주며 함께 걸어온 그의 삶은 내 마음속 저금통에 고마움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남편은 노년이 된 지금, 내 저금통의 고마움을 날마다 조금씩 꺼내어 쓰고 있다.   며칠 전 옷장 서랍을 정리하다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장갑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번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물었다.   “당신, 무슨 좋은 일 있어?”   남편은 내가 장갑과 화해한 걸 모른다. 이 장갑은 우리 결혼의 초판본 같은 것이다. 가죽이지만 부드러운 진심이 담겨 있었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천천히 책장을 넘기듯 쌓여왔다.   이제는 손으로 기억을 나눈다. 말보다 먼저 닿는 손끝의 온기, 말없이 다정하게 잡은 손길에 인생의 온도가 있다.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세월의 가장 따뜻한 기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소박한 손끝에서 나왔다. 그걸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서랍 속 장갑이 조용히 속삭인다. “참 잘 살아왔어.”   얼마 전부터 손이 시리다는 남편에게 55년 전 가죽장갑을 꺼내 주었다. 장갑 안쪽의 오리털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날이 풀리면 장갑을 깨끗이 닦아 다시 포개어 서랍에 넣어둘 생각이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장갑 화해 입고 가죽장갑 장갑 안쪽 마음속 저금통

2026.01.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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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신 골드러시 2026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골든 스테이트’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필시 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눈치챘으리라. 1848년 어느 날,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스위스 사람 존 서터는 캘리포니아의 광산촌에 정착을 하였다. 어느 날 그의 광산에서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장감독인 제임스 마셜이 들고 온, 아직 튀기지 않은 팝콘 크기의 두 조각의 금을 도화선으로 노다지 캐기의 소문은 열병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농촌에서, 대도시에서, 상인도 교사도, 신문 편집인도 모두 본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주야로 금 광맥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당시의 천정부지로 높았던 물가는 이 노다지 캐기 현장의 탐욕과 살벌함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의 이 소동을 골드러시라고 했다.   내 핸드백 구석엔 팝콘 크기의 찢어진 금니조각이 있었다. 오래전에 해 넣은 금니가 닳아서 못쓰게 되어 새것으로 교체한 지 2년쯤 되었다. 못생긴 금니조각을 고이 싸서 날짜까지 적어 치과선생님이 주셨다. “그냥 버려주세요. ”하니 정색을 하며 이걸 팔면 돈이 된다고 가지고 있으란다. 30년 동안 잘 써먹은 이빨을 누가산담! 속으로 웃었다.   새해 들어 이것저것 정리하고 버리다가 가방정리차 엎으니 금니 세 조각이 나왔다. 한인타운에 금을 사고 판다는 거래소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뜻밖에 젊은 분이 전화를 받는다. 전당포의 주인으로 스크루지 영감을 상상했었는데, 자투리금이나 물론 금니도 거래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신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친절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금니를 팔러 나섰다. 소설에서 많이 읽어본, 풍비박산난 집안의 불쌍한 아낙처럼 보일까 봐 최대한 정상의 여염집 부인으로 보이도록 공들여 치장했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토요일 일꾼 4명과 마당 정리하던 남편이 어딜 가냐고 물어 금니 팔러 간다니 가가대소를 했다. 젊은 시절이나 한국이었다면 생각도 못해볼 일을 나이가 드니 용감해진 걸까? 차분히 순조롭게 거래를 마치고 예상보다 큰 현금을 손에 쥐었다. 깜짝 놀랐다.   그사이 남편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거래 끝내고 돈 벌었다니 좋아한다. 뒷마당 일하러 온 네 명의 일꾼에게 비싼 점심을 쏘았다. 횡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뜻밖의 돈이 생기니 지출이 줄을 서 기다린다. 장례식 부의금, 수술회복의 축하금, 대학입학 축하금으로 푼돈을 나누었다. 즐거운 나눔이었다.   그 후론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버릇이 생겼다. 부스러기 금을 찾는 노다지 발굴 사업이 시작된 거다. 짝을 잃은 귀걸이, 끊어진 목걸이줄, 50년 된 금 십자가도 통에 넣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해 넣은 남편의 금니도 탐을 내는 중이다. 아직 쓸만하다니 아침에 한번 더 확인해 봤다. “당신의 이빨은 여전히 안녕하신가?”   우리 집안에 도래한 골드러시이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골드러시 축하금 대학입학 풍비박산난 집안 팝콘 크기

2026.01.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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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비워낸 옷장에 남은 두번째 삶

새해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옷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해마다 마음만 먹고 미뤄 두었던 일이었는데, 배우 윤석화의 부고를 접한 뒤 마음이 급해졌다. ‘내일 일을 모른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갑작스러운 실체로 다가왔다. 죽음은 늘 남의 이야기처럼 멀리 있다가도, 어느 날 불현듯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내가 떠난 뒤, 남은 옷들과 물건을 누가 정리할까. 한국에는 고인의 유품을 전문적으로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과연 내가 남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자 배려일 것이다.   그때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사는 동네에 ‘세컨드 스트리트(Second Street)’라는 중고 상점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입던 옷과 구두, 핸드백을 가져가면 그 자리에서 값을 매겨 사고, 매입하지 않는 물건은 자선단체에 기부해 준단다.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부담도, 괜한 죄책감도 덜 수 있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을 부여한다는 이 상점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옷장에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으로 건너가 다시 쓰이는 일,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조용한 환승처럼 느껴졌다.   은퇴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은퇴는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반환점, 혹은 ‘세컨드 라이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러 다니고, 춤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일하느라 미뤄 두었던 일들을 몰아서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바쁘고 풍요한 나날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있다.   옷장을 비우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첫 번째 삶의 속도와 역할을 되돌아보며, 새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보내며 한때의 나와 작별 인사를 한다.     ‘세컨드 스트리트’의 계산대 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처럼, 나 역시 두 번째 삶의 형태를 천천히 그려 나간다. 오늘도 나는 형사 콜롬보가 되어 옷장을 열어본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늘 사소한 곳에 숨어 있듯, 내 두 번째 삶의 방향 역시 이 조용한 비움 속에 숨어 있으리라 믿는다.   ‘세컨드’는 결코 차선이 아니다. 다시 살아 볼 기회이자, 다르게 살아 볼 가능성이다. 비워낸 옷장에서 개운함과 후련함을 느낀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이 있듯, 나에게도 아직 살아갈 시간이 남아있다. 은퇴 후에도 배우고 움직이며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비워낸 만큼 새로움으로 채워질 시간, 그건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 시작할 나의 이야기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옷장 세컨드 스트리트 세컨드 라이프 마음 한구석

2026.01.1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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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깨소금 같은 마음

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찬에 뿌려진 깨소금은 네가 반찬에 처음 젓가락을 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그의 꼬마 딸이 커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가지 반찬 바지 주머니

2026.01.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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