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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아디아포라(Adiaphora)’

남편이 매주 한 번씩 치러 가는 교회 탁구실이 문을 닫았다. 10년 이상 운영되던 탁구 교실이다. 탁구를 안 치는 내가 더 서운하다. 남편이 없는 그 시간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으로 독서나 사색하기 좋았는데 말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났더니 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후배의 남편인 집사님도 같은 탁구부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탁구를 좋아서 치는 당사자들에겐 운동으로 힐링이 되고, 그 배우자에겐 또 다른 휴식의 일석이조의 기회였는데 참 아쉽다.   생각이 짧은 누군가가 “금요예배도 안 나오면서 수요일엔 탁구를 치다니!” 하고 마치 신앙적으로 큰 죄를 짓는 듯 말을 하니 그야말로 김이 새서(?) 탁구실을 잠정적으로 닫기로 했다는 거다.   중세의 수도사도 아니고 현대교회의 평신도에게 그런 구닥다리 잣대로 신앙을 평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교회의 건물은 커뮤니티에 되도록 많이 개방하여 신앙인이 아닌 이에게도 유용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미국교회들을 보면 커뮤니티의 시니어 교육, 요리교실, 댄스교실 등으로 개방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오래전 유학생 배우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을 때 남침례교단의 부인회에서 많은 걸 배워 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탁구부원이었던 원로목사님도, 다른 교회에서 오시던 탁구애호가도, 전도 대상으로 점찍었던 이웃 주민도 탁구실을 닫았다니 실망이 크시다.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다. 헬라어 ‘아디아포로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독교의 성경이나 교리가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은 중립적인 영역을 뜻한다. 음식, 복장, 취미, 예배 형식 등 행동의 여부가 신앙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대수롭지 않은 것”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을 뜻하며 간단히 말해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엔 굳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참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다.   그 일을 계기로 요즘 교회가 “신앙의 고백과 교리는 있으나 사랑의 실천이 없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기애’적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가 비록 교회에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을망정. 사랑 없는 특권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희생을 무효화시키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혹시 이런 일들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나 걱정스럽다.   복음은 ‘관계의 화해’이며 ‘제한성의 극복’이고 ‘시선의 확장’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교회 탁구실 요즘 교회 오래전 유학생

2026.02.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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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세 번째 반지, 서퍼링(Suffering)

결혼 생활에는 세 개의 링이 있다고 한다. 약혼반지(Engage ring), 결혼반지(Wedding ring), 그리고 고난(Suffering). TV에서 한 목사님이 주례를 서며 이 이야기를 전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링인 ‘서퍼링(Suffering)’이야말로 결혼 생활의 무게와 깊이를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느 날 구멍 난 양말을 들고 와 내게 보여주었다.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됐네.”   그 말에 나는 자연스레 되물었다. “꿰매줄까요?” “그럼 좋지, 아직 멀쩡한데 버리긴 아깝잖아.”   그 양말은 남편이 특별히 아끼는 것이다. 색감이 멋스럽고 도톰해서 발바닥은 편안하고 종아리에도 부드럽게 감겼다. 양말 한 켤레에 대한 그의 애착은 어쩌면 그 양말이 전하는 따뜻함이 고단한 삶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 나는 돋보기를 먼저 꺼낸다.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마련해 준 반짇고리는 반백 년 세월 동안 열고 닫히며 빛바랜 채로 나와 함께 늙어왔다. 그 안에서 찾은 매끄러운 전구를 양말 속에 밀어 넣고, 환하게 드러난 구멍 난 부분을 조심스레 꿰매기 시작한다. 남편은 내가 양말을 꿰맬 때면 어릴 적 어머니가 촛불 아래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말하곤 한다.   내게 양말을 꿰매는 일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하나의 예술이자 삶의 의례다. 또한 이 시간은 내가 주님과 깊이 동행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구멍 난 자리를 메우며 나는 우리의 관계를 떠올린다. ‘우리의 우정과 사랑에도 이런 구멍이 나 있지는 않을까?’ 자문해 본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 때면 작은 아픔을 견디며 인내를 배우고, 꿰맨 자국이 투박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다음번엔 더 정성스럽게 하리라 다짐한다.   오늘 손을 본 양말은 청색과 회색이 차분하게 섞인 빛깔이다. 구멍 난 부분에 회색 천을 덧대었지만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남편이 이 양말을 신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사실 이 소소한 바느질이 단순히 나의 알뜰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친할머니의 가르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할머니는 “헌 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낡은 것을 결코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 겉에는 늘 깨끗한 새 옷을 입으셔도, 속에는 몇 번이나 꿰맨 속옷을 소중히 입으시던 분이었다.   요즘은 눈이 많이 나빠져 바늘귀를 끼우는 일조차 힘들다. 하지만 새 양말을 사주는 편함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양말을 정성껏 기워주는 것, 나는 이것 또한 ‘사랑의 서퍼링(Suffering)’이라 믿는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작은 불편과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구멍 난 양말 한 켤레를 꿰매며 결혼 생활의 또 다른 의미를 배운다. 삶의 작은 틈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위해 수고로움을 견디며, 그 과정에서 온기를 발견하는 것. 기운 양말은 남편의 발에서 사랑의 기억을 안고 다시 힘찬 걸음을 내딛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양말처럼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오늘도 감사히 여긴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suffering 서퍼링 반지 서퍼링 기운 양말 결혼 생활

2026.02.0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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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책임

멕시코 칸쿤에 다녀왔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지 툴룸(Tulum)에서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다가 특이한 광경을 만났다. 일꾼들이 잡초를 제거하는데, 길고 날렵한 칼 같은 도구를 수평으로 눕혀 흙을 얇게 썰었다. 뿌리 잘린 풀 포기들이 땅 위로 흩어졌다.     잡초 제거의 기본은 발본색원, 뿌리제거 아닌가. 뜨거운 햇볕 아래 납작 엎드려 메마른 땅을 써는 모습이 비효율적이어서 답답했다. 호미를 사용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싶었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마야문명의 유적지여서 작업 방식도 원시성을 고수하는 걸까? 아니면 이 고대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연의 일부분으로 귀속시켜 관광객에게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려는 의도일까? 하지만 정밀한 과학으로 피라미드를 세운 마야인들 아닌가.     잠시 후에 진의를 알게 되었다. 툴룸이 위치한 유카탄 반도는 땅을 조금만 파도 단단한 석회암 지반이 드러난다고 한다. 호미나 곡괭이를 쓰면 도구의 날이 쉽게 손상되고, 사람의 손목과 허리도 다치기 쉬워서 베는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했다.   강풍을 동반한 스콜도 잦아 토양 유실이 빠르단다. 뿌리가 없는 땅은 침식이 더 심한데 땅속 깊이 잡초 뿌리가 남아 있는 곳은 뿌리가 토양을 붙잡아 주어 그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작업 방식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된 토양 관리였다.     이 도구가 마체테다. 넓은 면적을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있고, 뱀이나 전갈 같은 독충을 만났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사람의 안전도 지켜준다고 했다. 바나나를 먹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든 이구아나 두 마리에게 둘러싸여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떠올라, 즉각 이해되었다.     수년 전, 잉카 문명이 꽃피운 땅, 페루에서 만났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공원 일꾼들이 지표면 바로 아래에 마체테와 비슷한 도구를 눕혀서 풀을 베고 있었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더불어 알게 되었다.     안데스 고원이 가로지르는 페루의 토양도 흙이 얕고 돌이 많다. 곡괭이나 호미는 쉽게 망가질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을 먼저 해친다. 페루의 풀은 뿌리가 깊어 잘릴수록 밀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토양을 더 단단히 잡아준다니, 뿌리를 남기는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툴룸처럼, 토양유지와 재생을 고려한 지혜였다.     마체테가 계속 생각났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 석회암 지반이 무너지며 드러난 깊은 지하수 캐노테, 스노클링을 즐겼던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신비로운 바다 물빛까지, 일주일 동안 마야문명이 숨 쉬고 있는 칸쿤의 서정을 맘껏 누렸는데도 마음이 조용했다. 툴룸과 소급된 기억 속의 페루에서 만난 마체테가 주는 의미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을까?     환경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하마터면 마야와 잉카 문명을 무지와 미개로 평가절하  할 뻔했다. 내게 익숙한 방식과 다른 장면 앞에서,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 오래 생각했다.     인생 공부는 끝이 없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속도 책임 발본색원 뿌리제거 잡초 뿌리 동안 마야문명

2026.02.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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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어바인에 오다

지휘자 금난새가 그의 이름 새처럼, UC어바인(UCI)의 버클레이 극장으로 또 날아왔다. 올해가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딸애가 대학원 동문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지인들의 초청을 받았기에 거리는 멀지만 참석했다.     ‘금난새’ 라는 독특한 이름은 1948년에 발표된 가곡 ‘그네’ 작곡가로 유명한 그의 부친 금수현이 지어준 순우리말이다. '그네'의 노래 가사는 시인이던 금난새의 외할머니 김말봉의 작품이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날아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가더라…'   자녀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던 애국심이 가득한 부친 금수현과 바이올린 연주자인 어머니, 금난새는 3대가 음악가 집안이다. 금 지휘자는 병역을 마치고 이십 대 후반에 독일로 들어가 어렵게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로벤스타인 교수의 배려로 6년 동안 사사했고, 그렇게 받은 은혜를 고국에서 베풀고 싶다며 실행하고 있다.     KBS 교향악단 최연소 지휘자가 됐고 임기를 마친지 14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어렵다는 클래식 음악을 쉽게 대중에게 해설하면서 국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또 대한민국의 곳곳을 다니며 젊은 음악도를 발굴하고 실력을 펼 기회도 마련해 주고 있다.   어바인 대학교에서의 연주는 금난새의 리듬감 넘치는 해설도 시작되었다. 그는 시종 온화한 미소와 도란도란 일상에서 대화하듯 해설을 이어갔다. 큰 행사를 열게 해준 동문 후원자와 봉사자 중에 몇 사람을 호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박수를 쳐준 후, 신청곡을 받아 즉흥으로 연주하던 첫 번째 해의 연주회 모습도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덕분에 우린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인 ‘Some where my love’를 특별출연한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합주로 들었다. 또 대학생 시절을 추억하는 ‘러브 스토리’ 도.     금 지휘자는 섬세하면서도 유머 있는 말들로 청중을 계속 웃게 하였다. 해마다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하모니카 등 특별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아코디언처럼 생긴, 나도 처음으로 보는 악기, 밴도니언(Bandoneon) 연주가 등장했다.   금 지휘자는 백발의 나이에도 먼 길 달려와 이곳의 젊은 음악가들을 연결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2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지만 훈훈한 봄기운을 가득 불어 넣어주었다. 한국의 총동문회장과 미국 동문회가 합세해 대한민국인의 긍지를 높여주니 정말 고마운 행사이다.     이민 올 때 나는 우리 가곡전집인 LP판을 가방 속에 담고 왔지만, 여전히 미국생활은 삭막하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지휘자 금난새 어머니 금난새 어바인 대학교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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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마침표를 먼저 찍다

‘마침표’는 한 문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문장 부호다. 작고 둥근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점이 없으면 아무리 긴 문장도 끝나지 않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완성되지 못한다. 마침표는 글을 멈추게 하지만, 그 멈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멈춤이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이야기가 마침표를 기준 삼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면서 삶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황규관 시인은 ‘마침표 하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를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시인에게 마침표는 종결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한 문장이 끝났다는 사실은, 곧 다음 문장이 시작될 자리가 마련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그는 말한다.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우리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은 뒤 과거라고 부르고, 부딪치는 일들에 마침표를 찍고는 경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인생은 끝과 시작 사이에 놓인 그 작은 점 하나를 두고 연이어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마침표를 찍으며 인생이라는 소설을 메꾸며 산다.   인생의 끝자락에 찍히는 마침표를 우리는 죽음이라 부른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마침표 하나를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반드시 덮여야 할 책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문장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애쓴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일은 우리를 위축시키기보다 우리의 삶을 정갈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마침표를 마지막에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를 먼저 찍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삶의 방향을 정하고, 언젠가 닫힐 것을 알기에 오늘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에 새겨진 흔적이다.   2026년이라는 새 노트를 펼치며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다짐을 써 내려 간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설렘 속에서 한 해를 맞이한다. 그러나 삶은 계획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삶의 마침표는 단순히 시간을 끝내는 표시가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하루와 한 해, 더 나아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마음에 품고 출발하는 지혜다.   그 지혜를 품은 이들에게 마침표는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오늘을 의미 있게 살겠다는 다짐이며, 내일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옹골찬 결단이다. 마침표를 먼저 찍는다는 것은 끝과 시작, 과거와 미래,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끌어안는 일이다.   올 한 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침표를 먼저 찍고 시작하는 인생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2026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고, 그 마침표가 모여 언제가 ‘죽음’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점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삶의 종점에서 찍게 될 마침표는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붙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무게 중심이 될 것이다. 마침표를 먼저 찍고 오늘을 살 때, 우리의 삶이라는 문장은 흔들림 없이 아름답게 완성될 것이다.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마침표 마침표 하나 시작 사이 시작 과거

2026.01.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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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은빛으로 나를 세우다

가슴이 서늘했다. 골밀도가 심하게 낮아졌다는 의사의 진단은 내 몸의 뼈가 성글어가고 있다는 경고였다. 자칫하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무엇을 먹으면 좋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의사는 웃으며 ‘멸치 많이’라고 답했다. 익히 알고 있던 정답이었음에도 나는 의사의 처방을 듣고 돌아오며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텅 빈 내 안을 채울 것이 이토록 작고 반짝이는 존재들이라니 왠지 모를 위안이 느껴졌다.   고추장에 찍어 먹을 생각으로 멸치를 볶았다. 열기에 몸을 달구며 내뿜는 고소한 향이 마늘과 청양고추의 알싸함과 어우러져 금세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갓 지은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멸치의 눈과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워 울먹이던 어린 날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죽은 생명이 불쌍하여 젓가락을 내려놓던 그 여린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 나는 나의 뼈를 세우기 위해 그들의 뼈를 빌리는 생의 엄숙한 순환 앞에 서 있다.   한 줌의 멸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작은 몸 하나에도 세월의 무늬가 스며 있다. 먼 바다에서 길어 올린 눈부신 햇살과 거친 파도,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던 일꾼들의 투박한 손마디가 이 은빛 비늘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멸치는 비록 작고 여리지만, 제 몸을 부수어 타인의 생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넉넉한 삶의 철학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간 외가는 바다 냄새가 갯바람에 실려 오는 곳이었다. 장을 봐 오신 할머니와 찬모의 발걸음이 부엌과 광을 분주하게 드나들면, 소쿠리 속에는 시래기가, 양은 바가지 속에는 은빛 멸치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물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파닥거리며 물비늘을 흩날리던 그것들은 바다의 윤슬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눈부셨다.   할머니는 풋배추를 말려 만든 시래기를 냄비 바닥에 넉넉히 깔고, 그 위에 멸치를 층층이 쌓으셨다.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만든 비법 양념장이 자박하게 끓어오를 때쯤이면, 집안 구석구석은 구수한 향기로 가득해졌다. 뚜껑을 여는 순간 피어오르던 그 따스한 김 속에는 남해의 파도 소리와 할머니의 정성이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때로는 귀한 죽방멸치가 선물로 들어오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리면 매끄러운 은빛 광택이 흐르던 그 작은 존재들은, 바다를 고스란히 응축해 놓은 결정체 같았다. 갓 지은 밥에 다시마나 배추를 손바닥에 올리고 멸치조림 한 점을 얹어 드시던 어른들의 웃음소리. 그 쌈 한 입에 깃든 바다의 기운은 어린 내 눈에도 신기하고 즐거운 삶의 풍경으로 남았다.   짜고 단 것을 즐겼던 지난 습관을 떠올리면 이만하기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멸치를 통해 내 몸을 다시 세우려 한다. 멸치여, 너희들은 이제 내 안에서 부서져 나의 뼈가 되고 나의 별이 된다. 바다의 눈물 같은 그 은빛 몸뚱이가 내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이길 바란다. 설령 바다의 생명이 다하는 날이 올지라도, 내가 사랑했던 그 푸른 기억만큼은 은빛 비늘에 새겨져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길 바란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은빛 은빛 멸치들 은빛 비늘 은빛 몸뚱이

2026.01.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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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55년된 장갑과의 화해

나는 선을 본 지 이틀 만에 약혼을 했다. 나흘 뒤에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은사님께 갑작스레 청첩장을 드리러 가던 날, 외투를 입고 가죽장갑을 꼈지만 한국의 2월 한파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앞서 걷던 약혼자가 문득 돌아보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만난 지 사흘. 우리는 아직 어색한 사이였다. 난생처음 남자의 손을 잡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괜스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서로의 체온이 장갑 너머로 전해졌고, 그 기억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속에 선명하다.     결혼 초기에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자주 상했다. 그러면 나는 서랍 속에 나란히 둔 우리 둘의 장갑을 꺼내 다른 서랍에 따로 넣었다. 그러다 마음이 풀리면 장갑을 다시 포개어 넣곤 했다. 장갑은 내 마음이었다.     몇 해를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웃음이 났다. 장갑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벌을 주고 있는 걸까.   지금은 그 시절보다 마음이 상할 일도 줄었고, 설령 그런 일이 있어도 장갑을 따로따로 넣어두는 일도 없다. 처음 내 손을 잡아주던 남편의 따뜻한 손길과 오랜 세월 함께해 준 그의 삶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랍 속에 나란히 놓인 장갑을 볼 때마다 처음으로 손을 잡던 그날의 떨림과 부끄러움이 다시금 마음 가득 번진다. 이제 손은 주름지고 거칠어졌지만, 온기는 젊은 날보다 더 깊다. 세월의 추위를 함께 견뎌온,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온도다.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이 장갑들이 필요 없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추운 날에는 장갑을 꺼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걸을 것이다. 장갑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단순한 체온이 아니라, 한평생 함께 걸어온 세월이 빚어낸 사랑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이면 55년 전 한국의 2월이 떠오른다. 그때는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남편의 손을 먼저 잡는다. 세월과 함께 쌓인 연민과 감사가 마음 깊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열 살이나 어린 나를 가르쳐주고 이해해주며 함께 걸어온 그의 삶은 내 마음속 저금통에 고마움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남편은 노년이 된 지금, 내 저금통의 고마움을 날마다 조금씩 꺼내어 쓰고 있다.   며칠 전 옷장 서랍을 정리하다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장갑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번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물었다.   “당신, 무슨 좋은 일 있어?”   남편은 내가 장갑과 화해한 걸 모른다. 이 장갑은 우리 결혼의 초판본 같은 것이다. 가죽이지만 부드러운 진심이 담겨 있었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천천히 책장을 넘기듯 쌓여왔다.   이제는 손으로 기억을 나눈다. 말보다 먼저 닿는 손끝의 온기, 말없이 다정하게 잡은 손길에 인생의 온도가 있다.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세월의 가장 따뜻한 기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소박한 손끝에서 나왔다. 그걸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서랍 속 장갑이 조용히 속삭인다. “참 잘 살아왔어.”   얼마 전부터 손이 시리다는 남편에게 55년 전 가죽장갑을 꺼내 주었다. 장갑 안쪽의 오리털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날이 풀리면 장갑을 깨끗이 닦아 다시 포개어 서랍에 넣어둘 생각이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장갑 화해 입고 가죽장갑 장갑 안쪽 마음속 저금통

2026.01.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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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신 골드러시 2026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골든 스테이트’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필시 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눈치챘으리라. 1848년 어느 날,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스위스 사람 존 서터는 캘리포니아의 광산촌에 정착을 하였다. 어느 날 그의 광산에서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장감독인 제임스 마셜이 들고 온, 아직 튀기지 않은 팝콘 크기의 두 조각의 금을 도화선으로 노다지 캐기의 소문은 열병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농촌에서, 대도시에서, 상인도 교사도, 신문 편집인도 모두 본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주야로 금 광맥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당시의 천정부지로 높았던 물가는 이 노다지 캐기 현장의 탐욕과 살벌함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의 이 소동을 골드러시라고 했다.   내 핸드백 구석엔 팝콘 크기의 찢어진 금니조각이 있었다. 오래전에 해 넣은 금니가 닳아서 못쓰게 되어 새것으로 교체한 지 2년쯤 되었다. 못생긴 금니조각을 고이 싸서 날짜까지 적어 치과선생님이 주셨다. “그냥 버려주세요. ”하니 정색을 하며 이걸 팔면 돈이 된다고 가지고 있으란다. 30년 동안 잘 써먹은 이빨을 누가산담! 속으로 웃었다.   새해 들어 이것저것 정리하고 버리다가 가방정리차 엎으니 금니 세 조각이 나왔다. 한인타운에 금을 사고 판다는 거래소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뜻밖에 젊은 분이 전화를 받는다. 전당포의 주인으로 스크루지 영감을 상상했었는데, 자투리금이나 물론 금니도 거래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신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친절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금니를 팔러 나섰다. 소설에서 많이 읽어본, 풍비박산난 집안의 불쌍한 아낙처럼 보일까 봐 최대한 정상의 여염집 부인으로 보이도록 공들여 치장했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토요일 일꾼 4명과 마당 정리하던 남편이 어딜 가냐고 물어 금니 팔러 간다니 가가대소를 했다. 젊은 시절이나 한국이었다면 생각도 못해볼 일을 나이가 드니 용감해진 걸까? 차분히 순조롭게 거래를 마치고 예상보다 큰 현금을 손에 쥐었다. 깜짝 놀랐다.   그사이 남편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거래 끝내고 돈 벌었다니 좋아한다. 뒷마당 일하러 온 네 명의 일꾼에게 비싼 점심을 쏘았다. 횡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뜻밖의 돈이 생기니 지출이 줄을 서 기다린다. 장례식 부의금, 수술회복의 축하금, 대학입학 축하금으로 푼돈을 나누었다. 즐거운 나눔이었다.   그 후론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버릇이 생겼다. 부스러기 금을 찾는 노다지 발굴 사업이 시작된 거다. 짝을 잃은 귀걸이, 끊어진 목걸이줄, 50년 된 금 십자가도 통에 넣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해 넣은 남편의 금니도 탐을 내는 중이다. 아직 쓸만하다니 아침에 한번 더 확인해 봤다. “당신의 이빨은 여전히 안녕하신가?”   우리 집안에 도래한 골드러시이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골드러시 축하금 대학입학 풍비박산난 집안 팝콘 크기

2026.01.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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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비워낸 옷장에 남은 두번째 삶

새해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옷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해마다 마음만 먹고 미뤄 두었던 일이었는데, 배우 윤석화의 부고를 접한 뒤 마음이 급해졌다. ‘내일 일을 모른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갑작스러운 실체로 다가왔다. 죽음은 늘 남의 이야기처럼 멀리 있다가도, 어느 날 불현듯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내가 떠난 뒤, 남은 옷들과 물건을 누가 정리할까. 한국에는 고인의 유품을 전문적으로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과연 내가 남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자 배려일 것이다.   그때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사는 동네에 ‘세컨드 스트리트(Second Street)’라는 중고 상점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입던 옷과 구두, 핸드백을 가져가면 그 자리에서 값을 매겨 사고, 매입하지 않는 물건은 자선단체에 기부해 준단다.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부담도, 괜한 죄책감도 덜 수 있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을 부여한다는 이 상점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옷장에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으로 건너가 다시 쓰이는 일,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조용한 환승처럼 느껴졌다.   은퇴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은퇴는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반환점, 혹은 ‘세컨드 라이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러 다니고, 춤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일하느라 미뤄 두었던 일들을 몰아서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바쁘고 풍요한 나날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있다.   옷장을 비우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첫 번째 삶의 속도와 역할을 되돌아보며, 새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보내며 한때의 나와 작별 인사를 한다.     ‘세컨드 스트리트’의 계산대 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처럼, 나 역시 두 번째 삶의 형태를 천천히 그려 나간다. 오늘도 나는 형사 콜롬보가 되어 옷장을 열어본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늘 사소한 곳에 숨어 있듯, 내 두 번째 삶의 방향 역시 이 조용한 비움 속에 숨어 있으리라 믿는다.   ‘세컨드’는 결코 차선이 아니다. 다시 살아 볼 기회이자, 다르게 살아 볼 가능성이다. 비워낸 옷장에서 개운함과 후련함을 느낀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이 있듯, 나에게도 아직 살아갈 시간이 남아있다. 은퇴 후에도 배우고 움직이며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비워낸 만큼 새로움으로 채워질 시간, 그건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 시작할 나의 이야기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옷장 세컨드 스트리트 세컨드 라이프 마음 한구석

2026.01.1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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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깨소금 같은 마음

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찬에 뿌려진 깨소금은 네가 반찬에 처음 젓가락을 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그의 꼬마 딸이 커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가지 반찬 바지 주머니

2026.01.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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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루스 아사와, 철사로 우주를 빚다

지난달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향했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루스 아사와(Ruth Asawa)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다.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던 조각가인데 노년에 루푸스라는 병에 걸렸다.     오랜 투병 생활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자, 그녀의 딸은 크리스티 경매장의 큐레이터에게 편지를 썼다. 집에 있는 제일 값나가는 미술품인 조세프 알버스의 그림을 팔아 달라고 의뢰했다. 그때 편지에 동봉된 루스의 작품 사진을 보고 큐레이터는 눈이 번쩍 띄었다. 루스의 집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2009년 당시 루스는 80세를 막 넘긴 나이였다.   그 이후에 작가는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87세로 생을 마감한 지 십여 년 만에 MoMA는 회고전을 기획했다. 특별전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린다. 철사를 꼬아서 만든 그녀의 작품 값은 현재 몇백만 불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 천장 서까래에 걸려 있었던,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구경하러 오던 작품들이다.   나는 한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팽이 같기도, 토성 같기도 한 타원형이 여러 개 연결되어 수직으로 서 있었다. 구의 정교함이 철사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구 안에 구가 들어가 있는데 색이 오묘하게 달랐다. 철사는 산화 정도에 따라서 녹색, 오렌지색으로 달라진다.     공중에 달려서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품도 있다. 모래시계, 팽창하는 세포, 혹은 나무둥치 같기도 하다. 거친 철사로 이렇게 매끈한 추상 형태를 만들어 내다니, 손이 아파서 장갑을 몇 겹 끼고 작업했다고 한다.     모든 예술가가 뉴욕을 바라보듯이 루스도 그랬다. 구겐하임 펠로십에 6번 응모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무명 시절에 어떤 비평가는 ‘기린을 위한 귀고리’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남자가 하면 예술이고 여자가 하면 공예라는 시선이 있었던 1960년대였다. 곡선으로 휠망정 부러지지 않는 철사 같은 루스. 그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2차 대전 중,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었다. 15세의 루스는 가족과 함께 수용소에 갇혔다. 아버지는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일본인이었다. 루스는 같이 수감된 일본계 미술가들을 따라다니며 그림을 배웠고, 단체의 후원으로 미술 대학을 진학했다.     멕시코 여인네들이 바구니를 엮는 것을 본 루스는 나무껍질 대신에 철사를 집어들었다. 그녀가 만드는 형상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우주가 팽창하듯이 부피를 더해갔다. 어릴 적 인종 차별을 받았던 그녀는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 부른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던 1949년, 결혼이 허용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백인 남편과 용감하게 결혼했다.   전시장 벽을 따라서 나오니, 알록달록 칠을 한 작은 칠판 같은 작품이 보인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그들이 하는 미술 숙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가는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밀가루 반죽을 주었다. 그들이 만든 새, 꽃, 구름 등을 판에 붙이고 색을 입혔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전시의 마지막 방이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은 루스의 사진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갇혔던 수용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삶의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았다. 여섯 아이가 학교 간 틈을 타서 철사를 꼬았더니, 부엌에서 창조하던 우주가 세상 밖으로 팽창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뉴욕 한복판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5번가는 빨강 목도리를 두르고 힘차게 걷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의 지난 한해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김미연 / 수필가이아침에 아사 철사 루스 아사 작품 사진 맨해튼 한복판

2026.01.0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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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모든 페르소나에게 갈채를

지난 한 해,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57세 막내 여동생을 잃었고, 친구 시인도 떠나보냈다. 한국에서 4개월 머무는 동안 얻은 것도, 놓친 것도 많았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감당했고, 그때마다 인생의 마지막처럼 열정을 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난다. 자라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학습을 통해, 자의 반 타의 반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 창시자 칼 융은 이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배우가 무대에서 쓰는 가면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한다. 사회 적응을 위한 역할인 페르소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지 말라고. 페르소나는 단지 인생 게임에 필요한 가면일 뿐이니 어떤 역할이든 집착하지 말라고.     그의 말은 자칫 인생을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배우는 배역을 마치면 다른 역할로 옮겨간다.   인생의 배역은 다르다. 성공도 실패도 실제다. 페르소나의 경험을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성품이 갖춰진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역할을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 한번 어머니는 평생 어머니이고 가족 관계는 대대손손 얽힌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직장생활은 은퇴 전까지 지속된다. 연습 한번 없이 인생 무대에 올라, 사는 날까지 수많은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행하면서 좌충우돌한다.     생의 페르소나는 그 역할만큼 다양한 인격을 드러낸다. 어떤 역할을 하든 여전히 나다. 선행도 악행도 내 진정한 단면이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그러니까 배역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만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기 삶에 무책임할 수 없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페르소나의 삶이 내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라.     아무려나, 오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승리자다. 배역에 충실했든 허술했든, 이 시간 살아있다면 됐다. 과거 한때 생사를 가르는 막장에 갇혀있었다 해도, 지금 존재하다면, 잘한 거다.   누가 내게 이 배역을 맡겼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포용한 삶이니 궁극적인 책임은 내 몫이다. 내 인생의 배역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살아있는 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을 준행해야 한다. 잘하려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이어야 한다. 페르소나 뒤에 가려진 나는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극장 배우와 다른 점이다.   진정, 본연의 나로 살 일이다. 길들여진다 해도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면 된다.   지난 한 해, 우리 각자가 맡은 배역이 다양했다. 그만큼 숨찬 시간을 보냈다. 이 순간까지, 우리는 잘 견뎌왔다. 우리 모든 페르소나에게 갈채를 보낸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페르소나 갈채 인생 무대 인생 게임 존재론적인 관점

2026.01.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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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함께 익어간다는 것

몇 해 전, 단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무릎까지 오던 묘목은 흙의 촉촉한 생기와 햇살이 건네는 따스한 기운을 마시며 어느새 내 키만큼 훌쩍 자랐다.   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던 가녀린 줄기가 안쓰러워 지지대를 세우고 정성스레 끈으로 묶어 주었다. 스프링클러가 주기적으로 물을 주니 손이 갈 일이 없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올해 첫 열매가 맺혔다. 여린 줄만 알았는데 대여섯 알이 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그저 대견스러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딸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뒤뜰로 와 봐요!”     한 달 반 집을 비운 사이, 잘 익은 주황빛 단감들이 나를 반겼다. 가느다란 가지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다. 가지를 모아 지지대에 살짝 고정해 주니 무게가 골고루 나뉘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단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따 먹어도 돼요?” “응, 조금만 더 기다리자. 생스기빙에 손님들 오면 자랑도 하고, 그때 따자.”   그날 이후 우리는 틈틈이 뒤뜰로 나가 감나무를 들여다보며 보살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 어서 나와 봐!”     새들인지 다람쥐인지, 누군가 먼저 맛을 보고 간 뒤였다. 열매는 군데군데 쪼아 먹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애지중지 지켜보던 첫 열매라 가슴이 툭 내려앉는 듯 허탈했다. “하나만 먹고 가지, 왜 다 건드렸대….”     그 순간 스쳤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이토록 절묘하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딸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문득 시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버님과 사별한 뒤, 생전에 남편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았다고 하셨다. 귀한 것이 있으면 자식들부터 먹이겠다며 아껴 두다가 상한 적도 많았다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고 하셨다. “애들은 살아가면서 더 좋은 것 많으니까 너는 꼭 아범부터 챙겨라.”     그 말의 여운이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돌아보면 우리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늘 “애들 먼저 줘. 나는 괜찮아.” 하고 뒤로 물러났고 나는 그것을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 여겼다. 그 사이 남편은 언제나 뒷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때가 되면 자식들은 각자의 시간표대로 삶을 향해 떠나고, 결국 부부만 남는 날이 찾아온다. 젊은 날의 열정도, 자녀들을 키우며 분주히 살아낸 세월도, 삶의 굽이마다 서로에게 기대어 버텨낸 그 모든 순간은 우리만의 연대기로 새겨진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마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흐르고, 표정만으로도 마음을 읽는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 줄 사람은 배우자임을 가슴 깊이 새긴다. 너무 익숙해 소중함마저 잊고 있었던 남편을 바라본다. 남은 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무게까지도 함께 나눌 사람. 이제라도 그를 내 삶의 맨 앞자리에 다시 두리라 다짐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라는 강을 나란히 건너며 서로의 마음을 깊고 단단히 익혀 가는 과정일 뿐이다. 언젠가 강 건너 저편에 다다랐을 때 묵묵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마주하며, 과연 후회 없이 살아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김윤희 / 수필가이아침에 아침 남편 사이 남편 가슴 한켠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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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안 입는 옷이 가장 따뜻해질 때

지그시 웃으면서 나이 드신 백인 할머니가 카트에 겨울옷을 잔뜩 싣고 들어온다.   옷장 안에 걸려만 있던 입지 않은 옷들이다. 세탁해서 주위에 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도 입지 않은 옷들이 얼마나 많은가. 귀찮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싫고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1년이 지나간다. 어떤 손님은 많은 옷을 가지고 세탁을 주문하면서 선불을 한다. 그리고 세탁을 해서 필요한 사람이나 홈리스에게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   연말이 되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의 보탬이라도 주고 싶어한다. 나는 꽃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나오면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가꾸어 교회나 양로원에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린 색 열매가 오렌지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탈리안 손님이 보고 자기 나라에서 키웠던 식물이라며 기뻐하면서 몇 개를 사갔다. 올해는 그 식물을 조그마한 것은 5달러 큰 것은 10달러를 붙여 가게 밖에 내놓았다. 두 달 동안에  50개 정도 팔았다.     우리 가게 옆 미국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세 번째 토요일에 교회에서 직접 만든 콩 수프와 사과 1개, 물 한 병, 쿠키 1팩, 냅킨으로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를 알리는 표지를 백에 넣어 홈리스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배달되어 먹었는데 수프에는 여러 가지 콩과 옥수수, 그린 빈이 들어있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후원했는데 꽃을 판매한 대금이 조금 모여 그것을 그 교회에 후원했다.   추수 감사절 전후로 우리 동네 홈리스들이 지난여름에 던져 놓고 간 겨울옷들을 찾으러 온다. 홈리스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있고 그 옷을 꼭 나에게 맡긴다.     그 많고 냄새 나는 옷들을 여름에 물세탁을 해서 가게 뒤 울타리에 걸쳐 햇볕에 말린다. 냄새도 없어지고 뽀송뽀송 감촉도 좋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찾으러 오면 내준다.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다. 명절에는 그 깨끗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구를 만나러 가는 뒷모습이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일 년 내내 방황하고 길가에서 구걸하지만 가슴 속에는 그 사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해 동안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있다. 주섬주섬 챙겨 비닐 백에 넣어 놓고 홈리스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매년 보내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필요 없고 값진 옷은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옷들이다. 무조건 사이즈가 크고 입고 벗기에 편리하면 좋아한다. 이번에는 두꺼운 재킷들이 제법 있어 유용할 것 같고 이불도 5개나 있다.     정신없이 살 거나 이사를 했거나 잊어버리고 찾으러 오지 않은 옷이나 이불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끝이 만지작거린 정성을 들인 옷들이다. 그래도 누군가 입고 덮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짐을 꾸린다.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홈리스 센터 세탁 비용 가슴 한쪽

2025.12.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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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선물이라는 이름의 기억

연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친척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연례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마련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작년 선물을 하나씩 떠올리며 올해는 누구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며 준비하게 된다.   각각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하고 교환이나 환불할 수 있는 물건을 골라 포장하여 우체국을 통해 보낸다. 같은 방식으로 내게 전해지는 선물은 성탄일 아침에 풀어본다. 때로는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성가신 물건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로 기쁨이 더해지길 바라며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웃어른이 올해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일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이메일로 전해왔다. 자본주의 극대화를 돕는 경제행위를 끝내자는 이유도 포함돼 있었다.   내게 맞지 않은 기성품을 입는 듯 마땅치 않았던 성탄절 행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 생산된 상품은 소비자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 마케팅으로 성탄절을 앞둔 매출은 일 년 중 최고를 기록하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론을 앞세우며 소비를 부추겨 온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작은 선물까지 금지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거실 한쪽에 첼로가 세워져 있었다. 궁금해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내 손발이 되어 24시간 같이 있던 사람이 언제 나가서 저 악기를 사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떨린 목소리와 촉촉해지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미술을 공부했던 어머니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첼로를 배우고 싶었지만 다섯 아들을 키우며 살림을 돌보는 사이 세월은 흘렀다. 해보지 못한 아쉬움을 알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첼로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몇 차례 수업을 받아보려 했으나 노인성 손가락 관절 통증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첼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내 남편 차지가 되었다. 내가 받은 선물도 아니건만 첼로를 볼 때면 두 분의 애틋한 크리스마스 사랑 이야기가 생각나 마음이 훈훈해진다.   나에겐 이맘때면 집에서 담은 김치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 가끔 마켓에서 김치를 사다 먹는 내게는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나 역시 몇몇 이웃이나 친구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크리스마스 즈음에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고받는 선물은 단순히 소비를 조장하는 일이 아닌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일이 아닐까.     선물을 주고받지 말자는 집안 어르신의 지엄하신(?) 분부가 있긴 하지만, 나는 올해도 이웃에게 줄 내 방식의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선물 속에 들어있을 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될 성싶어서이다. 이정숙 / 수필가이아침에 선물 이름 크리스마스 선물 작년 선물 크리스마스 사랑

2025.12.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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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덜해도 괜찮아

금요일 아침이다. 며칠간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이번만큼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부쩍 늘어난 체중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나 자신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중, 딸에게서 며칠간 강아지 시팅을 부탁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른 아침 딸의 집으로 갔다.   남편의 아침은 파네라 브레드에서, 점심은 한남 마켓 푸드 코트에서 해결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레몬을 짜 넣은 물 한 잔으로 대신했다. 뱃속은 비어 있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채우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느끼게 되는 여유였다. 그 자유가 이렇게 조용하고도 달콤할 줄 몰랐다.   햇살이 식탁 깊숙이 스며들며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강아지 체이스와 다코타가 꼬리를 흔들며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저녁 하실 시간이에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야.’   어제 사온 동태찌개를 데워 남편의 저녁상에 올렸다. 예전 같았으면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분주했을 텐데, 요리를 하지 않으니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먹어서 그런가, 맛이 별로네.”   남편의 말에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 후 그는 TV 앞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그의 곁에 앉았다. 평생 가족을 돌보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왜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밤이 되자 기운이 없었다. 하루 금식에 불과했는데 눈은 흐릿했고 몸이 힘들어 졌다. ‘괜찮아. 이틀만 더 견디자.’   아침에 눈을 뜨자 다리에 힘이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셨다. 남편을 태우고 차를 몰았다. 익숙한 길, 익숙한 신호등, 늘 반복되던 아침 풍경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운전대에 얹은 두 손이 나를 붙들어 주는 듯했다. 이만하면 아직 괜찮다고 스스로 말하며 파네라 빵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따뜻한 차로 대신했다.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배고픔인지 가벼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음식을 먹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뒷마당으로 나가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겼다. 꽃나무는 아직 꽃은 피우지 않았지만 나뭇가지마다 연둣빛이 움트고 있었다.     “쉬는 날은 나를 다시 만드는 시간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그 말이 오늘따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점심에는 집에서 가져온 된장찌개를 데워 남편의 밥상을 차렸다.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호박과 감자, 두부가 어우러진 구수한 냄새가 부엌 가득 퍼졌다.   “된장찌개, 맛있네.”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은 삶은 계란과 상추쌈으로 남편은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나는 보리차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허기보다 마음이 먼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남편이 물었다. “배 안 고파?” 그 짧은 물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말이 없는 그가 내 존재를 새삼 살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다.   일요일 새벽, 다코타가 코를 들이밀며 나를 깨웠다. 창문을 열자 맑은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레몬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잠들어 있던 몸을 깨웠다. 기운은 여전히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평안했다.   파네라에서 남편의 아침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햇살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면 금식도 끝난다.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늘 남편의 식사 시간을 맞추며 살아온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는 뜻밖의 위로였다. 사랑을 위해 내 힘 이상의 짐을 짊어지며 그것을 당연한 헌신이라 믿어왔지만, 이제는 안다. 덜해도 괜찮다는 것을.     놀랍게도 사흘 만에 체중이 4파운드나 줄어 있었다. 짐을 싸며 강아지들의 아쉬운 눈빛을 마주했다.   삶의 균형이란 소소한 날들의 작은 행복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기꺼이 누렸다.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감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식사 시간 며칠간 강아지 강아지 체이스

2025.1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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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제자의 편지

‘존경하는 김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이 글을 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옛 제자가 보낸 글을 읽는 순간, 오십여 년 전의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되감기기 시작했습니다. 내 얼굴에 지금처럼 주름이 잡히기 전, 젊음과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눈빛이 맑고 귀엽기만 했던 남학생, 아홉 살, 열 살이던 그 아이가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장년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섞인 머리와 삶의 관록이 배어 있는 모습은, 길에서 스쳤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신사의 풍모였습니다. 그도 나도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졸업 앨범을 펼쳐 들고서야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성껏 카드를 준비했고, 화분과 함께 아내가 마련했다는 유명한 한국산 화장품까지 챙겨 와 늙어가는 옛 스승을 기쁘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미 은퇴했고 며느리까지 보았다니, 머지않아 손자를 안게 될 나이라고 했습니다.   각박하고 냉랭한 세상에서 옛 스승을 찾아와 기억해 주고 대접하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격했습니다. 이 마음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워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세상에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늙은 스승을 찾아온다는 일이 과연 흔한 일일까요. 한국 신문을 펼치면 스승을 폭행했다는 학생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한국 교육 현장의 살벌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교단에 서라고 한다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학생이 두려운 세상에서 어떻게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하고 캐럴이 울려 퍼져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한 사람은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화려한 파티 초대를 받지 않아도,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이민 생활 50년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고향의 향기와 동포들의 숨결은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미국 땅에서 살며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이곳에서 자란 음식을 먹고 살면서도 끝내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나 자신이 때로는 촌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우리말을 쓰는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꿈도 우리말로 꾸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도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찾는 나는 여전히 미국 안의 이방인입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살던 옛집은 온데간데없고 서양 도시처럼 변모한 풍경 앞에서 이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옛집은 성터처럼 사라졌지만, 그곳에 깃든 향수는 여전히 나를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게 합니다.   잊고 지냈던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려 준 옛 제자에게, 그리고 그 제자의 삶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 작은 사랑 한 점이 허허로웠던 내 가슴 한복판에 ‘행복’이라는 점을 찍어 주었습니다. 김명선 / 소설가·미주문인협회 이사이아침에 제자 편지 한국산 화장품 한국 교육 한국 신문

2025.12.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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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오늘은 김장하는 날

미국 오기 전에는 솜씨 좋은 시어머님께 김치를 얻어먹었고, 이곳에 정착한 후로는 한두 포기의 김치를 대충 담가 먹거나 사다 먹곤 했다. 그래서 올해로 두 번째라는 산악회 단체 김장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은퇴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도 있지만, 김치 담그기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사 준비 과정은 작은 축제처럼 활기찼다. 재료 구매, 배추 절임, 양념 손질, 무채 썰기, 양념 만들기와 배춧속 넣기, 식사 준비까지 역할이 세세하게 나뉘었다. 단톡방에는 필요한 도구와 혼자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장화와 앞치마는 물론, 양파를 썰 때 눈물이 나지 않게 물안경을 챙기겠다는 사람, 무채 썰다 손을 다치지 않도록 목장갑을 가져온다는 사람 등 ‘저요. 저요!’ 하는 자원 열기가 대단했다. 김장을 위해 한국방문 일정을 앞당겨 온 분도 있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사 온 꽃무늬 몸뻬를 입고 나타난 남자 회원 덕분에 큰 웃음도 터졌다. 함께 모인다는 의미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꼈다.   며칠 내리던 남가주의 겨울비도 잠시 멈추고 늦가을 공기가 적당히 쌀쌀한 상쾌한 날씨였다. 누구 하나 어영부영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끝나지 않은 팀의 일을 눈치껏 도우며 서로 챙겼다. 산더미 같은 배추가 드디어 김치가 되었다. 김장은 손맛만큼이나 마음의 온기가 더해져야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치 담그기에 서툰 나는 파와 마늘을 다듬고, 생강 껍질 까는 일을 맡았다. 껍질을 두껍게 벗겼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껍질을 모아 달이면 겨울철에 제격인 생강차로 그만이라며 내 편을 들어주는 분이 있어서 민망함이 조금 가셨다. 김장에 빠질 수 없는 돼지고기 수육 맛도 일품이었다. 프라이팬에 삼겹살의 표면을 일단 구워 기름기를 뺀 후 양념과 함께 푹 삶아낸다는 비법을 배운 것도 이날의 또 다른 수확이다.   겨울 무와 배추의 시원하고 고소한 맛에 김칫속이 배춧잎 사이에 차곡차곡 스며들면, 발효를 거치며 오묘한 맛과 영양이 생긴다. 세계적으로 K-food의 인기가 높은 요즘, 김치의 우수성을 더 연구하고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김장은 ‘함께 만들고 나누는 문화’라는 공동체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음식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떠나온 고향이 떠오른다. 이번 단체 김장은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수고했어’ 하며 등을 다독여 주는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사계절 변화가 크지 않은 남가주에 살며 김장을 잊고 살았지만, 숙성된 김치를 밥상에 올리니 오래전 겨울 준비의 설렘이 생각났다. 이제 배추 절이기만 익히면 언젠가 나도 김치 한 포기 제대로 담글 수 있지 않을까. 단체 김장은 나에게 잊고 지낸 전통의 의미와 함께 ‘나도 할 수 있다’의 용기를 선물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김장 단체 김장 요즘 김치 김치 담그기

2025.12.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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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성탄,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온 순간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다. 올해도 전쟁과 재앙, 지진과 홍수, 온갖 갈등과  아픔으로 지구촌이 온통 어수선한 한해였다. 그런 중에도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탄 만은 어느 누구에게나 평화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4년 12월24일 밤, 전쟁 한복판의 참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이 서로 총을 겨누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눈은 내리고, 밤은 깊었다. 그때 독일 측 어느 참호에서 낮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느 독일군 병사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순간 양측 참호 전쟁터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이번에는 영국 측 참호에서 영어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캐럴이 트럼펫 소리와 함께 울려 나왔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측 참호에서 병사들이 총을 내려놓고 촛불과 초콜릿 같은 선물을 들고 서로에게 다가가 양측 군인들이 서로 감싸안고 성탄을 축하했다. 적어도 이날 밤만은 그들은 서로 총을 겨눈 적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었다.   비록 그 다음날부터 각기 상부의 지시로 다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게 되었지만,  분명 그날 밤만은 이 세상에 총성을 잠재우고 그 자리에 사랑이 태어난 기적의 성탄이었다.   어떻게 인종과 언어가 다른 전쟁터에서조차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이 되어 오신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마구간의 구유로 낮게 임하신 그분의 극진한 사랑 때문 아닐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2000년 전에 오신 과거의 예수 탄생이 어떻게 매년 성탄절마다 다시 이루어지느냐고 의아해 하며 반문하는 이가 많다. 성탄이 그저 하나의 명절이나 축제라는 소리다. 그런 분들에게 성탄은 단지 과거형일 뿐이다. 그러니 축제이상의 진짜 기쁨을 어떻게 맛볼 수 있겠는가!   성탄은 알고 보면, 하느님이 지금 ‘나’를 사랑하고 계심의 확고한 증거며 깨달음이다. 그렇기에 성탄은 분명한 현재형이다. 우리는 완전하지도 않고, 하느님께 나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존재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우리가 하늘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죄와 거짓의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죄인인 우리 마음속 구유 안 낮은 곳으로 직접 찾아오셨다. 그런 그분의 다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현재형 인식이며 깨우침이 성탄이다.   주님은 단 한 번 오셨지만, 나에게 오신 그분의 엄청난 이런 사랑을 적어도 매년 성탄 때라도 기억하고, 내가  찾기 전 먼저 나를 찾아오신 그분의 사랑의 실체를 깨달아 내 삶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 삶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불평에서 감사로, 불안에서 평화로, 받는 삶 대신 베푸는 삶으로 바뀌어 진리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이건 분명  내 안에 이미 와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예수 성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절망과 고뇌로 절규할 때, “나는 너의 아픔을 너와 함께 울고 있다”라고 속삭이는 마음속 하느님을 보게 된다. 이를 심령으로 깨달아 흐느끼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안에 하늘나라가 찾아 온 때문이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면, 마구간 구유 속이라 할지라도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기 때문이다. 이를 믿는 사람에게 더는 성탄은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축제가 아닌,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 하느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억제하기 힘든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 깨달음의 기쁨이 생긴다면, 이게 바로 ‘성탄’이 왜 나에게 기쁨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 아니겠는가.     Merry Christmas!!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아침에 성탄 하늘 성탄 하늘 예수 성탄 마음속 하느님

2025.12.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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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몇개 안 남은 볶은 콩

요즘 손주들의 재롱에 심심치 않다. 얼굴을 맞대고 재롱을 보기도 하지만 멀리서 사는 손주들은 카톡으로 본다. 시간이 가면서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장난기를 부리는 손녀딸이나 아직 말은 못 하지만 눈빛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놈들 모두가 귀엽다.   제 어미가 식탁에 놓아준 간식을 통통한 고사리손으로 하나씩 집어먹는 모습이 진지하다. 가만히 보니 간식이 떨어질 때쯤에는 어린 마음에도 아껴먹듯이 천천히 집어서 오랫동안 먹는 것이다. 나도 유년 시절에 그러한 기억이 있다.   지금 마트에 가면 형형색색으로 포장된 간식거리가 즐비하다. 내 어릴 적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다. 옛날 간식거리는 누룽지나 찐 감자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시장에 가서 쌀튀밥을 튀어오거나, 집에서 검은콩을 볶아 주기도 했다.     어머니가 볶은 콩을 밥그릇으로 형제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면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가 콩이 그릇 바닥에 깔리면 우리는 천천히 아껴 먹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내 볶은 콩이 먼저 떨어졌는데 다른 형제들은 여전히 먹고 있다면 매우 서운했다. 자연 콩이 떨어질 즈음에는 천천히 아껴 먹었다.   볶은 콩처럼 많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인생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인생 초반에는 한 그릇의 볶은 콩을 받고 즐겁게 먹던 아이처럼 삶의 끝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무진장으로 주어질 것 같은 인생이 정년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구의 부모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언제부터인지 시나브로 사라졌다. 대신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상을 당했다는 문자가 왔다. 가끔은 친구의 부인이 상을 당했다는 문자도 온다.   이제 12월도 끝나간다. 곧 새해 달력으로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의 동짓달이 남았을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남은 시간은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삶의 가치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에 집착하는 대신,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해 본다.     열정이 이상을 사로잡던 젊은 날에는 눈에 보이는 명성을 향해 달려갔었다. 고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참고 미루면서, 싸움터의 용사처럼 삭막하게 살아왔다.   이제는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보이는 듯하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보듬어 주고 싶다. 세상 풍파를 견디어 오면서 서로가 받았던 육신과 마음의 상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함께하는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을,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비난보다 이해의 눈으로 삶을 살고 싶다.   다가오는 새해는 나에게 몇 개 남지 않은 소중한 볶은 콩의 한 알이니까.  이효종 / 수필가이아침에 옛날 간식거리 육신과 마음 인생 초반

2025.12.2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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