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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이제는 ‘못’을 뺄 때

Los Angeles

2026.02.23 18:14 2026.02.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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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

이창민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

교회 예배당 뒷벽에 예배 인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커다란 TV를 달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화면이 작았던 모양이다. “화면이 너무 작다.” “글씨는 보이는데 악보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아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인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건설 현장에서나 쓸 법한 비계를 세우고, 사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는 큰 수고를 해서 단 TV였지만, ‘잘못 달았다’라는 판정을 받았으니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TV를 떼어내면서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지 구두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잘 보이는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돕는 이들의 눈에는 작게 보인다니 말이다. 결국 다른 곳에 달려있던 조금 더 큰 TV를 떼어다가 다시 달았다.  
 
주일 아침, 찬양팀이 예배 준비를 위해 예배당에 들어섰다. ‘새로 단 TV를 보면서 이번에는 잘 보인다고 할까? 아니면 여전히 안 보인다고 할까?’ 긴장된 마음으로 반응을 지켜보는데, 이번에는 모두가 다 잘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숨이 나왔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잘 달았구나.”  
 
그때 권숙월 시인의 시구절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잘못 한다에서 못을 빼니 잘 한다가 되었다’라는 구절이었다. 시인은 이어서 ‘잘못 먹었다에서 못을 빼면 잘 먹었다 잘못 살았다에서 못을 빼면 잘 살았다’가 된다면서, ‘못’을 빼면 뜻이 뒤바뀐다고 했다. 문장에서 ‘못’을 빼면 꾸중은 칭찬이 되고, 부정은 긍정이 되는 것처럼, 삶에 박힌 ‘못’을 빼면 인생이 달리 해석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TV도 ‘잘못 달았다’에서 ‘못’ 하나만 빼면 ‘잘 달았다’라는 말이 되는데, 우리는 그 ‘못’ 하나 빼는 데 무척 인색하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잘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운동도 잘하고, 음식도 잘 먹고, 인간관계도 잘 맺고, 일도 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겨우 두 달쯤 지났을 뿐인데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이 더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두 달 사이에도 이토록 잘못한 일이 많은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했다고 여겨온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삶이 어려울 때마다 이민을 잘못 왔다고 생각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사람을 잘못 만났고, 때를 잘못 탔다고 투덜거리다 보니 그 ‘못’들은 후회와 상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인생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녹슬고 구부러져 이제는 쉽게 빠지지도 않는 ‘못’들이 자책과 비교의 잣대가 되어 우리의 인생을 ‘잘못 살았다’라고 단정 짓게 했다.  
 
그렇다고 그 ‘못’들을 우리가 일부러 박은 것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치 보며 버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흔적들이다. 잘살아 보겠다고 선택한 이민자의 삶이 ‘못’ 하나 때문에 잘못 살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이제는 그 ‘못’을 뺄 때다. ‘잘못 선택했다’가 아니라 ‘그때는 잘한 선택이었다’로, ‘잘못 살아왔다’가 아니라,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로. 아직도 우리 삶에는 ‘못’을 빼고 나면 남게 될 ‘잘’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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