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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추억이 머무는 동네, 옥인동 일기

Los Angeles

2026.05.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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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련 수필가

김규련 수필가

3년 만에 서울을 다시 찾았다. 서울은 정말 변화무쌍한 도시다. 경복궁 앞은 한국인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더 활발하게 거리를 누비고, 세종대왕 동상 앞 대형 스크린에는 입체감이 넘치는 영상이 매 순간 돌아가며 첨단 도시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는 마치 촌사람이 된 듯 어리둥절해져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을버스에서 내려 전철역 출구를 찾아 헤맨다.
 
다행히 내가 머문 종로구 옥인동과 필운대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청와대 인근이라 건물을 4층까지만 지어야 하는 법적 규제가 있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고층 아파트 대신, 빨간 벽돌로 지어진 4층 빌라들이 서로의 앞마당을 마주하며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는 3년 전과 이번 방문을 합쳐 이곳에서 3주 정도 생활했다. 참 재미있는 동네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이 숨어 있다. 커피숍, 빵집, 파스타와 피자 전문점, 설렁탕집까지.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싶지만, 늘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침 7시쯤 골목을 나서면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절로 군침을 돌게 한다. 그 작은 빵집들은 앉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 어떤 집은 가게 앞에 작고 귀여운 의자 몇 개를 내놓았는데, 마치 유럽의 노천카페를 모방한 듯하면서도 정겹다. 그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 동네는 50~60년 된 한옥들이 여전히 그 자태를 지키고 있고, 대를 이어 사는 사람도 많다.  
 
나는 장충동과 마포 공덕동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왔다. 가끔 옛 동네를 가보면  높은 아파트들이 어릴 적 추억을 모두 뽑아버린 것 같아 씁쓸했는데, 그런 면에서 옥인동 주민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 같다.
 
골목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마트와 약국, ‘머리깎기’라는 정겨운 간판의 미용실, ‘라 블루’라는 빵집, 그리고 ‘이태리총각’이라는 파스타 집이 있다. 특히 그곳의 파스타와 피자는 미국의 어느 맛집보다 훌륭하다.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나만의 맛집 명단 1순위다.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어느 오후, 남편과 시청 앞 마을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였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걷고 있던 젊은 여성이 선뜻 길을 안내해 주었다. 따라가는 내게 아이가 갑자기 먹던 과자를 쑥 내밀었다. 무지개색 꽈배기 모양의 마시멜로였다. 남편은 사양했지만, 나는 고마운 마음에 한 입 베어 물고 정말 맛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한번은 온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옆자리의 여성이 발바닥을 닦고 있던 도구가 좋아 보여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자, 그녀는 자기가 쓰던 것을 선뜻 건네며 미국 가져가서 쓰라고 주었다. 또 오른쪽에서 머리를 감던 여성은 내게 샴푸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순간 뭉클한 동포애가 느껴지며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미국 생활 중에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정’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서울이 너무 그리워 아예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반대하는 남편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다시금 크게 동요한다.
 
미국과 한국,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서울 골목골목에서 느낀 이 뜨거운 ‘정’만큼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다.

김규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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