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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시(詩)를 쓰다

New York

2025.06.1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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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드라마 ‘폭싹속았수다’를 보았다. 속았다는 말은 ‘속임을 당했다’는 말이 아니란다. 제주도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애순이는 문학소녀였다. 소학교 때, 학교에서 시를 잘 썼다고 해서 상을 받았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상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엄마는 칭찬은커녕, 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엄마는, 바닷물 깊숙이 들어가서 물질한다. 따온 전복을 손질하는데 바빴다.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 시는, 먹고 사는 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되는가 보다.  
 
애순: “딸내미가 시를 써서 상을 탔다는 데도 전복만 쳐다봐!”
 
엄마: “시를 왜 써, 시를 쓰면 전복이 나오나 구제기(소라)가 나오나?”
 
엄마에게 있어서 시는 사치(奢侈)인 것이다. 아니, 시는 오히려 가난한 삶을 더 가난하게 해주는 요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순이는, 서울 남자 만나 결혼해서, 대학에 가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었다.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은 아주 가난했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애순이는 시 공부를 포기했다. 제주도 남자하고 결혼했다.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남편을 도와 열심히 일했다. 고생고생하면서도 삶은 서서히 좋아졌다.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도 죽었다. 혼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딸이 그녀의 시를 모아서 ‘푹 속았수다’라는 시집을 출판해주었다.  
 
할머니 애순이는 신문사나 혹은 문학지를 통해서 시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시집 한 권 발간함으로써 저절로 시인이 되었다. 여러 탁상을 들판에 갖다 놓았다. 마을 노인들을 모이게 했다. 한글도 가르치고 시를 쓰도록 지도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시인 선생이라고 불렀다.
 
할머니 애순이는 말한다.  
 
“마음에 담아준 말 있잖아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쓰면 그게 시지요.”
 
그러면서 노인들에게, 마음에 담아준 말을 그냥 그대로 쓰라고 알려주었다. 이때 정공례 할머니는 “어제는 사위하고 식당에 갔다. 나 먹을 거 나가 시켰다. 너(애순) 덕이다”하고 말하고는 시 한 편을 썼다. 제목은 ‘까막눈이’다.
 
물질현다 학교 못 가 나 평생 챙피하였다/ 메뉴 피고 뭐 시킬래 물으면/ 가심 철렁 하였다/ 그런데 어제는 나 먹을 거 내가 시켰다/ 특초밥 시켰다/ 꿀거치 맛났다.
 
나도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시모임에는 15여명의 회원이 있다. 새로 들어온 회원을 지도해줄 수 있는 애순이 할머니가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시 형식으로 쓰라”고 일러주는 할머니 말이다.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좋은 생각을 얼른 종이에 적어놓으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말이다. 한번 떠오른 생각을 즉시 잡아놓지 않으면, 그 생각은 없어진다. 한번 없어지면, 그 생각을 다시 찾아내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좋은 시는 써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좋은 시를 쓰려고 하다가 오히려 좌절만 당한다. 그냥 시를 쓰기만 하면 된다. 몇 개월 몇 년, 한참 쓰다 보면 저절로 좋은 시가 써지는 것이다. 시가 잘 안 써질 때는 고통스럽다. 그러다가 한 편의 시가 써지면 엄청 기쁘다.  
 
시를 쓰는 것은 두뇌를 활성화해 치매 예방에도 좋다. 시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 외로움도 없어진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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