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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라부부 신드롬’의 그림자

Los Angeles

2025.06.22 19:04 2025.06.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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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훈식 경제부 기자

우훈식 경제부 기자

토끼 귀에 큰 눈, 드러난 이빨과 복슬복슬한 인형 옷을 입은 캐릭터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라부부(labubu)’는 지난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만든 캐릭터로, 2019년 중국 피규어 기업 ‘팝마트(Pop Mart)’가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었다. 이후 라부부는 랜덤박스 형태로 판매되며 ‘뽑기’의 재미와 소장욕을 자극해 순식간에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저 하나의 귀여운 인형 아닌가’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라부부는 단순한 장난감 피규어가 아닌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함축하고 있다.
 
라부부는 최근 블랙핑크 리사, 리한나 등 셀럽들이 자신의 가방에 액세서리로 착용하면서 한순간에 인기가 확산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에는 언박싱 영상과 인증샷이 넘쳐난다. ‘#labubu’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틱톡 영상은 수백만 건을 기록하며 콘텐츠 자체로 소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라부부는 스톡엑스 같은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거래액이 나날이 폭증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일부 한정판은 정가의 20~30배가 넘는 웃돈이 붙기도 한다.
 
라부부의 흥행은 고물가 시대 속 ‘스몰 럭서리(small luxury)’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스몰 럭서리는 경제가 하강하면서 명품백 같은 거액 소비는 줄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에선 사치를 아끼지 않는 소비 형태를 말한다.
 
라부부는 20달러대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나만의 희소성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소비 심리를 정조준했다. 이들은 비싼 명품 하나 대신 귀엽고 한정판인 피규어 하나로 자존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젊은 세대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도 인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언박싱과 리셀, ‘득템’ 콘텐츠는 재미를 주며 젊은 소비자들을 만족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유행의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우선 충동소비를 부추기는 ‘랜덤 박스’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해 개봉하기 전 어떤 제품을 받을지 알 수 없고, 결과에 따라 실망하거나 중복 구매를 반복하게 된다. 6개 한정 시리즈 중에서도 특정 제품은 거래가치가 더 높은 등 ‘합법적인 도박’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특히 어린 소비자까지 겨냥하면서 사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라부부는 다른 유행과 비교해 더 빠르고 훨씬 더 큰 규모로 인기가 확산했다. 이에 업계 다수의 수집가는 다른 수집품처럼 5년, 10년 뒤에도 인기가 있고 가격이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작아 투자로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라부부는 정확한 세계관이나 브랜드 철학보다는 밈과 바이럴에 의존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한순간에 반짝하고 사라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비슷한 흐름은 반복돼 왔다. 단기간 화제를 모았던 젠틀몬스터, 헤일리 스무디, 트레이더조 토트백 등은 ‘핫템’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기가 사그라졌다. 유행은 점점 더 빨리 타오르고, 더 빨리 식는다. 흥미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과도한 소비, 새로운 자극에 대한 중독, 정체성 대신 주목받기 위한 선택은 소비자에게 피로와 공허함을 남길 뿐이다.
 
친환경 흐름과 역행하는 과잉 포장, 저작권이나 문화 희화화 논란도 있다. 검증 없는 유행 추종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지를 좁히고,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무책임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라부부는 그저 귀엽고 웃긴 캐릭터가 아닌 현재 소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떻게 유행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적어도 지금은 유행을 소비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그 유행을 ‘왜’ 소비하는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묻는 태도를 갖추고 현명한 소비를 지향해야 할 시기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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