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판매용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콘셉트카(concept car)’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차들이 무대 위를 장식할 때, 관객들은 단순히 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엿보는 듯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콘셉트카가 실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왜 제조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는 콘셉트카를 꾸준히 선보이는 걸까. 콘셉트카는 일종의 ‘미래 선언문’이다. 실제로 양산되지 않더라도, 해당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어떤 기술을 차에 녹여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차의 ‘N 비전 74’ 의 경우, 수소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라는 실험적 개념을 통해 미래 친환경차 시대에도 브랜드가 퍼포먼스 DNA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CES나 모터쇼에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기반의 UX를 강조한 콘셉트카를 내놓으며, 기술력을 과시하고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의 관심을 끌어냈다. 콘셉트카는 ‘연구실 밖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양산 모델에서는 비용·안전·규제라는 벽에 부딪히지만, 콘셉트카에서는 자유롭게 디자인 언어와 기술을 실험할 수 있다. BMW가 최근 공개한 ‘i 비전 디’ 콘셉트카는 외부 패널 색상이 전자잉크처럼 바뀌는 기술을 담았다. 아직 상용화 단계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런 과감한 시도는 결국 소재 연구와 인터페이스 혁신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사회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에서 콘셉트카는 첫 단계다. 또 콘셉트카는 브랜드 마케팅 무기다. 자동차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현재, 제조사들은 단순히 차를 파는 것을 넘어 미래를 파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이라는 격변의 시대에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미래를 각인시키는 데 콘셉트카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다. 특히 SNS와 유튜브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과감한 디자인이 전 세계적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최근 디트로이트 오토쇼와 IAA 모빌리티, CES를 살펴보면 이런 흐름이 분명하다. 복스왜건은 보급형 전기 SUV 콘셉 ‘ID.크로스’를 공개하며 가격 경쟁에 초점을 맞췄고, 아우디는 ‘콘셉트 C’를 통해 TT와 R8을 잇는 전동화 스포츠카 비전을 내놨다. 벤틀리는 ‘EXP 15’에서 1930년대 헤리티지를 미래 전기차에 녹여냈다. 즉 콘셉트카는 각 브랜드가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방식”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콘셉트카는 결국 쇼 카(show car)”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실제 양산차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 실험들은 곳곳에서 현실화된다. 현대차 아이오닉 5의 파격적인 직선 디자인은 사실 과거 ‘45’ 콘셉트에서 먼저 선보였고, 테슬라 사이버트럭도 원래는 실험적 디자인 스터디에 불과했다. 콘셉트카는 현재와 미래를 잇고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동차 산업은 지금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 있다. 전기차 전환은 속도가 조절되고, 규제는 완화와 강화 사이를 오가며, 소비자는 여전히 가격에 민감하다. 이런 시기에 콘셉트카는 오히려 중요한 나침반일 수 있다. 기업이 어디로 가려 하는지, 기술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디자인이 어떤 트렌드를 겨냥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모터쇼 무대 위의 콘셉트카를 볼 때마다 단순히 멋있다고 감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차가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도로 위를 달릴까”를 상상한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담는 도화지다. 그 초안을 가장 대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콘셉트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콘셉트카 concept concept car 디자인 언어 브랜드 마케팅
2025.09.14. 18:33
지난 1월, 아빠가 됐다. 이제 7개월된 예쁜 딸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2025년생인 아이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인공지능(AI) 네이티브 세대’가 됐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인공지능은 공기처럼 존재할 것이고, 아이는 그것을 당연한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자라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PC를 사용하면서 자랐고 성인이 돼서는 모바일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어떤 ‘혁신’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사회 전반에 변화를 몰고 올 AI 시대가 되니 부모인 나는 아이가 어떻게 적응할지 벌써 고민이 깊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상당수의 대학은 강경하게 금지한다. 실제로 조지타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학생들이 과제에 챗지피티 같은 AI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첫 위반은 0점을 주고, 두 번째는 아예 낙제를 시키며 학문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면 플로리다 대학교는 아예 교양과정에 AI 수업을 포함해 모든 학생이 관련 과목을 이수하면 ‘AI 수료증’을 주는 제도를 운용한다. 한쪽에서는 위험하다며 막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를 대비한다며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이 과제를 고치거나 보완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AI에게 과제 전체를 맡긴다는 답변도 15%에 달했다. 교육의 방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자리 전망은 더 불안하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2022년 말 이후 20세 초중반 사회초년생들의 경력을 추적한 결과, AI 노출이 높은 직업군은 고용이 13%나 줄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경우 무려 20%가 감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AI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최대 3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다소 균형 잡힌 전망을 했지만, 그래도 약 9200만 개의 직업은 없어지고 1억7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최근 멜라니아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AI 챌린지’를 출범시켰다. 구글, 오픈AI, IBM 같은 기술 기업들과 손잡고 미국 전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AI 활용 프로젝트를 공모하는 대회다. 올해 12월까지 참가 신청을 받아 내년 봄 지역대회를 거쳐 백악관 결선 무대에서 우승팀을 뽑고, 상금 1만 달러까지 주겠다고 한다. 학교 현장에 AI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부모 입장에서 더 고민되는 지점은 세대 간 격차다. 삼성전자가 여론조사 기업 모닝컨설트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88%는 “아이의 미래 교육과 직업에서 AI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81%는 학교 수업에 AI가 포함돼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뜻이다. UN 산하 연구기관인 UNICRI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AI 문해력 차이를 줄이기 위해 “소통하고, 배우고, 설명하라”는 3단계 원칙을 제시했다. 부모가 먼저 배우고 경험해야 아이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등장 이후 태어난 모든 아이는 앞으로 AI와 함께 호흡할 것이다. 문제는 부모 세대가 아이의 앞길을 안내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 답을 찾으려면 부모 세대가 먼저 AI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용기를 내야 한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자녀 교육 최근 교육 초중반 사회초년생들 조지타운 대학
2025.09.09. 18:25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는 여름 내내 전 세계 대중문화를 흔든 작품이다. 세 명의 K팝 아이돌이 악귀와 싸운다는 기발한 설정은 넷플릭스를 타고 순식간에 ‘전 지구적 현상’으로 번졌다. 공개 7주째에도 스트리밍 1위를 지키며 누적 시청 수 2억 건에 육박했고,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3일과 24일 전국 1700개 극장에서 상영된 ‘싱어롱’ 버전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단 이틀간 약 1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지난 2022년 넷플릭스가 일주일간 상영한 영화 ‘글래스 어니언’의 흥행 실적(1500만 달러)을 단숨에 넘어선 기록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지난 2021년 팬데믹 시기 넷플릭스와 ‘직행 딜’을 체결했다. 제작비 1억 달러를 보전받고 25% 프리미엄을 받되 상한은 2000만 달러라는 조건이었다. 결국 소니가 거둔 성과는 제작비 1억 달러 회수에 더해진 2000만 달러 프리미엄, 총 1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 반대로 넷플릭스는 약 1억2000만 달러와 자체 마케팅 비용만 투입했을 뿐, 이후 성과는 모두 독점했다. 2억 회에 달하는 스트리밍, 7주 연속 글로벌 1위, 빌보드 차트 정상, 단 이틀간 1800만 달러 극장 수익까지 모두 넷플릭스의 자산이 됐다. 여기에 로튼토마토의 97%라는 평단의 호평까지 겹치며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소니는 ‘안전한 거래’로 제한된 이익에 그쳤지만, 넷플릭스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황금알을 거머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대박을 예고한 작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K팝, 애니메이션, 한국적 퇴마 설정이 섞인 기획은 업계 시각으로는 애매하고 실험적인 조합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공개 직후 반응이 더뎠지만, 틱톡 챌린지와 커버 영상, 팬아트 등 팬덤의 자발적 참여가 확산하면서 5주 차에 시청률이 치솟는 ‘역주행’이 벌어졌다. 결국 대규모 광고보다 팬덤이 만들어낸 바이럴이 흥행의 핵심 동력이었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 평가다. 만약 실패했다면 넷플릭스는 막대한 제작비를 떠안은 패자가 되고, 소니는 손실을 피한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 사례는 리스크와 보상이 결과에 따라 어떻게 극적으로 갈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의 성공 방식은 단순히 자본력이나 플랫폼 규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전문가 눈에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흥행성이 낮아 보이는 작품에도 과감히 투자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오징어게임이 그랬듯, 케데헌 역시 업계 통념으로는 위험 부담이 큰 기획처럼 보였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선택했고, 그 모험은 글로벌 현상으로 이어졌다. 또 넷플릭스는 작품을 단발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리즈화, 관련 상품, 콘서트 이벤트 같은 파생 사업까지 염두에 두며 장기적으로 키운다. 케데헌도 이미 후속편과 스핀오프 논의가 거론되고 있고, 음악과 극장 이벤트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위험을 피하지 않고 창작자의 창의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장기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이것이 넷플릭스식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진짜 힘이다. 결국 케데헌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위험을 감수한 자만이 보상을 독점한다는 냉정한 법칙, 그리고 예상치 못 한 요소가 산업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승자 패자 소니 픽처스 k팝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1위
2025.08.25. 18:19
가주 연방 하원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가주 의회 양원은 지난 21일 압도적인 표차로 선거구 획정을 최종 결정짓기 위한 주민투표안을 통과시켰고, 개빈 뉴섬 주지사는 곧바로 서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4일 유권자들은 선거구 획정 여부를 직접 결정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를 정치적 승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공정성의 모델’이라던 가주의 자부심을 집권세력이 스스로 걷어찬 순간이었다. 민주당이 내세운 명분은 단순하다. 텍사스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 가주 역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주의 일방적 행동에 또 다른 주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법치와 절차는 ‘눈에는 눈’의 흥정거리가 아니다. 또 정치란 결국 주민을 위한 것인데, 이 결정에는 주민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파괴다. 가주는 지난 2010년부터 독립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담당해왔다. 이는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닌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정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뉴섬 주지사와 민주당 다수 의회는 헌법까지 비틀어가며 자신들의 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위험한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절차는 ‘속전속결’이었다. 원래는 지난 22일 표결이 예상됐지만, 민주당은 15일 획정안을 발표한 지 불과 6일 만에 의회 표결을 강행했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발언권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토론과 견제를 무시한 처사다. 정책적 효과도 노골적이다. 뉴섬 주지사가 공개한 획정안은 공화당 현역 5명을 ‘더 푸른’ 지역으로 몰아넣고, 민주당 경합 지역 세 곳을 더 푸르게 만든다.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구’라는 원칙 대신 ‘상대가 5석 가져가면 우리도 5석’이라는 등가교환 논리가 기준이 됐다. 유권자의 목소리는 지역사회 대표성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획정안은 공동체 결속과 생활권을 자르는 ‘정치적 메스’가 됐다. 경제적 부담도 가볍지 않다. 주민투표 예상 비용만 2억35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고스란히 주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경기 회복, 치안 강화, 주택난 등 산적한 현안과 재정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보복 청구서를 얹는 모양새다. 정책 우선순위가 권력 연장보다 뒤에 있는가, 앞에 있는가. 그 질문에서 뉴섬 주지사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무차별적 이민 단속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을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해법은 더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묶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도 하니 우리도 한다”는 보복과 독단 정치가 아니라, “우리는 달라야 한다”는 규범 정치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순간, 주민들의 삶은 정쟁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정치는 성숙한 절제와 책임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론은 간명하다. 유권자는 ‘맞불’이 아니라 ‘원칙’에 표를 던져야 한다. 독립위원회 기능을 멈추고 색깔 지도에 도장 찍는 순간, 가주는 스스로 자랑하던 공정성 모델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오는 11월 4일, 선택은 하나다. 권력을 위한 선거구 지도를 고르는가, 원칙을 위한 지도를 되찾을 것인가.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독단과 선거구 선거구 획정 하원 선거구 정치적 보복
2025.08.24. 17:12
조지 레무스는 1876년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약국에서 일하며 성장한 그는 약대를 졸업해 약사로 일을 했다. 이어 법대를 졸업해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1920년 금주법 시행이었다. 금주법에 따라서 모든 술은 판매할 수 없게 됐지만 의학용 알코올은 예외였다. 레무스는 약사와 변호사로서의 지식을 결합해 이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보건용 위스키' 판매 면허를 확보한 뒤 합법적으로 대량 구매한 주류를 빼돌려 암시장에서 팔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증류소와 유통망을 직접 장악해 생산부터 판매까지 통제했다. 그 결과 그는 3년간 40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벌었다. 현대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다. 그에게는 밀주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렇게 하루 아침에 부호가 된 그는 전설적인 파티로도 이름을 알렸다. 한 신년 파티에서는 여성 손님 모두에게 새 자동차를, 남성 손님에겐 금시계를 선물했다. 그의 파티에 초대받는 것만으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캐릭터 개츠비가 조지 레무스를 모델로 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을 정도다. 물론 그의 이런 향락과 사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금주법 위반 수사가 시작되면서 연방 법무부는 비밀요원 프랭클린 도지를 투입했다. 도지는 탈세 혐의로 레무스가 수감돼 있는 감옥에 잠입해 그의 신뢰를 얻었으며 이를 통해서 그가 은닉한 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심지어 도지는 수사 과정에서 레무스의 아내 이모진과 깊은 관계가 됐다. 둘은 레무스가 수감 중인 사이 그의 재산을 처분했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 레무스가 손에 쥔 것은 고작 100달러였다. 1927년 10월, 출소한 레무스는 부인이 제기한 이혼소송 재판때문에 신시내티 에덴파크의 법정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부인이 탄 차를 발견했다. 부인의 차량에 따라붙었고 부인을 강제로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인을 총격 살해했다. 의붓딸도 이를 목격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재판에서 그는 부인의 배신, 재산 강탈, 암살 기도 등을 주장하며 '일시적 광기'를 내세웠다.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후 그는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누군가 소설로 쓴다면 '너무 극적이다'라고 말할 만한 그의 인생은 버번 위스키 브랜드로 오늘 날 다시 살아났다. 한 증류소가 그의 이름을 사용한 버번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금주법 시대의 전설적인 부호이자 범법자, 배신과 살인의 이야기까지 담긴 이 이름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다. 심지어 금주법이 해제된 날을 기념해서 매년 새로운 버전의 위스키를 내놓고 있으며 최근에는 '개츠비'라는 이름을 단 위스키도 발매하면서 위스키 매니아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브랜딩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강렬한 이야기는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이야기를 기억한 소비자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실 때, 그들은 개츠비의 파티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위스키를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을 무의식 중에 받게 된다. 고객들을 매혹할 이야기라면 100년 전의 범법자도 기꺼이 이름을 빌려와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라도 브랜딩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냉혹한 비즈니스 환경이기 때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밀주의 위스키 버번 위스키 보건용 위스키 금주법 위반
2025.08.19. 17:27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집권 이후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하다. 민간 자본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규제를 풀어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에 포함된 지역 간 개발 격차를 줄이는 기회특구(Opportunity Zone) 2.0 프로그램이 그 사례 중 하나다. 2017년 도입된 1차 프로그램의 한시적 구조를 상시 운영으로 바꾸고, 농촌과 저개발 지역에 대한 혜택을 크게 늘렸다. 5년 보유 시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가(basis) 10% 인상, 농촌은 30%라는 파격 조건, 개량 요건 완화까지 덧붙여 자본 유입 장벽을 낮췄다. 새로 지정된 구역과 새 규칙을 포함한 2.0 프로그램은 오는 2027년 투자 접수를 시작할 계획이다. 여기에 저소득층 주택 세액공제(LIHTC) 확대가 합세한다. LIHTC는 민간 개발자가 저소득층 주택을 개발할 때 제공하는 감세 혜택이다. 경쟁 심사로 한정된 9% 세액공제 발급량을 매년 12%씩 무기한 늘리고, 4% 세액공제 혜택의 채권 조달 요건을 절반에서 25%로 완화했다. 가주만 해도 매년 약 2만 채의 저소득 임대주택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건설비 상승과 자금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서 실제 성과는 절반에 그칠 수 있다는 냉정한 전망도 있다. 연방 토지를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구상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선거 때부터 추진해 온 주택난 타개책이다. 행정부는 ‘프리덤 시티’라는 이름으로 연방 소유지를 개방해 새로운 도시와 대규모 주택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환경·용도 규제를 완화하고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민간 개발 참여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인프라 확충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고난도의 과제지만, 시장 친화적인 트럼프식 해법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단, 개발 가능한 토지의 상당수가 서부에 몰려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모든 흐름은 주택 공급 확대라는 하나의 목표로 맞물려 있다. 공공 재정 의존도를 줄이고 민간의 힘을 빌려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은 당장의 물량 부족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속도만으로는 주거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양적으로만 치중한 정책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위험이 크다. 특히 주택도시개발부(HUD) 예산 약 44% 삭감과 수천 명의 인력 감축 계획, 공정 주택 프로그램 축소는 주택 공급이 확대돼도 차별 조사와 임대 보조 등 취약 계층 지원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회특구와 세제 혜택이 투자 매력도가 높은 지역에 집중되면, 인프라와 수익성이 낮은 지역은 여전히 방치될 가능성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래 주민들이 밀려나고 지역 커뮤니티가 해체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연방 토지 개발은 환경 훼손 논란과 더불어 교통, 상·하수도, 에너지 공급 등 기반시설 확충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세제 인센티브와 규제 완화 중심의 공급 정책은 경기 변동이나 행정부 교체에 따라 방향이 급변할 수 있어 장기적인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필요한 건 균형이다. 세제 인센티브와 토지 활용이 단기 물량 확대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환경, 장기 주거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주택의 양적 확대와 함께 접근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전략이 마련될 때, 즉 속도와 안정성이 함께할 때 트럼프 2기의 부동산 정책이 비로소 해법으로 기록될 수 있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주택난 해법 트럼프식 해법 공급 속도 저소득층 주택
2025.08.17. 19:00
시카고가 갖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 중 하나는 전국에서 가장 쥐가 들끓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이는 방역 전문 업체가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를 통해 매년 발표되고 있는데 그만큼 시카고가 위생적으로 낙후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도시의 고유한 특성도 자리 잡고 있다. 일단 전국에서 가장 쥐가 많은 도시로 선정되었다는 조사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역 전문 업체인 오킨스사는 지난 10년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데 매년 시카고가 가장 많은 방역 의뢰 건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쥐가 박테리아를 지니고 있어 ‘렙토스파라증(leptospirosis)’과 같은 질병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병은 감기와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장기 손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대할 수는 없다. 쥐는 또 정신 건강에도 이롭지 못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일 쥐를 본 사람들의 경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다섯 배나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카고는 왜 이렇게 쥐가 많은 걸까. 전체 거주 인구 수로 따지면 뉴욕이나 LA에 더 많은 쥐가 서식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에 대한 원인은 시카고의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시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뒷골목(alleys)을 꼽는다. 시카고의 전형적인 주택가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뒷골목은 쥐들에 최적의 서식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쥐들이 사람과 차량 운행이 빈번한 집 앞 길 대신 뒷골목에 쉽게 숨을 수 있고 새끼를 낳고 기를 수 있으며 골목마다 놓은 쓰레기통에서 먹이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 서버브로만 나와도 시내와 같은 네트워크식으로 짜인 뒷골목이 없어 쥐들의 서식 환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내 3대 대도시로 많은 주민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 환경 역시 쥐들이 번식하기 좋은 편이다. 특히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쥐들이 쓰레기통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살기에 용이하다. 쓰레기 봉투를 제대로 묶지 않고 남은 음식물이 쓰레기통 밖으로 나오게 되면 쥐들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건축적인 특징도 시카고에 많은 쥐들이 서식하기 용이한 환경을 제공한다. 현대 건축의 도시인 시카고는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서도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이후 시카고의 주요 건축물들이 들어섰는데 이 건물들은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많은 틈새를 보이면서 쥐들이 이동하는 루트로 활용된다. 또 나무로 된 포치와 상하수도관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인해 쥐들이 쉽게 주택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아울러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기존에 서식하던 쥐들이 다른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로 이동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시카고에 서식하는 쥐의 종류 역시 번식에 능해 개체수 확장이 쉽다. 노르웨이 쥐가 대표적인 시카고 서식종인데 이 쥐는 1년에 10마리 이상의 새끼를 친다. 이로 인해 쥐의 개체수를 조절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시카고의 날씨 역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쥐들은 고온다습한 여름이나 혹독한 추위에도 건물 내부로 피하려는 습성을 보이기 때문에 인간들과 마주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시카고에 다른 도시보다 많은 쥐가 서식하고 있으며 사람들 눈에 자주 띄어 방역 건수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최근에는 다양한 시도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새끼를 낳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기존 쥐 퇴치에는 쥐약을 뿌려 개체수를 줄이는 방안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새끼를 치지 못하게 하는 약물이 도입되기도 했다. 특정 약물이 들어간 작은 소시지 모양의 미끼를 쥐들이 지나가는 경로에 둬 이를 먹게 하면 이 약물로 인해 쥐들은 약 6개월간 새끼를 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기존의 쥐약에 비해 환경적으로도 안정적이다. 일반 쥐약의 경우 다른 조류나 동물들이 먹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생태계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시카고 시내에서 발견된 모든 래쿤과 스컹크의 체내에서 쥐약 성분이 발견될 정도로 쥐가 아닌 다른 동물이 쥐약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노력이 얼마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년 새 시카고 시청 민원 전화 311을 통해 접수된 쥐 방역 민원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시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접수된 쥐 방역 민원 건수는 6만5897건이었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22년 5만201건, 2023년 4만8647건, 2024년 4만5732건으로 집계됐다. 이 통계로 정확한 쥐 개체수 확인은 어렵지만 그만큼 쥐의 서식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시카고 주민들이 줄어들고 있음은 추정할 수 있다. 쥐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이 접수된 곳은 웨스트 타운으로 2019년부터 5년간 총 1만6180건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한인 밀집지역인 알바니파크와 포레스트 글렌, 노스 파크 지역은 1000건에서 4000건 사이로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시카고 시청 역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8000만달러 이상을 쥐 방역 프로그램에 투자하며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있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전쟁 방역 시카고 대화재 방역 건수 방역 전문
2025.07.29. 18:24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뜻밖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이후 2주 만에 3300만 회 이상 시청됐고, 5주 연속 시청률이 오르며 넷플릭스 사상 ‘개봉 5주차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누적 시청 수는 이미 1억을 넘겼으며, 영화 속 캐릭터들이 부른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1위, Spotify 미국 차트에서는 여성 K팝 그룹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놀라운 건, 이 작품에 실존 아이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대에 서는 건 애니메이션 캐릭터지만, 팬들은 이들을 현실의 아이돌처럼 응원하고, 노래를 반복해 듣는다. SNS에는 커버 영상과 팬아트가 이어지고, 캐릭터별 팬클럽 이름과 팬 계정까지 생겨났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 그룹이 어떻게 이런 열광적 반응을 끌어낸 걸까. 이 작품은 단순한 뮤직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음악이 이야기의 중심이고, 감정을 끌어올리는 동력이다. 주인공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이자 동시에 악령과 싸우는 헌터로, 공연 장면은 플롯 전개의 핵심 장치이자 전투 수단으로 작용한다. 곡마다 캐릭터의 감정과 갈등이 폭발하며, 서사와 퍼포먼스,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이 구조는 K팝이 수년간 쌓아온 감정 설계 방식과 정밀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K팝 업계 최정상 프로듀서들과 협업했다. 블랙핑크의 테디, BTS와 작업한 린드그렌 등이 참여한 덕분에, 영화 속 음악은 실제 K팝 시장에서도 통할만 한 중독성과 완성도를 갖췄다. 팬들은 이 캐릭터들을 현실 아이돌처럼 좋아하게 됐다. 실제로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200과 글로벌 익스클루시브 US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남성 그룹 ‘Saja Boys’의 ‘Your Idol’도 Spotify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영화 OST 전체는 빌보드 200 차트 3위로 데뷔해, 올해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K팝의 성공에는 ‘누가 부르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잘생긴 아이돌, 칼군무, 팬덤 시스템 등 인물 중심의 산업 구조가 K팝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실존 인물 없이도 감정이 진짜처럼 전달되면, 그것도 K팝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K팝의 본질은 ‘완벽한 연출’에 있다. 음악, 서사, 감정, 캐릭터, 팬과의 관계까지 모든 요소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하나의 몰입 경험을 만든다. K팝은 단지 노래를 듣는 콘텐츠가 아니라, 무대·서사·세계관·소통이 결합된 총체적 예술이다. 이 감정의 연출력이야말로 K팝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한 곡의 여운이 단지 “좋은 노래였다”가 아니라 “이 캐릭터를 더 알고 싶다”는 감정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이미 K팝의 방식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 감정 설계 방식을 누구보다 정밀하게 구현해냈다. 실존 인물이 없어도, 노래에 감정이 담기고, 팬이 그 안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곧 K팝이다. 이 현상이 단지 애니메이션 하나의 이례적 성공일까. 그렇지 않다. 하이브 아메리카와 파라마운트는 실사 K팝 영화를 준비 중이고, 디즈니·넷플릭스·아마존도 K팝 기반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K팝은 이제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글로벌 감정 연출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감정의 밀도와 팬과의 교감을 설계하는 감각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K팝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정밀하게 다루는 연출력에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데몬 공식 애니메이션 캐릭터 케이팝 데몬 감정 설계
2025.07.27. 18:42
4000달러.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콜로라도주 애스펀에서 열린 애스펀 안보 포럼 입장권 가격이다. 4일간 현장 취재를 위해 참석했다.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만 듣는 자리의 참가비로 수천 달러를 내야한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4000달러는 결코 비싸지 않다. 지난해 11월 주미한국대사관은 4만 달러에 로비업체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와 2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전략 컨설팅, 공보, 정부 관계자 접촉 등을 대행하기 위한 계약이었다. 금액만 놓고 보면, 포럼 참가비는 로비 계약의 10분의 1 수준이다. 물론 4일짜리 포럼 입장권 가격과 2개월짜리 계약금을 숫자만 두고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더 경제적이다. 그러나 애스펀 안보 포럼이 제공하는 ‘현장 외교’ 기회를 고려하면, 이 4일짜리 포럼 참가가 훨씬 가성비 있는 대미 외교 투자일 수 있다. 국제 안보 현안을 다루는 애스펀 안보 포럼은 크게 두 가지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는 세계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 인사이트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식사하고, 대화하며 자연스레 네트워킹할 기회다. 참석자 대부분은 쟁쟁한 전문가들이지만 현장에는 의전도, 수행원도 없었다. 로키산맥에 둘러싸인 리조트에서 전·현직 장·차관, 군 장성, 기업인, 대학교수, 언론인 등 수백 명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포럼 참가자는 누구든 ‘이름표 하나’만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일례로 포럼 둘째 날인 지난 15일,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리조트 가든 텐트에 차히아긴 엘벡도르지 전 몽골 대통령이 홀로 벤치에 앉아 식사 중이었다. 지난 1990년 몽골 민주화혁명 핵심 인사로, ‘몽골 민주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기자가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한인 언론사 기자와 전직 국가 정상 간 ‘1대1 조찬’이 40분간 이어졌다. 식사 중 그는 방북 경험부터 북한 체제의 문제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의 함의, 미국의 아태 전략 속 한반도와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 등에 대한 견해를 나눴다. 또 이날 점심에는 국방부, 사이버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CISA),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관계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발전 과정 속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대화 중, PwC 관계자는 과거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만났던 경험을 언급하며, 한국의 톱다운식 정책 결정 방식과 정부와 기업 간 관계가 기술 혁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비업체를 통해서는 얻기 어려운, 생생하고 진솔한 대화의 연속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자리에 주미한국대사관이나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 일본, 대만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특히 사실상 주미 대만 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미 대만 경제문화대표부(TECRO)의 유타레이 대사가 활발히 미국 고위 인사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부럽기만 했다. 이번 포럼에는 미국 방위산업 및 첨단기술 기업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 브로스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최고전략책임자를 비롯해 보잉, 록히드마틴, 인텔, 오픈 AI 등의 대표자들도 자리했다. 항공우주, AI, 위성 등 기술 기반 안보 전략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 입장에서 이들과의 접점은 절실하다. 더구나 K-방산 강화와 한국형 3축 체계 고도화를 추진하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 방산 기업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스펀 안보 포럼은 단지 앉아서 듣는 행사가 아닌, 직접 보고, 만나고, 말 걸고, 관계를 맺는 ‘현장 외교’의 장이었다. 물론 새 정부 출범 초기이자 외교부 장관이 이제 막 임명되고, 주미대사직이 공석인 점을 고려하면 관계자 부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외교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진정성 있고 관계 중심적인 외교, 정보 밀도 높은 외교는 로비업체가 아닌 이런 현장에서 시작된다. 외교도 경쟁이다. 현장에서의 경쟁력 없이는 존재감도, 영향력도 없다. 애스펀 안보 포럼 같은 외교 최전선에서, 한국은 더 많이,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보여야 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최전선 외교 정부 관계자 애스펀 안보 대미 외교
2025.07.23. 19:55
한인경제가 커 나가면서 동반자 역할을 해온 존재가 있다. 한인은행이다. 2000년대 들어 한인은행들은 크게 성장했다. 급증하는 이민자 인구와 한인경제의 확장을 기반으로 사업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2008년 금융위기같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5개의 한인은행이 상장을 할 정도로 전체적인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들며 그 성장의 속도는 주춤하고 있다. 이민 규모가 줄고 의류업 등 전통 산업 기반이 약해지면서, 한인은행들은 이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대다. 뱅크오브호프는 지난 4월 하와이의 테리토리얼세이빙스뱅크를 인수하며 자산 192억 달러 규모의 은행으로 도약했다. 하와이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뱅크오브호프가 ‘전국 은행’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신호다. 조지아를 기반으로 한 메트로시티은행도 최근 제일IC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며 총자산 48억 달러 규모의 은행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LA 한인타운에 있는 제일IC은행의 지점은 메트로시티은행의 서부 진출 거점 역할을 할 것이다. 은행이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겠다는 의도다. 지리적 확장도 활발하다. 올해 들어서만 PCB뱅크와 한미은행이 각각 애틀랜타 인근에 새 지점을 열었고, CBB뱅크는 뉴저지에 첫 동부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애틀랜타 진출도 예고한 상태다. 기존에 남가주에 본사를 둔 이들 은행이 동부로 눈을 돌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포화 상태인 LA·OC 금융시장에서는 더는 예전처럼 성장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대다수 한인은행이 진입해 있고, 한국에 본사를 둔 은행의 진출 확대와 주류 은행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동부 시장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회로 여겨진다. 특히 조지아는 현대차, LG, SK 등 한국 대기업의 진출과 함께 관련 협력업체 및 한인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법인고객을 겨냥한 기업금융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제조업 중심의 구조는 남가주 한인은행에 또 다른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뱅크오브호프는 지난 4월부터 LA, 뉴욕, 뉴저지, 애틀랜타, 휴스턴, 댈러스 등 6개 도시에 한국기업금융지원센터를 설립해 한국기업의 국내 진출을 돕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지난해 서울에 사무소를 열어 한국 기업과의 네트워크 강화에 나섰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점포 수 늘리기나 자산 확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인은행들이 처한 현실은 이전과 다르다. 한인경제의 중심축이 달라지고 있고, 고객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기술과 자본력이 모두 요구되는 시대다. 특히나 신규 이민이 줄어들고 한인사회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은행에 녹록지 않은 영업환경이다. 전에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인 은행을 이용하던 고객층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인은행들은 더 큰 스케일과 더 넓은 시장을 향해서 나아가야만 하는 환경이다. 이제는 한인은행들은 지역 은행에서 나아가 전국 단위의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관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젖줄 역할을 해온 은행들이 앞으로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지, 지금이 바로 그 시험대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은행 전국구 남가주 한인은행 대다수 한인은행 전국 은행
2025.07.22. 19:04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드라마 ‘아이언하트’가 지난달 24일 혹평 속에 데뷔했다. 흑인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다룬 이 작품은 방영 전부터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물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튜브에선 예고편 공개 하루 만에 ‘싫어요’ 30만 개 ‘폭탄’을 받기도 했다. 공개 이후에도 이야기의 완성도와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주인공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작품이 비판받는다면 그것은 문제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종과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디즈니의 방향 감각 상실과 대중의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이언하트는 MIT 출신의 천재 공학도 ‘리리 윌리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마블 팬들에게는 인기 캐릭터 ‘아이언맨’의 정신적 계승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문제시된 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리리라는 주인공이 정치적 중립성만을 고려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도둑질, 살인 등 주인공의 불법 행위에 대한 서사는 관대하게 다루면서도,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을 앞세운 연출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러한 구성은 결국 정치적 메시지가 스토리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고, 콘텐츠의 진정성과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디즈니는 이미 ‘인어공주’와 ‘백설공주’ 실사판을 통해 유사한 논란을 경험한 바 있다. 2023년 실사판 인어공주에서 아리엘 역할을 맡은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원작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올해 공개된 백설공주 영화에서는 난쟁이 캐릭터들을 CG로 대체하고, 백설공주 역할에 원작처럼 백인이 아닌 라틴계 배우를 기용하면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반감이 퍼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단순한 다양성 확대를 넘어서 원작의 정체성과 완성도마저 희생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많은 관객은 이러한 디즈니의 변화를 정치적 의도에 예술이 ‘종속’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디즈니라는 브랜드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연장선에서 최근 디즈니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정책을 조용히 축소하고 있는 움직임은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디즈니는 내부 직원 평가에서 DEI 기여도를 제외하고, 콘텐츠 경고 문구나 캠페인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는 정부의 압박과 정치적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한때 DEI를 앞세워 ‘포용의 상징’이 되고자 했던 기업이, 대중과 보수 진영의 반발 앞에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디즈니는 자신들이 강조해온 가치들을 내부적으로 후퇴시키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PC 콘텐츠를 고집하고 있어, 진정성 없는 메시지와 전략의 혼선이라는 이중적 비판을 받는다. 결국 아이언하트의 실패는 단순한 콘텐츠 한 편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기업들이 얼마나 잘못 읽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관객들은 다양성과 포용성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진정성 없이 형식적으로 소비되거나,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왜곡할 정도로 앞세워질 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진정한 포용을 원한다면, 정체성과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대신, 깊이 있는 서사와 감정적 공감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야 한다. 이제는 콘텐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가치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pc주의 관객 정치적 메시지 여성 주인공 정치적 중립성
2025.07.20. 19:00
시카고 경찰은 최근 시카고 지역에서 차량 탈취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지른 일당에 대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그룹을 ‘SRT Boys’라고 불렀다. SRT은 ‘Sum Real Threats’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원래 SRT은 ‘Street and Racing Technology’의 앞글자를 따온 말이다. 지난 2018년 시카고 오토쇼에서 처음 데뷔한 닷지 챌린저가 대표적인 차량으로 꼽힌다. 젊은층에서 선호하는 차량인 챌린저 등을 일컬을 때 쓰는 말과 같은 말로 범죄 조직의 이름을 지은 셈이다. 둘 다 모두 차량과 관계되는 의미로 머슬카를 숭배하고 도로를 질주하는 의미였다가 차량 탈취를 일삼는 그룹이 이를 차용한 것이다. 2025년 기준 가장 나이가 많은 조직원이 21세, 가장 어린 경우는 15세였다. 이 들이 처음부터 차량 탈취 범죄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버스나 전철 안에서 다른 탑승객의 아이폰 등을 빼앗아 달아난 뒤 이를 되팔아 현금을 챙기는 방식의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SRT Boys는 모두 30명 이상의 소년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유투브와 같은 채널에 자신들의 행위를 올리곤 했다. 이들은 폭력적인 가사의 랩을 하면서 훔친 차에 탑승하고 총기를 든 동영상을 자랑스럽게 업로드했다.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시카고 서부 지역이었지만 지역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다운타운을 포함해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북서부 서버브도 이들의 범행 대상에 빠지지 않았다. 이들로 인해 시카고의 차량 탈취 범죄는 폭증했다. 최근 몇 개월간 시카고 지역의 범죄 현황을 보면 차량 탈취 사건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이제 SRT Boys와 같은 조직 범죄 단체가 다른 범죄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차량 범죄에서 현금지급기를 털고 차량을 이용해 소매 업소를 습격한 뒤 달아나는 ‘smash and go’가 이들의 새로운 범죄 모델이 됐다. 최근 경찰에 체포된 SRT Boys는 차량 트렁크에 두 대의 훔친 금전등록기를 싣고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일리노이 사법 체계의 한계를 악용하기도 한다. 처음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된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들은 그리 오래 수감되지 않는다. 이들이 교도소를 나오는 순간 다른 범죄에 빠지곤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교도소가 단순한 회전문인 셈이다. 시카고 경찰은 이 악순환의 고리에 주목하고 있다. 거리에서 휴대폰을 훔치다가 차량 탈취로 본격적인 조직 범죄에 빠진 뒤 차량을 이용한 대형 범죄에 가담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치안 문제가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민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고 다치며 목숨을 잃는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일은 이런 소년들이 시카고에서 암약하던 갱 조직과 연계된다는 것이다. 범죄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 소년들은 자연스럽게 ‘Four Corner Hustlers’, ‘New Breeds’ 와 같은 갱스터들과 어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소년 범죄 그룹이 기존 갱스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자랑한다는 것. 시카고 경찰이 소년 7로 명명한 한 청소년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AR-15 소총으로 라이벌 그룹을 쏘고 현금을 보여주면서 폭력을 미화하는 랩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을 통해 거리 범죄 조직에 발을 들여 놓은 이들은 당초 학교에 있어야 했던 아이들이라고 지적했다.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통해 성인으로 성장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나 보호자들의 관심 밖에서 자랐다. 그리고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말았다. 이들 대부분은 중범죄인 차량 탈취죄에 적용되지 않는다. 차량을 훔칠 당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이 이들을 특정하지 못하면 직접 차량을 훔쳤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범죄의 늪에 빠지고 만다. 이들을 단순히 교도소에 수감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문제 학생의 경우 카운슬링을 통해 더 심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보이스 악순환 차량 탈취로 차량 범죄 조직 범죄
2025.07.14. 19:28
최근 ‘자진 추방’한 참전 용사 박세준(55)씨 사연을 두고 많은 이들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육군으로 복무한 그는 지난 1989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국방군 총사령관 축출 작전에 투입됐다. 박씨는 당시 작전 중 총상을 입었다. 그 공로로 퍼플 하트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23일, 모친과 자녀들을 미국에 남겨둔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씨는 영주권자다. 복무 기간이 12개월에 미치지 못해 군 복무에 따른 자동 귀화 혜택을 받지 못했고, 과거 마약 소지 및 법정 불출석 혐의로 3년 형을 복역한 전력이 있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이유는 환락이 아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었다. 박씨는 군사 작전에서 생과 사를 오간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결국 약물에 의존하는 선택을 했다. 만약 그에게 적절한 재활센터나 정신 건강 치료 안내가 제때 제공됐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씨는 복역 후 과거를 반성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왔다. 하와이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성실히 살았다. 출소 직후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바 있지만, 우선 추방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기 출석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문제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단속 정책 강화로 추방이 현실화됐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필요한 정책이다. 법의 원칙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또 사회를 위협하는 조직 범죄자나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 대해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속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 과거 실수를 뉘우치고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추방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타당한가. 단속 목적이 실적을 올리기 위함이 되어선 안 된다. 미국은 이제 ‘합리적이고 정교한 단속 체계’를 갖춰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 기준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전과 이력자에 대한 개별적 위험도 평가 체계’ 도입이다. 범죄 성격과 동기, 복역 이후 삶의 궤적, 재범 여부,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재범 우려가 낮고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들은 추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면적 성격을 가진 체류권 재심사 제도 역시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이상 무범죄 이력과 정착 상태가 입증되면, 심사위원회를 통해 ‘재추방 면제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일회성 구제책이 아니라, 이민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보완하는 장치다. 아울러 정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내 많은 산업 현장에서 필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신분이 불안정한 이들이다. 건설 현장, 식당 주방, 농장, 정비소 등에서 일하는 이름 없는 이들이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한순간에 몰아내는 것이 정말 국가 경제에 이득이 될까. 결국 이 문제는 단지 이민 정책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박세준씨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대가를 치렀고, 이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국가의 ‘무관용 원칙’에 의해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면, 그것은 단속이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다. 앞으로 또 다른 박세준씨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숫자만 남는 단속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합리성과 정교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살아 있는 이민 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미국의 가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박세준 참전 참전 용사 추방 대상자 추방 명령
2025.07.01. 18:45
“경찰은 법적 절차를 따랐고, 상황은 위험했으며, 대응은 신속하고 절제된 것이었다.” 지난 14일, ‘노 킹스(No Kings)’ 시위 현장에서 LA경찰국(LAPD)의 대처가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에 대해 짐 맥도넬 LA경찰국(LAPD) 국장은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공안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현장에서 경관 52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발표됐다. 일부 시민에게는 이런 대응이 과도해 보였을 수 있다. 평화롭게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에겐, 경찰의 개입이 갑작스럽고 억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단일하지 않다. 내가 평화로웠다고 해서, 현장 전체가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위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권리지만, 수천 명이 모인 거리에서 그 권리가 행사될 때 공공안전과 충돌할 수 있다. 시위대 중 단 한 명의 폭력적 행동이 전체 흐름을 바꾸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긴박한 현장에서 경찰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안전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책임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LAPD는 시위 도중 일부 참가자들이 병, 벽돌, 폭죽 등을 경찰에게 던지는 등 폭력 행위를 벌이고, 반복된 해산 명령에도 불응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해당 현장을 ‘불법 집회’로 선언하고, 영어와 스페인어로 수차례 해산 명령을 고지했다고 밝혔다. 일부는 지상 확성기, 일부는 헬리콥터 방송을 통해 전달됐다. 이쯤에서 우리는 되묻게 된다. LAPD의 무력 사용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프로토콜에 따라 대응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 절차가 지켜졌다면 정당한 공공조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 경찰이 현장에서 취한 모든 조치가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공안전을 위한 예방적 개입이었다는 점을 배제한 채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접근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 보기 어렵다. 총기 소지가 합법인 미국에서 예기치 못한 폭력이 확산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수백 명이 밀집한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해야 한다.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군중 대상의 대응은 본질적으로 특수하고 복합적인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한 채 모든 개입을 개별 사례와 동일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정당한 공공조치마저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최근 시위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짧은 영상 클립이나 단편적인 증언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의 오남용을 감시하는 언론과 시민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격렬하고 복잡한 현장의 한순간만으로 전체 상황을 재단하는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동시에, 경찰 역시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잉 진압이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하며, 프로토콜에 기반한 훈련과 대응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공권력이 검증 가능한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는 믿음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는 조직이다. 그 책임이 무겁기에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오직 결과에만 집중된 채, 경찰이 그 전 단계에서 어떤 판단과 절차를 거쳤는지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책임을 왜곡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위에서 LAPD의 대응이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과잉 진압이 있었다면 마땅히 검토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비판이 “경찰은 무조건 가해자”라는 시각으로 흐를 경우, 진짜 공감의 대상을 놓칠 수도 있다. 경찰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이며,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들이 지닌 책임, 그리고 그 책임이 만들어내는 판단의 무게 또한 함께 이해돼야 한다.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힘의 사용조차 폭력으로만 간주한다면,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사회를 지킬 최소한의 장치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공공안전 시위 시위 la경찰국 시위 경찰 최근 시위
2025.06.29. 16:23
국내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소비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8~70%에 이른다. 2024년 연말 기준으로 이 수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5년에도 소비는 여전히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와 함께 시작된 강경 이민자 단속이 이 거대한 소비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단속은 단지 국경 너머의 이슈가 아니라, 미국 내 상점과 식당, 가정의 지출 패턴을 바꾸고 있다. 특히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비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보이지 않는 불매’가 퍼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신분 확인이 두려워 매장을 찾지 않고, 사회적 모임조차 피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위축이 아니라, 내수 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경제 현상이다.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이다. 코카콜라는 2025년 1분기 북미 지역에서 판매량이 2% 이상 감소했다. 회사 측은 히스패닉 소비자층의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맥주 시장 1위 브랜드 모델로를 보유한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매출 하락을 보고했다.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히스패닉인 모델로는 특히 이민자 커뮤니티의 변화에 민감하다. 회사 측은 실적보고서에서 “추방될까 두려워 식당이나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된 고객들이 있다”며 이민 단속의 영향력을 직접 언급했다. 문제는 특정 브랜드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생활용품 기업 콜게이트-팜올리브는 1분기 북미 매출이 2.3% 감소했다. JD 스포츠나 풋락커 같은 소매업체들도 히스패닉 고객 감소를 매출 하락 원인으로 꼽았다. 외식업과 숙박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아 오레니우스는 “현재의 추방 속도는 올해 GDP 성장률을 1%포인트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전미농업연맹도 공급망 붕괴를 우려하며 “팬데믹 시기와 유사한 충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이민 단속이 단순한 ‘불법체류자 색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체에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단속으로 노동력 공급이 줄어들면, 생산비가 올라가고 물가 상승하며 결국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이민자 노동력 급감은 식료품과 주거비 상승을 초래하고 가계의 구매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세관 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다저스타디움에 총을 든 채로 진입하려 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렇게 조성된 ‘공포 분위기’는 경제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내 사회에서 누가 소비하고, 누가 일하며, 누가 자녀를 키우는가를 다시 물어야 할 시점이다. 이민자들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존재다. 그들은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그들의 지출이 줄면 브랜드의 매출이 줄고, 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식당이 문을 닫는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최근 “우리 농부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단속이 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경제는 정치보다 정직하다. 단속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지갑을 닫게 한다. 이민자 없는 경제는 없다. 이민자를 위협하고 몰아내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정치권도 자각해야 할 때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공포 지갑 히스패닉 소비자층 소비자 심리 히스패닉 커뮤니티
2025.06.24. 18:30
토끼 귀에 큰 눈, 드러난 이빨과 복슬복슬한 인형 옷을 입은 캐릭터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라부부(labubu)’는 지난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만든 캐릭터로, 2019년 중국 피규어 기업 ‘팝마트(Pop Mart)’가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었다. 이후 라부부는 랜덤박스 형태로 판매되며 ‘뽑기’의 재미와 소장욕을 자극해 순식간에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저 하나의 귀여운 인형 아닌가’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라부부는 단순한 장난감 피규어가 아닌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함축하고 있다. 라부부는 최근 블랙핑크 리사, 리한나 등 셀럽들이 자신의 가방에 액세서리로 착용하면서 한순간에 인기가 확산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에는 언박싱 영상과 인증샷이 넘쳐난다. ‘#labubu’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틱톡 영상은 수백만 건을 기록하며 콘텐츠 자체로 소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라부부는 스톡엑스 같은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거래액이 나날이 폭증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일부 한정판은 정가의 20~30배가 넘는 웃돈이 붙기도 한다. 라부부의 흥행은 고물가 시대 속 ‘스몰 럭서리(small luxury)’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스몰 럭서리는 경제가 하강하면서 명품백 같은 거액 소비는 줄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에선 사치를 아끼지 않는 소비 형태를 말한다. 라부부는 20달러대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나만의 희소성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소비 심리를 정조준했다. 이들은 비싼 명품 하나 대신 귀엽고 한정판인 피규어 하나로 자존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젊은 세대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도 인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언박싱과 리셀, ‘득템’ 콘텐츠는 재미를 주며 젊은 소비자들을 만족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유행의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우선 충동소비를 부추기는 ‘랜덤 박스’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해 개봉하기 전 어떤 제품을 받을지 알 수 없고, 결과에 따라 실망하거나 중복 구매를 반복하게 된다. 6개 한정 시리즈 중에서도 특정 제품은 거래가치가 더 높은 등 ‘합법적인 도박’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특히 어린 소비자까지 겨냥하면서 사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라부부는 다른 유행과 비교해 더 빠르고 훨씬 더 큰 규모로 인기가 확산했다. 이에 업계 다수의 수집가는 다른 수집품처럼 5년, 10년 뒤에도 인기가 있고 가격이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작아 투자로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라부부는 정확한 세계관이나 브랜드 철학보다는 밈과 바이럴에 의존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한순간에 반짝하고 사라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비슷한 흐름은 반복돼 왔다. 단기간 화제를 모았던 젠틀몬스터, 헤일리 스무디, 트레이더조 토트백 등은 ‘핫템’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기가 사그라졌다. 유행은 점점 더 빨리 타오르고, 더 빨리 식는다. 흥미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과도한 소비, 새로운 자극에 대한 중독, 정체성 대신 주목받기 위한 선택은 소비자에게 피로와 공허함을 남길 뿐이다. 친환경 흐름과 역행하는 과잉 포장, 저작권이나 문화 희화화 논란도 있다. 검증 없는 유행 추종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지를 좁히고,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무책임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라부부는 그저 귀엽고 웃긴 캐릭터가 아닌 현재 소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떻게 유행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적어도 지금은 유행을 소비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그 유행을 ‘왜’ 소비하는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묻는 태도를 갖추고 현명한 소비를 지향해야 할 시기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신드롬 그림자 소비 형태 글로벌 소비 소비 심리
2025.06.22. 19:04
최근 가주에서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이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고등학교 육상대회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딴 트랜스젠더 학생 AB 에르난데스, 타운 찜질방 ‘위스파(Wi Spa)’의 여성 스파 탈의실에 나체로 들어간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죄 평결, 그리고 여성 전용 찜질방인 ‘올림퍼스 스파(Olympus Spa)’의 항소 기각까지. 세 사건 모두 공통적으로 ‘정체성의 자유’와 ‘공간의 경계’라는 민감한 문제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나 조롱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그들의 존재와 고통은 현실이며, 사회가 일정 수준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보호가 모든 경계와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며, 이는 단지 신체적 특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 전반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고, 스포츠에서도 남녀 리그를 나누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 때문이 아니다. 공정성과 안전, 그리고 현실적인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제도적 조치다. 가주 정부는 이번 AB 에르난데스 사례를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자부에서 뛰는 것을 허용했을 뿐 아니라,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트랜스젠더 선수가 상위권에 들 경우, 생물학적 여성 선수에게도 같은 메달을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모두를 배려하려 했겠지만, 결국 누구도 완전히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이 됐다. 겉으로는 평등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경쟁의 본질을 왜곡시켰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공정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이란 각자의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고려해 사회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위스파 사건과 올림퍼스 스파 판결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남성이 스스로를 여성이라 느낀다 해도,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를 동일한 여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성별 정정 절차를 거쳤다고 해서,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공간에 나체로 들어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한국 찜질방 문화처럼 나체가 기본인 공간에서, 13세 소녀와 트랜스젠더 여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과연 누구의 입장을 배려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특히 위스파 사건의 피고 머레이거는 이미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성기 노출로 유죄를 선고받은 성범죄 전과자이며, 이후 성범죄자 목록에도 등록됐다. 그가 성별 등록을 여성으로 바꾼 뒤 여성 스파에 나체로 입장한 행위는 단순히 트랜스젠더 권리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여성 공간에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개인의 전력을 고려하지 않고 성 정체성 하나만으로 모든 판단을 중단하는 태도는, 오히려 트랜스젠더 전체를 향한 불신과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트랜스젠더의 권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할 때 발생한다. 개개인의 권리는 충돌할 수 있고, 그 충돌을 조율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여성 전용 공간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권리,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여성 선수들의 권리도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집단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집단의 불편과 위험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에 가깝다. 가주 정치권의 다수를 차지하는 진보 진영은 ‘내가 여자라 느끼면 여자다’, ‘느낌대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감정에 기반한 주장일 뿐, 공공의 질서와 타인의 권리를 함께 고려한 사회적 해법이라 보기 어렵다. 모든 개인은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충돌할 때 반드시 조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트랜스젠더를 진심으로 존중하고자 한다면, 그 출발은 ‘같은 대우’가 아니라 ‘다름의 인정’이어야 한다. 생물학적 차이를 외면한 채 억지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오히려 혐오와 반발만 키우게 된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공존의 기준을 다시 세울 때, 비로소 존중은 실현된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불평등 강요 트랜스젠더 선수 트랜스젠더 학생 생물학적 여성
2025.06.02. 19:01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재외선거가 종료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되새기게 된다. 재외선거 투표율은 79.5%로 얼핏 보기에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수치의 기저에는 착시가 존재한다. 실제 재외선거권자는 약 197만 명이지만, 그중 단 13%만이 선거인으로 등록했고, 최종 투표자 수는 20만여 명에 불과했다. 전체 재외국민 중 단 10%만이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숫자가 말해주듯, 이는 실질적인 투표율이 아니라 등록자 대비 투표율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다. 현재 재외선거는 사전 등록과 지정 공관 현장 투표라는 이중의 진입 장벽이 있다. 현장 투표만 허용한 채 유권자들에게 최대 수백 마일을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현재 시스템은 현실을 외면한 설계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콜로라도·텍사스 등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은 투표를 위해 최소 4~6시간 이상 운전하거나 아예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LA총영사관 투표소까지 왕복 12시간을 운전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우편 혹은 온라인 투표 도입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와 정치권은 보안, 기술 등의 문제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다. 물론 모든 선거를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외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요구다. 다수 국가가 온라인 국민투표나 해외우편투표를 시행 중이고, 한국 내에서도 전자 투표 시스템이 정당 경선에까지 쓰이고 있다. 결국 문제는 의지다. 제도 개선이 이뤄졌더라면 이번 대선의 투표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재외국민들이 한국 내 유권자들처럼 손쉽게 투표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 77.1%를 재외선거 유권자에 대입한다면 최대 150만 명 이상이 참여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규모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간 표차는 24만표였다. 재외선거 150만 표심은 이번 대선에서 보수 후보간 단일화 전략의 타이밍을 앞당길 충분한 명분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 협상에 있어 재외선거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이 단일화의 ‘마지노선’을 사전투표 전날인 5월 28일로 설정했지만, 재외선거가 5월 20일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단일화 시한은 그보다 훨씬 빨랐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 정치권은 “재외선거는 전체 유권자의 1%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이는 유권자 규모만으로 표의 가치를 재단하는 시대착오적 태도다. 만약 단일화가 재외선거 이전에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구도에 균열을 낼 실낱같은 기회는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재외국민들의 표심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가 보다 활성화됐더라면, 정치권 역시 이 표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단일화 논의도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재외선거의 현실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재외국민은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결코 ‘2등 유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한 한 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각성과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목소리 장벽 재외선거 투표율 재외선거 유권자 현재 재외선거
2025.06.01. 13:18
지난 20일 열린 LA한인상공회의소(LA상의)의 선거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2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일부 이사들에게는 생애 첫 선거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LA상의 회장은 대부분 추대 형식으로 선출돼 취임했다. 경쟁자가 등장한 경우에도 협의를 거쳐 단독 출마로 조율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현 회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다수의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혔고, 한때는 삼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결국 두 명의 후보가 맞붙는 양자 대결로 압축됐고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졌다. 오랜만에 경선이 이뤄진 만큼 우려도 없지 않았다. 선거 과정이 과열되어 비방전으로 번지고, 자칫 LA상의가 분열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실제로 선거 기간 중 각 진영은 일부 근거 없는 소문들로 인해 크든 작든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조직 전체의 분열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분열은 기우에 그쳤다. 선거가 치러진 5월 정기이사회에서는 양측 후보 모두 차분하고 진정성 있게 정견을 발표했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타 한인 단체들에서 가끔 벌어지는 결과 불복 사태는 이번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선된 정상봉 이사가 “다른 한인 단체들의 모범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앞으로도 상의가 단합된 모습을 이어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회의장에는 실시간 개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돼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한 표 한 표 셀 때마다 이사들의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났고, 선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처럼 느껴졌다.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의 모습도 훈훈했다. 당선된 정상봉 이사 측은 경쟁자인 김지나 이사의 연설이 정말 멋졌다고 이야기했고 김지나 이사 측은 승리에 대한 축하를 건넸다. 이런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최근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대선 양상을 떠올리게 됐다. 갑작스럽게 치른 대선이었고 선거 과정상에서 잡음은 물론 후보토론회에서도 서로를 비방하는 날카로운 말들과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도 오고 갔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장면이었지만 많은 유권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 비교한다면 LA상의의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민의 표출이었다. LA상의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동완 회장을 비롯한 제48대 회장단이 시작한 다울정 보수 작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해, 한인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공간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차기 회장단이 공약으로 내세운 이사 간 소통 강화, 지속 가능한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세대 간 멘토링 세션 운영 등도 충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다. 2026년과 2028년에는 LA에서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만큼 이에 대비해 ‘한인사회의 얼굴’이 되는 단체 중 하나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축제가 열리는 LA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한인사회가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LA상의는 불확실한 경제 흐름 속에서 한인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경기 침체와 정책 변화가 이어지는 지금, 상공인들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실질적인 전략과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타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한인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축제 선거 선거 과정상 선거 기간 이번 선거
2025.05.29. 18:18
테슬라가 내달 텍사스 오스틴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출시하고 몇 달 내 수천 대를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완전자율주행(FSD)의 시대를 선언하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많은 전문가와 소비자들은 여전히 “과연 이번엔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 로보택시라는 개념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이를 둘러싼 안전성과 기술적 신뢰, 그리고 머스크의 과거 언행 불일치가 논란의 중심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 테슬라의 로보택시는 과연 안전할까.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테슬라의 FSD 기능과 관련된 4건의 사고를 조사 중이며, 테슬라에 로보택시 시스템의 비상 대응 방식, 승객 유무 감지, 그리고 교통법규 위반 발생 시 조치 등을 공식 질의했다. 특히 비나 안개, 역광, 야간 등 비가시성 환경에서의 인식 정확도와 오작동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 경쟁사 웨이모의 차별화된 자율주행 접근 방식이 주목을 끌고 있다. 둘 다 자율주행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센서 중심’ 대 ‘인공지능(AI) 학습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다. 테슬라는 일관되게 ‘라이다(LiDAR)’ 센서를 배제하고, 8대의 카메라와 초음파 센서 기반의 시각정보 처리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테슬라는 이 방식이 비용 대비 확장성이 뛰어나고, 전 세계 수백만 대의 테슬라 차량으로부터 수집되는 도로 주행 데이터를 지속해서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방식은 NHTSA 조사처럼 카메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악조건에서의 기능 검증이 필요하고, 실제 센서 기반이 아닌 AI의 판단이기 때문에 내리는 결정에 더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웨이모는 라이다·레이더·고정밀 지도 등을 총동원해 안전성과 정확도 위주의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또 이미 오랜 기간 LA,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등에서 상용 서비스를 통해 안전성을 입증해왔다. 실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들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테슬라는 2018년 발생한 자율주행 모드에서의 치명적인 사고와 관련된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이 사고는 애플 엔지니어인 월터 황이 테슬라 모델 X를 운전하던 중 오토파일럿 기능을 사용하다가 고속도로에서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테슬라는 합의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이번 합의는 오랜 법적 분쟁을 종결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또 지난 2021년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한 운전자가 테슬라 모델 Y를 몰다 차량이 제멋대로 급가속, 주유소 기둥에 충돌하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테슬라는 사망자의 유족과 합의해 소송을 종결했다. 합의 조건 등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테슬라 측이 피해 가족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시하며 입막음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결국 테슬라 로보택시에 대한 회의감의 뿌리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일론 머스크의 과거 발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6년 머스크는 “2년 안에 테슬라 차량은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할 것”이라 공언했고, 2019년에는 “2020년엔 도로에 100만 대의 로보택시가 다닐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들은 줄줄이 지연되거나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FSD 베타버전의 상용화 일정도 수차례 연기됐고, 주주총회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놓은 발언들 역시 이후 번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로보택시의 출시는 자율주행 기술의 미래를 가늠할 중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테슬라가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 진짜 신뢰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규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머스크가 이번에는 과연 말한 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가 이번 로보택시 실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테슬라 장애물 테슬라 차량 테슬라 경쟁사 최근 테슬라
2025.05.27.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