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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참전 용사 박세준 추방이 남긴 과제

최근 ‘자진 추방’한 참전 용사 박세준(55)씨 사연을 두고 많은 이들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육군으로 복무한 그는 지난 1989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국방군 총사령관 축출 작전에 투입됐다. 박씨는 당시 작전 중 총상을 입었다. 그 공로로 퍼플 하트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23일, 모친과 자녀들을 미국에 남겨둔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씨는 영주권자다. 복무 기간이 12개월에 미치지 못해 군 복무에 따른 자동 귀화 혜택을 받지 못했고, 과거 마약 소지 및 법정 불출석 혐의로 3년 형을 복역한 전력이 있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이유는 환락이 아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었다. 박씨는 군사 작전에서 생과 사를 오간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결국 약물에 의존하는 선택을 했다. 만약 그에게 적절한 재활센터나 정신 건강 치료 안내가 제때 제공됐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씨는 복역 후 과거를 반성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왔다. 하와이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성실히 살았다. 출소 직후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바 있지만, 우선 추방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기 출석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문제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단속 정책 강화로 추방이 현실화됐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필요한 정책이다. 법의 원칙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또 사회를 위협하는 조직 범죄자나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 대해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속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 과거 실수를 뉘우치고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추방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타당한가.   단속 목적이 실적을 올리기 위함이 되어선 안 된다. 미국은 이제 ‘합리적이고 정교한 단속 체계’를 갖춰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 기준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전과 이력자에 대한 개별적 위험도 평가 체계’ 도입이다. 범죄 성격과 동기, 복역 이후 삶의 궤적, 재범 여부,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재범 우려가 낮고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들은 추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면적 성격을 가진 체류권 재심사 제도 역시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이상 무범죄 이력과 정착 상태가 입증되면, 심사위원회를 통해 ‘재추방 면제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일회성 구제책이 아니라, 이민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보완하는 장치다.   아울러 정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내 많은 산업 현장에서 필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신분이 불안정한 이들이다. 건설 현장, 식당 주방, 농장, 정비소 등에서 일하는 이름 없는 이들이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한순간에 몰아내는 것이 정말 국가 경제에 이득이 될까.   결국 이 문제는 단지 이민 정책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박세준씨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대가를 치렀고, 이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국가의 ‘무관용 원칙’에 의해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면, 그것은 단속이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다.   앞으로 또 다른 박세준씨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숫자만 남는 단속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합리성과 정교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살아 있는 이민 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미국의 가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박세준 참전 참전 용사 추방 대상자 추방 명령

2025.07.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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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위와 공공안전, 책임 과제는

“경찰은 법적 절차를 따랐고, 상황은 위험했으며, 대응은 신속하고 절제된 것이었다.”   지난 14일, ‘노 킹스(No Kings)’ 시위 현장에서 LA경찰국(LAPD)의 대처가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에 대해 짐 맥도넬 LA경찰국(LAPD) 국장은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공안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현장에서 경관 52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발표됐다.   일부 시민에게는 이런 대응이 과도해 보였을 수 있다. 평화롭게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에겐, 경찰의 개입이 갑작스럽고 억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단일하지 않다. 내가 평화로웠다고 해서, 현장 전체가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위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권리지만, 수천 명이 모인 거리에서 그 권리가 행사될 때 공공안전과 충돌할 수 있다. 시위대 중 단 한 명의 폭력적 행동이 전체 흐름을 바꾸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긴박한 현장에서 경찰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안전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책임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LAPD는 시위 도중 일부 참가자들이 병, 벽돌, 폭죽 등을 경찰에게 던지는 등 폭력 행위를 벌이고, 반복된 해산 명령에도 불응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해당 현장을 ‘불법 집회’로 선언하고, 영어와 스페인어로 수차례 해산 명령을 고지했다고 밝혔다. 일부는 지상 확성기, 일부는 헬리콥터 방송을 통해 전달됐다.   이쯤에서 우리는 되묻게 된다. LAPD의 무력 사용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프로토콜에 따라 대응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 절차가 지켜졌다면 정당한 공공조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 경찰이 현장에서 취한 모든 조치가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공안전을 위한 예방적 개입이었다는 점을 배제한 채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접근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 보기 어렵다.   총기 소지가 합법인 미국에서 예기치 못한 폭력이 확산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수백 명이 밀집한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해야 한다.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군중 대상의 대응은 본질적으로 특수하고 복합적인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한 채 모든 개입을 개별 사례와 동일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정당한 공공조치마저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최근 시위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짧은 영상 클립이나 단편적인 증언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의 오남용을 감시하는 언론과 시민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격렬하고 복잡한 현장의 한순간만으로 전체 상황을 재단하는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동시에, 경찰 역시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잉 진압이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하며, 프로토콜에 기반한 훈련과 대응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공권력이 검증 가능한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는 믿음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는 조직이다. 그 책임이 무겁기에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오직 결과에만 집중된 채, 경찰이 그 전 단계에서 어떤 판단과 절차를 거쳤는지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책임을 왜곡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위에서 LAPD의 대응이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과잉 진압이 있었다면 마땅히 검토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비판이 “경찰은 무조건 가해자”라는 시각으로 흐를 경우, 진짜 공감의 대상을 놓칠 수도 있다. 경찰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이며,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들이 지닌 책임, 그리고 그 책임이 만들어내는 판단의 무게 또한 함께 이해돼야 한다.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힘의 사용조차 폭력으로만 간주한다면,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사회를 지킬 최소한의 장치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공공안전 시위 시위 la경찰국 시위 경찰 최근 시위

2025.06.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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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포는 지갑을 닫게 한다

국내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소비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8~70%에 이른다. 2024년 연말 기준으로 이 수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5년에도 소비는 여전히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와 함께 시작된 강경 이민자 단속이 이 거대한 소비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단속은 단지 국경 너머의 이슈가 아니라, 미국 내 상점과 식당, 가정의 지출 패턴을 바꾸고 있다. 특히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비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보이지 않는 불매’가 퍼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신분 확인이 두려워 매장을 찾지 않고, 사회적 모임조차 피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위축이 아니라, 내수 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경제 현상이다.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이다. 코카콜라는 2025년 1분기 북미 지역에서 판매량이 2% 이상 감소했다. 회사 측은 히스패닉 소비자층의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맥주 시장 1위 브랜드 모델로를 보유한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매출 하락을 보고했다.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히스패닉인 모델로는 특히 이민자 커뮤니티의 변화에 민감하다. 회사 측은 실적보고서에서 “추방될까 두려워 식당이나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된 고객들이 있다”며 이민 단속의 영향력을 직접 언급했다.   문제는 특정 브랜드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생활용품 기업 콜게이트-팜올리브는 1분기 북미 매출이 2.3% 감소했다. JD 스포츠나 풋락커 같은 소매업체들도 히스패닉 고객 감소를 매출 하락 원인으로 꼽았다.   외식업과 숙박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아 오레니우스는 “현재의 추방 속도는 올해 GDP 성장률을 1%포인트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전미농업연맹도 공급망 붕괴를 우려하며 “팬데믹 시기와 유사한 충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이민 단속이 단순한 ‘불법체류자 색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체에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단속으로 노동력 공급이 줄어들면, 생산비가 올라가고 물가 상승하며 결국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이민자 노동력 급감은 식료품과 주거비 상승을 초래하고 가계의 구매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세관 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다저스타디움에 총을 든 채로 진입하려 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렇게 조성된 ‘공포 분위기’는 경제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내 사회에서 누가 소비하고, 누가 일하며, 누가 자녀를 키우는가를 다시 물어야 할 시점이다. 이민자들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존재다. 그들은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그들의 지출이 줄면 브랜드의 매출이 줄고, 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식당이 문을 닫는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최근 “우리 농부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단속이 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경제는 정치보다 정직하다. 단속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지갑을 닫게 한다.   이민자 없는 경제는 없다. 이민자를 위협하고 몰아내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정치권도 자각해야 할 때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공포 지갑 히스패닉 소비자층 소비자 심리 히스패닉 커뮤니티

2025.06.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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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라부부 신드롬’의 그림자

토끼 귀에 큰 눈, 드러난 이빨과 복슬복슬한 인형 옷을 입은 캐릭터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라부부(labubu)’는 지난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만든 캐릭터로, 2019년 중국 피규어 기업 ‘팝마트(Pop Mart)’가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었다. 이후 라부부는 랜덤박스 형태로 판매되며 ‘뽑기’의 재미와 소장욕을 자극해 순식간에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저 하나의 귀여운 인형 아닌가’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라부부는 단순한 장난감 피규어가 아닌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함축하고 있다.   라부부는 최근 블랙핑크 리사, 리한나 등 셀럽들이 자신의 가방에 액세서리로 착용하면서 한순간에 인기가 확산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에는 언박싱 영상과 인증샷이 넘쳐난다. ‘#labubu’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틱톡 영상은 수백만 건을 기록하며 콘텐츠 자체로 소비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라부부는 스톡엑스 같은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거래액이 나날이 폭증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일부 한정판은 정가의 20~30배가 넘는 웃돈이 붙기도 한다.   라부부의 흥행은 고물가 시대 속 ‘스몰 럭서리(small luxury)’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스몰 럭서리는 경제가 하강하면서 명품백 같은 거액 소비는 줄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에선 사치를 아끼지 않는 소비 형태를 말한다.   라부부는 20달러대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나만의 희소성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소비 심리를 정조준했다. 이들은 비싼 명품 하나 대신 귀엽고 한정판인 피규어 하나로 자존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젊은 세대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도 인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언박싱과 리셀, ‘득템’ 콘텐츠는 재미를 주며 젊은 소비자들을 만족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유행의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우선 충동소비를 부추기는 ‘랜덤 박스’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해 개봉하기 전 어떤 제품을 받을지 알 수 없고, 결과에 따라 실망하거나 중복 구매를 반복하게 된다. 6개 한정 시리즈 중에서도 특정 제품은 거래가치가 더 높은 등 ‘합법적인 도박’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특히 어린 소비자까지 겨냥하면서 사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라부부는 다른 유행과 비교해 더 빠르고 훨씬 더 큰 규모로 인기가 확산했다. 이에 업계 다수의 수집가는 다른 수집품처럼 5년, 10년 뒤에도 인기가 있고 가격이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작아 투자로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라부부는 정확한 세계관이나 브랜드 철학보다는 밈과 바이럴에 의존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한순간에 반짝하고 사라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비슷한 흐름은 반복돼 왔다. 단기간 화제를 모았던 젠틀몬스터, 헤일리 스무디, 트레이더조 토트백 등은 ‘핫템’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기가 사그라졌다. 유행은 점점 더 빨리 타오르고, 더 빨리 식는다. 흥미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과도한 소비, 새로운 자극에 대한 중독, 정체성 대신 주목받기 위한 선택은 소비자에게 피로와 공허함을 남길 뿐이다.   친환경 흐름과 역행하는 과잉 포장, 저작권이나 문화 희화화 논란도 있다. 검증 없는 유행 추종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지를 좁히고,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무책임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라부부는 그저 귀엽고 웃긴 캐릭터가 아닌 현재 소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떻게 유행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적어도 지금은 유행을 소비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그 유행을 ‘왜’ 소비하는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묻는 태도를 갖추고 현명한 소비를 지향해야 할 시기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신드롬 그림자 소비 형태 글로벌 소비 소비 심리

2025.06.2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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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강요된 평등이 만든 불평등

최근 가주에서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이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고등학교 육상대회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딴 트랜스젠더 학생 AB 에르난데스, 타운 찜질방 ‘위스파(Wi Spa)’의 여성 스파 탈의실에 나체로 들어간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죄 평결, 그리고 여성 전용 찜질방인 ‘올림퍼스 스파(Olympus Spa)’의 항소 기각까지. 세 사건 모두 공통적으로 ‘정체성의 자유’와 ‘공간의 경계’라는 민감한 문제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나 조롱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그들의 존재와 고통은 현실이며, 사회가 일정 수준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보호가 모든 경계와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며, 이는 단지 신체적 특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 전반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고, 스포츠에서도 남녀 리그를 나누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 때문이 아니다. 공정성과 안전, 그리고 현실적인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제도적 조치다.   가주 정부는 이번 AB 에르난데스 사례를 통해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자부에서 뛰는 것을 허용했을 뿐 아니라,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트랜스젠더 선수가 상위권에 들 경우, 생물학적 여성 선수에게도 같은 메달을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모두를 배려하려 했겠지만, 결국 누구도 완전히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이 됐다. 겉으로는 평등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경쟁의 본질을 왜곡시켰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공정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이란 각자의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고려해 사회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위스파 사건과 올림퍼스 스파 판결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남성이 스스로를 여성이라 느낀다 해도,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를 동일한 여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성별 정정 절차를 거쳤다고 해서,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공간에 나체로 들어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한국 찜질방 문화처럼 나체가 기본인 공간에서, 13세 소녀와 트랜스젠더 여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과연 누구의 입장을 배려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특히 위스파 사건의 피고 머레이거는 이미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성기 노출로 유죄를 선고받은 성범죄 전과자이며, 이후 성범죄자 목록에도 등록됐다. 그가 성별 등록을 여성으로 바꾼 뒤 여성 스파에 나체로 입장한 행위는 단순히 트랜스젠더 권리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여성 공간에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개인의 전력을 고려하지 않고 성 정체성 하나만으로 모든 판단을 중단하는 태도는, 오히려 트랜스젠더 전체를 향한 불신과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트랜스젠더의 권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할 때 발생한다. 개개인의 권리는 충돌할 수 있고, 그 충돌을 조율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여성 전용 공간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권리,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여성 선수들의 권리도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집단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집단의 불편과 위험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에 가깝다.   가주 정치권의 다수를 차지하는 진보 진영은 ‘내가 여자라 느끼면 여자다’, ‘느낌대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감정에 기반한 주장일 뿐, 공공의 질서와 타인의 권리를 함께 고려한 사회적 해법이라 보기 어렵다. 모든 개인은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충돌할 때 반드시 조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트랜스젠더를 진심으로 존중하고자 한다면, 그 출발은 ‘같은 대우’가 아니라 ‘다름의 인정’이어야 한다. 생물학적 차이를 외면한 채 억지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오히려 혐오와 반발만 키우게 된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공존의 기준을 다시 세울 때, 비로소 존중은 실현된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불평등 강요 트랜스젠더 선수 트랜스젠더 학생 생물학적 여성

2025.06.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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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벽에 갇힌 90%의 목소리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재외선거가 종료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되새기게 된다. 재외선거 투표율은 79.5%로 얼핏 보기에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수치의 기저에는 착시가 존재한다.     실제 재외선거권자는 약 197만 명이지만, 그중 단 13%만이 선거인으로 등록했고, 최종 투표자 수는 20만여 명에 불과했다. 전체 재외국민 중 단 10%만이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숫자가 말해주듯, 이는 실질적인 투표율이 아니라 등록자 대비 투표율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다. 현재 재외선거는 사전 등록과 지정 공관 현장 투표라는 이중의 진입 장벽이 있다. 현장 투표만 허용한 채 유권자들에게 최대 수백 마일을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현재 시스템은 현실을 외면한 설계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콜로라도·텍사스 등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은 투표를 위해 최소 4~6시간 이상 운전하거나 아예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LA총영사관 투표소까지 왕복 12시간을 운전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우편 혹은 온라인 투표 도입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와 정치권은 보안, 기술 등의 문제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다. 물론 모든 선거를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외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요구다.     다수 국가가 온라인 국민투표나 해외우편투표를 시행 중이고, 한국 내에서도 전자 투표 시스템이 정당 경선에까지 쓰이고 있다. 결국 문제는 의지다.   제도 개선이 이뤄졌더라면 이번 대선의 투표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재외국민들이 한국 내 유권자들처럼 손쉽게 투표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 77.1%를 재외선거 유권자에 대입한다면 최대 150만 명 이상이 참여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규모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간 표차는 24만표였다. 재외선거 150만 표심은 이번 대선에서 보수 후보간 단일화 전략의 타이밍을 앞당길 충분한 명분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 협상에 있어 재외선거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이 단일화의 ‘마지노선’을 사전투표 전날인 5월 28일로 설정했지만, 재외선거가 5월 20일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단일화 시한은 그보다 훨씬 빨랐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 정치권은 “재외선거는 전체 유권자의 1%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이는 유권자 규모만으로 표의 가치를 재단하는 시대착오적 태도다.   만약 단일화가 재외선거 이전에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구도에 균열을 낼 실낱같은 기회는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재외국민들의 표심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가 보다 활성화됐더라면, 정치권 역시 이 표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단일화 논의도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재외선거의 현실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재외국민은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결코 ‘2등 유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한 한 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각성과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목소리 장벽 재외선거 투표율 재외선거 유권자 현재 재외선거

2025.06.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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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축제가 된 상의 선거

지난 20일 열린 LA한인상공회의소(LA상의)의 선거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2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일부 이사들에게는 생애 첫 선거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LA상의 회장은 대부분 추대 형식으로 선출돼 취임했다. 경쟁자가 등장한 경우에도 협의를 거쳐 단독 출마로 조율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현 회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다수의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혔고, 한때는 삼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결국 두 명의 후보가 맞붙는 양자 대결로 압축됐고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졌다.   오랜만에 경선이 이뤄진 만큼 우려도 없지 않았다. 선거 과정이 과열되어 비방전으로 번지고, 자칫 LA상의가 분열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실제로 선거 기간 중 각 진영은 일부 근거 없는 소문들로 인해 크든 작든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조직 전체의 분열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분열은 기우에 그쳤다.   선거가 치러진 5월 정기이사회에서는 양측 후보 모두 차분하고 진정성 있게 정견을 발표했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타 한인 단체들에서 가끔 벌어지는 결과 불복 사태는 이번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선된 정상봉 이사가 “다른 한인 단체들의 모범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앞으로도 상의가 단합된 모습을 이어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회의장에는 실시간 개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돼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한 표 한 표 셀 때마다 이사들의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났고, 선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처럼 느껴졌다.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의 모습도 훈훈했다. 당선된 정상봉 이사 측은 경쟁자인 김지나 이사의 연설이 정말 멋졌다고 이야기했고 김지나 이사 측은 승리에 대한 축하를 건넸다.   이런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최근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대선 양상을 떠올리게 됐다. 갑작스럽게 치른 대선이었고 선거 과정상에서 잡음은 물론 후보토론회에서도 서로를 비방하는 날카로운 말들과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도 오고 갔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장면이었지만 많은 유권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 비교한다면 LA상의의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민의 표출이었다.   LA상의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동완 회장을 비롯한 제48대 회장단이 시작한 다울정 보수 작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해, 한인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공간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차기 회장단이 공약으로 내세운 이사 간 소통 강화, 지속 가능한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세대 간 멘토링 세션 운영 등도 충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다.   2026년과 2028년에는 LA에서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만큼 이에 대비해 ‘한인사회의 얼굴’이 되는 단체 중 하나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축제가 열리는 LA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한인사회가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LA상의는 불확실한 경제 흐름 속에서 한인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경기 침체와 정책 변화가 이어지는 지금, 상공인들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실질적인 전략과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타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한인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축제 선거 선거 과정상 선거 기간 이번 선거

2025.05.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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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테슬라 로보택시 장애물은 ‘불신’

테슬라가 내달 텍사스 오스틴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출시하고 몇 달 내 수천 대를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완전자율주행(FSD)의 시대를 선언하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많은 전문가와 소비자들은 여전히 “과연 이번엔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 로보택시라는 개념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이를 둘러싼 안전성과 기술적 신뢰, 그리고 머스크의 과거 언행 불일치가 논란의 중심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   테슬라의 로보택시는 과연 안전할까.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테슬라의 FSD 기능과 관련된 4건의 사고를 조사 중이며, 테슬라에 로보택시 시스템의 비상 대응 방식, 승객 유무 감지, 그리고 교통법규 위반 발생 시 조치 등을 공식 질의했다. 특히 비나 안개, 역광, 야간 등 비가시성 환경에서의 인식 정확도와 오작동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 경쟁사 웨이모의 차별화된 자율주행 접근 방식이 주목을 끌고 있다. 둘 다 자율주행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센서 중심’ 대 ‘인공지능(AI) 학습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다.   테슬라는 일관되게 ‘라이다(LiDAR)’ 센서를 배제하고, 8대의 카메라와 초음파 센서 기반의 시각정보 처리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테슬라는 이 방식이 비용 대비 확장성이 뛰어나고, 전 세계 수백만 대의 테슬라 차량으로부터 수집되는 도로 주행 데이터를 지속해서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방식은 NHTSA 조사처럼 카메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악조건에서의 기능 검증이 필요하고, 실제 센서 기반이 아닌 AI의 판단이기 때문에 내리는 결정에 더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웨이모는 라이다·레이더·고정밀 지도 등을 총동원해 안전성과 정확도 위주의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또 이미 오랜 기간 LA,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등에서 상용 서비스를 통해 안전성을 입증해왔다.   실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들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테슬라는 2018년 발생한 자율주행 모드에서의 치명적인 사고와 관련된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이 사고는 애플 엔지니어인 월터 황이 테슬라 모델 X를 운전하던 중 오토파일럿 기능을 사용하다가 고속도로에서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테슬라는 합의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이번 합의는 오랜 법적 분쟁을 종결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또 지난 2021년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한 운전자가 테슬라 모델 Y를 몰다 차량이 제멋대로 급가속, 주유소 기둥에 충돌하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테슬라는 사망자의 유족과 합의해 소송을 종결했다. 합의 조건 등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테슬라 측이 피해 가족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시하며 입막음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결국 테슬라 로보택시에 대한 회의감의 뿌리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일론 머스크의 과거 발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6년 머스크는 “2년 안에 테슬라 차량은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할 것”이라 공언했고, 2019년에는 “2020년엔 도로에 100만 대의 로보택시가 다닐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들은 줄줄이 지연되거나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FSD 베타버전의 상용화 일정도 수차례 연기됐고, 주주총회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놓은 발언들 역시 이후 번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로보택시의 출시는 자율주행 기술의 미래를 가늠할 중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테슬라가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 진짜 신뢰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규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머스크가 이번에는 과연 말한 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가 이번 로보택시 실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테슬라 장애물 테슬라 차량 테슬라 경쟁사 최근 테슬라

2025.05.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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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오대호 탄생의 신비

시카고 지역 주민들은 한 가지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 바로 광활한 미시간 호수에서 끌어온 깨끗한 물이다.   시카고에서 조금만 벗어난 지역에서는 대부분 인근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이 강물은 대개 미네랄 함량이 높은 ‘경수(硬水, hard water)’인 경우가 많다.   경수는 식수로 직접 마시기 어렵기에, 해당 지역에서는 주택에 공급되는 모든 물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수기(Water Softener)를 사용하는 가정이 흔하다. 일리노이와 인접한 인디애나주가 대표적이다. 경수가 공급되는 주택에서 연수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시는 물은 정수기나 생수에 의존해야 하며,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의 물 공급관이 경수에 포함된 미네랄 침전물로 막히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연수기는 정기적으로 소금을 보충하고 청소하는 등 관리가 번거롭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무염(無鹽) 연수기는 설치 비용만 수천 달러에 달하기도 한다. 호숫물이 아닌 강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할 경우, 이래저래 추가적인 불편함과 비용이 발생한다.   몇 해 전 미시간주 플린트 지역에서 발생한 식수 오염 사태를 상기하면, 깨끗한 미시간 호숫물을 마시는 시카고 주민들이 누리는 ‘물의 특혜’는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시에도 주택의 물 공급원이 미시간 호수인지, 아니면 우물인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서버브 지역에서는 미시간 호수 물을 공급받기 위해 노력하며 시카고 취수원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된 상수도관 교체 등으로 시카고 주민들 역시 나름의 불편을 겪고 있지만, 물의 ‘원천’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한 이점을 가진 셈이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간 호수와 관련해 최근 학계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전해졌다. 오대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논문이다.     지금까지는 약 1만 년에서 1만 4000년 전 빙하기에 거대한 빙하가 이동하며 지표면을 깎아내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파악돼 왔다. 이는 시카고와 가까운 인디애나 듄스 국립공원의 안내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안내문은 광대한 모래 언덕 역시 과거 호수 밑이었으며, 수위 변화와 바람 등으로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제기된 새로운 주장은 오대호의 탄생 시기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약 2억 년에서 3억 년 전, 지구 내부 깊은 곳에 위치했던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Cape Verde Hotspot)’이 상승하며 지표면에 거대한 저지대(depression)를 만들었고, 이후 빙하가 도래하여 이 저지대를 더욱 깊게 파내 현재의 호수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대서양에 위치한 섬들을 만든 화산 활동의 근원으로 알려진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이 약 2억 년 전에는 판게아 대륙 아래, 지금의 오대호 자리에 위치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현재와 사뭇 다른 판게아라는 거대 대륙이 존재했으며, 그때 발생한 이 핫스팟 활동이 오대호 분지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빙하가 나타나 현재와 같은 거대한 담수호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새로운 학설의 핵심이다. 이는 오대호의 역사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수억 년 더 길다는 의미다.   시카고라는 도시의 근원과 역사를 미시간 호수와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시카고가 성장하고 유럽 이민자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미시간 호수와 미시시피강을 연결하는 수로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현재의 아름다운 다운타운 스카이라인 역시 미시간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이다. 인디애나 듄스에서 바라보면 시카고 다운타운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이처럼 시카고 주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시간 호수와 오대호가 수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숨겨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움을 안겨준다.   오대호는 면적으로 세계 최대, 담수량으로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다. 전 세계 담수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동쪽으로는 로렌스강을 통해 대서양과, 남쪽으로는 미시시피강과 연결되는 중요한 수로로서 오늘날까지도 수송 및 레저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사용하는 물에 담긴 수억 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오대호 탄생 미시간 호수 시카고 지역 시카고 주민들

2025.05.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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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도덕적 해이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LA시소방국 소방관 노조(UFLAC)를 둘러싼 초과근무 수당과 재정 비리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노조의 도덕적 책임과 LA시의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UFLAC 지도부의 초과근무 구조는 많은 의문을 낳는다. 노조 임원들은 평일에는 노조 업무를 수행하며 정규 급여를 받고, 주말과 휴일 등에는 초과근무를 병행해 시 예산에서 추가 수당을 받아왔다.     법적으로 허용된 구조라 해도,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이중 혜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노조는 수년간 인력 부족과 예산 삭감을 강하게 비판해왔지만, 정작 내부적으로는 초과근무 구조를 활용해 수당을 최대화해온 점에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프레디 에스코바 노조위원장이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에스코바는 지난 2022년 시에서 기본급과 초과근무 수당을 포함해 총 42만4500달러를 받았고, 노조 수당으로 11만5962달러를 추가로 수령해 연간 약 54만 달러에 달했다. 그는 주당 평균 48시간을 노조 업무에 투입했다고 보고했지만, 시 기록에는 주당 약 30시간의 초과근무도 포함돼 있었다.   UFLAC의 재정 운영 역시 도마에 올랐다. 전국 소방관 노조 연맹(IAFF)이 진행 중인 감사에서는 법인카드 사용 내역과 복지재단 계좌 이체 등 재정 전반이 조사 대상이다.     전직 임원 아담 워커는 복지재단 명의 계좌에서 지난 2022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개인 계좌로 7만5000달러 이상을 이체한 사실이 드러났다. 워커는 “장애 소방관을 위한 골프대회 비용 환급”이라고 해명했지만, IAFF는 복지재단 계좌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판단해 워커를 노조와 재단에서 모두 해임했다. 또 다른 전직 임원 도밍고 알바란 주니어는 노조 차량을 개인적으로 구입하면서 거래 금액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해 세금을 회피한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이번 논란을 노조의 책임만으로 돌리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초과근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LA소방국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지난 2022년 LA소방국은 초과근무 수당으로만 2억2500만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직원 수가 세 배 많은 LA경찰국(LAPD)의 초과근무 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소방국은 연간 약 50만 건의 출동을 소화하는데 이 중 81%가 의료 응급 상황이다. 24시간 3개 교대조가 돌아가지만, 병가나 휴가 발생 시 초과근무로 공백을 메우는 구조다. 초과근무가 없으면 소방차나 앰뷸런스 일부가 운행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시 당국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캐런 배스 시장은 올해에만 신입 소방관 양성을 위해 136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고, 화재 진압 장비 구입과 신규 인력 충원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인력 충원은 더디게 진행됐고, 초과근무 부담은 해마다 반복돼 왔다.     지난 2019년 회계감사에서도 초과근무 비용 증가에 대한 경고가 나왔지만, 구조적 해법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마크 배숄 전 프린스조지카운티 소방국장은 “인력 공백은 또 다른 공백을 부른다”며 “지친 소방관들이 병가로 빠지면 남은 인력이 더 많은 초과근무를 떠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과근무 논란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이나 노조 내부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LA소방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 허점과 노조의 도덕적 해이를 동시에 드러낸다. 노조의 자정 노력과 더불어 시 당국의 책임 있는 인력 운영 및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만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도덕 해이 초과근무 구조 초과근무 수당 노조 수당

2025.05.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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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불체자 단속, 정조준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 100일이 지났다. 그의 정책 중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단연 이민정책이다. 이전 1기 정부보다 더욱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며, 미국 내 불법체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단속 양상을 보면, 과연 정책이 실효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서비스국(USCIS)이 최근 H-1B 취업비자 소지자와 취업이민 청원(I-140) 수혜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정보와 거주지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서류 절차를 넘어, 장기 체류 외국인 중 추방 대상자를 확대 선별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유학생이나 영주권자까지도 경미한 법 위반 전력만으로 추방이 이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단속 대상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정책의 실적을 쌓기 위해 상대적으로 대응이 어려운 범죄조직보다는, 법적 지위가 명확하고 사회적 기여도도 높은 이민자들을 손쉬운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정책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훼손시킨다. 이민정책의 본질은 미국 내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성과를 원한다면, 총구의 방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로 불리는 LA는 불법 이민자들의 집중적인 단속과 대책이 시급한 대표적 사례다. LA는 밀입국한 남미계 갱단들과 마약 밀매 카르텔의 주요 활동 무대로 지목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또 늘어난 불체자들로 인해 공공 서비스는 과부하 상태이며,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LA시 당국은 연방정부의 불체자 단속 협조 요청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시민 안전과 충돌하는 모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피난처 도시’들에 단순한 법적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LA경찰국(LAPD) 등 지역 경찰이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단속기관의 경찰력을 대폭 강화해 보다 실효성 있는 단속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입장 발표가 아니라, 단속의 실질적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집중적 대응이다.   불법체류자 네트워크와 범죄 조직처럼 실제 위협이 되는 집단에 경찰력을 집중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민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공포만 조성하는 접근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단속은 명확한 기준과 일관된 원칙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진영의 반발이나 ‘정치적 올바름(PC)’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국민 다수는 무분별한 이민 보호가 아니라, 안전하고 질서 있는 사회를 원한다. 잘못된 관용이 오히려 이민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합법 이민자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AP-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 지지율은 46%로 전월 대비 3% 하락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다. 표적이 불분명하고 일관성 없는 단속 방식이 여론의 반감을 사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가 실질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누구를 위한 단속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이 성공하려면, 진짜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피난처 도시에는 단순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경찰력 강화, 범죄조직 타격 등 강경한 행동이 필요하다. 숫자 맞추기식 단속으로는 국민의 신뢰도, 정책의 정당성도 얻을 수 없다. 핵심을 겨눠야 결과가 따라온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불체자 정조준 불체자 단속 단속 양상 단속 대상

2025.05.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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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식당 성공의 근본은 한인 고객

한때 한국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근본론’이라는 개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유망주가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려면 ‘근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은 단단한 토대를 의미한다. 남들보다 월등한 재능이나, 옆을 보지 않고 묵묵히 운동에만 매진하는 노력 등이 기반이 되어야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10대 시절에 주목받던 많은 선수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도, 결국 근본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이 ‘근본론’은 비단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인타운 ‘기사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면서 이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뉴욕에서 기사식당 콘셉트가 큰 인기를 끌자, 몇 주 만에 한인타운에도 비슷한 콘셉트를 표방한 식당이 생겼다. 오픈 직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았고, 여러 인플루언서들이 방문 후기를 올리며 화제를 더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식당은 문을 닫았다.   직접 가서 식사하면서 느낀 점은 명확했다. 급하게 흉내만 낸 느낌이 강했다. 단순히 인기 콘셉트를 복제하는 데 그쳤고, 맛이나 분위기, 세세한 부분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근본’이 부족했다. 사람들의 일시적인 호기심은 끌 수 있었지만, 단골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식당을 비롯해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사업체에서 ‘근본’은 무엇일까.   근본이 성장을 위한 기반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바로 단골과 팬이다. 누구나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매장이 생기면 한 번쯤은 찾아간다. 하지만 꾸준히 다시 찾아가는 단골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일시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경우는 많지만, 진짜 팬을 만들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인타운에 새롭게 오픈하는 한식당들을 보면, 이 ‘근본’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식당의 진정한 기반은 누구보다 한인 손님들이다. 물론 타인종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성공하는 곳도 있지만, 한식당의 기본은 결국 제대로 된 한식의 맛이고, 이를 가장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이들은 역시 한인들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레스토랑 키’의 김기용 셰프와의 인터뷰에서도 나왔다. 김 셰프는 뉴 코리안이라는 고급화된 한식을 선보이며, 개업한 지 두 달 만에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LA의 미식가들은 ‘진정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음식 스타일이건 ‘본질’에서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곱씹어보니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멕시칸 음식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라티노 손님이나 직원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면, ‘혹시 가짜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중식당을 찾았는데,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오가고, 손님들 대부분이 중국계라면, 왠지 신뢰가 생긴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한인타운의 한식당들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에서 반짝 인기를 얻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인 손님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한식당의 기본은 결국 한식을 가장 잘 알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한인 사회다.   한인 손님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식당이라면, 타인종 고객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단단한 기반을 가진 곳만이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반짝 인기보다는, 한인사회를 근본으로 삼아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한식당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식당 성공 한식당 성공 한인 고객 최근 한인타운

2025.04.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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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챗GPT야,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인공지능(AI) 기술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최근 챗GPT가 이제 과거 사용자와의 모든 대화를 기억하고,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도록 메모리를 대폭 향상했다고 밝혔다.     올트먼은 이전에 챗GPT와 나눈 말, 좋아했던 주제, 자주 묻는 말까지 모두 저장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보 수집 등 보안 문제에 대해선, 사용자가 이 기억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용을 삭제할 수도 있고, 저장되지 않는 ‘임시 대화 모드’로 전환해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아주 똑똑하고 편리한 기술처럼 보인다.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고, 오래전 이야기까지 이어받아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기억하는 AI’가 사용자에게 좋은 점만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술 편의성의 이면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숨어 있다.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 구조를 설명한 바 있다. 인간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코끼리에 대한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든다는 것이 이 비유의 설명이다. 어떤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해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AI의 시스템과도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이 AI에 뭔가를 “하지마”라고 명령하는 것보다 뭔가를 “해”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답변 생성 방법이라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처럼 문제는 AI에게 “기억하지 말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그 대화의 맥락이나 패턴이 이미 언급 및 학습되었다면 완전히 지웠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삭제된 것처럼 보여도, AI는 그 흔적을 통해 여전히 사용자에 대해 추론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구조는 인간의 무의식과 닮은 듯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없고, 통제하기도 어렵다. 반면 AI는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명령에 따라 그 정보를 호출하거나 숨길 수 있다. 문제는 AI가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사용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최근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지브리 스타일 프로필 사진’은 이러한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용자들은 단순히 재미로 얼굴 사진을 챗GPT에 업로드했지만, 그 이미지가 어떻게 저장되고 활용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AI는 별다른 고지 없이 업로드된 사진을 AI 학습에 사용하거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한다. 그 과정에서 얼굴 정보는 물론이고, 나이, 성별, 인종 같은 민감한 정보까지 수집될 수 있다.   이처럼 AI의 기억과 데이터 활용이 결합되면, 사용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대한 정교한 프로필이 생성될 수 있다. 취향, 감정, 사고 패턴, 말의 뉘앙스 등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분석되면서, 우리는 어느새 기술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다. AI가 저장한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사용자의 디지털 자아로 확장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AI가 기억을 바탕으로 더 정교한 추천을 해주고,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주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억의 흐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을 쓴 또 다른 형태의 감시일 수도 있다.   무심코 나눈 대화, 단순히 재미로 올린 사진 한 장, 아무렇지 않게 누른 클릭 하나가 AI의 기억에 남아서 그 이후의 대화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기술을 신뢰하기 전에 먼저 ‘내 정보는 안전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지금 기능 향상도 좋지만 적절한 안전 조치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기억을 강화하는 AI가 아니라, 잊어야 할때 잊을 줄 아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코끼리 생각 사용자 입장 사용자 본인 최근 사용자들

2025.04.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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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해석은 자유지만, 강요는 폭력이다

LA 다저스가 백악관을 방문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해 대통령의 초청을 수락했다. 현직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유만으로, 이 전통적인 행사는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일부 팬은 “라틴계 팬들에 대한 배신”이라며 분노했고, 지난달 25일 백악관 청원홈페이지 Change.org에는 “방문을 철회하라”는 청원이 개설됐다.   내용은 “우리 연고팀이 포용과 다양성을 버리고 정치적 세력과 손잡았다”는 주장이다. 또 “다저스는 단순한 야구팀이 아니다. 이 도시에 뿌리내린 역사와 커뮤니티의 상징”이라는 메시지도 줄을 이었다. 청원에는 8일 기준 2000명이 넘게 서명했고, 서명자는 실명으로 “(다저스가)부끄럽다”, “이것은 LA의 가치가 아니다”라며 항의하고 있다.   이런 반응은 다저스가 가진 상징성, 지역성과 관련이 깊다. LA 대표 스포츠팀인 다저스의 팬층 상당수는 라틴계와 유색인종이다. 이들은 다저스를 ‘우리 팀’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이번 백악관 방문이 ‘단순한 일정’이 아닌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팀은 연고지의 팬심을 외면할 순 없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나 보면,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 백악관 방문이 언제부터 특정 정권에 대한 ‘지지 선언’이 됐는가.   백악관 초청은 우승 팀의 상징적 순간으로 여겨졌다. 오바마 시절에도, 바이든 시절에도, 대부분의 챔피언 팀은 초청을 수락했고, 선수들은 웃으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번에는 달랐다. ‘트럼프’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맥락이 삭제되고 정치적 선과 악의 프레임이 씌워진다. 팀이 한 명의 선수도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발표하자, “모두가 공모자”라는 식의 낙인이 등장했다. 무키 베츠 선수는 “정치적 이유가 아닌, 팀에 대한 연대”라며 해명했지만, 그조차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피하지 못했다.   스포츠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선택이든 정치적 의미로만 해석하고, 다른 해석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건강하지 않다. 모든 행동에 정치적 상징성을 덧씌우는 건, 표현의 자유라기보다 정치적 해석의 독점에 가깝다.   특히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비난의 주체들이 평소 ‘다양성’과 ‘포용’을 가장 강하게 외치는 진영이라는 사실이다.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정의한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 선택은 인정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태도다.     이런 흐름은 스포츠를 넘어 기업과 개인 소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슬라다.   전기차의 상징으로 불리던 테슬라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는 일론 머스크 CEO의 발언 이후, 일부 극좌 진영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 여파로 지난달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테슬라 매장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랐다.     17일 샌디에이고의 한 매장 외벽에는 나치 문양의 낙서가 그려지고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18일 라스베이거스 서비스 센터에서는 차량 5대가 방화로 전소됐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머스크가 트럼프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테슬라 자체가 정치적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정치적 해석이, 폭력의 정당화 논리로 작용한다.   불매운동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단지 테슬라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차량에 불을 지르고 총을 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이자 위협이다. 이 때문에 FBI는 “정치적 테러의 초기 단계”라며 특별 수사에 착수했다.   우리 모두 자문해야 할 질문이 있다. 모든 행동은 정치적 의미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 해석이 언제나 정당한가. 우리가 말하는 ‘다양성’이란 과연, 서로 다른 선택을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를 말하는가.   다저스가 백악관을 방문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승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사랑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성능과 기술력 때문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해석의 자유가 누군가의 선택을 억압하고, 비난하며, 공격까지 정당화한다면 그건 더 이상 다양성이 아니다.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양성은 말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자유 강요 정치적 상징성 백악관 청원홈페이지 백악관 방문

2025.04.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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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류 르네상스, 깊이가 숙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LA 킹스가 지난달 23일 홈구장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한국 문화 축제인 ‘K-타운 나이트’를 성황리에 개최하며 LA 한인 사회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코리아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과 하모니카 연주, 한인 DJ가 선사하는 K-팝의 향연은 경기장을 찾은 현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런가하면 LA 다운타운에선 한국 미슐랭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돼지곰탕 전문점 ‘옥동식’의 팝업 식당이 연일 화제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2월까지 9개월간 운영될 예정인 옥동식 팝업 매장은 뉴욕타임스도 극찬한 한국 전통의 맑은 돼지곰탕 맛을 LA 미식가들에게 선보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도넛 브랜드 ‘카페 노티드’가 오는 12일 LA에 미주 1호점을 오픈하며 디저트 시장까지 K-열풍을 이어갈 전망이다.   스포츠, 음식,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최근 LA에서는 그야말로 ‘한류 르네상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LA 문화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한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등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한류 소비는 한국 문화를 ‘겉으로 즐기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 대한 반응은 뜨겁지만, 그 이면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어, LA 현지인들이 한식을 맛본다고 해도 김치나 곰탕 한 그릇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철학, 역사적 의미까지 깊이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LA타임스의 저명한 음식 비평가 빌 에디슨과의 인터뷰에서 삼계탕을 메뉴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삼복(三伏)’이라는 절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유래나 담긴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삼복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해주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 당시 에디슨은 “한식이 진정으로 타인종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정통 한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확산이 필요하며, 그 수요는 한국인들의 생각 이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K-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나 시대적 배경, 사회상은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현재의 한류 소비는 콘텐츠라는 ‘결과물’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 문화적 ‘맥락’까지 깊이 공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피상적인 소비 형태가 지속된다면,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머지않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한류를 지속 가능한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 문화가 지닌 고유한 ‘문화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단순한 볼거리나 먹거리를 넘어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과 가치관, 삶의 지혜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함께 전파해야 한다. 화려한 K-팝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LA를 비롯한 타지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온 한인 이민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조명될 때, 비로소 감상자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대학의 한국학 강좌나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처럼 언어와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창구를 더욱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일회성 문화 체험이 장기적인 관심과 깊이 있는 이해로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전략적인 지원과 연대 또한 중요하다. 문화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태미 김 전 어바인 시의원은 지난 2022년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소름 끼칠 만큼 치밀한 로비로 미국 사회에서 문화 영향력을 유지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민간 차원의 뜨거운 열정에 더해 한국 정부와 LA 한인 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한류의 제도적 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갈 때, 한국 문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미국 사회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진정한 ‘생활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LA 킹스의 ‘K-타운 나이트’ 행사장에서 뜨거운 함성, 옥동식 팝업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달콤한 K-도넛의 인기. 이 모든 현상이 단순한 유행으로 스쳐 지나갈 것인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 한국의 이야기를 깊이 새기는 문화의 씨앗이 될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고민에 달려 있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르네상스 한류 한국 대중문화 한류 르네상스 한국 문화 김경준 미국 캘리포니아 가주 엘에이 로스앤젤레스 LA뉴스 한인 뉴스 미주 한인 한인 LA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2025.04.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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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국 사회의 변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을 왔다.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다. 대학을 다니면서 항상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 부러웠다. 특히 취업할 때가 되니 더 그랬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경기는 극도로 침체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을 비자까지 줘가면서 고용할 회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던 기업의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외국인이어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영주권자가 되고 이후 시민권도 땄다. 시민권자가 되고 나서 처음 투표를 할 때는 감개무량했다. 한국영사관에 찾아가서 국적상실 신고를 할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나라는 사람은 바뀐 게 없는데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적’이 바뀌니 많은 일이 달라졌다.     내 주변에는 영주권을 취득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한인들도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영어 시험이 두려워서라는 사람도 있고 후에 역이민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혹은 본인이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더 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최근 반드시 시민권자가 돼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주권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한인 대학생 정윤수 씨의 이야기다.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는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영주권 박탈과 함께 추방 위기에까지 몰려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현재 정 씨는 영주권 박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법원은 추방 절차 중단을 명령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 때문에 7살 때부터 살아온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나 합법적 비자 소지자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미국으로 다시 입국할 때의 조사도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심증 질문과 전자 기기 검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미리 시민권을 취득하길 잘했다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시민이 되겠다고 선서한 미국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한인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은 정 씨의 영주권 박탈을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했고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조치는 불법적이며 헌법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도 “다른 의견을 갖는다고 추방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미국은 동경의 대상 중 하나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항상 미국은 지구를 지키는 국가였다.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와 경제를 가진 선진국이 없다. 유학 시절부터 가까운 곳에서 본 미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멜팅팟’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사는 이곳에서 다양성은 미덕의 하나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이러한 경향이 쇠퇴하는 것 같다. 지난 20년간 미국에 살면서 본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시민권 선서를 할 때 생각했던 나라 와도 차이가 있다. 변화하는 미국을 시민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미국 사회 시민권 선서 영주권 박탈과 이후 시민권

2025.04.0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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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페이스북의 부활, ‘친구’로 돌아간다

페이스북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다시 한번 시작됐다.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오리지널 페이스북(OG Facebook)’으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그 첫 번째 변화로 ‘친구 탭(Friends Tab)’ 기능을 출시했다.   친구 탭은 이름 그대로, 오직 ‘친구’들의 콘텐츠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더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광고, 유명인의 포스트에 뒤덮이지 않고, 친구들의 게시물, 스토리, 릴스, 생일 알림 등 순수한 인간관계의 흔적만이 남는다. 이른바 옛날 페이스북의 원형을 되살리겠다는 시도다.   오리지널 페이스북은 2004년 하버드 대학생이었던 저커버그가 친구들 간의 교류를 위해 만들었던 그 초기 형태를 의미한다. 당시 페이스북은 ‘친구들과의 연결’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었고, 사용자는 피드를 열면 오직 친구들의 근황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관계 중심의 구조였다. 지금처럼 광고, 페이지, 추천 콘텐츠, 릴스, 쇼핑이 범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페이스북은 달라졌다. 피드는 점점 알고리즘의 손에 맡겨졌고, 내가 팔로우하지 않은 계정의 영상이 뜨고, 광고는 친구들의 소식을 밀어냈다. 메타는 수년에 걸쳐 그룹, 동영상, 마켓플레이스 등 다양한 기능을 발전시켰지만, ‘친구들과의 연결’이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이런 변화를 견디지 못한 건 특히 젊은 층이었다. 2014년만 해도 10대들의 페이스북 사용률은 70%를 넘었지만, 최근엔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신 이들은 틱톡, 스냅챗, 인스타그램으로 떠났다.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이고, 더 유행에 가까운 플랫폼들이었다. 이렇게 페이스북은 늙어갔다. 지금 페이스북의 주이용층은 40대 이상, 점점 더 고령화되는 플랫폼이라는 조롱도 나온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커버그의 OG 페이스북 복귀 선언은 일종의 회귀다. 그는 “페이스북을 다시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앱으로 만들기 위해 단기적 수익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만큼 지금의 위기가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친구 탭’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업데이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OG 페이스북이 과연 지금 시대에 통할지에 대한 것이다. OG 페이스북이 가졌던 단순함과 연결의 진정성은 지금도 분명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습관은 이미 바뀌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유저들은 이제 추천 콘텐츠를 보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유행하는 릴스와, 유명인의 숏폼 영상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G 페이스북이 가진 가능성은 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1인 미디어로 바뀌는 시대에, 진짜 친구들과의 연결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오직 친구만’이 등장하는 공간은 과거의 향수뿐 아니라, 디지털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러면 OG 페이스북은 단순함, 사적인 공유, 믿을 수 있는 관계라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광고보다 친구를 앞세우고, 알고리즘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단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맞는 OG 페이스북을 만들어야 한다.   페이스북이 부활하려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페이스북 부활 진짜 친구들 추천 콘텐츠 광고 페이지

2025.03.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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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쿵 플루’는 필요 없다

최근 시카고 서버브 나일스의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괴편지가 날아왔다. 편지 내용은 아시안 비하 내용이었다. 지면을 통해 자세히 옮기기 민망할 정도의 어조로 식당 주인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는 ‘쿵플루(Kung Flu)’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쿵플루는 중국 무술 쿵푸(kungfu)와 독감(flu)을 합성한 말이다. 중국인 등 아시안들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다닌다는 의미로 팬데믹 이후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들이 자주 듣게 된 비하 용어다. 그러면서 당장 식당 문을 닫지 않으면 갱 조직의 행동으로 공격하겠다는 표현도 들어가 있다.     편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식당 주인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편지는 백인 판사 클럽의 제프리 워닉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추신으로는 판사로 일하는 최고의 장점은 무엇이든 맘 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편지의 심각성은 현직 판사를 사칭했다는 것이다. 제프리 워닉 판사는 쿡 카운티 순회법원 판사로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워닉 판사가 보낸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편지는 판사 이름을 사칭해 혐오스런 아시안 비하 용어를 마음대로 내뱉고 있다.     당장 워닉 판사가 소속된 쿡 카운티 순회법원측은 성명서를 내고 심각한 사안이라며 수사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티모시 에반스 쿡카운티 판사장은 “현직에 있거나 은퇴한 판사들의 명예를 실추한 사건으로 관련 기관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연방수사국(FBI)에도 이를 알렸다”고 언급했다.   이 편지는 또 나일스의 한식당에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에반스톤과 모톤그로브, 스코키 등 한인 밀집 지역의 소수계가 운영하는 식당 5~6곳에 이와 같은 형식의 혐오 편지가 배달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인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편지 내용에도 언급된 것과 같이 흑인과 라티노,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간 시카고는 다른 대도시인 뉴욕이나 LA에 비해 아시안 혐오 범죄의 피해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었다. 적어도 주요 언론을 통해서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묻지마 혐오 범죄의 타깃이 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볼 정도다.     하지만 이제 시카고뿐만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한인사회도 아시안 혐오범죄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보여졌다. 혐오 범죄는 당하는 사람이 조심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순히 피부 색깔만으로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관할 나일스 경찰은 편지를 발송한 자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했다. 편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지문을 채취해 누가 발송했는지 여부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도시의 경찰과 협조 수사를 통해 동일범의 소행인지, 복수의 가해자인지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한인사회 역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신속하게 나왔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에서는 해당 사건을 인지한 즉시 변호사와 의견을 나눴다는 점을 확인한 뒤 관련 수사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지역 정치인들에게도 이러한 한인사회 의견을 전달했다. 한 사람의 식당 주인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차원에서 대응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혐오 범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뉴스에서 가끔 접하는 다른 세상의 일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검증될 수 없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현실 속에서 이민자로, 아시안으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고심하게 된다.     이는 이민 1세대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태어난 우리 후세들에게도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단지 피부색 때문에, 생김새 때문에, 성 정체성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은 본인 스스로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진 않았을까 하는 뒤돌아 봄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춘호 / 시카고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플루 kung 아시안 혐오범죄 카운티 순회법원측 아시안 비하

2025.03.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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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카고 방갈로와 정치인

시카고 지사 기자건축 양식을 일컫는 말 중에 방갈로(bungalows)라는 말이 있다. 인도 뱅갈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건축 양식을 뜻하는 말로 사용됐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크지 않은 면적 위에 자리잡은 단층 주택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방갈로의 특징은 높은 천장과 큰 문, 넓은 창, 처마와 베란다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에서도 전형적인 방갈로 주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남부에, 일부 서부와 북부 지역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주택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건축계에서는 이런 시카고 방갈로 주택이 고층 건물을 뜻하는 마천루(skyscraper)에 못지 않은 시카고 건축의 역사와 특징을 나타낸다고 평가한다. 마천루의 탄생지로 시카고가 인정받는데 비해서 방갈로는 그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갈로는 1900년대 초반부터 시카고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 쿡카운티에만 약 8만 채에서 10만 채의 방갈로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집에 입주한 주민들은 대부분 이민 1세대들이었다. 방갈로 벨트라고 불리는 지역으로는 사우스 쇼어에서 마켓 파크까지, 오스틴에서 노스웨스트 지역, 웨스트 로저스 파크까지에도 방갈로가 차지하고 있었다. 방갈로에 거주한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확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집은 중산층을 의미하기도 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고 이들이 자라게 되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야했겠지만 방갈로는 첫 보금자리의 의미가 컸다. 집을 임대하지 않고 첫 주택을 장만한다는 것은 또 부의 축적을 뜻했다. 에쿼티가 커지면 대출을 할 수도 있었고 그만큼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이 늘어난다는 것과 의미가 상통했다.   당시 부동산 광고도 이런 측면을 강조했다. 아서 맥인토시라는 주택 건축 회사는 당시 시카고 트리뷴에 낸 광고를 통해 “우리는 지붕이 있고 벽난로도 설치됐으며 전기 조명, 난방장치까지 갖추고 모든 방이 멋지게 꾸며져 있는 시멘트 토대의 집을 500달러 현금과 월 40달러에 판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외관적으로는 방갈로에 넓은 유리창이 적용됐고 붉은색이나 노란색 벽돌이 체커보드 패턴으로 사용됐다.     또 출입구에는 베란다가 만들어져 의자 하나 둘 씩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시티 라이트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방갈로의 형식은 간단하다. 보통은 지하가 지상 위로 약간 돌출된 모양을 가진 1층 반 짜리 주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락방이 있고 지하실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침실을 추가할 수 있었고 주거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규모 역시 클 수가 없었다. 시카고의 한 부지가 보통 25피트에서 35피트 넓이다.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주택을 지어야 했기에 옆 주택과 촘촘히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방갈로 주택의 창문과 창문은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깝다. 그래서 옆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공간적 제한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옆집과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실내 공간 역시 넓지 않았기 때문에 복도를 통해 옆방으로 이동할 수 있기보다는 거실과 침실을 문을 통해 드나드는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이를 ‘레일로딩(railroading)’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열차 내부 설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유래했다. 방갈로가 당시 대표적인 주택 양식으로 널리 사랑받게 되자 정치인들에게도 하나의 표식으로 여겨졌다. 리차드 J 데일리 시카고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즉 방갈로에 살고 있다는 의미는 서민, 일반 노동자들과의 연대감 혹은 교류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혔다.     연방 하원이었던 윌리암 리핀스키는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은 도시의 방갈로에 살지만 상대 후보는 교외의 크고 멋있는 주택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우편물을 보내 차별화를 시도했고 이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선에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시카고 시는 이런 자산인 방갈로의 보전을 위한 정책도 펼쳤다. 2000년에 방갈로를 구입하거나 개조하고자 하는 주민들에게는 재정적 보조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이다. 이 정책은 리차드 M 데일리 시장이 추진했는데 자신도 역시 방갈로와 함께 한 경험이 풍부했다. 아버지 데일리 시장이 남서부 브릿지포트에서 일생을 방갈로에 살았고 자신 역시 시장 임기 마지막 몇 해를 제외하곤 방갈로에 살았기 대문이다.     아들 데일리 시장이 방갈로에서 나와 시 남부 고급 고층 콘도로 이사하는 것을 두곤 시장 선거에서 낙선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정치인과 방갈로로 상징되는 중산층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여겨졌다. 아들 데일리 시장은 “방갈로에서 자란 우리들은 우리 가슴 속에 항상 방갈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시카고 방갈로 시카고 방갈로 방갈로 주택 방갈로 벨트

2025.03.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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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레이커스 경기장에 뜬 숫자 ‘100’

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간판 스타였던 루카 돈치치가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는 모습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LA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그가 LA로 트레이드된 이후 레이커스는 보스턴과 맞붙은 원정 한 경기를 제외하고 연승을 거두며 NBA 서부 컨퍼런스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6일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 접전 끝에 113-109 승리를 거뒀다. 르브론 제임스는 31득점 12리바운드로 팀을 이끌었고, 돈치치는 20득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격과 경기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레이커스의 JJ 레딕 감독은 경기 후 “우리 선수들의 후반 수비력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르브론과 루카의 움직임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돈치치의 합류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었다. 그는 레이커스를 다시 우승 경쟁팀으로 끌어올릴 차세대 슈퍼스타다. 일각에서는 르브론과 공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두 선수는 오히려 환상적인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흔을 넘긴 르브론은 돈치치가 볼 핸들링을 분담하면서 체력 관리가 수월해졌다. 덕분에 경기 후반에도 강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뉴욕전처럼 클러치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비에서도 돈치치의 존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단순한 득점원이 아니라 팀 밸런스를 맞춰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르브론이 수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최근 레이커스의 수비 효율성은 리그 1위까지 상승했다. 뉴욕전 4쿼터에서 단 15점만을 허용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돈치치의 이적은 그의 친정팀인 매버릭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5일, 그는 트레이드 후 처음으로 친정팀 댈러스를 상대하며 19득점 15리바운드 12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 후 그는 “(댈러스가 날 트레이드한 것에 대해)감정이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레이커스 팬들이 “땡큐 니코(Thank You, Nico!)”를 외쳤다. 댈러스 단장 니코 해리슨이 돈치치를 트레이드한 것을 비꼬는 의미였다.   처음부터 이 트레이드는 논란이었다. 돈치치를 내보낸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댈러스는 카이리 어빙과의 조합을 유지하며 새로운 전력을 구성하려 했지만, 오히려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돈치치 트레이드로 얻은 앤서니 데이비스마저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댈러스의 시즌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다.   댈러스 팬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경기장에는 빈 좌석이 늘어났고, SNS에서는 ‘#해리슨아웃’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오를 정도다.   반면, 레이커스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돈치치와 르브론의 조합은 공격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에서도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력까지 리그 최상위권으로 올라서면서 팀의 완성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JJ 레딕 감독은 “이제 우리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조직력과 팀워크가 우리의 새로운 무기”라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는 르브론(23번)과 돈치치(77번)의 등번호를 합친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포스터와 사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선수의 시너지가 극대화됐다는 의미이자, 팬들의 기대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루카 돈치치의 합류는 레이커스의 DNA를 다시 세팅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팀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코비 브라이언트 이후, 다시 한 번 NBA 정상을 노릴 슈퍼스타가 나타났다.   레이커스 팬이기 이전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도, 댈러스가 돈치치를 레이커스로 보낸 이유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이제 레이커스의 중심이며,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팀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레이커스 경기장 최근 레이커스 이후 레이커스 레이커스 팬들

2025.03.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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