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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당일치기 해외여행 떠나는 이유

한때 여행은 길게 떠나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먼 나라로 떠나 일주일, 길게는 한 달간 머무르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여행은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탈출이었고, 그 자체로 시간과 금전적 여유를 상징하기도 했다. 멀리 갈수록, 오래 머물수록 더 좋은 여행이라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마이크로트립(microtrip)은 이 공식을 흔들고 있다. 길어야 2박3일, 짧게는 24시간 남짓 해외를 다녀오는 여행이다. 뉴욕에서 케냐를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고, 서울에서 일본으로 가 라멘 한 그릇 먹고 돌아오는 식의 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비현실적인 여행처럼 보였다. 장거리 비행까지 감수하고 갔는데 며칠 만에 돌아오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 그러나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이것이 단순한 SNS(소셜미디어) 챌린지나 과시성 콘텐트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며 등장한 새로운 휴식 방식이라는 점이다.   요즘 긴 휴가는 점점 사치가 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장기 휴가를 내기 어렵고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는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가 손해다. 고물가로 항공료, 숙박비, 외식비 부담까지 커졌다. 예전처럼 큰맘 먹고 긴 여행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휴식 욕구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번아웃과 피로가 누적된 시대에 더 절실해졌다.   마이크로트립은 이런 조건 속에서 힘을 얻고 있다. 멀리 오래 떠날 수 없다면 짧게라도 제대로 쉬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단순한 궁핍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크로트립이 보여주는 건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아니라 휴식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다. 비용 때문에 줄여서 가는 여행 같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유의 방식이기도 하다. 예전 여행이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연차를 맞추고, 예산을 짜는 프로젝트였다면, 마이크로트립은 훨씬 가볍고 즉흥적이다. 값싼 항공권이 뜨면 주말에 훌쩍 떠났다가 돌아온다. 여행이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일정이 짧아졌다는 의미 이상이다. 여행의 가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밀도 있게 쉬고 돌아왔는지가 중요해졌다. ‘멀리 오래’보다 ‘잠깐 제대로’라는 가치 변화다. 오히려 짧은 여행은 집중도가 높다. 하루 이틀밖에 없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선명하다. 군더더기 없는 여행이 된다. 긴 일정에서 생기는 피로와 소비도 줄일 수 있다.   SNS에서 마이크로트립이 확산하는 것도 단순히 알고리즘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잠재된 욕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틱톡에서 하루짜리 해외여행 영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모두가 따라 할 수 있어서만이 아니라, 모두가 한 번쯤 꿈꾸는 ‘짧은 탈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크로트립은 단순 여행 트렌드가 아니라 현대인의 생존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동 피로, 단거리 국제선 비용 대비 효율 문제 등과 같은 비판도 있다. 또 짧은 여행이 장기 휴가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트렌드가 던지는 질문은 흥미롭다. 왜 사람들은 이제 멀리 오래 떠나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자주 떠나기를 원하는가. 오래 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휴가조차 사치가 된 시대, 마이크로트립은 포기의 산물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선택지다.     마이크로트립이 긴 여행을 대체할 수는 없어도, 지친 일상에 숨을 틔워주는 틈이 될 수 있다. 송윤서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당일치기 해외여행 당일치기 해외여행 하루짜리 해외여행 여행 트렌드

2026.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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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MZ세대가 주목하는 소매 업계

요즘 한국 MZ세대(20~30세)의 모임 풍속도는 선배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더는 술자리가 모임의 중심이 아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운동이나 식단 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 참석 횟수가 줄고, 술자리에 가더라도 술은 마시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흐림이 나타나고 있다. MZ세대의 음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이른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흐름이 있다.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의 선택 기준도 함께 바뀌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하루 컨디션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이 하나의 기준처럼 자리 잡았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관련 비즈니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은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변화다. 헬스나 러닝처럼 접근하기 쉬운 활동이 일상 루틴으로 이어지고, 짧은 시간을 활용해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술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다음 날 피로감이나 숙취보다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선택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운동 후 기록을 남기거나 식단을 공유하는 문화 역시 확산되면서 생활 전반이 ‘관리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에 식습관도 같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됐다.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당분이나 가공식품은 가급적 피하는 선택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술은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외식 문화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건강을 강조하는 식당들이 빠르게 늘고, 샐러드 전문점이나 고단백 식단 중심 레스토랑, 유기농 재료를 내세운 브랜드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메뉴 구성 역시 가볍고 균형 잡힌 방향으로 바뀌고, 음료도 저당이나 기능성을 강조한 선택지가 제공된다.   주류 선택의 변화도 뚜렷하다. 논 알코올 맥주와 무알코올 칵테일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알코올 없이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이 확장되는 흐름이다.     동시에 알코올 도수가 낮은 하이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도 주목받고 있다. 많이 마시는 것보다, 부담 없이 즐기는 방식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요인도 영향을 준다. 물가 상승으로 외식비와 주류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음주는 점점 신중하게 선택하는 소비가 됐다.     비용이 오르면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선택이 늘고 있다. 같은 비용이라면 운동이나 취미, 새로운 경험에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카페를 가거나 함께 운동하거나, 취미를 공유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술이 아닌 다른 음료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지면서, 만남의 형태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다.   MZ세대의 음주 감소는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 비용 상승, 시간 활용 방식의 변화가 함께 만들어낸 흐름이다. 몸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일상의 리듬을 지키는 선택이 중심이 되면서, 음주 방식도 그에 맞게 정리되고 있다.   지금 업계는 MZ세대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시간을 쓰고, 어떤 경험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분석에 분주하다. 그들이 소비시장의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영채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소매 업계 선택 기준도 소매 업계 음주 방식

2026.04.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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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드웨이 블릿츠 작전’이 남긴 의문

시카고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실시된 불법 이민자 체포 작전인 ‘미드웨이 블릿츠(Operation Midway Blitz)’ 관련 자료가 공개됐다. 이전에도 통계는 있었지만 전체 기간을 대상으로 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통계는 ‘추방자료프로젝트(Deportation Data Project)’라는 단체가 이민세관단속국(ICE)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시카고를 포함한 중서부 지역에서 체포된 후 브로드뷰와 사우스 루프 지역에 위치한 ICE 구금시설로 옮겨졌던 이민자들이 대상이다. 일부는 출신국으로 추방됐고, 아직 구금시설에 있는 사람도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8일 작전 개시 이후 11월 10일 단속이 완화될 때까지 총 3790명이 체포됐다. 그중 2479명이 추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로는 체포자 수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수준까지 떨어진 점이 주목된다.   트럼프 정부는 작전의 목적이 불법체류 중범죄자들의 추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체포된 이들은 중범죄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작전이 정점이던 지난해 가을 하루 60명가량씩 체포된 시기에도 60%는 범죄 전력이 없었다. 범죄 전력이 확인된 것은 15%에 불과했고,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도 25%나 됐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시 범죄 전력이 없는 불법체류자 체포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작전은 불법체류자를 체포부터 하고 봤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참고로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연간 703명, 하루 평균 1.9명의 불법체류자가 체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체포 작전이 한창이던 당시의 평균 59.2명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여준다.     미드웨이 블릿츠 작전으로 체포된 범죄 전력 불법체류자 중에도 성폭행, 폭력과 같은 중범죄자는 3~5.6%에 불과했다. 음주운전과 같은 교통 관련 범죄가 20%, 이민법 관련 범죄가 5.6%, 그 외의 다른 범죄가 29.6%로 집계됐다.     체포된 이민자의 국적을 보면 멕시코가 1797명으로 가장 많았고 베네수엘라 554명, 과테말라 268명, 에콰도르 190명, 콜롬비아 173명, 온두라스 118명 등 중남미 국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 밖에 인도 65명, 러시아 61명, 폴란드 46명, 중국 28명, 한국 1명이 포함돼 있었다. 출신 국가별로는 베네수엘라 이민자 중에서 범죄 기록이 전혀 없는 경우가 78%였고 콜롬비아와 니카라과 73%, 에콰도르 69%, 과테말라 66%, 온두라스 53% 등이었다. 멕시코 국적 중에서 범죄 기록이 없는 경우는 47%였다.   트럼프 정부가 불법체류자 체포 작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범죄자 추방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게 됐다. 그보다는 불법체류자 추방을 지지자 결집용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불법체류자 체포와 추방을 선택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지지하는 것도 추방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사례에 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도 법원 판결과 같은 정당한 법의 절차(due process)가 뒤따라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었기에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2명의 시민이 이민 당국 요원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불법체류자의 체포와 추방도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민 사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근본적으로 ‘미드웨이 블릿츠 작전’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곰곰이 따져볼 때가 됐다. 혹시 특정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은 아닌지, 사회 불안 요소 제거라는 명분으로 법적 절차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미드웨이 블릿 불법체류자 체포 체포 작전 불법체류 중범죄자들

2026.04.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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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법망 피하는 관리되지 않는 위험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발생한 한인 임신부 총격 피살 사건이 범인의 무죄 판결〈본지 3월 23일자 A-4면〉로 종결됐다. 법원은 범인인 코델 구스비의 심신상실을 무죄 판결 이유로 밝혔다. 전문가들이 일치된 의견을 냈고 검찰도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법적으론 설명이 가능하다. 범행 당시 범인에게 책임 능력이 없다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은 근대 형법 체계의 오랜 근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적 논리가 유족의 슬픔과 사회적 공분을 메우지는 못한다. 판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형사적 처벌이 사라진 비극 앞에서 사법 체계가 말하는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3년 6월 13일 시애틀 벨타운 교차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에 접근한 코델 구스비는 운전석을 향해 최소 여섯 차례 총격을 가했다. 차량에는 임신 8개월의 한인 여성 권이나씨(당시 34세)가 타고 있었다. 권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응급 분만으로 태어난 딸 에블린도 끝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을 담당한 킹카운티 검찰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만 약 100건의 살인 사건이 범인의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연평균 2~3건의 살인 사건이 처벌이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넘어간 셈이다.   무죄는 법적 선언일 뿐이다. 재범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증명은 아니다. 범행 당시의 판단 능력 상실은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구스비의 과거 기록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과거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20년 인디애나주에서의 가정폭력 사건으로 수배 상태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중범죄 전력으로 총기 소지가 금지된 상태였다. 그는 사건 당시 훔친 권총을 사용했다. 이번 범행이 예측 불가능했는지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정부는 구스비와 같은 인물을 정신 치료 시설 수용 등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현실은 충분하지 않다. 연방 보건자원서비스관리국(HRS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약 1억2200만 명의 미국인이 ‘정신건강 전문 인력 부족 지역’에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약 37%나 된다. 장기 치료 시설은 부족하고 강제 치료 기준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정신 건강 시스템의 실패”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위험인물이 적절한 치료와 감시 없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시스템의 구멍이 무고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범인에 대한 심신상실 판결은 피해자 가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다.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지워지는 순간, 피해자의 고통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형사 재판이 처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때,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의 인권과 정신 상태를 따지는 동안 피해자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법은 가해자의 뇌 구조와 심리를 분석하지만, 무너진 피해자의 삶을 복구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사법 구조에서 피해자 가족을 위한 지원과 보상은 늘 부차적인 문제다.     법이 응징을 통한 정의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보완책이라도 즉각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해자의 ‘치료받을 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판결의 정당성 논쟁을 넘어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무죄 판결 이후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치료는 실효성이 있는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관리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가, 피해자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상실감을 치유할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는가 등이다.   법이 완벽한 정의를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에는 최소한 비극의 반복을 막을 의무가 있다.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격리와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무죄 판결 이후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한다. 대책 없는 관용과 방치된 시스템은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방조 행위와 다르지 않다. 관련기사 한인 임산부 살해범 무죄 판결…“범행 당시 정상적 판단 상실” 강한길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법망 무죄 판결 정신 치료 형사적 처벌

2026.04.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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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CPAC<보수정치행동회의>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텍사스주 그레이프바인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현장은 일부 언론이 묘사한 ‘동력을 잃은 우파의 집결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분위기는 분명 뜨거웠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이러한 본질을 전달하기보다, ‘보수 몰락’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출 단편적 장면을 찾아내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CPAC 불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이를 곧바로 행사 규모 축소나 영향력 약화로 연결 지었다. 그러나 그의 불참 배경에는 현재 진행 중인 이란 전쟁이라는 중대한 변수가 있었다. 군 통수권자가 지지층의 환호가 예상되는 정치 행사 대신 백악관에서 국정 운영에 집중하는 것은 상식적인 선택에 가깝다. 오히려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축제 분위기의 행사에 참석했다면, 이들은 ‘전쟁 중 유희’라는 비판을 쏟아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이 채웠다. 토드 블랑쉬 법무장관 권한대행, 톰 호먼 국경 차르,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정책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CPAC이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현재 미국 보수 진영의 정책이 논의되고 공유되는 ‘정치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주류 언론의 왜곡은 현장 묘사에서도 두드러졌다. 뉴욕타임스는 보수 성향 유튜버 닉 셜리가 연단에 섰을 당시 좌석 일부가 비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젊은 보수의 쇠퇴’를 언급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연말 미네소타 복지 사기 사건을 폭로하며 혜성처럼 떠올랐다. 셜리는 지난달 26일 두 차례 무대에 올랐다. 대담 참여를 위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객석은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그는 기립박수와 함께 이날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이후 행사 마지막 순서로 다시 무대에 섰을 때 일부 좌석이 비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일정 끝에 일부 관객이 자리를 뜬 상황을 전체 흐름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특정 장면만을 부각해 전체를 규정하는 방식은 사실 전달이라기보다 ‘확증 편향’에 가깝다.     이번 CPAC에서 발표된 비공식 여론조사 ‘스트로 폴(straw poll)’ 결과는 그동안 주류 언론이 보수층 여론을 어떻게 다뤄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스트로 폴은 보수 핵심 지지층의 인식을 가늠하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올해 조사에서는 CPAC 참가자 1630명 가운데 89%가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가 발표되자 현장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이러한 현장의 모습은 그동안 주류 언론이 마가(MAGA) 지지층 분열이라는 서사에 집중한 것과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줬다.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공론의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주류 언론은 사실 전달보다 특정 해석을 강화하는 데 더 익숙해진 모습이다. 보수 진영의 전통 있는 행사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보도는 결국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언론 스스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확인한 보수 진영의 에너지는 여전히 강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것은 보수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불편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단편적 장면이 아닌 전체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보수정치행동회의 왜곡 주류 언론 트럼프 대통령 정치 행사

2026.04.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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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디지털 시대에 부활한 ‘할머니 취미’

스마트폰을 덜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다. 그리고 ‘뜨개질 하는 법’, ‘자수 기초’, ‘컬러링 추천’ 같은 영상을 찾아본다. 디지털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디지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이른바 ‘할머니 취미’가 유행이다. 뜨개질, 자수, 퍼즐, 컬러링처럼 손을 쓰는 취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활동이 이제는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피로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쇼트 폼 영상과 알림, 무한 스크롤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는 느리고 단순한 활동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디지털이다. 자수를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뜨개질 패턴은 인스타그램에서 찾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도예를 배우고, 완성된 작품은 다시 SNS에 공유한다. 디지털을 떠나기 위해 시작한 취미가 결국 다시 디지털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현상은 지금 시대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디지털을 완전히 끊는 것은 더는 선택이 아니다. 대인관계와 일, 정보가 모두 스마트폰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일상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향을 바꾼다. 소비하던 시간을 생산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짧은 영상 하나를 보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대신,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다. 몇 초 만에 소비되는 콘텐츠 대신 몇 시간을 들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든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대신 손에 남는 것이 생긴다. 빠르게 소비한 콘텐츠는 쉽게 잊히지만, 직접 만든 결과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새로운 방식의 연결로도 이어진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고, 오프라인에서 함께 작업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방과 클래스에는 젊은 층이 늘고, 취미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디지털은 출발점이 되고, 아날로그 활동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동시에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회로도 이어진다. 손작업을 통해 만든 결과물을 온라인에 공유하며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취미가 곧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다시 수익으로 연결된다. 디지털을 벗어나려던 시도가 오히려 또 다른 방식의 디지털 활동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변화는 ‘속도’에 대한 인식이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빠를수록, 많이 소비할수록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서는 정반대의 가치가 중요하다. 천천히 반복하고,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된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경험은 빠른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집중력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흐름은 재미가 있다.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한 가지에 오래 몰입하는 능력은 점점 약해진다. 반면 손작업은 자연스럽게 집중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할머니 취미’의 부활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흐름이 디지털 피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보 속에서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됐다. SNS를 통해 배운 취미로 SNS에서 벗어나려는 이 움직임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덜 휘둘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어쩌면 그 짧은 전환이 이 시대가 찾아낸 가장 현실적인 해답일지 모른다. 송윤서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디지털 할머니 디지털 활동 디지털 피로 할머니 취미

2026.03.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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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하얏트 카드’ 루머와 거짓 정보 위험성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체이스 은행이 하얏트 호텔과 협업해 새로운 크레딧카드를 출시한다는 루머 글이 올라왔다.     문제는 루머가 매우 구체적이었다는 점이다. 기존 ‘월드 오브 하얏트’ 카드보다 연회비가 더 높은 상위 버전의 프리미엄 카드를 새롭게 출시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많은 호텔 크레딧과 강화된 호텔 멤버십 등급 및 포인트 적립을 근거로 들었다.     연회비와 혜택 구성이 최근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흐름과 유사하게 설계돼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루머가 아니라 실제 유출된 사업 계획처럼 정교해 보였다. 이에 해당 루머는 관련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졌으며 전문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 소문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분석된다.     이 루머가 빠르게 신뢰를 얻은 이유는 우선 ‘그럴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카드 업계는 연회비를 올리는 대신 다양한 크레딧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편돼 왔고, 호텔 체인 카드 역시 경쟁적으로 프리미엄화를 시도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하얏트도 결국 따라갈 것”이라는 인식이 이미 형성돼 있었고, 루머는 그 기대를 정확히 건드렸다.   확산 과정 역시 전형적인 가짜 뉴스의 패턴을 따랐다. 레딧에 올라온 게시글을 시작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댓글과 경험담이 이어졌고, 이른바 ‘데이터 포인트’가 쌓이면서 정보는 점점 사실처럼 굳어졌다. 이후 일부 크레딧카드 전문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이 이를 인용하거나 분석하면서 파급력은 더 커졌다. 공식 발표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였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됐다. 관련 내용에 대한 호텔이나 은행 측의 공식 확인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원글 작성자가 해당 게시물이 사실이 아니며 대학 과제를 위해 만든 가짜 시나리오였다고 직접 밝히면서 루머는 급속히 무너졌다. 그는 실제처럼 보이도록 인공지능인 챗GPT의 도움을 받아 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과 구조, 숫자를 의도적으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커뮤니티의 반응은 복잡하게 갈렸다. 일부 이용자들은 “충분히 믿을 만한 내용이었다”며 혼란스러움을 드러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또다시 루머에 속았다”는 자조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초기 단계에서 해당 내용을 다룬 일부 블로그에 대해서는 검증 없이 확산에 가담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반면, 이번 사건이 온라인 정보 생태계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정보의 진위보다 ‘그럴듯함’과 ‘반복’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완전히 낯선 이야기보다 익숙한 정보를 더 쉽게 믿고, 여러 번 접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금융이나 소비와 관련된 정보일수록 가능성만으로도 정보는 빠르게 퍼지며, 그 과정에서 루머는 짧은 시간 내 사실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다.   문제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정보를 충분히 검증할 시간과 여유는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출처보다 확산 속도, 사실보다 분위기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한 반복되고 있다.   하얏트 카드 루머 사태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가짜 뉴스 노출에 대한 취약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쉽게 믿지 않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능력이 되고 있다. 우훈식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하얏트 위험성 하얏트 호텔 프리미엄 카드 카드 업계

2026.03.2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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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경험’ 구매에는 지갑을 여는 이유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것’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일까. 최근 LA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카페 문화’를 취재하며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K카페를 찾는 고객들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을 남기고,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는 ‘경험’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뒀다. 특정한 콘셉트의 카페를 찾기 위해 제법 먼 거리에서 오는 고객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비용이나 시간보다 그곳에서 보내는 순간이 더 중요해 보였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는 분명 더 신중해졌다. 외식 횟수를 줄이고 장을 볼 때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행, 공연 및 전시회 관람 같은 체험에는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 생활비는 아끼면서도 여행과 체험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삶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개인의 안정과 성공을 설명했다면, 지금은 어떤 순간을 살아봤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낡거나 사라지지만 경험은 기억으로 남아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에게 경험은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디를 가봤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여행지에서의 순간이나 문화 공간에서의 체험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고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또 다른 소비를 만들어낸다. 경험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K카페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이곳에 설치된 영수증 사진기와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독특한 체험 요소,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를 특별한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소비하는 장소에서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경험 소비는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낯선 도시를 걷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세계가 몸의 감각으로 다가오고 삶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이런 변화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이 크다. 많은 여행객의 이동은 항공과 숙박뿐 아니라 음식, 쇼핑 등 산업 전반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다양한 공연이나 문화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도 관람객 유입으로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많은 도시와 기업이 이제는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경제가 제품 중심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험에 돈을 쓴다는 것은 낭비와 절약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의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한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물건의 효용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지만 경험은 기억과 이야기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선택을 만들고 새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리다가도 어느 순간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낯선 공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송영채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경험 구매 경험 소비 k카페 문화 문화 공간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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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추억의 수퍼블룸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 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디지털 스트리밍과 멀티플렉스가 지배하는 요즘, 단 하나의 스크린만 가진 오래된 영화관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유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LA 남쪽에 있는 ‘가디나 시네마(Gardena Cinema)’는 단순한 극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이곳은 1976년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린 한인 이민 부부의 꿈이 담긴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놓은 딸 주디 김씨의 헌신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가디나 시네마의 시작은 주디씨의 어머니, 고 김수명 씨의 소박한 동경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던 시절, 극장을 운영하던 친구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공간’을 꿈꿨다고 합니다. 미국에 온 뒤 그녀는 남편 김수웅 씨와 함께 전 재산을 털어 이 영화관을 인수했습니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남편은 낮에는 극장 곳곳을 고치고 밤에는 영사실을 지키며 아내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갔습니다.   당시 가디나 시네마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가던 동네 극장이었습니다. 대형 체인 극장이 늘고 영화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작은 단관 극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김씨 부부에게 이 극장은 단순한 사업장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삶의 자리였고, 성실한 노동으로 지켜낸 가족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민 1세대에게 비즈니스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부심이었고, 가족을 하나로 묶는 끈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극장 매표소 직원의 무릎에 앉아 영화를 보며 자란 딸 주디씨 역시 그 시간을 잊지 못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부모님이 평생 지켜온 이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팬데믹의 위기와 대형 자본의 공세 속에서도 주디씨가 가디나 시네마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곳이 어머니의 마지막 꿈이었고,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지금도 티켓 부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주디씨는 ‘프렌즈 오브 가디나 시네마(Friends of Gardena Cinema)’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극장 건물을 매입하고 보존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이민 가족이 지역 사회에 남긴 문화적 자산을 공공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디나 시네마의 진짜 가치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쌓인 시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매표소와 마키 간판, 오래된 좌석과 카펫. 그 공간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이 극장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가디나 시네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부모 세대가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낡은 것’들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은 제안을 하나 해봅니다.   요즘 남가주의 봄이 깊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사막의 수퍼블룸을 보러 먼 길을 떠납니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화를 보는 것도 물론 멋진 경험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된 ‘수퍼블룸’을 경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이번 주말, 혹은 가까운 시일 안에 이민 1세대 부모님의 거친 손을 잡고 가디나 시네마의 800석 객석 가운데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보는 건 어떨까요.   부모님에게는 젊은 시절 타국 땅에서 위로를 얻었던 기억이 떠오를 겁니다. 자녀 세대에게는 가족의 역사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크린 속엔 여러분만의 추억의 수퍼블룸이 펼쳐질 겁니다.   가디나 시네마는 오늘도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불빛은 척박한 이민 생활을 견디며 가족과 꿈을 지켜낸 이민 1세대의 기록이며, 그 정신을 이어가는 다음 세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강한길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수퍼블룸 추억 극장 건물 이민 가족 시절 극장

2026.03.15.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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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말로만 한인 사회를 위한다는 분들

LA 지역 일부 한인 단체들이 최근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의 연속이다. 너도나도 한인 사회 발전과 차세대 영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거리가 멀다. 더구나 차세대 한인들이 지금의 모습을 보며 함께하고 싶어 할지도 의문이다. 진정으로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한 말인지, 아니면 단체나 개인의 잇속만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올해 3·1절 기념식과 관련해서도 단체들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 기념식은 애초 LA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 주도로 준비 회의가 시작됐다. 한인회 측은 행사를 준비하며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광복회 미서남부지회, 미주3·1여성동지회 등 관련 단체들과의 공동 주최를 희망했다. 이에 한인회 측은 ‘모두가 한뜻으로 여는 행사’라는 의미에서 주최나 주관 기관을 특정 단체로 명시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재단 측은 한국 국가보훈부로부터 행사 관련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주최 기관으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양측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한인회는 개최를 포기하며 물러났다. 그 결과 3·1절 기념식은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주도로 열리게 됐지만 여러 후유증이 따랐다.   먼저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측에 묻고 싶다. 한국 보훈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행사의 파행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홍보물에 주최 기관으로의 명시를 끝까지 고집해야만 했는가다. 재단 측은 국가보훈부 규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한인회 측은 참여 단체들의 로고를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으로 기념재단이 공동 주최기관임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조금 집행과 관련한 결산 보고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도 기념재단 측이 지나치게 보조금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은 씁쓸하기까지 했다.  LA 한인 사회가 보훈부의 지원 없이는 3·1절 기념 행사조차 치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기념재단이 재정적 여유가 없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가 과연 한인 사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재외 국민 사업에 보조자 역할에 만족하려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인 단체 간 분란을 막고, 한인 사회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3·1절 기념식의 연합 개최를 추진한 한인회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한인회도 이번 일을 통해 모든 단체를 끌어안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인 단체 가운데는 활동력이 급격하게 위축된 곳이 많다. 대부분이 아직도 1세대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차세대를 위한 비전을 거창하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가 호응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태적 운영 방식이 가장 크다. 이는 행사 진행 방식에도 쉽게 나타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황한 축사, 릴레이처럼 반복되는 기념사진 촬영. 과연 이것이 한인 사회를 위한 행사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고 개인 업적으로 남기기 위한 자리인지 되묻게 된다.   한인회가 이들 단체까지 포용하고 함께 가려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러나 그로 인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이제 한인회는 중심을 잡고 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단체들은 이제 ‘차세대 영입’을 말하기 전에 내부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차세대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1세 중심 운영에, 1세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단체에 어떤 차세대가 함께하고 싶어 하겠는가.  1세대 중심의 한인 단체들은 이제 차세대가 자연스럽게 단체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한인 단체의 감투를 더는 자랑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 사회 한인회 측은 한인회 주도 한인 사회

2026.03.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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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의 의미

오랫동안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원칙으로 삼았다. 범죄학을 공부하면서 형벌은 복수가 아니라 제도라는 점을 배웠고, 법은 감정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내가 범죄를 바라보는 기준이 됐다.   16건의 아동 성범죄로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데이비드 앨런 펀스턴(64)의 가석방 관련 기사를 최근 다룬 적이 있다. 기사 작성을 위해 과거 범행을 들춰보며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사건 발생은 1990년대, 아동을 차량으로 유인해 성범죄를 저질렀다.피해자는 모두 7세 이하의 아동들이었다. 당시 법원은 그의 유죄를 인정해 25년 이상의 종신형 3건, 그리고 추가로 20년형을 더 선고해 그는 감옥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고령의 수감자에게 가석방 심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50세 이상으로 20년 이상 복역한 수감자, 또는 60세 이상으로 25년 이상 복역한 수감자는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해당 수감자가 공공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     펀스턴도 이런 절차에 따랐다. 그의 형 집행 기간, 가석방 심사 과정, 사건 내용 등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범죄와 범죄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범죄는 개념이 아니라 결과다. 피해자의 삶에는 사건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범죄자를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분노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가석방은 법적 절차의 결과다. 형벌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 안전을 위한 제도다. 만약 사회가 감정을 기준으로 형 집행을 결정한다면, 법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보면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감정이 법을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분노가 정의는 아니라는 의미다.   형벌은 법에 따른다. 특정 범죄자를 인간의 범주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가. 특정 범죄자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 한다면, 그 논리가 다른 범죄 유형에까지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석방 제도는 본질적으로 위험성 평가에 기반을 둔다. 과거의 범죄가 아니라 현재의 위험을 본다. 이는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형벌의 목적을 복수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격리를 통한 교정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부정한다면 가석방 제도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감정으로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제도는 점차 자의적으로 변하게 된다.   물론 가석방 제도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위험성 평가는 오류 가능성을 내포한다. 재범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확률적 계산될 뿐, 절대적인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그 불완전성이 불안감을 낳은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여러명이라면  그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그렇다고 가석방의 판단 기준을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   펀스턴의 가석방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도덕적 관용이 아니라 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 장치다. 감정을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요구다.   펀스턴의 범죄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다. 그러나 그에 대한 형벌의 범위는 법이 정한다.     법은 차갑게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에 따라 흔들린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하라는 주문이다.  송윤서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죄인 의미 가석방 심사위원회 가석방 제도 가석방 과정

2026.03.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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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배달 로봇은 되고, 웨이모는 안 되는 이유

LA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끝까지 배달을 하겠다며 물에 잠긴 길을 낑낑대며 건너던 작은 배달 로봇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돌았다. 기계인데도 왠지 월급 받는 근로자가 비 맞으며 출근하는 모습 같아 웃기면서도 짠했다. 댓글에서도 “퇴근시켜줘라”, “오늘도 실적 채운다”, “너무한 거 아니냐” 같이 안쓰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장면이 더 재밌는 이유는 그 로봇들이 그냥 바퀴 달린 배달 상자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는 데 있다. 앞쪽에는 눈처럼 보이는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고, 로봇마다 각자의 이름이 있다. 살짝 기울어지면 고개를 갸웃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한 길에서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힘겹게 통과하면 지켜보던 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자율주행인 웨이모는 정반대다. 차가 도로에 멈춰 서거나 비보호 좌회전 타이밍을 못 잡으면 다른 운전자들은 그 옆을 쌩하게 지나가고, 온라인 커뮤니티엔 “멍청한 웨이모 때문에 또 길이 막혔다”는 불만이 올라온다. 시위 현장에서는 분노의 분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웨이모가 오늘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둘 다 테크 기업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이고, 둘 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건 똑같은데 감정의 결은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배달 로봇은 보도에서 만난다. 잠깐 길을 막아도 그냥 옆으로 비켜 가면 끝이다. 주말 산책 중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바쁜 하루 속에서 소소한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반면 웨이모는 운전 중 도로 위에서 만난다. 도로는 이미 모든 사람이 예민해져 있는 공간이다. 신호 하나, 차선 하나에도 흐름이 끊기면 바로 체감된다. 출근길 1분은 체감상 10분이다. 그 상황에서 귀여움을 느낄 여유는 없다.   속도도 다르다. 배달 로봇은 느리다. 느리기 때문에 표정이 보인다. 눈처럼 보이는 화면이 멈칫하면 “어?”하는 느낌이 들고, 방향을 틀면 “길 찾는 중인가 보다”라는 해석이 붙는다. 반대로 자동차는 원래 매끄럽게 흘러야 하는 존재다. 조금만 어색해도 작동 오류가 된다.     사람은 얼굴처럼 보이는 것에 자동으로 감정을 이입하고, 이름이 붙는 순간 그것을 하나의 자의식 개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평가 기준도 달라진다. 성능이 조금 부족해도 “아직 배우는 중”이 되고, 길을 헤매도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가 된다. 같은 오류라도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캐릭터의 실수로 번역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꽤 큰 이점이다. 낯선 기술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때 가장 큰 장벽은 기능보다 거부감인데, 캐릭터화는 그 심리적 마찰을 낮춘다. 사람들은 차가운 기계보다 성격이 있는 존재에 훨씬 관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임의 무게를 낮추는 효과다. 완벽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보일 때는 작은 문제도 크게 느껴지지만, 캐릭터로 보이면 기대치 자체가 인간적인 수준으로 낮아진다. 기업은 기술을 도시에 안착시키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이용자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정서적으로 적응한다. 귀여움은 기능은 아니지만 일종의 완충 장치인 셈이다.   여기에 요즘 사회 분위기도 겹쳐 있다. 사람들은 점점 거대한 시스템에는 피로감을 느끼고, 작은 캐릭터에는 마음을 준다. 얼굴 없는 자동응답, 이유를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설명 없는 정책 변경 같은 것들에 이미 지쳐 있다. 그래서 도로 위의 자율주행 차를 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자동화 시스템처럼 보인다. 반면 눈 달린 작은 배달 로봇은 현장에서 뛰는 직원처럼 보인다. 분노의 화살 대신 연민이 느껴진다. 캐릭터는 응원의 대상이 되고, 시스템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기술과 불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마주할 때 느껴지는 감정에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로봇 웨이모 배달 상자 자동화 시스템 웨이모 때문

2026.02.2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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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다가온 WBC, 한국계 선수들의 선택

인천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문학경기장(현 SSG 랜더스 필드) 근처에 살았는데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가족과 함께 경기장까지 걸어가곤 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느껴지던 팬들의 움직임과 함성, 경기장 주변의 들뜬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문학경기장은 추억의 장소이자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해외 야구 리그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결승전에서 만났고 오타니 쇼헤이와 마이크 트라웃이 마지막에 투수와 타자로 마주한 전설적인 장면이 탄생한 대회다. 그 경기를 본 후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경기 이면의 스토리까지 챙기게 된 것이다. 2023년 우승팀 일본은 각자의 역할과 상황은 달랐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LA다저스 소속인 사사키 로키가 일본 국가대표 첫 선발로 나와 만든 감동적인 이야기, 겐다 소스케의 부상 투혼, 오타니가 라커룸에서 동료들에게 했다는 말까지, 일본팀의 우승이 운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가 단순히 결과로만 소비되는 스포츠가 아니라 각자의 맥락과 선택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진 선수들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며 야구를 바라보는 기준 역시 달라졌다. 경기 스코어와 흐름에 집중하던 시선에서 선수들의 서사와 이야기를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후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일본과 대만, 미국을 찾았다. 동일한 규칙으로 진행되는 경기였지만 현장의 분위기와 리듬은 분명히 달랐다. 응원 방식도, 관중이 경기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달랐다. 야구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4년 메이저리그(MLB) 경기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LA로 이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하며 만난 소중한 인연과 새로운 경험들 모두 야구라는 스포츠가 준 선물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야구가 안내해 줄 미래도 기대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선택은 때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기준을 갖게 되고 새로운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쌓여간다.     그 선택이 만들어낸 미래를 기대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과정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2026년 WBC가 다음 달 개막한다. 그동안 부진했던 한국 야구가 다시 한 번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번 한국 대표팀에는 김혜성(LA 다저스), 이정후(SF 자이언츠)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과 함께 데인 더닝(시애틀 매리너스),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스),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 한국계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 의미를 더 한다. 이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 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선택 의지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한국 야구의 확장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제대회는 성적 이상의 의미를 남긴다.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진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앞으로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놓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지듯 이번 대회 역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송영채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국계 선수 한국계 선수들 한국 선수들 야구 경기

2026.02.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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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교회까지 진입한 공권력, 정당한가?

교회는 신분을 묻지 않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뛰놀고, 노인들이 식사를 나누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특히 이민자 사회에서 교회는 종교 시설을 넘어, 법 이전에 작동하는 안전지대다.   그 교회에 총을 든 연방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지난달 샌퍼낸도밸리 노스힐스 연합감리교회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과 급식 나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 노인들이 교회 마당에 모여 있던 그 시간,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든 연방 요원들이 교회 부지로 진입해서 한 상인을 체포했다.     국토안보부(DHS)는 “체포 대상을 추격했을 뿐,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법적으로는 설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총을 든 요원들이 교회 마당과 예배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장면이 남긴 공포와 충격은 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전제가 있다. 이민법 집행은 정부의 정당한 행위다. 국경이 뚫리고 불법체류자가 넘치는 사회는 지속이 어렵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단속 자체를 부정하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법 집행은 엄중하고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동의한다. 이 점에서 이민 단속 강화를 무조건 비난하는 시각은 합리적이지 않다.   문제는 방식이다. 법의 목적이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안전에 있다면, 집행 방식 역시 공동체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민자 사회에서 교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마지막 숨구멍 같은 곳이다. 그런데 공권력이 교회의 문턱을 가볍게 넘기 시작할 때, 숨구멍을 잃어버린 이민 공동체는 급격히 위축된다. 결국 교회 내 단속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겨냥한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단속 방식은 결국 법원이 다른 언어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미네소타주에서 판사 서명이 없는 행정영장으로  5세 아동과 아버지를 함께 연행·구금한 사건을 심리한 텍사스 연방 법원은 이 사안을 이민법이 아니라 헌법적 문제로 접근했다. 해당 사건의 핵심 쟁점이 국가 권력의 행사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프레드 비어리 담당 판사는 구금된 부자의 즉각 석방을 명령했다. 그는 행정부가 발부한 행정영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판결문에는 수정헌법 4조 전문이 그대로 인용됐고, 공권력 남용을 경계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고도 함께 담겼다.   이 판결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형식에 있다. 판결문 말미에는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라는 마태복음 19장 14절 내용을 인용했다. 그리고 판결문을 마무리한 문장 역시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였다.   이는 종교적 판결이 아니다. 법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에 대한 법원의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법은 어디까지 냉정할 수 있는가, 권력 행사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비어리 판사 역시 5세 아동 부자의 추방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이 ‘질서 있고, 인도적이며 헌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체류자 단속의 정당성과 인간의 존엄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노스힐스 교회 단속 논란도 같은 선상에 있다. 질서는 물리적인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권력이 스스로 멈춰 서야 할 경계를 알 때, 그 권위는 존중을 받는다. 교회의 문턱은 그 경계 중 하나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법은 권위를 잃게 된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필요하다. 그러나 단속 요원들이 총을 들고 아이들이 있던 교회 마당을 가로지르는 방식이 과연 최선이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법 집행은 무조건 정당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우리가 지켜온 공동체의 가치는 서서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강한길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공권력 교회 교회 마당과 노스힐스 연합감리교회 교회 부지

2026.02.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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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미 양국 보수정당의 딜레마

보수정당이 요즘 가장 크게 흔들리는 지점은 이념 그 자체가 아니라 ‘통치의 방식’이다. 극우적 방향성이 선명해지면서 정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합리성인 타협과 절차, 책임감은 무너지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하나의 딜레마로 귀결된다. 강경 지지층을 붙잡기 위해 오른쪽으로 갈수록 중도층은 멀어지고 통치 역량은 약해진다. 그렇다고 강경 지지층과 거리를 두는 순간, 조직이 흔들린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보수정당은 이런 딜레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연방의회 세출법안 표결 과정에서 공화당은 결속보다 분열을 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겪은 뒤 부분적 셧다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지도부는 내부 이견을 정리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달 31일 부분적 셧다운이 시작됐다. 하원 공화당 내 일부 의원들은 당론을 거스르며 반대에 나서 상황은 더 꼬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교착 상황을 풀기 위해 세출법안에 건강보험 관련 개혁안을 덧붙이며 중재를 시도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존 튠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며 민주당과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본질적인 질문이 하나 생긴다. 공화당은 왜 스스로 통치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합리적 타협을 회피하는가. 정답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정당을 움직이는 동력이 중도층이 아니라 극단적 지지층의 결속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극우 성향 지지층은 투표장에 더 충성스럽게 나오고, 온라인에서 더 크게 싸우며, 후원금과 정당 재정에도 더 많이 기여한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스탠스는 이 지지층과 정당의 연결고리를 ‘정체성’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 공화당이 강경 노선을 완화하는 순간, 이는 정책 조정이 아니라 ‘배신’으로 프레이밍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시대 공화당의 중심이었던 신보수주의자들, 이른바 네오콘은 사실상 비주류로 밀려났고, 한때 공화당의 얼굴이던 ‘합리적 보수’는 오히려 약점이 됐다.   그럼에도 합리성 회복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강경 지지층 결집은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지만, 중도층 이탈이 본격화되는 순간 정당의 확장성은 급격히 약화된다. 실제 최근 여론 흐름에서도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기우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의 승패는 결국 막바지에 판단을 내리는 중도층이 좌우하는 만큼, 이 흐름이 굳어질 경우 보수정당은 장기적으로 세력 기반을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이후 당내 분열이 격화되고 있지만, 장동혁 대표 지지자도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당내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동혁 대표 취임 3개월여 만에 매월 1000원 이상 당비를 납부하는 책임당원이 20만 명 이상 늘었고, 지난달 기준 당원 수는 100만 명을 넘겼다. 한국 보수정당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동시에 위축의 길을 걷고 있다. 계엄 사태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은 명확히 하지 못했다. 이 모호함은 진정성 논란으로 되돌아오고, 당내 소장파는 지도부를 비판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늘어난 책임당원이 정당의 외연을 넓힌 것인지, 아니면 강성 지지층이 당을 더 좁은 방향으로 묶어버린 것인지다. 만약 후자라면 현 지도부가 합리성으로 선회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미국이든 한국이든 보수정당의 현실은 같다. 강경 지지층만 품으면 당장은 버티겠지만, 중도층과는 멀어지고 통치 능력도 약해진다. 반대로 합리성을 회복하려면 극단과는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하지만, 그 순간 당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장기적 생존을 원한다면 답은 하나다. 보수정당은 극우화의 유혹을 끊고 상식과 정책, 협상이 작동하는 합리적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보수정당 딜레마 강경 지지층 극단적 지지층 하원 공화당

2026.02.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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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구독료 경제’, 고객은 피곤하다

유튜브 프리미엄 이용료 월 13.99달러, 광고 시청이 포함된 넷플릭스 월 7.99달러, 스포티파이 월 12.99달러, 아마존 프라임 월 13.99달러, 애플 아이클라우드 월 2.99달러….   매매로 끝났던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이제는 바뀌고 있다. 앱이든 자동차든 한 번 사서 쓰는 물건이 아니라, 매달 결제해야 기능이 유지되는 구독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일상이 됐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유료 구독은 인기 수익 모델이다. 가장 최근에는 메타가 인스타그램·페이스북·왓츠앱에서 ‘프리미엄 구독’을 시험하며 가입 시 AI·생산성·크리에이티브 기능을 추가로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더 노골적이다. 서비스 하드웨어는 이미 차에 포함되어 있는데, 소프트웨어 잠금 해제 장치에 매달 비용을 내라는 발상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월 구독형으로 전환할 방침이라며, 서비스를 일시불로 구매하려면 기한 전까지 서둘러 구매하라는 안내 메일을 고객들에게 보내고 있다. GM은 이미 고속도로 핸즈프리 주행인 ‘수퍼 크루즈’를 월 구독 방식으로 판매하며 고정 수익을 키우고 있다.     최근 이런 트렌드의 원조 격인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시청 중 재생하는 광고의 수와 빈도가 크게 늘어났으며, 배달·이동 수단에서도 이제는 유료 멤버십을 이용해야 무료배송과 수수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오피스·디자인 도구들은 사실상 이용료를 내지 않고는 기본 기능조차 쓰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기업들은 새로운 수익 모델이라고 반기지만 소비자들은 피로가 쌓이고 있다. 가입은 쉽지만 해지 과정은 번거로워지는 동안, 지갑은 얇아져만 간다.     딜로이트의 2025년 디지털 미디어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매년 구독료로 지출하는 비용이 늘고 있으며, 여러 가지 구독을 관리해야 하는 피로감과 함께 가격 인상에 대한 불만도 커진 상태다.     해마다 증가하는 구독료 고정 지출에 대한 피로감은 물론, 하나같이 비슷한 기업들의 태도에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늘고 있다. 기능이 쪼개지며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플랜이 빈약해졌다는 박탈감.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가 총액은 불어나는데도 각 서비스는 ‘커피 한 잔 값’이라며 싼 비용이라고 위장한다는 불신. 해지·환불·약관이 불투명해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불쾌한 반감.     특히 자동차처럼 고가의 제품을 구입했지만 핵심 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그것은 편의 기능이 아니라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BMW가 한때 열선 시트 구독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고객들의 거센 반발 끝에 접은 사례가 이 소비자들이 느끼는 피로와 불편을 대변하고 있다.     당분간 구독 경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다음 시련은 ‘더 많은 구독’이 아니라 ‘더 불편한 구독’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편리함이지 서비스의 제한이 아니다. 최소한의 신뢰 장치가 없다면, 기업이 확보하고 싶어하는 반복 매출은 반복 해지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구독 경제에도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렇지 않으면 구독 경제는 혁신이 아니라 기업들의 꼼수로 기억될 것이다.     제대로 된 구독 서비스가 되려면, 매달 결제일마다 떠오르는 감정이 피로가 아니라 납득이어야 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구독료 경제 구독 서비스 프리미엄 구독 유료 구독

2026.02.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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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쉽게 말한다. 바쁘다, 힘들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루하루는 피곤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늘 무언가에 쫓기듯 시간을 보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하루에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의 이 바쁨은 정말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향하고 있는 걸까. 질문은 단순했지만, 쉽게 넘길 수는 없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목표와 지향점을 정비한다. 나 역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분명 힘들게 살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하나씩 떠올리고,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보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애써 버틴 시간에 비해, 목표를 향해 분명하게 움직인 순간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찬찬히 떠올려 보면 나는 분명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급한 일에 반응했고, 해야 하니까 하는 일들을 처리했고, 그렇게 하루를 채웠다. 그러나 그 일들 중 상당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와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방향은 흐릿했고, 피곤했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착각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노력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오래 고민하는 데서 안도감을 얻는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말, 더 생각이 필요하다는 말은 실행을 미루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시간을 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고민은 언제나 같은 무게를 가지지는 않는다. 고민은 달려가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고민할 수 있을까. 해보지도 않고, 부딪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의 고민은 방향을 잡아주기보다 오히려 멈춰 서 있게 만든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실행은 점점 더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의외로 일상에 많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막상 시작은 하지 않은 채 방법만 고민하는 순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할지, 잘할 수 있을지를 먼저 따지다 보면 하루는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반면 아주 작은 행동 하나라도 직접 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나의 시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드러낸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무엇을 더 해볼 수 있는지가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직접 해보는 과정 속에서 방향이 생기고 기준이 만들어진다. 그제서야 고민은 의미를 갖는다.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왔는지 살펴보고, 그 방식을 참고해 실행해보고, 결과를 점검하며 다시 수정하는 과정. 우리가 말하는 노력은 어쩌면 거창한 결심이나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이런 작고 반복적인 행동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대신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그 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한 행동이었는가. 얼마나 피곤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나라도 해보았는지를 기준으로 하루를 바라보려 한다. 하루를 평가하거나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 무엇을 했는가. 지금의 그 바쁨과 고민은,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곳을 향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열심히 사는 법을 더 고민하기보다, 정확히 원하는 것을 향해 하나라도 해보는 용기가 더 필요한 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착각

2026.01.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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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단체장 신년 포부, 약속 지켜야

2026년 새해를 맞아 본지가 지난 1일부터 연재 중인 주요 한인 단체장들의 신년 인터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정과 포부가 담겨 있다. 로버트 안 LA한인회장을 비롯해 이현옥 LA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 회장, 빌 로빈슨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의장, 이창엽 올림픽경찰서후원회(OBA) 회장, 송정호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관장 등 각계 단체 리더들이 밝힌 청사진은 하나같이 고무적이다.   공공 안전 강화, 환경 개선, 세대 통합, 치안 인프라 확충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과제들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이 된다면, 한인타운의 위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베벌리힐스나 브렌트우드 같은 인근 부촌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명품 거주지로 거듭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LA는 올해 북중미 월드컵을 기점으로 오는 2028년 하계 올림픽까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국제무대의 중심이 된다. 이 시기에 한인 사회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단체장들 다짐은 단순한 지역 사업을 넘어 한인 사회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이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로 증명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단체장이 화려한 수사로 임기를 시작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숱하게 목격해 왔다. “하겠다”, “추진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들은 매년 반복됐다. 그러나 그 결과를 체감한 경험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비극적 사례가 바로 한미박물관 건립 사업이다. 지난 2013년 LA시로부터 금싸라기 땅을 사실상 무상으로 50년 장기 임대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이 프로젝트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 아닌 ‘계획 중’이다.   디자인 변경에 따른 지연, 물가 상승에 따른 예산 부족 등 변명은 늘 화려했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할 장재민 이사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풀 한 포기 베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한인사회의 숙원 사업이 리더십의 부재와 무책임 속에 어떻게 고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선례다.   올해 포부를 밝힌 단체장들이 한미박물관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내뱉은 공공 안전 심포지엄의 지속성, CCTV 설치를 통한 치안 강화, 세대 통합의 열린 공간 조성 등은 모두 막대한 실행력과 예산, 그리고 정치적 협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결국 이들의 공약(公約)이 빈껍데기인 공약(空約)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힘은 한인 개개인의 ‘감시’에서 나온다. 리더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때 가장 무서워 해야 할 대상은 시의원이나 시장이 아닌, 바로 자신들을 지켜보는 한인들이어야 한다.   이제 한인들은 구경꾼에 머물러선 안 된다. 단체장들이 밝힌 계획이 실제 예산에 반영되는지, 유관 기관과의 공조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워치독(Watchdog)이 되어야 한다.   단체장들이 내뱉은 말은 한인 사회와의 엄중한 계약이다. 2026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이들이 약속한 ‘안전하고 품격 있는 한인타운’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리더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실행하는 리더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강한 비판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한인타운의 발전은 현실이 될 것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단체장 신년 단체장들 다짐 한인 사회 신년 인터뷰

2026.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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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파편화를 넘어서

연말연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기다리던 것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인디오에서 펼쳐지는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의 라인업 발표다. 코첼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고 매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 팬으로서 항상 동경을 해왔고 10여년 전 취재로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은 여전히 황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헤드라이너였던 래퍼 켄드릭 라마가 화려하게 등장할 때 10여만 명의 관객이 모두 목이 터지라 환호성을 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두가 같은 음악을 기다리고, 같은 이름에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를 지나오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제 음악 팬들은 코첼라 라인업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라인업에 슈퍼스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혹자는 요즘 가수들의 실력이 떨어졌다고 보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문제는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구조다. 스타가 ‘모두에게’ 스타로 인식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부터 달라졌다. 과거에는 음반을 사거나 스트리밍을 하더라도 무엇을 들을지 고르는 시간이 있었다. 음악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추천해주는 일도 많았다. 차트에 오른 음악이면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선택 자체를 알고리즘에 맡긴다. 추천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취향은 지극히 개인화된다. 그 결과 ‘대세’라는 개념은 희미해졌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음악은 점점 사라진다. 공유되는 취향이 줄어들면서, 문화는 파편화된다.   이 변화는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 대부분의 영역이 비슷한 흐름을 따른다. 사회적 의제 역시 그렇다. 극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이상, 모두가 동시에 토론에 뛰어드는 일은 드물어졌다. 모두가 이야기하게 되는 의제의 수는 줄어들었다. 언론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각자가 서로 다른 채널,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를 접하면서 ‘아젠다 세팅’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때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서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던 것이 미국의 언론이었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 언론을 신뢰한다고 말한 시민의 비율은 70%를 넘겼다. 하지만 이제 이런 위세는 역사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2020년대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언론 신뢰도는 40% 밑으로 추락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통의 화제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할 기회를 잃어간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계 안에 머무를수록 의견은 강화되고, 타인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가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이유를 미디어 환경에서 찾는 시각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편화는 다양성을 키우는 동시에, 고립을 낳는다.   아이러니한 지점도 있다. 언론은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역할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 사이에서 맥락을 연결하고, 사실을 검증하며,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기능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요해졌다.     2026년에는 정론직필의 언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한다 생각하는 이유다.  모두를 하나로 묶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흩어진 조각들 사이에서 공통의 언어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지금 언론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파편화 언론 신뢰도 음악 페스티벌 음악 팬들

2026.01.0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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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내 인생 평가를 멈춰주세요”

2025년은 구직자들에게 결코 따뜻한 한 해가 아니었다. 해고는 늘었고, 채용 공고는 줄었으며,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수가 일자리 수를 앞지른 것도 4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가 2020년 이후 가장 부진한 채용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불안정한 경제 전망 속에서 이력서를 고치고, 기한 없는 시간을 견뎌온 이들에게 연말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많은 구직자는 예상치 못 한 알림을 받았다. 링크드인(LinkedIn)이 올해 처음 도입한 ‘연말 결산(Year in Review)’은 사용자가 플랫폼에 며칠이나 접속했는지, 새로 맺은 인맥은 몇 명인지, 연결된 사람 중 몇 명이 새 직장을 얻었는지 등을 정리해 보여줬다. 연말 정산처럼 한 해를 정리해 주겠다는 취지였겠지만, 현실과의 온도 차는 컸다.   소셜미디어에는 씁쓸한 반응이 쏟아졌다. 한 이용자는 자신의 링크드인 리뷰 화면을 공유하며 “올해 수많은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실제로 얻은 일자리는 0개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용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실업 상태이고, 지금은 아무도 사람을 안 뽑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이 기능을 풍자했다. 숫자로 정리된 한 해는 노력의 크기보다 결과의 부재를 더 또렷하게 보여줬다.   이에 대해 링크드인 측은 “2025년이 많은 구직자에게 어려운 해였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연말 리뷰는 단순한 취업 성과가 아니라 학습, 네트워킹, 아이디어 공유 등 ‘직업인으로서의 전체 모습’을 돌아보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플랫폼 안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새로 늘어난 인맥 수를 자랑하거나, 가장 많이 교류한 사람을 태그하며 관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게시물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교의 기준이 되는 순간, 요약은 위로보다 평가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연말 결산은 링크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여러 플랫폼은 앞다퉈 사용자의 한 해를 정리하고, 성취를 기념하려 한다. ‘스포티파이(Spotify)’는 매년 ‘랩드(Wrapped)’를 통해 사용자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와 아티스트를 화려하게 정리해 주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한 해의 추억 사진을 자동으로 묶어 보여준다.     틱톡 역시 시청 시간과 관심 주제를 기반으로 한 연말 리포트를 내놨으며, 심지어는 챗GPT까지 올해 연말 결산 유행에 참여했다. 이 기능들은 대체로 재미와 공유를 전제로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소비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다시 확인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이용자들은 “이제는 내 인생을 그만 리뷰해 달라”고 말한다. 어떤 한 해는 성취보다 버팀이 중요하고, 기록보다 망각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숫자와 그래프는 편리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과 좌절,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모든 삶이 요약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연말 결산이 한 사람의 한 해를 정의할 수는 없다. 어려웠던 한 해는 견뎌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게가 있다. 특히 고용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번 시도했는지’의 집계가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여지와 존중이다. 화려한 연말 요약보다 더 절실한 것은, 조용히 다음 해로 건너갈 수 있는 작은 숨 쉴 틈일지도 모른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인생 연말 결산 연말 요약 연말 리뷰

2026.0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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