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연말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해볼 만한 것들이 많다. 널리 알려져 많은 시카고언들로부터 사랑받은 이벤트도 있지만 새롭게 생긴 것들도 많아 연말이 가기 전에 한번쯤 해볼 수 있을 것들을 모아봤다. 첫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다운타운 크리스마스 점등 행사다. 올해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시카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로 글렌뷰 주민이 기증했다. 총 3만9250개의 점등이 설치된 이 나무는 1월11일까지 밀레니엄 파크에서 주민들과 만나게 된다. 링컨파크 동물원에서도 홀리데이 라이트를 만날 수 있다. 1월4일까지 진행되며 350만 개의 LED 전구가 설치된 브룩필드 동물원의 홀리데이 매직, 시카고 보타닉 가든의 라이트스케이프, 모튼 수목원의 트리 라이트 행사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 레이티드 필드와 그리핀 과학 산업 박물관에서도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연극 공연이다. 전통적으로 연말에 무대에 오르는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은 다운타운의 굿맨 시어터를 비롯해 오크 브룩의 드루리 레인 시어터, 위트 시어터, 라이프라인 시어터 등에서 열린다. 세 번째는 연말 공연이다. 뮤지컬 엘프는 유명 배우 윌 페럴이 출연하는 영화 버전이 처음 나온지 20년 뒤 오디토리엄 무대에 올라 시카고 관객들과 만난다. 또 CIBC 시어터에서는 매직 서커스 크리스마스가, 시카고 시어터에서는 태양의 서커스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네 번째는 어른들을 위한 공연과 이벤트로 리글리빌과 루프, 리버 노스 지역에서 임시 바가 연말에만 운영된다. 이중 ‘8 Crazy Nights’이라고 불리는 팝업 바는 하누카를 테마로 올해 처음으로 마련된다. 다섯 번째는 무용 공연이다. 시카고에서 연말 무대에 오르는 가장 유명한 무용 공연은 호두까기 인형이다. 올해도 조프리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무대가 5일부터 리릭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 작품의 무대는 1893년 콜럼버스 만국 박람회가 열리기 전 시카고의 크리스마스다. A&A 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을 기반으로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The Art Deco Nutcracker’를 공개한다. 여섯 번째는 스케이트타기다. 연말 시카고 다운타운에는 매기 데일리 파크, 밀레니엄 파크, 네이비피어에 스케이트장이 설치돼 많은 주민들이 찾는다. 이곳뿐만 아니라 또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필드의 갈라거 아이스 링크도 2월 중순까지 운영된다. 스케이트가 없어도 현장에서 빌려서 탈 수도 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장갑은 필수다. 일곱 번째는 티파티와 홀리데이 만찬. 드레이크 호텔의 홀리데이 티 파티, 런던하우스 시카고의 티 서비스 등이 있다. 스테이트길 메이시스 백화점에 위치한 월넛룸에서는 올해 옛 마샬필드를 테마로 한 특별한 식사가 준비된다. 마지막은 야외 마켓. 다운타운 리처드 데일리 센터 플라자에서 열리는 크리스트킨들마켓이 대표적이다. 이 독일 스타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전통 음식과 라이브 음악, 가족 친화적인 놀이거리,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핫코코아 등으로 유명하다. 다운타운 뿐만 아니라 리글리빌과 오로라에도 크리스트킨들마켓이 운영된다. 이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벤트도 여럿이다. 모르는 이벤트가 많을수록 시카고 연말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처음 들어보거나 해보지 않은 이벤트를 하나 하나씩 지우면서 시카고의 연말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볼 수 있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시카고 연말 시카고 크리스마스 시카고 시어터 시카고 화이트삭스
2025.12.29. 19:15
또 1년이 지나 한 살을 더 먹는다. 해마다 비슷한 말을 하지만,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듯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느냐고 스스로 물어보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과 노력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천재지변, 가정환경, 경기 침체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SNS와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생각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서 나를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쌓이지 않은 나 자신이다. 지금은 시도할 수 있는 수단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고, 기록하고, 업로드할 수 있다. 시도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느끼는 불안은 오히려 커졌다. 그래서 요즘의 불안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는 왜 아직도 아무것도 쌓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유튜브와 SNS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를 탈출구나 ‘로토’로 생각한다. 콘텐츠 하나만 인기를 끌면 현재 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삶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실제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금세 알게 된다. 이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꾸준히 아이디어를 만들고, 편집하고, 기록을 남기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시작하는 이는 많지만 오래가는 사람은 적다. 유튜브와 SNS는 장기 투자에 가깝다. 전통적인 투자가 돈을 넣는 일이라면, 콘텐츠는 시간을 넣는 일이다. 단기간의 성과보다, 오랜 시간 감각과 표현력을 쌓는 과정에 더 가깝다. 결국 이 일도 다른 대부분의 일처럼, 끝까지 버틴 사람이 남는다. 그래서 더더욱 ‘올인’이 아니라 ‘병행’이 합리적이다. 본업을 유지한 채 하루 30분 ~1시간 정도의 시간을 꾸준히 투자하는 방식. 이때 기대 수익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당장 돈을 벌겠다는 목표보다, 나에 대한 이해, 기록, 캐릭터, 그리고 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수익이 된다. 채널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 과정에서 쌓인 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이 일 역시 쉽지 않다. 반응이 없을 때도 많고, 알고리즘은 언제든 변한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중요한 것은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다. 성공하지 않더라도 배움이 남는다는 관점으로 접근할 때, 이 일은 감당 가능한 투자가 된다. 오히려 초반에 주목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일을 계속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 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두를 필요도, 봐달라고 애쓸 이유도 없다. 지금은 반응을 끌어내는 시기가 아니라, 천천히 올리고 쌓아가는 시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출이 아니라 실력이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기록하고, 어떤 방식으로 나를 드러낼지에 대한 감각은 시간을 들여야만 자란다. 그렇게 쌓인 콘텐츠와 태도가 무르익으면, 어느 순간 유입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끝까지 남는 경쟁력은 결국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는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지. 이런 것들은 자동화되기 어렵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콘텐츠는 지금 당장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미래의 선택지를 넓히는 자산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성공을 목표로 삼기보다 작은 장기 투자를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은 사실 2026년의 나에게 건네는 말이자, 지금의 나를 다잡기 위한 글에 가깝다. 하루 20~30분이라도 꾸준히 기록하고, 만들고, 올리는 일. 유튜브와 SNS는 탈출구가 아니다. AI 시대에 ‘나’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투자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경쟁력 실력 장기 투자 콘텐츠 하나 천재지변 가정환경
2025.12.15. 19:26
지난 6일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서 레이건 국방포럼(RNDF)이 열렸다. 이 포럼은 미국 안보 현안의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명함이 오가고, 악수가 이어지며, 공식 문서에 담기기 전의 생각들이 가장 솔직하게 오가는 공간이다. 그런 무대에 미국 안보 라인 핵심 인사 700여 명이 집결했다. 그 한가운데에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필두로 댄 케인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인도태평양사령관까지. 미국 군 지휘부의 정점이 총출동했다. 여기에 록히드마틴·보잉·노스롭그루먼·RTX 등 미국 4대 방산업체 수장, 안두릴과 팔란티어 같은 신흥 방산기업 리더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까지. 정치·군·산업 권력이 한 공간에 모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에 의한 평화’ 철학을 기치로 한 포럼의 화두는 분명했다. 중국, 그리고 동맹이었다. 이 주제에서 한국·일본·대만은 빠질 수 없는 국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실행과 대중 견제의 최전선에 선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야마다 시게오 주미 일본대사와 주미 대만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미 대만경제문화대표부(TECRO)의 알렉산더 유이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유이 대표는 지난 7월 애스펀 안보 포럼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했다. 이들은 미 정부 고위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했고, 대학생 펠로들에게까지 직접 각국의 현안을 설명했다. ‘현장 외교’의 교과서 같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인사들은 없었다. 강경화 주미대사는 물론, 한국 정부 관계자 단 한 명도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애스펀 안보 포럼에 이어 두 번째 공백이다. 실수로 치부하기엔 시점이 너무 중요하다. 한국은 막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했고, 한미 조선 협력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라는 굵직한 안보 현안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있다. 이런 국면에서 미국 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를 비운다는 건 외교적 무신경함에 가깝다. 아이러니는 기조연설에서 극명해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이 국방비를 증액해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모범 동맹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이 칭찬의 대상이 된 무대에, 정작 한국은 없었다. 그 결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MRO(유지·보수·정비)를 넘어 미 해군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싶다는 메시지는 정부 관계자가 아니라 취재 기자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 포럼 이후 리셉션에서 마이클 더피 국방부 획득·유지 담당 차관이 기자에게 한국 정부의 요구 조건들을 되묻는 장면은 외교 공백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주미대사관의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대사가 직접 얼굴을 비추는 판단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의 무게를 고려할 때, RNDF 같은 자리에 강경화 대사가 참석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 역시 외교 역량의 일부다. 만약 “시미밸리는 워싱턴과 정반대에 있어 멀다”는 물리적 거리를 핑계로 댄다면, 설득력이 없다. 일본과 대만은 왔고, 참석자 상당수는 워싱턴에서 이동했다. 동맹은 성명서로 유지되지 않는다. 얼굴을 비추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쓰며, 관계를 축적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미국 안보의 중심 무대에 일본과 대만은 있었고, 한국만 없었다. 이 사실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를 놓친 대가는, 결국 한국이 치를 수 밖에 없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안보 외교 안보 현안 애스펀 안보 안보 라인
2025.12.14. 17:50
월드컵.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뛴다. 주말 새벽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유럽 축구를 챙겨보는 나에게 월드컵을 직접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002년 이후로 처음 내가 사는 곳에서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기대를 가져왔다. 올해 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이와 함께 월드컵 경기장을 찾는 것이 꿈이었다. 지난 10월, 친구가 가르쳐준 사전 추첨 소식에 큰 기대 없이 응모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릴 건데 과연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첨의 기쁨을 맛봤다. 그것도 한국 대표팀 조별예선 3경기 패키지였다. 가격은 상당했지만, 평생 몇 번 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과감히 결제했다. 미래의 걱정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어느 도시에서 경기가 열리는지도 모른 채 티켓을 구매했다. 사실 상대 팀도, 경기장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 응원석에서 목청껏 응원하고 싶었을 뿐이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자랑하며 이미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쭐했다. 하지만 조 추첨일이 다가올수록 현실적 걱정이 앞섰다. 대부분 축구 팬들이 조 편성과 32강 진출 가능성을 논할 때, 나는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느 도시로 가게 될까 하는 실질적인 문제였다. 미국 내 어디든 환영이지만, 만약 멕시코나 캐나다라면 여러 준비가 필요할 터였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티켓 값에 여행경비가 더해지는 것은 물론, 돌이 조금 지난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 또한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었다. 12월 5일, 드디어 조 추첨 날이 왔다. 긴장한 채 중계를 지켜봤다. 전설적 농구선수 샤킬 오닐이 커다란 손으로 공을 뽑자마자 바로 A조에 한국이 편성됐다. 멕시코와 같은 조였고 한국은 세 경기 모두 멕시코에서 치르게 됐다.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는 이동 거리 단축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조에서 3위를 해도 성적에 따라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월드컵 특성상 무조건 올라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최근 경기가 열리는 몬터레이 지역에서 신원미상의 유골이 수백개 발굴되는 등의 사건을 보면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 아버지가 된 입장에서 가족을 생각하면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민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용기를 내어 멕시코로 떠날 것인가 아쉽지만, 티켓을 양도할 것인가. 만약 티켓을 양도하게 된다면 미국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려고 한다. 특히 보고 싶은 것은 한국이 조 2위로 32강에 진출했을 때 LA에서 열리는 경기다. 한인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다. 경기가 열리는 잉글우드의 소파이 스타디움은 태극기가 물결칠 것이다. 안정성과 접근성 면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에게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다. 제발 좋은 성적을 거둬서 LA로 와달라고. 대표팀의 핵심 손흥민 선수가 자리 잡고 있는 LA에서 경기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월드컵은 누구에게나 인생에 몇 번 없는 특별한 축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항공료와 숙박비, 그리고 현실적 제약들을 고려해야 하는 치밀한 계획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설렌다. 경기가 펼쳐지는 순간, 어느 곳이든 한국 응원단의 붉은 함성은 뜨겁게 울려 퍼질 테니까.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이 선수들의 발끝에 달려 있다. 그날 아이와 함께 외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첫 월드컵이라고.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월드컵 가족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특성상 한국 대표팀
2025.12.09. 18:45
아이들의 방의 곰 인형은 오랫동안 침묵을 전제로 한 존재였다. 곰 인형과의 대화는 아이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고, 그 상상은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의 봉제 인형은 침묵하지 않는다. 일부는 아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먼저 응답하고, 심지어 그 응답은 거대한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뿌리로 한다. 최근 한 연구기관의 테스트에서 인공지능(AI) 챗봇을 탑재한 곰 인형이 문제성 발언을 쏟아냈다. 싱가포르 업체 폴로토이(Folotoy)의 ‘쿠마(Kumma)’ 곰 인형은 GPT-4o를 탑재한 채 위험한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성적 대화를 이어갔다. 논란 이후 회사는 제품을 내렸다가 며칠 뒤 판매를 재개했다. 점검을 거쳤다지만, 아이들이 사용할 장난감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 이 사실은 더는 이 문제가 단순한 기술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성인조차 거짓 정보에 흔들릴 수 있는 온라인 챗봇을 아이들의 장난감에 그대로 이식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실험일 수도 있다. 장난감 내부에서 작동하는 목소리가 아이의 현실 감각과 상상력을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기술은 아이의 친구가 아니라, 아이의 순수한 세계를 파고드는 어른들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AI 장난감 시장은 이미 해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1500개가 넘는 업체가 경쟁 중이다. 바비를 만든 거대 장난감 기업 마텔조차 최근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손을 잡았다. 이처럼 아이들의 방은 조용히 변모하고 있는데, 이 변화의 속도는 현행 규제 설립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아이가 인형을 껴안고 잠드는 순간조차, 인형 내부의 소프트웨어는 묵묵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더는 결코 환상이 아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AI와 대화를 학습하느냐다. 언어모델을 그대로 장난감에 넣는 방식은 기술적으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교육적·정서적 관점에서는 미지의 영역이다. 특정 장난감은 위험한 말을 피하기 위해 제약된 모델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제약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대화형 AI가 부모가 없는 시간에 아이에게 어떤 세계관과 정보를 전달하는지 부모는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보안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얼굴, 목소리, 위치 정보까지 장난감에 기록될 수 있는 시대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서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섬뜩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너도나도 뛰어들어 시장 규모만 커지는 것은 분명한 경고 신호다. 물론 AI 장난감이 가진 잠재력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 언어학습을 도와주고, 혼자 노는 아이에게 동료가 되어주는 기능은 충분히 유용하다. 아이는 원래 질문이 많은 존재이며, AI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거의 무한한 지식을 알고 있다. 문제는 ‘답을 줄 수 있다’와 ‘답해야 한다’의 차이를 알고 있느냐는 점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응답의 정확성이 아니라 응답을 기다리며 스스로 사고하는 시간이다. AI는 때로 지식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생각할 기회를 빼앗기도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기술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에 대한 합의다. 아이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AI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강력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아무 준비 없이 AI를 인형 속에 담아 아이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마치 위험한 무기를 예쁘게 포장해 장난감이라 부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곰 인형에 말을 건넬 때, 그 대화가 상상 속 친구와의 놀이가 될지, 알고리즘과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될지는 사회가 정하는 문제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내고 싶다면, 아이의 방은 기술의 실험장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인형 친구 봉제 인형 인형 아이 인형 내부
2025.12.07. 18:00
미국 정부는 유학생 비자 심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입국 후 불법 체류로 전환하거나 허가되지 않은 형태의 취업에 연루되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속 강화의 배경과 별개로, 미국은 여전히 유학생을 필요로 한다. ‘전국국제교육협회 (NAFSA)’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23~2024학년도 전국 유학생 수는 약 110만 명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경제 효과는 438억 달러에 달한다. 이로 인해 37만8000개의 일자리가 유지되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유학생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영향이 명확한 만큼, 유학생을 어떻게 대우하고 어떤 환경을 제공할지는 단순 행정 편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유학생이 실제로 체류 규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 국토안보부 산하의 여러 기관이 각각 다른 업무를 담당하며, 대학별 유학생 담당부서가 이를 토대로 개별 안내하는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자 발급 기준은 국무부가 관리하고, SEVIS 관리는 ICE가, 체류 신분 유지 기준은 USCIS가, 입국 시 판정은 CBP가 맡는 식이다. 이처럼 여러 기관이 나뉘어 있다 보니, 유학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규정이 한 문서에 정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여권, I-20, I-94 관리 방식, 풀타임 등록 요건, 휴학 및 전과 절차, 주소 변경 신고 기한, CPT와 OPT 조건 등 신분 유지에 핵심적인 요소는 모두 중요하지만, 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공식 통합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학별 안내 내용의 차이도 혼란을 키운다.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학생처(OIS)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I-94는 모든 유학생이 항상 출력해 소지해야 하며, 신분 확인 절차에서 반드시 요구된다”고 명확하게 안내한다. 그러나 일부 대학은 I-94를 항시 지참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제출하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신분과 본인 확인을 위해 어떤 서류를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뿐 아니라, 감축 등록을 허용하는 상황과 절차, CPT 승인 요건과 적용 방식 역시 대학마다 표현과 기준이 달라 일관성이 부족하다. 문서 형식은 모두 공식 안내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통일돼 있지 않다. 같은 연방 규정에 근거해 작성된 문서임에도 대학별 설명이 서로 다르다는 점은 유학생이 어떤 지침을 따라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유학생은 규정을 지키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뒤져 정보를 조합하거나, 국제학생 담당자에게 개별적으로 문의해야 한다. 일부 대학은 신분 유지 규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공하지만, 여전히 많은 대학은 최소한의 핵심 정보만 제시하고 구체적 상황에 대한 해석을 학생에게 맡기는 형태다. 자연스럽게 유학생들은 행정적 실수로 신분 위반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안내상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규정을 모르거나 잘못 이해한 행동이 신분 위반으로 이어지면, 비자 연장이나 입국 심사, CPT 또는 OPT 승인에서 실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극소수의 규정 악용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강화된 행정이, 오히려 성실한 대다수 유학생에게 불필요한 부담이 되는 모순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유학생 신분 유지에 필요한 모든 핵심 규정을 하나의 문서 안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 또는 SEVP 차원의 표준화된 공식 안내문이 필요하다. 여권과 I-20, I-94와 같은 기본 서류 관리 방식부터, 풀타임 등록 기준과 휴학 절차, 전과 및 편입 관련 규칙, CPT와 OPT 신청 요건 등 유학생의 체류에 필수적인 요소를 정확하고 일관된 언어로 제시하는 문서가 마련된다면 혼란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학교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유학생 보호책 대학별 유학생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학생처 대학별 안내
2025.11.17. 18:57
43일간 이어진 사상 최장 기간의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지난 12일 끝났다. 그러나 정부가 ‘정상화’됐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이번 사태가 남긴 것은 공백과 손실뿐이다. 국가 운영은 한 달 넘게 사실상 멈춰 있었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책임을 지려 하기보다 정파적 계산만 따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번 셧다운 종결을 ‘정치적 승리’로 포장하려 한다.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을 제외한 단기 지출법안(임시 예산안)이 통과됐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공화당이 보조금 연장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단지 논의가 내달로 미뤄졌을 뿐이다. 43일의 셧다운 끝에 얻은 것이 ‘시간 연장’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승리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을 회피하는 정치적 언어에 불과하다. 게다가 공화당이 입은 정치적 타격은 분명하다. 지난 4일 가주에서 실시된 연방 하원 선거구 획정안(프로포지션 50) 주민투표가 이를 보여준다. 이 안은 64.4%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거구를 그려 가주 의회에서 졸속 통과시킨 방식 자체가 문제임에도, 유권자는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도층이 찬성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은 공화당이 민심과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트럼프 2기 이후 지속된 강경 이민 정책, 그리고 이번 셧다운 장기화로 공화당은 중도층의 신뢰를 잃었다. 프로포지션 50의 통과는 민주당의 전략적 성공이 아니라, 공화당이 스스로 만든 정치적 자해에 가깝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승자였던 것도 아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사태의 명백한 패자이며, 책임은 오히려 더 무겁다. 셧다운을 장기화시킨 직접적 요인은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이었다. 민주당은 이를 ‘서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삼아 공화당 예산안에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그 명분은 현실과 충돌했다. 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프로그램(SNAP), 임산부·유아 영양 보조 프로그램(WIC) 등 생계 기반 프로그램이 중단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민주당은 저소득층의 삶보다 정권의 상징물인 ‘오바마케어’에 더 큰 우선순위를 뒀다. 국민 생활이 흔들리는 와중에 민주당이 선택한 것은 타협이 아니라 정치적 고착이었다. 이는 서민 보호가 아니라 서민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한 것과 다름없다. 민주당 내부의 혼란도 심각했다. 공화당 예산안에 찬성한 야권 상원의원 8명 중 7명이 민주당이었다. 이에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들로부터 공개적인 비난과 퇴진 요구까지 받았다. 민주당은 내부 분열을 노출하며 리더십 부재를 스스로 입증했다. 결국 이번 셧다운은 이념 경쟁도, 정책 논쟁도 아니었다. 양당이 서로의 실책에 기대며 책임을 미루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공화당은 민심을 잃었고, 민주당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계층에게 가장 큰 부담을 떠넘겼다.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43일 셧다운의 결론은 단순하다. 승자는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양당의 갈등 속에서 피해를 본 건 국민뿐이었다. 양당이 책임을 논하려면, 서로에 대한 비난에 앞서 국가를 볼모로 삼는 정치부터 끝내야 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셧다운 승자 연방정부 셧다운 이번 셧다운 공화당 예산안
2025.11.16. 18:00
지난해 회사 근처에 음료 가게가 문을 열었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보바티 가게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유명 인플루언서가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을 들여 줄을 섰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손바닥 반만한 케이크가 20달러 가까이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인플루언서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루언서라고 하면 보통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과 비슷한 지명도를 가진 유명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요즘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크리에이터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친구처럼 대화하며 제품, 서비스, 업체를 소개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를 유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올린 “이거 진짜 좋아요” 한마디가 광고 문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런 영향력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인게이지먼트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 대해 팔로워가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좋아요나 댓글, 공유 같은 행위를 포함한다. 팔로워 수가 아무리 많아도 반응이 적으면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팔로워 수는 적지만 반응률이 높으면 더 가치 있게 평가된다. 최근 기업들은 팔로워 숫자보다 인게이지먼트 비율이 높은 인플루언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팔로워 수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 정도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팔로워와의 관계가 밀접해, 브랜드 입장에서는 광고효과 대비 효율이 높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의 뷰티 제품들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뷰티 브랜드들이 틱톡을 중심으로 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물이라는 진단이 많다. 이 외에도 식당 등 소상공인들이 주로 하는 업체들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서 매출 상승을 끌어낸 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팔로워 수를 조작하거나 가짜 계정을 동원해 인게이지먼트를 부풀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품을 소개해놓고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거나 판매 후 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많다. 인플루언서와 협업한 소상공인이 계약 조건이나 수익 배분 문제로 피해를 보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늘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플루언서와 소상공인의 협업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대신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브랜드나 소상공인은 제품 품질과 협업 조건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맹목적으로 추천을 따르기보다 ‘왜 이 사람이 이 제품을 권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플루언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상생이 전제돼야 한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통해 작은 기업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자신과 맞는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디저트 가게의 긴 줄이 보여주듯, 소비자들은 이제 인플루언서의 한 마디에 움직인다. 인플루언서라는 문자 그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려면 결국 중심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진심 인게이지먼트 비율 뷰티 제품들 제품 품질
2025.11.10. 18:25
유튜브에 코카콜라의 한 광고 영상이 업로드됐다. 그래픽인듯하면서도 실사 같고, 생생한 디테일이 돋보이지만, 어딘가 뭉그려뜨려진 것 같은 모습.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제작된 동영상이다. 올해 연말 시즌을 앞두고 코카콜라는 전적으로 AI 기술을 사용한 광고 캠페인을 제작했다. 그러나 이 실험적인 시도는 대중과 창작계 그 누구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소비자는 “정이 없는”, “영혼이 빠진” 느낌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광고계 내외에서는 AI가 창작의 본질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코카콜라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AI 스토리텔링을 브랜드 자산에 접목하려 했던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제작사 측은 기존보다 빠른 제작 과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온라인 반응은 차가웠다. 유튜브 사용자들은 “표정이 이상하다”, “겨울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인간미가 없다”고 댓글을 달았다. 영상에 대한 ‘좋아요’는 3500여개, ‘싫어요’는 무려 4만5000개에 달했다. 이제까지 광고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져 온 ‘따뜻함’ ‘공감’ ‘연결성’이 해당 제작물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비판이다. 실제 분석기관 조사에서도 이번 코카콜라의 광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7.4%에 불과했다. 광고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업계에서도 AI에 대한 저항은 본격화되고 있다. 배우조합(SAG-AFTRA)과 각종 작가 단체, 배우들이 AI 대체에 크게 경각심을 갖고 있다. 예컨대 최근 등장한 AI 배우 틸리 노우드 논란이 대표적이다. 배우조합은 노우드가 실제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무단으로 학습해 만들어졌으며, 이는 배우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성명을 냈다. 또한 작가들도 자신의 직업이 ‘AI 보조’형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창작역량이란 점을 강조하며 집단행동을 통해 조건 개선을 이뤄냈다. 이들의 반감은 기술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복제해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여서 더 복잡한 면이 있다. 광고·미디어·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는 AI가 확산하면서 생산성 제고, 비용 절감, 시간 단축이라는 장점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용 불안, 직무 재정의, 저품질 콘텐츠의 범람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광고 업계에서 인간 중심 제작이 사라질 경우 브랜드 정체성 손상, 소비자와의 감정적 연결 약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AI 광고 논란은 단순히 한 기업의 잘못된 선택이라기보다는, 기술 변화가 창작·광고·문화 산업에 던지는 숙제로 보인다. 우선, ‘기술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심이다. 기업 측은 효율성과 혁신을 내세웠지만, 그 대가로 공감을 잃었다. 고용 측면에서는 배우, 작가, 디자이너 등 창작 기반 직무들이 AI 도구에 의해 변형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은 AI 도입 시 창작자와의 협업 모델을 명확히 하고, 창작자의 권리·보상 구조를 검토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 반대로 노동조합과 업계는 AI 활용의 경계선을 설정하고, AI라는 이유만으로 사용을 막지 않도록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소비자는 기술 변화의 수혜자이자 목격자로서, 어떤 콘텐츠가 진정 공감과 연결을 주는지, 효율적인 판단이었는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고통 창작 광고계 내외 온라인 반응 광고 캠페인
2025.11.09. 18:00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강경한 이민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유학생이나 취업비자 소지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언론은 “외국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례를 반복해 보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가 이미 존재하는 규정을 원칙대로 집행하는 데 가깝다. 문제의 상당수는 체류자가 법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강경함이 아니라, 본인이 자신의 신분과 체류 조건을 얼마나 명확히 알고 있느냐다. 최근 가장 많은 혼란과 사고를 낳는 지점은 바로 ‘비자(Visa)’와 ‘신분(Status)’의 구분이다. 두 단어는 비슷하게 쓰이지만, 법적으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비자는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허가증’이다. 해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발급받으며, 입국을 시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문을 여는 열쇠에 불과하다. 실제로 문 안에 들어와 머무를 수 있는 권리는 신분(Status)이 결정한다. 입국 시 세관국경보호국(CBP) 담당자가 부여하는 체류 자격이 바로 그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낭패를 본다. 비자가 만료되면 체류가 불가능하다고 착각하거나, 반대로 신분이 끝났는데 비자가 남아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법적 효력은 반대다. 비자가 만료돼도 신분이 유효하면 합법 체류가 가능하고, 신분이 만료되면 비자가 살아 있어도 체류 자격은 사라진다. 예를 들어 F-1 학생 신분은 I-20에 명시된 프로그램 종료일까지 유효하며, 종료 후 6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이 지나면 ‘Out of Status’로 간주된다. 따라서 비자 만료일보다 I-94, I-20, DS-2019 등 신분 관련 서류의 기한을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입국 후 체류 목적이 달라질 경우에는 ‘신분 변경(Change of Status)’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관광비자(B-2)로 입국한 뒤 공부를 시작하려면, F-1 신분으로의 변경이 승인된 이후에만 수업이 가능하다. 승인 전에 수업을 시작하면 불법 체류로 간주될 수 있다. USCIS(이민국) 정책 매뉴얼에도 “승인 전에는 새로운 활동을 개시하지 말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신분 변경은 I-94 만료 전에 신청해야 하며, 승인된 시점부터 새 신분이 효력을 가진다. 불가피한 사유가 입증되면 만료 후에도 예외적으로 승인될 수 있지만, 이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편 비이민 체류자가 영주권자로 전환하는 절차는 ‘Adjustment of Status(AOS)’라 불린다. 이는 Form I-485를 통해 미국 내에서 진행할 수 있으며, 합법 신분 유지가 기본 조건이다. 신분 위반 이력이 있을 경우 이민법 245조(c)에 따라 조정이 금지되지만, 시민권자의 직계가족처럼 일부 예외 규정도 존재한다. 즉, AOS는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신분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절차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은 새로운 규제라기보다 기존 법의 ‘엄격한 집행’에 가깝다. 따라서 체류자에게 필요한 것은 불만이 아니라 이해와 대비다. 자신의 신분 유형과 체류 만료일, 변경 절차, 출입국 요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전문가나 USCIS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행정 착오나 기한 관리 실패에서 비롯되지만, 그 복구조차 제도를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민 제도는 복잡하지만 임의적이지 않다. 정부의 변화보다 위험한 것은 무지이며, 체류의 안정은 결국 스스로 공부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체류 신분 체류 신분 비이민 체류자 신분 변경
2025.10.20. 19:33
LA시정부 수장들이 또다시 한인타운을 찾았다. 캐런 배스 LA시장과 짐 맥도널 LA경찰국(LAPD) 국장이 지난 9일 나란히 참석한 ‘한인타운 치안 간담회’는 한인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간담회가 끝난 뒤 남은 것은 익숙한 장면과 공허한 약속뿐이었다. “LAPD는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에 협조하지 않는다.”, “노숙자와 불법 노점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 수년째 되풀이된 문장이 또 한 번 회의장을 채웠다. 맥도널 국장은 “LAPD는 1979년부터 ICE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절대 협조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수십 년째 반복되어온 원칙일 뿐이다. 주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문장 하나의 재확인이 아니라, 그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였다. 불체자 단속 소문이 돌 때마다 한인사회가 느끼는 불안은 여전하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선언만 되풀이되는 사이, 커뮤니티는 여전히 공포 속에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다. 원칙만 있고 실행은 없는 현실이다. 이번 간담회에서 거론된 의제 역시 낯설지 않다. 노숙자, 불법 노점상, 낙서 등. 매번 등장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는 주제들이다. LA시와 LAPD가 같은 문제를 언급하는 사이, 거리의 현실은 오히려 악화됐다. 인도 위엔 여전히 노숙자 텐트가 줄지어 있고, 불법 노점은 늘었으며, 벽에는 낙서가 덧칠되고 있다. “적극 대응하겠다”는 말은 회의록에 남았을 뿐, 현장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주민들이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 중 실제로 작동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배스 시장은 “한인 커뮤니티와 협력하겠다”며 이민자 권리 정보 한국어 제공과 법률 지원 프로그램(Represent LA)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대책이 아니라 기존 사업을 되풀이한 수준이다. 정책의 언어는 언제나 그럴듯하지만, 실행은 없다. 말은 부드럽고 사진은 보기 좋지만, 주민의 체감은 전무하다. LA시의 정책은 늘 계획 단계에서 멈추고, 한인타운의 현실은 늘 그 자리에 머문다. 문제는 간담회 형식에도 있다. 매번 열리는 이런 회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연출된 대화’의 무대다. 사전에 정해진 발언자들이 준비된 질문을 던지고, 관계자들은 원론적인 답변으로 시간을 채운다. 회의가 끝나면 언론용 사진 몇 장만 남고, 다음날이면 모든 것이 잊힌다. 게다가 현장을 찾았다며 ‘점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길거리에 나가 문제들을 직접 보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치안 현장 점검은 탁상행정에 머무를 뿐, 아무것도 점검되지 않았다. 한인타운 주민들은 이제 ‘말의 정치’에 지쳤다. “협력하겠다”, “지원하겠다”는 구호는 수없이 들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실행의 증거다. 회의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변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배스 시장과 맥도널 국장의 방문은 상징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문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왔다 갔다 한 행정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한인타운의 문제는 문서 속 정책 항목이 아니라, 매일 그 거리를 걸어야 하는 주민들의 생존 문제다. 같은 약속을 반복하고, 같은 대책을 재탕하는 간담회라면 차라리 열지 않는 것이 낫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말 만큼 무책임한 위로는 없다. 한인타운 치안 간담회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제 말이 아니라 변화의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회의는 또 한 번의 ‘도돌이표 정치’로 기록될 것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타운 약속 한인타운 주민들 한인타운 치안 불법체류자 단속
2025.10.19. 18:54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소속 이름 테러리스트 그룹 영화 제목 영화 전체
2025.10.14. 20:27
젊은 층 사이에서 작은 휴대폰이 조용히 인기다. ‘유니허츠(Unihertz)’가 만든 초소형 스마트폰 ‘젤리스타(Jelly Star)’는 화면이 3인치에 불과하지만, 최신 안드로이드 13 운영체제를 갖췄다. 손바닥 위에 쏙 들어오는 크기, 투명한 외관, 반짝이는 LED 조명은 과거 휴대폰의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작고 귀여운 디자인에 끌린 젊은 이용자들은 작고 귀여운 이 폰을 통해 ‘덜 연결된 삶’을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하루 7시간 쓰던 스마트폰 사용이 젤리스타로 1시간으로 줄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오래 사용하기엔 화면이 너무 작고, 긴 글을 쓰기도 불편하다. 결과적으로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줄고, 오프라인의 시간이 늘어난다. 이런 방식으로 일부 젊은 층은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 더 큰 화면, 더 강한 성능을 좇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히려 작고 불편한 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디지털 피로감이 있다. 무한한 정보, 끊이지 않는 알림, SNS 속 타인과 비교와 집중력 저하에 지친 젊은 세대가 ‘덜 연결된 일상’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것이다. 삶에서 완전히 기술을 끊어내진 않지만, 필요한 만큼만 쓰도록 강제하는 식이다. 젤리스타 같은 제품은 그런 절제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작아서 덜 보게 되고, 덜 하게 만든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시대적 피로감과 연관돼 있다. 기술이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피로감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이 쏟아지고, 인공지능(AI)이 대화하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에, 많은 이들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숨이 벅찬 상태다. 젤리스타를 든 젊은 세대는 그 피로에 대한 항의처럼 보인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작은 스마트폰을 구매하게 되는 계기다. 이와 연관된 또 다른 원인으로는 ‘구식에 대한 향수’가 있다. 젤리스타의 디자인은 2000년대 피처폰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Z세대가 다시 찾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CD플레이어, 덤폰(dumbphone) 열풍과 유사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레딧의 사용자들은 최신 기술이 주는 완벽함보다, 불완전하고 느린 과거의 감각에서 안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두고 ‘세대의 역주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이는 기술 사회에서 파생된 일종의 트렌드다.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이들과 남들과는 달라야 하는 젊은 층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반짝 인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본능으로도 느껴진다. AI 기술의 확산은 이런 흐름을 더 자극하고 있다. 이제 스마트폰은 일정 관리, 문자 작성, 사진 보정까지 알아서 해준다. 하지만 편리함이 쌓일수록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를 잃는다. 젊은 세대가 작은 폰을 선택하는 건 이런 과잉 기능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모든 걸 대신해주는 기계’보다, 최소한의 기능만 가진 폰을 통해 스스로 통제감을 되찾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는 소리다. 모든 게 더 빨라질수록 느린 것에 더 시선이 가게 마련이다.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연결 자유 스마트폰 사용 초소형 스마트폰 디지털 피로감
2025.10.12. 19:10
H-1B는 본래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특수 전문직을 일정 기간 보완하려 만든 비자다. 지난 19일 발표한 백악관의 ‘특정 비이민 노동자 입국 제한’ 포고령은 이 취지를 현실에 맞게 정렬하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이후 접수되는 신규 H-1B 고용 청원서(I-129)에는 10만 달러 납부가 연계되고, 미납이면 비자가 나와도 입국 단계에서 제한된다. 대상은 신규 접수분으로 한정되며 기존 보유자·9월 21일 이전 접수분·갱신·여행·재입국은 제외된다. 운용은 12개월 한시, 국가이익 예외는 케이스별 적용이 가능하다. 닫는 조치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들어올지를 앞단에서 가려내는 설계다. 이미 등록 단계의 선필터는 수치로 확인됐다. 2026 회계연도 전자등록에서 수혜자를 개인 단위로 묶고 여권 정보를 확인하자 유효 등록이 전년 47만342건에서 34만3981건으로 26.9% 줄었고, 1인당 평균 등록 수는 1.01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일반 6만5000·석사 2만 쿼터는 지난 7월 18일 전량 소진됐다. 수요는 살아 있고, 중복과 허수만 빠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21일부터 입국 단계의 10만 달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가격 신호는 ‘싼값에 많이’ 넣는 대량 신청의 계산을 앞단에서 바꾸고, 실제 가치가 분명한 자리만 추첨장까지 들어오게 만드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추첨은 남되, 추첨장 입장은 먼저 엄선되는 구조로 방향이 바뀌는 중이다. 이 흐름은 제도 설계와도 맞물린다. H-1B를 쓰려면 고용주는 노동조건신청서(LCA)로 직무·임금·근무지·기간을 신고·공개하고, 회사 내부 실제임금과 지역 통상임금 가운데 더 높은 금액을 최저선으로 지급해야 한다. 파업·직장폐쇄 중 대체 투입 금지와 회사 사유의 비생산 시간 임금 지급 의무까지 붙어 있어 “미국인 연봉 12만 달러 자리에 H-1B 7만 달러”식 임금 덤핑은 애초 계산이 잘 맞지 않는다. 이번 변화는 이 기본 구조에 입구의 비용 필터를 한 겹 더 얹어, 많이 넣는 복권 게임을 제값을 치르는 커밋 게임으로 바꾸는 단계다. 여기에 포고령 제4조가 다음 수순을 분명히 걸어뒀다. 노동부에는 통상임금 수준을 재조정하는 규정 개시를, 국토안보부에는 고임금·고숙련에 우선순위를 두는 선발 기준 마련을 각각 지시했다. 등록을 깨끗하게 하고, 진입을 가격으로 확인하며, 기준을 규정으로 고정하는 삼중 여과가 제도 안에 자리 잡도록 설계한 것이다. 단기 파장도 있다. 초기·영세 기업에는 체감 비용이 커질 수 있고, 일부 직무·지역에서는 구인 비용과 채용 리드타임이 늘 수 있다. 전환기에는 행정 안내와 심사 기준이 현장에 퍼지는 동안 일시적 혼선도 가능하다. 다만 이번 조치는 신규 접수분으로 한정되고 12개월 한시이며, 전략 분야·핵심 인력에는 국가이익 예외가 열려 있다. 축은 ‘채용을 막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들어오느냐’로 옮겨가는 중이다. 평가는 데이터로 하자. 10만 달러 납부는 9월 21일 이후 접수분부터 본격 작동했으니, 효과의 본무대는 2026 회계연도 말과 2027 회계연도 초에 드러난다. 그때 우리는 등록·추첨의 중복 축소 폭, 승인 분포에서의 고숙련 유지와 중소 스폰서 진입률, 임금·선발 기준 개정 이후의 실제 임금 분포 변화를 보면 된다. 지금까지의 사실만 놓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제도는 문을 닫지 않았다. 추첨장에 아무나 들어오던 길을 정리했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쪽만 남게 만드는 길로 조용하지만 뚜렷하게 방향을 틀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진입 지역 통상임금 신규 접수분 추첨장 입장
2025.09.22. 19:10
헤더 허트(10지구) LA시의원이 지난 17일 대표 발의한 ‘LA 한인타운 보행자 전용 거리 조성 시범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안건의 핵심은 주말마다 6가 선상(노먼디~카탈리나 구간)의 차량 통행을 막고, 보행자 전용 구간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신선하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인타운은 LA 중심부에 위치해 정체 구간이 많은 지역이다. 또 주차 공간은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이에 주민과 방문객은 길거리 주차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K-문화를 체험하려는 인구 유입까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타운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를 폐쇄한다는 것은 교통 혼잡을 더 키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이번 시범안은 장기적으로 ‘영구화’까지 검토되고 있다. 정책 추진 과정은 더욱 문제다. 영향 평가 보고서도, 비용 추산도 없다. 허트 의원이 내세운 유일한 논거는 ‘주민 다수가 원한다’는 불분명한 설문조사다. 응답자 77.8%가 찬성했다는 숫자 외에는 정작 표본 규모, 조사 대상, 방법론은 공개되지 않았다. 특정 의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맞춤형 여론’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근거가 과연 수만 명의 주민 삶에 직결될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가. 물론 주민들이 정말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요구가 실제 시행될 경우 사회, 경제, 환경 등 여러 방면에서 득과 실을 냉정히 따져봐야 하는 것이 시의원이 할 일이다. 만약 이득이 크다면 당연히 추진되어야 하지만 피해가 더 클 경우 시행하기 어려운 이유를 공개하고 주민들을 오히려 설득해야 한다. 허트 의원은 가장 기본적인 지역구와의 ‘소통’을 간과하고 있다. 더 큰 모순은 따로 있다. 정작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여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서울국제공원 확장안은 지난해 9월 발의된 이후 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녹지와 여가 공간 부족은 한인타운의 오래된 문제다. 공원을 확장하면 주민들에게 삶의 여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환경 개선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 대책은 외면한 채, 비용조차 산정되지 않은 도로 폐쇄안을 우선 통과시킨 것이다. 시민에게 필요한 건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 대책이다. LA시의회의 보여주기식 정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이랜드파크 레크리에이션 센터 내 낡은 수영장을 ‘새미 리 박사 수영장’으로 명명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아시아계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이름을 기리는 취지 자체는 뜻깊다. 그러나 문제는 당면한 현실이다. 해당 수영장은 이미 시설 노후로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케빈 드레온 전 시의원이 재임 당시 통과시킨 해당 수영장 개보수 안건은 예산조차 없는 껍데기였다. LA시 내 노후 수영장 개보수 평균 비용은 3000만 달러. 그런데 현재 LA시는 10억 달러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영장 개보수가 과연 시민을 위한 최우선 과제인가. 결국 위대한 체육인의 이름은 시민 편의와는 무관하게 정치인의 상징 소비에 이용되고 있다. 시의회가 현재 연방 정치판의 혼란 상황에 가려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덜 받는다는 이유로 의정 활동을 대충해서 되겠는가. LA시의원들은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세금과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명분용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교통 혼잡을 가중하는 도로 폐쇄, 예산 없는 수영장 개보수 같은 보여주기식 정치는 시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좌절만 안겨준다. LA시의원들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정책이 정말 시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을 위한 장식품인가.”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타운 거리 la 한인타운 길거리 주차 전용 거리
2025.09.21. 19:00
자동차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판매용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콘셉트카(concept car)’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차들이 무대 위를 장식할 때, 관객들은 단순히 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엿보는 듯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콘셉트카가 실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왜 제조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는 콘셉트카를 꾸준히 선보이는 걸까. 콘셉트카는 일종의 ‘미래 선언문’이다. 실제로 양산되지 않더라도, 해당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어떤 기술을 차에 녹여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차의 ‘N 비전 74’ 의 경우, 수소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라는 실험적 개념을 통해 미래 친환경차 시대에도 브랜드가 퍼포먼스 DNA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CES나 모터쇼에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기반의 UX를 강조한 콘셉트카를 내놓으며, 기술력을 과시하고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의 관심을 끌어냈다. 콘셉트카는 ‘연구실 밖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양산 모델에서는 비용·안전·규제라는 벽에 부딪히지만, 콘셉트카에서는 자유롭게 디자인 언어와 기술을 실험할 수 있다. BMW가 최근 공개한 ‘i 비전 디’ 콘셉트카는 외부 패널 색상이 전자잉크처럼 바뀌는 기술을 담았다. 아직 상용화 단계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런 과감한 시도는 결국 소재 연구와 인터페이스 혁신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사회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에서 콘셉트카는 첫 단계다. 또 콘셉트카는 브랜드 마케팅 무기다. 자동차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현재, 제조사들은 단순히 차를 파는 것을 넘어 미래를 파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이라는 격변의 시대에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미래를 각인시키는 데 콘셉트카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다. 특히 SNS와 유튜브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과감한 디자인이 전 세계적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최근 디트로이트 오토쇼와 IAA 모빌리티, CES를 살펴보면 이런 흐름이 분명하다. 복스왜건은 보급형 전기 SUV 콘셉 ‘ID.크로스’를 공개하며 가격 경쟁에 초점을 맞췄고, 아우디는 ‘콘셉트 C’를 통해 TT와 R8을 잇는 전동화 스포츠카 비전을 내놨다. 벤틀리는 ‘EXP 15’에서 1930년대 헤리티지를 미래 전기차에 녹여냈다. 즉 콘셉트카는 각 브랜드가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방식”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콘셉트카는 결국 쇼 카(show car)”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실제 양산차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 실험들은 곳곳에서 현실화된다. 현대차 아이오닉 5의 파격적인 직선 디자인은 사실 과거 ‘45’ 콘셉트에서 먼저 선보였고, 테슬라 사이버트럭도 원래는 실험적 디자인 스터디에 불과했다. 콘셉트카는 현재와 미래를 잇고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동차 산업은 지금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 있다. 전기차 전환은 속도가 조절되고, 규제는 완화와 강화 사이를 오가며, 소비자는 여전히 가격에 민감하다. 이런 시기에 콘셉트카는 오히려 중요한 나침반일 수 있다. 기업이 어디로 가려 하는지, 기술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디자인이 어떤 트렌드를 겨냥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모터쇼 무대 위의 콘셉트카를 볼 때마다 단순히 멋있다고 감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차가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도로 위를 달릴까”를 상상한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담는 도화지다. 그 초안을 가장 대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콘셉트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콘셉트카 concept concept car 디자인 언어 브랜드 마케팅
2025.09.14. 18:33
지난 1월, 아빠가 됐다. 이제 7개월된 예쁜 딸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2025년생인 아이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인공지능(AI) 네이티브 세대’가 됐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인공지능은 공기처럼 존재할 것이고, 아이는 그것을 당연한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자라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PC를 사용하면서 자랐고 성인이 돼서는 모바일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어떤 ‘혁신’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사회 전반에 변화를 몰고 올 AI 시대가 되니 부모인 나는 아이가 어떻게 적응할지 벌써 고민이 깊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상당수의 대학은 강경하게 금지한다. 실제로 조지타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학생들이 과제에 챗지피티 같은 AI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첫 위반은 0점을 주고, 두 번째는 아예 낙제를 시키며 학문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면 플로리다 대학교는 아예 교양과정에 AI 수업을 포함해 모든 학생이 관련 과목을 이수하면 ‘AI 수료증’을 주는 제도를 운용한다. 한쪽에서는 위험하다며 막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를 대비한다며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이 과제를 고치거나 보완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AI에게 과제 전체를 맡긴다는 답변도 15%에 달했다. 교육의 방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자리 전망은 더 불안하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2022년 말 이후 20세 초중반 사회초년생들의 경력을 추적한 결과, AI 노출이 높은 직업군은 고용이 13%나 줄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경우 무려 20%가 감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AI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최대 3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다소 균형 잡힌 전망을 했지만, 그래도 약 9200만 개의 직업은 없어지고 1억7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최근 멜라니아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AI 챌린지’를 출범시켰다. 구글, 오픈AI, IBM 같은 기술 기업들과 손잡고 미국 전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AI 활용 프로젝트를 공모하는 대회다. 올해 12월까지 참가 신청을 받아 내년 봄 지역대회를 거쳐 백악관 결선 무대에서 우승팀을 뽑고, 상금 1만 달러까지 주겠다고 한다. 학교 현장에 AI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부모 입장에서 더 고민되는 지점은 세대 간 격차다. 삼성전자가 여론조사 기업 모닝컨설트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88%는 “아이의 미래 교육과 직업에서 AI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81%는 학교 수업에 AI가 포함돼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뜻이다. UN 산하 연구기관인 UNICRI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AI 문해력 차이를 줄이기 위해 “소통하고, 배우고, 설명하라”는 3단계 원칙을 제시했다. 부모가 먼저 배우고 경험해야 아이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등장 이후 태어난 모든 아이는 앞으로 AI와 함께 호흡할 것이다. 문제는 부모 세대가 아이의 앞길을 안내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 답을 찾으려면 부모 세대가 먼저 AI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용기를 내야 한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자녀 교육 최근 교육 초중반 사회초년생들 조지타운 대학
2025.09.09. 18:25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는 여름 내내 전 세계 대중문화를 흔든 작품이다. 세 명의 K팝 아이돌이 악귀와 싸운다는 기발한 설정은 넷플릭스를 타고 순식간에 ‘전 지구적 현상’으로 번졌다. 공개 7주째에도 스트리밍 1위를 지키며 누적 시청 수 2억 건에 육박했고,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3일과 24일 전국 1700개 극장에서 상영된 ‘싱어롱’ 버전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단 이틀간 약 1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지난 2022년 넷플릭스가 일주일간 상영한 영화 ‘글래스 어니언’의 흥행 실적(1500만 달러)을 단숨에 넘어선 기록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지난 2021년 팬데믹 시기 넷플릭스와 ‘직행 딜’을 체결했다. 제작비 1억 달러를 보전받고 25% 프리미엄을 받되 상한은 2000만 달러라는 조건이었다. 결국 소니가 거둔 성과는 제작비 1억 달러 회수에 더해진 2000만 달러 프리미엄, 총 1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 반대로 넷플릭스는 약 1억2000만 달러와 자체 마케팅 비용만 투입했을 뿐, 이후 성과는 모두 독점했다. 2억 회에 달하는 스트리밍, 7주 연속 글로벌 1위, 빌보드 차트 정상, 단 이틀간 1800만 달러 극장 수익까지 모두 넷플릭스의 자산이 됐다. 여기에 로튼토마토의 97%라는 평단의 호평까지 겹치며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소니는 ‘안전한 거래’로 제한된 이익에 그쳤지만, 넷플릭스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황금알을 거머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대박을 예고한 작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K팝, 애니메이션, 한국적 퇴마 설정이 섞인 기획은 업계 시각으로는 애매하고 실험적인 조합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공개 직후 반응이 더뎠지만, 틱톡 챌린지와 커버 영상, 팬아트 등 팬덤의 자발적 참여가 확산하면서 5주 차에 시청률이 치솟는 ‘역주행’이 벌어졌다. 결국 대규모 광고보다 팬덤이 만들어낸 바이럴이 흥행의 핵심 동력이었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 평가다. 만약 실패했다면 넷플릭스는 막대한 제작비를 떠안은 패자가 되고, 소니는 손실을 피한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 사례는 리스크와 보상이 결과에 따라 어떻게 극적으로 갈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의 성공 방식은 단순히 자본력이나 플랫폼 규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전문가 눈에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흥행성이 낮아 보이는 작품에도 과감히 투자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오징어게임이 그랬듯, 케데헌 역시 업계 통념으로는 위험 부담이 큰 기획처럼 보였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선택했고, 그 모험은 글로벌 현상으로 이어졌다. 또 넷플릭스는 작품을 단발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리즈화, 관련 상품, 콘서트 이벤트 같은 파생 사업까지 염두에 두며 장기적으로 키운다. 케데헌도 이미 후속편과 스핀오프 논의가 거론되고 있고, 음악과 극장 이벤트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위험을 피하지 않고 창작자의 창의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장기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이것이 넷플릭스식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진짜 힘이다. 결국 케데헌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위험을 감수한 자만이 보상을 독점한다는 냉정한 법칙, 그리고 예상치 못 한 요소가 산업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승자 패자 소니 픽처스 k팝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1위
2025.08.25. 18:19
가주 연방 하원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가주 의회 양원은 지난 21일 압도적인 표차로 선거구 획정을 최종 결정짓기 위한 주민투표안을 통과시켰고, 개빈 뉴섬 주지사는 곧바로 서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4일 유권자들은 선거구 획정 여부를 직접 결정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를 정치적 승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공정성의 모델’이라던 가주의 자부심을 집권세력이 스스로 걷어찬 순간이었다. 민주당이 내세운 명분은 단순하다. 텍사스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 가주 역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주의 일방적 행동에 또 다른 주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법치와 절차는 ‘눈에는 눈’의 흥정거리가 아니다. 또 정치란 결국 주민을 위한 것인데, 이 결정에는 주민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파괴다. 가주는 지난 2010년부터 독립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담당해왔다. 이는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닌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정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뉴섬 주지사와 민주당 다수 의회는 헌법까지 비틀어가며 자신들의 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위험한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절차는 ‘속전속결’이었다. 원래는 지난 22일 표결이 예상됐지만, 민주당은 15일 획정안을 발표한 지 불과 6일 만에 의회 표결을 강행했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발언권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토론과 견제를 무시한 처사다. 정책적 효과도 노골적이다. 뉴섬 주지사가 공개한 획정안은 공화당 현역 5명을 ‘더 푸른’ 지역으로 몰아넣고, 민주당 경합 지역 세 곳을 더 푸르게 만든다.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구’라는 원칙 대신 ‘상대가 5석 가져가면 우리도 5석’이라는 등가교환 논리가 기준이 됐다. 유권자의 목소리는 지역사회 대표성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획정안은 공동체 결속과 생활권을 자르는 ‘정치적 메스’가 됐다. 경제적 부담도 가볍지 않다. 주민투표 예상 비용만 2억35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고스란히 주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경기 회복, 치안 강화, 주택난 등 산적한 현안과 재정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보복 청구서를 얹는 모양새다. 정책 우선순위가 권력 연장보다 뒤에 있는가, 앞에 있는가. 그 질문에서 뉴섬 주지사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무차별적 이민 단속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을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해법은 더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묶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도 하니 우리도 한다”는 보복과 독단 정치가 아니라, “우리는 달라야 한다”는 규범 정치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순간, 주민들의 삶은 정쟁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정치는 성숙한 절제와 책임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론은 간명하다. 유권자는 ‘맞불’이 아니라 ‘원칙’에 표를 던져야 한다. 독립위원회 기능을 멈추고 색깔 지도에 도장 찍는 순간, 가주는 스스로 자랑하던 공정성 모델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오는 11월 4일, 선택은 하나다. 권력을 위한 선거구 지도를 고르는가, 원칙을 위한 지도를 되찾을 것인가.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독단과 선거구 선거구 획정 하원 선거구 정치적 보복
2025.08.24. 17:12
조지 레무스는 1876년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약국에서 일하며 성장한 그는 약대를 졸업해 약사로 일을 했다. 이어 법대를 졸업해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1920년 금주법 시행이었다. 금주법에 따라서 모든 술은 판매할 수 없게 됐지만 의학용 알코올은 예외였다. 레무스는 약사와 변호사로서의 지식을 결합해 이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보건용 위스키' 판매 면허를 확보한 뒤 합법적으로 대량 구매한 주류를 빼돌려 암시장에서 팔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증류소와 유통망을 직접 장악해 생산부터 판매까지 통제했다. 그 결과 그는 3년간 40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벌었다. 현대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다. 그에게는 밀주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렇게 하루 아침에 부호가 된 그는 전설적인 파티로도 이름을 알렸다. 한 신년 파티에서는 여성 손님 모두에게 새 자동차를, 남성 손님에겐 금시계를 선물했다. 그의 파티에 초대받는 것만으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캐릭터 개츠비가 조지 레무스를 모델로 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을 정도다. 물론 그의 이런 향락과 사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금주법 위반 수사가 시작되면서 연방 법무부는 비밀요원 프랭클린 도지를 투입했다. 도지는 탈세 혐의로 레무스가 수감돼 있는 감옥에 잠입해 그의 신뢰를 얻었으며 이를 통해서 그가 은닉한 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심지어 도지는 수사 과정에서 레무스의 아내 이모진과 깊은 관계가 됐다. 둘은 레무스가 수감 중인 사이 그의 재산을 처분했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 레무스가 손에 쥔 것은 고작 100달러였다. 1927년 10월, 출소한 레무스는 부인이 제기한 이혼소송 재판때문에 신시내티 에덴파크의 법정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부인이 탄 차를 발견했다. 부인의 차량에 따라붙었고 부인을 강제로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인을 총격 살해했다. 의붓딸도 이를 목격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재판에서 그는 부인의 배신, 재산 강탈, 암살 기도 등을 주장하며 '일시적 광기'를 내세웠다.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후 그는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누군가 소설로 쓴다면 '너무 극적이다'라고 말할 만한 그의 인생은 버번 위스키 브랜드로 오늘 날 다시 살아났다. 한 증류소가 그의 이름을 사용한 버번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금주법 시대의 전설적인 부호이자 범법자, 배신과 살인의 이야기까지 담긴 이 이름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다. 심지어 금주법이 해제된 날을 기념해서 매년 새로운 버전의 위스키를 내놓고 있으며 최근에는 '개츠비'라는 이름을 단 위스키도 발매하면서 위스키 매니아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브랜딩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강렬한 이야기는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이야기를 기억한 소비자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실 때, 그들은 개츠비의 파티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위스키를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을 무의식 중에 받게 된다. 고객들을 매혹할 이야기라면 100년 전의 범법자도 기꺼이 이름을 빌려와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라도 브랜딩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냉혹한 비즈니스 환경이기 때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밀주의 위스키 버번 위스키 보건용 위스키 금주법 위반
2025.08.19.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