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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법망 피하는 관리되지 않는 위험

Los Angeles

2026.04.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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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길 사회부 기자

강한길 사회부 기자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발생한 한인 임신부 총격 피살 사건이 범인의 무죄 판결〈본지 3월 23일자 A-4면〉로 종결됐다. 법원은 범인인 코델 구스비의 심신상실을 무죄 판결 이유로 밝혔다. 전문가들이 일치된 의견을 냈고 검찰도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법적으론 설명이 가능하다. 범행 당시 범인에게 책임 능력이 없다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은 근대 형법 체계의 오랜 근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적 논리가 유족의 슬픔과 사회적 공분을 메우지는 못한다. 판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형사적 처벌이 사라진 비극 앞에서 사법 체계가 말하는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3년 6월 13일 시애틀 벨타운 교차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에 접근한 코델 구스비는 운전석을 향해 최소 여섯 차례 총격을 가했다. 차량에는 임신 8개월의 한인 여성 권이나씨(당시 34세)가 타고 있었다. 권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응급 분만으로 태어난 딸 에블린도 끝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을 담당한 킹카운티 검찰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만 약 100건의 살인 사건이 범인의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연평균 2~3건의 살인 사건이 처벌이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넘어간 셈이다.
 
무죄는 법적 선언일 뿐이다. 재범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증명은 아니다. 범행 당시의 판단 능력 상실은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구스비의 과거 기록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과거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20년 인디애나주에서의 가정폭력 사건으로 수배 상태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중범죄 전력으로 총기 소지가 금지된 상태였다. 그는 사건 당시 훔친 권총을 사용했다. 이번 범행이 예측 불가능했는지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정부는 구스비와 같은 인물을 정신 치료 시설 수용 등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현실은 충분하지 않다. 연방 보건자원서비스관리국(HRS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약 1억2200만 명의 미국인이 ‘정신건강 전문 인력 부족 지역’에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약 37%나 된다. 장기 치료 시설은 부족하고 강제 치료 기준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정신 건강 시스템의 실패”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위험인물이 적절한 치료와 감시 없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시스템의 구멍이 무고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범인에 대한 심신상실 판결은 피해자 가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다.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지워지는 순간, 피해자의 고통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형사 재판이 처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때,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의 인권과 정신 상태를 따지는 동안 피해자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법은 가해자의 뇌 구조와 심리를 분석하지만, 무너진 피해자의 삶을 복구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사법 구조에서 피해자 가족을 위한 지원과 보상은 늘 부차적인 문제다.  
 
법이 응징을 통한 정의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보완책이라도 즉각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해자의 ‘치료받을 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판결의 정당성 논쟁을 넘어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무죄 판결 이후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치료는 실효성이 있는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관리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가, 피해자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상실감을 치유할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는가 등이다.
 
법이 완벽한 정의를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에는 최소한 비극의 반복을 막을 의무가 있다.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격리와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무죄 판결 이후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한다. 대책 없는 관용과 방치된 시스템은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방조 행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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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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