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발생한 한인 임신부 총격 피살 사건이 범인의 무죄 판결〈본지 3월 23일자 A-4면〉로 종결됐다. 법원은 범인인 코델 구스비의 심신상실을 무죄 판결 이유로 밝혔다. 전문가들이 일치된 의견을 냈고 검찰도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법적으론 설명이 가능하다. 범행 당시 범인에게 책임 능력이 없다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은 근대 형법 체계의 오랜 근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적 논리가 유족의 슬픔과 사회적 공분을 메우지는 못한다. 판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형사적 처벌이 사라진 비극 앞에서 사법 체계가 말하는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3년 6월 13일 시애틀 벨타운 교차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에 접근한 코델 구스비는 운전석을 향해 최소 여섯 차례 총격을 가했다. 차량에는 임신 8개월의 한인 여성 권이나씨(당시 34세)가 타고 있었다. 권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응급 분만으로 태어난 딸 에블린도 끝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을 담당한 킹카운티 검찰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만 약 100건의 살인 사건이 범인의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연평균 2~3건의 살인 사건이 처벌이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넘어간 셈이다. 무죄는 법적 선언일 뿐이다. 재범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증명은 아니다. 범행 당시의 판단 능력 상실은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구스비의 과거 기록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과거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20년 인디애나주에서의 가정폭력 사건으로 수배 상태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중범죄 전력으로 총기 소지가 금지된 상태였다. 그는 사건 당시 훔친 권총을 사용했다. 이번 범행이 예측 불가능했는지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정부는 구스비와 같은 인물을 정신 치료 시설 수용 등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현실은 충분하지 않다. 연방 보건자원서비스관리국(HRS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약 1억2200만 명의 미국인이 ‘정신건강 전문 인력 부족 지역’에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약 37%나 된다. 장기 치료 시설은 부족하고 강제 치료 기준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정신 건강 시스템의 실패”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위험인물이 적절한 치료와 감시 없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시스템의 구멍이 무고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범인에 대한 심신상실 판결은 피해자 가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다.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지워지는 순간, 피해자의 고통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형사 재판이 처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때,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의 인권과 정신 상태를 따지는 동안 피해자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법은 가해자의 뇌 구조와 심리를 분석하지만, 무너진 피해자의 삶을 복구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사법 구조에서 피해자 가족을 위한 지원과 보상은 늘 부차적인 문제다. 법이 응징을 통한 정의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보완책이라도 즉각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해자의 ‘치료받을 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판결의 정당성 논쟁을 넘어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무죄 판결 이후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치료는 실효성이 있는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관리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가, 피해자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상실감을 치유할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는가 등이다. 법이 완벽한 정의를 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에는 최소한 비극의 반복을 막을 의무가 있다.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격리와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무죄 판결 이후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한다. 대책 없는 관용과 방치된 시스템은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방조 행위와 다르지 않다. 관련기사 한인 임산부 살해범 무죄 판결…“범행 당시 정상적 판단 상실” 강한길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법망 무죄 판결 정신 치료 형사적 처벌
2026.04.14. 20:25
3년 전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대낮에 무차별 총격으로 만삭의 한인 임산부 권이나(사망 당시 34세) 씨와 태아를 살해한 피의자가 심신미약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본지 2023년 6월 15일자 A-1면〉 관련기사 한인 임산부 대낮 '묻지마 총격' 피살 지난 20일 킹카운티 검찰과 피의자 코델 구스비(33) 측이 각각 조사를 의뢰한 정신과 전문의들은 피의자가 범행 당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카운티 검찰은 심신상실(insanity)에 따른 무죄 판결에 동의하기로 했다. 워싱턴주 법에 따르면 심신상실에 의한 무죄는 피고가 범행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당시 정신 상태로 인해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구스비는 치료를 목적으로 주정부 산하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우훈식 기자임산부 살해범 한인 임산부 무죄 판결 판단 상실
2026.03.22. 19:37
납치 및 살인 혐의로 지난 3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남성에게 1일 법원이 사실상 무죄를 판결했다. 윌리엄 라이언 수피리어 법원 판사는 이날 지난 1983년 잉글우드 지역에서 한 여성을 납치하고 살해한 혐의로 38년 동안 감옥에서 지낸 모리스 헤이스팅스에 대해 사실상 무죄라고 판시했다. 올해로 69세가 된 헤이스팅스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기소됐던 혐의가 무효화되면서 이미 석방된 상태이다. 헤이스팅스는 1983년 당시 30세였던 로베르타 와이더마이어를 납치해 성폭행 살해하고 그의 남편인 빌리 레이와 빌리 레이의 친구인 조지 핀슨을 살해하려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헤이스팅스는 체포 당시 부터 자신은 무죄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LA 검찰, 또 억울하게 유죄를 받고 복역중인 시민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LA 무죄 프로젝트가 합동으로 헤이스팅스의 무죄에 관한 재심리를 요청해 결국 받아들여졌다. 헤이스팅스는 법원의 무죄 판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배상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밝히고 나에게 또다른 69년의 생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병일 기자납치 혐의 무죄 판결 복역 법원 사실상 무죄
2023.03.01. 16:50
미국 유학 중 살인 누명을 쓴 재미교포 이철수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혜천(惠泉) 유재건(柳在乾) 전 의원이 한국시간으로 1일 오전 9시24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5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연세대 정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1989년 연방정부 지역사회변호사로 일했고, 1982∼1990년 LA에서 법률사무소를 경영했다. 고인이 이철수씨 사건에 뛰어든 것은 변호사 시험 공부를 하던 1977년. 이씨는 1973년 6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간부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된 뒤 1973년 6월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이 선고됐고, 교도소 복역 중이던 1977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백인 갱단을 정당방위로 맞서다 살해했다며 제2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국인 청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청소년그룹이 무죄 운동을 펼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였던 이경원씨가 당시 고인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면서 전기를 맞았다. 고인은 이씨를 면담한 뒤 1차 사건이 잘못됐음을 확신하고 1977년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때부터 재판 서류 등을 샅샅이 뒤져 이씨가 7가지 위헌적 재판 절차의 희생양이었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이경원씨의 폭로 보도가 이어지고 일본인 3세 야마다 란코씨 등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가세한데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씨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이씨와 비슷한 처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한인들이 성금 20만 달러를 모으는 등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1982년 9월 3일 무죄 평결이 내려지고 제2의 사건도 1983년 사형판결을 무효화함으로써 이씨는 교도소에서 풀려났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소수민족 연대 승리로 기록됐다. 고인은 2009년 사건 기록을 담은 책 '함께 부르는 노래'를 펴냈다. 고인은 1990년 귀국한 뒤 1993년까지는 'MBC 시사토론', 1993∼1995년에는 'KBS 1TV 심야토론'을 진행했다. 1995년 경기고 동기생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원외 부총재로 임명됐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구 출마가 유력했지만, 지역구(서울 성북갑) 출마를 선언해 1997∼1999년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김대중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3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 의원이 됐다. 2006년초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정세균 의원의 뒤를 이어 열린우리당 임시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9년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이후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을 지냈다. 연세대 1학년 때인 1956년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대학교 친구인 이만섭(1932∼2015) 전 국회의장과 함께 학도의용군을 결성한 공로로 2006년 헝가리 십자중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씨와 사이에 2남1녀(유승영·유수화·유대현)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5일 오전 발인을 거쳐 미국 서부에 있는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 02-3410-6917이철수 유재건 이철수 구명위원회 무죄 평결 무죄 판결
2022.12.01. 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