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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눈 가리고 아웅하는 민주당 후보들

Los Angeles

2026.05.03 19:03 2026.05.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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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사회부 기자

김경준 사회부 기자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정치권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민주당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한 달이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개혁 세력이라고 내세워 온 민주당이, 실제로는 자신들이 부패하다고 비난해 온 기득권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에릭 스왈웰 전 연방 하원의원의 성폭행 파문이 있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며 ‘트럼프 저격수’로 불리던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끝없이 추락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선 민주당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유력 주자였다. 일부 조사에서는 전체 1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개빈 뉴섬 현 주지사의 뒤를 이을 차기 리더로 꼽혔다.  
 
그러나 연이어 터진 성폭행 의혹은 그의 정치 생명을 순식간에 끊어버렸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만 최소 4명. 권력을 이용한 압박과 은폐 시도 의혹까지 불거졌다. 기득권과 권력 남용을 비판해 온 정치인이 자신도 그 구조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실망감을 줬다. 이런 행태는 민주당이 내세워 온 도덕성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결국 스왈웰은 주지사 후보는 물론 연방 하원의원직까지 모두 내려놓으며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 내부였다. 스왈웰 캠프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동료 하원의원 2명은 즉각 그의 사퇴를 요구했고, 민주당 주요 인사들도 줄줄이 가세했다. 민주당 주지사 후보들 역시 경쟁자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말 그대로 ‘절(絶) 스왈웰’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난 것은 또 다른 모순이다. 동료의 추락에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칼을 들이대던 민주당 인사들이, 정작 현 권력의 정책 실패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선 민주당 후보들의 발언을 보면 이러한 경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내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톰 스타이어와 하비에르 베세라 전 연방 보건복지부 장관은 뉴섬 행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수준의 평가에 그쳤다. 지난달 22일 TV 토론에서도 뉴섬의 노숙자 정책에 대해 스타이어는 B-, 베세라는 A라는 점수를 매겼다. 반면 공화당 후보인 스티브 힐튼과 채드 비앙코는 낙제점을 줬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결과로 읽힌다. 뉴섬 주지사가 전국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내 후보들이 공개적인 비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는 엄격하고, 누구에게는 관대한 기준’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아울러 이러한 흐름은 이미 ‘차기 권력’을 의식한 움직임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대선까지는 아직 3년이나 남아 있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조시 샤미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 다른 민주당 잠룡들이 부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특정 인물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은 민주당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캘리포니아는 단순한 주가 아니다. 이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지금 ‘탈 캘리포니아’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과 자본, 인구가 빠져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 역시 정치권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일관된 기준에서 나온다. 동료의 추락에는 엄격하면서, 현직 권력의 실패에는 신중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 기준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꿈꾸는 후보라면, 권력의 향방이 아니라 원칙과 판단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필요한 것은 눈치를 보는 정치인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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