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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맥주병’의 회복 탄력성 선언

Los Angeles

2025.06.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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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

직원들과 함께 플로리다 키웨스트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바다, 야자수, 노을, 신선한 해산물, 단합 파티까지… 모든 일정이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일정표 한 켠엔, 나 같은 ‘맥주병’에겐 존재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스노클링. 사실 나에게 스노클링은 한 번의 뼈아픈 흑역사가 있다. 몇 년 전, 팬데믹 시국 한복판에 가족들과 코스타리카 여행을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하는 아내와 딸은 바다 한가운데 들어가 잘만 놀고 있는데, 나는 잠깐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를 싣고 온 보트 옆 밧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친 채로, 매달려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이번 워크숍 계획을 듣고는 몇 달 전부터 수영 연습을 시작했다. 수영을 잘하시는 고객에게 부탁해서 개인 교습도 받고, 유튜브를 보려 숨 쉬는 법까지 혼자 공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달을 꾸준히 연습해서 나름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키웨스트. 모두가 들뜬 분위기에서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가슴 높이의 실내 수영장 물밖에 몰랐던 나는, 깊고 투명한 바다 밑바닥이 내 눈 아래 펼쳐지는 걸 보는 순간 몸이 돌처럼 딱 굳어버렸다. 그래도 한참 동안 배 근처 물속에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딸아이가 내 쪽으로 헤엄쳐 오자, 부딪힐 것 같은 공포감에 내 몸이 뒤집혔고, 그 순간 다섯 번쯤 짜디짠 바닷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파도는 세고, 시야는 흐리고, 호흡은 꼬이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모든 수영 기술은 뇌에서 싹 지워졌다. 팔은 허우적, 다리는 마비, 그 순간, 죽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다가 여직원 한 분이 스노클 마스크를 벗겨줘서 간신히 배로 돌아왔다.
 
물에 젖은 수영복과, 바닷물을 잔뜩 먹어 튀어나온 배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른 건…자괴감이었다.  
 
‘내가 그동안 뭘 연습한 거지? 왜 아무런 쓸모가 없지?’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창피했다. 젊은 직원들 앞에서 쩔쩔맨 것도 그렇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나 자신도 우스워졌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와서도 수영장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회복탄력성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나 실패, 트라우마 같은 걸 겪은 후에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물리학에서 ‘외부 힘에 눌렸던 고무공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 이 단어는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데 더 자주 쓰인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하면서 처음 썼고, 최근에 교육, 심리, 조직문화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굴욕을 기억하며 다시 깨달았다. 성공의 정의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중요한 건 ‘수영을 잘했느냐’가 아니라, 바닷물을 그렇게 먹고도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내게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침에 다시 수영장에 다녀왔다. 누굴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을 위해서다. 누구는 물을 먹을 수도 있고, 누구는 비둘기에도 겁을 먹을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을 끌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힘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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