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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문해력과 바람

New York

2025.06.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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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없다면 우리는 공기가 있는 줄도 모를 겁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들고 깃발을 펄럭이기에 공기가 흐름을 알고 세상이 변해감을 압니다. 바람이 부니 그야말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風景)이 변합니다. 풍경이라는 말에 바람 ‘풍(風)’이 쓰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렇듯 바람은 세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에 왔냐는 말은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냐는 의미가 됩니다. 바람이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니 변화의 상징이 되었을 겁니다.  
 
바람에는 부정적인 바람도 많습니다. 부동산 바람, 조기 유학 바람 등 부정적인 유행을 바람이라고도 하고,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바람을 피운다고도 합니다. 부정적이죠. 바람이 났다는 말도 합니다. 바람을 연기처럼 피운다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고, 바람이 났다고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돈바람, 치맛바람 등처럼 합성어로 만들어 부정적인 느낌을 더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한자어 바람 풍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유럽풍이라는 말은 유럽 스타일이라는 의미입니다. 풍조라는 의미에도 바람이 쓰입니다. 풍조(風潮)는 바람에 따라 바뀌는 조류라는 의미입니다. 풍속도 바람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풍습도 바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풍습(風習) 풍속과 습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순우리말 어휘와 한자 어휘에 많은 바람이 들어갑니다. 안 좋은 바람을 좋은 풍조로, 그것이 좋은 풍습으로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민요 군밤타령을 보면 연평 바다에 돈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풍어가 돈바람을 불러왔겠죠. 돈바람은 다른 바람으로 이어져 집안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가요 ‘바람이 분다’에는 쓸쓸함이 한가득입니다. ‘바람이 분다. 그리운 마음에’와 같이 허전함이 느껴지는 바람입니다. 바람은 하나가 아닙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바람 중에서 서글픈 바람도 있습니다. 그때 쓰는 표현은 바로 바람맞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은 이 말의 느낌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면 더 서글프고 화가 나겠지요. 헛바람이 가득 든 사람과 함께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 집에 붙어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의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희망을 나타내는 바람과 부는 바람이 형태가 같다는 점입니다. 바람을 바라는 것이죠. 한편 바람의 깊이는 음악에서 나타나는 듯합니다. 음악은 어쩌면 모든 것을 비운 후에 깊은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관악기의 깊은 소리를 들으면 몸속에서 비롯된 바람이 모든 마음을 담아 음악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풍악, 풍물, 풍류, 풍류도, 풍월 등에 모두 바람 풍이 쓰이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바람은 불지 말고, 시원하고 즐거운 바람이 불기 바랍니다. 바람이 가득한 세상에서 좋은 바람, 즐거운 바람이 불기 바랍니다. 여름입니다. 올해도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 바라는 마음에서 바람에 관한 어휘 이야기를 길게 풀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단어를 살펴보면 문해력도 늘어납니다. 문해력 바람도 붑니다. 행복한 바람이 붑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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