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계산서를 보고 있다. 맨 아랫부분에 네 가지 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쓰여 있다. 음식값의 18%, 23%, 28%, 네 번째 선택은 Custom, 당신이 지불하고 싶은 금액이다. 친절하게 퍼센트 옆에 돈으로는 얼마인지 적혀있다.
이 식당에도 얼마 전까지 있던 15% 팁 선택이 없어지고 28% 팁이 새로 등장했다. Custom란에 15%의 금액을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산하기가 만만찮았다. 동양 사람들을 싸잡아 망신시키지 않으려면 빨리 쿨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계산을 잘못해 생각했던 금액보다 더 준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식당을 나올 때는 마음이 영 께름칙하고 주머니를 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호텔에 근무하면서부터다. 팁을 봉사료라는 명목으로 호텔을 포함 모든 숙박업소와 식당에 일정금액을 부과하는 새로운 정책을 교통부에서 발표했다. 1979년이었다.
서비스를 개선하고 손님에게 부당한 팁을 강요하는 것을 근절하겠다는 좋은 취지였다. 하지만 실무에 종사하던 나는 봉사료로 인한 많은 부작용을 목격했다. 강제 봉사료 징수는 손님과 직원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 그때도 자발적이 아닌 강제성이 문제였다.
미국에 와서 팁의 정체를 더 뚜렷이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이민자들이 팁 문화를 통해 조금씩 미국을 알아가는 것 같다. 메뉴에 쓰여 있는 가격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4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밥값으로 얼마를 내게 될지 식당을 나갈 때까지 알 수 없는 곳이 미국이다. 낯선 나라, 복잡한 문화, 이상한 돈, 팁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낸 긴 세월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에서 온 손님 한 분이 미국 부동산에 관심이 있어 에이전트였던 나와 꽤 큰 건물을 보러 다니고 있던 차였다. 하루는 손님일행 여러 명과 한국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 손님이 계산을 끝내고 식당을 막 나왔을 때였다. 한 웨이트리스가 따라 나와 팁이 적다며 우리 일행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했다. 그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주방으로 들어가 소금 한 바가지를 가지고 나와 우리 보란 듯이 식당 앞에 획하고 뿌렸다. 그리고는 ‘에이 퉤! 한국에서 온 것들은...’ 하는 것이었다.
이민자 망신을 그녀가 시키고 있었다. 팁이 충분하지 않다고 종업원이 손님에게 저런 행동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손님도 일행들 앞에서 저런 수모를 겪었으니 그냥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주인이나 매니저를 불렀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녀가 주인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렇게 팁 문화는 곳곳에서 잡음을 냈다.
동전과 함께 잔돈을 테이블에 놓고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28% 팁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거래에 판매세가 따라다닌다. 그 세금은 내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늘 높이 책정돼 있다. 그 위에 얹어지는 팁까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나는 언제 28% 팁을 흔쾌히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