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종교를 갖느냐 마느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 개인이 종교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가족의 영향에 크게 좌우된다.'
독일 뮌스터대학교 연구진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가족과 종교: 세대 간 전승의 역학'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진은 독일과 핀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헝가리 5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와 가족 인터뷰를 바탕으로 종교의 세대 간 전승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가정을 대상으로 3세대에 걸친 인터뷰와 특정 집단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설계된 대표성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심층 조사를 통해 연구진은 "가족이 종교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기도나 찬양 같은 공동의 종교 활동을 실천하며 부모 모두가 같은 교파에 속해 있을 때 다음 세대에게 종교가 전승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점점 더 세속화되는 환경에서 부모 세대조차 비종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자녀에게 종교적 신념보다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가정이 아닌 외부의 영향으로는 교회와 교인 공동체나 목회자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했다. 종교적 성찰과 토론, 창의적 활동의 공간을 제공하는 종교 기관 역시 전승에 영향을 주었다.
서구 사회에서 교회 중심의 종교성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약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하는 연구는 드물었다. 이번 연구는 정량적, 정성적 분석을 통해 가족 안팎에서 종교가 전승되는 구체적 경로를 밝히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유럽과 북미의 5개국은 대체로 기독교권 국가이며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세속화의 시기와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동독 지역에서는 1948년 이전 출생 세대부터 종교 전승이 단절되었으며 1985~2003년생 중 절반은 부모가 이미 비종교인인 가정 출신이었다. 반면 서독의 경우, 같은 세대에서 약 70%가 본인과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종교에 소속되어 있어 종교 전승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동서독 간 차이는 동독의 반종교 정책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의 한 명인 올라프 뮐러 교수는 이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종교 전승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사회가 자유롭고 세속적으로 변하거나 비종교성이 보편화되면, 부모는 점점 자녀에게 종교 교육을 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종교적 정체성은 아동기와 성인기의 사이에 있는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크리스텔 괴르트너 교수는 "이 시기 청소년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의 종교 활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종종 종교와 거리를 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자녀 양육 방식이 점차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부모는 자녀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중시했고 세례 여부와 관계없이 신앙 교육 여부를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맡겼다. 종교 전승은 조부모까지 신앙 교육에 함께 참여하는 가정에서 특히 잘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부모가 종교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조부모만으로는 이를 보완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다.
연구는 또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가장 강한 태도를 가진 가족의 입장이 전승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중 아버지가 특히 비종교적일 경우, 그 영향력이 자녀에게 가장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교회 출석이나 교회와의 유대 등 세대 간 종교적 실천은 단절되고 있지만, 사랑과 연대, 관용 같은 가치관은 이어지고 있다. 다만 부모 세대는 이를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는 반면, 자녀 세대는 이런 가치를 더 이상 종교적 맥락이 아닌 일반적인 문화적, 자유주의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결론지었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주목할 점은 종교가 동일한 형태로 전승되지 않고, 변화한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부모와 조부모가 교회 예배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공공선, 영성을 경험했다면 자녀 세대는 이와 유사한 가치를 세속적 공간인 파티에서 발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뮌스터대학교의 부설 기관인 '종교와 정치 엑설런스 클러스터'와 '종교와 현대성 연구소'(CRM)가 주도했다. 두 연구소는 전 세계 종교 연구의 허브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