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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두리번, 두리번

Los Angeles

2025.07.0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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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수 교도소 사역 목사

변성수 교도소 사역 목사

1998년부터 매달, 저는 LA의 연방 교도소와 주 교도소들을 방문하며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0~70여 명의 재소자들을 꾸준히 만나왔습니다. 때로는 오후가 저녁이 될 때까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교도소 인근 주차장은 재소자 가족과 사복을 입은 교도관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죠.
 
그러다 보니 흥미로운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식당이나 쇼핑센터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이 저에게 웃어 보이면, 저도 자연스럽게 미소 짓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제가 만났던 재소자였는지, 출입 허가를 내주던 교도관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주차장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이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저에게는 모두 ‘외국인’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지나치고 나면, 종종 그들의 얼굴이 제 기억 속에서 맴돌곤 합니다.
 
물론 그들은 저를 기억하고, 심지어 제 이름을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제가 ‘외국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한국인이 아닌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을 통칭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그들이 외국인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인가?’
 
제가 처음 ‘외국인 백인’을 만난 건 해방 후 경북 문경의 고향 마을에서였습니다. 껌과 초콜릿을 던져주던 미국 군인들이었죠. 키가 크고 푸른 눈에 큰 코, 금발 머리, 흰 피부를 가진 그들이 ‘쓔왈 쓔왈’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구상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죠.
 
2025년 미국 사회 분위기는 다소 경계심이 짙어진 듯합니다. 서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기운이 감돌죠. 이 땅은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놀랍도록 질서를 지키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는 표본 같은 사회입니다. 남의 일에 매정할 만큼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지키는 이곳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감히 지면을 통해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인종의 다름과 관계없이 백인, 히스패닉, 흑인, 동양인, 중동인 등 다양한 이들이 잘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 사회는 경제 질서와 준법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겁 없이 이 땅을 밟고 오늘날까지 자녀들을 키우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 겁니다. 지구상에 부정부패와 범죄가 없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어떤 인류학자의 말처럼, 창세 이래 전쟁과 기근, 살상이 없었던 때가 단 3일밖에 없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어찌 이 땅의 주인인 양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혹은 이방인의 의식으로 남의 나라라고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과연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저는 이 땅과 우주를 다스리는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믿기에,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두리번거리는 삶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운전할 때 두리번거려야 바른길을 가고, 두리번거려야 좋은 사람을 만나며, 두리번거려야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 건강해지죠. 오늘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살아갑시다. 이 험한 세상에서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스쳐 지나지만, 언젠가 그날, 우리 모두가 만나게 될 곳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저 믿고 두리번거리며 바른 교회를 다니며 살면 된다고 합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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