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체크인할 때 조식도 함께 예약을 해서 인터라켄의 호텔에서 4일간 스위스식 아침을 먹게 되었다.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와 별다르진 않았는데 유럽답게 빵과 치즈가 다양했다. 식당 서버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로 어려서 읽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중년버전 같았다.
이 하이디들은 어찌나 성실한지 멀리서 보고 있다가 그릇이 비면 새것으로 바로바로 교체를 해주어 공연히 미안했다. 하는 품새도 절도 있는 군인 같아서 먹는 우리도 빨리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들었다. 흔한 달걀 프라이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그건 하이디에게 주문하면 주방에서 바로 만들어주었다.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시작하는 미국의 호텔 조식뷔페와 달리 쓰레기도 최소화하고 낭비 없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하는 거였다. 날마다 잘 세탁된 옷을 갈아입는 깔끔쟁이 같은 나라 스위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하지 않은 검박한 차림으로 다만 무표정하게 살고 있었다. 잘 웃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관광객을 대하면서 생긴 덤덤증으로 보였다.
사과 한 알을 들고 나오던 남편은 금방 제지당했다. 식당 안에서만 먹을 수 있으니 먹고 나가라고 훈육선생처럼 하이디가 지적한다. 혼나는 학생처럼 사과를 그 앞에서 우걱우걱 먹는 남편. 원칙대로 하니 그 모습이 기분 나쁘지 않고 재미있었다.
프랑크푸르트와 취리히, 제네바에서 프랑크푸르트 간의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은 스위스항공을 이용해야 했다. 두 번의 스위스항공의 장애인 돌보미 시스템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전동 스쿠터를 지참한 나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분류되었다. 탑승할 기종이 점보 비행기가 아닌 트랩으로 열두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중형 비행기였다.
나와 스쿠터 그리고 보호자인 남편까지 리프트 트럭을 이용하여 조종석 옆 입구로 안전하게 넣어주었다. 서두르지 않고 딱 시간에 맞추어, 거대한 중장비 운전자와 도우미 조끼를 입은 씩씩한 하이디가 묵묵히 도움을 주었다. 고마워 쩔쩔매는 내게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저 90도 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비로소 웃는다. 팁도 없는 문화이지만 돈으로 감사하기엔 내가 너무 싸구려 같았다. 그들이 그 나라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갑자기 잘 살게 된 나라와는 격이 달랐다. 화려한 말로 호객하고 현란한 차림으로 치장하고, 있는 자 위주로 돌아가는 천박한 사회가 아니고 진중하고 예의 바르고 인간을 차별 없이 존중하는 나라. 융프라우, 몽블랑, 제네바를 보느라 10일 체류한 스위스는 기막힌 풍광도 물론 잊히지 않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살아있는 나라 원칙을 지키는 나라로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힘들어도 다녀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