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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읽기] 포퓰리즘과 우리 안의 ‘금송아지’

Los Angeles

2025.07.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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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정치판에서 자주 거론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포퓰리즘(populism)’이다.  
 
여당과 야당,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의 정책과 주장에 대해 주저 없이 예의 그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쏘아붙이는 정견 발표를 자주 접하곤 한다. 이 표현은 선거용 선동이나 얄팍한 기회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폄훼하기 위한 부정적 언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인기편승주의’ 혹은 ‘대중영합주의’라는 부정적 의미가 대중 속에 강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이러한 정치적 공방 속에서 그 단어가 원래 지닌 좋은 의미마저 해치고 있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쉽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는 소수의 권력 엘리트들이 언어 유희와 여론 조작을 통해 국민 주권을 농락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정치 담론을 당리당략에 기댄 흑과 백으로 가른다. 이는 피아 식별에 기반하여 전선을 명확히 하려는, 불온한 포퓰리스트들이 자주 취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정적과 희생양을 지목하여 대중의 적개심을 유발하는 선전, 선동도 일삼는다.  
 
소위 프레임 씌우기다. 프레임이란 ‘틀’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에 해당한다.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눈앞의 공약을 남발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엄중한 논리도, 현실에 뿌리 둔 구체적 실현 가능성도 결여하고 있다. 그들이 자주 떠벌리는 ‘민중’ 혹은 ‘대중’도 실제로는 그들의 단기적 실리에 함께 편승해 줄 소모용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연원을 성서에서 찾는다면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소 숭배는 고대 시대에 널리 성행하던 신앙이었다. 기원전에는 소 숭배의식이 현재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이 포함된 북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히타이트에서는 난폭한 황소가 비, 천둥, 번개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제우스에 비견된다.  
 
이스라벨 백성은 이집트 탈출 이후에도 여전히 소 숭배의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세가 시내산에 머무는 동안, 산 아래서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에 영합해 하나님을 능욕하는 일에 동조하고 금송아지 우상 제작을 주도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 32:1).  
 
모세는 시내 산에서 내려오면서 금송아지를 신으로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고 훈계했다. 모세는 그것을 불살라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였다.
 
국회의원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약 30%를 차지함에도 한국 사회의 모든 엘리트 집단 가운데 가장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정치판을 질타하기 전에 교회가 정치집단으로 전락하여 파생된 문제는 아닌지 뼈아픈 반성적 숙고가 있어야 하겠다. 더 이상 늦지 않도록 교회의 세속화를 추동하는 잘못된 포퓰리즘을 심각히 진단해 보아야 할 때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성서의 근본 가르침을 떠나는 것이 세속적 인본주의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금송아지 우상을 내세우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 인간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권위 대신 인간 본위의 권위를 주창하는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척결해야 할 금송아지이자 포퓰리즘이다.  
 
단언컨대, 기독교 신앙에는 인간 영웅주의가 자리할 여지가 한 치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인간의 공로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있기에, 인간 스스로 영웅이 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정면으로 대척점에 서 있다. 복음의 본질에서 떠난 교회의 행태가 더욱 추하고 그 선포가 한층 더 공허한 법이다.  
 
세속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대중을 복음으로 깨우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지향하도록 인도해야 함에도 지도자들이 회중을 이끌고 세속주의에 항복해 버리는 영적 스캔들의 뿌리를 교회 현장에서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 안에 기생하는 여러 형태의 금송아지는 결국 흉포한 사자들로 돌변하여 공동체를 물고 뜯어 삼키고 만다(벧전 5:8).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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