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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 빠지다] 물려받은 한(恨)에서 피어난 공감

Los Angeles

2025.07.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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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로버트 털리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

한국인에게는 ‘한(恨)’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나라이지만, 한을 품게된 역사가 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외세 침략, 20세기 일제 강점기의 굴욕이 있었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200만 명의 사망자 발생, 남북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계속되는 이별도 한에 쌓였다. 이후 1950년대 세계 최하위권이었던 GDP와 1인당 소득의 빈곤, 그리고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진 군부 독재의 아픔까지 DNA는 한을 기억하게 했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한국인들조차 말만으로는 한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인인 필자는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한에 대한 정의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한이란, ‘민족적 원형(archetype)’, 곧 공동의 아픔이 집단 의식 속에 켜켜이 쌓인 채 무언의 탄식으로 스며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한국인의 본능을 이끌고, 그들의 영혼에 깊이를 더하며, 희망을 갈망하게 만든다.
 
한은 한국의 예술과 문화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지닌 공감과 관대함이라는 국민적 성향 속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늘 한결같이 느끼는 인상이 있다. 마치 온 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저녁을 사주고 싶어 하고,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흔한 인사말 중 하나가 “밥 먹었어요?”다. 미국의 “How are you?”만큼 일상적인 표현이다.  
 
물론 한국인이 나에게 정말 내가 밥을 먹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을 때처럼 관용적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사말에 담긴 아름다움과, 불과 수십 년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에서 비롯된 깊은 역사적 맥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국은 단기간에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들이 함께 겪었던 배고픔과 고통을 통해 배운 공감의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 중 일부는 거리의 악사로 세계를 여행하던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도쿄의 거리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내 기억에 그중 약 1% 정도가 한국인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신주쿠에서 차량 한 대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치고 도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인 피해자가 길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한국인 노점상들이었다. 우리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그들은 이미 출혈을 멈추게 하고, 구급차를 부르며, 주변 행인들이 피해자를 해치지 않도록 길을 막고 있었다.
 
물론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는 아무것도 입증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런 장면을 단 한 번만 목격했다면,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낯선 한국인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효과적으로 돕는 모습을 여러 차례 경험해 왔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수많은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반사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침략한 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온 역사 속에서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아야 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미시간 주 잉스터(Inkster)에서의 나의 어린 시절은 문화와 연민으로 가득 찼다. 우리 동네는 빈곤율이 높지만, 사람들 간의 돌봄과 배려는 그보다 더 컸다. 우리는 친구나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게 바로 잉스터의 사랑이야.”
 
서로의 고난에서 비롯된 공감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자녀들은 이러한 가치를 배우며 자라왔고, 우리 모두는 ‘한’이라는 독특한 한국 정신이 가르쳐준 교훈과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 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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