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차기 리더, 뉴섬 가주 주지사의 두 모습] 게티 가문 덕 화려한 정관계 인맥 혼맥으로 엮인 낸시 펠로시가 멘토 LA시위에 주 방위군 투입 반대 소송
트럼프 1기 때부터 사사건건 대립 노숙자에 공짜 숙소 등 '뉴섬표 정책' 주 정부 재정 고갈, 인구감소 부작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LA에 주방위군을 투입한 것과 관련해 개빈 뉴섬 주지사는 자신의 SNS에 ″Rescind this illegal and immoral order″라는 포스팅을 게시했다. [개빈 뉴섬 인스타그램 캡처]
멀리서 보면 멋있지만, 가까이 가면 다른 모습인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이 부류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다. 민주당 차기 리더라는 포장을 뜯어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 모친과 빠듯하게 살며 심한 난독증에 걸린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학업을 마친 뒤 사업가로 성공한다. 정계에 입문,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캘리포니아 부지사를 거쳐 주지사에 오른다. 여기까지가 멀리서 본 뉴섬이다.
그의 조부 윌리엄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전신 뱅크오브이탈리아의 공동 창업자다. 조부와 이름이 같은 부친 윌리엄은 법률가다. 아버지 뉴섬은 고든 게티, 즉 석유재벌 폴 게티(1892~1976)의 넷째 아들 고든과 고교 동창이자 의형제처럼 가깝다. 1951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곧 고든의 권유로 게티 집안의 변호사로 일한다. 1973년 폴 게티의 손자 납치 사건 때 인질범에게 몸값을 전달한 게 아버지 뉴섬이다. 폴 게티 사후엔 고든을 위해 방대한 유산을 관리했다.
고든은 뉴섬을 수양아들처럼 아꼈다. 휴가철엔 가족과 함께 고급 휴양지에 데리고 다녔다. 아프리카 여행도 같이 갔다. 뉴섬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호소한다면, 불우이웃의 기준을 새로 정해야 한다. 뉴섬이 고든의 두 아들과 함께 와이너리, 호텔, 레스토랑을 차릴 때도 재정 지원이 뒤따른다. 게티 가문의 든든한 자본과 네트워크 덕에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지난달 14일 LA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 킹스' 시위 중 주 방위군들이 연방 건물 밖에서 대형을 이루고 서 있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꽃을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로이터]
▶2004년 1월 미국 최초 동성 결혼 합법화
뉴섬의 사업 수완을 가늠하긴 어렵지만, 정계 인맥은 참 호화롭다. 첫손가락으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꼽을 수 있다. 의회 권력의 상징인 그가 뉴섬의 멘토라는 건 온 세상이 다 안다. 낸시의 시숙 론 펠로시가 뉴섬의 고모와 1956년 결혼해 21년간 부부였다는 인연도 있다.
캘리포니아 정치 명문가인 제리 브라운 집안과의 교류는 3대에 걸친다. 할아버지 뉴섬은 32대 주지사를 지낸 팻 브라운(제리의 부친)의 후원자였다. 아버지 뉴섬과 존 펠로시(낸시의 시부)가 동업해 만든 회사에게 굵직한 사업권을 준 게 팻 브라운이다. 34대, 39대 주지사였던 아들 제리는 아버지 뉴섬, 고든 게티와 친한 동창이다.
이렇게 캘리포니아 정계의 거물 인맥은 2~3대에 걸쳐 가지를 뻗어왔다. 개빈 뉴섬도 큰 가지 하나로 컸다. 그의 첫 공직은 1996년 샌프란시스코 교통 커미셔너였다. 6개월만에 시의원 공석이 나오자 윌리 브라운 시장의 지명을 받아 선거 없이 선임됐다. 브라운은 게티 인맥 중 한 명이다. 카멀라 해리스와 잠시 사귀던 그 브라운이다. 그는 나중에 뉴섬을 후임 시장으로 밀어줬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뉴섬은 2004년 1월 미국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다. 성 소수자 인권을 내세워 반대를 물리쳤다. 대법원 합헌 판결이 나오자 그는 일약 진보의 아이콘,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
이를 기점으로 뉴섬의 시장, 주지사 시절 급진적인 정책이 잇달아 도입된다. 마리화나 합법화, 950달러 이하 절도의 중범죄 면제, 청소년 성전환 지원, 소득 구간별 전기요금 차등화, 교도소 과밀 해소를 위한 재소자 방면, 정유사 이익 상한제… 정의.인권.환경을 키워드로 삼은 이 정책들은 하나하나 논쟁거리였다. 소송에 걸려 중단되거나 시행 방법을 못 찾아 미뤄진 것도 있다. 좋건 나쁘건, 그의 이름은 뉴스에 자주 올랐다.
트럼프의 반사효과도 컸다. 그는 의식적으로 트럼프와 사사건건 각을 세운다. 2019년 주지사 취임 100일 회견에서 "캘리포니아를 최강의 반트럼프 주로 만든 것"을 최대 업적으로 꼽았다. 그는 100일간 트럼프에게 48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불법이민 단속이 시작되자 그해 4월엔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저건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리려 왔다"고 했다. 누가 봐도 대선을 의식한 언동이었다.
트럼프 2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LA시위에 주 방위군을 투입한 것에 대해 소송하다 졌다. 뉴섬은 지명도를 한껏 띄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민생에서의 실정으로 부력을 까먹고 만다.
대표적인 게 노숙자 대책이다. 뉴섬은 공짜로 숙소를 제공해야 노숙자가 사라진다고 본다. '하우징 퍼스트' 정책이다. 2019~24년 노숙자 대책에 무려 240억 달러를 썼다. 1인당 연간 4만2000달러꼴이다. 4인 가족 빈곤선을 웃도는 돈이다. 2024년엔 또 64억 달러를 빚내 마약중독 노숙자 셸터를 짓기로 했다. 건설비만 하나에 57만 달러가 넘는다. 그래도 노숙자는 더 늘어 현재 18만1000명이 됐다. 주 인구는 전국의 12%쯤인데, 노숙자는 28%나 된다.
뉴섬의 또 다른 감점 요인은 치안 악화다. 2024년 하반기 이후 범죄율이 서서히 꺾였으나 여전히 타주에 비해 높다. 굳이 숫자를 보지 않아도 길거리에 나가 보면 안다. 치안이 불안해지자 상점들이 줄줄이 사라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웨스트필드, 메이시, 홀푸즈 등 명소들이 문을 닫았다. '낸시 펠로시 연방청사'에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전 직원 재택 대기령이 내려졌다. 마리화나 합법화, 절도범 처벌 완화, 재소자 방면이 원인으로 꼽힌다. 모두 '뉴섬표 정책'이다.
반기업 규제는 대단히 강력하다. 전국 최고의 유류세를 매겨놓고 기름값을 낮춘다며 2023년 정유사 이익 상한제를 도입했다. 뉴섬은 "빅오일을 이겼다"고 호언했으나 공급이 감소하자 시행을 미루고 있다.
사용량이 아니라 소득수준에 따라 전기요금을 차등화하는 정책도 있다. 현재 주 정부 위원회가 실행안을 짜고 있는데, 확정되면 좌파 국가들이 구경 올 판이다.
노예 후손에 대한 금전 보상은 거의 팬터지급이다. 캘리포니아엔 과거 노예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뉴섬은 2022년 노예 후손 보상 추진 TF를 만들었다. TF에서 5000억 달러를 들여 1인당 22만3000달러를 주자는 안이 나왔다. 주 인구의 4.7%인 노예 후손에게 전주민이 돈을 거둬 주자는 것이다. 정치적 자살골이나 다름없는 일을 진짜 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주 재정상태도 큰 문제다. 전임 주지사에게 150억 달러의 흑자를 물려받았으나 지금은 120억 달러 적자다. 재정적자 비율은 전국 1,2등을 다툰다. 큰 정부와 팽창적 재정에 대한 책임의식이 안 보인다. 주지사 취임 당시 2000억 달러가 채 안됐던 예산은 6년간 3210억 달러로 불었다. 2022년 캘리포니아는 인구 정체 탓에 연방하원 의석 한 석을 내놔야 했다. 2020~23년 인구는 60만 명 감소했다. 인구 감소와 재정 팽창이 함께하는 역설을 뉴섬은 설명하지 못한다.
실정은 주민 민생고로 이어진다. 경제규모 세계 4위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빈곤율은 18.9%로 전국 최고다. 지난 5월 실업률은 5.3%로 네바다와 미시간에 이어 3위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올해 49%로 다섯 번째다.
지난해 7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미국 대선 후보 첫 TV 토론이 열리는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 옆에 마련된 스핀룸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본사 전송]
▶오랜 참모 부인과 불륜, 사생활도 구설
이에 더해 위선적 이미지는 뉴섬의 큰 흠결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 사태로 공립학교를 폐쇄했으면서 네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 대면수업을 받게 했다. 애틋한 부정으로 봐주자. 그해 11월엔 자택 대피령을 뚫고 나파 밸리의 미슐랭급 식당 프렌치 런드리에서 마스크 없이 파티를 하다 들통났다. 뉴섬의 오랜 친구이자 로비스트 겸 주지사 자문관 제이슨 키니의 생일파티였다.
몇 달 뒤엔 LA에서 미식축구 플레이오프 경기를 유명인들과 함께 마스크 없이 관전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 마스크를 꼭 쓰자"던 그였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지 않나.
사생활도 구설에 오른다. 그는 2007년 오랜 친구이자 참모인 알렉스 투르크의 부인 루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루비는 뉴섬의 일정 담당비서였다. 권력형 성 비리로 비화하는가 했지만, 루비 스스로 좋아서 했다고 주장해 넘어갔다. 투르크 부부는 파경을 맞았다. 이때 뉴섬과 사귀던 지금의 부인 제니퍼 시벨이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e메일로 자문을 구한다. 10년 뒤 할리웃 성 착취범으로 감옥에 간 그 인물에게 말이다.
뉴섬의 대선 행보는 계속됐다. 2023년 3월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앨라배마.아칸소.플로리다.미시시피주를 순방했다. 진보 이념을 전파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캘리포니아 뉴스 그룹은 "뉴섬, 당신 주에나 신경 쓰라"는 헤드라인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피로감이 슬슬 커지는 분위기다. 반트럼프를 앞세우다 스스로 좌파 블록에 갇힌 면도 있다. 그를 지지하던 LA타임스엔 '다음 민주당 대선 주자는 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닐 수 있겠다'는 칼럼이 가끔 게재된다.
득표력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2022년 득표율 59.2%로 재선했을 때 쓴 선거자금이 무려 3850만 달러였다. 공화당 후보 브라이언 달은 400만 달러를 들여 40.8%를 얻었다. 한 표 당 뉴섬이 5.96달러, 달은 불과 90센트를 썼다. 잘 통하던 뉴섬 브랜드도 예전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