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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먹음과 먹힘

New York

2025.07.1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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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살아있기 위해서는 계속 먹여야 한다. 먹는다는 말은 다른 약한 생명체를 잡아먹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먹힌 자는 영원히 없어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영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육신(肉身)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구름이 죽어야 비가 된다. 비가 죽으면 물이 된다. 물이 죽으면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가 죽으면 구름이 된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이 안 좋으면 ‘변한다.’ 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구름이 변해서 비가 되고, 비가 변해서 물이 된다고.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힌다. 썩는다. 거름이 되어 풀로 자란다. 소나 양이 풀을 뜯어 먹는다. 풀이 소나 양의 뱃속에 들어가 소나 양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된다. 그래서 풀이 소나 양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소나 양을 먹는다. 먹힌 소가 사람의 뱃속에 들어와서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소나 양이 사람으로 태어난다.  
 
혹은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힌다. 벌레가 먹는다. 벌레의 몸속에 들어가 벌레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 벌레의 정자 난자가 된다. 사람이 벌레가 된다. 닭이 벌레를 먹는다. 벌레가 닭이 된다. 사람이 닭을 먹는다. 닭이 사람의 뱃속에 들어와서,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닭이 사람으로 태어난다.
 
간단하게 말하면, 먹히는 자가 먹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벌레에 먹히면 사람이 벌레가 된다. 벌레가 닭에게 먹히면 벌레가 닭이 된다. 닭이 사람에게 먹히면 닭이 사람이 된다.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먹히는 자는, 인연이 닿으면, 먹는 자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게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부모들이 음식을 먹는다. 부모들이 소며, 돼지, 닭, 물고기, 채소 등 여러 음식을 먹는다. 먹은 음식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정자 난자는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닭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소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채소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여튼 부모들이 먹음 음식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어느 날, 엄마의 자궁에서 정자하고 난자가 만난다. 정자하고 난자는 내 것이 아니다. 부모의 것이다. 부모의 것일까? 부모의 것도 아니다. 하여튼 내 것이 아닌 정자하고 난자가 만난다. 이게 자라서 태아가 되고 그리고 ‘나’로 태어난다.  
 
내가 태어난 후, 나는 계속 먹는다. 내 몸뚱이는 내가 먹은 음식물로 점점 커진다. 다행히도 내 몸뚱이에는 두뇌라는 게 있다. 두뇌는 생각하는 기능이 있다. 알고 보니 나는 “생각하는 음식 덩어리”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생각하는 음식 덩어리’인 것이다.  
 
부모가 먹었던 닭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져, ‘나’가 만들어졌다면? 나의 선조는 누구일까? 당연히 닭일 것이다. 만약 부모가 먹었던 음식 중에 채소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졌다면? 나의 선조는 당연히 채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나를 만들어준 일종의 생산 기계 역할을 했었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가 나에게 젖을 먹여주었고 나를 길러주었기에…, 부모의 은혜는 엄청 큰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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