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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재소자가 몰래 건넨 쪽지

Los Angeles

2025.07.2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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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수 교도소 사역 목사

변성수 교도소 사역 목사

교회에서 어떤 성도와 마주칠 때, 그분이 제 눈길을 피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득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반면, 어떤 분은 말 없이 마주 보기만 해도 따뜻한 교감을 느끼게 합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손을 잡은 듯, 포옹하지 않아도 마음이 포개진 듯한 순간, 그 짧은 인상이 가슴에 오래 남아 기분 좋게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교도소 사역에는 여러 규칙이 있습니다. 재소자와의 신체 접촉은 금지되어 있지만, 악수 정도는 교도관들이 묵인해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어떤 메모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연방교도소의 여자 재소자들과 재활교육 수업을 마친 뒤였습니다. 재소자들이 교도관의 인솔 하에 줄지어 퇴장할 때, 저도 일어서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한 재소자가 “Thank you, Chaplain Peter!”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저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아주 작은 종이쪽지를 제 손에 쥐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받으면 안 되는데...’ 아차 싶은 찰나였고, 재소자는 줄을 따라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던 교도관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와 그 교도관 둘뿐.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 교도관이 웃으며 “Chaplain Peter” 하고 말을 겁니다. 저도 “아무개 교도관님” 하고 답하면서, 종이쪽지를 펴보지도 않은 채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녀가 준 쪽지인데,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교도관은 쪽지를 읽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궁금했지만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교도관은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그녀를 아십니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재소자입니다”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그녀가 ‘I loves you’라고 썼네요.”
 
의미 없는 웃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적으로 그 교도관의 재량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피터 목사님, 아시죠. 모든 사람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저도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조심해서 잘 지내세요.(Chaplain Peter, you know, everybody needs love. I love you, too. Be careful and safe.)”
 
그렇게 말하며 교도소 사무실로 가서 제가 맡겨둔 신분증을 가져다 주었고, 저는 교도소에서 받은 명찰을 반납하며 조용히 그날의 ‘4막 4장’은 끝났습니다.
 
맞습니다. 죄인도, 죄 없는 척 하는 사람도, 경찰도, 대통령도, 독재자도, 목사도, 재벌도, 정치인도, 군인도, 농부도, 어부도, 경제인도, 교수도, 학생도, 아들도 딸도, 친구도, 손자 손녀도, 아내도 남편도, 그리고 의료인도….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과 용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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