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데이비츠 감독이 7살 때 남아프리카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Sony Pictures Classics]
올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이 영화다.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 탄탄한 경력의 여성작가 알렉산드라 풀러의 2001년 회고록을 영화화했다.
영화 ‘오늘 밤은 개들에게 가지 마(Don't Let's Go to the Dogs Tonight)'는 1980년 격렬했던 짐바브웨(현 로디지아) 독립 전쟁이 끝나갈 무렵, 짐바브웨에 정착하려던 백인의 가족 농장에서 자라던 8살 소녀 보보(렉시 벤터)의 시각에서 바라본 갈등과 혼돈의 역사 이야기다.
감독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쉰들러 리스트'(1993)에서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총책임자 괴트에게 모욕당하는 유대인 하녀 헬렌 허쉬를 연기했던 배우 엠베츠 데이비츠가 이 영화를 연출했다. 헬렌은 괴트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고, 오스카 쉰들러에게 유대인들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하는 인물로 쉰들러는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데이비츠가 '쉰들러 리스트'에서 연기했던 헬렌 역과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 짐바브웨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백인 통치에서 짐바브웨의 흑인 다수 통치로 전환되는 격동의 시기에 인종차별과 내전이 흑인과 백인 모두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우리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 바탕을 둔 이 영화를 통해 땅과 영혼을 뒤흔든 전쟁의 깊고 곪아가는 상처를 목격하게 된다. 데이비츠 감독은 또한 영화에서 주인공인 8세 소녀 보보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다.
문법적으로 선뜻 이해 가지 않는 영화 제목 'Don't Let's Go to the Dogs Tonight'는 작가 알렉산드라 풀러가 살던 짐바브웨의 영국계 백인들이 사용하던 말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Sony Pictures Classics]
영화는 1970년대 영국계 백인들이 통치하는 나라 짐바브웨의 광활한 농장에서 자란 백인 소녀 보보의 시각에서 시작된다. 백인 소수 민족이 통치하던 정부는 당시 여러 아프리카 게릴라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그중 로버트 무가베가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무가베는 종국에는 현대사의 악명 높은 독재자로 기록되지만, 당시에는 흑인들의 추앙을 받는 독립운동가였다.
짐바브웨 독립 전쟁은 흑인들의 지지를 받는 무가베와 백인들이 지지하는 현직 주교 무조레와의 선거로 정점에 달한다. 보보의 가족은 이처럼 갈등하는 두 세력 사이에 갇혀 있다. 인종 갈등과 폭력 속에서도 그들은 가족 농장을 지키려 필사적인 방어에 나선다.
영화는 전적으로 보보의 관찰력에 기대어 진행된다. 카메라는 소수 백인의 폭압적인 행동과 억압받는 다수의 삶을 곳곳에서 포착해 간다. 정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8세 소녀에게 지속해서 정치적 상황이 닥쳐온다. 그녀가 아는 건 어머니 니콜라가 밤에 테러리스트가 침입할 경우에 대비해 기관총을 소지하고 잔다는 것뿐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의 니콜라, 짐바브웨 땅에 대한 소유욕이 광기에 가깝다. 집안에서 보보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 담배, 욕설을 일삼고 오토바이를 타는 보보도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다.
보보는 부모의 침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꾸준히 호기심을 보인다. “옷을 벗고 가구를 옮기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순수함에 매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보는 할머니 집에 들러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인가요”
보보는 흑인 하녀 사라(지코나 발리)와 순수한 인간관계를 나누지만, 가끔 부모의 인종차별적 행동을 흉내 내며 사라를 당혹게 한다. 보보의 명령에 사라는 “너희는 너무 어려서 남을 지배할 수 없어”라고 꾸짖는다.
짐바브웨 출신도 아니고 복잡한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무지하지만 사라는 보보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어머니 니콜라보다 사라는 보보에게 훨씬 더 어머니 같은 존재로, 머리를 빗겨주고 함께 놀아주며 어린 보보를 보살핀다. 딸보다 농장 순찰을 더 열심히 하는 니콜라는 술을 폭음하고 보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사라의 남편은 백인 소녀의 보모 노릇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아내에게 일침을 가한다.
영화는 아프리카 대륙에 식민지 지배가 남긴 무거운 족적을 생생하게 그려내지만, 보보는 자라면서 차별과 양심을 동시에 배운다. 폭력과 인종차별이라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보보의 마음에는 흑인들을 순수한 사람으로 대하는 양심이 싹튼다.
악동의 매력을 지닌 렉시 벤터가 어린 나이답지 않게 미묘한 자신감으로 연기하며 보보 역을 감동적으로 소화해냈다. 그녀의 연기는 올해 상반기 가장 빛나는 연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어린 시절 스타덤에 올랐던 테이텀 오닐과 조디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벤터는 영화의 많은 부분을 내레이션하며 “아프리카인은 누구나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는 순진하면서도 섬뜩한 인식을 전달한다.
엠베츠 데이비츠는 이 긴장감 넘치고 파괴적 아름다움을 지닌 영화를 훌륭하게 각색하고 연출했다. 많은 비평가에 의해 2025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치명적인 정치적 격변과 흑인 지배 체제로의 전환을 앞둔 시기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영화는 데이비츠 감독이 7살 때 남아프리카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녀의 성장 스토리는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식민지 아프리카의 인종 갈등을 그린 프랑스의 거장 클레어 드니의 데뷔작 '초콜렛(Chocolat, 1988)'과 유사하다. '초콜렛'이 성적 긴장감에 의존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폭력의 위협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감독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추악함 속에서도 아프리카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땅에 내재한 경이로움! 아프리카 땅은 보보의 거대한 놀이터다.
영화는 결국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혹독한 현실로 돌아온다. 인종갈등의 현장, 땅에 대한 인간의 애착에는 늘 한편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무가베의 승리, 가슴 아픈 패배의 인정, 산산조각 나버린 니콜라의 꿈, 보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동적인 작별 인사를 받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