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불교미술 정수 담은 '법의 세계' 특별전 조각·회화·불구 등 180점 전시…내년 7월까지
라크마의 특별전 ?법의 세계??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해 아시아 전체로 퍼져가는 여정을 예술품을 통해 따라간다. [라크마]
LA카운티 미술관(LACMA)이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법의 세계: 아시아 전역의 불교 미술(Realms of the Dharma: Buddhist Art Across Asia.아래 사진)'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회는 내년 7월까지 계속된다.
라크마는 이번 대규모 전시회를 위해 상설 소장품 가운데 최고의 불교 조각과 회화 작품을 하나로 모았다. 180점에 이르는 전시작은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슈미르, 네팔,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는 불교의 확산 과정을 따라가면서 불교와 불교 미술의 국제적인 흐름을 조명한다. 또 희귀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회화, 의식용품을 통해 불교 사상과 수행의 핵심 개념을 소개한다.
180점의 작품은 미술관 본관 철거와 신축 준비를 위해 약 8년 전부터 별도로 보관됐다. 2018년에는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전시했고 이후 텍사스와 북서부 지역 미술관에서 순회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돼 다시 수장고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LA에서는 오랫동안 불교 미술의 걸작을 접할 수 없었다.
라크마의 영구 소장품과 개인 소장가들이 대여한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회는 테라바다(상좌부 불교), 마하야나(대승 불교), 바즈라야나(금강승), 선불교 등 불교 역사의 단계를 관련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쫓아간다. 부처의 생애와 보살의 역할, 불교의 우주관 등을 엿보거나 법(다르마)이나 업(카르마), 열반(니르바나), 진언(만트라), 수인(무드라), 만다라와 같은 핵심 개념도 탐구할 수 있다.
초기 불교 미술에서 부처의 형상은 광선이 솟아나는 것을 형상화한 소용돌이 모양의 성운 같은 추상적인 형태나 깨달음을 얻은 성스러운 장소를 의미하는 보리수, 수행의 길을 암시하는 발자국 등으로 표현된다.
부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사후 수백 년 동안 전설과 종교적 교리가 뒤섞이고 재구성되면서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와 문화에서 불상 형태의 구상적인 표현이 나타난다. 전시회에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형태의 불상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두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은 석가모니의 삶과 불교의 기본 교리와 함께 불교의 두 주요 형태인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를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6세기 후반에 제작된 역사적 부처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부처에 대한 초기 표현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상징 형태였다. 빛의 발산이나 영원한 흐름을 상징하는 나선형 무늬 안의 별 모양, 보리수 나무, 부처의 발자국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나 수행의 길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부처의 인물상은 인도 델리 남쪽 야무나 강 인근의 고대도시 마투라에서 처음 등장했고 현재의 파키스탄 북북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있던 고대 문화권인 간다라 지역에서 발전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에서 온 6세기 후반의 서 있는 불상으로 고요한 표정과 우아한 형태, 내면적 영성을 조화롭게 담아낸 굽타 왕조(320년~600년)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굽타 왕조의 지배자들은 힌두교도였지만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이 불상은 불교의 이상인 완벽한 수행자와 보편적 통치자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길고 가는 눈은 물고기를, 곱슬머리는 달팽이 껍질을, 왼쪽 어깨와 팔의 윤곽은 코끼리의 코를 닮아 자연과의 연결성을 보여준다. 12세기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입된 이슬람 세력의 북인도 침입 이후 불상은 티베트 사원에서 보존됐다.
자비로운 존재를 뜻하는 미륵불(마이트레야 붓다)은 대승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승불교는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미륵불은 현 우주의 종말 이후 다음 우주(칼파.겁)에 출현할 부처다. 이번 전시에는 인도 북부 비하르에서 제작된 11세기 미륵상이 전시된다. 미륵불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장식 속의 작은 탑(스투파)이다.
두 번째 섹션은 상설 전시 방식과 유사하게 제작 시기와 지역에 따라 작품을 배열했다. 이곳에는 17세기 중국에서 제작된 희귀한 비로자나불 그림이 전시된다. 비로자나불은 대승불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 부처로 석가모니는 비로자나불의 화현으로 여긴다. 비로자나불은 당나라에서 폭넓게 숭배를 받았으며 한국과 일본으로 퍼졌다. 이 작품은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사천왕과 지장보살을 포함한 수많은 불교와 도교 신상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전시 작품은 불교 예술에서 수인의 역할과 의미도 짜임새 있게 소개한다. 수인은 부처나 보살이 손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동작으로 깨달음의 상태나 설법의 의미를 표현한다. 법륜인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대고 원을 그리고 맞대는 것으로 법의 수레를 굴린다는 의미로 첫 설법을 상징한다. 오른손을 땅에 짚는 항마촉지인은 깨달음을 증명한다. 불상에서 자주 보는 선정인은 두 손을 배 앞에서 포개는 자세로 명상과 수행을 상징한다. 손바닥을 아래로 해 손을 펴서 내미는 시여인은 자비와 보시를, 손바닥을 정면으로 들어올리는 무외인은 보호와 평화, 두려움 해소를 표현한다. 붉은색 옷칠을 한 목재로 만든 미얀마의 부처상은 평화를 상징하는 무외인 수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다.
파키스탄 간다라 지역의 회색 편암으로 제작한 실물 크기 부처상으로 유명한데 이 지역 부처상의 부드러운 옷자락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담겨 있다.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인 간다라는 고대 실크로드 교역로에 위치해 여러 문화가 교류하던 곳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간다라 불상의 자연스러운 신체 표현과 부드럽고 사실적인 옷 주름은 전통 인도 예술보다는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이고 세련된 조형감각에서 온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으로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정복하면서 그리스 예술과 문화, 기술이 몰려왔고 이후 이 지역은 인도와 페르시아, 그리스 문화가 융합되는 그레코-불교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불상에도 당시 그리스와 인도 간의 문화적, 군사적 교류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면직물에 그린 15세기 그림은 밀교의 다양한 상징을 통해 성적 에너지와 명상의 일체감을 표현한다. 그림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차크라삼바라와 바즈라바라히가 쌍신의 형태로 묘사된다. 12개의 팔과 4개의 얼굴, 푸른 몸을 가진 남신 차크라삼바라는 자비와 힘을 상징하며 무지와 번뇌를 깨뜨려 깨달음에 이르는 강력한 실천력을 의미한다. 붉은색 몸을 가진 여신 바즈라바라히는 한 손에 해골잔을, 다른 손에 의식용 칼을 들고 있으며 무명을 잘라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의미한다. 붉은 여신과 푸른 남신이 밀착한 장면은 강렬한 에너지를 담아 묘사된다. 연민의 상징인 남신 차크라삼바라와 붉은 여신 바즈라바라히를 껴안고 있는 모습은 성적 에너지와 명상의 일체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관람자를 깊은 사유로 이끈다. 이들의 결합은 연민과 지혜라는 불교 수행의 본질을 상징한다. 밀교에서는 이러한 합일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며, 환희와 공성을 결합해 깨달음을 추구한다.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인 불구를 감상하는 것도 전시회의 큰 매력 중 하나다. 보석이 박힌 왕관과 의식용 칼, 무서운 악마의 형상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공양함 등 다양한 국가와 시대에서 사용된 불구를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불구는 크게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의식용구와 법당을 꾸미는 데 사용하는 장엄용구로 나뉜다. 불구의 세계는 세밀하고 다양해, 구름 모양의 금속판인 운판과 번뇌를 부순다는 금강저와 목탁, 범종, 법고, 목어, 요령, 촛대, 향로, 정병, 발우 등이 있다. 공양물을 올리는 용도의 공양함만 해도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 공덕함 등으로 세분화된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종교가 수많은 장소에서 행해진다면 교리를 형상화한 불상과 회화, 탱화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과 문화, 시대, 표현법은 달라도 공통되게 흐르는 것이 있다. 깨달음을 향한 치열함과 평온함이다.
이번 전시는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현대에 이르는 여정을 예술품을 통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다양한 국가의 유물을 통해 불교의 핵심 개념과 미학적 가치, 종교적 상징성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