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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났다] 고대 어느 한 지점과 만나다 -엑상 프로방스 음악 페스티벌 2025

New York

2025.08.0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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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빛, 소리, 향기, 촉감이 서로 멋지게 어울려 아름답고 축복받은 땅,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원이라고 한다. 화가 폴 세잔이 평생을 보내고 에밀 졸라, 알베르 카뮈가 오래 머무른 도시였던 이곳에서 엑상 프로방스 음악 페스티벌이 1948년 발족하여 유럽 최고 권위로 매년 7월마다 열리고 있다 했는데, 나도 드디어 이정석 박사님이 이끄시는 꿈의 축제에 동참하게 되었다. 오!!
 
4개의 연주를 들었는데 그중 최고는 고대 오랑주 극장에서 있었던 ‘운명의 힘(La forzadeldestino)’이었다. 돌로 지어진 야외극장이라는 장소 자체가 주는 위용이 우선 나를 매료시켰는데, 오랜 역사가 배어나는 그 엷은 베이지색의 우아함은 이탈리아 베로나 원형극장과는 달리 음이 흩어지지 않으면서도 내가 마치 고대 어느 한 지점에서 음악과 만나는 듯한 아득함,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그 한 가지만으로도 멀리 이곳까지 날아온 이유는 넘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파워풀한 성악가들의 목소리와 부드러우면서도 조화로운 오케스트라, 남다른 패턴의 지휘방식을 지닌 박력 넘치는 다니엘 루스티에니(Daniele Rustioni)가 베르디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음악성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꼭 듣고 싶었던 4악장의 아리아를 못 듣는 아쉬움이 컸지만, 고대 극장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 그것 또한 어디 비길 데 없는 추억이 되었다.
 
두 번째로, 아르슈베셰 극장. 자체 규모는 작았지만, 고대 어느 귀족의 정원처럼 한폭 그림 같은 야외의 나무의자에 앉아 들었던 라 카스틸로(La Calisto). 뉴욕이나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오래된 건물 뜨락에서의 오페라. 이곳 역시 장소만으로도 내겐 너무 인상적이었다. 노래와 오케스트라, 촬촬거리던 하프시코드와기타 소리의 퀄러티는 새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 두 가지 야외무대에 더해, 엑상 프로방스 실내극장에서도 두 곡을 만나보았는데, 그 이름도 찬란한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의 지휘와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은 ‘돈 조반니(Don Giovanni)’였다. 귀에 익은 아리아가 여럿 나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역시나 모던한 무대설치여서 많이 아쉬웠으나 연출력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다소 철학적이기도, 다소 시대고찰적이기도 한 무대는 단순히 희대의 바람둥이 행태를 묘사하기보다는, 그렇게 사는 사람의 말로가 어떤지를 극명히 보여주고자 했던 듯하였다.
 
그리고 실내극장에서 만난 두 번째 작품은, 같은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바그너의 ‘로엔그린(Lohengrin)’ 서곡. 그 또한 바그너 자체가 지닌 깊이와 처연함이 그대로 전달된 최고의 연주였다. 뉴욕으로 돌아가면, 바그너의 장중한 무게를 더 자주 접해봐야겠다는 바람이 올라오게 하는 시간이었다.
 
밤에 열리는 연주회를 기다리면서, 낮 동안 돌아본 에즈(Eze)마을과 생폴 드 방스(St. Paul de Vence), 니스(Nice), 아비뇽(Avignon), 아를(Arles)에서 만난, 대략 표현이 불가한 남프랑스만의 아름다움들이 음악에 색을 입혀놓은 듯, 연주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그윽하게 전달되었다. 90도를 넘나드는 땡볕에 낮 동안 내내 돌아다니다가 새벽 한 시까지 음악을 듣다 보니, 졸음이 참을 수 없이 쏟아졌던 흠만 제외한다면, 이 발걸음이 올해 나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 듯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음악이, 대자연이, 예술가들이, 그리고 함께 간 인생 선후배님들이…그래서 다시 되뇌어본다. 감사하는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는 인도의 성자, 간디의 말씀을….

박영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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