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삶과 믿음] 은혜 아니면

New York

2025.08.07 18:0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우리 사역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신 분들은, 우리 딸 위슬린보다 ‘쇼손(Sonson)’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들었을 것이다. 본명이 자넬슨 루이스(Janelson Louis)인 쇼손을 2010년 8월, 처음 브니엘고아원에서 만났을 때 아이는 네 살이었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허벅지가 절단된 상태였지만, 쇼손의 해맑은 웃음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금세 녹였고, 그의 장애를 잊게 만들곤 했다. 아이의 밝은 미소는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고, 이후 그는 우리 고아 구호 사역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쇼손은 장애에 굴하지 않고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를 오가며 일상을 살아냈다. 2019년 5월, LA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고아원을 찾았을 때, 양쪽 목발을 짚고 바람처럼 축구를 하던 그의 모습은 모두에게 깊은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지내는 고아원은 도미니카 공화국 국경과 가까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비탈진 언덕 위에 있다. 강한 바람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 듯 흔들리는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래도 마당이 있는 ‘집’이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에서 간혹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두 다리가 멀쩡한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목발을 짚고 등하교하는 쇼손의 몸은 언제나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포토프린스에 있던 고아원이 시골 외곽으로 옮겨간 뒤, 쇼손은 고아원 인근의 크리스찬 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고아원으로 가는 길목이 갱단에 점령당하면서, 우리 선교센터에서 고아원까지의 통행이 매우 위험하고 어려워졌다. 우리는 갱단에게 내야 하는 통행세를 감당해가며 어렵게 식량을 보냈고, 학비도 여러 차례 현금으로 지원해야 했다.
 
그런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쇼손은 맑은 성품과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자라 어느덧 열아홉 살 청년이 되었다. 지금 그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국제선 민항기 운항 금지로 인해 10개월간 아이티에 들어갈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우리는 깊은 낙심과 무력감을 경험했다. 갱단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국제 사회는 무관심했으며, 국가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대부분의 고아원들이 위치한 지역이 갱단에 점령된 상황을 보며, 하나님께서 왜 이토록 아이티를 버려두시는지에 대한 탄식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10개월 만에 건강검진을 하며 우리가 감사했던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배우고, 또 자라고 있었다. 어렵게 아이티를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기침할 때마다 각혈하던 쟌 목사를 병원에 보내던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다. 지난 수년간 갱단의 폭력 속에서도 아이들이 지켜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빠듯한 예산으로 식량과 학비를 감당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후원이 멈추지 않고 채워지고, 부족한 영양에도 아이들은 키가 자랐으며,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지금 아이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