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선교 보고와 설교를 하던 주일 아침, 1부 예배 설교 직전에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예배가 끝난 뒤에 확인한 메시지는 아이티 현지 스태프 조나단에게서 온 것이었다. “장애 고아원에서 아이 둘이 콜레라로 사망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어진 메시지에는 11명의 아이가 콜레라 증세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덧붙어 있었다. 지난 2월, 장애 고아원에서 세 살 난 아만다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료시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의약품 공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고아들은 늘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그곳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언제나 긴장과 걱정을 동반한다. 이번에는 콜레라였다. 요즘 아이티는 콜레라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며칠째 폭우가 이어지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저지대는 침수되었고, 도로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강물로 변했다. 식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아 대부분 지하수에 의존하지만, 위생 상태는 늘 불안하다. 오염된 물은 콜레라가 번지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깨끗한 물은 꿈도 꾸기 어렵다. 정수된 물을 사 마실 형편은 더더욱 아니다. 커다란 물탱크차로 공급되는 물도 깨끗하지 않다. 비가 많이 와서 사방이 물로 가득하지만 마실 물은 없다. 우물물도, 펌프 물도 모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콜레라가 퍼졌다는 소식에 보건부 관계자들이 장애 고아원을 방문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망한 아이들을 확인하고, 증세가 심한 11명을 병원으로 옮긴 것이 전부였다. 병원에 간 아이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액마저 개별적으로 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불과 한 달 전, 우리는 장애 고아원의 렌트를 해결했다. 이제 1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아이들이 익숙한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식량도 정기적으로 공급했다. 마음 한편에는 깊은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장애 고아들은 늘 아프고,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면역력은 낮고, 배고픔을 면하게 해도 영양은 충분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콜레라가 아이들을 덮친 것이다. 급하게 다른 고아원의 상황도 살피고, 당장 아이들이 마실 수 있는 봉지 물을 구매해 공급하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에 든 물을 아이들은 유난히 좋아한다. 그것이 그나마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이기 때문이다. 물값으로 드는 비용은 많지 않지만, 무겁기도 하고 식량처럼 지속해서 공급하기 어려워 우리도 한동안 중단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공급을 시작한 것이다. 물을 구매하기로 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렌트를 얻어줬다고, 집을 지어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집을 지어주고도 계속 식량을 지원하고, 질병을 염려해야 한다. 학교에 등록시켰다고 끝난 게 아니다. 다음 학년은 곧 돌아온다. 쌀을 한 번 사줬다고 끝난 게 아니다. 끼니는 매일 돌아오니까. “이제 됐다”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끝까지 사랑해라.” 장애 고아원 렌트 일 년 치를 해결해줬다는 안도감은, 콜레라로 목숨을 잃은 아이의 소식 앞에 눈물로 바뀌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르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신 후 배고픈 무리를 염려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영혼을 보듬으셨다. 사랑은 언제나 ‘끝난 게 아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장애 고아원 콜레라 증세 모두 콜레라
2025.10.26. 17:19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바르게 깨치면 바르게 수행하게 되고 바르게 살게 되면 결국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수행을 다른 방향으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바른 수행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나의 행동을 바르게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삶을 살아서 모든 업을 청산하고 결국 무아의 진리를 깨닫는 테레사 수녀님과 같은 인생입니다. 깨달음을 우선시해서 일단 깨치고 다른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과거 불교 선사(禪師)들의 삶입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제시하는 오늘날 수행자의 모습은 아마 이 중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침에 수양정진, 낮에는 보은 봉공, 저녁에는 참회 반성으로 지혜와 복을 동시에 닦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 대종사께서 제시한 수행 생활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진리에 도달하는 하는 방법으로 ‘육바라밀’을 제시하셨는데, 첫째가 보시바라밀, 마지막이 반야바라밀 즉 지혜 반야바라밀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 고집 등을 놓는 보시바라밀로서 수행은 출발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와 고집 등을 놓는 것은 바로 반야용선을 타고 피안으로 가는데 필요 없는 짐들을 배 밖으로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경쟁사회에서 살 때, 자기 것 혹은 자기 가족 것을 챙기는 것도 바쁘고 힘든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 실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한 심리학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대학생들에게 5불, 20불, 50불 등이 들어있는 봉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주일 내로 그 돈을 사용하고, 그 돈으로 얼마나 나의 행복이 높아졌는가를 측정해 오라는 숙제였습니다. 어떤 학생은 그 돈으로 예쁜 티셔츠를 사 입기도 하며, 어떤 학생들은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 등 모두가 다양하게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행복지수가 그 돈사용으로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나름대로 방법으로 측정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관찰하니, 그 돈을 자기를 위해 사용한 것 보다 남을 위해 사용할 때 행복지수가 훨씬 높아짐을 발견했습니다. 알렌 룩스와 페기 페인이(Allan Luks & Peggy Payne) 공저한 ‘선행의 치유능력’ (The Healing Power of Doing Good) 책에 남들을 위한 봉사에 관한 통계조사가 있습니다. 룩스는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 3000명 이상 미국인을 대상으로 연구하였는데, 봉사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몇 주간 지속하는 ‘봉사자의 희열(helper’s high)’을 경험하게 되며 삶의 다른 측면도 개선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기억할 때마다 이 행복감이 그들에게 다시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봉사활동의 이점은 단순히 감정과 기분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봉사자 90%에게는 봉사활동이 스트레스, 만성 통증, 심지어 불면증에 대한 좋은 해독제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결과로 일명 ‘마더 테레사 효과(Mother Teresa Effect)’라고 합니다. 132명의 학생에게 마더 테레사가 콜카타 빈민가에서 행한 봉사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영상을 본 뒤, 그들 침 속에 포함된 면역글로불린 A(Immunoglobulin A) 수치를 측정했는데, 자선활동을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신체의 첫 방어선인 면역글로불린 A 수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교적 수행을 떠나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초월한 ‘대의’에 자기의 인생을 몰두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최선이라는 것을 여러 실험과 통계가 말해 줍니다. 무엇보다 인과와 영생을 아는 신앙 수행자들은 무아봉공이 복을 쌓는 길이며, 깨달음과 자유로 가는 길임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봉사 자원봉사 활동 오늘날 수행자 마더 테레사
2025.10.19. 19:21
쟌(Jean) 목사는 우리가 돕는 살렘고아원 원장이다. 2008년 여름, 우리 비전 트립 팀은 아이티에서 여러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살렘고아원이었다. 오전 11시경 고아원을 찾았을 때, 40명의 아이가 스파게티 다섯 접시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때 그들이 가진 마지막 양식이었다. 우리가 쌀 여섯 포대를 나르는 것을 보면서 큰아이들이 울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쟌 목사는 시골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돌보다가 동네 폭력배들의 위협에 고향을 떠나 수도로 올라와 고아원을 세웠다. 세월이 흘러 동갑인 쟌 목사와 나는 친구가 되었고, 그는 변함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우리는 여전히 아이티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티는 지금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다. 수도의 90%를 장악한 갱들은 세력을 지방으로 확장하며 중소도시에서도 약탈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갱 소탕을 위해 유엔에서 파견한 케냐 경찰은 무력했고, 그나마 10월 철수를 결정했다. 유엔은 5000명 규모의 갱 억제 군(GSF)을 파견하기로 했지만, 언제 실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불어 작년 11월 갱들이 민항기에 총격을 가한 이후 문을 닫은 수도 포토프린스의 국제공항은 내년까지 미국 항공기의 취항이 금지되어 있다. 이후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다. 전국적으로 식량난이 심각해 유엔이 규정한 ‘재앙 수준’의 식량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도 고아들을 돌보느라 수십 년을 견뎌온 원장들을 생각하면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지진과 해마다 발생하는 허리케인에 더하여 폭력 시위가 끊이지 않더니, 갱단의 공포까지 - 숨쉬기도 어려운 형편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고아원 원장들은 아이들을 품고 살아왔다. 그 가운데 쟌 목사는 심장병과 여러 질병을 앓으면서도 갈 곳 없는 지적장애아 포함하여 50명에 이르는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는 일에 전심을 다 하고 있다. 작년 봄 그를 만났을 때,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나님 계시니….” 그의 대답이었다. 지난여름 십 개월 만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결핵이 의심되었고, 지병인 심장병도 악화된 상태였다. 그날 그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을 잡고 어떠냐고 물으니 대답은 엉뚱했다. “평안해요.” 갱 때문에 문밖을 나서는 일이 어렵고 두려워도, 몸이 아픈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도, 그는 평안했다. 아이들 먹이는 일이 힘겨워도,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그는 평안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쟌 목사는 예수님이 주시는 그 평안으로 극심한 가난과 질병, 공포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지난주 현지 스태프를 통해 연락된 쟌 목사는 여전히 평안을 누리고 있노라고 소식을 전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의 평안이다. 그 평안이 혼란스러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기도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목사 고아원 원장들 동네 폭력배들 질병 공포
2025.10.09. 21:46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쯤 되었을 때, 우리가 하던 고아 구호 사역이 뉴욕중앙일보 1면에 크게 실린 적이 있었다. 기사 제목은 ‘아이티 고아의 아버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보도를 통해 많은 후원이 이어졌고, 새로운 분들이 아이티 고아들에게 관심을 두고 마음을 모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기사를 읽은 한 젊은 성도가 농담처럼 말했다. “목사님은 천국 가셔서 상급이 없으시겠어요. 이미 여기서 칭찬을 많이 받으셨으니까요.” 나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이들만 넉넉히 먹일 수만 있다면 사거리에서 춤이라도 출 수 있지.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내가 칭찬을 미리 받아서 천국에서 상 못 받는다는 건 괜찮아.” 그 말은 내 진심이었다. 우리 사역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개인에게 직접 후원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티 소식은 후원자들에게 단체 이메일로만 전한다. 고아원 형편과 고아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알릴 뿐, 개인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메일 수신자 역시 사역과 인연이 있거나 아이티 소식을 알고자 요청하는 분들에게 한정된다. 교회를 방문해 설교하거나 사역을 소개하고 선교 보고할 때도 마찬가지로 개인적 후원 요청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개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우리 사역을 알게 되고 마음에 감동하여 후원의 손길을 내밀면,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믿고 감사드린다. 지난 17년간 우리의 사역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안다. 아이티 고아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던 분이 후원 의사를 전해오거나, 기도하던 만큼의 필요가 정확히 채워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이롭게 경험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는 조금도 오차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만, 동시에 그것이 결코 사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늘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지금 아이티가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제대로 알고, 그 안에서 자라야 하는 고아들의 삶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제한된 이메일로만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사역이 더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은 이들이 고아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게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마태복음 6:3~4상)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남몰래 좋은 일을 하라’는 수준을 넘어선다. 나 자신조차 선을 베푼 일을 자랑스럽거나 뿌듯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선을 행하는 깊은 영적 태도를 가리킨다. 이 말씀 때문에 성도는 남모르게 선을 행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널리 알려져서, 아이티 고아들이 처한 현실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게 되길 바라고 있다. 고아들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자라도록 끊임없이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아서, 아이티 고아들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전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도 나무라지 않으시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오른손 왼손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소식 고아원 형편과
2025.09.28. 17:01
다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일하게 된 어느 한국인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0대 후반에 위안부에 징집되어 몇 년간 성적 착취를 당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귀국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8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검은색 교복을 입은 10대 고등학생을 보게 되면 공포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과거 당신을 성폭행한 일본군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 혹은 밤중에 깨어날 때, 아파트의 문에 잘 잠겨있나 몇 번이나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6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왜 이것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현실 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일까요? 나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대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경우,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 것은 바로 그것이 내 ‘마음밭’에 심어져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떤 사건이 ‘내 마음’이라는 밭에 씨앗처럼 심어져, 주변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반복적으로 다시 발아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함입니다. 마음밭 자체가 없으면, 어떤 씨앗도 자라날 수 없습니다. 중국의 혜가는 젊은 시절, 많은 지식을 갖춘 학자였습니다. 박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승인 달마대사를 찾아갔습니다. 동굴에서 움직이지 않고 좌정한 달마 대사를 혜가는 동굴 밖에서 며칠간 기다렸다고 합니다. 마침내 달마대사가 동굴에서 나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대사께서 제 마음을 평정케 하여 주시옵소서.” 달마대사는 “네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말했습니다. 불안한 자기 마음을 어떻게 대사께 보여줄 수가 없어서 혜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그러면 네 불안한 마음을 내가 이미 평정시켰느니라.” 이 말에 혜가는 첫 번째 깨달음을 얻습니다. 개가 돌에 맞으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가 돌에 맞으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쫓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가(禪家)에서 많이 알려진 이 달마대사와 혜가의 이야기는, 내 마음이 ‘왜’ 불안한가가 주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안한가, 즉 내 마음의 실체를 알라는 법문입니다. ‘가지’를 묻는 말이 아니라, ‘뿌리’ 질문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희로애락이 일어나는 바탕이 되는 소위 ‘마음’의 실체를 알게 되면 고통의 근원적 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 공(空)도리를 확실히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생각과 감정, 염려, 욕망, 근심 등은 근본적으로 자아 관념에서 비롯합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내 생각의 중심은 나의 ‘자아 관념’입니다. 공기가 사라지면 바람이 근원적으로 일어날 수 없듯,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 작용의 바탕이 되는 소위 ‘마음’을 깨달으면, 즉 마음이란 단지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없어지는 수많은 상념에 대한 ‘이름’일 뿐, 실제로 고정된 본체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空) 도리를 깨닫게 되면 고통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첫 구절이 바로 이 불교의 핵심을 말합니다. “조견오온 개공도 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즉 “나의 몸과 마음이 인연작용이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空)의 진리를 깨달은 후 모든 고통을 건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과학 기술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불교에서 말하는 참 마음의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가 근원적으로 고통을 벗어날 수 있기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수행자는 경전 공부, 하나님 묵상, 화두 연구 등을 통해서 이 우주와 나의 실체가 되는 하나님 혹은 나의 참 마음을 모습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진리연구 자유 마음밭 자체 고승인 달마대사 자기 마음
2025.09.18. 19:06
예상했던 대로 아이티행 비행기의 운항 금지조치가 또다시 연장되었다. 지난해 11월, 갱들이 민간항공기에 총격을 가한 이후 미국 연방항공청은 민간항공기의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 운항을 금지했다. 그 조치는 올 9월까지 이어졌고, 이번에는 내년 3월 7일까지 운항 금지가 연장된 것이다. 그만큼 현지의 위험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미국에서 항공편이 끊기자, 수도는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상태가 이어졌다. 한동안 안전한 북부 도시 캡 헤이션까지 헬리콥터가 운행되었는데, 편도 요금이 무려 2500달러였다. 터무니없는 비용이었지만 많은 외국인이 이를 이용해 아이티를 떠났다. 지난 5월 중순, 아이티 정부의 보증 아래 국내선 운항이 재개되면서 북부 캡 헤이션에서 수도 포토프린스까지 국내선이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헬기 요금의 10분의 1가량의 가격으로 수도와 북부를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이 항공편을 이용해 지난 7월 아이티를 다녀올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수도와 북부를 오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요금은 예전보다 네 배나 올랐고, 무엇보다 여러 차례 갱이 통행료를 걷는 검문소를 지나야 하는 데다, 8시간이나 걸린다.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에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들도 선뜻 이용하지 못한다. 그래도 꼭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역 중에 종종 길이 막히고, 계획했던 일을 제때 하지 못하기도 했다. 여러 번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길이 막혀 계획을 미뤄야 했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려 했을 때는 사탄이 막았다고까지 했다.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은 성령께서 막으셔서 결국 마케도니아 선교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계획도 언제든 막히고 무산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 하고, 만나야 아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자주 미뤄지고 여러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되기도 한다. 요즘 아이티 사역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고아를 돕는 구호 사역을 ‘심부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항공편이 끊기고, 갱단의 납치와 폭력이 난무하는 지금의 현실은 그 심부름을 점점 더 어렵고 힘들게 한다. 현지에 가는 일이 안전하지 않고 항공료도 감당하기 어려워져, 현지 협력선교사님께 송금하는 방식으로 식량, 의료,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늘 아쉽다. 매일 아이티 뉴스를 검색하고, 매주 현지 스태프와 소통하며, 매월 식량 자금을, 때로는 학비와 집세를 보내는데, 그 과정이 자유롭지 못해 심부름이 힘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때는 ‘신나는 심부름’이었는데, 이제는 꼭 해내야 하지만 어렵고 마음 아픈 ‘무거운 심부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17년간 한 번도 잃지 않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이티의 고아들을 부탁하셨다는 것이다. 지난 6~7년간 거친 폭력시위와 코로나를 겪고, 지금은 갱단 때문에 나라 전체가 마비된 상황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고아들에게 전할 사랑의 심부름을 우리에게 맡기고 계신다고 믿는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라나고 꿈꿀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길이 막혀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심부름’이 힘들 때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아이들을 생각하고, 돕는 분들을 생각하고,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한다. 언젠가 다시, ‘신나는 심부름’을 하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심부름 아이티행 비행기 운항 금지조치 중순 아이티
2025.09.14. 16:19
아이들이 새 학기를 앞두고 교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티에서는 보통 9월 중순쯤에 개학하지만, 올해는 개학이 10월로 미뤄졌다. 요즘은 갱단 때문에 수업을 못 하는 날이 잦아 방학을 늦게 시작해서 개학도 늦어진 것이다. 개학에 맞춰 등록금을 마련하고, 학용품과 교복을 준비해야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학교에 가려면 검은색 구두와 학교별로 정해진 색상의 교복을 꼭 갖춰야 한다. 여학생들은 머리에 교복 색깔과 맞춘 리본과 구슬 장식까지 해야 한다. 등록금도 내고 교과서까지 샀더라도 교복이 없으면 학교 문턱조차 넘어설 수 없다. 양말, 신발, 허리띠, 교복에 맞춘 머리 장식까지 갖춰야 하는데 가방까지 준비하려면 보통 근로자가 한 달 동안 버는 월급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아이티에서는 지금, 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국 학교의 절반 가까이 문을 닫았다. 갱단이 차지한 지역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병원과 교회까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돕고 있는 고아원 근처의 학교들은 아직 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살렘, 빠비앙, 러브 고아원 같은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총성이 들리지 않고 길이 뚫려 있으면, 선생님들이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물론 언제든 갱들의 폭력과 방화, 약탈 때문에 학교 문이 닫힐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가 문을 여는 한 학교에 간다. 총소리가 잦은 날이면 골목을 돌아서라도 가고, 갱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리를 피해 뒷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학교에 가는 이유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이지만, 온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게 낫다는 이유도 있다. 위험 가운데 학교를 여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선생님들 역시 월급이 있어야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처음 몇 년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아 답답했다. 사진을 찍어도 늘 똑같은 모습이라, 언제 찍은 건지 구분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일 년에 적어도 네 번, 많게는 여덟 번씩 아이들을 찾아갔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이 아이가 정말 그때 그 아이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던 아이들은 어느새 성숙한 모습으로 인사하기도 하더니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이 된 아이도 있다. 아직도 안정된 직장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티는 여전히 몹시 어렵다. 정부는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무너진 치안은 국제 용병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민 절반 이상이 식량부족과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고,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도 이미 13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고아원 아이들조차 갱들의 위협 때문에 바깥출입조차 못 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복값을 걱정하고, 등록금을 고민한다. ‘배워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희망은 교육에서 시작되고, 미래는 공부하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학교 문턱 전국 학교 학용품과 교복
2025.08.21. 17:40
세상에는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이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우리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나, 삼대력을 쌓아서 항상 변하는 환경을 초월해서 우리가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수행력을 쌓으면, 우리는 절대 행복 자리인 우리의 본성, 하나님의 자리, 하나님 나라에 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등 외부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얻는 방법은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정확한 판단을 한다, 용기 있게 무엇을 잘 실행한다, 부지런하고 신용 있다 등 인생에서의 모든 성공 요인은 다 결국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음을 단련하여 바꾸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진리 공부를 하여 우리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 우리는 만족한 삶, 진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우울증, 비교심, 질투, 미움, 원망 등 오늘날 사람들의 불행은 우리 마음의 상태와 많이 관계됩니다. 같은 환경에서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과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 등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어떻게 마음을 작용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이 천차만별로 나누어집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마음공부가 더 절실합니다. 어떤 나이 많은 불교 신자가 3000배를 겨우 마치고 성철 스님을 배알했습니다. 주지하듯 과거에 조계종 종정이셨던 성철 스님께서는 신도의 지위 여하를 불문하고 법당에서 3000배를 한 사람과만 인터뷰했습니다. 몸이 약한 그 여자 신도는 3000배를 마치고 몸을 제대로 가눌 힘도 없어서 시자 스님의 부축을 받으며 성철 스님 방으로 인도되어 들어갔습니다. 기력도 없고 정신도 없어서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절한다고 수고했다.” 말씀하시며 당신 방석 밑에서 붓으로 그린 원(圓) 종이 한장을 주며, “이가 선물이다. 이제 가도 된다.” 말했다 합니다. 3000배를 마친 노 신도에게 상담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는 것이 너무 차갑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필자는 스님께서 참으로 주요한 선물, 영생의 선물을 그분께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교리를 정립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원으로 정의했습니다. “God is a circle, whose center is everywhere, whose circumference is nowhere.” 우리가 원(圓)으로 상징되는 우리 본성 혹은 하나님 자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모든 고통의 뿌리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그분께 일원상의 선물은 우리 마음과 인생의 근본을 깨우치게 하는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갑니다. 차가 밀리고 때론 참으로 힘든 여행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고향에 가고 싶어합니다.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참고향인 우리의 본성 혹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여행이 가장 주요한 여행입니다. 필자는 오래전튀르키에 여행을 한 적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유럽, 중국 등의 문화에는 익숙했던 필자는 이슬람 세계를 처음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렜습니다. 여러분이 며칠 뒤에 달나라 여행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되겠습니다. 우리 마음의 본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은 튀르키에 혹은 달나라 여행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튀르키에 혹은 달나라에는 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혹은 우리의 참 마음 고향에 가는 이 여행은 인생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벗어나게 하는 주요한 여행이기에 누군가 반드시 가야 하는 여행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 부처님께서 제시해준 법, 즉 최단거리로 가는 지도가 있으니 우리는 참으로 행복자들입니다. 그 지도 따라 길을 쉬지 않고 꾸준히 따라가기만 하면 언젠가는일원 고향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행복 상대 상대적 행복 절대적 행복 절대 행복
2025.08.18. 20:48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우리 사역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신 분들은, 우리 딸 위슬린보다 ‘쇼손(Sonson)’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들었을 것이다. 본명이 자넬슨 루이스(Janelson Louis)인 쇼손을 2010년 8월, 처음 브니엘고아원에서 만났을 때 아이는 네 살이었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허벅지가 절단된 상태였지만, 쇼손의 해맑은 웃음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금세 녹였고, 그의 장애를 잊게 만들곤 했다. 아이의 밝은 미소는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고, 이후 그는 우리 고아 구호 사역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쇼손은 장애에 굴하지 않고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를 오가며 일상을 살아냈다. 2019년 5월, LA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고아원을 찾았을 때, 양쪽 목발을 짚고 바람처럼 축구를 하던 그의 모습은 모두에게 깊은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지내는 고아원은 도미니카 공화국 국경과 가까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비탈진 언덕 위에 있다. 강한 바람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 듯 흔들리는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래도 마당이 있는 ‘집’이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에서 간혹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두 다리가 멀쩡한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목발을 짚고 등하교하는 쇼손의 몸은 언제나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포토프린스에 있던 고아원이 시골 외곽으로 옮겨간 뒤, 쇼손은 고아원 인근의 크리스찬 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고아원으로 가는 길목이 갱단에 점령당하면서, 우리 선교센터에서 고아원까지의 통행이 매우 위험하고 어려워졌다. 우리는 갱단에게 내야 하는 통행세를 감당해가며 어렵게 식량을 보냈고, 학비도 여러 차례 현금으로 지원해야 했다. 그런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쇼손은 맑은 성품과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자라 어느덧 열아홉 살 청년이 되었다. 지금 그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국제선 민항기 운항 금지로 인해 10개월간 아이티에 들어갈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우리는 깊은 낙심과 무력감을 경험했다. 갱단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국제 사회는 무관심했으며, 국가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대부분의 고아원들이 위치한 지역이 갱단에 점령된 상황을 보며, 하나님께서 왜 이토록 아이티를 버려두시는지에 대한 탄식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10개월 만에 건강검진을 하며 우리가 감사했던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배우고, 또 자라고 있었다. 어렵게 아이티를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기침할 때마다 각혈하던 쟌 목사를 병원에 보내던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다. 지난 수년간 갱단의 폭력 속에서도 아이들이 지켜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빠듯한 예산으로 식량과 학비를 감당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후원이 멈추지 않고 채워지고, 부족한 영양에도 아이들은 키가 자랐으며,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지금 아이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은혜 고아원 인근 10개월간 아이티 국제선 민항기
2025.08.07. 18:06
“저는 제가 자란 고아원 아이들, 병원에 갈 돈이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제 가족을 돕기 위해 전공을 살려 학업을 마치는 중입니다.” 아이티에서 만난 고아원 출신 의대생 소피아가 불어로 적어준 글을 스마트폰으로 번역한 내용이다. 소피아는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여자아이 고아원 하우스 오브 홉에서 21년째 사는 청년이다. 세 살 때 고아원에 들어와 스물네 살인 지금도 고아원에서 사는 소피아는 아이티에서 명문이라는 키스퀘야 대학(Universite Quisqueya)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준비하고 있다. 하우스 오브 홉은 18살이 되면 고아원을 떠나야 하지만, 후원자가 있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아이들은 고아원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소피아는 고등학교 때 만난 후원자로부터 대학교 등록금을 지원받아 졸업할 때까지 고아원에서 숙식하며 대학에 다녔는데, 어쩌면 인턴 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고아원에서 지낼지도 모른다. 이제 청년이 된 소피아는 사실 법적으로는 고아가 아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지금은 갱단에 점령된, 고아원에서 멀지 않은 과다부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동생 세 명도 같은 고아원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가난이 깊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먹을 것도, 제대로 된 집도 없는 부모님께 돌아가지 못한 소피아는, 오히려 더 큰 목표를 품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침착했던 소피아는 성실함과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고아원 디렉터의 칭찬이 자자했던 아이였다. 이제 그녀는 더는 ‘고아원 고아’로 불리지 않는다. 지금은 ‘닥터’라는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듬직한 청년이다. 그녀는 고아들과 소외된 이들의 질병을 고치고, 평생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한 가족을 도우며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에 임하고 있다. 3주 전, 우리는 국제선 민항기 운항 중지 탓에 먼 길을 돌아 수도 포토프린스에 있는 선교센터에 도착했다. 갱단 때문에 고아원 방문이 어려워, 대신 각 고아원 아이들을 센터로 오게 했다.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하고 건강검진을 진행했는데, 이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이가 바로 소피아였다. 아이들의 신체검사 후 문진을 하고, 청진기로 진찰하며, 닥터 소피아는 진찰했던 아이 중 여섯 명에게서 깊은 질병을 진단했다. 당장은 고아원 원장에게 ‘큰 병원에 빨리 데려가야 한다’는 처방밖에 해줄 수 없었지만, 그 일이 함께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준 기쁨과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이티에서 고아들을 도우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우리는 뚜렷한 열매를 확인하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 그러나 교육 사역에 힘을 쏟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심 속에 있던 아이 중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가 생기고 졸업생이 간호사가 되더니, 이제는 의사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닥터 소피아는 우리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고아 출신이다. 유난히 다치는 사람이 많아 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피아는 아이티의 갱단 문제, 불안정한 정치 상황, 재정적 부담 등으로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지 못해 지쳐가던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주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자 기적이었다. 그녀는 함께 기도하며 소망을 잃지 않았을 때, 우리가 마침내 만난 미래였다. 절망과 좌절의 땅 아이티에서 닥터 소피아는 우리가 고아들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같이하며 끝까지 함께 울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소피아 닥터 닥터 소피아 고아원 출신 여자아이 고아원
2025.07.24. 18:10
필자 어머니는 50대 말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암이 이미 많이 퍼진 상태라 수술도 할 수 없었고 의사가 6개월 이상 살기 힘들 것이라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여러가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필자는 어머니께 솔직히 의사에게 들은 당신 암상태를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암상태의 심각성을 듣고 놀랐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항암 치료하면 원래 약한 당신 몸이 견디기 힘들 것 같으니, 어머니께서는 항암 치료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냥 즐겁게 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 많은 염려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실제 큰 염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순간순간 낙도 생활을 하셨습니다. 의사 말과는 달리 어머니는 항암치료도 전혀 받지 않고 6년 이상을 통증없이 살고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특별 수행인은 아니었지만, 교당을 꾸준히 다니면서 매일 조금씩이나 꾸준히 좌선, 기도, 염불, 일기기재 등으로 평생 공부를 하셨으니 결국 마음에 있어 수양력이 쌓였고, 말기 암이라는 상황에서도 큰 염려없이 낙도 생활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헬스장에 한 번 갔다고 근육이 튼튼해 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틀림없는 결과가 나옵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결과를 성취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보물 지도가 있어도 그 곳에 실제 가서 보물을 캐지 않으면 보물이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가 14:38) 말씀하시며, 실제 행동과 취사(取捨) 즉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실행의 어려움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학자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연구했습니다. 상원의원, 대기업 CEO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고 그 사람들의 학력과 지능, 집안 배경 등 성공 요인으로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 설문조사 메일을 보낸 후 그 학자는 하나의 독특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각 분야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평균적으로 답메일을 빨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다음 하나를 추가했다고 합니다.이“성공한 사람은 무엇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중국에서 가장 부자 중의 한 사람인 알리바마의 창시자 마윈과 일본에서 가장 거부 중 하나인 손정희씨가 만나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두 분 다 비즈니스를 일류로 하는 사람들이며 특별한 역량과 경험을 소유한 분들입니다. 비즈니스를 성공하는데 “삼류 기획과 일류 실행, 일류기획과 삼류 실행 중 어떤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두 분 다 “기획은 특별하지 않아도 실행이 일류로 되면 그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이 월등히 높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합니다. 어떤 원불교 교무님은 어린 시절 부터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교화를 하는데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 교무님께서 모 교당에서 학생법회를 담당 할 때 일입니다. 일요일 학생 법회 후 한 학생의 생일 파티를 열게 되었는데, Happy Birthday 노래가 끝난 후 어떤 학생이 “교무님! 오늘 00생일날이니 교무님도 춤을 추거나 노래 하나 하세요!” 그 학생은 교무가 많이 수줍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짓←꿎게 장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무님께서 선뜻 일어나 최신 힙팝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다들 웃었고 아주 흥겨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 날 저녁에 기재한 그 교무님의 일기입니다. 한국에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내가 오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매우 긴장되었다. 모든 교도님들이 나를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난 긴장했지만 흥겨운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고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난 노래를 부르고 미친 듯 춤을 추었다. 이가 내 수행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동안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내가 짊어지고 있던 어떤 짐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본래 우리 마음에는 부끄러움도 없고 대담함도 없다. 모든 이가 원래는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이지도 않다. 20여 년의 내 삶 속의 생활 환경과 성격이 부끄러움을 잘 타게 만들었고, 난 그 생각에 갇혀 있었다. 제 본래 성품이 부끄러움도 대담함도 없다는 것을 이미 배웠고 이해했지만, 내가 습관적으로 부끄러움을 타는 내성적인 사람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순간, 난 내 자아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난 스승 보리달마 앞에서 자신의 팔을 자른 제2조 혜가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수행자가 필자의 스승님께 “아침에 잠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수마를 극복하고 아침 좌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운동회사인 나이키의 모토가 “Just do it!” 입니다. 운동뿐 아니라 이 모토는 우리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큰 모토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신앙 수행 실행 일류기획 성공 요인 필자 어머니
2025.07.17. 17:38
길에서 우연히 안면이 있는 목사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 목사님은 대뜸 요즘도 아이티에 가느냐고 물었다. 요즘 비행기가 안 다녀서 못 가고 있다고 했더니, 아직도 아이티 사역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 목사님은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서 우리가 부지런히 아이티를 다닐 때, 고아들 먹이는 것 말고 교회를 짓지 그러느냐고 했던 분이다. 그때 나는 ‘아이들 안에 성전을 짓는 것’이라 답했다. 무너져 없어질 건물이 아니라 고아들의 삶에 짓는 성전이야말로 우리 사역의 중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역은 고아들이 굶주리는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복음도 먹고 살아야 들을 수 있다’라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아이들의 끼니를 챙긴다. ‘꿈을 꾸려면 배워야 한다’라는 믿음으로 교육도 지원한다. 가난 속에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끊임없이 물질과 사랑을 공급해 오고 있다. 수많은 선교사가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도, 험한 땅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교사도 있다. 이들 모두 자신의 소명을 따라 주님 안에서 충성하고 있다. 수많은 선교사역 가운데 작고 미미해 보일지라도, 우리 역시 고아들을 먹이고 가르치며 그들 안에 복음이 자라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다른 모든 선교가 그러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사역이 무엇보다 값진 투자라고 믿고 있다. 후원하는 분들에게 우리는 그 사랑이 보람되도록 애쓰겠다고 약속한다. 갱단 폭력의 두려움과 혼란으로 절망에 빠진 아이티에서 고아의 현실을 마주하면 우리의 지원이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역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을 굳게 믿는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아이티 고아들을 위한 우리의 사역은 비효율적인 투자로 보일 수 있다. 당장 눈에 띄는 사회적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아이 하나에 쏟는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예수님 안에서 가장 귀한 섬김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아이티 고아들을 향한 우리의 사역은, 외형적으로는 불확실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투자,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을 투자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주제가라고 할 만큼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우리 오늘 눈물로 (고형원 작사 작곡)’이다. 그 가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고, 눈물이 차오른다.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 그날에 우린 보리라 새벽이슬 같은 저들 일어나 /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 우리 함께 보리라” 우리는 믿는다. 아이티에서 우리가 오늘 눈물로 심은 한 알의 씨앗이 언젠가 순결한 꽃들로 피어나고, 마침내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을. 꿈꿀 수 없어 무너졌던 아이들이 일어나 뜨거운 가슴으로 행진할 그 날을. 새벽이슬 같은 저들이 찬란한 미래를 여는 날을. 우리는 지금 고아원 구호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한 아이의 삶에 값진 투자를 하는 것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투자 아이티 고아들 고아원 구호 선교사역 가운데
2025.06.26. 17:56
어떤 여자분이 파티에 새 옷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많은 분이 그 옷이 이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그 옷이 잘 어울리는데, 빨간색이라 네가 좀 뚱뚱해 보인다.” 말했습니다. 친한 친구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 친구의 말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온라인에 떠도는 악성 댓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며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있는 댓글을 보면 실지 90% 이상이 좋은 것이고 소수가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들 마음은 저절로 부정적인 것에 마음이 쏠리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좋지 않은 것에 우리 마음이 저절로 따라가기에 십상입니다. 시험 치기 전에 긴장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기심, 상대심, 헛된 욕심을 놓아야겠다고 결심한다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선지식이 우리 본성을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어른과 같이 육근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힘 있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잘 먹고 잘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육근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성을 잘 양성해서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 몸에 근육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주변 환경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다는 것도 주관적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살 집이 있고 하루 세끼 걱정하지 않으면 이가 완벽한 인생, 유토피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항상 이루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더 가지려고 하는 어떤 ‘추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염려다. 염려가 우리 마음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말했습니다. 걱정, 염려하기 싫다고 근심 걱정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심, 비교심, 질투심, 헛된 욕심 등을 없애야겠다고 바로 이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근육에 힘이 있어야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고 옮길 수 있듯, 우리 마음에 힘이 있어야 우리가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고, 염려, 불안 우울증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도 떨어낼 수 있습니다. 육신 근육은 많이 사용할수록 강해집니다. 생각과 염려가 끊임없는 현대인에게 마음은 육신 근육과 반대로, 멈추고 휴식할수록 그 힘이 강해집니다. 작은 싹은 바람에 뽑히지만 나무가 크면 바람에 뽑히지 않습니다. 낙락장송이 되면 태풍도 견딜 수 있습니다. 마음을 멈추고 멈추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수양력이 쌓이고 마음의 힘이 강해지면 여러 가지 어려움, 외경에 흔들이지 않고 우리 인생에 중심이 섭니다. 명상, 좌선, 기도 등을 통해 우리 마음을 멈추고, 우리 정신을 참으로 쉬게 하면 수양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였던 대산종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경계 중에 늘 멈추고 멈추어 늘 가라앉히고 가라앉혀서 대안정력을 얻을 것이니라.” 때론 힘들지만 체육관에서 우리 근육을 단련해야 하듯 수양 시간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가져야 합니다. 좌선, 염불, 기도 등의 정(靜)적인 공부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화를 참거나, 헛된 욕심을 참거나 등 동(動)하는 생활 속에서도 인욕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비 온 뒤에 땅에 더욱 굳듯, 경계 중에 인욕 공부를 하면 수양력이 크게 쌓이게 됩니다. 특히 성자, 위인들은 다 역경 속에서 마음의 힘을 기른 분들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 이들 마음 우리 마음 육신 근육
2025.06.19. 17:30
얼마 전, 남미의 한 국가에서 빈민 선교를 하는 선교사의 사역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나라도 가난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촌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학업을 돕는 선교사의 보고와 설교, 그리고 동영상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 빈민촌 아이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반듯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큰 울림을 주었다. 동영상 속 아이들은 선교센터에 열심히 모이고 신실한 성도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자신의 꿈이 그 아이 중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안 되면 상원의원이라도 나오길 기도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 한국교회에서 벌어진 ‘고지론’과 ‘미답지론’ 논쟁이 생각났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고지론과 주변의 낮은 곳을 섬겨야 한다는 미답지론의 충돌이었다. 많은 목사와 기독 언론이 이 논쟁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시들해진 지 오래됐다. 문제는 고지론을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을 끼친 것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과 더불어, 낮은 곳에서 스스로 의로운 척 살며 고지에 선 자들을 비하하는 것이 비성경적 아니냐는 것으로 압축되었다. 결국, 둘 다 필요하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아이티에서 고아 양육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관점에서, 아이들이 성장해 나라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세상에 선한 그리스도인의 영향을 끼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분명히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거나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다. 우리의 꿈은 그저 아이들이 자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좀 더 나은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당장 끼니가 어려운 가운데서 어떻게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는 것도 아이들이 장래를 꿈꾸며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대통령이 되는 아이가 나올 수도 있고, 나라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높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꿈은 아니다. 우리의 꿈이 어떻게 보면 소박한 것은 지금 당장 먹고살기 어려워서, 총탄이 날아다니는 생존의 사선 위에서 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아이티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땅이었을 때부터, 아이들이 자라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심장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품고 사는 신실한 성도로 살기를 바라면서 고아 사역에 집중했다. 아이티 고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꿈이 아니라, 까마득한 세월 동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품고 사는 시민이 되는 것이 우리의 진실한 꿈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야망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포장하곤 한다. 많은 기독교인이 높은 자리에 오르려 애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은 땅에 오셔서 낮은 자의 본을 보이셨다. 슬픔과 고통이 가시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큰 꿈을 품고 자라길 우리도 바라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꿈은 그들이 높은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아이티가 마음 아이티 고아들 예수 그리스도
2025.06.12. 18:03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려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 산불이 나서 입산 금지가 되었다, 7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주에 아들이 요세미티에서 결혼식을 했다. 요세미티에 간 길에 하루 시간을 내서 7년 전 못 갔던 공원 산길을 걸었다. 산불은 매년 혹은 2, 3년마다 한 번씩 난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지름의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들이 밑동을 그을리고 바짝 메마른 채 잿빛 기둥이 되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다. 넘어지고 꺾이기도 했지만, 불에 탄 많은 나무가 선 채로 메말라 잿빛 나무 기둥이 되어 그대로 장관을 이루었다. 산불의 피해를 고스란히 품고도 생명을 살려내고, 다시 숲으로 피어나는 웅장한 자연 앞에서 나는 까닭 모를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산불 재해를 견뎌낸 나무는 또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나 울창한 숲을 이루리라는 기개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숨겨지지 않는 상처를 품고 다시 일어서는 숲을 보며 벌거벗은 채 하늘을 받치며 선 세쿼이아의 키만큼 높이 슬픔이 차올랐다. 아이티는 지금 벼랑 끝에 있다. 수도 포토프린스는 90%가 넘는 대부분 지역이 갱단의 수중에 넘어갔고, 갱들은 여세를 몰아 이제 지방으로 세력을 넓히며 더 많은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하고 있다. 국제적인 무관심 속에, 유엔 경찰로 파견된 케냐 경찰은 갱들과의 전투에서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의를 상실했다. 최근 유엔 보고서는 아이티가 이제 절망을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후원하는 고아원들도 갱단의 위험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가브리엘 고아원과 오아시스 고아원은 갱단을 피해 이미 작년에 각각 살고 있던 과다부케와 따바에서델마 지역으로 고아원을 옮겼다. 지난 4월 초에는 하우스 오브 홉이 고아원 건물을 갱단에게 빼앗기고 졸지에 아이들이 거리로 나앉아 델마에 있는 좁은 집에 세를 얻어 들어갔다. 그동안 잘 감당하고 있으려니 하고 있던 브니엘고아원이 매년 4000달러의 렌트를 3년째 밀려서, 집주인이 우선 3년 치를 5000달러로 탕감하자고 한다고 연락이 왔다. 고아원 원장이 선교센터에서 식량을 받아서 가지고 가면 미화 100달러가 넘는 통행세를 갱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통행세는 작년까지만 해도 10달러 미만이면 해결이 되었었다. 끼니는 멈추지 않고 돌아오고, 렌트는 거르지 않고 내야 한다. 이 와중에 그래도 꿈을 접을 수 없어 공부도 포기할 수 없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에 아이티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트라우마에 우울해지기까지 한데, 하나님께서는 잔인한 갱들 탓에 불타는 아이티에서 아직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 화마에 넘어지고 그을리고 헐벗은 요세미티가 꿋꿋하게 새로운 가지를 뻗고 푸른 잎을 피워내는 숲에서 잠시 전화기에 보관된 불타고 있는 아이티 거리 사진을 보았다. 검은 재로 덮인 거리와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티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자연은 거친 불길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 생명을 회복하고, 메말랐어도 웅장한 풍경이 되어 숲을 이루는데, 아이티도, 고아들도 다시 일어나 평화로운 번영을 이루며 하나님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깊은 시름의 틈으로, 불에 탄 상처를 품은 숲 가득 슬픔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요세미티 요세미티 국립공원 아이티도 고아들 오아시스 고아원
2025.05.22. 17:37
우리는 절대 진리를 하나님, 도 혹은 불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종교에 따라 다양하게 그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불성 혹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지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혹은 우리 불성에 구족 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도도 정성 있게 하고, 수행에서도 난관이 있을 때 역경을 잘 극복하고 꾸준히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전신 마취 후 수술한 적이 있는지요? 깊은 최면에 들어가면, 의사와 간호사가 어떤 대화를 하며 어떻게 수술을 했는가에 대해 다 상기한다고 합니다. 의식 차원에서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깊은 최면상태에서 이를 기억해 내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런 전지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자들은 바로 이런 세계를 확실히 깨닫고 의식의 세계에서도 이를 잘 활용하는 분들입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마음이 고요해지면 갑자기 그 이름이 생각납니다. 이 역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전지(全知)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드리워진 많은 욕심과 망념이 구름 역할을 해서 밝은 자성의 태양, 즉 우리 본성의 빛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본성 즉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바로 우리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본성 혹은 하나님의 모습이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이 된다는 것이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된다면,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된 부처님 혹은 예수님의 인생이 우리의 수행 표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어떤 결정을 하기 힘들 때 ‘예수님이라면 이 경우에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른 판단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 혹은 하나님이라는 표준이 어려우면 부처님 혹은 예수님 언행이 표준이 되면 됩니다. 우리가 이분들의 말씀과 언행을 자주 묵상하고 닮아가려고 하면 우리가 언제가 부처님, 예수님과 근접하게 됩니다. 신앙에 바탕을 둬서 수행할 때 진리와 하나가 되는 첫 번째는 우리의 본래 마음,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중국 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는 젊은 시절을 유교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습니다. 많은 학식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 그는 인도에서 한 고승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림사를 찾아갑니다. 달마대사는 소림사 위에 있는 동굴에서 참선하고 있었는데, 혜가가 동굴 앞에서 기다려도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참선을 마치고 동굴을 나온 달마가 “왜 나를 찾느냐?” 물었습니다. 혜가는 “마음이 불안하니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주십시오.”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마는 “네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거라” 말했습니다.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지 생각하다가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네 불안을 마음을 이미 안심키셨느니라.” 달마가 말했습니다. 이 말에 혜가는 첫 번째 깨달음을 얻고 나중 달마대사의 법을 잇는 선종 2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이 유명한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큽니다. 혜가 대사의 물음은 ‘왜’ 내 마음이 불안할까 하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달마대사의 질문은 잎과 가지의 질문에서 뿌리를 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즉 ‘왜’ 불안하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안하냐는 것입니다. 개가 돌에 맞으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쫓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불안하냐는 환경적 가지의 물음보다, ‘무엇’이 불안하냐는 뿌리가 되는 ‘마음의 본체’를 지적하는 달마대사의 물음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음의 본체를 알면, 불안 염려 등의 제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고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가 바로 불교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잘리면 잎과 가지도 결국 죽게 되듯, 우리 마음의 본질을 알면,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을 하는 뿌리는 우리의 자아 관념 즉 ‘나’라는 생각에서 나옴) 우리의 고민과 제반 걱정 근심이 없어지고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가에서는 이를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합니다. 즉 마음을 바로 알게 되어 부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깨달음 신앙 불안 염려 우리 마음속 나중 달마대사
2025.05.15. 17:57
지난주, 우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조지 뮬러 박물관을 방문하여 그의 발자취와 사역이 남긴 지속적인 영향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기도하는 사람이자 고아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의 신앙, 유산 그리고 계속되는 사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조지 뮬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애슐리 다운고아원에서 평생 1만여명의 고아를 돌보고, 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전도지를 배포했다. 그의 사역은 가족지원센터 운영 및 교육 사업, 빈곤층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 교회와 단체 지원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35년 서른 명의 여자아이로 시작한 뮬러의 고아원 사역은 넓은 대지 내 다섯 동의 건물에 2000여명의 고아를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의식주 제공은 물론,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갈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은 감탄이 나올 만큼 단정하고 잘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받은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고 질적으로 높아서 고아들에게는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가 나이 들어 고아원을 떠날 때는 두 벌의 정장과 약간의 돈을 줬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고아원에 머물 수도 있었다. 고아원에서 고아들은 교사, 간호사, 가사 도우미 등의 직업 교육도 받았다. 5만 번이 넘는 기도 응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는 고아원을 위해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결과 그의 사역은 필요한 만큼 늘 채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는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건강을 고려해 준비되고 아이들의 신체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나들이하러 가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했다. 190년 전에 고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 못지않게 의복을 갖추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준비된 사회인으로 양육된 것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자세히 만나본 19세기의 고아 양육에 관한 기록은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하는 우리를 부럽게 했다. 사실 아이티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부럽지 않은 일이 없다. 아이티에서 바로 옆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넘어가면 포장된 길과 울창한 숲이 부럽고, 허름한 시멘트 가옥조차 부럽다. 지난 주일예배에 파라과이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소개한 파라과이 빈민가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사역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면서도 사실은 부러웠다. 지금 아이티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고아원은 모두 갱들이 점령한 지역 안에 있다. 두 개 고아원은 갱들에게 쫓겨나 잠자리를 잃었고, 이 와중에 한 개 고아원은 렌트를 못 내 곧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꾸준히 송금하고, 현지에서 식량을 사 공급하고, 숨 막히는 삶을 위해 계속 지원금을 전달하지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던데, 다른 이들의 삶이 부러운 것은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이다. 아이티 고아들도 그렇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싶어서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느낀 부러움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기도 하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눈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남부럽지 않은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기도 애슐리 다운고아원 고아원 사역 아이티 고아들
2025.05.08. 18:12
지난주에 아이티에 계신 탁 선교사님이 이달 치 식량을 샀다고 사진을 보내주셨다. 이달에는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식량 구매 자금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쌀, 콩, 옥수숫가루, 식용유, 스파게티, 설탕에 세탁비누, 화장지 등이 트럭에 가득 찬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한동안 목이 메었다. 그리고 정말 ‘안 먹어도 배부른’ 경험을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난을 온몸으로 견디는 아이티 사람들, 그 혹독하고 잔인한 환경 속에서 더욱 불안하게 살아가는 고아들을 넉넉히 먹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풍성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쌀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쌓아놓은 식량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해졌다. 아침에 죽 먹고, 저녁에 물만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에게 다음 끼니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은, 과식으로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풍요로운 땅에서 사는 이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 늘 아이들의 먹거리를 근심하는 우리에게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신 후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드렸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도 육체적인 양식이 필요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첫째가는 양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었고, 스스로 대인기피증이 있던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아마도 예수님께서 먹지 않아도 배부름을 느끼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아이티 수도가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아이티는 민간인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감히 위험을 무릅쓴다면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로 북부지역의 캡헤이션 공항까지 가서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지만, 일 인당 편도 2500달러의 비용이 들고, 헬리콥터가 여러 번 갱들의 총격을 받은 적이 있어 포토프린스까지 가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 가운데, 현지에 남아계신 탁 선교사님을 통해 식량을 사서 나눠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따름인데, 후원자들의 넉넉한 사랑으로 이달에는 더욱 풍족하게 준비할 수 있어 마치 부활절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어, 우리가 안 먹어도 배부른 듯한 경험을 하게 됐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먹이셨다. 그것도 배불리 먹이셨다.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육신의 굶주림도 채워주셨다. 광야에서 수많은 청중을 배부르게 먹이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을 위해 해변에서 생선을 구우셨다.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은 사람들의 끼니에 관심이 있으셨고 그분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도 배불리 먹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잘 먹고 배우며 자랄 수 있다면, 우리는 안 먹어도 배부른 행복을 계속 누릴 것이다. 이 행복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지만, 배고파도 울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안 먹어도 배부른 시간이 오래오래, 자주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까닭 아이티 고아들 그때 예수님 이후 아이티
2025.04.24. 18:28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알고 진리와 합치하는 방법은 마음공부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방법,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 본성에 합치는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가장 주요한 것은 먼저 ‘진리를 신앙’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 29세에 왕궁을 나와 히말라야에서 구도하셨습니다. 불성 혹은 진리를 얻기 위해 갖은 고행을 하신 후 35세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마침내 대각하셨습니다. 불성을 찾기 위해 범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행을 한 후 대각하셨지만 우리의 본성 혹은 진리라고 하는 것이 ‘이미’일체중생들에게 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감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혹은 법신불, 불성 혹은 본성이라고 하는 것, 이런 전지하고 전능한 세계가 우리 마음에 ‘이미’ 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인들이 마음공부를 하는데 이를 우선 믿고 수행하는 것이 참으로 주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는데 혈우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혈우병이란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이며 2000년 전, 그 가난한 그 여인에게 이 병은 참으로 치명적 병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둘러싸여 있는 예수님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께서 많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보고 이 분이 자기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께 다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는 제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밀치고 걸어가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큰 믿음으로 나를 만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갑자기 예수님과 제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누구를 찾는 것 같아 겁이 난 그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 병 증세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치는 순간 피가 멈추고 병이 나았다는 것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고쳤느니라.” (마가복음 5:25-34)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내가 너를 고친 것이 아니라 바로 ‘너의 믿음’이 너를 고쳤다 말씀하십니다. 방에 전선이 있지만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방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수행자는 믿음이라는 문을 통해 밝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방에 전기가 들어오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방을 스위치를 올리지 않게 되듯, 진리에 대한 믿음, 불성이 내 속에 내재한다는 믿음이 없으면 혹은 약하면 수행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불법의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간다” 말씀하셨습니다. 지구 형성 초기에 비가 몇백만년 내린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시기에 태어났다면 평생 태양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존재합니다. 수행인들은 소위 전지전능하다는 완벽한 불성이 우리에게 이미 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달성하게 하는 길, 즉 부처님의 법에 대한 튼튼한 믿음을 세우는 것이 마음공부의 출발점이 됩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입니다. “봄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갈 수 있나니라.” “도가에서 공부인의 신성을 먼저 보는 것은 신(信)이 곧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모든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신이 없는 공부는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 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결과를 보지 못 하나니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먼저 독실한 신을 세워야 자신을 제도하게 될 것이며, 남을 가르치는 데에도 신 없는 사람에게 신심 나게 하는 것이 첫째가는 공덕이 되나니라.” 송현풍(宋玄風)이 무한 동력을 연구 중이라 하거늘, 정산종사(원불교 2대 종법사) 말씀하시기를 “기계의 동력에도 무한 동력이 필요하지마는 우리의 수도에도 무한 동력이 필요하나니 수도의 무한 동력은 곧 신성이라, 이 신성이야말로 범부를 성인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니라.”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신앙 믿음 불성 무한 동력 원불교 창시자
2025.04.17. 17:50
열흘 뒤면 부활절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난 끝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죽은 이를 살리는 일도, 바다를 가르는 일도 기적이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은 언제나 모든 만물의 근원이고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 선생은 ‘일상의 기적’이라는 수필에서 한 중국 속담을 인용한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허리를 다쳐 하룻밤 사이에 세수하거나 양말을 신는 일조차 어려워진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지난여름, 살렘고아원의쟌 목사는 말했다. “우리에겐 기적이 필요해요.” 기적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기적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흙먼지 나는 길을 따라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일터로 향하는 그런 날들.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고,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쟌 목사가 말한 기적은, 총성이 멎고, 갱들의 폭력이 사라지고, 아이들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삶이다. 사람들은 종종 기적을 초자연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며,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갈망한다. 죽은 사람이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걷고,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사건을 생각한다. 우리의 기적은 다르다. 아이티에서 바라는 기적은 공포의 땅이 한순간에 평온해지고, 모든 사람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맑은 물을 마시며, 아플 때 치료받고, 꿈을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바다 위를 걷고 싶다고 바란 적이 없다.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총성과 폭력이 일상화된 땅에서 끼니를 가장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상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끼니때 밥 먹고, 수업하는 날 학교 가고, 돈 벌러 직장 가는 일은 세수하거나 양말 신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일 텐데, 지금 우리는 그 소소한 일상을, 기적을 기다리듯이 기다린다.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 잘 치료받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날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고아원 건물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부모도 없는 고아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지붕 있는 잠자리를 갖는 날을 기다린다. 마음 놓고 가서 오래 묵은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우리는 지금 기적을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한다. 우리는 기도한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우리의 일상이 다시 살아나기를, 잃어버렸던 평범한 삶이 회복되기를, 도와주는 이 없는 땅에서, 서로가 손을 내밀며 평안히 살아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두려움이 환희로 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우리는 아이티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꽃 피듯이 자연스러운 일상의 회복을, 잔잔한 평화를, 그리고 편안한 숨 쉼을.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한, 그러나 너무도 소중한 그 일상을 말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기적 예수 부활 총성과 폭력 고아원 건물
2025.04.10.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