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물리학에서만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 분야에도 천재가 있나 봅니다. 20살 정도 되는 한 미국 청년이 유전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유튜브로 생물학 강의 듣고 공부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있는 필요 없는 것을 보다가 시간만 소비하기도 하고, 인터넷 게임, 도박 때문에 온라인 중독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유튜브 생물학 강의 듣고 큰 발견을 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자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성공으로 이끄는가는 이들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전자레인지가 처음 나왔을 때 어떤 교도가 필자 스승님께 이를 선물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몰라 그냥 방 안에 두기만 했는데, 어느 날 사용 방법을 배우니, 한약 혹은 차를 데우는데 참으로 이가 유용하게 사용되었다는 말을 그분께 들었습니다.
전자레인지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불법(佛法)’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실지 중대한 일입니다. 이가 실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인생을 행복과 자유로 인도케 하는 방법인데, 이 방법을 모르고 그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인생을 염려와 고통 속에서 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복과 자유로 가는 길을 모르는 경우며, 다른 하나로 설사 그 길을 안다고 해도 과거의 습관 등으로 그 길을 실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 없이 혼자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반한다고 생각해 보십니다. 지도가 있어도 험난한 그 여정을 길도 모르고 등반하면 정상에 도달하기는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 즉 자유와 행복의 삶을 사는 길 즉 ‘불법’을 우선 배우고 아는 것이 참으로 주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절, 교당 혹은 교회에 오래 다니고 진리를 배운지 오래되는데 생활에 변화가 별로 없고, 신앙 수행에 별로 재미를 못 느낀다면, 그 이유는 아마 불법, 성경 등을 배우기만 했지 그것을 내 생활에 실지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불교 경전을 읽어보면 용(用)자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활용(活用), 사용(使用), 적용(適用) 등등. 대종사께서도 당신 교법을 한 마디로 ‘용심법(用心法)’ 즉 ‘마음을 사용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불교 교법의 특징은 단순성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교 출가자들에게 수백 개의 계문이 부여되었습니다. 원불교에서는 수행인의 공부의 단계에 따라 단지 30가지 계문만 주어집니다. 원불교 핵심이 담겨있는 일상수행의 요법도 단지 9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교법의 단순성은 바로 대종사께서 교법을 실질적으로 잘 ‘활용’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세탁기, 핸드폰 등을 살 때,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사용하기가 복잡하면 사람들이 그 전자제품을 사지 않습니다. 활용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불법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당신 교법을 단순하게 만든 것입니다. ‘활용’이라는 뜻은 ‘이리저리 잘 살려서 사용하다’ 입니다.
과거 부처님의 법은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을 거쳐 왔습니다.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변천의 큰 원인은 “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번거해 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을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이라고 강조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