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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불 꺼진 트리

New York

2025.12.11 19:34 2025.12.1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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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이후 첫 수요일에 열리는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올해는 12월 3일에 열렸다. 뉴욕주 이스트 그린 부시의 러스 가족이 기증한 나무는, 그들의 사유지에서 70여 년을 자라온 75피트 높이의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라고 한다. 약 5만 개의 전구를 달고 우뚝 선 이 트리는 내년 1월 중순까지 매일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밝은 빛을 비추고, 성탄절에는 온종일 쉬지 않고 불을 밝힌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동네마다 하나둘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비하면 분위기가 많이 줄었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환하게 불을 밝히는 곳이 있어 겨울 동네에 온기가 돈다. 대형 쇼핑몰의 커다란 트리도 잠시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리는 성탄의 의미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밝히는 빛은 힘들고 지친 마음에 힘을 북돋워 준다.
 
항상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아이티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온다. 아이티의 상점들은 색종이 장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맞고, 큰 마트 같은 곳에서는 조그만 전구를 단 트리도 종종 볼 수 있다. 교회들은 반짝이는 종이로 예배당을 장식하고, 오래된 나무에 전구를 둘러 전기가 들어올 때면 잠시 불을 밝히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옷을 차려입고 작은 파티를 연다. 고아원도 마찬가지다. 색종이를 오려 만든 장식들을 벽에 붙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라 해서 산타가 특별한 선물을 가져다주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더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의 마음에 잠깐의 기쁨이 머문다. 드물게 원장이 아껴두었던 크리스마스 전구를 꺼내 오래된 인조나무에 장식해 불을 켤 수 있는 날이면, 그야말로 세상도, 아이들의 얼굴도 밝아진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아이티의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불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갱단 폭력으로 삶의 여유가 사라진 것도 이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기 공급의 붕괴다. 수도 포토프린스는 전기가 며칠씩 끊기기 일쑤이며, 들어오더라도 동네마다 돌아가며 잠깐씩만 공급된다. 일주일 넘게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하루에 서너 시간 들어오면 감사할 정도다.
 
갱단의 폭력이 치안을 마비시키고, 이어진 석유 공급 중단은 전기 생산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주유소는 문을 닫고 차량은 멈춰 섰다. 치솟는 연료 가격은 이미 가난한 가정의 삶을 더 옥죄고 있다. 식량 가격도 크게 올라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조차 어려운 날들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켜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대낮에도 환히 빛을 내며 겨울의 상징처럼 서 있다가, 철거되는 내년 1월에는 관례대로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Habitat for Humanity)에 기부되어 주택 건축 자재로 사용될 예정이다. 세상을 밝히던 나무가 집 없는 이들에게 다시 새로운 집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빛과 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티 고아원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불이 꺼져 있고, 세상은 두려움에 움츠러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불 꺼진 트리의 슬픔 위에도 예수님은 오신다는 것을. 빛이 꺼진 자리일수록 더욱 밝게 우리 마음을 비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어둠이 깊어도, 그분의 빛은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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