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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풍성한 식탁이 미안할 때

New York

2026.02.12 19:57 2026.02.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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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 우리는 매년 여름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팀을 꾸려 아이티의 고아원을 찾았다. 하루에 한 곳씩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고, 함께 춤추며 어울렸다. 학생들은 이 짧은 만남을 위해 약 8주 동안 악기 연주와 노래를 연습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이어진 이 여름 사역은 아이티 고아들에게는 생소한 기쁨이었고,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생전 처음 악기 연주를 듣는 고아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사이, 학생들은 고아들의 삶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품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리는 환경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몸소 깨달았다.
 
현장에서 고아들을 마주한 학생들은 종종 미안함에 말을 잇지 못한 채 슬쩍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쥐고 놓지 못하고, 아기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일주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학생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티에 다녀온 뒤로 반찬 투정을 안 한다”라며 놀라워했다. 물론 그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혹은 한두 주가 지나면 학생들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그 여름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학생들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그때 팀으로 참가했던 학생 중 일부는 이제 성인이 되어 아이티 고아원의 든든한 후원자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티를 다녀온 뒤 한동안 밥을 잘 먹지 못하는 학생들처럼, 아이티를 자주 오가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후유증이 있다. 아이티에서 돌아온 뒤 일주일쯤은 식욕이 사라지고, 풍성한 식탁을 마주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의 맑은 얼굴이 떠오르고, 닭 다리 하나 놓인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던 아이의 환한 웃음과 눈망울이 자꾸 마음을 붙잡기 때문이다. 치안 문제로 발길이 묶인 요즘도 이 증상은 반복된다. 매일 아이티 소식을 검색하고 현지 스태프와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오래된 상처가 덧나듯 마음이 아려온다. 그래서 지인들을 만날 때면 우리의 사역임에도 고통스러운 아이티 이야기를 애써 피하려 할 때도 있다.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삶이 여전한 그곳의 아이들을 떠올리면, 풍성한 식탁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맑은 눈과 환한 웃음이 생각나면 목이 멘다. 하나님께서는 이 남겨진 마음의 상처를 오직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먹이고, 가르치는 현장에서만 치유해 주실 것 같은데, 지금은 만나러 갈 길조차 쉽지 않다.
 
최근 아이티에서 갱단의 움직임이 잠시 잦아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미국 군함이 포토프린스 항구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상황을 바꾸기에는 부족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이 아직 남아 있다는 작은 신호로 느껴진다. 정치적 혼란과 폭력 속에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조금씩 변하고 좋아지다가 비행 금지 조치가 풀려, 올봄에는 우리가 다시 그 땅을 밟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따뜻하고 기름진 음식을 앞에 두고 나는 다시 아이티에 가고 싶어 가능한 비행기의 경로를 검색하고, 비용을 따져보고 있다. 다녀오면 또 한동안 밥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아이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아이들을 만나 손잡아보고 싶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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