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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선을 넘은 구슬

Los Angeles

2025.08.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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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무더운 여름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아이들의 기세를 꺾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호주머니에 비장의 무기를 챙겨, 하루 종일 태양이 뜨겁게 달군 동네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땅바닥에 삼각형이 그려지면, 아이들의 표정은 오케이 목장의 결투만큼이나 긴장감이 넘친다. 쪼아 찍기, 깔 빼기, 날라 찍기 같은 화려한 기술들이 등장하고, 마당은 승부사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오늘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눈빛이 번뜩였지만, 방앗간 집 큰형은 염소가 종이를 집어먹듯이 구슬을 모조리 가져갔다. 아, 오늘도인가. 또랑또랑했던 눈망울이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질 때, 뜻밖의 환호가 터졌다. 마지막 하나까지 쓸어가려던 그 엄지 구슬이 삼각형 안에 굴러 들어온 것이다. 판세는 단숨에 뒤집혔다. 따먹혔던 죽은 구슬들은 모두 살아났다. 기적 같은 반전에 월드컵 축구 결승전처럼 아이들은 흥분해 버렸다.
 
그랬다. 삼각형 밖으로 밀려난 구슬은 죽은 구슬이었다. 땅 위에 그은 선이 무슨 힘이 있다고, 선을 넘은 구슬은 판에서 밀려나 숨을 잃었다. 여전히 땅 위에 있지만, 더 이상 놀이에 끼지 못한다. 나중에 보니 세상에도 세상이 그어 놓은 선이 있었다. 그 선을 벗어나면 실패요 좌절이라 부르고, 더 이상 끼워주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내일도 이 땅도 우리 편이 아니다. 죽은 구슬은 그렇게 내일을 잃는다.
 
그런데 엄지 구슬 하나가 삼각형 안으로 넘어왔다. 엄지 구슬은 죽었지만, 다른 구슬들은 모두 살아났다. 어쩌면 우리 속에는 이 감추어진 소망이 있었나 보다. 삼각형에도, 오징어게임에도, 술래잡기에도 이 반전이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는 이야기. 집 나간 탕자가 다시 아버지의 집에 돌아와 아들의 옷을 입고 가락지를 끼는 아련한 이야기가 숨겨진 보석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잘하려고 애쓸수록, 손가락에 힘을 줄수록 선 밖으로 벗어났다. 죽지 않으려고 내가 삼각형을 그려 보았지만, 결국 남의 구슬조차 죽였다.
 
그러나 죽기 위해 선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 계셨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셨다. 내가 예쁜 구슬이어서도, 잘나고 똑똑한 구슬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선을 넘어 들어와 우리가 그은 선을 지우셨다. 자유를 선언하시고 우리에게 땅을 돌려주셨다. 우리를 아끼시고 또 아끼셨다. 오직 그렇게 사랑하셨다. 우리를 살리는 구슬이, 여기 이 땅에 오셨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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