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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의 시학 ‘디바’ 스크린에 부활

Los Angeles

2025.08.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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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Diva)]
43년만에 4K 복원판 재개봉
오는 29일 LA 렘리 극장 상영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데뷔작
‘시네마 뒤 룩’ 미장센의 정수
디바’는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4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흥미롭고 몰입도 높은 스릴러로 손색이 없다. [Rialto Pictures]

디바’는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4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흥미롭고 몰입도 높은 스릴러로 손색이 없다. [Rialto Pictures]

1981년에 발표된 네오 누아르의 전설적 작품 ‘디바’가 4K 복원판으로 재개봉에 들어간다.  
 
오는 22일 뉴욕 IFC센터, 29일 LA 렘리극장에서의 복원판 상영에 이어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번 복원은 원본 35mm 필름과 음향 네거티브에서 스캔한 후 디지털 색보정과 결함 제거를 거쳐 완성됐다.  
 
오페라 판타지와 스릴러가 결합된 영화 '디바'는 1980년대 초 프랑스 영화계에서 등장한 시네마 뒤 룩(cinema du look) 흐름을 선도한 장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ineix) 감독의 데뷔작이다.  
 
1980년대 프랑스 스타일 영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디바’는 개봉 이후 예술영화(art film)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디바’는 이후 뤽 베송의 ‘서브웨이’, 레오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등으로 이어지는 스타일리시한 영화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베넥스 감독은 탁월한 시각적 감각과 강렬한 스타일의 연출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감각적인 영상미와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결합한 플롯으로 주목받았다.
 
시네마 뒤 룩은 내러티브보다 상대적으로 시각적 이미지에 비중을 둔 영화 운동이었다. 장 뤽 고다르의 뒤를 잇는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 텔레비전 광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을 보며 자란 세대에게 더욱 어필했던 누벨 이마주의 대표적 영화 학파였다. 화려한 시각과 팝 아트, 록 음악을 결합한 비주얼 중심의 미학적 연출이 특징이며, 당시 기존 프랑스 영화와 대조되는 새로운 영화 언어로 주목받았다.  
 
프랑스 영화에 처음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도입한 영화 운동 시네마 뒤 룩은 시각적 스페터클만을 표피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도 있었다. 누벨 이마주란 말 그대로 새로운 이미지를 개척한 영화들이라는 평가가 내재해 있다. 전 세대의 영화들, 즉 누벨 바그의 영화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화라는 뜻으로 대중에게 전달됐다.  
 
펑크에서 영감을 받은 멋진 프랑스 영화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 영화는 팝 아트, 광고, 음악이 어우러진 시각 중심의 누벨 이미지(Nouvelle Image) 스타일을 지향한다.
 
이 영화는 당시 프랑스 영화계가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보다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5년 뒤 베넥스 특유의 파격적 세련됨과 영화적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한 ‘베티 블루’가 세상에 나온다. 베넥스의 대표작 ‘베티 블루’를 먼저 감상한 이들에게는 베넥스 연출 스타일의 원형과 만날 좋은 기회다.  
 
에로티시즘과 비극적 로맨스를 아우른 ‘베티 블루’는 극적 감성과 스타일로 프랑스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8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영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 올랐던 작품이다. 한편 ‘디바’는 일부 극장에서 1년 이상 장기 상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세자르상에서 신인 감독상, 촬영상, 음향상, 미술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코메디, 로맨스, 오페라, 그리고 살인이 뒤섞인 이 작품은 일종의 ‘신성한 광기’를 폭발시키며, 베넥스의 또 다른 대표작 ‘베티 블루’와도 연결되는 스타일리시한 연출 감각을 엿보게 한다. [Rialto Pictures]

코메디, 로맨스, 오페라, 그리고 살인이 뒤섞인 이 작품은 일종의 ‘신성한 광기’를 폭발시키며, 베넥스의 또 다른 대표작 ‘베티 블루’와도 연결되는 스타일리시한 연출 감각을 엿보게 한다. [Rialto Pictures]

 
우편배달부 쥘(프레드릭 안드레이)은 세계적 오페라 디바 신시아 호킨스(빌헬메니아 위긴스 페르난데스)의 열렬한 팬이다. 청중이 없는 노래는 음악이 아니다라는 신념의 소유자 인 신시아는 음반 취입을 하지 않는 가수로 유명하다. 쥘은 그녀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아 오기 위해 신시아의 콘서트는 빠지지 않고 달려간다.  
 
쥘은 소프라노의 노래가 객석에 울려 퍼지며 관객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도취되어 가고 있는 사이 신시아의 콘서트 실황을 몰래 녹음한다. 그리고 공연 후 무대 뒤로 찾아가 신시아의 사인을 받는 데 성공한다.  
 
같은 날, 마약과 인신매매 조직의 내부 고발자인 나디아는 조직의 비밀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쥘의 우편 가방에 몰래 숨겨놓고 살해당한다. 쥘은 자신도 모르게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며 범죄 조직의 킬러들과 경찰, 그리고 신시아의 매니저, 대만의 음원 해적단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신시아의 공연 녹음과 조직의 비밀이 담긴 두 개의 테이프를 들고 파리 곳곳을 누비며 도망친다. 지하철 안에서 오토바이와 모페드를 타고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서서히 국제 범죄조직 앙티에의 배후 인물이 드러나고 얽혀있던 미스터리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꿈에 그리던 여인, 한 번도 녹음되지 않은 오페라 수퍼스타 신시아의 공연을 불법 녹음했기 때문이다.  
 
쥘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중, 파리 지하철에서 펼쳐지는 추격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베넥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은 핀볼 머신과 비디오 게임 아케이드로 이어지는 탈출 시퀀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오토바이와 모페드가 오가는 아찔한 추격전은 오늘날의 액션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극 중의 추격 장면들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시퀀스로 손꼽을 만하다.
‘디바’는 202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 태생의 소프라노 페르난데스가 출연했던 유일한 영화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월리’(La Wally)에 나오는 아리아 “에벤? 네 안드로 론타나(Ebben? Ne andro lontana)”를 불렀다. [Rialto Pictures]

‘디바’는 202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 태생의 소프라노 페르난데스가 출연했던 유일한 영화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월리’(La Wally)에 나오는 아리아 “에벤? 네 안드로 론타나(Ebben? Ne andro lontana)”를 불렀다. [Rialto Pictures]

 
‘디바’는 그야말로 시각적 스타일의 향연이다. 살인 사건이 수시로 벌어지는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은 아름다운 영상미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베넥스 특유의 불꽃 같은 붉은 색감은 거의 모든 장면에 배치되어 강렬한 시각적 정서를 자아낸다. 코메디, 로맨스, 오페라 그리고 살인이 뒤섞인 이 작품은 일종의 신성한 광기를 폭발시키며, 베넥스의 또 다른 대표작 ‘베티 블루’와도 연결되는 스타일리시한 연출 감각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중심에는 윌헬메니아 위긴스 페르난데즈의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아가 있다. 영화에 흐르는 그녀의 노래는 많은 사람을 오페라팬으로 만들었다.  
 
‘디바’는 202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 태생의 소프라노 페르난데스가 출연했던 유일한 영화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19세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월리(La Wally)'에 나오는 아리아 ‘에벤? 네 안드로 론타나(Ebben? Ne andro lontana)'를 부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코미디와 로맨스, 오페라, 그리고 살인이 뒤섞인 신성한 광기는 시네마 뒤 룩의 형식을 통해 폭발한다. '디바'는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4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낯설고 흥미로우며 대담하고 몰입도 높은 스릴러로 손색이 없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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