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피로 줄이고 난독증 전용 글꼴 개발 쉬운 표현·해설서로 성경 출판 황금기 아프리카 성경 주석 등 다문화 해석도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가독성을 높이고 눈의 피로를 줄인 친절한 성경 출간이 활발하다.
미국인 대부분이 성경을 갖고 있지만 꾸준히 읽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성경 읽기 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99.9%가 성경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미국성서공회(ABS) 조사에서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는 이들은 10명 중 1명이었다.
성경은 두껍고 문체가 독특해 읽기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성경 출판이 가독성을 높이는 기획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출판사들은 가독성 높은 글꼴과 디자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친절한 해설서와 서술 방식을 도입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쉽고 친숙하게 성경을 읽도록 혁신하고 있다.
성경 디자인 블로거인 팀 와일드스미스는 "지금은 성경 출판의 황금기"라며 "수준 높은 성경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 기독교 출판사인 틴데이하우스사가 내년 1월 출간 예정인 '하나님과 동행: 구세주와 함께하는 5주간의 여정(Walking with God)'은 친절한 성경으로 기대를 모은다. 저자는 유명 성경 교사 베스 무어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흐름을 따라 5주간 '믿음의 여정'을 함께하는 성경 공부 가이드북 형식으로 만들었다. 인쇄본 교재뿐 아니라 저자가 직접 낭독한 8시간 분량의 오디오북과 신앙인들과의 대화 영상 5편이 들어있어 멘토링을 받는 것처럼 성경을 공부할 수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개인 멘토링 같은 친밀한 느낌을 준다"며 앞으로 비슷한 형식의 성경공부 콘텐츠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신간 '당신을 위한 성경(The Bible Is for You)'은 성경 각 권을 해설하는 묵상집으로 눈길을 끈다. 이 책은 표지에서 제본, 서체까지 기독교적 메시지를 일관되게 담고 있어 성경 디자인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의 출판사는 여성 독자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진리를 읽는 여성(She Reads Truth)'이다. 레이철 마이어스와 아만다 윌리엄스가 세운 '진리를 읽는 여성'은 출판사이면서 '여성이 함께 성경을 읽고 삶에 적용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신앙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2012년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 내용을 나누는 디지털 성경읽기 운동으로 출발했다. 앱과 웹사이트에 매일 성경 읽기 계획과 묵상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세계적인 신앙 공동체로 성장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와 팟캐스트로 신앙 콘텐츠를 넓혀가고 있으며 성경과 묵상집, 교재 등 자체 출판물을 발행한다. 성경 공부에서 출발한 단체가 내놓은 성경인 만큼 신앙 공동체의 정신을 살려 '읽고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2017년 출간한 'CSB 진리를 읽는 여성 성경(CSB She Reads Truth Bible)'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성경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읽기 쉽게 현대 영어를 사용해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번역본으로 꼽힌다.
'CSB 진리를 읽는 여성 성경'은 가독성이 높은 서체인 '바이블 세리프(Bible Serif)'를 채택했다. 여백을 넉넉하게 해 메모와 묵상을 기록하도록 했고 성경 각 권에 도입부를 두어 역사적 배경과 주제, 핵심 구절을 설명했다. 성경 본문과 연결된 묵상은 물론 성경을 어떻게 읽을지를 안내하는 읽기 계획도 첨부해 길잡이 역할을 한다.
비주얼 요소를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컬러 지도와 인포그래픽, 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이해를 돕는 한편, 주요 성구를 아름답게 디자인한 페이지를 별도로 두어 묵상에 도움을 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성경을 다시 열게 만드는 성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단체는 여성 공동체의 성공에 힘입어 '진리를 읽는 남성'과 '진리를 읽는 어린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성경 전용 서체 개발은 읽기 쉬운 성경 시대의 핵심 중 하나다. 덴마크 디자이너 클라우스 에릭 크로그가 만든 바이블 세리프와 난독증 독자를 위한 '그레이스(Grace)' 서체가 대표적이다. 크로그는 "과거 미국 성경은 작은 활자와 답답한 편집으로 읽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시각적 완성도를 높여 독서 참여율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블 세리프는 오래 읽어도 피로하지 않으면서 장중함과 따뜻함을 주는 글꼴로 처음부터 긴 문장과 반복적 텍스트가 많은 성경 전용으로 개발됐다. '그레이스'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면 혼란을 느끼는 난독증 독자를 위해 b와d, p와q, n과u 등이 헷갈리지 않게 곡선과 획 굵기를 차별화해 형태 차이를 뚜렷하게 했다.
성경 출판사들은 AI 기반 서비스도 시작했다. 디지털 성경 연구 서비스회사인 리바인드는 디지털 구독 서비스 '리바인드 스터디 바이블'로 주목을 받았다. 이 구독 서비스는 미국표준성경의 본문을 기본 텍스트로 사용하면서 기독교.신학 전문 출판사인 어드먼즈의 주석 시리즈와 연결했다. 세계적 권위의 '구약.신약 국제 주석 시리즈(NICOT/NICNT)'는 1만50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학술 자료지만 AI 기술을 활용해 클릭 몇 번으로 검색할 수 있다. 신학 전공자와 목회자, 설교자, 성경을 깊이 있게 읽고 싶은 평신도에게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경이다.
성경 해석에서도 다양한 문화권의 관점과 다문화적 해석이 나온다. 신학.성경학.철학.역사 등 학문 전문 출판사인 '존더반 아카데믹'은 19년 만에 '아프리카 성경 주석'을 개정했다. 100명 이상의 아프리카 신학자들이 개정에 참여한 성경 주석은 물질주의와 민족주의, 사회적 타협 등 여러 현실 속 문제를 성경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다루며 서구 기독교가 놓치기 쉬운 통찰을 담았다.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출판사인 인터바서티프레스(IVP)는 인디언계 신학자들의 관점을 담은 '퍼스트 네이션스 버전(First Nations Version)'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2021년 신약에 이어 올해는 시편과 잠언 번역을 출간했으며 오는 11월에는 '거북섬(Turtle Island)에서 성경 읽기'가 출간된다. 이 책에서 인디언계 신학자들은 성경 속의 종교적 박해 등을 원주민 역사와 연결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디자인과 기술의 혁신, 새로운 시각을 담은 성경 출판 혁신은 독자의 신앙적 의미와 경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성서공회 존 플레이크 혁신책임자는 "출판사들이 특정 독자 집단을 위한 맞춤형 성경을 내놓으며 성경의 이해와 가독성 향상을 돕고 있다"고 평가했다.
성경 출판업계는 이제 책을 찍어내는 데서 나아가 독자 각자의 삶과 필요에 맞게 성경을 연결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 이런 성과를 반영하듯 성경 판매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도서 판매 데이터 전문기관인 서카나 북스캔의 브레나 코너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성경 판매량은 1700만 권을 넘어서 4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