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너무 더웠다. 창문을 열어 놓고 밤잠을 청해야 했다. 창문으로 벌레 소리가 라이브 밴드처럼 들려온다. 쏴아 쏴아 짜르르. 낮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 숨어서 저런 소리를 내는지. 가지런한 생명의 합창처럼 들리지만, 저 중에는 숨이 찬 벌레도 있을 것이다. 몸집이 유달리 작은 사마귓과의 어떤 벌레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나뭇잎에 몸을 감싼다고 한다. 벌레는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작은 날개의 미미한 소리에는 어떤 암놈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몸에 나뭇잎을 두르고 확성기처럼 큰 소리를 낸다고 한다. 작은 벌레의 영리한 전략에 나는 감탄했다.
아침이 되니 두 손주가 들이닥쳤다. 여름내 다니던 캠프가 끝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도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학교 개학 전에 아이들이 좀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네 가서 먹고 놀면서 뒹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느지막이 10시경에 우리 집에 왔다.
“아침 먹었니?” “아니, 아빠가 할머니 집에 가서 먹으래.”
늦잠에서 깬 아이들을 바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파니니 해줘?” 나는 와플 기계에 빵을 넣었다. 두툼한 빵이 들어간 기계의 뚜껑을 빵이 납작해지도록 눌렀다. 빵은 바싹하게 구워지고, 모차렐라 치즈는 녹아서 실처럼 늘어진다. 캔탈롭을 서너 쪽 곁들였다. 덩치가 두툼한 누나에 비해서 베짱이처럼 마른 둘째 아이가 한 모금 베어 문다. 제 누나가 후딱 먹고 사라진 식탁에서 작은 아이는 오물거리며 오랫동안 먹는다. 나는 예쁘다고 머리를 쓸어준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은 아이와 나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식성이 까다롭고 소리를 지른다고 나는 못마땅해했다. 제 누나가 무슨 말을 시작하면 거의 고함 수준으로 중간에 치고 들어온다. 누나 말을 끊지 말라고 야단쳤다. 밥을 먹으라고 부르면 제 누나는 얼른 달려오는데, 작은 아이는 먹기 싫다면서 미꾸라지처럼 어디론가 숨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 아이와 나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노력했다. 내 친구들은 묻는다. 이제 둘째와 사이가 조금 좋아졌느냐고. 물론이다. 작은 아이가 말한다. “나는 할머니 음식이 아빠가 만든 것하고 똑같이 좋아.”
어느덧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 입에서 할머니에 대한 평가가 한 두 마디씩 나오기도 한다. 내 음식이 좋다는 둘째의 말에 나는 입맛 까다로운 고객에게 팁이라도 두둑이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손주에게 성적표를 받다니. 내 곁에는 오지도 않던 둘째 아이가 이제는 카드를 가져와서 같이 놀자고도 한다. 자기기 이기기 위해서 킹과퀸같이 서열이 높은 카드는 이미 골라서 가졌다. 그러고는 좋아서 ‘킥킥 크크’ 하고 웃는다.
할머니가 된 내 친구들은 입을 모아서 말한다. 큰 아이는 착한데, 둘째 아이가 극성스럽다는 의견에 우리는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작은 아이는 태어나 보니 몸집이 자기의 두 세배쯤 되는 라이벌이 곁에 버티고 있었다. 부모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는 존재 때문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목청을 부풀려서 울어야 했고,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말 안 듣고 온갖 전략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의 말을 들어 주니까 말이다. 사마귀가 존재감을 뿜어내기 위해서 나뭇잎을 확성기로 이용하듯 말이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이다. 나는 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저 중에 몸집이 유달리 작은 벌레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