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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위로 장사’와 ‘세이노의 가르침’

Chicago

2025.08.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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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손헌수

몇 해 전,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다가 중간쯤에 책을 덮었다. 일등석을 타고 다니는 저자의 ‘일류 호텔에서 속옷을 직접 빨아 호텔 냉장고 뒤 열선에 널어 말린다’는 대목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부자들의 검소한 일화쯤으로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호텔 냉장고 뒷편의 먼지들이 생각나서 그가 아무리 잘 닦는다고 해도, 그 곳에 속옷을 빨아 말리는 장면을 상상한 순간, 더 읽고 싶지 않아졌다.
 
한때 청춘 담론의 한복판에 선 인물들이 있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대신 교수직을 택한 김난도 교수, 그리고 예능인에서 ‘청춘 멘토’로 변신한 방송인 김제동이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청년 세대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다, 너희가 힘든 건 사회와 어른들의 탓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제동 역시 방송과 강연에서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다.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지목하며, 청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달콤했지만, 공허했다.
 
위로는 잠깐의 마취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라는 엘리트가 안정된 경력 위에서 “아픈 건 너희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청춘들에게, 그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현실 도피의 빌미가 되었다. 김제동은 어떤가? 기성세대의 잘못을 지적하며 약자의 편에 서는 듯했지만, 정작 본인은 강연 한 번에 1,500만 원을 챙겼다. ‘청춘은 힘들다’는 말을 전하며 정작 본인은 그 ‘힘든 청춘’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을 강연료로 받으면서, 자신이 던진 말의 진정성을 갉아먹는다.
 
‘세이노(Say No)’는 필명이다. ‘기존 사회의 틀이나 잘못된 관행에 No라고 말하라’는 의미라고 알려져 있다. 필명이 마치 일본 이름같지만, 그는 한국 사람이다. 자산이 천억원이 넘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실명을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가 틈만 나면 적었던 많은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나온 것이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이 책은 차갑고 불친절하다. 때로는 꼰대 같다. 그러나 최소한 솔직하다. 인생은 네 몫이고, 네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노력과 자기계발, 자산 축적, 태도의 변화만이 네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듣기 거북할지라도, 메시지는 현실을 도려내는 듯한 힘을 가진다.
 
“네 인생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 없이는 자유도 없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라.” “작은 습관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 “공짜 점심은 없다.” “세상이 네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가난은 불행이 아니라, 가난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불행이다.” “젊을 때는 배움에 투자하라, 배움은 배신하지 않는다.” “불평은 네 인생을 바꿔주지 않는다. 행동만이 바꾼다.” “네가 지금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네가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위로의 언어들이 순간의 진통제였다면, 세이노의 차가운 말들은 수술용 칼에 가깝다. 진통제는 잠시 통증을 잊게 하지만 병을 고치지는 못한다. 인생을 바꾸는 힘은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변화하며 삶을 주도하려는 용기와 작은 실천에서 나온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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